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대를 살기


사회과학적으로 말해 나는 포드주의적 자본주의와 이 잘난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 두 시대를 한꺼번에 겪어야 하는 불행한 아니 多福한 세대의 주인공이다. 군사독재와 개발훈육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싸우다가 맞이한 이 찰나의 변화에, 나는 거의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그 어리둥절하고 불안한 심정은 크게 두가지의 증세로 나타난다. 첫 번째는 혐오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우울해지거나 아니면 망명객의 심정으로 자신이 속한 사회의 주변에서 배회하는 것이다. 이런 유아론적인 태도는 곧장 자신을 빈약한 윤리적인 늪 속으로 끌어내린다. 위악하고 타락한 세계를 향해 적대감을 품고, 그에 동조하는 배신한 모든 이들에게 가눌 수 없는 원한을 품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아주 자포자기적인 태도로 혹은 조금은 그로부터 원기를 회복한 듯한 착각에 빠져 결단을 꿈꾸기도 한다. 나의 경우 몇 해 전 그것은 이를테면 탁발승과도 같은 삶을 살거나-진정코 나는 IMF 직후 프란체스코 수도회나 빈민구제단체에 평생을 바칠 생각에 시달렸다.- 아니면 더 가난하고 더 참혹한 나라로의 이민을 가겠다는 유혹에 한참을 망설여야 했다. 나는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혹은 브라질이나 베네수엘라에 가야할 것 같은 망상을 버리기 어려웠다(아직도 나는 욱한 심정이 들면 서둘러 짐을 싸들고 그곳으로 가야겠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물론 내가 마더 테레사나 레지 드브레같은 인물이 되겠다는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꿈꾸었던 세계, 그리고 내가 이룩하고자 했던 세계를 위해 자신의 삶을 한결같이 다스리던 의무를 저버렸다는 분노와 수치심 때문에 나는 도피하고 또 되살아나고 싶었을 것이다. 리베르탕의 자격으로 날 호명하는 자리에서, 그리고 인습과 전통, 규범에 반하는 이데올로그의 화신으로 날 초대하는 자리에서, 나는 스스로가 몹시 역겨웠고 지겨웠으며 세상이 모두 피곤했다. 그 때 결단을 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일까 아니면 후회스런 일일까. 그것은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아직 그 때의 고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아직 그 근처에서 꿈지럭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그런 윤리적인 선택을 저버린 것을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빈자들을 돌보는 우리 모두의 윤리적인 책임, 자신이 세계를 향해 지고 있는 빚을 적극적으로 떠맡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뿐더러 위험하기조차 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빈민구제기관의 훌륭한 사제가 되는 것보다 말만 많은 혁명가가 더 실제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변화를 꿈꾸는 이들에게 씌워지는 가장 손쉬운 모욕과 비난은 그들이 말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에 분노하는 이들이 정작 온전히 말의 힘을 입증하듯이 나는 말에 패를 걸고 희망을 상징화하고 그를 위한 프로그램을 그리는 일에 전력하고 싶다. 그리고 그게 내가 선택한 아니 선택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접어든 길이었다.
지구화니 구조조정이니 따위에 관한 글들을 닥치는 대로 읽고, 그간 내 앞으로 흘러갔던 변화의 실체를 가늠하기 위해 자료와 문서들을 뒤지면서 또한 지난 신문들을 다시 꼼꼼히 읽으면서 나는 내가 접어든 세계가 어떤 것인지 조금씩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는 더 많은 자유주의가 필요하다고 믿었던 사회주의자에서 나는 그 자유를 향한 꿈이 이미 질식할 듯한 새로운 명령이자 규범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사실 자유라는 말은 이제 오염될만큼 오염되었고, 다양성-차이-시민-자율같은 말은 가진 자들의 말이 되어 입에 담기조차 민망하다. 87년의 민주화가 열어놓은 환기창을 통해 권위와 획일에 찌든 삶을 살던 우리는 모두 자유롭고자 했고 더 많은 상상의 권리를 옹호하고자 했고 더 많은 위반적인 삶을 현실에 등록시키려 애썼다. 그래서 언더그라운드니 인디니 올터너티브니 하는 등록상표가 붙은 모든 것들을 게걸스럽게 숭배했고 한결같지 않은 고유한 삶, 특이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축복했다. 히피의 전설을 다시 듣고, 비트 세대에 관한 소문을 수집했으며, 68혁명의 뒤안에서 벌어진 그 아름답고 현혹적인 소동의 현장에 입회하지 못했던 것을 통탄했다. 그리고 또한 새롭게 읽고 듣고 보아야할 것이 얼마나 많았던가. 우리는 맑스와 레닌을 넘어 푸코와 들뢰즈를 읽었고 프로이트와 라캉을 읽었다. 심지어 니체도 백치같은 문학청년의 염세적 아포리즘의 운명에서 구제하였다. 또한 우리는 밥 딜런과 찰리 파커, 부르스 스프링스틴 그리고 벨벳 언더그라운를 들을 수 있었다. 고다르와 안토니오니, 오시마, 그리고 모든 B급 영화와 심야영화들을 한꺼번에 보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새로운 잡지를 창간하고 싶었고, 전위적인 지식인-예술가 그룹을 만들고 싶었다. 페미니즘과 게이운동이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지고 공중보건과 위선적인 도덕의 나락에 빠진 우리의 섹스를 만회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때 덩달아 마치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치듯이 악몽과도 같은 새로운 자본주의가 등장하였다. 구조조정, 다운사이징, 아웃소싱, 유연화같은 말들에 익숙해지고, 우루과이 라운드니 WTO, OECD, IMF같은 말들이 흉흉하게 떠돌 때도 역시 우리는 아직 충분한 함량에 이르지 못한 자유를 찾아 우리는 서성이고 있었다. 그리고 물론 다들 그랬겠지만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불안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몇 해 뒤 과거의 꿈이 시들해지고, 기사거리를 찾는 싸구려 일간지와 주간지의 문화부 기자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유행을 뒤쫓는 하이애나같은 마케팅 담당자들과 광고업자들, 사진가들과 디자이너들에게 우리가 포위당했다는 걸 문득 느꼈을 때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에 이르렀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반공훈육자본주의로부터의 탈출하기 위한 우리의 반항이 어느새 소비자본주의의 미끼이자 유혹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클럽과 대안공간, 영화제와 축제, 파티 그리고 반항적인 예술가들에게 염증을 느끼고 심지어 혐오감을 가누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소아병적인 태도이다. 그렇지만 뉴에이지주의와 자기계발의 잡탕, 소비자적인 라이프스타일의 생산자가 되어버린 문화비평의 음란한 공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고, 냉소적인 빈정거림으로 그들과 굳이 불화를 일으키며 그 자리에 참석해야 할 의무를 찾기 어려웠다.
물론 아직도 나는 이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풍경에서 탈출할 신뢰할만한 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온갖 버림받은 천민들과 혁명가들이 모여들어 만들어낸 코뮌을 꿈꾸기엔 서울은 너무 거대하고 첨단이다. 브라질에 있었다는 카누도소를 상기하며 코뮌에의 꿈이 박멸당한 세계를 비탄하는 지젝의 맥빠진 이야기에 지지를 보내고 싶지 않다. 시애틀에서의 반세계화 투쟁에 전율하며 새로운 희망을 역설하는 이들에게서도 나는 별다른 흥분을 느끼지 않는다. 불과 지척에 우리는 수십만이 운집한 그리고 피의 쿠데타를 감수하겠다는 각오로 싸운 거리에서의 투쟁이 있었고 아직도 절박한 투쟁은 도처에 있다. 사회협약과 거버넌스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적 정부에 농락당하고 있는 같은 세대의 많은 벗들에게 나는 더 이상 실망도 않는다. 그들도 한 세대 전체를 덮어 누르고 있는 미망에 갇혀 있을 것이다.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고, 반공주의라는 파시즘의 훈육으로부터 벗어나고,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향한 그들의 꿈은 그리고 공정한 분배라는 불가능한 미래를 상상하는 그들의 희망은 건강한 것이고 또 배반당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문제는 그런 희망은 거의 모두 가짜라는 것이며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가장 나쁜 변화의 전략을 지원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더 많은 시민사회의 참여는 결국 국가라는 권력에 매개되지 않은 지배를 낳는 것이고, 아무런 책임질 주체가 없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결사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스스로 돌보아야 할 책임을 떠맡게 된, 불행하고 참담한 “시민” 아닌 “벌거벗은 삶”으로 남게 될 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유로운 욕망을 억압하는 권위와 억압에 저항하는 것이 더 이상 급진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거꾸로 가장 나쁜 노예화의 회로에 흡수되는 길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나는 다시 삶을 시작하는 기분이다. 아직 나는 그 삶의 불안한 기분에서 어떻게 다음의 길로 옮겨가야 할지 모른 채 여전히 궁리만 하고 있다. 몇 해 동안의 우울한 마음의 행적을 어떻게든 요약하고 싶은 심정도 아마 그런 궁리만 하며 서성대는 삶의 부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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