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남자의 미래다…有感

일상의 탈출을 맛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평범한 관객에게 불쾌감만 주는 나쁜 영화라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를 본 어느 학생의 글이 게시판에 올랐다. 그가 나는 그 영화를 어떻게 보았는지 물어와서 이렇게 몇자 적었다.
-소시민 혹은 프티부르주아지의 위선적인 삶에 대한 조롱 혹은 야유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읽는게 거의 관행인듯 합니다. 물론 그런 지적은 틀린 것도 아니지요. 특히 영화가 스펙터클을 즐기는 오락, 뻔한 서사적인 구조를 반복적으로 보면서 느끼는 강박증적인 퇴행의 쾌감(똑같은 것은 언제나 즐겁지요^^)이 되어버린 이후에, “내면”이라는 자아의 공간을 보여주는 것, 특히 그냥 무심하고 평면적인 사물의 풍경인데도 그 내면의 표현으로서 제시하는 것은 분명 모더니즘적입니다.
그런 점에서 위선적인 그의 속내(혹은 멋진 모더니즘적인 문화비평의 용어를 빌려쓰자면 “내면”)를 보여주는 영화를 만드는 홍상수 감독은 뒤늦게 부활한 모더니스트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의 뒤틀리고 야비한 심지어 비열하고 아주 사악하기까지한 관찰과 폭로의 과정이 매우 즐겁고 짜릿하지만(거의 자학적인 것이겠지만..^^), 그에게서 어떤 대단한 점을 찾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면의 관찰은 상투적으로 재현되는 그의 예측할 수 있는 정체성-그는 남자이니,노동자이니, 서울사람이니, 한국인이니 아마 이러저러할꺼야와 같은 미리 상상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 – 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고유한 개별성을 삭제하고 지워버리는 것에 대한 부정과 비판이 바로 내면이라는 개념이 갖는 미덕이겠지요. 그래서 내면은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나와 그와 어긋나는 내가 상상하는 나 사이의 고통스러운 차이, 불일치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홍상수의 영화에서는 바로 그 고통스러운 발견의 대상인 내면과 외부 세계의 긴장이 사라진채 거의 물신화된 내면만이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정교하고 또한 가장 흥미로운 <생활의 발견>이 가장 지리멸렬한 이유도 그런 점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 영화에서 그는 <오! 수정>같은 곳에서 끈덕지게 유지했던 그런 내면과 그 위부 사이의 긴장을 잃은 채 내면이라는 것을 저 혼자 키득키득 웃으며 상상하는 싸구려 심리학자의 모습으로 바뀌어버립니다. 그런 것이 이번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도 역시 반복되었던 것 같아요.
(객설이지만 그런 점에서 왕가위는 아주 별난 감독이겠지요? 그의 중경삼림이나 아비정전, 춘광사설 심지어 그 모든 것의 극치인 화양연화같은 작품에서 그는 내면이라고 상상하는 풍경을 아름답게 정말 유혹적으로 보여주지요. 그러나 외부의 세계가 자신에게 부여한 모든 정체성의 덧없음, 허위성, 피상성에 반해 은폐되어 있는 자신의 진정성이 보증받는 그 곳은 이제 전혀 없습니다. 그는 오히려 거꾸로 내면 자체가 구경거리가 되어버린, 안과 밖이 뒤집혀진 세계를 보여주는 듯 하지요. 그의 영화가 견딜 수 없도록 멜랑콜리한 점도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그리고 적고 싶은 몇가지가 더 있었다. 나는 이번의 홍상수의 작업이 갖는 어떤 회화적인 금욕주의(?)라고 할만한 것에 의문이 들었다. 그는 설정 숏에서부터 마지막 엔딩 씬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돌리 숏을 가능한 억제하면서 카메라 만을 움직인다. 그것이 물론 인물의 시점과의 몰입을 억제하도록 하고 언제나 관찰하는 듯한 불편함을 가져다 주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것이 시점화를 억제함으로써 화면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동일시하는 것을 차단하거나 억지하는 상투적인 작위라면 모를까 그것이 다른 기능을 하는 듯 하였다. 솔직히 나는 그것이 영화를 못찍는 어떤 견습생적인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또한 적잖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미니멀한 것이라기보다는 관조에 가까운 눈길이다. 다시 그의 영화를 본다면 이 수수께끼를 풀어보고 싶다.
– 마지막 씬에서의 그를 유혹한(그가 그녀를 유혹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를 유혹한) 여학생과 앞길이 막막한 시간강사인 유지태와의 섹스 후의 대화는 나를 졸게 만들었다. 그런 기회가 한번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 내 주변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그런 위험한 일탈을 벌이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기대하기도 하는 눈치이다 – 학생과 불륜에 빠지면 어쩌나 하는 기우 말이다. 학생과 사랑을 나누고 싶지는 않지만 섹스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리고 난 후의 아주 불쾌하고 유치한 기분을 생각하면 모험을 걸 일이 아니라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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