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커트

살아 있다면 미국 나이로 서른 일곱, 한국 나이로 서른 여덟,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동갑내기의 스타이다. 존 레넌의 부고를 들었더라도 그랬을까, 나는 그의 때 이른 죽음의 소식을 접하고 참으로 망연자실했다. 그 때 나는 많은 부음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불과 한 주 전에 어느 미국 주간지에서 오려내어 액자에 끼워 두었던 그의 近影을, 영정으로 삼고, 참으로 섧게 목놓아 울었다. 그는 90년대 한국 사회의 모든 보수적 규범에 이를 물고 대들기로 했던 내게 있어 일종의 정령이었고 또한 더없이 따뜻한 수호천사였다.

신장개업한 신촌의 록카페에서 <너바나>의 노래를 최고의 볼륨으로 틀어놓고, 만취한 채 광란하는 일은, 나의 90년대의 일과였다. 그것은 나의 80년대, 사회주의적 운동권을 통해 훈육된 몸을 벗는 탈피의 노동이었고 또한 새롭게 각성한 나의 기이한 성벽을 향한 화해와 찬송이기도 했다. 란제리와 가발과 화장을 향한 그의 기이한 선호는 내게 있어 더없이 분명했다. 그의 도착은 나의 도착이었다. 그의 음악을 듣는 것은, 착란적인 것있는지 모르겠지만, 곧 도착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신은 게이다”는 그의 노랫말을 복창하며 나는 제 자신의 90년대적인 자유주의적 일탈을 만끽했다. 그러나 너바나의 열혈팬들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지독하게 슬픈 일이었으며 또한 너바나의 음악은 결국 고독한 리스너들을 위한 음악인지를.

2 thoughts on “내 사랑 커트”

  1. 한때, 이맘때쯤이면 늘 커트의 기일이 2일인지 5일인지에 대해 친구들과 실없는 논쟁을 하곤 했었죠.
    틴에이져때, 너무 무기력하고 뭘 대체 어찌해야 할지 몰라 지루해서 미쳐버리고 싶었을때, 펜으로 분필로 화장실에 칠판에 공책에 god is gay라고 쓰곤 했죠.
    지금 생각해보니 일종의 제 반항의 표시였는데, 그땐 그게 무슨뜻인지도 몰랐어요.
    그냥 사는게 지루해서 쓰던 말이었는데.
    겸이랑 진형씨랑 수요일에 일본으로 갑니다.
    갔다와서 뵈어요.

  2. 오옷, 일본…아쉽군. 이번주 주말에 커트의 추모공연이 홍대 앞에서 열리는데..함께 갈 동무를 찾는 중이었는데..즐거운 여행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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