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 신식민주의, 탈식민주의 colonialism, neo-colonialism, post-colonialism, 植民主義, 新植民主義, Post植民主義

Beatrice Dillon ‘Sonnier (Walk in the Light)’

총독과 군대가 물러나자 사람들은 제3세계에서 식민주의란 것은 마침내 종료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 유럽의 제국주의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마지막 위기에 직면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작용하였다. 먼저 식민주의 지배에 저항하는 민중들의 저항이 끈질겨 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투쟁들은 그들의 싸움을 지지하는 구소련, 중국, 쿠바 등의 지원으로 인해 더욱 힘이 강해졌다. 그들은 더 이상 고립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두 번째로 여러 차례의 전쟁으로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기진맥진해진 상태였다. 따라서 자신이 지닌 식민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마련할 여유가 없었다. 때마침 자신들이 지배하는 식민지 민중들로부터의 거센 저항에 직면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월등한 힘을 가지고 과거의 제국주의 나라들을 앞지르기 시작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미국은 지난 시절에 만들어진 무역 블록이 자신들의 경제적 힘을 확장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겐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는 불필요할뿐더러 별반 이익을 주는 게 아니었다. 새로운 세계 자본주의 맹주는 과거의 제국주의를 지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식민주의가 사라졌다고 해서 식민지 민중들이 겪던 고통과 가난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총독이나 제독이 없었지만 즉 직접적으로 자신이 지배하는 사회의 주권을 찬탈하고 영토를 지배하는 제국주의는 사라졌지만 보다 교묘하고 간접적인 식민주의가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신식민주의란 이름을 붙였다. 신식민주의란 말을 짚어보려면 크와메 은크루마를 떠올리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1961년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독립을 획득한 가나의 지도자가 크와메 은크루마였다. 그는 독립을 이룩한 이후 1965년 신식민주의: 제국주의의 마지막 단계란 기념비적인 책을 간행하였다. 이 책은 레닌이 쓴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라는 책의 대구처럼 보였다. 그는 그 책에서 이렇게 썼다. “신식민주의의 본질은 그에 종속된 나라가 이론적으로는 독립해 있고 국제주권이라는 외적인 미사어구를 누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제 체제와 정치적 정책이란 면에서는 전적으로 외부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요컨대 독립이란 순전히 헛소리일 뿐이었다. 은크루마가 보기에 신식민주의란 자본주의 국가들이 겪고 있던 사회적 갈등을 수출해 자기네 나라와 제3세계 나라 사이의 갈등으로 둔갑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달리 말하자면 이는 서구 선진국들은 자기네 나라의 복지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높은 생활수준을 노동자들에게 보장해주기 위해, 자신들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계급적인 갈등을 국제노동분업으로 전환하려는 것이었다. 국제노동분업이란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를 가리키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점점 비용이 부담스러운 생산은 제3세계로 수출하고 자신들은 보다 높은 가치를 생산하는 분야를 맡음으로써 자신들의 사회적 안정을 지키고 제3세계 나라들을 끝없는 가난의 상태에 몰아넣는 것이 국제노동분업이었다. 그래서 은크루마는 이를 미국이 주도하는 식민지 없는 제국의 단계라고 쏘아 붙였다. 은크루마는 다른 수단을 통해 과거의 식민주의를 계속하는 것이 신식민주의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신식민주의가 과거의 식민주의를 계승한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해서 독립 이후에 제3세계 나라들을 통해 이뤄진 저항과 변화의 시도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식민주의가 경제적, 정치적 지배와 착취를 강조하면서 탈식민 이후 나타난 문화적 변화를 무시한다는 포스트식민주의의 생각은 섣부른 것일지 모른다. 포스트식민주의는 서구 학계를 중심으로 독립 이후 즉 식민주의 지배 이후 나타난 다양한 변화들을 분석하는 것을 선호하는 주장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포스트식민주의는 이전의 식민주의, 신식민주의 이론들이 독립과 발전을 둘러싼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프로젝트였던 것에 비해 문화이론과 같은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포스트식민주의는 기존의 탈식민 국가를 이해할 때 국가와 민족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을 비판한다. 민족이란 개념은 그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적 차이를 묻어버린다는 것이다. 한편 민족 역시 순수하고 단일한 공동체로 상정할 수 없음을 역설한다. 그 때문에 포스트식민주의를 옹호하는 이들은 이주와 정착, 문화적 교류를 통해 여러 문화들이 뒤섞이고 발효되면서 혼종(hybrid)적인 다채로운 면모를 띤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눈으로 볼 때 민족주의 담론은 순수하고 일관된 민족정체성을 강요하며 억압의 담론이 되어왔다고 힐난한다. 또한 포스트식민주의자들은 발전이라는 프로젝트를 당연시하며 이를 의문시하지 않은 것에 불만을 토로한다. 발전과 성장은 서구의 계몽주의적 합리성을 비판하지 못한 채 그것에 내장된 사회를 바라보는 논리를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트식민주의는 ‘제3세계 민족주의’가 갖는 맹점에 관해 흥미 있는 비판을 제기하여 왔다. 그러나 포스트식민주의는 또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후 널리 성행한 이데올로기적인 변화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이전 시대의 중요한 정치적 행위자였던 계급이나 민족은 가치를 상실하고 개인과 집단 정체성이 그런 자리를 대신하여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는 포스트식민주의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탈식민화된 나라의 민중들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위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민족국가 형태를 취한 저항이 실패한 것은 제3세계 민족주의의 오류라기보다는 그러한 주권적 장벽을 무력으로 혹은 간접적인 수단을 통해 무력화하며 자신들의 경제적 회로 속으로 쓸어 넣은 신제국주의의 끈질긴 전략 때문이었다. 서구에서 신자유주의가 들어선 것을 두고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로 인해 물러섰던 지배계급이 자신의 권력을 되찾고자 했던 지배계급의 반격이라고 말하는 주장을 참고한다면, 남반구에서 세계화가 대대적으로 진행된 것 역시 자신의 권력을 되찾고자 돌아온 식민주의의 반격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식민주의에 맞설 수 있는 이들의 이름이 제3세계이거나 민족일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제3세계와 민족은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유토피아적인 프로젝트였고 그 프로젝트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유토피아적인 프로젝트가 다시 가동될 때 그것을 추진하는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가리키는 이름을 얻고 자신들의 세계를 새로운 낱말로 칭하는 상상을 발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