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국제정보통신질서(NWICO: New World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Order)

Band of Horses – The Funeral

2019년 원주민 출신의 볼리비아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저질렀다고 의심하는 잇단 시위 끝에 결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주변의 인물들이 잇단 신변의 위협을 받고 테러를 당하기도 하자 결국 망명을 결심하였다. 그 때 세계의 모든 언론은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하야를 성난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에 의해 물러난 것처럼 일제히 보도하였다. 그러나 정작 그것이 미국이 주도하는 남미 나라들의 연합의 지지를 받고 미국이 비호한 군사쿠데타에 의한 정권 찬탈이라고 보도하는 곳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양심적이거나 진보적인 소수의 학자와 언론인, 운동가들은 실상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이는 세계의 모든 눈과 귀를 장악한 국제통신사들의 독점적인 뉴스 공급을 막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원주민 출신으로서 베네수엘라와 더불어 남미에서 가장 끈질기게 빈곤층과 농민, 노동자들을 위한 경제 개혁을 실시하고 더불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물리치고자 했던 에보 모랄레스는 간단히 독재자라는 낙인이 붙여진 채 세상의 조롱거리이자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그보다 몇 년 전부터 계속되었던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세계의 주요 통신사들은 베네수엘라에서 탈출하는 시민들의 행렬과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다투어 보도하면서 ‘21세기 사회주의’를 내건 베네수엘라의 개혁이 파산했음을 공공연히 보도하였다. 이는 세계의 눈과 귀임을 자처하는 주요 언론사들이 여전히 부유한 북반구의 이해에 좌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였다. 이는 인터넷의 등장과 더불어 정보의 자유롭고 제한 없는 생산이 가능해졌다는 기대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전히 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알리는 일은 소수의 국제 통신사들이 독점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북반구(global north)의 다국적자본과 금융집단의 이해관계를 쫓는 뉴스를 생산한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정보통신질서의 심각한 불균형과 편파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가 전연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3년 알제리의 알제에서 비동맹운동 정상회담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서 참가국 대표들은 전지구적인 경제 불균형에 더해 사회적, 문화적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이 중요한 일임에 동의하고 발전 국가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지배의 위협에 맞서기로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1975년 12개의 비동맹운동 국가들의 통신사들은 마침내 비동맹뉴스기구연합(NANAP; Non-Aligned News Agency Pool)을 설립한다. 소속한 통신사들 사이의 다자적인 정보교환의 방법을 강조하면서 연합(Pool)이란 이름을 덧붙였다. 그리고 구 유고슬라비아의 탄유그(Tanjug) 통신사가 이러한 비동맹뉴스를 관장하는 조정 통신사로 지정되었다. 탄유그 통신사는 비동맹운동 소속 나라들의 뉴스와 정보의 수집과 전송을 조정하는 주도적 기관으로서 활약하며 비동맹 국가들의 국제통신사로 약 20년간 활약하였다. 일찍이 1970년 유네스코 16차 총회에서 처음으로 비동맹국가들의 노력에 의해 신국제정보통신질서가 제기된 바 있었다. 이는 1974년 신국제경제질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1976-8년부터 신국제정보통신질서는 간단히 신세계정보질서(the New World Information Order) 혹은 신국제정보질서(the New International Information Order)로 칭해졌다.

탄유그 통신은 1944년부터 1993년까지 115개의 아시아 국가, 6개의 남미 국가, 14개의 아시아 국가 그리고 미국과 호주에 각각 통신원을 파견하여, 모두 237명의 국제통신원을 두었다. 그리고 각 나라의 통신사들은 교육과 훈련을 위해 저널리스트들을 탄유그 통신에 파견하기도 하였다. 탄유그 통신은 서구의 독점적인 국제 통신사들을 능가하는 활동을 전개하며 서구의 통신사들이 하지 못한 특종을 잇달아 보도하기도 하였다. 이를테면 1961년 최초로 선거로 선출된 콩고 수상 패트리스 루뭄바(Patrice Lumumba)가 암살된 마지막 날이나, 같은 해 쿠바에서 행해진 미국의 피그만 침공, 1973년 칠레의 인민연합 정부와 합법적으로 선출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을 압살한 미국이 후원한 군사쿠데타, 1986년 미국의 트리폴리 폭격 등이 그에 해당된다. 비동맹뉴스기구연합은 1978년의 경우 87개 국가에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 4개의 언어로 1일당 40만 단어의 뉴스를 송출했다. 이는 미국의 연합통신이 1일당 9개 언어로 1백만 단어 이상의 뉴스를 송출한 것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수치이지만 비동맹운동 국가가 처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너무나 눈부신 성과였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비동맹운동이 수립하고자 투쟁했던 보다 평등하고 호혜적이면서 국제주의적인 정보통신질서를 위한 노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비동맹뉴스네트워크(NNN:Non-Aligned News Network)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 설립된 이 통신사는 과거의 비동맹뉴스의 정신을 계승하며 새로운 정보통신질서를 구축하고자 여전히 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