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พื่อชีวิตติดล้อ คาราบาว
1973년 10월 14일, 태국의 수도 방콕의 민주주의 기념탑 앞에 50만 명의 시민들이 운집한다. 그 해 6월 람캄행 대학교 총장은 군사독재를 비판하는 팜플렛을 작성한 학생을 퇴학시키려다 저항에 부딪쳐 총장직에서 물러난 바 있었다. 몇 달 뒤 민주헌법 제정을 요구하는 전단지를 돌렸단 이유로 11명의 학자와 대학생이 체포된다. 그리고 이에 맞서 수십만 명이 거리에 나섰던 것이다.
그들은 대개 젊은 대학생들과 청년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오랜 군사독재정권이 물러나도록 요구했다. 또한 인접한 인도차이나 지역에서의 잇단 반제국주의적 투쟁과 사회주의혁명에 고무되어 미국과 일본의 태국에 대한 지배에 손을 뗄 것을 요구했다. 절대군주제를 타도하고 근대적인 국가를 세웠지만 태국은 1957년의 군사쿠데타로 싸릿(สฤษดิ์ ธนะรัชต์, Sarit)의 군사 정권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 사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의 특수로 태국 경제는 꾸준히 성장하였고 노동자들의 수 역시 폭발적으로 증대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렸다. 그들에게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가 보장되었을 리 만무했다. 단지 혹독한 노동통제만이 있었다. 그러나 1973년 이러한 사정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1973년 한 해에만 40여건이 넘는 파업이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태국제철(Thai Steel Company)의 파업은 한 달여 동안 계속되었고 다른 노동자들 역시 굳건히 연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