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아, OVERSEAS, 2019.
올 해 본 다큐멘터리 가운데 세 편의 리뷰. Docking 매거진의 청탁을 받고 썼다.
해외 (Overseas)
감독 윤성아 (Sung-A Yoon)
제작년도 2019
키워드 이주, 이주노동, 세계화, 여성, 빈곤, 국가주의
주요내용 필리핀 해외 이주 엄마 노동자들의 노동의 페다고지(pedagogy)
<해외>는 필리핀의 이름 모를 어느 가사노동도우미의 훈련기관의 여성들을 좇는다. 필리핀은 세계 최대의 이주노동자 송출 국가이다. OFWs라는 약어로 지칭되는 이들을 가리키는 낱말은, ‘해외 필리핀 노동자(Overseas Filipino Workers)’이다. 정치지도자들은 이들을 곧잘 나라의 영웅으로 칭송한다. 그들은 무엇보다 필리핀 경제의 영웅이다. 필리핀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미국 달러는 필리핀 경제의 버팀목이자 필리핀 페소화의 가치를 유지하는 지렛대이다. 필리핀 이주노동자들 가운데 압도적인 다수는 여성 그 가운데서도 양육과 돌봄에 있어 수완이 있다고 여겨지는 기혼여성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녀들과 생이별을 하고 자신을 고용한 이들의 갖은 수발을 든다. 가사노동도우미를 부르는 흔한 이름은 ‘메이드(maid)’이다. 공식적인 표현으로는 ‘헬퍼(helper)’. 감독은 이들이 다시 다음의 일자리를 얻기 위한 훈련의 과정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통해 현장에 없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노동과 차별을 상기하는 기억을 직조한다. 카메라는 훈련기관에서의 일과를 좇을 뿐이다. 그러나 청소와 빨래, 요리, 식사 시중, 유아 목욕과 노약자의 수발을 익히는 수업은 쿠웨이트, 오만, 두바이, 홍콩, 싱가포르라는 다른 노동현장에서의 차별과 모욕, 폭력들을 증언하는 자리가 된다. 인터뷰가 아닌 서로의 대화와 수업 속에서 오가는 대화들은 놀라운 리얼리즘을 끌어낸다. 이 작품은 불행이나 비참과 같은 윤리적인 시선에 의해 수척해진 삶의 내용을 거부하고 ‘노동 속의 삶’이라는 현실을 마주하게 한다. 마치 그들은 의식고양(consciousness-raising)을 위한 초기 여성주의의 대화의 실천을 여성노동자들의 세계 속에서 부활시키는 듯이 보인다. 삶의 세부들을 윤리적 정조를 운반하기 위한 배경으로 축소하는 근년의 다큐멘터리들에 지친 이들에겐 어쩌면 계시와도 같은 작품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