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그룹 Group of 77

American Analog Set – Magnificent Seventies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서구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의해 고통을 겪어 왔던 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은 독립 국가를 건설하면서 착취와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국가적 주권을 얻어낸 것으로 과거의 식민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의 제국주의국가에 여전히 의존한 경제 구조로 인해 이들 나라들은 계속된 경제적 불평등과 저발전 상태에 처해 있어야 했다. 특히 농업이나 목축업과 같은 산업의 1차생산물이 주된 수출품이었던 나라들은 언제나 불안정한 수요 때문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처지였다. 반면 수요가 안정적이고 또 나날이 늘어나는 공산품을 비롯한 제조업 분야의 생산물을 수출하는 나라들은 언제나 막대한 이윤을 챙길 수 있었다. 특히 많은 신생 독립 국가들은 과거의 ‘모(母)’ 국가들에 경제적으로 의지하면서 결국엔 과거와 같은 식민주의의 사슬에 다시금 속박되는 처지가 되었다.

1960년의 통계를 보면 발전국가에서 1차생산물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88.4%였던 반면 선진국의 경우엔 35.9%에 머물렀다. 제조업부문 수출에선 이런 격차가 더욱 커지는데, 선진국이 전체 수출의 64.3%를 차지한 반면 발전국가들은 고작 11.2%를 수출할 뿐이었다.(Network of Exports by Region and Commodity Group, Historical Series 1955–2002, 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 (UNCTAD), Handbook of Statistics 2005.) 단일작물재배농업(monoculture)이거나 아니면 소수의 생산물에 집중된 발전국가의 경제 구조는 외부 조건이 바뀌는 것에 언제나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저발전의 발전이란 유명한 구절을 통해 제3세계 나라들의 경제의 특성을 설명하고자 했던 남미 종속이론의 주장을 확증하여 주는 것이기도 하였다. (라울 프레비시의 책에서 인용)
그 결과 비동맹운동에 참여하는 나라들을 중심으로 많은 발전국가에 속한 나라들은 유엔을 통해 불평등한 국제 경제 질서를 재편하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하여 1964년 스위스 제네바에 77개 나라의 대표들이 모여 유엔무역개발기구(UNCTAD)를 결성하게 된다. 또 이 자리에 모인 77개 나라의 대표들은 77그룹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당시 한국 역시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며 국가 주도의 발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보다 공정한 국제 경제 질서에 대한 기대 속에서 77그룹의 창립 멤버로서 참여한 바 있었다.(그러나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더불어 탈퇴한다) 77그룹은 자신들의 출범을 알리는 공동선언문에서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UN 무역개발기구의 발전국가들의 단결은 발전을 둘러싼 기본적 문제들에 직면하여 그 나라들이 국제 무역 및 발전을 위한 새로운 정책에 공통적인 이해가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발전국가들은 장차 이러한 단결을 유지하고 나아가 강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란 점을 깊이 확신한다. 이는 국제 경제 무대에서 새로운 태도와 접근이 채택될 수 있도록 보장하는데 불가결한 수단이다.”(The Joint Declaration of the Group of 77, UNCTAD I, 1964.) 이는 비동맹국가들의 단결이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서 벗어난 나라들이 보다 풍요롭고 안정된 경제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남-남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의 일차적인 목표는 자신들을 지배하고 수탈하고자 하는 북반구의 개입에 맞서 보다 공정한 경제질서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77그룹의 시도는 1983년 유연무역개발기구에서의 공동선언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직전이던 1980년대 초반, 다음과 같은 그들의 목표를 천명하였다. “현재의 세계 무역의 원칙과 유형은 주로 발전된 세계들에 여전히 유리한 편이다. 발전 국가들의 경제 발전과 다각화를 촉진하도록 돕는 대신, 현 세계 무역의 경향은 보다 빠른 성장을 이루려는 노력들을 좌절시키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반드시 뒤집어져야 한다. 발전 국가의 무역 크기를 증대시켜야 하며 그 구성 역시 다각화되어야 한다. 수출품의 가격 은 공정하고도 유리한 수준에서 안정되어야만 하고 국제 자본 이전 역시 이들 나라에 보다 유리하도록 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그 나라들은 자신들의 경제 발전에 필요한 보다 많은 수단들을 무역을 통해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Joint Declaration at the 8th Session of the UN General Assembly, 11 November 1963,” ECDC Handbook, Documents of the Movement of Non-Aligned Countries and the Group of 77 (UNCTAD/NAM), 1983.)

그러나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시장 속에서 거래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장 개방을 내세운 세계화로 인해 오늘날 77그룹의 힘은 현저히 약화되었다. 그렇지만 천연자원은 물론 자본 시장을 개방하도록 강요하였던 소위 구조조정정책은 이제 그 반대의 정책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권이 밀어붙인 보호무역주의가 바로 그 예일 것이다. 이는 북반구의 나라들이 다국적 기업과 금융 자본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남반구에 속한 나라들을 제 멋대로 취급하는 경제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77그룹의 가치와 정신은 더욱 새삼스럽고 또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