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어디지? : 2019년 융합예술학과 졸업전시에 부쳐

Gong Gong Gong – Ride Your Horse 騎你的馬

– 융합예술학과 2019년의 졸업전시는 역대 최강이다. 물론 어느 해도 그렇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올해 작업들이 최강인 이유는 수두룩하다. 그래도 하나만 꼽자면, 동시대적이면서도 역사적인 자세가 돋보인다는 것이다. 동시대적인 탓은 지금 여기 우리를 옥죄는 감각의 질서에 대하여 민감하게 관찰하고 그를 드러내는데 발군의 눈치를 보여준다는 점 때문이다. 역사적인 이유는 그것이 무엇 때문에 비롯되었는지 헤아리며 이전과 이후를 민감하게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융합예술학과의 졸업생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감각의 질서를 추적하는 탐정들에 가깝다. 그들은 우리가 듣고 보고 느끼는 방식이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요된 것이며 제조된 것이고 판매된 것이라는 것을 민감하게 의식하고 고발한다.

– 그런데 이들은 초유의 ‘좀비’ 학번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마크 피셔라는 음악평론을 겸해 문화평론를 하는 영국의 소문난 비평가가 우울증으로 자살하기 전, 온 세상 젊은이들의 가슴을 친 짤막한 문화비평서를 출간했다. 그 책의 제목은 자본주의 리얼리즘이었다. 그 책은 이른바 신자유주의 키드들의 무력증과 우울, 무엇보다 휴대전화와 MP3 플레이어에 자동반응하며 끊임없이 공급되는 쾌락을 갈구하는 태도를 신랄하게 폭로했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란 얼추 이런 태도를 가리킨다. (어차피 세상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대충 눈치껏 사는 게 상책이다. 이른바 “존버”의 윤리학. (어차피 잘 안 될 거니까) 괜히 뭔가 나아질 게 있을 거라고 믿고 “깝치지” 말고 눈만 끔뻑거리며 입 닥치고 사는 게 제일이다. (어차피 엄청나게 행복한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니) “소확행”에 “올인”하는 게 현명하다, 등등. 이런 아둔한 약삭빠름, 제 꾀에 제가 속아 넘어가는 멍청함, 모두가 절망적인 상태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자들의 비참을 저항의 에너지로 만들지 못하는 비굴함은 창피한 일이다. 그러나 감히 가볍게 저항을 요구하는 것도 대책 없는 일임에 분명하다. 기업과 국가는, 나아가 학교와 시민단체는, 당신의 삶은 당신의 힘과 당신의 이웃들을 통해 바뀔 수 있다고, 결국 문제는 당신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집요하게 속삭인다. MBTI 검사를 통해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우울하다 싶으면 즉각 병원에 달려가 항우울제를 처방받고,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영혼 없이 떠벌일수록 쿨하다고 메달을 걸어주는 것. 이른바 기업가정신이 우리 시대의 좌우명이 되었을 때, 스타가 되는 것, 최소한 힙스터 대열에 드는 것, SNS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좋아요”의 수확을 거두는 것, 나는 니네들의 ‘“넘사벽”이거등!?’ 이라고 질러대는 것. 이것이 지금의 졸업생들이 입학했을 즈음 의식했던 세계의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쳐다보며 지칠 대로 지친, 피로할 대로 피로한 자들의 어둡고 지친 낯빛을 띠었을 것이다.

– 그러나 그들은 기분이 가벼워지거나 갑자기 행복한 척 딴 전을 피우고자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술을 건 세계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디에서 살고 있지? 오늘은 며칠이지? 내가 기쁘고 우울한 것은 온전히 내게서 비롯된 것일까? 이런 물음들이 발효되고 숙성해 오늘의 전시를 이루었다. 우리는 이런 태도에 조금 감격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타율적인 감각의 폭력에 맞서 자신의 자율적인 사고를 작동시키고 스스로의 상상을 동원하는 것. 이런 게 예술의 기초이거늘, 융합예술학과의 졸업생은 그 기초를 상당히 터득한 것이다. 더 하고 싶은 것이 많은 그런 사랑스러운 이들과 이제 작별한다는 것이, 슬프다. 안녕,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