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인가 피해자인가 – 우리 시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한 가지 초상

Ma Han
– 대학 시절 바로 한 학번 위의 운동권 선배 가운데 우리들 사이에서 “개”라고 불리던 선배가 있었다. 그 선배의 이름은 지금은 가물거리기만 해서 그가 전라도 시골 출신이었다는 정도만 어렴풋이 기억날 뿐이다. 왜 그가 “개”라고 불렸는지 자초지종이 기억나지 않는다. 짐작컨대 그가 술만 먹었다하면 길을 오가는 승용차에 달려들어 백미러를 부수거나 하는 행패 때문에 그랬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뿐이라면 그는 그저 주정뱅이 취급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가 “개”라는 별명을 거느리게 된 데에는 아마 다른 이유들도 거들었을 것이다. 시위만 있었다하면 핏발이 선채 악다구니를 쓰며 대열의 선두에서 각목과 화염병을 휘두르는 그의 성마른 성품 역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아직은 조금은 겁에 질려있던 우리에게 진짜 “개”처럼 보였던 이유는 아마 다른 데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신입생이었던 우리에게 그가 행사했던 거북한 심리적 압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족삼아 말하자면 나는 이른바 85학번이다) 물론 정작 그는 우리에게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한 번도 다그친 적이 없고 또한 회유를 한 적도 없었다. 그는 그저 싸움에 나선 아이들과 작전을 짜고 시위에서 돌아와선 약간 뻥이 섞인 무용담을 늘어놓거나 할 뿐이었다.
컬티즌에 기고한 글. 더불어 여기도 클릭 🙂

그러나 나는 물론이고 내 주변의 많은 이들에게, 그는 자신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조금 숨막히는 강요였던 듯하다. 망설임과 주저함, 조금은 고민하는 듯한 회의 틈새도 마련해 놓지 않고 줄달음치는 그의 맹목성을 우리는 모두들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실토할 수 없는 반감을 은밀히 나눠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세련되지 못하고 어딘가 상스러운 듯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개”라는 어떤 모욕적인 별명을 그에게 붙여주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또한 그에게 더욱 은밀하게 얼마간 주눅 들어 있기도 하였다. 그것은 그의 맹목성에 이르지 못하는, 젠체하는 “회색인”의 몸짓이 허위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운동을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우리는 마치 유행처럼, 이데올로기적 흑백 논리를 강요하는 것이라며 반발하며 건방을 떨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내심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대개 자신의 삶의 이해를 살피는 고민을 겉치레하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정작 어떤 이데올로기적 구속에서 벗어난 자유인의 몸짓을 뽐내지만, 그것이 오히려 정반대라는 것, “자유롭게 선택하는 나”의 앞에 놓인 “현실”을, 거스를 수 없는 현실로 여기는 것이야말로, 알고 보면 가장 훌륭한 이데올로기적인 복종을 행하는 것임을 말이다.
그리고 불행한 일이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철석같이 공유하는 이데올로기는 탈이데올로기적 회의이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조정래의 ‘태백산맥’까지 한국의 모든 이데올로기 비판 문학(나는 그것을 진보적인 문학이라거나 민중문학이라거나 심지어 지식인문학이라거나 하는 평가에 전연 동의할 구실을 찾지 못한다. 외려 그에 걸맞는 이름을 찾자면 이데올로기적인 문학이지 않을까)은 언제나 이데올로기적 선택을 강요받은 어느 개인의 무력한 자유를 제시한다. 그것은 남인가 북인가라는 두 가지의 선택지 밖에 주어지지 않았던 개인에게 제3의 길이라는 진정한 환상, 이데올로기 외부의 공간을 향한 꿈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탈이데올로기적인 몸짓의 이데올로기는 비단 문학의 공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른바 노무현 정권 이후 본격화된 과거사 청산과 민주화운동 기념사업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 나는 이러한 사태가, 어느 진보적 사회학자의 말처럼, 기본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 제도를 갖추고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틀을 완성하는 “정상화”의 과정이었다고 보는데, 전연 수긍하기 어렵다. 그것은 거칠게 말해 민주주의와 압제라는 틀로 그간의 한국사회운동을 소급적으로 그것도 아주 빈약하게 재단하기 때문이다. 그의 논리에 따르자면 노동자들이 정치조직을 결성하고 새로운 경제체제를 꿈꾸고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서적을 공공연하게 읽고자 했던 염원은 모두 그저 민주화일 뿐이다. 그것이 자신의 통치 기반을 정당화하려는 이른바 “민주화 세력”의 주장이라면 모를까 진보적인 사회학자가 할 소리는 아닐 것이다.
간단히 말해보자. 통혁당은, 인혁당은, 남민전은 그저 민주화운동 세력이었을까. 몇 해 전 쓸쓸히 자신의 차디찬 골방에서 목숨을 잃은 어느 마지막 여자 빨치산 할머니는 그냥 민주화 운동 세력의 일원이었을까. 민주화라는 것은 그 투쟁과 운동에 가담하고 있던 자들의 신념과 희망을 백지상태로 돌려놓은 채, 그들을 순전히 “국가폭력”의 희생자로 환원해도 좋은 것일까. 오랜 동안 영어의 몸에 있다 출소한 어느 사회주의 투사를 “권위주의적 정치”의 피해자로 박제화 시켜 놓고, 붓글씨나 쓰고 동양사상이나 풀이하는 “좋은 어른”으로 재갈을 물려놓고, 그것을 모시는 것이라고 시치미를 떼도 좋은 것일까. 제 정신이라면 아마 그렇게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제 정신인 사람이 어디 있는가. 지난 며칠 한국철도공사의 파업을 둘러싸고 벌어진 마녀 사냥을 보면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단연 민주화운동세력의 화려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을 주도했던 과거 총학생회의 회장은, 민주화세력을 자처하는 지배정당의 대변인이 되어, 불법 파업은 어떻게든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며 법적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일갈한다. 한편 민주화의 봄을 이끌며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투사로서 화려하게 정치가로 입문했던 자는 한국철도공사의 사장이 되어 파업에 가담한 모든 노동자들을 징계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내가 “민주화운동”이란 말에 느끼는 저항감 혹은 심하게 말해 역겨움은 그것이 바로 한국 사회의 가장 반동적인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반동적인 것은 그것이 가장 보수적인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민주화운동이란 개념 안에 포함된 사회적 행위가 반동적인 것은 정확히 말뜻 그대로 그것이 현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려는 흐름에 반동을 행하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것으로 치자면 수많은 자유주의자들이 “민주화”의 걸림돌로 치부하는 수구세력의 이데올로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수구세력의 이데올로기는 이미 하나의 해결된 문제일 뿐이다. 그것을 지지하고 열광하는 소수의 세력들이 있고 심지어 그것이 다수에게 영향력을 떨칠지라도 그것은 이미 결국 누군가의 “의견”일 뿐이다. 반공독재시대에 수구세력의 이데올로기는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간단히 이 사회의 논리를 좇아 살 것인가 아니면 반사회적으로 살 것인가의 문제였을 뿐이다. 그것은 그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사상과 신념의 메뉴판에서 자유롭게 “선택”하여 골라 쓸 수 있는 “의견”이 아니었다. 따라서 지금 보수 이데올로기가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정당 등의 어느 한 세력의 의견으로 모두에게 인지될 때, 바야흐로 그것은 더 이상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이는 민주화운동세력과 보수세력의 대립이 더 이상 이데올로기적 선택의 문제가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평등이 먼저인가 분배가 먼저인가, 효율이 먼저인가 형평이 먼저인가 등의 논리로 이 두 세력의 차이를 가늠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차이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인식의 시점 자체가 이데올로기이다. 그것은 현실을 바라보는 동일한 이데올로기의 서로 다른 얼굴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역시 반공독재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상기하면 충분하다. 반공독재시대에 사회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기대이기는 하였지만 혁명적인 세력이라고 믿었던 북한과 도모하여 혁명을 추진한다는 것은, 다양한 선택 가운데 하나였을까. 물론 아니다. 그들은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주홍글씨인 “좌익용공세력”이 될 각오를 하였고, 그들은 국가전복과 친북 반체제 활동의 죄과를 뒤집어 쓸 위험을 무릅썼다. 결국 그들의 행위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체험하고 인식할 수 있게 하던 지평 자체를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들은 민주화운동을 하던 자들이 아니라 반사회적인 자들이었으며 당연히 혁명가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주어져야할 온당한 이름은 “혁명가”여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 사회에는 민주화운동의 피해자들은 즐비하지만 혁명가들은 없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충격적인 모습은 혁명이 없다는 것이다. 민주화운동을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은 오직 거세된 혁명일 뿐이다. 그것은 민주화란 이름으로 윤색되어, 혁명이란 것에 부과될 수 있는 진정한 의미, 즉 종래와는 다른 체제를 만드는 집단적인 투쟁과 봉기로서의 정체성을 제거한 후의 혁명일 따름이다. 따라서 그것은 민주화운동이란 이름으로 탈실체화된 혁명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혁명가란 누구인가? 우리의 근대의 역사에서 과연 혁명가로 불리는 이들은 누가 있는가? 감히 말하자면 우리는 적어도 한국 전쟁 이후의 현대사라는 공간 안에서 단 한 명의 혁명가도 만날 수 없다. 나는 그것이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치욕이라고 생각한다.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사업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혁명가가 없는 현대사가 아닐까. 변변한 혁명가의 초상 하나 가지고 있지 못한 사회가 과연 민주주의적인 사회일까. 물론 혁명가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천치 같은 짓이다. 외려 혁명가에게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베풀었던 자리가,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베풀었던 자리가 고작해야 “민주화운동가”라는 직함뿐이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민주화운동의 탈이데올로기적인 몸짓의 적나라한 예를 지난 해 강정구 교수의 파동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다. 나는 강정구 교수의 파동 즈음에 한겨레신문의 어느 칼럼을 읽고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그 칼럼의 내용인 즉슨 아무리 “허접한” 주장이라도 그것은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위해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한나라당이 국가정체성의 위협이라는 난리법석을 피울 때 수구세력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나온 글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주장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임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수구세력 대 민주화세력이란 더욱 나쁜 이데올로기적인 이분법을 전송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허접한” 것이어도 학문과 사상의 자유은 보장되어야 한다?! 물론 우리는 “똘레랑스”를 지지하여야 한다. 그러나 똘레랑스가 모든 주장을 단지 “의견”으로 환원하는 것에 반대하는 조건에서야 한다.
한국전쟁을 통일전쟁이었다고 주장하는 어느 사회과학자의 주장은 당연히 실증적인 주장이 아니다. 따라서 모든 주장은 그것의 객관성에 근거하여 비판될 수 있을 따름이라는 케케묵은 논리로 학문,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보수학자들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같은 히트상품을 만들어내어, 한국 진보세력의 “바이블”이었다고 그들 스스로 제멋대로 단정한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비판할 때나 들먹이는 논리일 뿐이다. 사족이지만 중앙일보에 실린 글에서, 보수학자임을 자처하는 서울대의 박효종 교수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바이블로 삼으며 과거를 청산하자는 것 이외에 진보가 할 수 있다고 알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물었다. 그러면서 “진보여, 진보 좀 하라”고 충고한다. 그런데 그가 진보가 “진보”스럽지 못하다고 들먹이는 이유는 아무리 곱씹어도 이해가 안된다. 북한의 인권에 대하여 여전히 “색맹”이며 “박정희의 실적 정도라도 만들어”내지 못한 주제에 무슨 진보냐는 것이 그의 험구인데, 그것은 대관절 무슨 논리인가. 인도주의적 개입이란 명분으로 미국 주도의 신국제질서를 구축한다는 것이 국제정치학계의 상식적인 주장이며 심지어 대표적인 국제기구조차 이를 인정하고 있는데, 그것이 “색맹”이라는 것은 무슨 해괴한 주장인가. 상식적으로 그가 분명 “색맹”인데도 말이다. 하물며 “박정희”만한 실적은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성장과 개발을 위하여 애쓰는 것이 진보라는 말인가. 나는 그런 무식한 자가 서울대학교의 정치학과 교수라는 것이야말로 훨씬 미스터리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한국의 내로라하는 보수학자들은 실증주의적인 “진실”을 확인하자며 진보학자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주장을 던진다. 진보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그것이 현실의 논리이기 때문에 그것의 논리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지금의 사회의 믿음으로서는 불가해한, 어쩌면 비현실적인 광기로 보일 수도 있을 어떤 유토피아적인 충동을 스스로 떠맡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는 떳떳이 이데올로기적이다. 보수주의자는 현실을 경험하는 현재의 틀 자체를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것으로 만드는 점에서 더욱 간교한 이데올로그이다. 신학적인 이데올로기를 우회하면 어떨까.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절대 하느님의 모든 말이 시험되어야 할 말처럼 보이듯이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기독교도가 된다는 것은 하느님의 모든 말씀을 하나씩 현실과 대조함으로써 그것을 인지적으로 이해하고 자신의 지식을 통해 매개함으로써 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철학자들이 기독교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에 관하여 말하듯이, 하느님을 믿는 순간 비로소 하느님의 모든 말은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변화한다. 이는 많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이 이데올로기에 관하여 했던 말과 유사하다. 믿음은 폭력적이고 또한 외재적이다. 내면적인 확신과 지식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현실이 전부이며 유일한 것이라는 믿음이 전연 이데올로기적인 것인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현실과 그 외부에 대한 믿음, 지금 여기에 주어진 현실이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과 지금의 현실의 편에선 “객관적인 지식”이라는 믿음 사이의 투쟁이 이데올로기적인 투쟁이다. 지금 주어져있는 현실의 편에서 주어지는 관념이나 의식 사이의 갈등은 그저 의견의 교환일 뿐이다.
물론 모든 학문과 사상은 그런 충동들에 젖어있다. 그것은 지금의 현실을 최종적인 현실로서 인식하고 체험하고자 하는 반복의 충동과 그것의 너머에 존재하는 차원을 보려는 충동이 각축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유일한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허용되어야 할 자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의견이 다른 모든 사람을 억압한 역사는 전례가 없다. 그것은 오직 다른 세상을 꿈꾼 자들을 탄압했을 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배 세력들이 즐기는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형태는 서로 다른 주관적인 의견을 다투는 외양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 “현실을 보라”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전형적인 이데올로기적인 주장은 언제나 눈에 박힌 이데올로기적인 편견을 벗어던지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라”이다. 따라서 식민의 역사이든 착취의 역사이든 모두 객관적인 현실과 이를 왜곡하는 이데올로기적 환영 사이의 관계일 뿐이라는 것이 뉴-라이트(혹은 정말 웃기는 말이기 짝이 없는 한국의 뉴-레프트)의 “이데올로기”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현실의 외부를 보는 것,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 맘에 들지 않지만 어느 철학자의 표현을 빌자면 “도래할” 무엇에 대한 기대, 그것을 맞이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장소이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도래할 무엇을 위하여 애쓰던 자들을 “좌익용공세력”이라 불렀다. 그들은 혁명가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실체를 가지고 있었다. 즉 그들이 살고 있던 사회와는 다른 사회를 꿈꾸고 있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부인하고, 그것을 “민주화운동”이라고 호명하며, 민주주의를 자축하는 것은, 희극이다. 나는 혁명가들이 민주화운동의 연금수령자가 되길 원치 않는다. 나는 그들이 국가유공자가 되길 원치 않는다. 설령 그들이 원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반대하고 싶은 심정이다. 그것이 혁명가였던 그들 개인 각자의 욕구와 선택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난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러할 것이다. 물론 나는 그들이 그런 요구를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다. 그들이 쓸쓸히 민주화운동의 창백한 피해자로, 거의 물신화된 용어인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것을 원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을 복권하는 것은 그들을 기억하는 것은 오직 그들의 희망과 선택을 모조리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덤으로 혁명가가 있었던 아름다운 현대사를 또한 가지게 될 것이다.

6 thoughts on “혁명가인가 피해자인가 – 우리 시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한 가지 초상”

  1. 최근에 읽었던 글 중에서 가장 마음을 울리는 글입니다… 주인장께서 흔적을 남기라고 하셔서 발도장 꾹 찍습니다…^^;;

  2. 그랬군요. 쓸때는 “또 욕 먹겠군” 하고 썼는데, 막상 쓰고 나니 조금 멋적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민주화운동”, “민주주의”, “민주화” 등의 개념과 그로부터 파생된 수많은 사회적, 정치적 기획들에 대하여 제가 느낀 염증을 털어놓자고 한 투덜거림이 이런 글을 낳은 것 같습니다. 이 블로그에 자주 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는 이미 몇 차례 지난 글에서도 언급했던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문제들이 가장 커다락 이데올로기적 장벽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구)보수 대 민주, 반공훈육 대 민주주의 식의 이분법으로 민주주의란 개념이 용도폐기되고 그것이 반자본주의적 투쟁과 무관한 개념으로 전락한 것을 견디기 어려워 하기도 합니다. 저도 김강님 블로그에 자주 놀러가지요. 성공회대? 저도 거기에 나갑니다. 🙂

  3. 오가시는 분들이 누굴까 궁금해 다들 서로 자기소개 좀 하고 지내자는 것이 좀 이상한 분위기로 흐르는 게 아닐까 싶어 걱정도 됩니다. 저야 어떤 분들이 내 글을 읽어주나 확인할 수 있어 좋지만 이리저리 서핑하다 우연히 들른 분들은 뭔가 꺼림칙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볍게 생각하시고, 편하게 말을 건넨다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들 그러시겠지만, 오바하는 것, 서로 거북하지요. 🙂

  4. 저 역시 마음 깊이 동감하며 읽었습니다. 대학 후배들도 좋은지 이리저리 퍼가네요;;

  5. 네, 팍팍 퍼가시기 바랍니다. ^^ 가끔 이 자리에서와는 다른 곳에서 제 주장에 대한 따끔한 비판과 충고를 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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