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달러 Petrodollar

The Clash – Lost In The SuperMarket

석유는 제3세계 나라들에서 발견된 가장 수익성 높은 1차 산품이다. 흔히 소비사회라고 불리는 시대는 비록 선진적인 자본주의나라들의 몫이었지만 그것은 자동차와 플라스틱, 나일론 같은 석유화학제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바야흐로 ‘악마의 똥’이면서 ‘검은 황금’이기도 했던 석유의 시대가 소비사회의 시대였다. 얄궂게도 바로 이 석유는 제3세계라는 프로젝트의 운명을 쥘락펼락하는 마법의 힘을 발휘했다. 단지 그것은 석유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것은 가장 많은 석유를 수입하고 소비하는 미국과 미국의 화폐인 달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때문이었다.

종속 이론의 대부 혹은 라틴아메리카의 ‘케인스’로도 알려진 라울 프레비시는 제3세계 나라들이 식민주의가 남긴 유산으로 인해 자신의 빈곤과 불평등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조건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폭로한 바 있었다. 그가 제3세계 나라들을 대변하면서 유엔 라틴아메리카경제위원회와 유엔 무역개발회의를 이끌었을 때, 그가 요구한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신국제경제질서였다. 대다수의 제3세계나라들은 오랜 식민주의의 첫 번째 유산인 단일 작물이나 단일 원료에 의존해 나라의 살림을 끌어가야 했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특화된 생산을 비교우위란 이름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곤 했다. 그런데 이러한 1차 산품은 언제나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마련이었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가격을 유지하는 공산품과 달리 수요에 따라 가격이 널뛰듯 하는 1차 산품에 의지해서는 제3세계 민중들에게 이로운 사회 발전을 이루기는 요원한 일이었다. 따라서 다양한 경제 부문들이 고루 발전하고 상호의존하는 경제 체제를 가질 수 없었던 탈식민화된 제3세계 나라들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1차 산품들의 카르텔을 만들어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자신들의 협상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발전하면 할수록 저발전 상태에 놓이는 늪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1차 산품도 카르텔을 형성할 수 없었다.

단 석유는 예외였다. 1960년 베네수엘라,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의 주도하여 만든 석유 카르텔, 즉 석유수출국기구(OPEC: The 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는 석유라는 천연자원을 이용하여 민족주의를 펼칠 수 있는 강력한 플랫폼이 될 수 있었다. 석유수출국기구가 발족하기 전 해인 1959년 반둥회의를 이끌었던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인 나세르가 이끌던 이집트와 아랍연맹은 아랍석유회의를 개최했다. 여기엔 아랍국가들은 물론 베네수엘라의 대표도 참석했다. 베네수엘라 대표였던 페레스 알폰소는 이 자리에서 석유 카르텔을 결성할 필요를 역설했다. 그 결과 산유국들의 대표들은 이라크의 바그다드에 다시 모여 석유 카르텔을 결성하기로 합의했다. 석유수출국기구가 발족한 것이다. 그리고 역시 프레비시의 노력에 힘입어 석유 카르텔을 본받은 몇 개의 카르텔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그것은 큰 힘을 쓰지 못했다. 상품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선 일정한 재고를 비축해야 하는데 이런 카르텔 결성을 주도했던 유엔 무역개발회의는 그를 위한 자금을 마련할 수 없었다.

석유수출국기구가 1차산품 카르텔의 든든한 출발점으로서 제3세계 나라에게 유리한 경제질서를 만드는 주춧돌로 기능할 것이라는 기대는 금세 무너졌다. 석유수출국기구는 제3세계 나라들을 위한 기구가 아니라 미국을 위한 구원투수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2003년 미국이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 그들이 내세운 명분을 모두 믿은 것은 아니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것은 미국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이라크가 석유 대금 결제를 유로화로 하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는 바로 몇 년전인 2011년 카다피가 이끌던 리비아를 미국과 나토가 군사적으로 공격했을 때도 같았다. 잔인무도한 독재정권으로부터 국민을 구원한다는 명분으로 단행된 이 군사적인 개입이 실은 금 디나르(gold dinar)라는 아프리카 단일 통화로 리비아 석유 값을 결재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한편 같은 해 국제통화기금 총재였던 프랑스 사회당 출신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Dominique Strauss Kahn)이 뉴욕의 어느 호텔에서 성폭행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는 3개월 전 석유 결재를 위해 금 준비통화를 도입하자고 주장한 바 있었다. 역시 석유 값 결재를 위해 달러 아닌 무엇을 요구했다는 괘씸죄를 뒤집어썼다는 의혹이 무성했다. 얼마 뒤 스트로스-칸은 자신을 둘러싼 혐의에서 모두 벗어났다. 이 모두는 바로 달러가 세계 경제의 맹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핏줄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석유는 바로 미국의 부를 나타내는 표현인 달러라는 화폐 가치를 떠받치는 무기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은 미국의 달러를 석유달러로 부르고 미국의 경제적 지배와 폭력을 석유달러 제국주의로 부르는 것이다.

석유달러가 부상하게 된 배경을 이해하자면 브레턴우즈 체제의 등장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1944년 미국의 브레턴우즈에 모인 경제 관료들은 새로운 전후 경제 질서를 수립하는 결정적인 선택을 하였다. 그것은 바로 금-달러 본위제라는 것이었다. 이전까지 전 세계의 무역을 위한 결재는 금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바뀐 것이다. 이제 무역과 상업을 위한 거래는 모두 달러를 통해 이뤄지게 되었다. 미국 달러가 사실상 세계 화폐가 된 것이다. 그러나 달러의 가치는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했다. 그래서 금 1온스에 35달러로 달러 가치는 금에 고정되도록 했다. 그리고 각 나라의 통화는 다시 미국 달러에 고정되었다. 그렇게 되면 모든 통화들 사이의 교환비율, 즉 환율은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계통화로서 인정받은 달러를 가진 누군가가 미국 측에 그것의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금으로 교환하길 원하면 미국은 금으로 교환해주어야만 했다. 그런데 1960년대가 되면서 사정이 완전히 바뀌었다. 베트남 전쟁에 자금을 조달하느라 미국의 금 보유고가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난관에 봉착한 미국은 대안을 찾아야 했다. 미국이 택한 대안은 바로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는 태환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1971년 닉슨 정권은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면서 변동환율제를 도입했다. 이제 미국 달러의 가치는 무엇인가에 고정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면 달러의 가치 변동을 우려한 이들이 달러 대신 다른 통화, 예컨대 급부상하고 있던 경제 대국인 독일의 마르크화나 일본의 옌화를 보유하게 된다면 미국의 경제적 지위는 크게 흔들릴 위험이 있었다. 미국이 낸 꾀는 바로 세계에서 가장 큰 몫의 결제 대금이 소용되는 석유 결제 대금을 오직 달러로만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석유수출국기구의 주축을 이루던 사우디아라비아를 설득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정권을 보호하고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는 대가로 석유수출국기구가 오직 달러만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계약이 맺어진 것이다.

석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결국 그들은 경제 활동을 영위하는 데 가장 큰 에너지원인 석유를 구입하기 위해 수중에 달러를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석유를 팔고 받은 달러, 즉 석유달러는 고스란히 미국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리고 그 돈은 대개 미국의 국채를 구입하는 데 쓰였다. 국채는 미국 정부가 지급을 보장하는 가장 안전한 돈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석유달러의 환류(recycling)였다. 미국은 제 마음대로 지폐를 찍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통화 공급을 늘리거나 줄임으로써 혹은 이자율을 높이거나 내림으로써 세계 경제를 통제할 수 있다. 오일 쇼크로 인해 석유 가격이 4배 가까이 오르자 당연히 4배나 많은 달러가 필요했다. 물론 이 말은 곧 미국에 4배나 많은 투자가 이뤄지게 되었다는 말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석유를 필요로 했던 가난한 나라들에게 이것은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다시 미국으로 달려가 빚을 얻었다. 금-달러 본위제가 지배하던 시대에 각 나라들은 정부가 통제하는 중앙은행을 통해 국제 금융과 대부를 제어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민간 은행이나 투자 기업들이 자본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현실과 제법 거리가 먼 것이긴 했지만 그래도 돈이 한 나라에 머무르면서 장기적인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위해 사용되어야지 단기적인 이윤을 노리며 투기적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널리 자리 잡고 있었던 탓이다. 많은 이들이 매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증권 시장이나 선물 시장의 시황을 점검하는 오늘날, 즉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후의 세상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시대는 막을 내렸다.

한편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달러가 가진 막강한 힘을 이용해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다. 레이건 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이 이자율을 21퍼센트나 올리자 빚을 진 대다수의 제3세계 나라들은 외채 위기를 겪기 시작했다. 멕시코를 시작해 남미, 나아가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 그리고 그 동구권의 나라들을 거쳐 유럽에까지 상륙한 외채 위기는 곧 구제 금융을 주는 조건으로 구조조정정책을 실행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세계로 확대했다. 그러나 달러 발행권을 가지고 있는 미국 정부는 아무리 많은 돈을 찍어내며 빚을 늘려도 끄떡없었다. 달러를 필요로 하는 나라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 미국의 경제를 지탱하여 주는 이상한 일이 이제 오늘날의 경제 원리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끔찍한 상황이 계속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제3세계라는 프로젝트가 꿈꾸었던 보다 균등하고 정의로운 경제질서를 향한 꿈이 되살아난다면 이러한 상황은 종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일은 무엇보다 석유달러의 위력을 중단하고 새로운 결재 통화를 도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는 무엇보다 지난 수십 년간 되풀이되어온 중동에서의 끔찍한 전쟁과 참화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