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정책(SAPs: Structural Adjustment Policies)

Devo – Whip It

경제학에서는 구조조정정책을 이렇게 풀이한다. 채무국에 채무를 상환할 수 있는 대출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채무국의 우선 생산순위와 정부의 프로그램을 전반적으로 재편하는 정책. 일반적으로 구조조정차관이란 이름으로 빚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채무국에 경제 재편을 요구하는 것이 구조조정정책의 핵심이다. 이는 금융 개방은 물론 공공자산(상수도, 전기, 전화, 통신 등)을 북반국의 다국적기업에게 팔아치우는 것을 비롯해 공공예산의 삭감, 통화 평가 절하, 고용관계의 유연화, 시장 개방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한국 역시 이러한 구조조정정책의 희생양이 된 바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이하며 감내해야 했던 구조조정정책도 이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제3세계의 민중들에게 구조조정정책이란 비동맹운동과 더불어 시작된 보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경제질서를 수립하고자 했던 시도(대표적으로 신국제경제질서NIEO)가 위기에 직면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바야흐로 북반구의 자본이 식민주의가 종결되면서 주춤했던 자신의 착취와 수탈을 회복할 절호의 수단을 되찾았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나라의 경제적 부의 상당 부분을 빚을 갚는 데 쓰도록 했던 국제 채무 체제는 급격한 이자율 상승으로 더욱 엄청난 부담을 가난한 나라에게 전가했다. 이는 우선 남미에 있던 많은 나라들을 파산시켰다. 이를 주류 경제학자들이나 언론은 외환의 부족 즉 전문용어로 유동성 문제라고 말하지만 실은 세계 금융 체제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제채무체제의 첫 번째 희생양은 멕시코였다. 멕시코는 1982년 800억 달러의 외채를 짊어진 뒤 결국 국제통화기금을 비롯한 외국의 은행들로부터 대출을 받는다. 물론 그 부채 상환의 부담은 노동자와 농민에게로 고스란히 전가되었다. 이는 훗날 신흥발전국가로 칭송이 자자했던 중간소득국가인 태국과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가운데 하나로 영예를 누렸단 남한에도 적용되는 일이었다. 이는 훗날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라고 불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본격화를 알리는 일이었다.

약삭빠른 북반구의 다국적 독점 기업과 금융자본은 자신들이 조장한 채무위기를 제3세계 국가들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역할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핑계거리로 만들었다. 이는 그들의 말을 빌자면 “정부의 실패”였다. 그들은 국가가 주도하던 제3세계 나라들의 발전 모델을 포기하도록 종용하였다. 개도국 지원에 ‘조건’을 부과하는 것은 이를 받는 나라들의 개발금융에 대한 반감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한 조건 없는 지원은 이제 끝이 났다. 원조가 차지하던 자리에 새로운 조건 즉 구조조정정책을 받아들이는 한에서의 대출이라는 무시무시한 처방책이 들어섰다. 그 때까지 원조에 조건을 덧붙인다는 것은 흔치 않은 생각이었다. 무역정책의 방향이 개발에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에 1970년대부터 기술협력의 한 형태로 정책컨설팅이 강조되기는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원조와 발전도상국의 정책을 결부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구조조정과 더불어 국제원조기구는 제3세계 나라들의 정책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 본격화되기 시작한 구조조정정책을 이끈 것은 IMF와 세계은행이었다. 이 두 기관은 국내 수요를 충족시키려는 국가 역량을 파괴하는데 앞장섰다. 그들은 1990년대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와 마다가스카르에서 일어난 제2의 독립물결을 저지하고 정치적 불안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추세는 자원전쟁이 벌어진 나라들, 라이베리아, 시에라 레온, 콩고민주공화국 등 여러 나라로 확장되었다. 이들 나라에서 AK-47 소총으로 무장한 기업형 깡패조직들과 군대들이 금, 다이아몬드 그리고 여러 희귀 광물과 미네랄을 수출하고자 토지소유권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보여준 민낯이었다. 민족해방운동을 이끌던 정당이 국가를 장악하고 관리하던 제3세계 국가들을 무너뜨리고자 정부의 실패 혹은 국가의 퇴각을 역설하던 북반국의 자본이 옹호했던 것은, 결국 부패한 군대와 기업이란 가면 뒤에 숨은 약탈적인 폭력집단이었다. 그리고 이 두 기관은 전 세계를 누비며 신국제경제질서의 모든 경계를 파괴하였다. 아프리카는 물론 남미와 아시아의 가난한 제3세계 나라들을 거쳐 마침내 신흥공업국마저 덮쳐눌렀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북반구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새로운 경제질서를 향해 가는 길을 닦은 섬뜩한 무기가 되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