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개발 Development 發展/開發

Te Recuerdo Amanda

“그렇다면 저발전은 1949년 1월 29일에 탄생한 셈이다. 그 날 전 세계 2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저발전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그날 이후 이들은 정년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잃게 되었고, 남들의 현실을 거꾸로 비추는 거울 속에서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었다. 이 거울은 저발전국 민중의 정체성을 규정했다. … 그런데 이런 기준을 제시한 것은 서구권의 일방적이고 편협한 소수의 인류였다.” 멕시코의 대표적 지식인인 구스타보 에스테바(Gustavo Esteva)의 말이다. 어쩌면 이는 지나친 말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말은 새겨볼 가치가 있다. 이 말에서 우리는 발전과 저발전이라는 ‘생각’이 출생한 날을 확인하게 된다. 발전은 이제 의식 있는 많은 이들이 반대하는 사상이자 가치라 할 수 있다. 발전이란 모든 사회가 자신의 처지를 비쳐보는 하나의 거울이기도 하거니와 또 모든 사회가 좇아야 하는 이상이었던 때가 있었다. 적어도 비동맹운동의 시대, 세 개의 시대는 발전의 시대였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가 저물고 실패하자 그 시대를 이끈 주된 나침반이었던 발전이란 생각에서 벗어나길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왜 저발전과 발전이란 생각이 탄생한 날이 하필 1949년 1월 29일일까. 그 날은 바로 미국 대통령 조지 트루먼이 취임한 날이었다. 그 날의 취임연설에서 트루먼 대통령은 훗날 세계 대다수 사람들이 마음속에 새길 역사의 방향을 선언했다.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과학 발전과 산업 진보의 결실이 저발전국의 발전과 성장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대담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에 착수해야 합니다. 해외에서 이익을 수탈하는 낡은 제국주의는 우리 계획안에서 설 자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구상하는 것은 공정한 민주적 거래에 토대를 둔 발전 사업입니다.” 저발전에서 발전으로! 이 말은 곧 많은 제3세계 나라의 정치가들과 개혁가들이 추구할 목표가 되었다. 제3세계의 나라들이 발전을 꾀하면 꾀할수록 저발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개탄하고 이것이 여전한 제국주의 지배에 따른 결과임을 폭로하고자 했던 종속이론가들 역시 발전이란 말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들은 제3세계, 특히 남미의 사회들이 종속적 발전의 길을 걸었으며, 이러한 발전은 모국의 다국적기업과 금융자본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자국의 부르주아지와 관료, 군부의 부를 늘릴 뿐 노동자와 농민에겐 빈곤하고 헐벗은 삶을 강요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발전은 탈식민화된 이후 자신들의 국가를 수립한 나라의 국민들에겐 공통의 청사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제3세계라는 기획(project)은 또한 발전이라는 기획과 손쉽게 손을 잡을 수 있었다. 발전은 단순히 경제의 문제를 넘어 이를 가능케 하는 정치적 동원과 조직, 즉 강력한 국가와 그것을 이끄는 정치 정당을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발전은 경제를 넘어 정치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발전이란 생각 자체를 터부시하는 것은 너무 조급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발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하고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라면 끊임없는 발전과 성장이라는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본주의란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가치를 통해서만 작동하는 세계이다. 이러한 세계는 자신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안녕과 부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맹목적으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지상목표인 세계이다. “부르주아지는 생산 도구를 끊임없이 변혁하지 않고서는, 따라서 생산 관계와 더 나아가 사회관계 전반을 혁신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반면에 종전의 산업에 종사하던 모든 계급들의 첫 번째 생존 조건은 낡은 생산 양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있었다. 생산의 계속적인 변혁, 모든 사회관계의 끊임없는 교란, 항구적인 불안과 동요가 부르주아 시대를 그 전의 모든 시대와 구별해 준다. 굳어지고 녹슬어버린 모든 관계는 그에 따르는 부산물들, 즉 아주 오래 전부터 존중되어 온 관념이나 견해와 함께 해체되며, 새로 생겨나는 모든 것조차 미처 자리를 잡기도 전에 이미 낡은 것이 되고 만다. 신분적인 요소와 정체된 것은 모두 사라지고, 신성한 것은 모두 모욕당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마침내 자기의 생활 상태와 서로간의 관계를 냉정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일찍이 저 유명한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그리고 그들의 예측과 진단은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더 적중한다.

자본주의가 생명을 유지하고 한다면 더 많은 발전, 더 많은 성장이라는 운명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러나 한계 없는 성장과 발전이란 여러모로 터무니없는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먼저 계속된 발전과 성장을 위한 지구 차원의 자원의 절대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해 기후 변화는 물론 지구 생물종의 다양성의 파괴 및 다수 종의 멸종, 삼림 파괴 등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한편 성장/발전은 모든 사회가 따라야 할 하나의 일반적인 방향이 있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방향은 서구의 자본주의나라들을 가리킨다. 그 나라들에서 이룩한 것은 곧 모든 나라들이 따르고 본받아야 하는 모델이 된다. 그 결과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발전의 사다리 위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차례로 발전을 겪거나 추구하고 있다고 이해되어 왔다. 여전히 자주 듣게 되는 선진발전국, 발전도상국, 저발전국, 최저발전국 같은 구분은, 발전 사다리라는 생각이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이른바 제3세계에 속한 나라들을 전통에 얽매인 탓에 발전을 이룩하지 못했으며 발전을 이룩하려면 전통을 타파하여야 한다는 근대화론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그러나 어떤 발전도 하나의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수출용 단일작물재배를 통해 얻은 부로 무기를 구입하고 도로를 건설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이미 세계 자본주의 내에서 비롯된 불평등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발전이라는 생각 속에 자리 잡은 또 하나의 중요한 생각은 발전의 단위이자 주인공은 국가라는 생각이다. 아프리카는 탈식민화 이후 마치 자를 대고 줄은 그은 것처럼 반듯한 모양으로 여러 나라들로 분할되었다. 그 때문에 제멋대로 그어진 국경선을 따라 만들어진 국민국가를 뛰어넘으려는 아프리카 민중들의 투쟁이 나타났다. 범아프리카주의라는 목표를 향한 아프리카인들의 노력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러나 국제연합이 말해주듯이 탈식민화 이후 세계는 국민국가들의 연합처럼 간주되었다. 국가에 속한 이, 즉 국민으로 살지 않는 이는, 세계에서 어떤 권리도 보호도 얻지 못하는 것처럼 되었다. 그러나 범아프리카주의는 국가를 뛰어넘은 국제주의적 민족주의 역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비동맹운동은 이러한 국가를 뛰어넘고자 한 시도였다. 비동맹운동의 기치 아래 모인 나라들은 자신들이 공통의 운명을 짊어진 제3세계 민중들의 연합을 꿈꾸었다. 물론 이는 언제나 불안정한 것이기도 했다. 이는 비동맹운동 역시 국가들의 모임이었고 그들이 활동한 가장 큰 무대 역시 이러한 국가들의 연합인 국제연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적 정체성에 따라 민족 혹은 국민을 상상하고 그러한 정체성을 지킨다는 이유로 타인들을 배척하고 공격하는 보수적 민족주의는 제3세계와 비동맹운동에 스며있던 국제주의를 전적으로 포기하고 배반한 것이다.

발전이라는 기획 혹은 사상은 경제성장을 신처럼 숭배하고 국가가 유일한 정치적 공동체인 것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발전과 성장이라는 청사진을 통해 그려진 것과는 다른 미래를 향한 꿈을 그리자는 생각은 소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전을 향해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저발전의 덫에 걸리는 발전의 모델이 아닌 다른 발전의 모델을 향한 꿈 역시 가치 있는 것이다. 비동맹운동과 제3세계라는 기획이 실패한 이후 발전에의 꿈을 비관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제1세계인 서구의 삶의 수준을 꿈꾸는 것이 아닌 발전의 꿈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러한 대안적이고 유토피아적인 발전이란 무엇인지 묻고 답해야 하는 시점에 서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