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군대 military 軍部/軍隊

P J Harvey – Sheela Na gig

“몇몇 사람들이 개인과 계급 사이에서 계속 다투는 그것과는 다른 하나의 구조 내에 집중되어 있는 세력을 상호신뢰할 수 있고 그네들 자신 충분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바로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세력 – 신속하고 결정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잘 장비되어 있는 세력이 요구되었으며, 이 같은 조건은 오직 군부 내에서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사건을 일으킬 역할을 결정한 것은 군이 아니었다. 사실은 그 반대에 더 가까웠다. 가장 중요한 민족해방전쟁에 있어 군의 역할을 결정한 것은 제반사건이었으며 또한 그네들이 발전시킨 것이었다.”(나세르, 「혁명의 철학」 중에서)

비동맹운동을 이끌었으며 제3세계라는 프로젝트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일 가말 압델 낫세르. 그는 비동맹운동의 역사에서 또 한 가지 단층을 보여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로 군대의 문제이다. 앞에서 그는 군부가 제3세계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하여 매우 분명하게 말한다. 그것은 군대가 정치 권력에 야심이 있어 혁명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민족해방운동에서 군대가 어쩔 수 없이 그런 역할을 떠맡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불행하게도 근대화론을 주도했던 로스토우가 생각했던 것과도 크게 멀지 않다. 로스토우는 저개발국의 발전에 있어 군대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군대는 경제적, 정치적 성장에서 세 가지 이유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군사적 경력은 종종 지도자의 지위로 가는 유일한 길이 되고, 직위는 비 특권적 계급들 특히 시골출신 남성들에게 열려있다. 군대는 이렇게 종종 비군사적 계획을 위한 새로운 지도자를 내오는 훌륭한 자원이 된다. 둘째 군대는 기술적인 행정적인 부분을 연마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많은 기술들은 도로와 통신체계 또는 향상된 위생을 위한 지방사회 조직의 건설로 대표되는 시민적 일에 쉽게 전이될 수 있다. 셋째 군의 서비스는 산업에 필요한 기술을 농부들에게 주는 직업상의 훈련을 제공한다.” (로스토우, <제안>, 1957, 중에서)

말인즉슨 저개발국에서 장교집단은 근대화를 이룩할 수 있는 주동적인 세력이며 이들은 서구적 생각과 가치관 사이에서 연결통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탈식민화 이전의 사회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우며 부패하고 매판적인 민족 부르주아지나 지주계층보다 대중을 이끄는 데 적역이며 나아가 그들은 근대적인 지식관료집단으로서 발전을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일에 적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로스토우의 근대화론의 모범 사례처럼 간주되는 한국의 예에서 보듯 군대는 성장과 개발을 우선시하면서 민주주의는 뒷전으로 미루는 데 앞장섰다. 그 때 군부는 자신이 독점하고 있는 무력으로 민중을 억압하고 학살하는 데 앞장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탈식민화된 나라에서 민족주의적인 열정이 강하고 상대적으로 잘 훈련된 전문집단인 군대에 의지하는 일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예를 들면 파농은 민족해방투쟁에서 군대에 기대는 일을 피해야 함을 역설했다. “조심할 것은 군대를 자율적인 조직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럴 경우 군대는 조만간 확실한 임무가 없어졌을 때 ‘정치에 개입하고’ 정부를 위협하게 된다. 상류층이 된 장성들은 정부 각 부처에 자주 출입하면서 성명을 발표할 것을 꿈꾸게 될 것이다. … 이런 위험을 피할 유일한 방법은 군대를 정치적으로 교육하는 것, 다시 말해 군대를 국유화하는 것이다. 그에 못지않게 또 다른 시급한 과제는 민병대를 늘리는 것이다.”(프란츠 파농,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중에서) 그러나 문제는 과거의 제3세계 나라들에서 군대와 군부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일반적인 논리를 찾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사실 군대가 제3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의 문제는 군대 자체가 아니라 바로 군대가 나서도록 만드는 조건을 살피는 일이다. 인도 출신의 제3세계 역사 쓰기의 대표 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비자이 프라샤드는 바로 그 점에 주목한다. 그는 <갈색의 세계사>란 책에서 ‘장군들의 쿠데타’와 ‘대령들의 쿠데타’를 나눌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물론 그는 모든 쿠데타는 나쁘다는 입장을 단호히 견지한다. 쿠데타는 민족국가를 건설하는데 대중들이 맡는 역할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쿠데타가 똑같지는 않다. 더 나쁜 쿠데타가 있기 때문이다. 장군들의 쿠데타가 바로 그것이다.
이 쿠데타는 민족해방이 이룬 성과들을 부정하고 제3세계 나라들의 진보적인 전망에서 벗어나도록 한다. 이는 불행하게도 많은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쿠데타의 배후에는 대개 미국이 있다. 제3세계 프로젝트를 무산시키고 역사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장군들의 쿠데타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칠레에서 아옌데 사회주의정부를 무너뜨리고 충격 요법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도입했던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일 것이다. 그러나 쿠데타는 “민족해방운동이 없고 사회개혁의 희망이 없는 곳에서” 군대 내부의 분노한 사회계급이 자신이 속한 사회계급을 대표한다고 자처하며 일어날 수도 있다. 이것이 ‘대령들의 쿠데타’라 할 수 있다. 나세르가 이끈 ‘아랍사회주의’는 군대가 이끈 제3세계 사회주의였다. 리비아에서 카다피가 이끌었던 자유장교 쿠데타 역시 그에 해당된다. 그리고 그러한 대령들의 쿠데타 가운데 가장 최근의 것으로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가 이끈 쿠데타일 것이다. 보수적인 학자이든 진보적인 학자이든 서로 그것을 바라보는 생각은 달라도 쿠데타가 출현하는 조건을 이해하는 점에서는 사뭇 비슷하다. 그것은 민족해방운동을 위한 에너지가 약해지거나 억압당할 때, 그리고 무엇보다 대중들이 자신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를 만들어 가도록 하는 대중조직과 대중기관(이를테면 강한 전국 규모의 노동자, 농민, 청년 조직, 대중들의 삶 속에 깊이 파고든 정당)이 없거나 취약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결국 종속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대중의 몫을 군대가 대신할 수 없다. 그렇기에 대중들이 다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자 일어날 때 많은 대령들이 독재자로 변신하여 사회적 변화를 가로막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