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Aid 援助

임진택 – 똥바다

1973년 <신동아> 6월호에 경제학자 박현채가 쓴 「쌀의 반세기-쌀 문제의 성격변화에서 본 국민경제」란 글이 실렸다. 그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쌀의 역사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민족에게는 이미 어떤 의미에서 민족사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 그가 날카롭게 던진 물음은 다름 아닌 원조에 관한 것이었다. 이는 당시 미국의 원조가 초래한 국민 경제의 왜곡에 대한 어느 진보적 경제학자가 던진 쓰라린 비판이기도 하였다. 그는 대다수 국민이 농업에 종사했던 상황에서 미국의 원조가 국민경제에 어떤 해악을 끼쳤는지 분석하고자 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날 쌀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어버린 정책 방향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밑받침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미국 잉여농산물이다. PL 480호에 의해 제공된 미국의 잉여농산물원조는 원조자체가 의도하는 미국 농산물시장의 확대를 위한 선행투자로서의 무상원조의 제공이 저농산물 가격정책의 강행을 위한 물적 기초를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버렸다.”

말인즉슨 한국은 부족한 식량을 외국 원조에 의지하는 바람에 농업과 공업 간에 불균등성장을 격화시킴으로써 농업을 희생시키고 대다수의 농민이 도시로 이주하여 노동자가 되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나아가 공업에 필요한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파괴하여 농업과 공업 사이에 있어야 할 연관을 무너뜨렸다. 또한 먹거리를 수입에 의존하게 되면서 스스로의 능력에 따르지 않는 탓에 언제나 해외 농산물 시장의 상태에 심각하게 의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미국은 인도주의적인 원조를 하는 양 거드름을 피우면서 밀가루와 탈지분유 같은 자국의 잉여농산물을 처분하였다. 그리고 현지 통화로 구매 대금을 적립하게 하여 그 돈으로 미국의 무기를 구입하고 군대를 현대화하는 데 지출하도록 하였다. 아무튼 미국의 원조는 한국 경제가 끈질기게 외국 자본에 종속되도록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박현채의 걱정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2010년 한국은 미국산 농산물 수입액이 53억769만 달러였다. 한국은 세계에서 6번째로 미국 농산물을 많이 수입하는 나라였다. 이는 한국이 국민들 먹거리의 상당부분을 외국의 기업농업의 농업상품에 의지하는 처지가 되었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는 단지 한국에 국한된 일은 아니다. 그것은 제3세계에 속한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겪은 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미국은 전쟁으로 파괴된 유럽을 복구하기 위하여 마셜플랜을 통해 원조를 제공하였다. 이는 유럽 지역에서 확산되고 있던 제2세계의 흐름, 훗날 동구권으로 알려진 나라들에서 현실사회주의가 확대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원조를 통해 신속하게 유럽 자본주의를 복원함으로써 ‘공산주의의 위협’을 차단하는 보루를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원조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혼선이 빚어졌다. 그리하여 케네디 정권은 미국의 원조 관리를 체계화하고 개선시킴은 물론 이른바 발전국가들이 필요로 하는 원조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이는 기구를 만들었다. 그것이 국제개발기구(AID: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였다.

1961년 11월 케네디 대통령은 ICA(국제협력국)와 DLF(개발차관기금)를 통합하여 국제개발기구를 발족시켰다. 케네디 정권이 특히 관심을 기울인 것은 ‘평화를 위한 식량Food for Peace’라는 것이었다. 일찍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4년 농업 무역 개발 및 원조 법(The Agricultural Trade Development and Assistance Act)을 제정하여 자연 재난이나 전쟁으로 인해 식량 부족을 겪는 나라들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하였다. ‘공법(Public Law)-480’ 또는 ‘평화를 위한 식량’이라 알려진 이 법안이 겨냥한 주된 목표는 미국의 잉여 농산물을 줄이자는 게 목적이었다. 케네디는 평화를 위한 식량을 보다 적극적인 외교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녹색 혁명에 대한 관심에서 엿보이듯이 제3세계 나라들에서의 ‘적색 혁명’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 원조가 모든 나라에 골고루 베풀어진 것은 아니다. 원조가 몰린 곳은 한국, 이스라엘, 터키, 이란, 남베트남, 필리핀, 타이, 라오스처럼 요충지역에 있는 나라들이었다. 그 나라들은 ‘자유세계’의 울타리를 지키고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에 기울지 않도록 하는데 특별히 주의를 기울일 대상이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로 인해 원조가 휩쓸려 들기 전까지 원조는 처음부터 끝까지 냉전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었다. 소련 역시 원조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1960년대에 소련은 30여개 나라에 수출신용보증을 제공해 자신들의 통화나 전통적인 수출 형태로 빌린 돈을 갚도록 했다. 이런 도움으로 큰 혜택을 입은 나라들은 인도네시아와 인도 같은 나라들이었는데, 이들 나라는 중앙 계획 경제나 소유권 공개념 같은 사회주의적 개발 전략을 취하는 데 이러한 원조를 활용하였다.

그러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식량원조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원조는 제3세계에 속한 나라들을 더욱 심한 빈곤으로 몰아넣었다. 1978년 미국이 세계에 수출하는 밀ㅇ는 4분의 3 이상은 이제 제3세계에 수출되었다. 그 사이에 제3세계 나라들은 값싼 원조 식량을 이용해 산업화에 필요한 도시 인구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했고 이러한 값싼 먹거리 가격은 자본가들이 보다 낮은 임금을 지불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었다. 그 사이에 소농을 중심으로 한 농업은 붕괴되었고 제3세계의 사람들은 농사를 지어 얻은 음식이 아니라 월급을 받고 사먹는 음식을 먹고 살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제3세계 사람들은 쌀이나 옥수수보다 밀을 보다 많이 먹기 시작했다. 결국 원조는 미국산 곡물의 상업용 판매 시장을 만들어내기 위한 장기적인 포석이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