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구를 넘어 문화경제학으로? 아니 자본주의 비판으로

후기자본주의 시대의 문화적 논리로서의 문화연구와 그 한계
문화연구와 자본주의 비판의 기획
“문화연구(혹은 제도화된 분과학문 혹은 학제간 연구로서 문화학)”의 무의식적인 정치적 기획은 아마 1980년대를 전후한 자본주의 체제의 변화와 연계되어 있을 것이다. 예컨대 영국 CCCS의 스튜어트 홀을 위시한 문화연구 학자들의 “새로운 시대(New Times)”와 관련한 입장을 전후 복지국가의 위기에 대한 자본주의의 대응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 것인가. 1990년대 한국 사회에서 문화연구가 대두하고 열광적으로 수입된 과정 역시 한국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의 변화와 분리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문화연구(혹은 그것이 대중적으로 현실화된 형태로서의 문화비평)는 이른바 전지구적 자본주의로의 조정에 상응하는 이데올로기적 실천이었다는 혐의를 받아왔다(“문화연구”를 집요하게 규탄하고 있는 지젝)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한 다양한 비판적 정치학을 쇄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공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연구는, 제임슨의 말을 빌자면,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의 일종으로 전락하였다는 조롱을 피하기 어렵다. 다양성과 차이, 정체성과 재현, 다문화주의와 대항문화나 하위문화의 숭배 등은 영미 문화연구가 계발하고 발전시킨 문화연구의 이론적 기획이었지만 또한 그것은 많은 이들에 의해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문화적 재현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문화연구의 정치적 후퇴 혹은 한계를 비판하고, 문화연구를 재급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이 절실하다. 이른바 정치학 없는 정치철학의 범람(자크 랑시에르와 에띠엔느 발리바르, 알랭 바디우 등의 “본연”의 정치학의 몰락에 대한 개탄)은 또한 문화연구의 “문화정치학”의 특성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정치적인 문제로 구성할 수 있다는 문화연구의 정치적 충동은 또한 자본주의 비판으로서만 가능한 것이었던 좌파 정치학의 소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문화산업에서 미적 경제로?
문화연구의 보이지 않는 이론적 가정을 구성하는 담론적 전제들을 들춰내고 그것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이를 위하여 제출된 유력한 답변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문화경제(cultural economy, 혹은 정치학자 봅 제솝의 표현을 빌자면 “문화적 정치경제학 cultural political economy”)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입장은 거칠게 말하자면 우리는 “문화의 경제화/경제의 문화화”로 불리우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전환의 맥락에서 문화의 위치에 관하여 물음을 던진다. 후기산업사회론(다니엘 벨 등)을 위시하여 기호와 상징의 경제, 탈조직 자본주의, 네트워크경제, 제국 등에서 지식정보사회론, 미적 경제론(체험의 경제)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론들은 새로운 자본주의의 특성을 문화와 경제의 융합 혹은 탈분화란 관점을 지지한다. 이런 입장은 공통적으로 전단계의 자본주의(마르크스주의자라면 제국주의 단계의 독점 자본주의라고 부를 그리고 조절이론의 맑스주의자들이라면 포드주의적 자본주의라고 부를)가 종료하였음을 선언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러한 특정한 축적 단계가 내장하고 있는 생산과 교환의 방식은 그에 연관된 문화적 재생산의 장치와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문화이론의 통념을 집약하고 있는 개념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문화산업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논리의 비경제적 영역의 포섭과 식민화라는 주장은 곧 미적 자율성 혹은 문화의 비판(아도르노)와 미적 총체성(루카치-제임슨) 등)을 통한 자본주의의 비판이라는 기획으로 연결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이는 비판적 문화연구에서 스타일의 정치학(딕 헵디지, 수전 손택 등), 일상생활의 미적 실천(미셀 드 세르토, 미셀 마페졸리 등)을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에워싸고 분출된 다양한 문화비평의 에토스 안에서 계속 유지되어 왔던 통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지구적 자본주의에서 이러한 문화-정치적 기획은 유지되기 어렵다. 당장 문화와 경제 사이에 놓은 적대적 혹은 비판적인 긴장을 강변하도록 하였던 조건 자체가 소멸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자본주의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문화경제 혹은 미적 경제라 불리는 현재 자본주의 경제의 역학은 상품을 예술작품처럼 다루거나(홍보 및 광고, 마케팅, 컨설팅, 광고 등의 중심성), 생산/노동을 미적 취향과 라이프스타일 등의 생산과 동일시한다(이른바 소비자 중심의 경제 혹은 수요 주도의 경제라는 가상, 그리고 “쿨(cool)”의 부상). 따라서 생산의 중심성을 중심으로 구성된 계급론은 이제 단순히 취향의 분화와 조응하는 것으로 재구성되거나 숫제 평범한 사회학적 분류로 환원된다(부르디외의 취향의 계급화를 상기하자). 따라서 문화매개자(cultural intermediaries)라는 개념이 부상하고 이에 조응하는 보보스(Bobos), 창조적 계급(creative class) 등의 새로운 용어들이 창안되는 현실 역시 주목해야 한다. 문화와 경제의 탈분화라는 현상은 새로운 자본주의에 관한 담론의 경제 전체를 재구성한다는 점을 주시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문화연구의 현 단계에 안주하기 어렵다.
문화경제학의 주요 이슈
이런 사고에서 우리는 생산의 정보화, 자동화에 따른 지식과 정보의 가치화, 그리고 미적 경제, 창조적 산업 등으로 명명되고 있는 새로운 경제적 활동의 등장에 주목하고 그것을 비판적 문화연구의 이론적 대상으로 재정의하여야 한다. 이는 지금까지 문화연구가 특권화시켜왔던 문화연구의 대상과 이론적인 방법과 해석의 틀, 분석적인 지향 등을 점검하는 작업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주요한 관심은 비판적 문화연구가 자본주의의 비판적 분절의 기획으로서 가질 수 있는 효력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주요한 특성을 문화와의 관련 속에서 이해하기 위하여 검토할 주요한 쟁점들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a) 문화의 경제화/경제의 문화화, 노동의 정체성의 변화(정서적, 비물질적 노동과 삶의 직접적이고 집약적인 지배(생산과 소비의 생권력화) vs 지식정보사회, 네트워크자본주의 등),
b) 전지구적 자본주의에서 자기정체성의 변화(포스트-프로스테스탄티즘 시대의 자수성가적 자아 vs 브랜드화된 나의 포스트모던 경영이론에서부터 자기재귀적인 자아, 위험사회와 적극적인 신뢰의 주체를 주장하는 제3의 길/성찰적 근대화론에 이르기까지),
c) 전지구적 자본주의 하에서 새로운 계급적 정체성과 분화의 (재)생산과 문화적 정체성(지식노동자, 창조적 계급, 신지식인, 트렌드세터, 생활양식 개척자, 프리에이전트 등에서 문화매개자, 신중간계급, 하층계급, 호모 사커(homo saccer) 등에 이르기까지),
d) 과학적 경영관리에서 평생학습, 인적 자원 경영의 시대로의 전환(포스트-테일러주의적 자본주의 혹은 유연전문화/들뢰즈의 푸코를 경유한 정식에 따르면 관리사회)에 따르는 자아(the self)의 담론의 변화(훈육적 자기와 자기의 테크놀로지의 전환과 변용),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적 노동 윤리에서 “놀이 윤리(the Play Ethics)”의 대립, 그리고 이를 구체화하는 자기계발담론의 대중화(전문가 체계와 조직의 몰락, 자기고용, 자기의존성의 기업가적 자아의 부상 등),
e) 노동조직, 가정, 여가의 환경 안에서 이뤄지는 문화적 정체성의 변화와 혼입(차이의 가치화 혹은 탈영토화와 포섭(여성, 인종, 성정체성 등과 문화정치학), 다문화주의와 단일문화(monoculture/McCulture), 전지구적 문화(global culture/Unesco culture/Benetton culture), 문화적 시민권 등),
f) 그리고 소비중심, 마케팅 자본주의의 등장과 더불어 등장하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문화 실천의 포섭과 전유(청소년 문화, 하위문화와 반문화, 대항문화의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예속화),
g)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문화적 정체성 위에서 어떤 급진적 문화정치적 기획이 가능한가에 대한 토론(포스트사회주의적 정치학의 에토스에서 비롯된 문화연구의 정치적 프로그램의 한계와 시민사회운동, 반기업운동에서 문화방해운동, 페미니즘과 퀴어운동의 정체성의 정치학에 이르는 다양한 실천의 비판적 검토)등.
(한겨레문화센터의 강의를 위해 준비한 강의안. 일전 대학원 수업에서 사용하였던 강의계획서를 일부 손본 것이다.)

3 thoughts on “문화연구를 넘어 문화경제학으로? 아니 자본주의 비판으로”

  1. 두 번째 문단의 ‘또한 그것은 많은 이들에 의해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문화적 재현이기도 하였다’는 틀린 문장이겠지요? 트집잡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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