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꼽은 한국 다큐멘터리 10선



노동자뉴스제작단 – 노동자뉴스1호

1. 김동원, 상계동올림픽 (1988)
<상계동올림픽>은 (반)제도적 실천으로서 독립 다큐멘터리의 기원을 이룬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개입과 참여의 주체로서 감독이란 저자의 면모를 뒤잇는 작가들에게 생생히 각인했다. 김동원이라는 감독의 등장을 세상에 알린 것만으로 이 작품은 가치가 크다.

2. 노동자뉴스제작단, 노동자뉴스 1호, 1989
노동자뉴스제작단은 한국 다큐멘터리 운동의 역사적인 형식을 증언한다. 운동으로서의 다큐멘터리, 교육과 선전으로서의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이어가고 있고, <노뉴단>은 그 원점에 있음에 분명하다. 다큐멘터리의 저자가 사회적 저자임을 환기하고 작업이 항상 역사적 시간에 정박해 있음을 알리는 급진 다큐멘터리운동의 원점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3. 변영주, 낮은 목소리(1995), 낮은목소리2(1997), 숨결(1999)
변영주의 위안부 할머니 3부작은 전시 성폭력이라는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며 이것이 손쉽게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지 않도록 더할 나위 없는 노력을 기울인다. 피해자라는 창백한 이미지에 관해서도 역시 저항하며 할머니들에게 말문을 열어준다.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란 물음에 이 다큐 시리즈는 성실하게 대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경순/최하동하, 애국자게임 (2001)
<애국자게임>은 풍자적이면서도 성찰적인 이데올로기 비판 다큐멘터리가 등장하던 시점의 선구적인 작품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위기 이후 도래한 이데올로기적 비판의 곤란과 타협하지 않으며 새로운 다큐멘터리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비웃는 작업들을 지속했다. 애국자게임은 애국주의의 너절하고 비루한 모습을 명랑하고 때로는 페이소스 가득한 표정으로 비춘다. 비판에서 야유와 조롱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어법은 이렇게 자리잡게 되었을 것이다.

5. 조은, 박경태, 사당동 더하기 22 (2009)
민족지적 다큐멘터리가 희귀하거나 거의 없는 한국에서 조은의 인류학적 다큐멘터리는 출현 자체가 커다란 성취일 것이다. 구조와 체계를 가시화하는 노력만큼이나 그에 연루된 개별적인 혹은 공동체적인 주체의 삶을 드러내는 가능성을 찾고자 할 때, 이 작업은 지속적인 참조점이 될 것이다.

6. 이강현, 보라 (2010)
새로운 다큐멘터리 언어의 출현을 알린 전환의 시대에 <보라>는 매우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외환 위기 이후의 신자유주의 시대는 시대라고 불림에도 그 역사적 시간성을 식별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시간성 혹은 시대가 공간과 육체로 환원되는 전환을 <보라>처럼 예민하게 포착한 다큐멘터리를 찾기란 어렵다.

7. 김경만, 미국의 바람과 불 (2011)
포스트-인터넷 시대의 다큐멘터리를 선취하는 이 작품은 토탈리콜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의 아카이브를 유영하며 다큐멘터리를 구축한다. 과거의 이미지들이 누적된 아카이브를 활용한 것이란 점에서나 아카이브를 통한 기억에 개입하며 다양한 파편적, 갈등적 푸티지를 활용해 역사적 서사를 구성하려고 했다는 점에서나 이 작품은 향후 등장할 다큐멘터리 형식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8. 김일란, 홍지유, 두 개의 문 (2012)
참사 혹은 재난과 같은 사회의 증상들은 한국 다큐멘터리의 주된 관심사였다. <두 개의 문>은 그런 재난의 시간을 둘러싼 다큐적 접근의 전환을 알릴 것이다. 그것은 재난의 우연성을 시대적 총체성 속에 포함시키는 서사화의 노력을 기꺼이 포기하고 ‘목격’과 ‘경험’으로서의 다큐멘터리라는 어법을 제출하였다.

9. 정윤석, 논픽션 다이어리 (2013)
<논픽션 다이어리>는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포스트-역사적 다큐멘터리의 빼어난 시도임에 분명하다. 이 작품은 지존파의 엽기적 살인이라는 시대적 트라우마를 다른 트라우마들(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등)과 연결하면서 불길한 증상과 같은 것을 시간을 읽는 암호로 도입한다. 역사적 서사쓰기로서의 다큐멘터리를 대체하는 새로운 과거 읽기의 다큐멘터리가 등장한 셈이다.

10. 임흥순, 위로공단 (2015)
<위로공단>은 에세이 영화적인 양식으로 한국 다큐멘터리가 전환하고 있음을 알려줄 뿐 아니라 심미적인 상징화를 통하여 다큐멘터리를 혁신하고자 하는 시도를 역력히 보여주었다. 또한 역사-다큐멘터리에서 기억-다큐멘터리로 이행하는 근년의 경향을 압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분명 범례적인 것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_DMZ다큐멘터리 영화제의 부탁으로 작성한 내가 뽑은 지난 한국 다큐멘터리의 대표작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