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성의 상품화 – 인맥관리 혹은 네트워킹의 문화

미니 홈피와 블로그 – 그들의 쾌락, 그들의 욕망
지금 20대의 가장 큰 소일거리를 꼽자면 당연 미니홈피와 블로그를 들락거리는 일일 것이다. 인터넷에서 좀 “논다”는 이들은 너남 없이 블로그와 미니홈피에서 떠날 생각을 않는다. 틈만나면 “파도타기”를 하면서 혹은 “블로깅”의 사슬을 주유하며 인터넷을 쏘다닌다. 오죽하면 가르치는 몇 수업에서 우리 시대의 일상문화를 관찰하고 해석하는 글을 쓰라 했더니 너남 없이 미니홈피와 블로그 이야기를 내놓는다. 그만큼 인터넷에서 소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증좌일 터이다. 그렇지만 하필 그것이 왜 게임 사이트나 정치 사이트가 아니고 미니홈피며 블로그인지, 곰곰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포털 사이트들 역시 사용자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블로그 서비스를 다투어 시작하였다. 내로라하는 대형 인터넷 사이트들은 블로그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런 서비스를 기획하고 또 그것의 흥행 성적을 평가하는 이들이 접근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대개 블로그나 미니홈피를 인맥관리라는 콘텐츠 상품으로 정의한다. 사실 이런 사이트를 오래 전부터 이용했던 이들은 그 사이트들이 처음엔 인맥관리를 통한 자기 계발 사이트로 마케팅되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굳이 인맥관리란 용어를 들먹이며 이런 서비스를 이용할 필요는 없다. 이런 사이트를 이용할 때 사용자들은 인맥관리는 타산적인 이해와 목적을 염두에 두며, 줄여 말하면 “도구적인” 태도로 접근할 필요가 없다. 굳이 인맥관리라는 이름을 빌어 자기의 관심과 의지를 동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인맥관리는 우리 시대의 저류를 관통하는 무의식적인 강박관념이기 때문이다. 미니홈피나 블로그는 “인맥관리에의 의지”라는 우리 시대의 에토스를 상품화하는 다양한 대상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것에 특별히 다른 구석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계발”의 문화로 부를 수 있을 우리 시대의 문화적 정체성이 평범한 일상생활이 되었다는 데 있을 것이다. 결국 미니홈피와 블로그 그리고 숱한 인터넷 문화의 변종들은 인맥관리로 압축되는 새로운 자본주의사회의 문화적 정체성을, 자발적으로 혹은 즐겁게 집행하는 것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인맥관리 – 탈근대자본주의의 문화적 에토스
구경제의 시대가 “지능지수(IQ)”의 시대라면 신경제의 시대는 “감성 지수(EQ), 인맥 지수(NQ)”의 시대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신기한 주문으로 들리지 않는다. 신경제의 다른 이름은 물론 지식기반경제이니 지식정보사회, 포스트자본주의니 네트워크경제니 글로벌 경제니 하는 말이다. 이를 대변하는 이들은 구경제의 시대에 직업적인 활동을 하는 이의 능력은 이른바 숙련이나 기술같은 이른바 인지적인 지식이었다면, 신경제의 시대에 노동하는 이의 능력은 감성과 인간관계의 능력을 포함한 모든 것이라고 강변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것은 감성적 가치와 네트워크 능력 등이라는 주장이 새로운 경영학의 신조가 되고, 이를 구체적으로 응용하는 취업, 인사관리, 조직 설계 등의 다양한 경영 기법 담론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지 이미 오래이다. 그리고 앞 다투어 경영의 구루(gurus)나 경영학자, 직업상담가, 미래예측가 혹은 자기계발전문가들은 “삶 전체”의 능력이 기업과 회사에서 필요한 역량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그들의 말은 어느 정도 옳다. 컨베이어 벨트로 운반되는 노동대상에 규칙적이고 표준화된 지식으로 세분된 이른바 “노동”을 투입하던 과거의 공장 노동의 이미지는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이들이 경고하듯이 물론 그것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주변화되거나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의 나라들로 “아웃소싱”된 것에 불과하다(혹은 전에 없이 참담한 조건에서 불완전한 고용상태를 감수하며 일을 해야하는 글로벌 도시 내부의 초과착취 공장(sweatshops)도 있다). 그렇지만 브랜드화된 상품의 세계에서 우리가 구매하는 것은 더 이상 범용품이나 제품이 아니라 상징적 가치나 소비의 규범, 혹은 라이프스타일이라면, 결국 그러한 가치를 불어넣는 노동은 어떤 종류의 일일까.
여기에서 우리는 신경제와 함께 성공을 거둔 또 하나의 우리 시대의 표어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이른바 “지식노동자”란 개념일 것이다. 물론 지식노동자란 지식인 더하기 노동자, 훨씬 더 똑똑해진 노동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지식노동자란 개념은 물론 변화된 자본주의 경제에 필요한 새로운 노동자의 이미지를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또한 그것은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그리고 노동에 참여할 준비를 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삶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사회적인 전략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지식노동자는 변화된 시대에 노동자로서 어떤 자질이 필요한지 정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그것은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다루고 체험해야하는지 규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지식노동자는 또한 평생학습의 주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구경제의 노동자가 학교 교육을 졸업하면 더 이상 공부를 않아도 되는 노동자였다면 신경제의 노동자는 평생학습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좋은 노동자란 급속히 바뀌는 시대의 흐름을 재빨리 따라잡고 끊임없이 자신을 혁신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성공한 자기계발문학이자 대중문학 가운데 하나일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주인공들처럼 우리는 자신의 실패와 정체를 남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되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이처럼 지식노동자란 말에는 자기를 구체적으로 살피고 돌보는 태도 다시 말해 자기(the self)의 윤리가 바뀌어야 한다는 압력과 요구가 스며있다. 따라서 구경제에 필요했던 노동자와 달리 신경제가 필요로 하는 직업인은 누구인가와 같은 일종의 객관적인 설명을 담는 듯 보이지만 지식노동자란 개념은 노동하는 주체가 자신과 관계 맺는 방식과 목적(telos)을 이끌어내고 또한 독려하는 새로운 장치이자 테크닉이기도 하다.
빽에서 인맥까지 – 능력으로서의 인간관계
그런데 이런 지식노동자의 개념이 요구하는 “탁월한 능력”은 지극히 애매모호하다. 그것은 이미 형식화되어 있으며 그것을 획득하고 평가받는 방법과 절차가 잘 알려져 있는 과거의 능력과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구경제를 움직인 중요한 일의 원리였던 테일러주의(Taylorism)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란 영화를 통해 이미 테일러주의의 풍경을 잘 알고 있다. 물론 그것은 아직도 현대자동차나 대우중공업과 같은 공장을 움직이는 중요한 원리이기도 하다. 테일러란 사람이 창안했다는 과학경영기법은 말 그대로 노동자들의 일을 세부적으로 관찰하고 분석하여 이를 노동의 규칙과 질서로 삼는 것이었다. 이는 크게 보아 일꾼들이 일하는 시간의 흐름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기술이었다. 규칙적으로 운반되는 노동대상, 시간에 따라 관리되는 일과 그에 연계된 보상(이를테면 월급, 일당 등의 임금 체계)은 테일러주의의 핵심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성과급과 연봉계약으로 바뀐 신경제의 기업과 많이 다른 것이었다. 그렇지만 테일러주의는 일의 과학자들이 세부적으로 연구하고 과학적으로 설계한 노동의 종류와 질에 관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고 노동자가 될 사람들은 모두 학교와 직업교육을 통해 그러한 노동에 필요한 능력(기술이나 기능 따위)을 배울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신경제의 노동자들은 그런 능력만으로는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이 신경제의 옹호자들의 주장이다. 이를테면 멀티형 인간, 다중지능같은 용어는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능력이 전연 다른 것임을 알려준다. 인맥관리가 노동자의 능력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다. 감성마케팅이니 정서 자본이니 체험경제니 하는 말은 이제 우리가 소비하는 상품, 우리가 생산하는 제품이 더 이상 물건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혹은 취향(taste)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런 점에서 인맥관리는 노동자의 중요한 능력이며 적극적으로 계발하고 관리해야하는 자원이 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인맥관리란 것도 알고 보면 왕년의 마당발을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이 아니냐며 빈정댈 수도 있을 것이다. 인사청탁에서 차떼기에 이르기까지, 시쳇말로 “빽”을 통해야 일이 되던 사회 기풍을 떠올린다면, 이런 조소도 이해할 만한 일이다. 동사무소에서부터 청와대까지 뒷줄과 뒷돈을 대지 않으면 될 일도 안되는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이러한 “비공식적인” 연줄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고, 다들 비밀장부와 수첩을 통해, 사과상자와 빳빳한 현금을 통해 그 연줄을 기름지게 살찌워왔던 터에, 인맥관리란 말로 유난을 떨 것은 없지 않을까. 물론 이는 얼핏 생각하기엔 맞는 말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빽”이 자신의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동원해야하는 얼마간 비겁하고 떳떳하지 못한 예외적인 행위이자 순전히 도구적인 선택이었다면, “인맥관리”는 그와 사뭇 다르다. 인맥관리는 어떤 이해를 실현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끌어들이는 부정한 선택이기는커녕 그 자체 가치로서 추켜올려지며 특별한 목적이 없더라도 언제나 행해져야 하는 활동으로 여겨진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경영담론들이 들먹이는 인간관계는 고객으로서든 직원으로서든 우리가 맺는 모든 대인관계가 곧 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따라서 그것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목표가 된다. 왜냐면 신경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생각엔 인맥 자체가 자원이고 그로부터 가치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인맥관리의 담론은 곧 자기의 사적인 이익을 위해 연줄을 맺은 도구적인 이해관계의 타인과 감정적으로 친밀한 타인들 사이의 구분을 지운다. 연줄이나 빽으로 연결된 사람이 “원치 않지만” 혹은 “마음에 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사업과 성공을 위해 돌보아야할 “타인”이었다고 한다면 인맥관리의 담론은 나와 타인들 사이의 친밀감의 거리와 간격을 없애버리다. 우리는 백화점과 쇼핑몰, 병원에 들린 고객을 나의 친한 가족처럼 따뜻한 감정과 태도로 맞이하고 응대하여야 하는 것이다.
친밀성의 상품화 – 탈근대자본주의의 문화경제
친밀감을 사회적으로 조직하고 관리하며 생산하는 것이 물론 어제오늘의 일인 것은 아니다. 이미 백화점의 사원이나 비행기 승무원, 은행의 수납계원 혹은 호텔의 종업원들은 친밀감의 감정적인 관리와 통제를 통해 자신의 노동을 판매하는 대표적인 집단이었다. 그렇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노동자들의 상품화된 친밀성의 서비스를 제공받았을 때 거북하고 불편해 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친밀감은 경제적인 거래와 교환으로부터 벗어난 자연스러운 감정이어야 하는 것으로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우리”인 척하는 태도는 작위적일뿐더러 심지어 위악한 태도로까지 보였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신과 별로 인연도 없는데도 자신에게 친하게 구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따뜻한 친밀감은커녕 거꾸로 그로부터 친밀감 자체가 훼손당한 듯한 모욕감이나 불쾌감을 느꼈던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고객이 OK할 때까지”를 모토로 삼고 있다는 기업광고와 시민들에게 이웃처럼 다가서는 행정 서비스를 실현하겠다고 공언하는 공공기관의 자기다짐에 익숙해져있다. 그리고 지나치다 싶으리 만치 자주 전화를 걸어 배송은 잘 되었냐는 둥, 더 불편한 사항이 없냐는 둥 꼬치꼬치 캐묻고 배려하는(!) 인터넷 쇼핑몰의 여직원들과 매일매일 만나고 있다. 이는 접대(hospitality)가 전문화되고 숙박업이나 관광업을 비롯한 몇몇 산업에 배타적으로 독점되었던 과거의 단계의 자본주의와 전연 다른 모습이다. 이제 우리는 공장과 사무실에서부터 소매점과 학교 그리고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적 삶의 영역에서 접대가 불가결한 서비스가 되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신경제를 특징짓는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을 꼽자면 단연 우리는 친밀성의 전면적인 상품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맥관리라는 “친밀성의 문화공학(cultural engineering)”은 탈근대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중요한 경제적 관행 가운데 하나이다. 조직을 관리하는 담론이자 기술로서도 혹은 노동자를 통제하고 훈련하는 담론으로서도 친밀성은 중요한 것이 되었다. 또한 그것은 상품으로 판매되고 또한 추구되어야할 가치로서도 중요해지고 있다. 체험의 경제니 미적 경제니 하는 말과 더불어 우리는 이제 정서의 경제, 친밀성의 경제의 시대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친밀성이 상품화되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맥관리는 또한 타인과의 관계일 뿐 아니라 또한 자기와 맺는 관계 역시 변화시키도록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맥관리는 무엇보다 자기의 자원으로 평가된다. 공정한 질서(?) 즉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지는 사회경제적 활동에 들러붙은 기생물이었던 연줄은 이제 인맥이란 새로운 이름을 얻었고 나아가 기업조직과 사회활동 안에서 어엿한 능력으로 그 가치가 격상되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하였듯이 지식기반경제에서는 학교교육을 통해 배운 기술적 지식이 아니라 인적 자원으로서 삶의 모든 능력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인간관계 역시 능력이다. 따라서 그것은 “네트워크 지수”로 관리되고 평가받아야 한다, 인맥관리란 자신을 강하게 만들고 성공하는 주체로 만들 수 있는 변신의 계율이 된 것이다.
“성공한 CEO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스로 가 자신의 내면을 깊이 있게 성찰해야 할 뿐 아니라, 부하직원의 감성 및 니즈를 이해하고 배려함과 동시에 서로가 함께 추구해야 할 지향점을 찾아 이를 향해 자연스레 구성원들을 리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일간지 경제면이나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레토릭은 곧 우리 시대의 “자기(self)”의 윤리학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런 식의 수사학은 도구적이고 타산적인 이해집단을 조직하도 통제하는 조정자 혹은 감독으로서의 지휘, 통제가 아니라 영혼의 지도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이를테면 최근 큰 유행을 타고 있는 “서번트(servant) 리더십” 담론은 기업이든 학교이든 아니면 공공기관이든 그 조직 안에서 이뤄지는 사회적 관계가 감성적이고 윤리적인 인간관계임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감정이 메마른 관료제화된 조직을 인간화시키는 행복한 변화일까. 사장과 직원, 작업감독과 공원 사이의 형식적인 지위를 통해 매개된 관계가 아니라 인간 김씨 대 인간 박씨의 구체적이고 풍부한 직접적인 인간관계가 이제 우리가 살아갈 세계의 원리일까. 물론 우리는 그런 주장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앞서 강조했듯이 그것은 조직의 목표와 효율이라는 기준에서 그 안에 이뤄지는 활동을 합리화하던 것을 넘어서 그 안에서 이뤄지는 감정의 교류와 각 개인이 자신과 맺는 관계 역시 합리화하는 새로운 원리가 뿌리를 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맺음말 – 이중무대의 세계
인맥관리의 세계 그것은 친밀성을 상품화하고 더불어 자신을 끊임없이 타인에게 매력적이고 바람직한 주체로 빚어내도록 하는 새로운 윤리적 명령의 세계이다. 그렇지만 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러한 새로운 삶의 계율에 강박적으로 쫓기지만 또한 동시에 그로부터 빠져나갈 냉소적인 탈출구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당장 자신에게 친구처럼 구는 사장과 교사, 아버지, 공무원들을 우리는 인맥관리의 전문가이자 훌륭한 자기경영의 달인으로 평가하는 척 제스처를 취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서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지위의 불평등이 엄존하는 상황에 분노할 수 있다. 그는 여전히 나보다 더 많은 특권을 누리고 더 많은 보상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어긋난 관계를 향한 우리의 분노와 저항은 매우 뒤틀린 채 도착적으로 표현된다. 우리는 강박적으로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연출과 자기제시의 기법을 익히면서 더불어 자신과 타인이 제공하는 모든 친밀한 태도를 부인하고 신뢰하지 않는 냉소적인 태도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따라서 휘황한 컨벤션센터의 뒤에는 음침한 호텔이 있기 마련이다. 좋은 인상을 보여주고 명함을 교환하며 환대를 제공하는 세계의 바로 뒤편에서 우리는 자신이 잃어버린 진짜 감정의 나, 친밀감의 핍진성(authenticity)을 강박적으로 추구하려 애쓰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끊임없이 새로운 글과 이미지를 게시하며 자신을 멋지게 드러내 보이는 블로그 사용자들이 곧 다른 가상공간에서 후안무치하고 파렴치한 폭언과 욕설을 퍼붓는 게시판 이용자가 되는 것이다. 타인의 눈길 그리고 자신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눈길 아래에서 매력적인 나는 곧 다른 자리에서 난폭하고 저열한 충동의 희생자가 되는 것이다. 저 많은 블로그와 미니홈피의 주인공들은 누구이고 저 많은 게시판의 욕설과 조롱의 주인공들은 누구일까. 물론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맥관리의 시대에 살아가는 탈근대 자본주의적 주체의 초상이다. ■

One thought on “친밀성의 상품화 – 인맥관리 혹은 네트워킹의 문화”

  1. 홈페이지는 이른바 자기연출,목적성이 필수인데,사실상 일반적인 개인홈페이지로는 한계가 있잖아요.목적성이 없으면 업데이트도 더디어지고 홍보나 방문자도 뜸해지고,그래서 금새 시들해지다 폐쇄하기 일쑤인데,싸이월드는 그런 면에서는 인맥이란 강점에서 결속된 열린 문이라
    환영받는 느낌이에요.꼭 필요하지만은않은 핸드폰 누구나 하나씩 장만하는 것처럼요.
    소외감에 누군가 진실을 알아주길 바래 공개하고 노출하는 거지만,정작 장점만 보여주길 애쓴다면 당연한 결과겠죠.
    하지만 자기분열쯤은 긍정하고 즐기거나,혹은 용기있게 미추구분없이 자기모습을 솔직히 드러내며 이용한다면,쓰기에 따라선 몸에 좋은 독약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실제로 중독되듯 이용하다 두려움에 아예 폐쇄하고 싸이월드를 떠난 중독자들을 몇몇 봤어요.지겨워지면 또다른 대안물이 나타나겠지만.
    조제하니 불쑥 떠오른 생각은 컴퓨터 모두 꺼버리고 농경사회로 단체로 손잡고 귀농해버리면 어떨까하는..아 물론 요즘은 섬마을까지도 컴퓨터는 있죠.전원일기보면 그 왜 양촌리청년들 저녁밥먹고 청년회관에서 미팅하잖아요.
    틈나면 다 모여있는 그 공간이 왜그리 부럽던지요. 도시에 사는 한 외로움이 해결되지는 않을 성 싶고..오늘도 전 잠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습관처럼 싸이월드를 클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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