그들은 알겠는데, 도대체 우리는 누구인가?

STANDING ON THE CORNER – Angel (Life and Death of the Earth in the Key of F)

우리와 ‘그들’ 혹은 우리와 ‘당신들’

‘우리 대 그들’은 포퓰리즘의 정치를 한마디로 요약하는 어구라 할 것이다. 포퓰리즘의 부상은 다분히 많은 이들이 기피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정치적인 징후이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내적인 한계를 폭로하는 징후로 받아들여야 옳을 것이다. 이를테면 에르네스토 라클라우(Ernesto Laclau)의 주장을 떠올려보자. 그는 지난 수십 년간 가장 영향력있는 정치이론가이자 대표적인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로서 급진민주주의(radical democracy)란 독특한 가설을 주창한 바 있었다.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샹탈 무페,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급진 민주주의 정치를 향하여, 이승원 옮김, 후마니타스, 2012.
그의 급진민주주의론이란 정치적인 실천의 궁극적인 근거나 토대란 존재하지 않으며(이를테면 정치를 결정하는 토대로서의 생산양식이나 계급 같은 것을 주장하는 교조적인 마르크스주의) 다양한 요구들의 헤게모니적인 접합 혹은 등가적인 연쇄를 통해 정치란 작동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라클라우는 말년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급진민주주의론을 포퓰리즘론으로 변형하고자 애썼다. 이는 헤게모니적인 접합의 논리를 통해 이미 예고된 것이기도 하였다. 다양한 요구들이 등가적 연쇄로 접합될 때, 즉 노동자, 농민, 여성, 학생, 실업자,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사회적 위치에서 비롯된 요구들이 하나의 기표(예컨대 민주주의)로 응축될 때, 이는 항상 불가피하게 ‘우리 대 그들’이라는 주체성의 배치를 필연적으로 초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탓에 라클라우는 포퓰리즘적 이성에 관하여이란 대담한 그의 마지막 주저에서 정치적 실천의 근본논리로서 포퓰리즘을 자리매김하고자 하였다. Ernesto Laclau, On populist reason, London & New York, Verso, 2007.
그는 모든 정치적인 이성의 기저에 이러한 포퓰리즘이 관통하고 있다고 보았던 셈이이다. 그런 점에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가 일시적으로 마비되면서 나타나는 우연한 현상으로서 민주주의를 정상화하면 해소될 수 있다는 흔해빠진 생각과 포퓰리즘에 매료된 이들 사이의 생각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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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 버치가 “생각했던” 에세이 영화

Sufjan Stevens – America

에세이 영화의 좌표

앨런 세큘라 Allan Sekula와 노엘 버치Noël Burch의 잊혀진 공간 The Forgotten Space(2010)이 공개되었을 때, 노엘 버치는 이 영화의 공식 사이트에 흥미로운 노트를 기고하였다. 노트의 제목은 “에세이영화”이다. 그는 그 글에서 에세이영화란 관념을 가장 먼저 고안했던 인물로 자처한다. (그러나 영화이론가들은 에세이영화란 용어를 발명한 최초의 인물로서의 역할을 수여할 인물로서 한스 리히터(Hans Richter)를 꼽는다. 1940년 한스 리히터는 “영화 에세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새로운 형식(The Fim Essay: A New type of documentary film)”를 발표하였다. 이 글은 다음의 에세이영화 비평 모음집에 수록되어 있다. Nora M. Alter and Timothy Corrigan eds. Essays on the essay film,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7.)
그간 쏟아져 나온 많은 에세이영화에 관한 저작들 역시 에세이영화란 관념을 제안한 초기의 개척자 가운데 한 명으로 노엘 버치를 꼽는데 인색하지 않는다. (노엘 버치의 에세이 영화론이 에세이 영화를 선구하는 이론적 선언이었음을 강조하는 것은 에세이 영화에 대한 거의 모든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들을 보라. Elizabeth A. Papazian and Caroline Eades eds. The essay film: dialogue, politics, utopia, London & New York: Wallflower Press, 2016. Laura Rascaroli, How the Essay Film Think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7. Nora M. Alter, The essay film after fact and fictio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18, Nora M. Alter and Timothy Corrigan eds. op. cit.)
영화이론가이자 감독으로서 또는 영화 교육자로서 그의 경력에 익숙한 이들에겐, 그와 세큘라의 공동 작업에 관해 일종의 비평적 주해를 추가한다고 해서 그를 엉뚱한 일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잊혀진 공간을 에세이영화로 분류하려는 선제적인 조처라면 이는 도발적인 주장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에세이 영화를 둘러싼 토론에 늘 따라붙는 다큐멘터리인가 에세이 영화인가란 성가신 논쟁을 다시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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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세계를 업로드하기 혹은 피드하기

Sam Cooke – Blowing in the Wind

일본의 하위문화의 속사정에 밝은이들이라면 훤히 알 이야기에서 출발해 보자. 일본에선 ‘제로연대’를 전후해 새로운 하위문화의 부족이 출현(더불어 해체)했다고 일컬어지곤 한다. 이는 저 유명한 전설적인 오타쿠의 자기 배반과 관련이 있다. 일본 문화평론가들의 말을 쫓자면, 오타쿠는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에 몰두하면서 여기와는 다른 세계에 대한 유토피아적인 꿈을 보전했던 이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전공투의 기괴한 자멸적인 파산을 끝으로 유토피아적인 꿈이 소멸한 뒤에도 음습한 자기만의 세계에서 암약하며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꿈을 지속시켰던 이들이었다고 평해진다. 그러나 이런 오타쿠들은 ‘제로연대’, 긴 불황의 시대를 지나며 맞이한 새 천년에는 더 이상 꿈을 지속시키지 못한다. 그러면서 등장한 새로운 하위문화의 흐름이 세카이계(せかい系)와 일상계(日常系)이다. 세카이계는 이름과 달리 세계가 없는 세계에서의 삶을 가리킨다. 세카이계란 “세계의 문제를 자의식의 문제로 왜소화시킨다”는 것을 가리킨다. 세카이계, 그들에겐 세계가 없거나 있다면 그것은 나와 너만 있는 세계이다. 일상계는 세카이계가 더욱 숙성한 것이자 동시에 세카이계의 감수성에 대한 자기패러디에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소비사회의 끝나지 않는 일상’에서 벗어난 다른 세계를 원하는 주인공들이 초능력자, 우주인, 미래인 등과 만난다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실은 변함없이 일상을 즐기기 위한 알리바이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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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변증법: 한국전쟁을 아시아화하기

Power To The People – John Lennon/Plastic Ono Band

1.

나는 한국전쟁이 벌어진지 15년도 훌쩍 지난해에 태어났다. 전흔은 거의 모두 사라지고 없었을 무렵이었으리라. 그런데도 어린 소년이었던 내게 또렷이 기억에 남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의수나 의족을 팔던 상점들의 정경이었다. 그 상점들은 시청 근처 관상대를 오르는 언덕 옆에 자리했던 원호처 옆에 나란히 도열해 있었다. 그 상점의 진열창 안에는 먼지를 뒤집어 쓴 목발이나 기괴한 분홍빛이 감도는 살색의 의족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엔 오랜 동안 닦지도 손을 보지 않아 거무튀튀한 갈색으로 변해버린 의수(義手)들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나는 가지런히 정렬된 다른 길이의 그 플라스틱 손가락들을 오랜 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비명과 포연, 고통으로 일그러진 무시무시한 표정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나는 그 손가락들이 언젠가 벌어졌던 불길한 재앙을 가리키는 손짓처럼 보였던 싶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강원도 북쪽의 작은 소도시였다. 그곳에서 한국전쟁은 언제나 음산한 안개처럼 머물고 있었다. 시내의 유명한 내과병원의 원장이 대한항공 납치사건으로 북으로 갔다거나, 남대천 건너 개량주택 마을에 살던 누군가가 이불 아래에서 단파라디오를 듣다 간첩으로 끌려갔다거나, 동네 끝 시장 어귀에 늘 얼씬대던 미친 거지는 실은 대학을 나온 엘리트로 너무 똑똑해 빨갱이가 되었다가 곤욕을 치르곤 저렇게 실성하곤 말았다거나 하는 소문 또는 괴담이 늘 먼지처럼 떠돌았다. 그러나 정작 한국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소문 속에는 없었다. 경포대 옆에 있던 충혼탑으로 이끌려가 억지춘향으로 묵념을 할 때에나 한국전쟁은 공식적으로 세상 속으로 등장했다. 반공웅변대회나 무장공비 사건 같은 것이 터지면 곧잘 공설운동장에서 열리곤 했던 궐기대회 같은 곳에서, 6.25는 미라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곤 했다. ‘잊지 말자 6.25’라고 외치곤 했지만, 잊지 않아야 할 그것이 무엇인지는 요령부득이었다. 그 즈음 인기 있던 TV 드라마인 <전우>에서 보던 그 전쟁의 풍경을 통해서는, 도무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헤아리기는 어려웠다. 그저 악(惡)이거나 적(敵)이기라는 추상적인 호명을 통해 집요하게 상기될 뿐, 구체적인 원망과 적의를 동원하기가 난감하기만 것이었던 ‘북’이 내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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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한 (추상적) 부정의 노동 – 서평주 <괴상한 춤> 전시에 관하여

Duke Ellington & John Coltrane – In a sentimental mood


브레히트는 뚱한 어조로 독일의 산업자본을 상징하던 아에게(AEG)나 크루프(Krupp)의 공장 사진을 두고 훈계조의 이야기를 던진 적이 있다. 브레히트 가로되, 그런 사진들은 공장에 관하여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크루프 공장이나 아에게 공장 사진은 이 회사들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드러내주지 못한다. 현실은 기능적인 것의 영역 속으로 미끄러져 버린다. 이를테면 인간관계의 물화 즉 공장은, 그런 관계들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렇기에 ‘구성해야 할 무엇’, ‘인위적이고’, ‘고안되어야 할’ 무엇이 있다.”(B. Brecht, Brecht on Film and Radio, London: Methuen drama, 2000, pp. 164-5. 여기에서 브레히트가 말하는 추가되어야 할 무엇은 물론 ‘예술’을 가리킨다. 그는 영화의 불완전한 재현을 극복하기 위해 항상 예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영화가 예술을 만나 예술영화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라 영화의 자연적 재현은 언제나 자신이 재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온전히 재현할 수 없다는 뜻에서 예술이라는 추가적인 조처를 통해 그러한 재현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브레히트 식의 생각은 여기저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프리츠 랑의 <마부제 박사>에 등장하는 주식거래소를 두고 “주식거래소는 단지 주식거래소가 아니라 수천 개의 ‘작은 디테일’을 통해 제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에이젠슈테인의 발언을 참조하여 볼 수도 있다. S. 에이젠슈테인, <자본>에 대한 노트, 김수환, 유운성 옮김, 문학과지성사, 2020.)  이때 브레히트는 사진적 리얼리즘에 대하여 퉁명스럽게 타박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여기에서 언급하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해당되는 것이기도 때문이다. 자본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혹은 자본이라는 ‘현실적인 추상(real abstraction)’을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 (현실적 추상 혹은 실제 추상이라고도 옮겨지곤 하는 것에 대한 획기적인 논고로는 다음의 저작을 참조하라. 알프레드 존-레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황태연․윤길순 옮김, 학민사, 1986.) 나아가 사이비구체(성)으로부터 자본주의를 총체적으로 재현하는 비판적 구체성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이런 물음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리고 이는 굳이 마르크스주의에 별 관심이 없더라도 예술적 실천에 참여하는 이들에겐 달아날 수 없는 쟁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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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닦으며 – 서문을 대신하여

Bon Iver – Naeem

반란자 내 아들이 눈 뜨면
다른 태양을 보게 할 거예요
– 에메 세제르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다큐멘터리 <침묵의 시선>(2015)은 반세기 전 인도네시아 공산당 학살의 기억을 쫓는다. 그 기억을 쫓는 것은 카메라가 아니라 카메라에 비친 슬픈 눈길이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공산당이 있었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는 1965년 유태인 학살에 버금가는 대학살이 있었다. 학살당하고 유배당한 이들은 공산당원들뿐 아니라 노조 활동가, 농민운동가, 비판적 지식인, 청년학생들이었다. 공산당 학살은 반둥회의에서 전환점을 맞이했던 인도네시아의 제3세계 프로젝트가 마침내 종말을 고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불길한 신호이기도 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검안사(檢眼士) 아디 룩쿤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 잔인하게 살해당한 형의 살해자들을 찾는다. 자신의 형, 람리의 살해 동기를 묻는 질문에 그들은 섬뜩하고 그로테스크한 웃음과 연극적인 몸짓으로 당시의 학살을 증언한다. 그리고는 한결같이 왜 이미 지나간 일들을 들추려고 하느냐고, 지나간 역사를 다시 말해 무엇 하냐고 아디에게 다그쳐 묻는다. 급기야 그들은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문제를 일으킬 뿐이라고 역정을 낸다. 이 책은 바로 그를 하고자 한다. 문제를 일으키고 가능하다면 말썽을 일으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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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미술관 Museo de la Solidaridad, Museum of Solidarity (1971-1973)

Agnes Baltsa – To Treno Fevgi Stis Okto(The Train Leaves At Eigh)

칠레 산티아고 공화국 거리 475번지에는 귀환한 ‘살바도르 아옌데 연대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1991년, 세상을 떠돌던 ‘살바도르 아옌데 국제 저항 미술관’(1975-1990)이 드디어 칠레로 돌아온 것이다.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당선된 사회주의자 대통령 아옌데의 죽음 이후, 이 미술관은 칠레로부터 벗어나 세상을 표류하였다. 아옌데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20년째 되는 해, 이 미술관은 과거의 모든 기억을 되찾으며 부활하였다. 그것은 비엔날레나 마니페스타와 같은 전지구적인 미술 이벤트가 흥청대며 새로운 미술관들이 다투어 건설되던 하던 오늘의 풍경과 대조할 때 너무나 거리가 먼 미술관이었다. 이 미술관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시대가 만들어낸 ‘글로벌 컨템포러리(global contemporary)’ 미술이 상상하는 미술과는 전연 다른 미술을 상상하였다. 무엇보다 그 미술관은 미술관의 역사에서 전례 없는 국제주의적인 유토피아 미술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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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아옌데 Salvador Allende (1908-1973)

Santiago Alvarez – Now! (1965)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 가운데 한 명일 파블로 네루다. 그는 살바도르 아옌데를 이렇게 기억한다. “방금 우리 민중은 사막의 초석 광산에서, 해저 석탄 광산에서, 험준한 고산 지대의 구리 광산에서 장엄한 해방운동을 전개했다. 이 운동의 결과 아옌데라는 인물은 대통령이 되었는데, 이는 즉시 개혁을 단행하고 정의를 실현하며 외국인의 손아귀에 들어간 국민의 자원을 환수하라는 뜻이었다. 먼 외국에서도 아옌데 대통령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경의를 표했고, 우리 정부의 특출한 다원성을 칭송했다. 뉴욕의 국제연합 본부가 창설된 이래, 세계 각국의 대표들로부터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은 사람도 없었다. 여기 칠레에서는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사람들의 희생정신과 국민적 자부심과 주권이라는 기초 위 진정으로 올바른 사회를 건설하고 있었다. 헌법과 법률, 민주주의와 희망이, 우리 편 즉 칠레혁명의 편이었다.” 그러나 이 혁명은 불과 3년을 버티지 못했다. 미국의 CIA가 주동한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는 칠레 혁명을 짓밟았다. 무엇보다 아옌데가 구리를 국유화한 것이 문제였다. 만약 이것이 다른 나라들이 따를 모범이 된다면 이는 미국은 물론 모든 발전된 국 식민국가에겐 악몽이 될 것이었다. 막대한 수입의 원천인 구리를 소유하고 있던 미국 기업들은 군부를 은밀히 지원했다. 칠레의 또 한 명의 대통령이었던 1백 년 전 발마세다 대통령이 영국이 차지한 질산염 광산을 국유화하려다 역시 군부 쿠데타에 의해 무너졌던 일이 다시금 반복되었다. 네루다는 다시 이어 말한다. “불멸의 국민적 가치를 지니는 아옌데 정부의 정책과 업적은 칠레 해방을 원치 않는 적들의 분노를 샀으며, 그 비극적인 상징이 바로 대통령 궁 폭격으로 나타났다. … 칠레의 공군 조종사들은 180년 동안 민선 정부의 보금자리였던 대통령 궁에 급강하 공격을 퍼부었다.” 모두 파블로 네루다 자서전에 실린 글이다. 이 겸손한 시인은 살바도르 아옌데를 향한 뜨거운 탄식을 토하며 자신의 자서전을 맺는다. 그의 자서전의 말미는 간략한 아옌데의 전기인 셈이다. 네루다는 아옌데가 숨을 거둔 후 얼마 뒤 같은 해에 영욕의 세월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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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멸렬한 기술 유토피아: 4차산업혁명이라는 이데올로기

Project CyberSyn – Allende’s omniscience

빅데이터 사회주의?: 사이버신(Cybersyn)이라는 기술 유토피아의 꿈

1970년 영국의 인공지능 전문가인 스태포드 비어(Stafford Beer)가 산티아고의 공항에 도착했다. 그는 훗날 칠레인들의 회상에 의하면 산타클로스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풍성한 턱수염에 건장한 체구의 이 영국인은 칠레인에게 숨겨진 선물을 가져왔다고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났다. 그 선물이란 아직 많은 이들이 먼 나라의 낯선 말처럼 들리기만 하던 인공지능이란 것이었다. 칠레에서 급파된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그에게 칠레를 찾도록 요청했다. 인공지능 전문가이며 그것에 바탕해 경영 컨설팅을 하곤 했던 비어는 곧 아옌데의 새 정부를 위하여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어떤 이는 회한과 그리움의 탄식을 내뱉을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그는 전후 냉전체제에서 기적과도 같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사회주의자 대통령이었고 무엇보다 마르크스주의와 가까웠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칠레의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였고 경제 계획 과정에서 노동자의 참여를 약속했다. 그렇지만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바로 그것을 이룰 수 있을 기술적인 비책을 비어는 알려주기로 되어 있었다. 그는 칠레에 도착하여 동료 과학자, 기술자들과 함께 열흘을 꼬박 칠레 경제를 조절하는 역할을 맡게 될 기술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 아옌데를 만나게 된다. 1971년 11월 12일이었다.
비어는 대통령 아옌데와 독대하였다. 전직 칠레 해군장교 출신의 인물이 통역을 위해 함께 자리했을 뿐이다. 1950년대부터 경영 인공지능학(management cybernetics) 분야를 개척하고 활동했던 비어는, 자신이 무엇을 만들고 운용할 것인지 대통령 아옌데에게 설명했다. 인공지능에 관한 한 오늘날 그 어느 시대의 사람들보다 해박한 우리지만 아마 비어의 설명을 다시 듣는다면 전문 용어와 난해한 논리에, 우리 역시 쩔쩔 맬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비어는 인간 신경체계에 기반한 5층 구조의 실용 시스템 모델을 설명했고, 병리학자 출신의 대통령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그가 말하는 바를 금방 이해했다. 아니 이해한 듯 보였다. 그는 이따금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스페인어로는 “신코(Synco)”, 영어로는 “사이버신(Cybersyn)”이란 이름이 붙게 될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게 될 대화는 계속 되었다. 사이버신은 인공지능을 가리키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시너지(synergy), 두 낱말에서 따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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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으로서의 정치: 미술이 정치와 상관하는 법

Bow Wow Wow – I Want Candy

1.
동시대 미술은 무정부주의적 직접민주주의와 오랜 동안 밀월 관계를 맺어왔다. 스스로 자신을 말해야 한다는 명령은, 참여, 협업, 대화, 소통, 공감 같은 윤리적 구호를 미술이 취해야 할 마땅한 정치적 좌표로 내세웠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아는 투명한, 자기중심적인 주체를 전제한다. 더불어 그것은 시간을 공간에 종속시킨다. 그 때 정치란 특정한 장소에 현전하는 주체들 사이의 관계 맺기로 축소된다. 그렇기에 자신이 경험하지 못할 미래를 바꾸는 일이자 자신이 겪어본 바가 없는 과거의 역사적 효과를 전복하는 것이 정치라는 관념은 맥을 못 춘다. 동시대미술이 짐작하는 정치란 현전적인 경험으로서의 공감과 동일시, 그리고 그러한 신체적 움직임을 서로 응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것은 전시장이 자신의 의지와 의견을 투명하게 대표하고 반영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흩뿌린다. 미술관은 끊임없이 유사 무대 장치나 세트장 같은 장소로 자신을 변형하며 미술관이 민주주의적 경험의 장소라는 것을 과시하려 애쓰고 있다. 그 때문에 부쩍 자주 듣는 미술관은 민주적인가라는 물음은 실은 미술관의 정치를 은폐하려는 질문이라는 의심을 품게 한다. 미술관은 자신을 가리는 숱한 가면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이벤트 공간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미술관의 임시변통의 일시적 가장(假葬)은 정작 미술관이란 무엇인지 묻지 못하게 하는 눈속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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