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체제의 비판 – 어떤 민주주의를 위해 비판할 것인가

과거사 청산이라는 “문제”
거의 잊혀지고만 그렇다고 이렇다 할 주목을 받은 적이 없던 소설 한편이 생각난다. 재일교포 작가였던 이회성의 소설 {금단의 땅}이 그것이다. 차라리 공상과학적인 통속 정치소설이라야 제격일 이 소설은, 박정희체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워낙 읽은 지 오래여서 기억이 가물 하지만 줄거리는 제법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 소설은 박정희체제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지하전위조직의 활동을 다루고 있다. 안타깝게도 소설의 결말에서 주인공은 혁명을 성사시키려는 거사 직전 정체가 들통나 사형을 당한다. 조총련계의 사회주의자였던 이회성은 소설을 쓰는데 충분한 자료를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짐작컨대 그의 소설은 남민전이나 통혁당 사건에서 몇 가지 소재를 얻고 일본 언론 매체를 통해 알게된 남한의 정치체제에 그 나름의 상상을 교직하였을 것이다. 그 소설에는 조금 엉뚱한데도 있다. 주인공인 혁명가의 모습은 어딘지 박정희의 모호한 정치적 정체성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황당한 공상적인 정치소설을 싸구려 대중소설이라고 간단히 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득 “과거사 청산”의 시대에 우리가 직면한 기억의 과제를 생각하면 이 소설에서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지하고 엄격한 진실의 보고서보다 이 공상적인 정치소설이 더 큰 진실을 발언하는 것 말이다.

<당대비평> 겨울호에 기고한 글. 며칠을 끙끙대며 썼다. 기고하는 저널의 편집위원인데다 그 저널을 대표하는 원칙을 비판하는 글이어서 매우 부담이 컸다. 가능하면 게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아마 최근 쓴 글 가운데 가장 쓰고 지우길 많이 한 글이지 않을까 싶다. 털고나니 후련하다. !

“탈냉전 민주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지금, 우리는 “과거사 청산”이라는 과제에 직면했다. 그를 생각할 때, 이 소설은 정확한 조사와 기록을 통한 진실의 규명보다 더 올바르고 진정한 “청산의 실천”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과거사청산은 대충 지난 수십년 간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보수 세력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반공주의와 국가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려는 민주주의의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데올로기 비판으로서의 과거사 청산을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작동시킨다. 과거의 정치체제 특히 박정희체제란 질서와 안정을 내세웠지만 국민을 항상적인 내전과 공포의 상태로 국민을 몰아넣고 사회에 대한 여하한 비판도 모두 반역과 체제전복으로 처분하는 “죽임의 정치체제”였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탈냉전의 시대, 민주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계몽된” 시민으로서 우리들은 더 이상 이런 정치 체제를 용인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반공주의와 국가주의로 대표되는 반민주적인 이데올로기를 비판해야 한다. 반공주의와 국가주의란 국가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허위적인 환상이다. 우리는 파시즘적인 지배 세력의 정치적인 이해를 은폐했던 반공주의와 국가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인 허구의 뒤편에 숨겨진 진실, 고문과 살인, 반인륜적인 삶의 존엄의 파괴를 폭로하고 고발하여야 한다. 반공주의와 국가주의 그리고 여전히 이에 의탁한 채 자신의 힘을 유지하고 있는 정치세력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사 청산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질서와 안정, 번영과 조국근대화? 그것의 실질은 잔인무도한 국가의 폭력과 물샐틈없는 국민의 감시와 공포였다.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과 피해를 조사?그들에게 응분의 보상을 제공하고 온당한 복권의 기회를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어야 한다. 이는 어떤 위협을 무릅쓰고 관철시켜야할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과거사 청산이 위와 같은 논리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라는 것 역시 굽힘없이 주장해야 할 것이다. 송두율 교수의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또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비전향장기수의 민주화 운동으로의 인정에 관련한 파문에서 드러나듯이, 우리는 극우보수세력의 위협 못지 않은 자유주의적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듯이 보인다. 게다가 우리는 탈냉전 시대의 민주주의란 말을 무색하게 할 만큼 소심하고 냉전 시대의 유령에 시달린다. 시민사회를 소외시킨 국가권력, 시민사회의 주권과 이해를 매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민사회를 대신하여 사회적 삶의 내용을 결정하는 국가, 그리고 그런 국가가 존재하는 한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 전체주의적인 폭력으로서의 정치적인 억압과 살인. 이런 시민사회-국가의 모델에 얽매여 있는 한 우리는 과거사 청산을 위한 결정적인 몸짓에 결코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할 것이다. 이런 자유주의적인 관점의 정치적인 기획으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전유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혁당은 무엇인가, 통혁당은 무엇인가, 남민전은 무엇인가, 또한 다른 수많은 정치조직의 투사들은 무엇인가. 그들을 국가 폭력으로 고통받은 무고한 시민으로 환원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그들의 삶은 모두 자유주의적인 민주주의의 틀에 적합한 삶, 단지 국가폭력의 피해자로서의 삶으로 환원되어도 좋은 것일까. 그들의 정치적 삶의 실체, 그들이 확신했고 실천했던 정치적인 삶의 내용은 함구되어도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면 {금단의 땅}이란 소설은 더욱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그 소설 역시 중앙정보부와 경찰, 군대 그리고 국가감시기구의 위협과 폭력을 폭로한다. 그렇지만 그 소설의 진정한 이야기는 혁명가들의 정치적인 삶이다. 그들의 정치적 삶이란 분명하다. 그들이 박정희체제를 타도하고 건설하려 했던 미래 사회의 청사진, 이를 이루기 위해 작성했던 그들의 섬세한 혁명의 전략. 우리가 그것을 지지하고 인정하느냐의 여부와 관련 없이 우리는 그것이 그들의 정치적인 삶의 실질이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 그것은 과거사 청산에서 마주하는 피해자들의 표정 없는 얼굴과 전연 다르다. 그 소설의 허구적인 주인공들은, 현재에 이르러 민주화 운동이자 국가폭력의 피해라고 불리는 애매한 “추상적인 삶”, 그것이 비워내는 정치적인 실질을 보여준다. 그 소설이 민주화운동의 투사, 국가폭력의 피해자에게 어떤 충분한 위안을 마련해줄 수 있을까. 그렇지만 그 소설은 적어도 성공적인 기억을 실천한다. 적어도 우리가 표준적인 정신분석학이 가르쳐주는 교훈을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정신분석학은 기억이란 것이 상징적인 질서와 화해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걸러진 과거에의 의식이 아님을 극구 강조한다. 적어도 기억이란 것이 견딜 수 없는 감정적인 압력과 불쾌를 겪으면서 외상적인 과거와 만나는 일이라면 그것은 자신의 상징적인 세계를 뒤흔드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 때의 기억이란 잊혀진 일을 의식 속에 되살려내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진 기억을 위협하는 과거의 공포와 경악을 체험하는 일이다. 그것은 “기억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의 상징적인 회로를 무너뜨리는 만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상할 수 있는 비판, 과거사 청산은 특별한 정치활동을 했던 자들뿐 아니라 광범한 시민들까지 지배했던 적나라한 국가폭력을 극복하는 것이라는 “한계 설정”에 수긍할 수 없다. 그러한 한계 설정은 곧 과거사청산의 범위와 방식을 한정하는 것을 넘어 과거사 청산이 지닌 정치적인 정체성 자체를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정치와 정치적인 것 그리고 민주주의
클로드 르포르가 말한 “정치(the politics)”와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의 구분을 참조하여 말한다면, 우리는 민주주의란 것이 정치로 결코 환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정치”란 경제적인 제도나 문화적인 관행처럼 사회를 구성하는 하위적인 영역 혹은 체계 가운데 하나를 가리킨다. “정치적인 것”이란 거칠게 요약하자면 정치와 경제, 문화 등의 하위 영역이나 체계로 구성된 사회, 바로 그 사회를 구조화하는 원리를 결정하는 몸짓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정치로서의 민주주의, 즉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 투표와 선거의 자유 따위와 구분해야할 것이다. 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려했던 “좌익용공세력”의 활동, 그들의 실질적인 정치적인 삶을 표백시켜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인 삶의 내용을 비워낸 채 그들을 “정치” 즉 형식적인 제도와 절차로 환원된 민주주의 안에 놓인 무력한 존재로 전락시키고 말 것이다. 앞의 도식대로 말하자면 우리는 “정치의 주체”와 “정치적인 것의 주체(우리의 표현대로라면 민주주의의 주체)”를 구분해야 한다. 유신헌법을 지지하고 반공법을 준수한 정치적인 공동체 안의 시민은 정치의 주체이다. 여당인 유신공화당을 비판한 야당과 그들에게 투표한 시민 역시 정치의 주체이다. “좌익용공세력”도 물론 정치의 주체이다. 법률적으로 규정된 범죄자로서 재판을 받고 정치적인 반대파란 이름으로 알려졌다는 점에서 그들은 정치의 주체이다. 그러나 “좌익용공세력”은 정치적인 게임 구조 안에서 지배집단과 대칭적인 관계에 놓인 그런 주체인가. 당연히 아니다. 그들은 정치와 다른 하위체계들 사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조직하는 사건을 실천하려 했다는 점에서 정치를 넘어서는 공간에 속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짓궂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박정희체제의 한국적 민주주의 혹은 민족적 민주주의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위반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가장 순수하게 실현하는 형태가 아니었을까. 박정희체제는 정치가 정치를 기율하는 정치체제의 공간으로 정의되어야할 것이다. 박정희체제는 유신헌법을 제정하고 허수아비 정당을 결성하고 숱한 정치적인 결정과 제도를 통해 정치를 가득 채웠다. 박정희체제는 자유민주주의의 바보같은 원칙 즉 “정치는 정치이다”라는 동어반복적인 형식논리를 철저히 따른 체제였다. 따라서 박정희체제의 민족적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충분히 민주주의적인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정치적인 것을 사회의 하위체계인 정치로 환원함으로써 정치를 물신화한다. 자유민주주주의 정치적인 주체란 자본주의적인 상품관계 안에 놓인 물신적 주체처럼 1인 1표의 투표권이라는 정치적인 권리의 물신주의에 빠져든 주체이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구조화하는 원리를 변화시키는 정치적인 행위와 하위체계인 정치적인 장 안에서 벌어지는 형식적인 정치적인 활동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박정희체제는 진정 자유민주주의적이다. 박정희체제는 정치를 정치로서 즉 악무한에 가까운 자기반영적인 순환의 한계 안에 가두는 체제였기 때문이다. 박정희체제의 정치를 특징짓는 것은 무엇보다 숱한 헌법의 개정(“유신 헌법”)과 법률의 선포(긴급조치법을 위시한 수많은 특별법과 정치적인 포고, 칙령)에 있었던 것 아닐까. 그리고 수많은 정치적인 제도와 관행을 고안하고 복잡한 관료제를 실행함으로써 정치를 더없이 정치의 하위체계 안에 합리화시켰던 것 아닐까.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박정희체제는 완벽하게 비민주적인 정치적 권력이었다. 이는 “정치적인 것”의 공간, 즉 하위체계로서 정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공간인 “정치적인 것”의 공간을 질식시켰기 때문이다. 박정희체제가 수많은 자유민주주의적인 기본권을 제한하였다는 것, 자유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정당한 정치적 참여와 대표의 절차, 관행을 부정했다는 이유에서 비민주주의적인 체제였던 것은 아니다. 박정희체제의 특성은 정치와 “정치적인 것” 사이의 단락(短絡), 즉 하위체계로서의 정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정치적인 것”의 공간, 근본적인 사회적인 협약이 벌어질 수 있는 공간을 철저하게 가로막았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박정희체제가 불철저한 자유민주주의였다는 것, 충분한 법치국가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될 것이다. 박정희체제의 유산에서 벗어나는 민주주의의 기획이 고작 자유민주주의의 완성, 시민사회와 국가의 정상적인 관계를 정립하는 것으로 머물러서는 안된다. 정치 안에 더 많은 민주주의적 법률을 심어놓고 더 많은 민주주의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민주화가 축소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파시즘적인 형태로 정치를 정치의 한계 안에 가두었던 박정희체제의 논리를 단순히 뒤집는 것에 불과하다. 박정희체제의 파시즘적인 특성은 적나라하고 야수적인 국가 폭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박정희체제의 파시즘적인 특성은 하위영역으로서의 “정치 안에서의 정치”를 벗어나는 정치, 앞서 말한 대로라면 “정치적인 것”을 개방하는 실천을 배제한데 있다. 따라서 진정한 정치적 행위는 정치의 파괴로 즉 헌정질서의 문란과 정치의 파괴로 몰아붙인 데 있다. 따라서 정치적인 이견과 반대는 곧 정치 자체의 부정 그리고 반사회적, 반국가적인 행위로 규정되었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진정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적인 실천을 행한 주체가 있다면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이름은 “좌경용공세력”이다.
정치와 경제의 이분법을 넘어, 강제와 동의를 넘어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박정희체제의 또 다른 결정적인 특성을 발견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박정희체제를 정치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장애물인 정치와 경제의 도착적인 관계이다. 박정희체제를 둘러싼 숱한 정의와 분석은 바로 이런 정치와 경제의 도착적인 관계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박정희체제에 대한 비판의 자유주의적 논리가 어쩔 수 없이 갇히고 마는 불가피한 논리적 궁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조국 근대화와 한강의 기적의 주역으로서의 박정희체제와 폭압적인 정치권력으로서의 박정희체제 사이의 관계이다. 조갑제와 이인화를 비롯한 극우보수적인 이데올로그는 차치하고서라도 범박한 민중의 여론은 경제적인 근대화의 성과에 관한 한 박정희체제의 업적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좇는다. 가난을 숙명처럼 알고있던 국민에게 하면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안겨준 체제, 보릿고개의 빈궁을 넘어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던 국가를 중진국의 대열에 올려놓은 체제, 아무런 자원도 갖지 않은 나라에서 수입대체 산업화와 수출 주도의 공업화로 세계가 경악할 경제적인 성장을 이룩한 체제. 박정희체제를 항상 따라다니는 이같은 시중의 상식은 박정희체제의 연루자들이나 숭배자들에게 국한된 신화적인 믿음이 아니다. 이는 박정희체제의 비판과 극복을 위한 논리 속에서 그리고 바로 현존하는 정치의 인식의 지평 안에 끈덕지게 따라다니는 신화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박정희체제를 둘러싼 논란도 바로 이 언저리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박정희체제를 정의하기 위해 제시된 수많은 정치학, 경제학 분야의 유사과학적인 개념은 앞서 든 신화적인 믿음을 공고히 한다. 이미 박정희체제를 정의하기 위해 과대성장국가, 개발독재, 발전국가, 국가주의적 근대화수동혁명체제, 관료적 귄위주의론 등 여러 가지 개념들이 제시되어왔다. 이러한 개념들은 모두 암묵적인 논리로서 정치-경제의 분리와 두 하위체계의 긴장을 가정한다. 아마 이런 박정희체제의 인식론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근 출간된 {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에 실린 이병천의 말일 것이다.
“예컨대 박정희시대의 개발과 독재, 경제기적과 정치억압 사이에 과연 어떤 관련이 있는지, 나아가 한국 모더니티의 역사에서 개발독재와 민주화운동은 각기 어떻게 자리매김되어야 하는지 하는 기본문제에 대해서조차 본격적이고 충분한 학술적 토론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박정희시대의 성취를 애써 외면하는 ‘근본주의적 초비판’도 물론 문제지만 냉전 초국가주의·돌진주의의 위험성을 망각하는 ‘무반성적 승리주의’, 미성숙한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에 찬물을 끼얹는 박정희 우상화 담론이야말로 탈냉전 민주화시대 박정희 바로보기의 최대의 장애물이다.”
그는 박정희체제에 대한 보다 성숙한 인식이란 이름으로 개발과 독재, 경제와 정치를 대립시킨다. 한국자본주의 성격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비판적인 정치경제학자였던 그가 정치의 근본적인 우위라는 “정치경제학 비판”의 공리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만약 그것을 알고있지만 지금엔 그것을 부정하게 되었다면 그는 그런 입장과 결별하게 된 이유를 알려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어쨌든 위의 짧은 인용 글에서 보듯이 그는 “근본주의적 초비판”이란 이름으로 박정희체제의 정치적인 정체성을 비판하려는 입장을 극구 깎아내리고 있다. 물론 그는 ‘미성숙한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에 찬물을 끼얹는 박정희 우상화 담론’에 관해서도 비판한다. 그러나 박정희라는 정치지도자에 관한 우상화담론의 핵심이 바로 박정희라는 전직 대통령을 흠결 없는 영웅으로 이상화하는 성인전(聖人傳)적인 신화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정치와 경제의 구분 그 자체에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점에서 ‘근본주의적 초비판’이라고 그가 부른 입장은 ‘박정희 우상화 담론’과 대립적인 담론이기는커녕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조건 아닐까. 즉 탁월한 경제적인 성과를 이뤄낸 체제였지만 군사독재라는 비민주적인 정치체제라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논리야말로 근본주의적 초비판이든 우상화담론이든 대립적이기는커녕 상호보완적인 두 담론(?)의 조건 아니었을까. 이런 점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성숙과 시민사회의 복원을 주장하면서 박정희체제를 비판하는 자유주의적인 입장과 박정희체제의 경제적인 기적과 성과를 예찬하는 입장 사이의 유사성을 비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주목할 만한 비판은 이광일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 체제로의 이행이라는 변화의 흐름 안에서 박정희체제를 둘러싼 논쟁을 해석할 필요가 있음을 분명하게 밝혀준다.
“가장 일반화되어있는 박정권에 대한 다른 하나의 평가는 경제발전의 업적은 인정하지만 자유주의적 기본권리 등을 억압하였기 때문에 정치적인 측면에서 비판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평가는 경제(사회)와 정치를 서로 외재적으로(externally) 설정하고 양자의 내적 관계에 대해서는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고 있다. …… ‘국가 대 사회’라는 자유주의적 영합게임의 틀을 전제로 하는 이 입장은 그동안 제기된 모든 문제의 주요 근원이 국가의 권위주의적 개입에 기인하므로 국가의 경제개입 배제 및 시장경쟁 원리의 충실한 관철이 보장된다면 문제는 자연히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입장은 근대화론에 기반한 ‘기승전결론’을 신자유주의논리와 접합하여 수용한 ‘신근대화론’으로, 이제 제2의 경제도약을 기반으로 ‘정치적 민주화’만 공고화시키면 21세기에는 ‘세계 속의 한국(Korea in the World)을 구현할 수 있다는 논리를 함축하고 있다.”
앞의 인용문에서 단언하는 것처럼, 박정희체제의 정치적 과오와 경제적 공적을 분간하고 둘 사이에 균형잡힌 분석을 하자는 주장은 거부되어야 한다. 물론 이런 주장이 박정희체제 비판의 공간을 점유하게 된데에는 무엇보다 ‘자본주의 비판’의 위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체라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국가의 형태를 한국 자본주의사회구성체의 맥락으로부터 떼어낼 때 결국 우리는 정치와 경제를 분리시킬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정치와 경제의 외재성을 가정하는 논리를 극복하고 박정희체제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기획을 되살려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넘어가기 앞서 잠시 한가지를 지적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이는 박정희체제의 이데올로기 비판의 공간이 “강제였는가 동의였는가, 파퓰리즘이었나 합의독재였는가, 기동전이었는가 진지전이었는가” 등을 묻는 기존의 논의에 대해서이다. 박정희체제가 강권적인 국가폭력의 체제였는가 아니면 국민의 동의와 내면적인 동일시에 바탕하고 있었는가를 둘러싼 논쟁은, 박정희체제 비판의 기획을 계속하여 정치적인 빈곤에 허덕이게 만들어버린다. 비록 그런 논의에 내장되어있던 비판적인 함의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박정희체제 비판을 빈곤한 자유주의적 주권의 모델 안에 감금한다는 폐해에 견주면 무시할만한 것이다. 앞의 논의는 주권이라는 법의 모델 혹은 주권적인 개인의 계약으로서의 국가라는 모델을 보편화시킨다. 그 결과 박정희체제와 그 지배대상이었던 민중을 모두 정치적 주권성(sovereignty)으로 간단히 환원되어버린다. “인민은 어떻게 국가권력에 주권을 양도하였는가”라는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정초적인 환상은 언제나 국가권력을 강제와 동의, 합의와 폭력이라는 틀 안에 각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의 주권적인 법의 모델은 국가권력이 얼마나 강제와 동의였는지를 측정하느라 자신의 모든 정력을 소모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 비판의 공간을 밀폐시켜 버린다. 국가의 폭력과 일상의 폭력을 함께 분석하여야 한다는 정치 비판의 확장과 심화는,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정치비판을 자유주의적인 지평으로 계속 뒷걸음질치게 만드는 유혹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국가권력이 얼마나 강제였고 동의였는가, 합의였고 폭력이었는가를 묻는 물음은, 해체주의적인 말장난을 하자면 자유주의의 국가권력을 둘러싼 환상을 유지시켜주는 소급적인 환상, 즉 주권성의 신화를 대리보충(supplement)하는 수행적인 언표에 불과하다. 요컨대 그것은 박정희체제가 얼마나 전체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였는가를 분석하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박정희체제를 둘러싼 향수와 선망이 얼마만큼의 합의였고 동의였는지을 분석하기 위해 그토록 힘을 쏟을 필요가 있을까. 과연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차라리 그것은 모두 상식적으로 모두 아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뿐이라고 조롱받아야하지 않을까.
조국 근대화에서 민생까지 – 박정희체제의 생권력
우리는 박정희체제 비판을 지금의 민주주의의 기획과 결합시키기 위해 박정희체제의 정치경제학비판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박정희 향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자생적인 이데올로기를 분석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박정희체제에 대한 비판은 여러 갈래이다. 박정희체제의 정치적인 이념, 유신헌법과 국민교육헌장, 훈시와 포고, 담화문, 그리고 새마을노래의 가사 등에 등장하는 공식적인 교의로서의 박정희 이데올로기가 있다. 그것은 형식화된 지식, 관념, 교의 등으로서의 이데올로기이다. 지식인들은 주로 이를 겨냥하여 박정희체제를 비판한다. 다음으로 물질화된 이데올로기, 즉 학교, 가족, 경찰, 감옥, 군사제도 안에서 실행되는 관행, 의례와 캠페인 등이 있다 이를테면 “새마을운동”은 알튀세르 식으로 말하자면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원형이다. 이런 물질적인 이데올로기로서의 박정희 이데올로기는 박정희 향수론에 물든 극우보수세력들이 주로 의존하는 관점이다. 이들의 관점은 정확히 물신숭배적이다. 극우보수세력의 박정희 향수의 특성은 어느 철학자의 말을 비틀어 사용하자면 “정당화 담론”이 아니라 “우상화담론”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상화담론인 이유는 박정희체제에 대한 합리적인 이성을 통한 이해가 아니라 병적인 열광과 맹목적인 이해관심에 물들어있다는 뜻에서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물신숭배란 엄격한 뜻에서 진정으로 우상화이다. 우상화로서의 이데올로기는 바로 이데올로기의 물질적 장치로부터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즉 박정희체제의 의례적인 실천, 관행, 기념물(경부고속도록, 포항제철, 구미수출자유공단 등)로부터 그리고 그것이 각인해 놓은 신체적인 기억, 삶의 활력과 열정이라는 정서적인 힘의 반복충동. 극우보수세력은 그런 점에서 박정희체제의 “이념”에 호소하지 않는다. 조갑제와 이인화를 비롯한 박정희 “우상화담론”의 열성적 이데올로그는 그런 점에서 한결같다. 그들은 박정희체제를 둘러싼 정치적인 논쟁 자체를 불신하고 혐오한다. 박정희체제를 정당화하는 것 자체가 자유주의적인 수다, 공허한 민주주의적인 일탈로 박정희체제의 삶의 정수를 배반하는 지식인적인 불평에 동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이는 모든 파시즘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또 한가지 이데올로기적인 차원이 있다. 그것은 박정희체제에 관한 자생적인 이데올로기이다. 그것은 거칠게 말하자면 국민의 기억 안에 담겨있다. 과거사 청산을 둘러싼 논의에 대해 나타나는 전반적인 염증과 혐오는 민생에 관해서나 신경쓰라는 것이었다. 참여정부의 4대개혁입법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격 역시 민생정치였다. 열린우리당의 보수적인 분파들이 국가보안법폐지와 과거사청산을 비롯한 주요한 현안에 대하여 거리를 두기 위해 동원하는 논리 역시 민생 우위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민생의 이데올로기를 우리는 바로 자생적인 이데올로기의 표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박정희체제의 경제적인 업적에 대한 퇴행적인 향수가 아니다. 차라리 박정희체제라는 권력에 대하여 맺는 혹은 그 체제가 권력 일반에 대하여 맺도록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적 관계의 모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수 있다. 우리가 박정희체제의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박정희체제의 권력 비판을 완결할 수 없다고 말할 때 염두에 두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박정희체제라는 특수한 자본주의에 대한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중단해서는 안된다. 박정희체제가 어떻게 주체성을 만들어놓았는지 분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근대 자본주의의 독특한 생권력(biopower)으로서 박정희체제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셀 푸코는 그의 생애 후반부에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계보를 추적하며 근대자본주의의 권력에 대한 분석을 확장하려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사후 그의 이론적인 작업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1976년에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이뤄진 강의를 기록한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이다. 이 글에서 푸코는 나치권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분석을 제시한다.
“나치사회의 특이한 점은 생권력과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주권이 사회전체에 확산된 사회라는 점이다. 시민을 마음대로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한을 국가에게 허용하는 고전적이며 구시대적인 메커니즘과 규율 및 조절 주변에 형성된 새로운 메커니즘, 즉 생권력이 메커니즘이 정확하게 한데 합쳐져있다. 그래서 나치국가는 자신이 정돈하고 보호하고 보증하고 생물학적으로 배양하는 삶의 장과, 누구든지-타민족이 아니라 자기고유의 국민들까지도-죽일 수 있는 주권을 공존시킨 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위에서 인용한 푸코의 글을 정확히 박정희체제에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박정희체제야말로 생권력의 화신이다. 박정희는 국민이 따뜻한 쌀밥을 배불리 먹고 기와집에서 살게 하는 꿈을 꾸었던 도착적인 모습의 근대 군주였다. 그가 도착적이었던 것은 파시즘의 핵심적인 특성이 그렇듯이 살리기 위해 마음껏 죽였다는 점에 있다. 즉 삶을 위해 죽음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아리안 인종의 삶, 독일 국민의 생명을 위해 생식과 진화라는 생물학적인 논리(우생학과 사회위생학 등)를 동원했던 나치즘은 생명, 삶에 미친 권력이었다. 이처럼 박정희체제도 역시 국가의 부강과 국민의 안녕을 위해 마음껏 죽일 수 있었다. 긴급조치와 반공법으로 상징되는 죽일 수 있는 군주적 권력은 번영과 행복이라는 근대적 생권력과 함께 회전하였다. 알다시피 박정희는 평생동안 자신이 복지사회를 위해 매진하고 있다고 믿었다. 예컨대 유신체제의 수립 직후 박정희는 이렇게 강변하였다.
“우리가 남보다 뒤지지 않고 앞서 나가려면 남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고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겠으며 능률을 극대화하고 국력을 배양하여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야할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서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고, 그 터전 위에서 평화통일을 추구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하자는 것이 10월유신인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체제는 단순히 억압적인 정치체제로도 후후발 산업화 국가의 효율적인 경제체제로도 환원할 수 없는 독특한 권력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국민을 순수한 상태의 삶, 즉 건강과 생명, 행복이라는 상태로 환원하는 권력이었다. 따라서 나치즘에 있어 유태인의 학살이 순수한 삶의 형상으로 둔갑한 독일 국민의 진화와 안녕을 위한 것이었다면 박정희체제는 그에 대응하는 인종주의를 가지고 있었다. 근대 사회에서 인종주의란 지배받는 대상으로서의 국민을 인구(population)로 치환하면서 탄생한 정치적인 테크놀로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인종이란 건강과 장수, 안전과 행복을 위해 보호받아야할 정상인과 병자, 범죄자, 정신병자로 분류된 주민, 인구의 종이기도 하고, 인구의 조절과 관리를 위해 구분되는 남성과 여성,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이기도 하며, 유전적인 기질과 특성에 따라 구분된 좁은 의미에서의 인종적인 종(類)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종주의란 특별한 이념도 아니고 정책도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자신의 울타리 안에 통치하는 자와 통치받는 자 사이에 설정한 지배의 합리성이며 이를 실현하는 다양한 기술과 제도, 관행의 복합체일 뿐이다. 그렇다면 박정희체제의 인종주의란 무엇일까. 박정희체제가 생물학적인 종(species)으로서의 인종, 생명 혹은 삶의 주체로서의 국민을 상대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상기되는 박정희체제란 삶, 생명을 돌보는 권력의 형상이다. 배고픔, 질병, 무지, 실업, 부패, 게으름, 이 모든 삶의 위협과 박정희체제는 투쟁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극악한 죽임의 체제였던 박정희체제야말로 국민의 삶을 극대화하려고 했던 권력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새마을운동과 유신체제가 같은 동전의 이면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근면, 자립, 협동을 통해 보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하는 국민과 부패, 자조, 게으름에 빠진 국민을 구분하며 훈육과 통제를 실행했던 새마을운동. 따라서 새마을운동이야말로 원형적인 생권력의 테크놀로지가 아닐까. 그렇다면 박정희체제의 유태인은 누구였을까. 물론 좌경용공세력 혹은 더 확대하자면 북한이었을 것이다. 박정희체제의 반공주의와 반북주의가 공산주의체제에 대한 이념적인 부정으로 환원하는 것은 전연 오해일 것이다. 권력이 마음껏 유린할 수 있고 처치할 수 있는 비정치적인 생명으로 환원된 좌경용공세력과 간첩. 이들이야말로 아감벤이 말했던 저 유명한 “호모 사체르(homo sacer)”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인 공동체 안에 더 이상 속하지 않은 “벌거벗은 삶(bare life)”, 순수한 생명으로 환원된 대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거리낌없이 죽을 수 있었고 죽여야 했다. 삶을 위해 살아가는 국민 그리고 그와 연결된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외부, 그것이야말로 유태인의 세계였고 간첩과 좌경용공세력, 그리고 북한 아니었을까.
박정희체제의 비판에서 신자유주의 비판으로
우리가 박정희체제를 그토록 오랜 동안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 그는 애꿎은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살해하고 고문한 독재자였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았는가. 그는 우리를 빈곤과 질병, 기아와 부패로부터 구제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박정희체제를 둘러싼 이런 직접적인 향수에 박정희체제는 가둬져 있지 않다. 민생의 이데올로기는 박정희를 더 이상 언급하지 않지만 박정희체제를 재생산하는 자생적인 이데올로기이다. 민생의 이데올로기란 자신의 행복과 안전을 돌보는 자기(the self)가 되어버린 국민적 주체의 에토스이다. 민생(民生)이란 이름으로 압축되는 인민의 삶, 나치즘의 용어를 빌자면 민족의 신체(Volksk rper), 그것이 박정희체제의 유령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유산이다. 그리고 진중권이 생체권력으로서의 박정희체제가 국민들에게 각인한 바이오코드라고 불렀던 바로 그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권의 이름으로, 시민사회란 이름으로 박정희체제를 비판하는 것이 왜 불충분하고 불가능한지 자각해야 한다. 우리는 인권의 이름으로 장식된 추상적인 민주주의와 삶의 권리란 내용으로 충만한 “한국적 민주주의” 사이에서 오갈 데 없이 엉거주춤 서있다. 그 불안한 표류의 자리에서 박정희체제의 유령은 죽지 않고 살아 날뛴다. 민생의 이데올로기에 갇힌 주체는 바로 박정희체제의 유령에 홀린 주체이다. 박정희체제는 자신의 삶을 돌보는 자기에의 배려와 국민의 삶을 돌보는 권력의 행사를 일체화시켰다. 그리고 그런 권력의 이데올로기가 바로 민생의 이데올로기이다.
지금 우리가 무력하게 휩쓸려 들어가고 있는 전지구적인 자본주의체제는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포괄적인 집합적 삶으로서의 인구, 즉 주민으로서의 삶을 인구로서의 삶을 돌보는 권력은 퇴장하고 있다. 포드주의적인 복지국가의 퇴락이 그것을 보여준다. 설령 존재한다하더라도 그것은 점차 쇠퇴하고 있다.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은 바로 자율과 책임의 개인이다. 우리는 이것이 신자유주의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자본주의 권력이 삶의 권력을 작동시키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는 간단히 말하자면 사회와 경제의 구분을 삭제하고 모든 사회적인 삶의 행위를 경제적인 합리성의 모델에 따라 정의하고 조직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더 이상 인구는 전과 같은 국민적 주체가 아니라 스스로를 책임지는 자율적인 시민, 기업가적인 개인과 그들의 네트워크로 된다. 한국사회에서 인플레처럼 사용되고 있는 시민사회란 용어야말로 우리 시대의 인구를 가리킨다 할 수 있다. 새로운 권력은 전보다 더 생권력을 극대화시키고 전면화한다. 노동력과 임금은 인적 자원으로 둔갑하고, 사회적 보장과 공중보건, 고용, 주거, 교육정책의 대상으로서의 국민은 “생산적인 복지를 책임지는 개인”, “능력개발에 애쓰는 자기”, “자유계약자이자 인적 자본으로서 자신을 책임지는 기업가적 노동자”, “자기주도적인 평생학습에 진력하는 나”로 바뀐다. 이는 모두 자신의 생명, 삶을 위해 애쓰는 새로운 자본주의적인 주체이다. 국민의 정부 이후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진행된 일련의 한국 사회의 구조조정은 바로 박정희체제의 권력을 조정하고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의 권력을 조형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 탈냉전 민주화 시대의 권력이 박정희체제와 단절한 체제라는 믿음은 자유주의자들의 정치적 환상 속에서나 가능한 것일 뿐이다. 박정희체제는 생권력의 주체로서 국민을 주조하였고 이는 지금에도 여전히 잔존하고 또한 배가되고 있다.
따라서 박정희체제의 비판이 현재의 비판을 위한 기획이라는 모두가 동의하는 입장을 제대로 실현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신자유주의적인 체제로서의 한국 자본주의 비판을 우회할 수 없다. 물론 그것은 신자유주의 비판을 더 많은 사유화, 더 많은 탈규제, 더 많은 고용유연화를 비판하는 것으로 한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우리는 이런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으로 인해 초래된 실업과 빈곤, 삶의 위기를 겪고 있고 또한 충분히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이라면 굳이 신자유주의란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다. 그것은 그저 언제나 존재하던 반민중적인 정책, 자본의 전략의 한 종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인 이행이란 곧 한국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변형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권력을 형성한다. 우리가 박정희체제 비판에서 또한 과거사 청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바로 오랜 동안 건망증에 빠진 채 있고있던 자본주의 비판의 기획을 되살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이 정점에 달해있는 지금 박정희체제의 비판은 자유주의적인 사유의 유혹에 굴복하고 변화된 체제가 요구하는 주체의 형상을 축복하는 늪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반대의 방향으로 달려갈 수도 있다. 박정희체제의 국민을 자본주의의 근대적인 주체의 계보학 속에서 사유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사유의 씨앗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탈냉전 민주화가 고무하는 관용과 존중의 민주주의, 자유자본주의적인 민주주의를 넘어 우리의 사회적 삶의 세계를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민주주의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체제의 비판이 어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인가를 잊는다면 잃는 것은 민주주의 그 자체가 될 것이다. ■

“박정희 체제의 비판 – 어떤 민주주의를 위해 비판할 것인가”에 대한 2개의 생각

  1. <애도의 정치학>은 문익환 목사님의 추도사 대목에서 눈물이 좀 핑 돌았습니다. 이 글을 읽고 ‘민생을 보살핀다’는 말을 그렇게 당연한 말로 단순하게 받아들일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눈뜨게 되었습니다. ‘소수자’ 인권에 관한 글에서 동성애는 왜 생기는가 라는 질문속에 전제된 정치성에 대한 언급은 참 따끔했습니다. 이런 글들을 읽을 수 있는 이 공간이 정말 소중해졌습니다. 선생님께 원고료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인데…감사하다는 말만 이렇게 남깁니다.

  2. 감사합니다. 으음..입금계좌 알려드릴까요? 원고료 입금해주시게.. 가끔 들러주셔서 좋은 이야기 많이 들려주세요. 그러면 충분히 보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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