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튀세르와 푸코: 부재하는 대화


Phoenix – One Time Too Many

푸코와 알튀세르의 정치적 유물론의 분기

“마오가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처럼. ‘결코 계급투쟁을 잊지 말자‘”

1. 대화와 토픽
아마 서로를 읽지 않은 채 혹은 서로에 대한 무지 속에서 고요하게 침묵이란 거리를 왕래하며 주고받은 대화, 그런 희귀한 사례를 꼽자면 푸코와 알튀세르의 ‘부재하는 대화’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둘은 가끔 이곳저곳에서 서로를 언급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본을 읽자’의 영어판을 위한 글에서 알튀세르는 푸코가 자신의 제자였음을 언급하며 그가 자신의 개념들을 빌어가 다른 방식으로 전용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때의 푸코는 도미니크 르쿠르가 “프랑스 인식론의 계보”라고 지칭한 캉귈렘, 바슐라르 등에서 푸코로 이어지는 독특한 합리주의적 인식론의 계보 위에 서있는 푸코이다. 이때의 푸코가 이 글에서 다루게 될 이른바 통치성 분석 시기의 푸코와 그리 거리가 먼 것은 아니지만 둘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를 쓸 때의 알튀세르(이 글은 1970년에 발표되었다)가 얼마 후 근대 국가의 계보학을 분석하며 자신의 이론적 기획에 대응하는 작업을 진행하게 될 푸코를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푸코 역시 알튀세르를 언급한다. 그렇지만 이때의 알튀세르는 한 명의 고유한 철학자, 이론가의 이름 속에서 소개되는 것은 아니다. 스탈린주의적 공산당의 공식 이론과 거의 동일시된 마르크스주의를 언급하고, 반복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힐난할 때 그 때 푸코가 상정하는 마르크스주의는 어떤 구체적인 인용과 출처 없이 그저 모두들 인정하고 있는 관용적인 마르크스주의이다. 그리하여 그는 근대적 에피스테메에 속한 한 명의 지식인으로서의 마르크스와 정치적인 당의 공식적인 교의로서의 마르크스주의를 애써 구분한다. 예컨대 ‘감시와 처벌’에서 빈번하게 인용되는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주의 없는 마르크스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렇지만 그런 주의는 흥미롭게도 알튀세르를 향해 마련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주체의 탈중심화를 이룬 세 명의 이단적 철학자들로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를 꼽을 때, 그 때의 마르크스는 분명 알튀세르에 의해 “실천들의 접합의 이론가”로 변모된 마르크스라고 할지라도 그 때의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이름 뒤에 가려져 있다. 따라서 알튀세르는 푸코가 상대하는 직접적인 이론적인 상대자로서 출현하지는 않는다. 푸코가 여러 자리에서 언급하는 푸코는 프랑스 지성사의 풍경 속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인격화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초상 속에 갇혀있을 뿐이다.
따라서 표면적으로 부재하는 둘 사이의 대화를 중계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허구적인 무대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두 이론가가 서로를 전연 참조하지 않으면서 혹은 서로에 대한 무지 속에서 대화하는 이론가들이었다고 볼 수 있으려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면서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해 가면서도 그러나 둘이 같은 무대에 서 있었다고 한다면, 이는 두 이론가가 공유했던 주제 혹은 두 사람 모두 애호했던 용어인 토픽을 떠올릴 수도 있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국가일 것이다.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를 떠난 알튀세르를 상상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물론 그의 모든 이론적인 성과가 이 논문에 집약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람시라는 예외적인 인물을 제외한다면 마르크스주의 안에서 국가 이론을 사유하고자 시도했고 또 무엇보다 자유주의적인 정치이론의 바깥에서 국가의 위치를 헤아리며 프롤레타리아트 정치의 조건을 탐색했던 투사적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이 알튀세르였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또한 마침내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폭발하였음을 단언하며 그것의 두 가지 공백 혹은 약점이라는 것을 폭로하였던 이도 역시 알튀세르였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 안에는 국가이론과 계급투쟁 조직의 이론, 다시 말해 당과 노동조합에 관한 이론이 없음을 고발하였다. 그럼 과연 그에게는 국가 이론이 있었을까.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것이 생겨날 수 있는 어떤 실마리를 가지고 있었을까. 아니 더 나아가 과연 국가 이론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알튀세르와 마주할 때 그런 물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한편 푸코는 어떠한가. 푸코에게 국가에 관한 이론이 존재하는가. 물론 이런 질문은 국가 없는 정치에 관한 이론을 창안하려 했던 인물로 푸코를 읽어 온 독자들에게는 엉뚱한 물음일 뿐 아니라 궤변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지만 1970년대 후반 흔히 통치성 분석으로 알려진 시기의 푸코, 내가 자유주의 분석 세미나로 불러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시가의 푸코는, 역설적으로 거의 집요하리만치 국가에 매달린다. 물론 여기에서의 국가란 사회적인 것 속에서 점점 사라지다 종내 자취를 감추게 되는 국가라 할 수 있다. 또는 통치(government)라는 범주를 통해 국가와 사회,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시장과 국가 같은 모든 이분법을 해소하면서 권력의 사회물리학이란 것으로 내재화되어버리는 국가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지금 거의 유행처럼 관심이 집중되는 이 시기의 푸코의 작업은 실은 국가란 개념 없이 정치를 사고하려는 시도였으며, 권력의 내재적인 작용을 제외한다면 그 위에서 혹은 초월적이면서도 매개적인 심급으로서 작용하는 어떤 위치도 배제하는 정치적 운동에 대한 사고의 기획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둘 사이의 이론적 대화를 성사시킬 수 있는 주된 이론적 계기 가운데 하나가 “자유주의 국가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 모두 근대 국가의 정체성을 밝히는데 집요하리만치 천착했다. 무엇보다 자유주의적인 주권적 법 담론이 표상하는 국가와 대결하고자 분투했다는 점에서 둘은 일치한다. 근대 국가의 계보학을 탐색하기 위한 시도였던 푸코의 “통치성”과 관련한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란 역시 오해와 추문에 시달려야 했던 알튀세르의 글 모두 자유주의적 국가를 상대한다. 푸코에게서는 주권적인 권력 개념을 넘어 생권력을 조직하고 운용하는 장치로서의 국가가 문제였다면 알튀세르에게 있어서는 법 이데올로기의 환상을 넘어 개인을 주체화하는 국가 장치가 문제였다. 그렇지만 이런 자유주의 국가 비판의 기획은 동시에 정치의 유물론이라 할 만한 것을 사유하는 이질적인 기획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이론적이면서도 정치적인 질문들을 끌어들인다. 나는 이 글에서 그 가운데 몇 가지를 발견하고 또 대조하는 데 만족하고자 한다.
2. 국가의 통치화 혹은 국가의 사회화
먼저 알튀세르의 독자로서의 푸코에서부터 시작하여 보도록 하자. 어쩌면, 푸코가 자신의 권력 이론을 알튀세르의 국가이론과의 거리 속에 위치 짓고 또 그로부터 자신의 권력이론이 갖는 특장을 사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은 주장은 우리에게 어쩔 수 없이 알튀세르를 상기시킨다.
“권력에 대한 연구의 방향을 주권의 사법적 구조물이나 국가의 장치, 또는 국가에 수반되는 이데올로기 쪽으로 자리를 잡지 말고, 지배(이것도 주권이 아니라)나 물질적인 장치, 예속의 형태 혹은 이 예속의 국부적 체계의 사용과 결합, 그리고 마지막으로 앎의 장치 등의 측면에서 분석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강조는 인용자)
여기서 분명 푸코는 주권이나 국가장치와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난 권력의 분석을 제안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가 알튀세르와의 거리 속에서 자신의 권력론을 제안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곧 살펴보게 되듯이 우리가 생각키에 푸코가 취하게 될 알튀세르와의 거리라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마치 이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개념과 어휘로, 다른 자리에서 말하는 알튀세르가 푸코가 아닐까 하는 착각에 이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토록 다른 두 이론가가 어떻게 그토록 유사한 모습의 인물로 비쳐질 수 있는지 그려내는 일이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토록 다른 것으로 가정되었던 두 종류의 사고가 어떻게 서로를 반향하는 모습 속에 놓이게 되었는지를 반추하며 두 사람이 함께 곤구하였던 물음을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것이다.
그럼 에두르지 말고 바로 나아가자. 출발점은 푸코, 그 가운데서도 그가 근대 권력의 분석을 위해 제기한 이론적 프로그램이라 할 통치성(governmentality)이 될 것이다. 통치성은 18세기 이후 전개된 근대 국가의 전환을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적 탐침이다. 이를 완결적이고 정합적인 ‘이론’으로 규정하기엔 어렵다. 외려 우리는 통치성이 “근대 국가의 계보학”적 분석을 위해 도입한 잠정적인 방법 혹은 그의 접근 방식을 이끌어 가는 이론적인 프로그램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푸코 스스로 언급하듯이 그가 착수했던 이론적인 기획, 즉 ‘사법-정치적’담론을 벗어나 혹은 ‘철학-법률적’담론을 벗어나 권력을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발견하겠다는 전망은 통치, 통치성 분석을 거치며 의미심장한 변화를 겪는다. ‘감시와 처벌’을 출간하고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란 이름으로 묶인 세미나를 진행할 즈음까지 푸코가 지속했던 권력 분석은, 통치성이란 기괴한 개념과 더불어 새로운 전환을 이루게 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푸코의 이런 전환을 『통치성』이란 이름으로 따로 소개하며 영국을 중심으로 일군의 학자들이 통치성 학파란 그룹을 형성하도록 자극한, 1977-78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인 ‘영토, 안전, 인구’ 중 1978년 2월 1일 강의를 통해 푸코 스스로 요약한다.
이즈음까지 푸코의 권력에 대한 접근은 권력에 관한 사법-정치적 담론 혹은 권력에 관한 주권적 모델로부터 벗어나려는 끈질긴 노력이라 볼 수 있다. ‘감시와 처벌’을 전후하여 푸코가 전개한 권력에 대한 ‘바깥으로부터의 사고’라는 접근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세미나를 전후하여 이른바 “니체의 가설(Nietzsche’s hypothesis)” 혹은 정복과 전쟁의 모델이란 관점으로 모아진다. 푸코가 “역사-정치적 담론”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런 관점은, 주권(혹은 권리)과 법이란 관점에서 권력을 인식하는 자유주의적 정치철학(“리바이어던의 모델”)과도 거리를 두는 한편 권력의 기원적인 중심으로서 경제를 가정하고 계급지배란 관점에서 사고하는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이를 푸코는 “왕의 목을 자르기”라는 유명한 경구로 표현하기도 하였다(“군주를 하나의 환영, 도구 아니면 기껏해야 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담론이다. 이것은 결국 왕의 목을 자르는 담론이고, 군주 없이 혹은 군주를 비판하며 행해지는 담론이다”. 여기에서의 왕이란 봉건적 군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군주이든 아니면 사법적으로 권리의 평등을 보장받은 근대적 시민이든 법률을 통해 코드화되고 또한 그를 통해 보장되거나 제재 받는 권리의 주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왕이란 사법-정치적 담론을 압축하는, 다시 말해 권력을 사고하기 위해 언제나 선험적으로 가정되는 권력의 모델이자 정치적 주체의 이상(理想)이라 할 수 있다.
….[중략]….
3. 알튀세르 이후의 푸코
1) 사회적인 것의 이론: 국가의 통치화 혹은 사회효과
이즈음에서 우리는 푸코와 알튀세르 사이에 놓인 거리를 측정하여 볼 수 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놀라우리만치 유사한 주제들을 두 이론가가 어떻게 달리 분석하고 전개하며 자신의 이론적 관점 속에 위치 짓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각자가 어떻게 마치 서로를 이론적 대화자로 가정하며 서로에게 반대하거나 혹은 찬성하면서 자신의 개념들을 제시하는지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른다. 푸코가 국가의 통치화를 분석할 때 즉 근대의 지배적 통치성인 자유주의가 어떻게 사회의 발생을 가능하게 했는지 분석하고자 할 때, 알튀세르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사회효과”를 생산하는지 분석하고자 했을 것이다(사회적인 것의 발생의 이론). 푸코가 주권자-신민의 짝이 어떻게 사목권력 이후 목자-양떼의 관계로 변화하며 자유주의적 통치 속에서 권력의 대상이 되는 인간은 “행실의 통솔”을 받는 주체가 된다고 했을 때, 알튀세르는 근대 자본주의적 국가가 어떻게 개인을 “호명”하며 주체를 만들어내는지 분석했을 것이다(주체화의 이론). 푸코가 안전기구란 것을 통해 국가는 초월적인 의지나 외적인 사법적인 명령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작동하는 다양한 제도, 관행, 규칙에 다름 아니라고 분석했을 때, 알튀세르 역시 국가란 다름 아니라 국가장치라는 물질성 속에 존재하며 억압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이런 장치들을 통해 존재한다고 분석했을 것이다(장치의 유물론). 그리고 기타 등등. 어쩌면 알튀세르와 푸코를 모두 꼼꼼하게 읽은 이들이라면 내가 찾아낸 것보다 많은 유사점을 발견하고 그 목록을 열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이에 그치자. 그리고 이 유사점의 범위 안에서 둘을 가르는 ‘정치’의 장소를 찾아보도록 하자.
먼저 푸코의 국가의 통치화와 알튀세르의 자본주의의 사회효과란 개념에서 출발하도록 하자. 푸코는 통치성이란 개념을 도입하며 근대의 권력 메커니즘의 특성을 분석하면서, “우리의 근대성 즉 우리의 현재에 있어 중요한 것은 국가에 의한 사회의 장악(étatisation)이라기보다는 내가 국가의 통치화라 부르고자 하는 것”이라는 유명한 명제를 제시한다. 그가 말하는 국가의 통치화란 단적으로 근대에서 권력이 관리하고 지배하는 대상은 무엇인가란 문제를 가리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권력이 행사되는 그 대상은 고안되고 조직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고안되고 조직된 대상의 이름은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푸코의 주장을 더욱 밀고나가면 근대 복지국가의 발생을 분석하는 자크 동즐로의 저서 제목처럼 “사회적인 것의 발명”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아마 다음과 같은 푸코의 서술은 이를 요약적으로 제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믿기에 시민사회란 통치 테크놀로지에 관한 개념, 혹은 외려 그 합리적인 수단이 생산과 교환 과정으로 이해되는 경제에 사법적으로 고정되어야(pegged) 하는 통치 테크놀로지의 상관자이다. 시민사회란 문제는 경제구조(économie économique)에 고정된 통치성의 사법적 구조(économie juridique)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시민사회 – 곧 사회로 불리고 18세기 말에는 국민(the nation)이라 지칭될 – 는 통치 실행과 통치기예, 이 통치기예의 반성 그리고 통치 테크놀로지에 있어 자기-제한을 가능케 해준다. 그것은 경제 법칙도 권리의 원리도 침해하지 않는, 통치의 일반성이라는 요건도 통치의 편재성에의 필요도 침해하지 않는, 자기-제한을 가능케 해준다. 편재하는 통치, 그 무엇도 피해갈 수 없는 통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의 특수성을 존중하는 통치가 시민사회, 국민, 사회, 사회적인 것을 관리하는 통치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푸코는 시민사회 혹은 사회라는 것이 자유주의가 창조한 현실임을 역설한다. 주권적 주체와 경제적 행위자들을 모두 포괄할 수 있지만 그 어느 하나를 다른 하나로 환원하지 않으면서, 권리의 규칙에 따라 경제적 행위자로 채워진 공간을 통치하기 위해 근대 자유주의 통치성이 창안한 국가의 상관자, 참조대상이 사회라는 것이다. 이는 자유주의가 시장이나 정치경제학적 원리에 따라 사회를 통치한다는 관점으로 오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푸코는 경제가 국가의 통치 원리로 직접적으로 번역될 수 있다면 실은 계획경제나 국민경제와 같은 것을 초래하는, 즉 자유주의와 오히려 반대되는 결과로 나아가게 될 것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시장만능주의로서 이해되곤 하는 자유주의는 실은 중상주의적인 국가이성에서처럼 전제주의를 가능케 하는 자유주의의 반대항일 뿐이다. 이 때문에 푸코는 자유주의가 국가에 대하여 “외재성과 내재성의 복잡한 관계에 놓인 사회”를 가정하면서 자신의 통치를 합리화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에 따를 때 사회란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현실”이 아니라 근대 통치 테크놀로지를 형성하는 부분이 된다. 사회란 자유주의라는 통치 테크놀로지, 경제적 과정의 특유성에 고정되는 한에서의 자기제한을 목표로 하는 통치 테크놀로지와 전적으로 상관적인 ‘교류적 현실(transactional reality, réalités de transaction)’로서 발생한다. 그렇기에 푸코는 “경제적 유대를 넘어서면서 순전히 사법적으로도 되지 않는, 사회적 관계 및 개인들 간의 유대를 구성하는 집합적이고 정치적인 단위의 영역”, “경제적이지도 사법적이지도 않은 유대”, “사회적 유대의 유기적 성분으로서의 통치 및 권위형식의 유기적 양상으로서의 사회적 유대”로서 사회를 정의하게 된다.
이 때 경제와 사회의 관계는 통치와 관련하여 사회가 자신에게 행사되는 권력을 평가하기 위한 일종의 가늠자로서의 경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회적 현실 밑에 속한 하부적 현실로서의 경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사회의 부분으로서의 경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통치가 이뤄질 때 그것이 자신의 한계를 검토하기 위해 준거하는 것으로서의 경제가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푸코는 자유주의적 통치성이 “이해관심의 경제적 주체라는 총체화할 수 없는 복수성과 사법적 주권자의 총체화하는 통일성 사이의 본질적인 양립불가능성을 정식화하면서 그 근대적 형태를 획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경제적 인간과 사법적 주권자 사이의 거리를 생산하고 또 역으로 조정하는 것이 자유주의적 통치란 것이다. 이해관심에 따라 행위하는 경제적 인간과 사법적 의지에 따라 행위하는 주권적 주체는 서로 환원할 수 없는 이질적인 주체이다. 그렇지만 푸코는 이 두 주체의 거리를 조절하고 하는 통치의 원리가 바로 자유주의라고 말한다. 권력이 국가의 제도와 법을 통하여 사회에 대하여 행사될 때 그 통치가 적절하고 유용하며 정당한 것인지를 가늠하기 위한 원리가 경제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푸코가 말하는 경제와 사회의 관계는 사회의 이중화, 즉 권력의 대상으로서의 사회가 자신을 향해 행사되는 권력을 평가하기 위하여 항상 “지나치게” 통치하는 국가의 권력을 평가하고 사정하기 위하여 경제를 끌어들이는 권력의 자기제한 혹은 자기비판의 원리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알튀세르가 ‘자본을 읽자’에서 제시한 “사회효과(society effect)”란 개념에 주목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효과란 개념은 자본주의를 역사철학적 목적론 외부에서 사유하기 위해 알튀세르가 도입하는 개념이다. 알튀세르는 자본주의가 영구적인 것도 역사의 최종적인 단계도 아닌 역사적인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즉 자본주의의 역사적 한계와 공산주의로의 필연적인 이행을 보여주는 역사철학적인 텍스트로 ‘자본’을 읽는 것에 반해, 역사적 현재의 관점 속에서 자본주의를 인식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연구한 것은 역사적 생산물의 결과를 하나의 사회로서 존재하게 만드는 이 메커니즘이다. 따라서 이 역사적 생산물, 즉 정확히 말해 그가 연구하는 사회생산물에 대해 이 결과를 하나의 사회로서(모래언덕, 개미집, 작업장 또는 단순한 인간의 집합 등과 같은 것으로서가 아니라) 존재하도록 만들어주는 ‘사회효과 society-effect’를 생산하는 특질은 부여해주는 메커니즘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사회를 그 생성에 의해 설명한다면 그 ‘몸’, 즉 설명되어야 하는 바로 그것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말할 때, 그는 어떤 특정한 결과가 사회로서 기능하게 되는 메커니즘,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고유한 사회효과를 생산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작업에 그의 이론적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 사회효과의 생산 메커니즘은 그 메커니즘의 모든 효과가 다음과 같은 정도로 구명될 때에만 완벽하다. 개인들이 하나의 사회로서의 사회에 대해 맺고 있는 구체적,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관계를 구성하는 제 효과의 형태로 그것이 생산될 수 있을 정도로, 즉 사람들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그들의 생활, 사업, 행동, 태도, 기능 등을 사회적으로 그 속에서 수행하게 되는 이데올로기의 물신성의 효과(또는 ‘사회의식의 형태들’, ‘정치경제학비판 서문’)에 까지 도달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런 관점에서 ‘자본’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의 사회효과의 생산메커니즘에 대한 이론으로 간주되어야만 한다. 현대의 사회효과는 다른 다양한 생산양식과는 상이하다는 점을 이해하기 시작한다.”(강조는 원문)
방금 길게 인용한 글에서 우리는 푸코와 유사하게 사회의 발생 혹은 사회-효과를 말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여기에서 알튀세르가 말하는 사회-효과란 ‘자본’에서 마르크스가 말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규정하기 위한 일종의 인식론적인 비평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여기에서 자세히 말할 수 없겠지만 알튀세르는 자본주의가 영원한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 생산물이란 입장에서 자본주의의 역사성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그것이 공시적으로 어떻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하나의 사회로서 지각되고 체험되는지를 분석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마르크스주의가 자본주의의 역사적 한계를 드러내고 공산주의로 필연적으로 이행한다는 역사주의적 인식론을 비판하면서, 사회적 관계에 관한 과학, 서로 다른 기원과 역사를 갖는 자율적인 여러 심급들이 접합하여 어떻게 사회를 구성하는지 분석하여야 한다는 인식론적인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렇지만 사회-효과란 개념을 굳이 인식론적인 비판이란 목표에 제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알튀세르가 사회-효과로 지적하는 것은 실은 (정치)경제학 비판이란 기획과 상관이 있음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자본’에 대한 부르주아적 독해에 맞서 즉 노동자계급의 정치경제학 혹은 자본주의생산양식의 정치경제학으로 읽는 방식에 맞서 알튀세르는 “계급투쟁은 ‘자본’을 이해하기 위한 ‘결정적인 고리’다”라고 역설한다. 따라서 경제가 다른 사회적 사실들을 결정한다는 것을 밝히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와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 “생산과 교환(경제) 활동을 두고, 다른 한편에는 사회계급들, 정치투쟁 등을 두어 양자를 분리시킨 부르주아적 환상을 철저하게 비판”하고, “생산·유통·자본 분배의 제 조건들(그러므로 소위 정치경제(학) 전체)이 사회계급들의 존재와 계급투쟁에 의해 지배되고 침투되어 있음을 증명하고자”한 것이 마르크스주의라는 것이 알튀세르의 주장이다. 따라서 푸코가 이른 분석의 끝에서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경유하여 반대의 반향으로 나아간다.
그는 경제를 통한 사회의 결정 혹은 경제와 다른 사회적 현실의 구분에 근거하여 사회적인 것을 분절하는 것, 다시 말해 사회효과를 비판한다. 순수한 생산도, 순수한 경제학도 없으며 생산관계와 더불어 적대적인 계급들이 생산과정에 존재하고 이 생산관계가 존립할 수 있는 조건을 재생산하기 위해 부르주아지는 다양한 “물질적·이데올로기적·정치적 조건들”을 영속화시키거나 재생산하여야 한다. 따라서 알튀세르가 제시한 ‘사회효과’란 ‘자본’의 독해를 통해, 정치경제학은 경제적 현실에 관한 과학이란 주장에 개입하면서 잉여가치(보다 정확히는 잉여노동)란 개념에 준거하여 제기하며 적대의 장소로 경제적 실천의 공간을 고발하는 것, 나아가 자본의 자기운동 안에 존재하는 모순적 경향 즉 자본의 추상성과 노동의 구체성을 대비시키며 자본은 자신이 순수한 경제적 대상으로 상대하는 노동력이란 것이 항상 이미 계급투쟁의 효과이자 적대를 억압하는 데 달려있음을 밝히는 작업에 다름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알튀세르가 강조하는 ‘사회구성체’란 개념이 푸코의 사회적인 것의 발생과 어떻게 대응하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푸코는 정치경제학이 자연스러운 실체로서의 사회란 대상을 고안하며 어떻게 근대 (자유주의) 국가가 권력을 행사하는 대상과 범위, 도구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를 역설한다. 이 때 푸코가 말하는 것은 경제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의 숨겨진 본질이라는 뜻이 아니라 근대 국가가 어떻게 규범과 그의 연장으로서의 법, 그리고 다양한 장치들을 통하여 어떻게 권력이 행사되는 대상을 “폐쇄”할 수 있었는가를 획정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은밀한 푸코의 독자인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자면 “행정관리(police)”와 “본연의 정치”를 구분한다면, 적대 없는 세계의 관리로서의 권력의 행사와 권력의 작용을 가능케 하는 근본적인 부정성(다시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자면 사회 안에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사회적 성원의 부정적인 자리, 즉 “몫 없는 자의 몫”)을 분간한다면, 푸코가 관심을 두는 것은 바로 그 랑시에르적인 의미에서 본래의 정치가 없는 정치, 사회의 발생과 관리로서의 정치(통치)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본연의 장치를 가능케 하는 “쟁송(mésentente, dissensus)”에 대응하는 알튀세르의 개념은 당연히 계급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
2) 통솔인가 호명인가: 주체화의 이론
앞서 인용한 ‘자본을 읽자’의 인용에서 알튀세르는 “개인들이 하나의 사회로서의 사회에 대해 맺고 있는 구체적,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관계를 구성하는 제 효과의 형태로 그것이 생산될 수 있을 정도로”사회효과가 설명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사회와 맺는 개인들의 (상상적) 관계가 곧 이데올로기란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리고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서 바로 이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다. 이것이 바로 국가에 의한 개인의 주체로의 호명이라는 이데올로기론이며 또한 그것을 가능케 하는 물질적 장치로서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론이다. 당연히 이에 대응하는 푸코의 이론은 주체화의 이론으로서의 통치성 이론에 내장된 국가에 의한 “행동방식의 통솔”이다. 여기에서 푸코가 말하는 국가란 알튀세르가 말하는 국가장치와 같이 다양한 요소들로 결합된 장치들의 네트워크(푸코가 제안한 개념을 따르자면 사목의 역할을 계승하며 주민 혹은 인구의 생명을 살피는 “안전기구(apparatus of security)”들로 현실화되는 국가이다. 더 이상 주권적인 군주나 그것을 연장하는 주권자적 국가가 아닐 때, 개인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이끌고 그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예측하며 행동양식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이런 장치들의 도움을 통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 의한 호명과 안전기구에 의한 통솔이라는 이론적인 짝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짝 안에서 우리는 장치의 유물론이라는 주권적 국가론에 대한 비판의 요소들과 권력이 행사되는 대상으로서의 주체의 형성(주체화)라는 분석,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조정하는 심급으로서의 국가라는 계기, 세 가지가 각기 대응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로부터 앞서 살펴본 사회적인 것의 발명이라는 쟁점 안에서 분기하는 알튀세르와 푸코의 차이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푸코가 통치성의 역사를 설명할 때 주요한 개념으로 선택하는 conduct란 낱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거칠게 말해 그것은 지휘, 안내, 이끎 등의 뜻과 행동, 처신 등의 뜻을 이중적으로 담고 있다. 그리고 푸코는 이것이 주권적 권력 개념을 대신하여 새롭게 등장하는 권력의 기능과 작용을 위해 기독교적 사목이 정치의 장에 도입한 가장 중요한 변화라 강조한다. 앞서 간략히 언급하였듯이 사목권력은 근대적 통치성에 계승된다. 그 때 목자란 더 이상 종교적인 인물도 교회공동체도 아닌 국가로 변형되고, 양떼의 돌봄은 통치(government)로 변형된다(영혼의 사목으로부터 인간에 대한 정치적 통치로의 이동). 이것은 종교개혁을 거치며 근대 국가가 기독교적 사목의 형태를 적극적으로 채택함으로써 이뤄지는 것이었다. 푸코에 따르면 16세기를 전후하여 시작된 이런 행동방식의 통솔이란 관점은 정치적 주권자에게 새로운 책임을 부과함은 물론 그 대상이 되는 인간을 새로운 형태로 가시화한다.
따라서 푸코는 세기와 더불어 우리는 통솔(conducting), 지도, 그리고 통치의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런 행동의 통솔이라는 틀 속에서 이뤄지는 권력의 행사가 국가를 낳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푸코는 국가가 전적으로 근대에 속하는 현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 역시 징세와 군대, 법정 등의 형태로서의 국가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함을 역설한다. 푸코가 여기에서 말하는 국가란, 푸코의 말을 직접 빌자면 “사고와 실천의 장 속으로 도입된 국가”일 것이다. 그렇게 볼 때 푸코가 말하는 주체화는 국가에 의한 통솔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국가가 직접적으로 개인들의 행위를 규정하거나 조절한다는 뜻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 새롭게 행위의 평면이 가시화된다는 뜻에서 즉 인구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관계(개인-공중, 환자-의사, 어린이-부모, 학생-교사, 노동자-자본가 등) 속에 놓여있는 개인들로서 자신의 행위가 펼쳐지는 공간을 반성할 수 있게 된다는 뜻에서의 국가, 거리를 둔 채 작용하는(work at distance) 국가일 것이다. 따라서 근대 자유주의 국가의 통치성을 통해 주체화를 분석하고자 할 때, 이를 국가의 통솔에 따른 개인의 지배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은 이는 알튀세르가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알튀세르 역시 국가권력과 국가장치를 구분하며 푸코가 말하는 장치(dispositif)와 유사한 국가장치를 내세우며 이것이 어떻게 주체화를 가능케 하는지 분석한다. 여기에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서 말하는 주체화의 논리를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푸코와 관련하여 우리가 강조할 점은 알튀세르가 마치 푸코를 선구하듯이 주체화의 과정을 국가장치에 의한 호명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알튀세르의 국가장치를 푸코의 도움을 빌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알튀세르는 가족과 학교를 비롯한 다양한 장치가 국가장치임을 설명하기 위해 그람시의 표현을 빌려 올 뿐 그에 대하여 적극적인 설명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사적인 장치들이 어떻게 국가장치로 불릴 수 있느냐는 예상할 수 있는 이의에 대하여 알튀세르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별은 부르주아적 법 내부에서의 구별이며, 부르주아적 법이 그 ‘권력’들을 행사하는 (종속된) 영역들 속에서만 유효하다”는 그람시의 말을 인용하고, 사적인 것으로 보이는 장치들 역시 국가 장치임을 ‘선제적으로’단언한다.
그렇지만 알튀세르는 그것이 국가장치로 규정될 수 있는지 보다 적극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국가를 사회 속의 하나의 심급으로 규정하지 않고 다양한 장치를 통해 실현되는 기능 속에서 파악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알튀세르는 푸코와 다르지 않다. 푸코는 사목권력을 뒤잇는 근대 국가의 계기적 형태를 분석하며, 통치란 방식으로 구체화되는 국가의 활동 방식, 개인을 주체로서 통솔하며 이를 통해 전체화면서 개인화하는 국가의 기능을 발견하고, 이를 통치성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국가가 부리는 혹은 그에 부속된 수단이 아니라 바로 다양한 장치가 실현하는 기능의 통일성이란 점에서 그것을 국가적인 장치라고 부를 수 있다는 알튀세르의 설명이 푸코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알튀세르가 “재생산”이란 관점에서 즉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재생산을 위하여 다양한 장치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수긍하더라도 그것이 국가적인 장치란 설명은 여전히 주어지지 않는다. 여기에서 우리가 억측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헤겔적인 의미에서의 국가, 즉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적대를 보편적인 표상 속으로 소외시키는 국가에 가깝다. 따라서 개인의 주체로서의 구성은 소외의 현상학이라고 할 만한 것을 분석하는 것이다.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는 현실에 대한 소외된 표상이 아니라 현실과 개인이 맺는 “상상적 관계”임을 강조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국가적인 것임을 설명하여 주지는 않느다. 이 점에서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의 국가적 성격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오히려 푸코가 말하는 국가의 통치화와 개인의 통솔이란 관점을 통해 더욱 잘 설명된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국가의 출현이 어떻게 좀 더 일반적인 통치성의 역사 안에, 권력 실천의 장 안에 자리 잡을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권력에 관해 말하면서 우리가 하는 것은, 결국 권력의 내적이고 순환적인 존재론을 발전시키는 것이라 말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관통하는 실체를 고민하는 사람, 국가가 될 이런 사물의 존재론을 발전시키는 사람은, 곧 국가를 말하고 국가의 역사와 국가의 발전을 말하는 사람이 아닌가. 국가의 지배의 방식에 다름 아니고 통치성의 형태에 다름 아니라면, 통치의 이러한 실천들이 국가를 구성하는 기반에 다름 아니라면 어떨까. 우리는 국가가 시민사회의 유기적 조직을 위협하는 일종의 냉혹한 괴물이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어야 할 것은 16세기 이래로 어떻게 시민 사회 혹은 통치화된 사회가 국가라 불리는 연약하고도 강박적인 어떤 것을 조직하였는가 하는 것이다. 국가의 수단이 통치가 아니라 국가가 통치 안의 삽화이다. 어쨌든 국가는 통치성 안의 삽화이다. 오늘날까지도.”
따라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등장과 함께 하는 통치성이라는 삽화, 국가를 사회화고 사회를 통치화하며 발생하는 근대 자유주의 통치성 속에서의 국가란 규정을 제기할 때, 푸코는 분명 알튀세르를 넘어선다.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재생산이란 관점 속에서 자신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선택하면서 동시에 그 사회관계에 예속된 주체를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기적 주체화는 “국가의 틀 내부에서, 국가의 제도를 사용하면서 사람들의 행동을 지배하는 활동으로서의 통치”라는 자유주의적 합리화에서의 국가가 만들어내는 인구-개인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알튀세르와 푸코가 모두 공유하는 한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장치의 유물론 속에서 호명과 통솔의 실천을 수행하는 장치들로서 제시되는 국가, 주체화의 이론 속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국가라는 분석 속에 그것을 초과하는 무엇이 남기 때문이다. 그것은 양자 모두 은밀히 사회를 전체화하는 계기로서의 국가란 관점에서 서있기에 불가피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불가피하게 정치의 장소란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비전체로서의 사회 혹은 정치의 유물론
먼저 아주 대담한 가설 하나를 세워보는 것이 어떨까. 가장 유물론적인 역사이론을 구성한 이론가가 있다면 그것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오히려 푸코라고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푸코가 역사유물론이라고 할 만한 것을 생각한 적이 없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 역사란 말보다 더 부조리한 말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일종의 모순어법이라고 할 “현재의 역사”를 분석하는 철학자로 자신을 정의하고자 했을 때, 그 현재란 어떤 표면과 배후, 기원과 종말을 가진 사회적 실천의 시간으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그 때의 역사가 가리키는 것의 반대편에서의 역사, 현재를 인식가능하게 만드는 역사의 눈금 바깥에서 현재를 사유하는 것, 그가 후기의 작업에서 칸트를 참조하면서 말한 대로 엄정한 의미에서 “비판”을 위해 그 모든 자명한 정체성을 괄호 치는 그 역사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푸코를 역사의 유물론적 분석가라고 불러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강조할 점은 유물론일 것이다. 푸코는 마르크스보다 더 유물론적이고자 했다. 그가 마르크스보다 더 유물론적인 이유는 표상의 차원을 전적으로 실천의 차원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르크스 역시 그런 유혹에 빠진 적이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적 적대가 낳는 소외로부터의 해방을 소망하는 실천(praxis)의 철학자로서의 초기 마르크스는 바로 그러한 유물론자의 모습일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의 노동자계급운동에서 그것을 사로잡는 다양한 이념들을 목격하고 이를 반성하며, 상품물신성을 통해 상품의 형이상학을 발견하는 마르크스 역시 예외 없이 유물론자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외려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은 사변적 환상을 비판할 수 있는 진리의 주체라는 노동자계급이라는 유물론적인 전제로부터 점점 멀어져가면서 국가의 실천 속에서 상품물신성에 사로잡힌 경제적 실천 속에서 주체를 사로잡는 다양한 정신적 역능(이를 의식이나 사고로 환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을 발견하고 이를 긍정하며 그것이 발휘하는 효과와 대결하려 하였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은 전적으로 유물론이되 사회적 현실을 모두 물질적인 현실과 그를 변형하는 실천으로 감싸 안을 수 없는 유물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푸코는 완벽한 내재성의 유물론자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근대 자유주의의 통치성을 분석하면서 근대 국가의 계보학적인 분석을 수행하려 했을 때, 이는 바로 권력의 운동 속에서 즉 인구라는 대상을 창안하고 안전기구라는 장치의 네트워크를 동원하며 정치경제학적 지식을 통해 그것이 행사되는 대상을 가시화하고 분절하는 실천들의 세계이다. 여기에서 국가란 실은 권력을 생산하고 분배하며 순환시키는 전략들의 배치와 변전을 가리키는 이름에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푸코의 역사적 유물론 혹은 권력의 유물론은 정치를 마르크스보다 더욱 정치를 물질적 현실의 변형, 권력의 작용이 펼쳐지는 현실의 변혁과 등치시키게 된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푸코의 맹점은 더욱 두드러지지 않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는 단 한 가지만을 지적하도록 하자. 푸코는 ‘영토, 안전, 인구’의 마지막 강의에서 국가이성이라는 과도적인 단계를 거치며 형성된 자유주의적 통치성이 크게 다섯 가지의 계기 혹은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요약한다. 그것은 자연스러움의 대상으로서의 사회의 고안(군주 혹은 주권자의 의지의 부과가 아닌 사회의 원리에 따른 권력행사의 조정), 권력과 지식의 새로운 관계(증명, 시험 등의 과학적 지식의 원칙을 통한 통치), 신민이 아닌 생명체로서의 인구, 법이나 규제가 아닌 관리(management)와 같은 새로운 개입의 형식들, 그리고 통치의 내적 요소로서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도록 하는 자유의 존재 등이다. 그런데 그 다섯 가지의 요소 가운데 바로 마지막의 요소에 대한 푸코의 침묵 혹은 무지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것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 푸코라면 내가 말하는 자유란 주어진 지식의 한계 안에서 그리고 자신이 속한 삶의 장 안에서 다양한 행동방식을 선택하고 구체적인 삶의 목표를 추구하는 주체들의 행동방식을 가리키는 것일 뿐, 주권적인 담론이나 법률적인 담론이 이르는 어떤 선험적인 규범이 아니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통치성의 역사적 변전을 가능케 하는 윤리-정치적 변인으로서 그가 그토록 강조하는 행동(conduct)과 대항행동(counter-conduct)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거리가 놓여있다. 권력이 있는 곳에 늘 저항이 있고, 특정한 행동방식에는 그를 거스르고 혹은 그에 반대하여 나아가하는 행동방식의 가능성이 늘 항존 한다고 되풀이하여 말할 때, 우리는 바로 그 둘을 가르는 거리, 즉 예속이 아닌 저항을, 특정한 행동방식이 아닌 다른 행동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 즉 선택의 선택이라는 차원을 그가 놀랍도록 간과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리바르가 푸코의 정치를 읽는 방식 역시 이런 평가에 가까운 것일지 모른다. 그는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푸코의 정치가 타율성의 정치, 물질적, 역사적 조건의 변형이라는 의미에서의 정치에 머물러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가 “자유의 자유화”를 설명하지 못한 채, 이런저런 사회운동의 사례를 열거하는데 만족하거나 아니면 자기의 심미적 윤리로 탈출하고 말아버린다고 비판한다. 이 때 그가 말하는 자유의 자유화는 방금 말한 선택의 선택을 가리키는 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인구로서 다른 삶의 환경 속에서 다른 삶의 조건을 선택하는 사회정치인 주체 대 선택을 선택하는 주체, 푸코가 인구라고 부르는 특수한 사회적 삶의 내용 속에 놓여있는 주체 대 인민이라고 부를 수 있을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할 수 있는 것으로 상정할 수 있는 주체, 이 주체 사이에 놓은 거리는 푸코에게는 삭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푸코가 말하는 정치적 낙관주의는 생각보다 더 침울하고 흐릿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푸코는 자신이 상상하는 정치를 이렇게 소묘한다.
“나는 주인이란 개념도, 법의 보편성이란 개념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대신에 나는 권력의 현실적 작동메커니즘을 이해하려고 고심해 왔습니다. 내가 이 작업을 한 이유는, 그 권력관계 속에 위치한 사람들이, 실천과 저항, 반란을 통해 그것들로부터 탈출하고, 그것들을 변환시켜 더 이상 예속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만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자신이 속한 권력관계를 인식하고 그것에 저항하여 그것으로부터 탈출하고자 결심한 사람들이 자신에 의해 고안되고, 계획될 수 있는 수많은 할 일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내 모든 연구는 절대적 낙관주의에 기반하고 있습니다.”(강조는 인용자)
그러나 이 “절대적 낙관주의”가 과연 낙관적일 수 있을까. 그것이 낙관적인 것이기 위해서는 자신이 처한 삶의 조건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그 조건이 행사하는 힘에 종속된 주체와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상상할 수 있는 주체를 분리시키는 그 거리를 뛰어넘어야 한다. 앞서 우리가 채택한 표현을 빌자면 선택을 선택할 수 있는 주체가 존립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무엇도 낙관할 수 없는 세계일 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물음을 알튀세르에게도 제기할 수 있을까. 그의 제자였던 발리바르는 그렇다고 답하는 듯하다. 이를테면 그가 이렇게 말할 때 이는 방금 우리가 푸코에게 제기한 이의를 역시 알튀세르에게 제기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알튀세르의 유명한 정식을 뒤집어서 주권자는 주체들/신민들을 개인들로 호명한다는 본질적 특징, 곧 개인들에게 특수한 동일성을 부여하는 매개적 ‘신체들’, ‘소속들’- 이것들은 서로 대립한 가운데 또는 법과 주권자 사이에 거역하면서 옹호될 수 있다 – 을 무시하거나 중립화한다는 특징을 말하기로 하자.”
여기에서 발리바르는 특수한 단체들에의 소속이 아니라 국가에 보편적으로 평등하게 소속됨으로써 개인이 형성된다고 말하면서,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에서 말한 개인의 주체로의 호명을 뒤집는다. 오히려 근대 국민국가는 주체를 개인으로 호명한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물론 이는 알튀세르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실 이 과정은 상호적이고 또 동시적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구로의 소속과 특정한 허구적 종족성 속에 속하는 과정과 더불어 모든 특정한 일차적 소속에서 벗어나 평등한 개인으로서 발생하는 과정은 분리시킬 수 없다. 그렇지만 이 동시적이고 상호적인 발생을 알튀세르가 분석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가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선언하며 국가이론과 당/조직이론의 공백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를 선언했을 때, 우리는 이를 국가에 ‘관한’이론, 당과 조직에 ‘관한’이론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이미 마르크스주의 안에 그러한 이론은 넘쳐나기 때문이다.
차라리 알튀세르가 말했던 국가론과 당/조직이론의 부재 혹은 공백을, 앞에서 푸코의 한계라고 우리가 지적한 것과 연결시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인구와 인민 사이의 거리, 선택을 선택할 수 있는 주체 사이의 거리를 알튀세르는 계급과 대중 사이의 거리, 노동과정과 국가 사이의 거리 속에서 이미 발견하고 있었다. 그리고 후기 알튀세르의 모든 노력은 그 둘 사이의 거리를 추월하려는 의지에 모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라고 말한 그 공백의 자리는 실은 자율적인 정치의 주체의 자리를 식별하고 이를 규정하려는 노력에 마르크스주의가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오히려 알튀세르는 역사의 유물론자인 푸코를 뒤잇는다. 항간의 오해와 달리 알튀세르로 대표되는 마르크스주의적 국가론과 이데올로기론을 극복하며 그 안에 놓인 어떤 초월적 관념론의 흔적까지 일소한 내재적인 권력의 물리학 속에서 정치를 사유하려 했다는 푸코의 자리는 실은 알튀세르의 뒤가 아니라 그의 앞에 놓여있다. 앞에서 거칠게 살펴보았듯이 알튀세르는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푸코의 사유를 선취하면서 실은 푸코의 역사적 유물론의 불가피한 한계, 즉 물질적 조건들의 세계와 그것의 변혁으로 환원시킬 수 없는, 선택의 선택이라는 그 비가시적인 잔여를 추적하려 했던 것 아닐까.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선언하며 마르크스주의의 공백을 발견했을 때, 그 공백은 어쨌거나 약점도 아니거니와 무효성을 말하는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잊지 말자고 주장했던 그 것, 계급투쟁은 바로 현실이 전체가 아님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사회는 비전체라는 것, 사회를 변환시킬 수 있는 조건은 그 내부에서 마련된 조건 속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것, 바로 사회의 비전체성을 알려주는 개념이 계급투쟁이라면 말이다. 따라서 정치의 유물론을 지속적으로 사유하려면 우리가 정박해야 할 지점은 계급투쟁이다. 그것은 사회의 부분들 사이의 투쟁과 사회와 그것의 불가능성 사이의 관계를 포괄하는 정치적 사유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디 계급투쟁을 잊지 말자.
알튀세르효과 심포지엄에 기고한 글. 초고상태.

6 thoughts on “알튀세르와 푸코: 부재하는 대화”

  1. 알튀세르 심포지엄이 내일이네요..보고싶었는데 결국 시간을 낼 수 없게되어서 아쉽네요.. 선생님의 발표가 알튀세르를 다시금 이야기한다는 것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지 않을까 싶네요..심포지엄 구성을 보고 결국은 바디우, 랑시에르, 발리바르 심포지엄이 아닌가라는 약간의 실망도 하긴 했지만..그래도 기획의 의미를 폄하할 필요는 없겠죠..항상 좋은 글, 좋은 인디음악을 포스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 제 발제를 후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그래도 누구를 경유하든 알튀세르의 사고를 재발견하게 하는 일이라면 가치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스타 학자들을 유람하는 세태가 탐탁찮은 건 저도 공감합니다만 그들의 사유의 진면목을 드러다보며 생각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

  3. 저도 절대적으로 동감합니다..이번 심포지엄이 좀 더 다양한 사고들을 경유하여 알튀세르의 이론, 사고를 지속적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4. 선생님께 질문했던 leopord입니다. 오늘 심포지엄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이론적인 부분이 취약한데 좋은 자극이 되었네요ㅎ 다시 한 번 수고 많으셨습니다-

  5. 수고는 요, 뭘. 이론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는 익숙치 않은데다 내공깊은 학자들이랑 같이 자리를 해서 그랬나, 조금 어수선한 발제였던 것 같아 영 개운치 않습니다. 잘 봐주셔 고맙습니다. 🙂

  6. 공부하던 중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글을 왜 마르크스가 아닌 알튀세르로 푸코를 읽어야 하는지로 시작해 주셔서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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