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4. 23.

– 왜 이렇게 마음이 수상한지 모르겠다. 중독되거나 몰입되거나 하는 이상항진상태에서 살았던 몇 해 동안의 삶의 여독인가. 문득 며칠전 글을 읽다 생각난 것이 떠오른다. 요즘 한참 자기강화, 자긍심 따위를 떠들어대고 장려하는 사회적 변화를 살피다가 의존증후가 미국인의 최대의 악폐라는 이야기를 접했다. 곰곰이 살피니 비단 미국의 일만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심지어 나 역시 그런 의존증후에 시달린다는 확신이 든다.
– 알콜중독인 남편에게 시달리면서도 더욱 그에게 매달리는 아내들을 두고 의존 증후라고 한단다. 제 정신으로 보면 제게 이로운 것이 뭔지를 헤아릴 줄 모르고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들에게 자주 떠넘기는 비난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긍심도 부족하고 자기를 강화시키려는 의지도 빈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난 그런 “자긍심과 자기강화에의 의지”를 탈근대적인 자아를 조성하는 또다른 권력에의 의지의 변종이라고 본다. 차라리 난 그런 사람들을 모질지 못한 사람이라고 위로할 것이다.
– 의존증후는 사실 자신의 피해와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는 왜곡된 희생이 아니라 어떤 윤리적 선택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복종하려는 욕망은 지배의 결과를 계산하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배가 있어 복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이 고안해 낸 덫에 타인을 지배의 위치에서 자리잡도록 꾀어내는 것은 아닐까. 매를 맞으면서 함께 사려는 강한 욕망을 굽히지 않는 것, 그것이 거래하는 무엇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내어야 옳지 않을까.

–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던 소설의 어느 귀퉁이에서 뻔한 말 한토막에 정신이 욱신거렸다. “속 깊은 대화”라는 글귀였는데, 그게 돌부리처럼 눈에 채였다. 그리고 혼자 속 깊은…속 깊은….을 뇌였다. 내가 언제 누구와 속깊은 대화를 나눴었지… 가물하기도 하려니와 숫제 전혀 내 생애에 그런 일은 없었던 듯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몹시 슬펐다.

6 thoughts on “2004. 4. 23.”

  1. 글이 찌릿하네요. 뭔가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을 건내고 싶습니다만, (감히) 그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네요. 사실 제가 ‘잘 ‘이해했는진 모르겠지만요.

  2. 이해가 어딨겠습니까..찡하게 通했겠지요. 그렇다면 M님도 “속”이 위중한?….언제 함께 술잔이나 나누며 얼굴이나 쳐다보죠. 전 요즘 얼굴이나 쳐다보며 술 먹는게 제일 좋더라구요.

  3. 의존증후하면 23년간 저희 집 사정이 생각나요.차라리 지금 현재는 아버지는 아버지나름대로 원하는 생활하고,저희는 저희나름대로 안정되게 살고있으니까요.일종의 악몽같기도한데,가끔씩 발목을 부여잡고 놓아주지않는 상흔처럼,여전히 지배받는다는 생각이 드네요.

  4. 버나드, 오랜만이네. 신세를 갚으려해도 머쓱하고 不忠한 내 소심함 때문에 변변히 굴지 못하고. 미안해. 네가 준 책에 실린 일러스트, 재밌고 훌륭했는데, 그걸 선뜻 치하하지 못하는 내 쫀쫀함 알겠지? 명진출판은 내가 덜컥 소설을 쓰겠다고 계약을 했다가 계약금 변제하느라 톡톡히 고생한 악연의 출판사인데..후후. 음울한 가족사야, 우리 모두의 마음의 문신이니까 너무 우울해 하지 말어. 가족사를 자신을 옥죄는 일차적인 악몽으로 기억하는 건 버나드와 내가 함께 했던 어떤 시대의 폐쇄회로였을거야.

  5. 고마워요. 말씀 안주셔도 그저 웃는 얼굴보는 것만으로,오빠 글쓰시는 모습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전 족한 걸요. 명진출판과 그런 인연이 있었다뇨.^^ 전 유명 s모출판사와 눈물나는 악연이 있었답니다.후일 술자리에서 말씀드릴께요.
    더불어 뒤늦게나마 생일 축하해요.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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