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판 Comprador 買辦

남일해와 오은주 – 눈물의 십 분간

“오적은 무엇이며 어디 있나 말만하면 네 목숨은 살려주마./꾀수 놈이 이 말 듣고 옳다꾸나 대답한다./오적이라 하는 것은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란 다섯 짐승, 시방 동비고동에서 도둑시합 열고 있소./으흠, 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다./정녕 그게 짐승이냐?/그라문이라우, 짐승도 아주 흉악한 짐승이지라우.”

한국의 대표적 시인이자 사상가였던 김지하는 1970년 6월 잡지 사상계에 그의 걸작 <오적 五賊>을 발표했다. 이 시를 발표한 죄로 시인 김지하는 당시 정권으로부터 노여움을 사 다시 한 번 옥고를 치러야 했고 시를 게재했단 이유로 월간 『사상계』는 1970년 9월 29일자로 등록을 취소당했다 그의 시는 한국을 지배하고 있던 다섯 무리의 인물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었다. 그가 다섯 짐승이라고 칭한 것은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다름 아닌 매판 세력이었다. 일본 제국주의 지배가 청산되지 못한 채 일제에 부역했던 많은 이들이 여전히 권력을 쥐고 휘두르는 데 대한 분노는 1960년 4.19 혁명과 더불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유행한 낱말은 매판이 되었다. 세상을 걱정하는 이들의 말과 글에선 어디에서나 매판이란 낱말이 등장했다. 매판이란 제국주의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총독과 제독만 없을 뿐 여전히 계속되는 식민주의를 일컫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었다. 매판이란 제3세계 민중이 피땀 흘려 이룬 결실을 제1세계 자본가들에게 팔아치우고 그들이 나눠주는 떡고물로 위세와 부를 차지했던 이들을 가리키는 말에 다름 아니었다.

1970년 김지하가 <오적>을 썼을 때 이 시는 케냐라는 머나먼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의 소설가에게 전달되었다. <오적>이 발표된 지 딱 10년이 되는 해인 1980년 응구기 와 티옹오(Ngũgĩ wa Thiong’o)는 십자가 위의 악마란 소설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응구기 와 티옹오는 자신이 <오적>을 읽고 판소리라는 전통 구전문학 형식과 풍자적인 어법이 얼마나 유용한 정치적 각성의 방편이 될 수 있는지 누차 역설하였다. 김지하가 보여준 한국의 매판에 대한 풍자는 곧 응구기 와 티옹오의 케냐 매판에 대한 풍자로 이어졌던 셈이다. 김지하가 끌어들인 판소리는 이제 응구기 와 티옹오에게는 ‘기산디’라는 케냐 전통 부족인 기쿠유의 전통 연희로 바뀌었다. 그리고 <오적>의 판소리 마당은 십자가 위의 악마에서는 ‘도둑질과 강도질 경연대회’로 탈바꿈되었다.

매판이란 말은 중국에서 비롯된 낱말이다. 중국 청대 말기 이후 매판이란 사회 계층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신대륙 발견 후 포르투갈·영국 등의 외국상인이 중국에 와서 무역했을 때 외국선박에 연료·식수·식료 등 필수품을 공급하고, 외국 상관(商館)에 고용된 외국인의 일상생활에 있어 주방담당, 회계관리, 통화의 감정과 매매중개 등을 하는 중국인이 생겼다. 전자는 선박매판, 후자는 사내(社內)매판이라고 불렀는데, 1834년 영국 동인도회사의 대(對)중국무역 독점권 폐지 후 사내매판 의미에서의 매판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들은 중국측의 특권상인[行商]의 추천·보증을 받아 외국상인을 감시하면서 위의 사내매판의 활동을 함으로써 외국상인으로부터 연봉, 통화감정료, 각종 수수료 등을 얻고 점차 부를 축적했다. 그때부터 매판이란 제국주의적 자본에 굽신대며 그들에게서 얻은 부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상인, 관료 등을 가리키는 낱말이 되었다. 제3세계라는 기획은 바로 이러한 매판을 척결하고 대다수 민중의 이해에 봉사하는 새로운 사회 관계를 형성하려는 투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