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경제론/민족문학론 民族經濟論/民族文學論

Grimes – Delete Forever

1970-80년대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을 가장 강렬하게 매혹시킨 담론은 ‘민족문학론’과 ‘민족경제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이론 혹은 입장은 공통적으로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데 있어 민족을 내세웠다. 여기에서 민족은 보수적 민족주의자들이 내세우던 유구한 전통과 함께 자신의 얼을 간직한 종족적인 공동체로서의 민족이 아니었다. 그것은 외세에 종속된 탓에 자신의 자립적이고 민주적인 발전을 저지당한 사회적, 경제적 공동체였다. 이 공동체는 외세에 결탁함으로써 사회의 발전을 꾀한 탓에 그에 유착해 자신의 권력을 가지게 된 소수의 반민족적인 세력과 그들로 인해 억압과 고통을 겪어야 했던 대다수 민중들로 분열되어 있었다. 종속적인 발전이란, 발전하면 할수록 민족의 이해에 반하는 것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은 종속적 발전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룩하고 있었다. 다른 제3세계에 속한 나라들과 달리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경제질서에서 미국과 일본이 우호적으로 제공한 자본으로 인해 그리고 새롭게 형성된 국제분업 체제로 인해 전무후무한 성장을 이룩하였다. 신흥공업국으로 도약이 절정에 이르렀던 그 때인 1970년대에 민족문학론과 민족경제론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이 두 이론은 암묵적으로 제3세계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인식하는 데 적극 참여했다. 반둥회의에서 타전된 제3세계주의의 신호는 십 수 년이 지난 뒤 한국에 도착했던 것이다.

제3세계를 문학적 실천의 정신으로 기꺼이 수용한 것은 민족문학론이었다. 민족문학론을 이끌었던 문학평론가 백낙청은, “구미 선진공업국 문학에의 정신적 종속관계를 청산하면서도 어디까지나 인류사회 전체를 향해 개방된 문학의 자세를 정립하려는 것이 민족문학론의 뜻하던 바였던 만큼 제3세계와의 새로운 연대의식을 모색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며, “세계를 셋으로 갈라놓는 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로 묶어서 보는 데 그 참뜻이 있는 것이며 하나로 묶어서 보되 제1세계 또는 제2세계의 강자와 부자의 입장에서 보지 말고 민중의 입자에서 보자는 의도”라고 제3세계 문학을 정의했다.(백낙청, 「제3세계의 문학을 보는 눈」 중에서(1982)) 그가 다른 지식인들과 함께 민족문학론을 전개했던 연속 출판물의 이름이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이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많은 이들이 이 제목 가운데 오직 민족문학 만을 주목한다. 그러나 민족문학은 세계문학을 지칭하는 것이도 하였다. 그것은 민족문학이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제일로 삼는 배타적인 국민문학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자신의 공동체의 삶을 나타내고 표현하는 것이라는 급진적인 민족주의에 의거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나아가 민족문학은 그 어떤 개별적인 인물과 이야기도 민족을 상징화하는 것일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고 있었다. 어떤 개인의 인생 역정도 그것은 곧 자신이 속한 집합적인 삶을 나타내는 알레고리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민족문학은 이처럼 종속된 나라의 문학이 생산되고 수용되는 방식을 밝히고자 했다.(이러한 제3세계 문학의 특징을 미국의 마르크스주의 평론가인 프레드릭 제임슨은 ‘민족 알레고리(national allegory)란 개념으로 요약한 바 있었다.) 나아가 민족문학은 서구의 모더니즘 문학에 주눅 든 이들에게 자신감을 주고자 했다. 제3세계 문학으로서의 민족문학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군사적으로는 제1세계나 제2세계에 뒤떨어져 있을망정 도덕적으로나 문화적으로는 오히려 더 떳떳한 위치에 서서 세계역사에 올바르게 기여하는” 문학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민족문학은 “제3세계의 문학이 서구문학을 포함한 전 세계 문학의 진정한 전위가 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기염을 토했다.(백낙청, 「한국문학과 제3세계문학의 사명」(1978) 중에서)

한편 이러한 민족문학론은 그와 함께 큰 영향을 떨치고 있던 민족경제론과 짝을 이루고 있었다. “오늘날 이러한 민족문학론의 필요성은 경제학계에 있어서 국민경제와 구별되는 민족경제의 이념이 갖는 의의와도 맞먹는 것이다. ‘우리가 개념지으려는 민족경제는 범세계적인 자본운동의 과정에서 한 민족이 민족적 순수성과 전통을 유지하면서 그에 의거 생활하는 민족 집단의 생활기반이다. 이것은 순수 경제적인 자본운동의 측면에서는 국민경제에 포괄되는 하위 개념이나 민족주체적 관점에서는 국민경제보다 놓은 상위개념이다.(조용범, 후진국경제론 중에서) 그리고 오늘날 현실에서 순수경제적인 개념만이 고집하는 것이 민족의 경제적 자주성에 대한 엄연한 위협을 간과하는 일이 되듯이 민족문학의 개념을 외면하는 것 역시 민족의 생존과 존엄에 대한 현실적 도전을 망각하는 결과가 될 수 있는 것이다.”(백낙청, 「민족문학 개념의 정립을 위해」(1974) 중에서) 여기에서 백낙청은 민족경제론과 민족문학론이 탯줄로 연결되어 있음을 단언한다. 그는 민족과 국민을 분리시키며 민족이란 관점에서 국민경제를 바라보는 민족경제론의 생각은, 국어로 쓰인 국민문학이 현실과 어떤 관점에서 관계를 맺는가에 따라 그 방향을 달리 할 수밖에 없다는 민족문학론의 생각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 생각했다.

민족경제론을 이끈 박현채는 민족경제론이 필요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서술한다. “국민경제와 민족경제의 괴리는 지역적 개념으로서의 국민경제에 있어서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과 자본제화가 식민지 피억압민족의 전통적인 생활양식의 파괴와 빈곤으로 됨으로써 식민지 피억압민족의 경제적 이해와 한 사회 또는 국민경제의 상황이 스스로 합치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서 식민지․반식민지적 경제상황을 비추어 보는 것으로서 경제 제량(諸量)이나 선진자본주의제국 일반의 경우에서 정립된 이론이 아닌 이들 이론을 보완하여 식민지․반식민지 피억압민족의 주체적인 민족주의적인 평가를 가능케 하는 이론으로서 새 이론을 정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되는 것이다.”(박현채, 민족경제론의 기초이론 중에서) 그는 민족경제론을 단순히 반식민, 반제국주의의 경제이론으로 보길 거부한다. 경제 체제와 구조는 한 국가와 다른 국가 사이의 관계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식민적 자본주의에 종속된 상황에서 그런 외세와의 대립이 주요한 모순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종속된 사회의 내부적 모순에 의해 항상 결정될 수밖에 없음을 뚜렷이 인식하고 있었다. 나아가 외세에 의한 종속도 역시 외세의 내적 모순에 의해 강요된 것임을 누구보다 명료하게 파악하였다. 한국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자신의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의 산물이었지 선견지명이 있는 정치가들과 자본가들의 능력 때문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박현채는 관변 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민족경제론의 민족주의를 주장할 수 있었다. 그의 말을 빌자면 민족경제론과 민족문학론에서의 민족주의란 이런 것이었다. “오늘날의 역사적 상황에서 민족주의 개념은 자기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이것을 포괄적으로 규정하면 그것은 상대적인 독자성을 갖고 계승되는 민족적인 것의 한 사회의 구체적인 조건 속에서 실현되는 계급적인 것의 반영 그 자체이다.”(박현채, 민족경제론의 기초이론 중에서).
민족문학론과 민족경제론의 역설은 제3세계 프로젝트가 위기에 직면했던 순간 등장했다는 것이었다. 민족문학론과 민족경제론이 청년층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성가를 드높이던 1980년대엔 이미 비동맹운동과 제3세계 프로젝트는 시름시름 명맥을 다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앞 다투어 제3세계를 내건 글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것은 단지 맥없는 도덕적인 주장처럼 들렸다. 신흥공업국의 선두였던 한국은 제3세계가 쫓아야할 모범이 되어 있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쓰나미가 몰려오기 직전 한국은 제3세계 프로젝트를 침묵시키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최고의 알리바이였다. 박현채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종속이론이 유행하는 현상을 경계하며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모순이 종속이라는 외적 모순보다 앞서는 것이라는 주장으로 식민주의가 취하는 역사적인 차이를 세심하게 이해하도록 촉구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오늘날 민족경제론과 민족문학론은 민족주의에 매달렸던 딱하기 그지없는 이론적 프로젝트로 폄훼되기 일쑤이다. 그러나 이 두 이론은 자신들의 사회를 짓누르는 착취와 억압에 저항할 수 있는 집단적인 주체를 상상했던 마지막 이론이기도 하다. 그 후 서구에서 유입된 최신 이론들 참조하며 시민사회, 다중, 네트워크, 소수자 같은 숱한 개념들이 저항의 주체를 가리키고자 등장했다. 그러나 이런 개념들은 그저 한 때의 유행처럼 명멸하고 말았다. 민족경제론과 민족문학론처럼 안과 바깥을 두루 아우르는 현실 인식의 논리는 더 이상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게다가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고통과 비참을 아우를 수 있는 이름은, 민족/민중이란 낱말 이후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있다. 민족경제론과 민족문학론의 유산이 더 없이 뼈아프게 소중한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