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_인터내셔널


Dziga Vertov, Kino-Eye, 1924

1. 지가 베르토프 Dziga Vertov 키노-아이 Kinoglaz/Kino Eye 1924

지가 베르토프는 선언했다.

“키노-아이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명료하지 않은 것을 명료하게,
숨겨진 것을 명백히 밝히고,
위장된 것을 드러나도록,
연기된 것을 연기하지 않은 것으로,
즉 거짓을 참으로 변화시키는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카메라는 어떤 눈이기에?

“키노-아이는 세계를 공산주의적으로 해석하기 위한 전투를 촉진시키는 뉴스릴과 과학의 동맹이며, 화면 위에 진실-영화의 진실을 보여주려는 시도이다.
– 지가 베르토프, <키노-아이의 탄생>(1924) 중에서

그러나 카메라의 눈은 그릇된 인간의 눈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드론의 눈은, CCTV의 눈은, 안면인식카메라의 눈은, VR카메라의 눈은 어떨까. 그것은 더 많은 진실을 주었는가, 더 많은 고통을 주었는가. 그러나 카메라의 눈이 우리를 실망시켰기에 실패했다고 속단하지 말자. 카메라는 시간의 현미경과 망원경이라고 베르토프는 말했다. 카메라는 시간의 부정이라고도 말했다.

우리는 어느 곳이든 어떤 때이든 원하는 일에 신속히 접근할 수 있다. 시리아에서의 전쟁과 베이징에서의 클래식 콘서트를 동시에 티비로 즐길 수 있다. 전지구적 네트워크 속에서 시간이란 오직, 속도, 동시성, 즉각성에 다름 아닌 듯 여겨진다. 이 끔찍한 현재의 되풀이 속에서 과거란 무엇인가. 그것은 노스탤지어를 위해 마련된 무대장치인가. 오늘의 지루함을 달래려 방문하는 이색적인 시간인가. 시간의 뒤를 향해 걷는 카메라를 통해 베르토프는 진실이 드러난다고 믿었다. 에이젠슈테인부터 고다르, 클루게까지 위대한 감독들은 그러한 카메라의 눈을 찾으려 하였다. 오늘은 어떤 카메라-눈이 필요한가. 어떤 시간의 눈을 찾아야 하는가.

2. 프란체스코 로시 Francesco Rosi, 살바토레 줄리아노 Salvatore Giuliano, 1962

아직 죽지 않는 자들의 묘비명을 짓는 이들은 누구일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이름을 짓는 이들은 누구일까
아직 오지 않은 날의 선언문을 벽에 붙이는 이들은 누구일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유토피아의 불씨를 밤마다 정성스럽게 돌보는 이들은 누구일까

나를 동지라고 부르는 거의 유일한 친구인 인도의 저널리스트이자 투사, 비자이는 이렇게 썼다.

“소련이 몰락한 동일한 시기에 인도는 국제통화기금에 굴복했고 인도의 사회정치적 세계는 종교에 따른 정치적 폭력으로 몸살을 앓았다. 1992년 12월 6일 인도의 파시스트 세력은 16세기에 세워진 이슬람사원을 파괴했다. 웨스트벵갈에서 좌파전선은 벵갈 만에서 히말라야 산맥에 이르는 7백 킬로미터의 인간 사슬을 연결하자고 민중들에게 호소했다. 나는 콜라타의 하즈라 교차로에서 양쪽 방향으로 끝없이 펼쳐진 것처럼 보이는 인간 사슬에서 다른 동지의 손을 잡고 있었던 일을 기억한다. 여기에서 파시즘과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운동, 지고의 인간 자유를 위한 운동의 일부가 된 전율을 느꼈다. 우리는 대부분 모르는 사이였지만, 단지 ‘다른 세계’만이 아니라 사회주의 세계, 동료애와 돌봄의 세계, 1917년 볼셰비키들이 혁명을 추동했던 가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서로 연결되었다. 그것은 지금도 내가 갖고 있는 감정이다.” (비자이 프라샤드, 제3세계의 붉은 별, 중에서)

나는 이것을 아름다운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내게도 그런 기억이 몇 줌 있을 것이다.

3.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 Tomás Gutiérrez Alea 혁명이야기 Historias de la revolución/Stories of the Revolution, 1960 + 질로 폰테코르보 Gillo Pontecorvo 알제리 전투 La battaglia di Algeri/The Battle of Algiers, 1966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책을 보다 이런 이야기를 읽었다.

“어느 날 아침, 인도산 토끼를 선물 받았다. 토끼는 철창 우리에 갇힌 채 집에 도착했다. 정오가 되자, 나는 철창문을 열어준 뒤 외출했다. 집에 돌아왔다. 해질 무렵이었는데, 토끼는 그 때까지 철창 우리 속에 걸쳐진 막대 옆에 착 달라붙어 자유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자유 만세! 해방 만세! 독립 만세!
한때 자유를 두려워하지 않은 이들이 세계의 모든 거리를 가득 메웠다. 반 세기 전이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그리고 이어 라틴아메리카에서 독립과 해방이 온 세상을 뒤흔들었다. 알제에서, 아바나에서, 쿠알라룸푸르에서, 자카르타에서, 하노이에서, 서울에서, 기니비사우에서, 멕시코시티에서, 킹스톤에서. 그러나 이제 이 모든 곳들은 관광안내책자에나 나오는 이름이 되었다.

4. 글라우버 로샤 Glauber Rocha, 고뇌하는 대지 Terra em Transe/Entranced Earth, 1967

최대한의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 인지도 모를 일이다. 과거를 겨냥해 말을 건네는 것을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면, 과거를 향해 눈을 끔벅거리는 것은 역사를 향해 눈짓을 하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은 과거와 구원의 변증법을 속삭인다.

벤야민은 과거는 자신을 구원함으로써 완전해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말은 의아스럽고 엉뚱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옳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대한 두 가지 흔한 생각과 멀어진다면 말이다. 첫 번째 종류의 과거, 오늘의 비참을 위로하기 위해 상상된 좋았던 날들의 신기루로서의 과거, 즉 보수주의자의 과거가 있다. 두 번째 종류의 과거. 과거-현재-미래의 시제 사이에 굳건한 필연성을 들러 씌우며 지금을 낳지 않은 과거는 과거가 아니라는 승자의 과거가 또 하나 있다. 그러나 이런 과거들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다른 과거와 만난다.

벤야민은 어쩌면 미래로서의 과거를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과거에 예정되어 있었으나 봉쇄되어 버린 미래, 그런 점에서 미래로서의 과거. 그 미래를 소생시키기 위해 우리는 다시 과거로 가야한다. 과거에 저지되었던 시간의 잠재성을 찾아 그것의 봉인을 끄르는 일. 거기에 잠자고 있는 미래를 개방하는 일이야말로 곧 과거를 소중히 기억하는 일이다. 그래야 기억은 역사가 된다.

5. 리노 브로카 Lino Brocka, 네온 불빛 속의 마닐라 Maynila sa mga kuko ng liwanag/Manila in the Claws of Light 1975 + 리리 리자 Riri Riza, 지 Gie 2005

신비로운 협곡에 있는 어느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그가 지주를 죽이고 도망쳐 나왔다는 소문이 있었지. 또 그는 네덜란드인 지배에 반대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죽은 공산주의자 애비를 지녔다는 소문이 있었지. 이 소문의 아이들은 커서 어른이 되었고 다시 반란군이 되었다네. 당신들은 고무 농장의 노동자들과 노조를 조직하고 큰 배들을 거느린 선주들에 맞서 어부 조합을 만들었지. 그들은 잘 생겼고 똑똑하고 또 무엇보다 연설을 잘 했다지.

당신들은 가끔 옛날이, 혁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몰랐던 옛날이 그리워졌다. 부자들의 뜰에 있는 것을 훔치고, 부자들에게 밥값을 내게 하고, 영화 표를 사고, 그들의 잔치에 가서 공짜로 맥주를 마셨다. 그 시절엔 당도, 선전도, ‘인터내셔널가’도 필요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당신들은 농민과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그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책을 읽으며 토론회를 열어야 한다. 당신들은 집회를 열고 우렁찬 목소리로 연설도 해야 한다. 새로운 세상의 주인이 되는 일은 뜨겁고 기쁘지만, 또한 수고스럽고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당신들은 결국 총탄에 맞거나 감옥으로 끌려갔다. 혹은 당신들 가운데 누구는 수용소로 끌려갔다. 모두가 당신과 가족들을 멀리했고, 당신들 가운데 몇은 미쳐갔다. 그럴 수록에 세상은 더 미쳐갔다는 것을 모두 어렴풋이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들의 나라에는 귀신들이 많다. 머리가 잘려나간, 배가 터진, 눈이 뽑힌 귀신들은 피를 흘리며 우리들의 꿈속에 나타났다. 그러나 이제 귀신들은, 원혼들은, 유령들은, 철학 책이나 싸구려 영화에서나 등장할 뿐이다. 당신들이 살고 싸우던 곳엔 호텔이 들어서고 쇼핑몰이 문을 열고, 새로운 보험회사들과 통신회사들의 광고판은 모든 어두운 곳들을 숨긴다. 귀신들이 숨을 곳은 이제 한 곳도 없는 듯 보인다.

그러나 유령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직 원혼들은 자신들의 슬픔을 모두 위안 받지 않았고, 살아 있는 자들의 꿈속으로 여전히 혼령들은 찾아올 것이다.

6. 포루그 파로흐자드 Forugh Farrokhzad, 검은 집 The House Is Black 1963

더 이상 아무도 사랑을 꿈꾸지 않는다
더 이상 아무도 승리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도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임산부들은
머리 없는 갓난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요람들은 수치심에
무덤 속으로 숨었다
얼마나 어둡고 쓰디쓴 날들이었던가
예언의 놀라운 힘은 빵에 굴복했고
굶주리고 비참한 예언자들은
성스러운 약속의 땅에서 도망쳤다.


이 얼마나 끝없는 공허함인가
태양은 죽어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 슬픈 비둘기의 이름이
심장에서 흘러나온 그 이름이
신앙이라는 사실을

아, 감금된 목소리여
그대의 희망 잃은 이 신음은
이 지긋지긋한 밤의 벽을 허물고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없는가
아, 감금된 목소리여
아, 소리들 중의 마지막 소리여
– 포루그 파로흐자드, <지상의 찬가> 중에서

7. 리트윅 가탁 Ritwik Ghatak 나의 레닌 Amar Lenin/My Lenin 1970

오로지 마시고,
졸고,
제 주머니를 채우기에만 바쁜
자본주의는
게으르고 미약하다
그는 역사의 길 위에
기름 낀 배를
깔고 엎드렸다
아무도 그를
넘어서거나
지나치지 않는다.

세계를 덮을 만큼
넓고 안락한 침대에
누운 그를
치우는 길은
그를 폭파시키는 것뿐이다.
–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중에서

레닌이 죽었을 때, 마야코프스키는 이런 시를 썼다지
그로부터 백년 뒤 인도에서 레닌이 태어난 지 백년을 축하하는 영화가 만들어졌다네
인도 영화의 별난 감독 리트윗 가탁은 가난한 농부가 레닌을 알고 새로 태어나는 순간을 보여주었다네
인도에는 레닌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지
심지어 스탈린이나 흐루쇼프, 브레즈네프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네
당신은 후진적인 인도인들이 소련의 참상도 모른 채 어리석게 그런 이름을 가져다 썼다고 조롱하겠지
그러나 어리석은 건 당신이라네
당신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자식에 물려주고자 주어진 이름 따위와는 관계없을 테니
그저 작명가로부터 이름을 얻었을 뿐일테니
그러니 소비에트 독재자의 이름이 어떻단 말인가
그들은 그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다는 전설을 믿었던 잘못 뿐인 것을.

8. 테라야마 슈지 Shuji Terayama 토마토케첩황제 (トマトケチャップ皇帝/Emperor Tomato Ketchup) 1971

1973년 아옌데는 대통령궁에서 마지막 라디오 연설을 하였다.

“내 조국의 노동자들이여, 저는 칠레의 운명을 믿습니다. … 머지않아 위대한 길이 다시 열릴 것입니다. 그 길 위로 자유인들이 걸어가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것입니다. 칠레 만세! 국민 만세! 노동자 만세!”

그리고 피노체트가 권좌에 올랐다. 신자유주의 실험이 시작되었다. 혹자는 충격 요법이 시작되었다고도 말한다. 노동자와 농민, 그리고 민중의 혁명은 과거의 일이 될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자본가와 은행가, 정치가, 교수들이 새로운 혁명을 시작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리고 로베르토 볼로냐는 이런 시를 썼다.

“1976년이고 혁명은 좌절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 사실을 모른다.
우리는 스물 둘, 스물세 살이다.

1976년이고 그들은 다리오 갈리시아의 두개골에 구멍을 냈다.
그는 살아있고, 혁명은 좌절되었고, 먹구름이 계곡을 가로질러
북쪽에 천천히 다가오고 있지만 화창한 날씨다.

1976년이고 문이 모두 열려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주의를 기울이면, 문이 하나하나
어떻게 닫히는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다리오가 말하기 시작한다. 감격에 겨운 모습이다.
우리가 문병을 와서 들떠 있다.
그의 목소리는 새소리처럼 날카롭다, 평소와 다른 목소리다,
마치 그의 성대에 무슨 짓을 한 것만 같다.
머리카락이 다시 자랐지만 아직 두부 절개 수술 흉터가 보인다.
난 잘 지내, 그가 말한다.

“그리고 1968년부터 1976년까지의
기간 내내 푸른 인광을 발하는 성자(聖者)들로 각인된 젊은이들,
용감한 동성애자 젊은이들.
시간의 터널에서처럼,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불쑥 나타나는 구멍,
시(詩)와 역경에 감연히 맞선 게이 청년들-그 누구보다 더 용감한!-의 형이상학적 구멍.
그러나 1976년이고 다리오 갈리시아의 머리에는
지워지지 않는 두부 절개 수술 자국이 있다.
– 로베르토 볼라노, <문병> 중에서,

닫힌 문 뒤엔 무엇이 있는가. 열고 나온 문 앞에는 어떤 길이 있는가.
이 길은 어디에서 끝나는가. 그 곳엔 어떤 문이 있는가.
그 문은 어떻게 열어야 하는가. 새로운 문이 있다는 것은 누가 알려주는가,
기억이 남아있다면, 우리에겐 닫힌 문이 있었음을 알 것이다.

9. 파벨 유라체크 & 얀 슈미트 Pavel Jurácek & Jan Schmidt 조제프 킬리안 Postava k podpirani Aka Joseph Kilian 1965

검은 색의 변증법이란 것도 있을까.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투사 알랭 바디우는 그런 것이 있다고 강변한다. 그가 검은 색의 변증법을 검증하고자 택한 것은 깃발이다. 항복을 뜻하는 백기의 하얀 색, 러시아혁명을 파괴하고자 했던 백군의 흰 깃발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검은 깃발은 어떤가. 검은 깃발의 검은 색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슬람국가의 검은 깃발, 파시스트의 검은 깃발은 검은 색의 어두움을 보여주지 않는가. 그것은 허무주의적인 자기파괴의 색이다. 아나키스트의 검은 깃발 역시 떠올려 보아야 한다. 그것은 형제애적인 열정과 불의에 대한 들끓는 반항을 보여주지 않는가. 그렇다면 검은 색은 어떤 색인가. 그리고 바디우는 그답게 이렇게 선언한다.

“반대자들을 융합하고, 스탈린의 붉은 색과 아나키스트의 검은색과 파시스트의 검은색을 동일시하는 오늘날 유행하는 전형에 대해, 우리는 검은 색의 내적 변증법을 맞세울 것이다.”

그는 검은 색은 변증법으로 이해 둘로 나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나 정치적 상징으로서 검은 색은 완전히 둘로 나뉜다. 검은 색은 변화에 대한 희망을 잃은 자들의 허무주의의 색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열정과 우애의 색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검은색은 언제나 모호하고 불안정하다. 그것은 결국 다른 색으로 전환된다.”

그렇다면 검은 색은 어떻게 분열하는가. 검은 색은 “조급하고도 살인적인 허무주의와, 조직화의 확산에 기초하는 끈기라는” 방식으로, 본질적으로 분열한다. 그리고 후자가 바로 붉은 색이 되는 검은 색이다. 그리고 바디우는 요약한다. “허무주의적인 검은색-검은색이 있고, 공산주의적인 검은색-붉은색이 있다고 말하도록 하자.” 깃발에 관한 아름다운 에세이. 그러나 우리는 우울하다. 끈기 있는 두더지처럼 우리는 세계를 무너뜨릴 굴을 파기보다는 화려하고 열정적인 허무주의적인 파괴의 열정에 유혹되는 듯 보인다. 오늘 혁명은 테러에게 자리를 양보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거를 잊지 않는 자는 꿈속에서 붉은 깃발을 볼 것이다. 검은 깃발을 붉은 깃발로 바꾸어야 한다.

10. 두산 마카베예프 Dusan Makavejev 정오에 목욕하는 고릴라 Gorilla Bathes at Noon 1993

시간은 자신의 시간을 사느라 지쳤는지 잠시 쉬고 있는 눈치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간은 이제 더 이상 오지 않는다고 소문을 내는 이들이 있다.
또는 과거는 과거이고 오늘은 오늘이라는 자들이 있다.
새로운 세상이 왔는데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새로운 세상의 새로움에 눈뜨지 못한 이들이 있다고 흉보는 이들이 있다.
잠든 시간을 깨워야 한다. 모든 시간 안에 잠들어 있는 영원한 것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만약 산 자들이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면 죽은 자들이 대신 싸우는 것은 어떨까.
산 자들은 희망의 미래를 잊은 지 오래이다. 그렇다면 죽은 자들이 아직도 이뤄지지 않은 그들의 미래를 위해 싸울 수 있지 않을까. 과거가 박물관에 감금된 신기한 구경거리가 아니라면, 과거는 아직 여기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다. 미래의 고고학자들은 과거에서 미래의 씨앗을 찾는다.

깃발은 내려간다. 그리고 다른 깃발이 올라간다.
패배하고 투쟁하라. 다시 패배하고 투쟁하라. 잘못을 비판하고 다시 투쟁하라.
적이 사라지자 나의 적은 내가 되었다.
나의 적은 시간을 잊은 채 현재 속에 꼭꼭 숨은 나이다.

11. 장-뤽 고다르 & 장-앙리 로제 Jean-Luc Godard & Jean-Henri Roger 대영제국의 소리 British Sounds 1970

“전쟁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전쟁을 전쟁에 대립시키는 것, 반혁명적 전쟁을 혁명적 전쟁과 대립시키는 것, 민족적 반혁명 전쟁을 민족적 혁명 전쟁과 대립시키는 것, 반혁명적 계급전쟁을 혁명적 계급전쟁과 대립시키는 것이다. 투쟁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희생이 따르고 죽음은 흔한 일이다. 전 세계 인민은 지금 세계 전쟁이 일어날지를 두고 토론 중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정신적인 준비를 갖추고 분석을 수행해야만 한다. 물론 원자 폭탄은 대량학살의 무기이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는 인민에 의해 결정되지 한 두 형태의 무기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다. 이데올로기적 교육은 위대한 정치 투쟁을 위해 당 전체를 통일시킬 때만 헤아릴 수 있는 핵심 연결고리이다. 계급이 엄존하는 사회에서, 계급투쟁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계급 없는 사회에서, 새로운 것과 낡은 것 간, 진실과 허위 간의 투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피억압 민중과 민족은 자신의 해방을 위한 희망을 제국주의와 그 종들의 아량에 맡겨서는 안 된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단결을 강화하고 투쟁 속에 이를 지켜냄으로써만 승리할 것이다. 우리에겐 비판과 자기비판이라는 마르크스-레닌주의적 무기가 있다. 우리는 나쁜 습속은 제거하고 좋은 습속은 지킬 수 있다. 투쟁하라, 패배하라, 다시 투쟁하라, 다시 패배하라, 승리의 때까지 다시 투쟁하라. 그것이 인민의 논리이다. 인민의 민주적 독재는 노동계급의 지도를 요한다. 왜냐면 노동계급이야말로 가장 너른 시야를 지녔고, 가장 헌신적이며, 가장 혁명적이기 때문이다. 대중이야말로 진짜 영웅이다. 대중은 한없이 창조적 힘이다.” – 영화의 대사 중에서

12.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Krzysztof Kieslowski 상처 Blizna AKA The Scar 1976

그대는 말한다. 우리의 일은 어렵다고
어둠이 깊어가고, 세력은 약화된다고
이제, 여러 해 동안 작업했지만
우리는 처음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적들은 전보다 힘이 더 세고
적의 힘은 더 커진 듯이 보이며, 결코 이길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그러나 우리는 과오를 저질렀으니, 이것은 부인할 수 없다고,
우리의 수는 줄었고
우리의 구호는 혼란스러우며, 우리가 사용하는 말의 한 부분을
적들은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왜곡했다고.

우리에게 행운이 따라줄 것인가?
그렇게 그대는 묻는다. 그대 스스로의 답변이 아니거든
그 어떤 대답도 기다리지 마라.
– 베르톨트 브레히트, 흔들리는 사람에게 중에서

그렇다, 어쩌면 우리가 기대하는 그 사람은 바로 우리일 것이다.
우리가 기다리던 그 사람은 바로 우리이다.

_서울시립미술관 <타이틀매치> “흔들리는 사람들에게>를 위한 전시 참여 파트, ‘기억-인터내셔널>의 영상 작업을 위해 쓴 텍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