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그리고 “운동”의 정치를 생각한다


M. Ward, Hold Time

이명박 정권의 패악이 날로 더해가고 있다. 이를 낱낱이 꼽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저 우리가 할 말은 “더 말 해 무엇해” 정도일 것이다. 이에 더해 우리는 현 정권의 무능에 마치 숨이 멎을 것같은 기분이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폭발한 신자유주의적 금융위기가 세계를 뒤덮은 연후 한국 사회는 거의 비명을 지를 지경에 이르러있다. 당연 경제 살리기를 제 소명으로 내세웠던 현 정권이 어떤 능력을 발휘할지 기대할 만도 하다. 그러나 현 정권이 내놓는 정책과 대안은 무엇 하나 변변한 것이 없다. 현재의 경제적 위기를 수습할 능력은 차치하고라도 과연 이 정권이 한국 사회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지조차 불투명하다. 분배보다는 일단 성장이 우선이라는 애용하던 한국 보수 세력의 논리가 이번엔 통할 처지도 아니다. 이미 마이너스 성장이란 예측이 분분하고 함께 견뎌보자고, 긍정의 사고를 하자고 아무리 독려하고 설레발을 쳐도 불안과 낙담을 이길 재간이 없어 보인다. 그에 한 술 더 떠 이 저열한 정권은 제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했단 이유로 과격한 운동가도 아닌 인터넷의 경제평론가를 찾아내 구속하는 짓까지 저질렀다. 그가 내놓은 경제적 예보가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라 매체를 통해 발언한 시민을 구속했다는 것이 더 문제라는 것을 현 정권은 내내 모르쇠 한다. 따라서 용산 참사를 전후하여 청와대에서 흘러나왔다는 신종 보도지침은 놀랄 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좋은 일이다. 이명박 정권이 등장했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역사적 퇴행이겠지만 그 퇴행이란 것도 역시 한국 사회의 민주화의 효과겠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정치적 절차를 마련했고 이명박 정권은 바로 그 투표를 통해 집권하였다. 그와 그를 후보로 내세운 한나라당의 정치적 반동 혹은 역주행은 반민주적인 쿠데타도 정변도 아닌 어떤 정치권력을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주권적 행위를 통해 이뤄진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선택이었다는 것 때문에 더 수치스럽고 굴욕스럽다 개탄한다 해도 그것이 엄연히 1980년대 민주주의적 투쟁과 그것의 성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것까지는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니 우리는 더욱 과감한 주장을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명박 정권은 무능한 좌파 정권을 심판한다는 터무니없는 데마고그를 통해 집권하였다. 그것은 어쨌거나 선거가 ‘정치적’인 행위라는 점을 보여주는 증좌이다. 그렇기에 외려 역설적으로 그것은 아주 기쁘게 받아들여야 할 사실일지 모른다. 그것은 선거가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는, 즉 어떤 정치적 선택도 운반하지 못한 채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훌륭한 ‘국가적’인 통치 행위 가운데 일부로 전락하지는 않았음을 보여주는 징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서 프랑스의 철학자 바디우가 사르코지 정권의 등장을 두고 내놓았던 짧은 분석을 떠올린다. 그는 사르코지 정권의 등장을 프랑스의 정치적 역정 속에서 하나의 이변에 해당한다고 아니 과감하게 말하자면 어쩌면 프랑스에서 정치의 종말에 가까운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것은 거칠게 말하자면 이럴 것이다. 종래엔 어떤 선거였다 할지라도, 비록 그것이 제 아무리 희박하게 투영되는 것이었다 해도, 선거는 ‘정치적’ 절차, 즉 좌인가 우인가를 선택하는 것, 다시 말해 어떤 세계에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행위에 육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바로 그런 정치적 절차로서의 선거가 이제는 순전히 ‘국가적’ 절차로 환원되는 것, 바디우 스스로의 말을 빌자면 “국가적 형식, 자본주의적 의회주의의 형식에 편입”을 알리는 사태이다. 바디우가 보기에 사르코지 정권은 그가 신패탱주의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어냈다. 그것의 특징은, 거칠게 옮기자면, 불안과 공포를 정치적 경험의 감각 속으로 대량 투여하면서, 정치를 제거한 정치, 다시 말해 불안과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우리 사회를 지켜야 하는 일로서의 정치가 바로 정치라는 반정치적인 정치의 세계를 열어놓았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사르코지를 선출한 선거는 더 이상 정치적 선택이 아닌 것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가 묻듯이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합법적인 정치적 절차가 선거뿐이라면 그리고 그 선거가 더 이상 정치가 아닌 국가의 품 안에서 움직이게 된다면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정치적 행위의 길은 무엇일까. 과연 ‘해방적 정치’를 위한 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이 점에서 우리는 이명박 정권의 등장에서 앞서 말한 것과는 전연 양립하기 어려운 특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명박 정권은 어쨌든 민주화의 효과라는 것 속에서, 여전히 선거가 정치적인 선택과 결정의 절차로 작용한다는 조건 속에서 등장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는 조금 시선을 비틀면 그것이 또한 반대의 모습 속에서 포착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명박 정권은 그간의 선거에서 비록 실패와 좌절을 거듭했다하더라도 언제나 관류하던 특성, 즉 정치적 절차로서의 특성을 완전히 제거한 선거를 통해 등장했다. 무능한 좌파 정권을 심판하는 보수 정치세력임을 자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경제 살리기”라는 신화적인 주문(呪文)이었다. 그것은 사회적 삶의 세계를 조절하고 규정하는 원리라고 해야 할 정치는 존재하지 않는, 만약 그래도 정치란 것이 남아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사회를 온갖 불안과 공포로부터 보호하는 일이 되어버린, 그런 정치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민주화 이후에 우리가 확보한 민주주의적 행위, 그것의 또 다른 이름일, 정치적 절차로서의 선거가 마감되는 하나의 역사적 계기일지도 모른다.
사회의 효율적인 경영이란 이름으로 둔갑해 버린 정치,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국가 경영의 CEO를 뽑는 일로 전락해 버린 선거가 우리 손에 쥐어진 전부라면 결국 우리는 한국 현대사에서 참으로 유례없는 정치의 황혼기에 놓인 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낙망할 일 만은 아닐 것이다. 헌법을 통해 혹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법률적인 합의와 보장을 통해 마련된 절차, 즉 선거를 경유하여 온전히 정치를 실행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 현대사 속에서는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외려 우리가 더 익숙해 있고 심지어 더 능통한 것은 바로 ‘운동’, 즉 정치 없는 정치를 정치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정치가 정치로서 구실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운동을 통해 해방적 정치를 지속하였고 정치가 사회의 경영과 관리란 역할 속으로 봉쇄되지 않도록 투쟁하였고 그 결과 운동권이란 영예로운 이름을 만들어 냈다. 운동권 혹은 민중운동은 국가가 국민 혹은 시민을 호명할 때 민중이란 이름을 내세우며 어떤 체제 속에서 살 것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주체로서의 자리를 점유하고자 분투하여 왔다. 그것은 민주주의를 탈국가화시키면서 동시에 선거를 비롯한 일련의 민주적 절차들이 온전히 정치적 행위의 공간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위력을 발휘하여 왔다. 그리고 아마 이는 1987년의 ‘민주화’를 되새기는 방식 가운데 하나일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는 바로 정치가 국가 경영이란 이름으로 정치를 추방할 때 국가가 집행해야 하는 결정적인 일이 바로 자신을 영원한 선택의 대상으로 되돌려 놓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를 통해 국가와 정치 사이에 어떤 일치도 있을 수 없음을 규정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민주화 이후’의 세계에서, 무엇보다 이명박 정권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민주화의 효과가 중단되는 역사적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눈길이 ‘운동’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운동은 민주주의와 국가 사이에 거리를 만들고 국가의 행위로 민주주의가 유괴되지 않도록 하는 결정적인 힘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치(권)과 운동(권) 사이에 놓인 긴장과 거리는 선거를 비롯한 사법적인 민주주의적 절차가 겪는 운명보다 더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몫이다. 그리고 그러한 절차가 구성하는 정치적 활동의 형식인 대표의 정치, 정당 정치 같은 것보다 우리가 응당 정치적 사유라고 할 만한 것을 경주해야할 영역도 바로 운동의 정치이다. 그렇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촛불 시위’가 문제적이다.
또 다시 촛불이냐고 푸념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1987년 이후 가장 강렬하고 심지어 화려했다 할 정치적 동원인 ‘촛불 시위’가 정작 아무런 정치적 효과도 만들어내지 못한 데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을 우리라고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짜증과 혐오를 견뎌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특히 정치적 사유를 지속시키고자 한다면, 더욱이 더 이상 정치엔 희망이 없다는 체념적인 반동적인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고통스럽지만 ‘촛불 시위’에 대하여 사유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당비의 생각’ 두 번째 권이 마련되면서 견뎌야 했던 심리적 긴장이 있다면 바로 그것일 것이다. 다른 주제를 놓고 고심했지만 우리는 ‘촛불’에 대한 면밀한 반성 없이 우리의 정치적 사유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촛불 시위를 ‘운동의 정치’의 위기 속에서 사유할 필요를 절감했다. 그것은 앞서 말했듯이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의 관계를 사유하기 위한 필수적인 질문을 구성한다.
1부에서 우리는 촛불을 ‘운동의 정치’로서 분석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촛불을 민주주의적 사태로 무조건적으로 단언하려는 암묵적인 주장에 거리를 두려는 것이다. 촛불을 민주주의적 사태로 확정하려면 그것이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을 따져보아야 한다. 물론 이는 가장 크게 촛불의 주체를 정치적 주체로서 반성하는 일이다. 그들은 과연 민주주의의 정치적 주체인가. 먼저 우리는 ‘촛불 좀비’의 일원이자 촛불 현장에서 가장 뜨거운 발언자였던 한윤형의 글을 볼 수 있다. 그는 금기의 선, 폭력과 비폭력이란 망상이 어떻게 민주주의적 투쟁으로 촛불시위가 진화하는 것을 제약했는지 분석한다. 그리고 촛불이 어떤 세계에 살 것인가를 선택하는, 정치적 결정의 행위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하는 촛불 시위가, 이데올로기적인 코미디 속으로 즉 뜻밖에도 지배 질서가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적인 플롯(폭력인가 평화인가)에 통합되어갔음을 고발한다. 한편 백승욱은 운동의 정치로서 촛불 시위에 관하여 준열한 반성을 시도한다. 축제적인 열정 속에 사로잡혔으면서도 해방적인 정치의 주체로 스스로로 전화할 문턱을 넘지 못하는 주체, 더 없이 신자유주의적인 삶의 문법을 쫓는 소비적 개인이었으면서 수평적인 연대를 가능케 하는 자기전화 앞에서는 가로막힌 주체, 바로 그것이 촛불에 참여한 주체의 초상이었을 해부한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모순적인 주체를 변형하고 전화시키는 운동의 정치가 없다면 촛불은 해방의 정치를 만들어가는 계기로 구실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택광은 촛불을 욕망의 정치란 점에서 분절하고자 한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욕망의 기제 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부르주아적 욕망의 구조와 동일시한 시민 주체가 자아낸 욕망의 환등상이란 것이다. ‘쾌락의 평등주의’라는 욕망에 에워싸인 주체가 촛불의 스펙터클에 유혹당하며 만들어낸 그림자 극장이 촛불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그는 이렇게 불쑥 묻는다. 마지막으로 유영주는 촛불이 ‘거리의 정치’에 머물 뿐 ‘운동권 정치’로 전환하지 않은 이유를 따진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반문한다. 그것이 제 아무리 운동권이 만들어낸 ‘정치문화’를 뛰어넘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운동권 ‘이상(以上)’이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권력을 향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내야 하지 않을까. 그는 이런 자신의 주장을 다듬기 위해 우리 모두 익숙했던 촛불을 둘러싼 네 가지의 장면을 파헤치며 그것이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낼 선택, 그리고 그것을 부를 또 다른 이름인 ‘대안’을 제출하지 못한 채 ‘현존하는 질서’를 옹호하는 사태로 전락해 갔음을 토로한다.
2부는 촛불의 ‘문화 정치학’을 짚는다. 촛불은 다양한 문화적 감성과 의례, 상징과 지식들이 동원된 실천이었다. 통속적이거나 전문적인 과학 지식과 정보들이 투입되고 괴담과 학술적 논쟁이 공존하며 직접적인 욕구가 분출하면서도 공동체적인 열광을 조직하는 도덕적인 열기가 뒤덮기도 하는 복잡한 문화적 역학이 촛불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상길은 촛불의 ‘모랄’을 읽으면서 촛불이 어떻게 자신의 정치적 효력을 제한했는지 분석한다. 그는 촛불의 모랄이 순수성에의 집착이라는 모랄을 내세우며 ‘불결한 것으로서의 정치’, ‘오염된 것으로서의 현실정치’라는 부정적 상상 속에서 정치의 현실적 세계와의 만남을 회피하고 거부하였음을 꼬집는다. 한편 앞서의 이상길과 궤를 달리하는 탈근대적 종교 현상으로서 촛불의 성스러움을 읽는다. 그는 사회적 요구를 제기하는 시민이길 멈추고 정치적 주체로 도약하기 위한 계기를 촛불의 시민종교적 특성에서 찾아보고자 입론을 제시한다. 한편 김정한은 촛불 직후 이뤄진 서울시교육감 선거의 결과를 짚어보면서 이를 지난 20년간 한국에서 전개된 사회운동과 정치의 관계 속에서 반성한다. 그리고 폭발적인 사회적 저항이 ‘선거’를 제외하면 효과적인 정치적 행위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아나키즘적인 유혹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회운동의 모델이 도래해야 함을 역설한다. 과학은 현대의 신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불안과 공포를 촉발하는 원천으로서 또는 그것을 길들이고 내면화하는 처방으로서 도처에서 소비된다. 오철우는 촛불에도 예외 없이 등장한 과학적 지식의 대량 소비를 분석하면서 이것이 괴담과 진실의 프레임 아래 어떻게 사회적 쟁점을 탈색하고 제거하였는지 비판한다. 이재현의 글은 최근 우리를 경악케 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구속 사건을 통해 촛불이 만들어낸 대항적 헤게모니 혹은 그것을 구성하는 주체의 문제를 짚는다. 애매하고 막연한 불만과 공감을 통해 형성된 촛불이 효과적인 정치적 행위로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물론 거기에 참여하는 주체가 자신을 지배받는 주체로 스스로를 의식화하는 것이다. 이재현은 미네르바를 의식화의 모범적 선생 혹은 유기적 지식인으로 꼽으며 촛불 이후의 정치적 주체화에 관한 토론에 흥미로운 논점을 마련한다.
마지막으로 3부는 촛불에 참여한 주체들의 정체성을 보다 섬세하게 짚어보고자 시도한다. 김영옥은 촛불의 70퍼센트를 차지했다는 여성 주체에 관하여 은수미는 ‘내 새끼 이기주의’라는 욕망 속에서 촛불을 달군 중산층에 관하여 그리고 김보경은 배제된 사회적 주체들 속에서 구성된 촛불 주체의 보수적인 정체성에 관하여 각기 날카로운 분석과 성찰을 던진다. 김영옥은 생명권력(biopower)을 동원함으로써 움직이는 신자유주의적 국가 형태와 삶권력적인 역량을 배가하게 된 여성 주체가 대립하는 역사적 국면을 짚어내며 여성이 정치적 주체로서 국가와 어떻게 상대하여야 할지 질문한다. 은수미는 촛불집회가 비정규직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배제한 채 이뤄진 중산층적인 욕망의 무대가 아니었는지 조심스럽게 따지며 연대의 정치를 가능케 하는 촛불 이후의 운동을 탐색한다. 김보경은 촛불 이후 우리가 마주친 가장 경악스런 사건일 ‘용산 참사’를 떠올리며 선량한 시민이자 안정된 사회성원으로서 자신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촛불을 관통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것이 연대의 정치로서 촛불이 진화하는 것을 가로막지 않았는지 짚는다.
‘당비의 생각’이 두 번째로 마련한 이 책이, 앞서 앞에서 던졌던 물음에 온전히 그리고 확정적인 해답을 제시한다고 너스레를 떨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시도하려 했던 것은 무엇보다 어떻게든 지금 우리는 어떤 식으로 정치를 사유하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조망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더 화급하게 물어야 할 일은 정치적 정세보다 우리가 그것을 반성하고 비판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고의 정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사유하고 반성하고 있는가를 묻는 일보다 우리에게 더 절실한 일은 없다고 믿는다. 우리가 이 때늦은 책에서 시도하려 했던 것도 사유의 특성 가운데 하나라고 해 마땅할 필연적인 뒤늦음, 시쳇말로 사유한다는 것의 ‘뒷북치기’를 기꺼이 떠맡으려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반성하고 판단하고 있는지 윤곽을 그려보려는 작업보다 지금 우리에게 더 필요불가결한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유의 책임을 함께 나누어 가질 필자들을 초대하였고 그들에게 우리가 던질 질문을 함께 다듬어갈 것을 부탁하였다. ‘당비의 생각’의 뒤늦은 그리고 적잖이 삐딱한 뒷북과 공명하며 날카로운 비판과 토론이 이뤄지길 기대하여 본다.
– 당비의 생각 2번째 권의 서문으로 쓴 글

신자유주의와 미술의 검은 무도회에서 퇴장하기 위한 출구는 어디에 있는가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Have you ever seen the rain?

일전 어느 미술 관련한 토론회에서 들은 말이다. 꽤나 유명한 대안미술관을 운영하던 그 사람은 단호하게 현대미술의 트렌드를 열거하면서 지난 10년간 현대미술의 핵심적 변화 가운데 하나로 미술의 금융화를 단호하게 꼽았다. 그가 말한 미술의 금융화란 미술이 상품으로서 거래되는 방식과 경로가 더 이상 미술관을 비롯한 공공기관 혹은 개인 수집가들이 소장하거나 전시하기를 위한 것에 머물지 않고 효과적인 금융상품으로서 즉 투자 대상으로서 유통되고 소비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런 움직임이 1980년대 이후 서구 미술에서 아방가르드적인 혹은 유사 아방가르드적인 미술운동이 소멸하면서 등장한 이런저런 움직임과 깊이 관련이 있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Ba; young British artist)’나 ‘중국 현대미술’ 열풍은 물론 금융세계화라는 경제체제의 논리가 맹위를 떨치는 것과 떼어놓을 수 없다. 어쨌거나 ‘아트펀드’와 같은 파생금융상품이 만들어지고 단기적인 투자이익을 기대하며 미술작품을 대하는 것이 21세기 초반의 미술제도를 정의하는 중요한 징후 가운데 하나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요즈막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미국의 주요 투자은행의 파산이나 그를 뒤이어 주요 거대 은행의 파산 위기를 대하다 보면 또한 금융화된 미술-상품의 처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물론 나는 금융화한 미술시장의 붕괴라는 시나리오를 예상하려는 것은 아니다. 외려 우리가 생각해야 볼 것은 미술시장의 미래가 아니라 금융화한 미술이 연루된 미술체제의 효과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산만하고 애매한 용어이다. 신자유주의란 신장개업한 자유주의적 이념 혹은 지적인 이상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고 또 197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난 정치적 관리 모델의 변화를 이르는 것이기도 하다.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고 공적인 부조를 삭감하며 시장을 통한 조정으로 경제 질서를 관리하는 등의 경험적 현실을 서술하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미술, 나아가 미적 현실(aesthetic reality)과 신자예유주의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정치적 현실이나 경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신자유주의란 개념은 어떤 변경을 가하지 않으면 그다지 쓸모가 없다. 그런 연유로, 프레드릭 제임슨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일러 사용했던 표현을 빌려 써, 신자유주의를 “후기자본주의의 문화적 혹은 미적 논리”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신자유주의를 생각하려면, 당연한 말이겠지만, 신자유주의를 단순히 눈앞에 펼쳐진 객관적이고 경험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데올로기’로서 취급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를 변화된 자본주의가 현실을 표상하고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낸 인식과 체험의 원리로 생각해보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 나아가 그것의 미적인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몇 가지 특징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무엇보다 그것은 아서 단토같은 사이비 헤겔주의적 미술이론가가 떠들어대는 “미술의 종말”이란 단언으로부터 미술에서의 신자유주의적 사유의 진면목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미술의 종말이란 거칠게 말해 아방가르드적인 미술 다른 말로 하자면 지성적인 행위로서의 미술이 종말을 고하게 되었음을 떠들썩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미술의 종말 이후의 미술을 말할 때, 그것은 미술이라는 감성적인 실천이 미술 안팎의 세계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통해 변혁이나 해방같은 이상을 꿈꿀 필요가 없는 미술, 즉 이제 지성적인 규범(전위, 새로움, 삶과 예술의 일치 등)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은 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혹은 무엇이든 미술이 될 수 있는 미술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따를 때 놀라운 점은 더 이상 그것이 미술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외려 그것은 미술의 종말을 외칠 필요조차 없는 미술의 소멸을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근대 사회에서 예술 나아가 미술이 제의적이고 장식적인 기능으로부터 해방되어 스스로를 미술로 명명할 수 있는 자율적인 행위가 될 때, 그것은 무엇보다 감성적인 것을 통해 지성적인 행위를 한다는 조건을 따를 때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방가르드는 근대 미술의 지나간 유행이 아니라, 실은 근대 사회에서 미술이 존립하기 위한 근본적인 조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방가르드란 유령으로부터 해방되어 미술이 미술다워질 때 잃는 것은 미술 자체일 것이다.
‘미술의 종말’ 버전 따위가 이야기하는 그 것, 즉 미술이 그간 짊어졌던 지성적인 짐으로부터 벗어남이 후쿠야마 식의 역사의 종말과 궤를 같이 하는 것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는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미술을 혹은 미술이 어떻게 신자유주의를 전유하는지 이해하는데 관건이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더 이상 다른 세계가 없다는 폐소공포증적인 협박이라면 그것은 또한 전지구적인 미술체제를 통해 다양한 미술적인 실천을 규제하는 이데올로기가 되기도 한다. 가장 구체적인 예로 우리는 미술가의 사회적 정체성 혹은 작가의 페르소나를 규정하는 새로운 언어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지난 20년간 미술 교육에서 거의 관례처럼 강조된 것은 바로 ‘포트폴리오’의 제작과 작가로서 자기 서사를 구성하라는 끈덕진 압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자기 자신을 돌보고 책임지며 나아가 홍보하고 광고하는 예술가, 즉 기업가(entrepreneur)화된 예술가의 형상은 매우 독특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유파, 스타일, 정치적 그룹 등에 속해 있는가 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브랜드화된 페르소나”가 출현하고 그것이 기존의 예술가적 정체성을 대체하는 것은 분명 현대 미술 제도에서의 중요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이는 이미지, 사운드, 텍스트 자체를 상품으로서 판매하는, 신자유주의를 경제적 행위의 논리로 번역하는 자동언어기계라고 할 신경영담론의 표현을 빌자면, 비가시성의 경제 혹은 기호와 상징의 경제는, 미술과 상품 사이의 경계를 한층 좁혀놓거나 아니면 숫제 그 거리를 삭제한다. 미술작품이 별개의 대상으로 취급된다고 해도 미술과 다른 비예술적 상품 사이의 거리는 디자이너의 미적인 아이디어와 감성이 투여된 브랜드 상품과 보통의 상품들 사이에 놓인 거리와 일치한다. 즉 미술작품과 디자이너 브랜드의 상품(물론 그렇지 않은 상품을 찾기란 이젠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 되었다)은 논리적으로 일치하고, 이는 신자유주의적인 전시의 현상학이라 할 만한 현상을 만들어낸다. 비엔날레를 비롯한 국제적인 미술 이벤트가 글로벌한 브랜드의 광고와 과연 무엇이 다르겠는가. 설령 그것이 지역성과 정체성, 차이의 정치를 내세운다 해도 이를 규제하는 자본의 보편성 앞에서 농담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미술 안에서 신자유주의를 돌파할 길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물론 그것은 ‘신자유주의적인 미학’이라는 유령과 씨름한다고 될 일은 아닐 것이다. 언제나 미적인 체험을 통해 사람들이 깨우침을 얻을 때 그 ‘미적 충격’은 언제나 ‘지성적 반성’을 대신하는 것이거나 혹은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지성적인 반성은 미술의 예..편에서 나오기는커녕 엄밀한 의미에서의 정치적 삶에서 나온다. 그리고 지극히 슬픈 일이지만 그 정치적 삶은 아주 빈약하기 짝이 없다. 그러므로 미술의 편 안에서 스스로에게 신자유주의적인 타락을 추궁하는 것은 그저 자학에 불과할 뿐이다. 신자유주의적인 미술체제로부터 미술이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미술 내부가 아니라 모든 사회적 삶의 연관을 찢고 나오는 사건에서 비롯될 뿐이다. 그 사건의 이름이 무엇일지 우리는 모를 뿐이다.
– BAF의 전시도록을 위해 기고한 글

<당비의 생각>을 시작하며


Tim Buckley, Song to the siren

민주주의를 형이상학적인 정치철학자들의 고담준론에 내맡겨 두지 않으려면, 또 민주주의가 더 이상 현실정치를 꾸미는 덧없는 수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것에 관하여 계속 생각할 책임이 있다. 그 사유의 짐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민주주의가 겪는 기이한 운명을 망연자실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마침 우리는 그런 처지에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하겠다며 등장했던 이명박 정권은 집권 직후 미국산 수입쇠고기 사태로 인하여 정권퇴진까지 요구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연일 계속된 촛불집회에서 터져 나온 주장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촛불집회가 이명박 정권이 개시한 “우파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문제 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주요 언론매체들과 지식인들이 다투어 쏟아낸 주장을 들어보면 촛불집회는 그저 잘못된 정책에 대한 저항을 넘어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전환시키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유명한 정치학자는 이것이 6월항쟁에 비견될만한 사건이라고 추켜올리기까지 하였다.
그것이 국민주권을 확약하는 미증유의 정치적 사건이라는 주장이든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는 직접민주주가 분출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든 아니면 근대정치가 갇혀있던 정치의 범위를 뛰어넘어 생활정치가 발현하는 전환이라는 주장이든, 그 모든 의견은 민주주의에 관한 새로운 사고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그리고 만약 그런 주장들이 옳다면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에 관한 새로운 실험을 목격하고 있다고 생각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다면 어떨까. 그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사유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아니라 외려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뒷걸음질 치게 하는 지점을 표시하는 것이라면 어떨까. 그런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면 그 물음에 우리는 어떤 제한을 두어서도 안되며 또 그런 물음을 던지는 목소리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촛불집회가 당장 어떤 현실 정치적 효과를 갖고 있는가의 문제를 떠나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정치적 상상력을 변용하는 사태라고 한다면, 그럴 수록에 이런 목소리에 열려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민주주의는 문제이다. 좀 더 복잡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근대 정치가 생겨나고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근본적 조건이다. 현실정치의 객관적인 사태 내부로부터 찾아볼 수 없지만 그것을 인식 속으로 집어넣으려고 할 때마다 어김없이 그것을 정치로서 사유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민주주의가 독재와 반대되는 어떤 특수한 정치 제도 가운데 하나인 것이 아니다. 외려 민주주의는 어떤 사회적 사태를 정치화한다는 점에서 정치와 동의어일 뿐 아니라 나아가 정치 그 자체를 문제화한다는 점에서 정치와 정확히 외연을 같이 한다. 정치가 언제나 특정한 사회적 현실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정치에 관하여 말할 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실정치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 현실정치를 단순하게 이미 주어진 사회적 이해를 조정하는 일로 환원한다면 정치란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많은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정치란 사회를 관리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에 불과하고, 이 때 정치란 마감된다.
그러므로 정치는 언제나 자신을 이중화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사회적 이해와 의견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행위로서의 정치와 이를 아렌트 식으로 표현하여 “좋은 정치”로 판별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가 동시에 발생하고 분기한다. 그리고 이렇게 이중화된 정치를 함께 묶을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의 한 가지 종류인 것이 아니라 정치와 동시발생적이다. 따라서 정치를 민주화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민주적이라고 알려진 정치적 제도나 절차를 도입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벌어지고 있는 정치를 다시금 문제 삼는, 즉 문제화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정치의 이상적 규범이 아니라 엄밀한 뜻에서 정치를 급진화하는 몸짓 그 자체를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혹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본연의 정치, 혹은 정치의 정치같은 것은 없다. 그것은 정치가 자신을 이중화하는 과정 그 자체를 두 개의 분리된 실체로 사유한다는 점에서 잘못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이런 생각에 기댈 경우 근대 정치의 출현 조건이었던 민주주의를 시야에서 놓치게 된다. 민주주의를 떠나 정치를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정치를 형이상학화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한편 민주주의는 어떤 사회적 사태를 정치적 행위로 해석하고자 할 때 언제나 보이지 않는 배경처럼 작용하면서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환시킨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그것은 말뜻 그대로 문제를 던진다. 이를테면 촛불집회는 무엇인가. 그것에 답변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그것을 거의 강제적이라 할 정도로 민주주의와 관련시키지 않을 수 없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들이 자신의 행위를 정당한 행위로 정립하기 위해서든 아니면 그것을 현실정치와의 관련 속에서 인식하려는 경우에서이든 어쨌든 민주주의는 물음으로써 다시금 찾아온다. 그리고 그것에 답하려는 몸짓은 민주주의를 둘러싸고 마련된 어떤 정의를 참조하거나 전용하는 것이 될 수 없다. 외려 그것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사유하고 조정하기 위해 우리가 벌이는 행위 그 자체를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행하고 있는 사회적 행위를 정치적인 것으로서 생각하려 할 때, 민주주의란 그런 사유 행위를 가리키는 이름이 된다. 그러므로 촛불집회를 둘러싼 논의 속에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도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이다.
우리는 “민주화”라는 역사적 시기를 경유하였고 그럼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특정한 상상력을 만들어냈고 또 처분하였다. 그것의 결과는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 혹은 염증이라 할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독재와 민주주의라는 대립 속에서 전개되었던 현실정치는 갑자기 민생정치란 공통의 정치적 이상으로 흡수되었고 정치적 선택은 더 많은 민생정치 혹은 더 적은 민생정치 사이의 차이를 통해 가까스로 이뤄지게 되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현실정치를 반성하기 위한 조건으로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이제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가 상상하여왔던 정치를 다시금 사유하도록 강제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촛불집회가 갖는 가장 큰 의의가 있다면 바로 그것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또다시 민주주의란 정치에 관한 사고가 짊어져야 하는 의무임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 셈인지도 모른다.
‘당비의 생각’이 첫 번째 권으로 내놓은 이 책에서 크게 염두에 두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생각에 기대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이 겨냥하는 물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그것은 이른바 민주화체제가 마감되고 난 지금 그 민주화체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지난 20여년간 민주화란 이름으로 진행되었던 정치적 변형의 과정은 민주주의에 관한 특정한 정치적 상상력에 바탕하고 있었고 또 이를 강요하였다. 그것이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형식적 민주주의의 완성이자 정치적 근대성의 완성이라 부르는 것이었든 아니면 급진적 사회운동세력이 말하는 것처럼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위한 정치적 기획을 은폐하기 위한 허울에 불과한 것이었든 그것은 정치에 관한 우리의 상상력에 커다란 효과를 발휘하였다. 그리고 이를 묻지 않은 채 민주화 이후의 정치를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음 부분에서 우리가 다루려 하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이 책의 후반부를 구성하는 글들이 다루려는 바를 굳이 요약하자면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를 사고하기 위하여 우리가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쟁점들을 검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쟁점들을 다룸으로써 여기에 실린 글들은 민주주의에 관한 우리의 상상력을 확장하고 변형하고자 한다. 이젠 시쳇말이 되다시피 한 그러나 여전히 귀담아 들어야 할 “민주주의의 재민주화”란 말처럼 민주주의는 새로운 정치적 실천을 위하여 경유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직접적으로 상대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라는 순수하게 증류된 대상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적 행위와 함께 존재하고 기존의 정치적 제도를 통해 현상하며 또한 사회적 삶의 세계를 상상하는 공간을 통해 작용하기 때문이다. ‘당비의 생각’이 내놓는 첫 번째 기획의 결실이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조형하는 노력에 작게나마 이바지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비판적인 사회비평 계간지로 그간 자그마한 몫을 해왔던 ‘당대비평’이 출간을 멈춘 지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진지한 잡지를 만드는 일에 따르는 어려움을 굳이 토로하지 않더라도 독자들은 이를 쉬이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대비평’이 잠시 자취를 감추었던 연유에 대하여 따로 구구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간 ‘당대비평’에 몸담고 있던 이들은 ‘당대비평’을 어떻게든 되살리고자 고심하여왔다. 그런 와중에 기존의 계간지란 형태를 고집하기 어려운 현실적 어려움을 감안하면서도 ‘당대비평’이 했던 역할을 계속할 수 있는 출판형태를 생각했고, ‘당비의 생각’이란 이름의 연속적인 단행본 기획을 생각해내게 되었다. 이를 전작 단행본의 형태로 이뤄진 무크지로 받아들여도 좋고 보다 일관된 색깔을 가지고 기획된 연속적인 편집서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당비의 생각’은 기존의 ‘당대비평’을 이으면서도 보다 집중되고 날 선 자세로 한국 사회의 현실에 개입할 수 있는 이론적 실천의 매체가 되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이 관심과 비판을 기대한다.
– 저널 당대비평을 뒤잇는 연속단행본 기획 [당비의 생각] 첫번째 권을 위한 편자서문으로 쓴 글

다시 68혁명에 관하여


The Knife, Pass This On

2008년 올 해로 1968년 혁명은 40주년을 맞이한다. 굳이 40주년이라는 역사적 시간을 상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68혁명은 현재를 끊임없이 서사적인 무대 속으로 운반하고 ‘현재’라는 시간을 답파하기위한 효과적인 탐침으로 구실하여 왔다. 이는 어렵지 않게 그보다 20년의 시차와 함께 등장한 1987년의 6월 항쟁을 상기하는 우리의 기억과 포개진다. 87년 이후 한국 사회의 문화적 변동을 이끌었던 상상력 가운데 상당 부분이 68혁명으로부터 전송된 것이었다는 점을 굳이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는 물론 다른 국가들의 문화변동을 참조할 때마다 등장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68혁명은 끝없이 복제되는 사태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렇다면 68혁명이 동일한 서사적 동심원을 만들어내며 시간적 간격을 증발시키는 힘이 무엇인지 파악하려 애씀으로써 그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인식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볼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미국이나 프랑스, 영국, 일본이든 아니면 20년 뒤의 한국의 서울이든 서로 다른 지리적 공간을 등가화시키는 역사적 서사의 자장을 식별하는 일이 될 것이다. 또한 역사적 시차를 메우고 있는 숱한 비규정적인 사건들을 하나의 주제를 상연하는 변양들로 환원시키는 논리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일이 될 것이다.
나는 68혁명을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이행을 가능케 한 이데올로기적인 분규 혹은 프레드릭 제임슨의 표현을 빌자면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전환의 ‘소실매개자(vanishing mediator)’라고 생각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우리는 68혁명에 관한 여러 가지 신화를 가지고 있다. 무력한 사회주의나 교조적인 공산주의에서 벗어나 노동관계는 물론 학교, 병원, 감옥, 가족은 물론 성을 비롯한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비판을 위한 새로운 언어와 정신을 제공하였다는 주장보다 더 끈질기게 68혁명을 따라다니는 말도 없을 것이다. 전통적인 계급 갈등에서 벗어나 여성, 성정체성, 인종, 환경을 비롯한 다양한 이슈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운동이 출현하였으며 노동조합과 정당을 통해 조직된 사회적 갈등으로부터 아래로부터의 다양한 사회운동이 이후의 민주주의 투쟁을 추진하는 동인이 되었다는 주장도 역시 우리에겐 사회학적 상식이 되어 있다 시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엄연한 사실을 가리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를 자본에 반하는 새로운 운동의 모델을 만들어낸 역사적 분기로 과장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실 68세대는 너무 말이 많았다. 그들은 자신이 품었던 의지 그 자체를 역사적 사태를 표상하는 원리로 삼는다. 푸코를 쫓아 낸시 프레이저가 “훈육자본주의”라고 칭한 전후 자본주의와 짝을 맺게 할 때 68혁명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그 68혁명과 대응한다. 그러나 이제 세계화 혹은 제국이라 불리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시점으로부터 응시할 때 68혁명은 자본에 반하는 혁명이이 아니라 새로운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매개하는 역사적인 고리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68혁명의 진원지였던 프랑스에서 사회학자인 뤽 볼탄스키와 이브 시아펠로는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이란 저작을 출판하였다. 이 저작은 요점은 68혁명이 제안하고 고창하였던 모든 것은 그에 뒤이어 등장한 새로운 자본주의를 위한 정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저작 제목처럼 68정신은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본이 어떻게 68혁명이란 반체제적 비판을 통합하며, 이를 자본주의를 재정상화하며 나아가 그것이 새롭게 자본주의가 자신을 구성하는 경제적 행위에 새로운 인식가능성을 부여하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다양한 활동을 평가, 측정, 보상하고 나아가 자본주의를 더욱 촉진하는 자본주의 정신을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이들은 19세기 이후 근대성 비판을 특징짓는 것은 ‘총체적 혁명(total revolution)’이란 전망에서 비롯된 ‘자본주의 비판’이었는데 이는 크게 사회적 비판(social critique)과 예술적 비판(artistic critique)으로 나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들은 68혁명에서는 두 가지 비판이 혼성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에술적 비판이 주도적인 비판의 방향을 선취하게 되었고 이는 다시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을 조성하는 언어가 되었다고 바라본다. 자본주의가 자신을 정당화하기위하여 만들어낸 정신적 구조(그들의 표현을 빌자면 씨테)는 68년 혁명이 만들어낸 다양한 언어와 정동, 행위의 목록들을 흡수하면서, 이를 자신을 정당화하고 또한 반성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윤리로 조직할 수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대중사회에 대한 거부, 관료제와 권위에 대한 저항, 자율성과 자발성, 개성, 창의성, 독창성의 숭배 등의 다양한 이상은 68혁명의 전부였다. 물론 우리는 그런 말들을 지금 자본가들의 언어에서 듣는다. 이를테면 아마 지난 20년간 전 세계 자본주의적 기업 경영의 바이블이었던 탐 피터스의 ‘초우량기업을 찾아서’를 들춰보라. 거기에는 68혁명보다 더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어휘들로 가득 차 있다. 혼돈과 무질서를 도입하라, 위계를 살해하라, 조직을 버려라 따위의 말들! 물론 이것이 구조조정이니 유연화니 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적 경영 관행을 이끈 계율이었음 역시 잊지 않아야할 것이다.
신경제, 지식기반경제, 무형의 경제(intangible economy), 기호의 경제, 체험의 경제 등, 현재 유행하고 있는 경제 현실을 표상하는 담론들을 생각해보자. 이런 것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반성적 규정으로서 자본주의를 표상할 수 있었을 뿐이었던 20세기를 생각할 때 어떤 결정적인 단절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보다 나은 혹은 그보다 효율적이며 합리적인 운운의 주장을 통해 자신을 소극적으로 규정하던 자본의 경제적 표상은 이제 완연히 바뀌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새로운 경제법칙이나 질서를 언급하는 담론으로 환원될 수 없다. 자본이 경제 현실을 표상하는데 헤게모니를 가지게 되었다는 말은 말 그대로 헤게모니적이다. 자본은 자신의 경제 현실을 표상하는데 성공하기 위하여 그것을 오직 경제 현실이 아니라 “경제외적 현실”을 자신의 경제 현실에 대한 표상으로 포섭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은 자신의 근본적인 적대적 성격을 가리기위하여 혹은 자신의 가능성의 조건을 창출하기 위하여 언제나 자신을 전체화하여야 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자본과 자본주의를 구분할 수 있다. 자본은 사회의 불가능성을 가리키는 이름이라면 자본주의는 그것을 가리는데 성공함으로써 얻게 된 전체화된 사회에 대한 표상일 것이다. 그 때문에 흔히 말하는 것처럼 경제가 별개의 합리성을 가진 자족적인 사회적 공간으로 분화된 것이 자본주의의 주된 특성이라는 주장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경제외적 현실과 분리된 경제를 상상할 수 있는 순간은 오히려 자본은 자신의 위기를 분절하는 순간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그것이 환영적인 시각이라 하더라도 미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 사이에 차이를 각인하는 순간, 즉 모더니즘적인 미적 담론이 등장하는 순간은 또한 자본의 위기가 누출되는 시점이었다. 모더니즘의 출현과 궤를 같이하는 러시아혁명과 그를 잇는 사회주의적 혁명의 발발은 우연의 일치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68혁명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우리는 이제 보다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미적 경제니 체험, 기호, 무형 경제니 하는 새로운 표상적 담론은 곧 미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수립한다. 그리고 이는 볼탄스키와 시아펠로를 굳이 끌어들이지 않아도 68혁명이 꿈꾸던 것이다. 미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의 화해 혹은 미적 이성과 경제적 이성의 아름다운 대위법. 그들은 미적인 것을 통해 경제적인 것을 지양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 결과는 흥미롭게도 자본이 자신의 적대적 성격을 은폐하고 새로운 자본주의를 표상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이었다. 결국 68혁명의 실패는 미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의 대립이 자본의 적대가 분절되는 계기라는 점을 잊은 채 그것을 실체화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궁극적으로 잊었던 것은 바로 자본의 적대를 상대하는 것은 정치의 차원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68혁명의 “반정치적” 정치가 도달한 것이 미적 경제라는 새로운 자본주의라 해서 이상할 것도 없을 것이다.
– 중앙대 대학원 신문에 기고한 글

지금 남자, 그리고 민주주의의 실패

Sadao Hasegawa's drawing

남자의 역사를 쓸 수 있을까
근년 남자들 기를 살려주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고개를 들 만큼 남자들의 위신이 말이 아니다. “아빠, 힘내세요”라는 어느 기업의 광고 캠페인은 이미 남자들이 어지간히 무력해져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만큼 남성의 위기가 심심찮게 회자되고 있지만 그것이 정작 무엇인지 헤아리려는 논의는 찾기 힘들다. 무력해진 남자를 비호하는 듯한 목소리는 곧 기왕의 남성지배를 반성하려는 추세를 되돌리려는 복고 반동처럼 보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탓에 남자들이 이토록 변변찮은 신세에 이르게 된 것은 자업자득이라는 주장이 외려 설득력 있게 들린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곧 권위이고 법이던 시대가 있었고 남자들이 그 시대에 누리고 있던 권력 역시 상당한 것이었다는 것,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을 민주화해야하는 마당에 남자들의 근거 없는 비합리적 위세 역시 민주화해야 하는 것. 그런 주장에 수긍하기 쉬운 일이다. 따라서 남자들이 유약해지고 무력해진 것을 염려할 일은 절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외려 환영해야 하며 나아가 더욱 밀고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제법 가능하다. 정신분석학자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자면 우리는 ‘포스트-오이디푸스’ 시대엘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의 권세를 복위(復位)하고 그의 상징적인 죽음을 애달파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인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는 식민주의로부터 한국전쟁 그리고 이른바 ‘반공훈육사회’ 혹은 ‘개발독재’를 거쳐 민주화 시대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젠 그마저 저물어가고 있다. 그 역사적 변화의 시기 동안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라는 형상이 과연 권위, 법, 상징적 권력이라는 지위를 온전히 점유하였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어딘가 석연치 않다. 어쩌면 그것은 그저 심증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증빙하려고 덤벼야 옳을까. 그 역시 미심쩍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남성의 정체성을 역사화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분명 지극히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적으로 남자가 특수한 성별적 정체성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체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기호학에서 말하는 상식처럼 남자는 ‘표지되지 않은(unmarked)’ 정체성을 대표한다.
백인이 한 번도 자신을 인종화하지 않은 채 인류 일반을 대표하는데 반해, 유색인종은 언제나 자신을 종(種)으로, 즉 특수한 정체성을 담지한 별개의 집단으로 자신을 재현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 유색인종은 표지된(marked) 정체성이다. 그리고 여성도 그렇다. 당연히 남자는 한 번도 남자로, 즉 특수한 성별화된 정체성으로 존재한 적이 없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은 뉴에이지적인 상식 혹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따위에서 말하는 것처럼 서로 맞짝으로, 대칭적인 관계로서 상대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남자의 역사’를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만 이데올로기적 잔꾀라는 혐의를 벗기기 어렵다.
남성이 자신을 겸손하게 그저 하나의 성별에 불과한 특수한 집단이라 자처한다고 치자. 그러나 이는 남성이 특수한 성별로 있어본 적이 없는, 자신을 역사화하는 것을 언제나 봉쇄했던 논리를 감추는 짓이다. 따라서 남성을 역사화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남성 그 자체가 일반성의 자리에서 벗어나 특수한 정체성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내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경유하지 않은 채, 남성을 역사화하는 것, 나아가 지금 ‘남자’의 초라하고 측은한 처지를 두둔하고 동정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결국 헛짚은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이후의 성별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권위가 약화되고 성별을 둘러싼 관계가 보다 민주화되었다는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리고 실제 남자들 스스로 자신의 처지가 전 같지 않아졌다는 열패감이나 무력감은 또 어떻게 헤아려야 할까. 물론 이런 직접적인 체험과 의식을 전연 무근한 것이라고 반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남성이 자신을 역사화된 주체로, 다시 말해 특수한 정체성으로서 재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남자들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자괴감을 풀이하기 위해 흔한 사회학적인 요인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이런저런 사회적 변화의 추세를 들먹이며 남자들이 ‘고개를 숙이게’ 된 연유를 짐작하고 납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의 설명은 언제나 벗길 수 없는 덫에 걸려들고야 만다. 그것은 남자가 특수한 정체성으로 존재한다고 선뜻 가정할 수 있을 때나 가능한 논변이기 때문이다. 특정화할 수 없는 전체 혹은 보편으로서의 남성과 특수한 종별적 정체성으로서의 남성 사이에 놓인 거리를 뛰어넘지 않는 한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남성이 역사의 외부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남성이 특수한 정체성의 서사를 통해 자신을 역사화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역사와의 관계로부터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다. ‘남성 자신의 목소리’같은 것을 상상하는 것은 서글픈 희극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은 자신을 역사화한다. 그것은 바로 특수한 정체성의 역사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역사로서의 역사를 통해서 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매개를 통해 남자는 자신을 역사적 변화 속에 등록한다. 물론 이를 통해 남성을 특수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신분제적 사회에서의 귀족은 민주주의 혁명을 거친 후 단순히 하나의 지위 혹은 직분으로 전락한다. 즉 그들은 특수화한다. 따라서 자신을 우주의 보편적 섭리나 자연의 일반적 질서를 대표하는 것으로 설정하던 지도적인 신분에서,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특수한 직업적 지위같은 것으로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그런 변화를 매개하는 원리를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남성을 역사화하는 것 역시 그런 변화의 논리에 따를 것이다. 그러나 미리 말하자면 한국 사회에서 남성을 역사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기이하게 굴절되고 또한 결국 지연되고 말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검토하려면 아마 두 개의 계기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변화시킨 두 개의 이니셔티브, 즉 ‘민주화’라는 것과 ‘자유화’라는 것일 터이다. 먼저 ‘민주화’.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를 관통하였던 민주화는, 라클라우같은 이의 말을 빌자면 다양한 사회적인 갈등을 ‘민주주의’란 기표 아래에 접합함으로써 가능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그것은 억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문화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던 청년세대의 민주화이든 아니면 저임금에 ‘병영’적인 노동과정을 강제받던 노동자의 민주화이든, 민주주의는 다양한 사회적 대립을 민주주의란 기표를 통해 등가화하였다. 그리고 이는 ‘민주세력 대 반민주세력’이라는 정치적 상상을 수립하였다. 물론 이런 민주주의적 등가가 미처 의미 있는 사회적 투쟁으로 자신을 상징화하지 못한 차별과 억압을 그 등가적 사슬 속으로 끌어들인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처음으로 성별 질서가 만들어낸 차별과 불평등을 민주주의라는 기표를 통해 재현할 수 있을 가능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이런 가능성을 곧 상실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두 번째 계기인 자유화의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신자유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민주화를 헤게모니적으로 접합하는 투쟁 과정에서 획득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체제 전환은 외부적 강압을 통해 이식된 것도 혹은 어떤 반사회적인 반동이 등장하여 생겨난 것도 아니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자유화는 민주화라는 미결정적인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신자유주의적인 전환으로 헤게모니화한 ‘역사적 블록’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문민정부’나 이후의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민주화’를 배신했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의 짧은 시기 동안 사실 역사가 일시적으로 멎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가를 규정하는 사회적 논리가 중단되고 그것이 공백의 상태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87년의 민주화란 어떤 구체적인 사회적 프로그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는 사회는 있을 수 없음을 선언하는 일시적인 사회성의 결렬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주화는 곧 특정한 사회의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 과정에서 민주화는 헤게모니화되는 것이고, 바로 그것의 프로그램은 자유화였다.
자유화와 민주화 그리고 새로운 성별체제의 등장
알다시피 낭만적인 반권위주의는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에토스이다. 그것은 물론 민주화의 효과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민주화란 ‘반공훈육사회’를 비판하는 민주화세력이라 자처하는 집단의 민주주의와 국가주도의 성장모델을 비판하며 ‘구조조정’을 통해 신경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자처했던 자본의 민주주의가 절묘하게 접합된 것이다. 당연 우리는 그것을 신자유주의라고 불러야 옳다. 형식적 민주주의를 제도화하였지만 지구화라는 불가항력적인 외적 조건 때문에 부득불 신자유주의적 경제 모델을 채택해야 했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민주주의’가 신자유주의적으로 왜곡된 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궤변일 뿐이다. 왜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통해 형식적 민주주의를 추월하고 더불어 민중적인 경제 체제를 구축하면 안 되었는가. 어쨌거나 바로 그 민주화와 자유화를 접합시킨 역사적 블록을 가리키는 이름은 민주화 세력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게 민주주의가 헤게모니적으로 접합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성별 체제를 얻게 되었다. 민주화라는 역사적 계기는 분명 기존의 남성 지배적 성별 체제 역시 민주화하도록 강요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 역시 자유화라는 전환과 접합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기존의 성별 체제의 민주화는 전형적인 자유주의적인 변화, 여성의 개인적 자기실현의 기획으로 전환되고 말았다. 그것은 80년대 민주화 이후 한국의 여성운동을 주도했던 주된 투쟁들이 바로 여성의 자기결정과 책임, 주도성이라는 담론을 생산하고 강화하는 운동들이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쉽게 이해된다. 근년 말이 있었던 ‘영 페미니즘’의 현기증나는 성공과 그것의 한계에 대한 논의 역시 이런 맥락에서 새겨볼 수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그런 점에서 남성은 성별체제의 민주화의 과정에서 여성의 자기실현을 가로막는 외적인 장애로 둔갑해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유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구질서를 재현하기 위하여 ‘반공훈육사회’라는 사회적 이미지를 조형하였다. 그리고 남성 지배 역시 바로 그 이미지에 의해 중재되었다. 그리고 이에 기초하여 한국 사회에서 남성 지배를 비판하는 주된 언어가 만들어 졌을 것이다. 그 안에는 ‘페니스 파시즘’에서부터 시작하여 ‘군대 공화국’에 이르는 다양한 훈육사회가 만들어낸 반자유주의적 남성의 형상들이 겹쳐진다. 물론 그것이 성별 체제의 민주화를 위한 기획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접합을 통해 헤게모니를 장악한 민주주의 기획이 남성 지배의 민주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규정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이다.
그 결과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새로운 성별체제이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배려하는 자율적인 개인 여성이란 모습을 통해 여성을 예속화시킨다. 여성은 딸로서의 의무, 아내로서의 인종 따위에 더 이상 구애받지 않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선 강제는 더욱 무자비하고 질식할 만한 것이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적으로’ 개조하여야 하는 엄마의 모습이 전형 아닐까. 육아에 관한 지식을 끊임없이 학습하고 좋은 식단을 준비하기 위하여 융단폭격처럼 쏟아지는 새로운 상품과 일상생활의 테크놀로지를 소비해야하는 엄마. 그것은 매력적인 여성이 되기 위하여 거의 열병에 걸린 것처럼 ‘자기관리’를 해야 하는 자기주도적인 여성의 모습 등으로 계속하여 이어진다. 그러면 이 때 남성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 그것은 국가와 더불어 훈육사회를 대표하는 권력의 등가물로 규탄당한 것들, 즉 공장, 학교, 군대 등의 목록 속에 있을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자유주의적 기획으로 용해된 민주화 기획 속에서 종래의 성별체제는 얼굴 없는 지배를 통해 반복되고 강화되었다. 남성지배는 여전히 반복되지만 그것은 얼굴 없는 지배가 되었다. 나의 자율성을 지배하는 개인적인 타인으로서의 남자들은 간단히 조롱받고 비난받는다. 우리는 성희롱 가해자이며 폭력적인 남편들의 명단을 끊임없이 작성한다. 그러나 남성지배는 바로 그런 조건에서 더욱 추상적인 힘으로 자유와 선택의 이름으로 여성을 짓누른다. 그 와중에 남성은 자신을 특수화할 기회를 잃었고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힘을 통해 여성을 지배한다. 위기에 처한 남자들이 대개 자율적인 선택의 주체가 되기로 작정한 여성들과 협상할 능력을 터득하지 못한 중년 이상의 하층계급 남자들뿐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반면 남자들은 자신에게 매력적인 대상이 되기 위해, 더욱 성공적인 커리어우먼이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여자들을 얻었다. 그래서 남자들은 행복한가. 물론 절대 그렇지 않다. 남자들은 더 이상 권위를 행사하는 생계부양자의 모습을 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은밀한 자유의 폭력 속에서 나-남자로서 더없이 불행한 남자의 삶을 살아야 하게 되었다. 결국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별체제를 민주화하려던 기획을 다시 민주화하는 것 외엔 없다.
교수신문에 기고한 글

장소, 광고 그리고 새로운 상품적 등가의 논리

Alex Katz
September Afternoon
Silkscreen in 31 colors, 1994

장소와 공간이 같은 말이 아니라는 것은 굳이 헤아려보지 않아도 이젠 누구나 뻔히 겪고 깨닫는 일이 되어버렸다. 공간이 물리적 대상이라면, 장소는 공유하는 사회적 기억과 문화적 체험이 배태된 대상이라는 식의 구분은, 과거였다면 의식적 반성을 거칠 때나 얻을 수 있는 자각이었을 것이다. 내가 서울이라는 물리적으로 구획된 지역에 주거한다는 것과 서울 사람으로 산다는 것 사이에 차이를 느낀다면, 이를테면 내가 서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돌아온 연후에 느끼게 되는 어떤 반성적 의식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굳이 그런 수고를 거칠 필요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이제 장소를 상품처럼 소비하게 되었고 또한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오랜 동안 그 곳에 살았는가 여부와 관련 없이 마치 여행객처럼 공간을 “방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산다”는 것은 이제 “소비한다”와 “방문한다”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서식자, 거주자, 주민 등으로부터 소비자, 여행객이 되었다.
이를테면 언제부터인가 지하철 광고판에는 장소, 지역, 국가 등을 광고하는 광고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제법 큰 환승역이라면 이런 광고판은 어김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광고에서 우리가 자연스레 가정하던 삶의 터전인 장소, 회향적인 기억의 장소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이를테면 장소는 여행객을 위한 상품이 되었고, 소비되어야 하는 상품으로 거기에 있다. 아울러 장소는 특정한 물건이나 풍경으로 대체된다. 이를테면 우리가 장소의 광고 속에서 연상할 수 있는 것은 청양에는 고추가 살고, 태백에는 카지노가 살며, 목포에는 홍탁이 살고, 함평에는 나비가 살고 있다는 등이다. 결국 브랜드화되고 상품화된 장소에는 으레 상상하는 삶의 장소는 자리하지 않는다. 그 곳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방문하고 소비해야할 장소일 뿐이다. 물론 그런 광고들이 비단 지하철 광고판을 채우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티비 광고에서 우리는 지역을 광고하는 다양한 광고를 접하고 있다. 더 넓히자면 우리는 “아시아의 영혼”이라고 자처하는 “서울”을 알리는 광고판을 곳곳에서 보고 있다. CNN같은 티비 채널에서 우리는 “진짜 아시아 Truly Asia” 말레이시아를 찾아오라는 따위의 “국가 브랜드” 광고를 걸핏하면 보고 있다. 조그만 마을이든 아니면 거대한 국가이든 모든 장소는 이제 광고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장소를 소비하고 있고, 장소는 브랜드가 되었으며, 마케팅해야하는 상품이 되어 왔다.
서울 구로구와 대한주택공사는 최근“ 가리봉동 도시브랜드네이밍 공모전”이란 것을 진행하고 있다. 가리봉동이란 지역의 개성과 이미지를 잘 표현할 수 있고 브랜드로서 상표등록 및 법적 적용이 가능한 이름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이 공모전을 접하고 드는 사뭇 어색한 기분은 장소를 둘러싼 우리의 오랜 느낌, 흔히 “서식하다”, “살다”같은 말에서 비롯되는 느낌과 다른 식으로 장소를 겪고 있다는 감각 때문일지 모른다. 어디에 가면 어떤 맛있는 식당이 있고 어디에 가면 어떤 상점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를 우리는 매일 소비하고 그렇게 장소를 주유한다. 따라서 우리는 서울에서 산다는 것이 가이드북을 들고 방문지를 찾아다니는 관광객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절감한다. 이는 장소를 소비하는 새로운 논리가 이미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흥미롭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장소의 상품화를 둘러싼 오랜 통념, 즉 막개발이나 난개발과 같은, 어떤 사회학자의 표현을 빌자면 토건국가적인 규범을 통해 장소가 착취되고 있다는 식의 논리가 맥을 잃는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끊임없이 장소를 개발하고 착취하여 왔다는 것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장소가 광고의 대상이 되었다는 어찌 보면 충격적이라 할 사태는 “국토” 혹은 “영토” 따위와는 다른 상상의 장소가 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더 이상 판매하는 상품과 그것이 가진 물질적 효용을 지시하는 정보는 모두 삭제된 채 광고가 생산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이를테면 흔히 “베네통” 이후의 광고라고 부르는 후기근대자본주의의 광고는 상품을 탈물질화시킨다. 알다시피 베네통은 충격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을 제시하고 그것과 베네통이란 로고를 병치하는 광고로 선풍을 일으켰다. 여기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털실로 짠 스웨터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 온전히 쿨한 감각을 생산하는 심미적인 기관으로서의 베네통이다. 그러므로 이런 논리가 장소의 소비 속에 확장된다고 해서 놀랄 일도 아니다. 장소가 탈물질화되고 심미적인 대상으로 변환되고 그리하여 완벽하게 다른 상품들과 등가적인 상품의 사슬 속에 놓인다는 것은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 모른다. 우리가 광고라는 문화적, 상업적 관행에 주목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은 상품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화 자체의 공정에 등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새로운 자본주의가 광고와 미친 춤을 출 때 관통하는 법칙일 것이다.
– 연세대 대학원 신문에 기고한 글

악마는 <월페이퍼>를 읽는다

Jules de Balincourt
United We Stood
2005, Oil and Acrylic on Panel 41 x 51cm
월페이퍼 십년과 디자인의 정치경제학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면 악마가 읽는 책은 무엇일까. 물론 그 물음에 답이 될 만한 책은 당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바로 그것이거나, 아니면 그 소설 혹은 영화의 무대가 되었던 어느 패션잡지, 이를테면 <코스모폴리탄>이거나 <지큐> 따위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악마가 탐독할 책의 후보 가운데 <월페이퍼>란 잡지를 끼워 넣는다 해서 무슨 문제란 말인가. 아니 어쩌면 이보다 더 적절한 선택도 없을지 모른다. 이미 공공연한 진실이듯이 <지큐>는 “담장 밖 민간인 라이프스타일의 로망”을 상상하며 내무반 침상에서 배를 깔고 읽는 국군장병용 잡지가 된지 오래이다. <코스모폴리탄>이나 <보그>이라고 해서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 역시 “된장녀”라는 누명을 무릅쓰고 자신의 인적자본 가치를 올리기 위해 참조해야만 하는 인생 교본 혹은 라이프스타일 매뉴얼 아니던가. 그에 견주어 <월페이퍼>에서는 그런 낌새를 찾아내기 어렵다. 그래서 그 잡지는 이름난 미술전문 출판사가 찍어낸 책들과 나란히 이른바 커피페이블 북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 <월페이퍼>가 창간 10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월페이퍼는 그들의 10년의 역정을 자축하는 특집호를 냈다. 잡지의 명서만큼 특집호는 현기증나리만치 호화로운 광고들로 가득하다. 모두 내로라하는 굴지의 브랜드들이다. 그렇지만 이 두툼한 카탈로그 사이에 놓인 특집 기사들 역시 손색없이 화려하고 대담하며 후안무치하다. 창간년도인 1996년부터 지금까지 10년의 시대를 마치 자신이 후견하고 감독했던 것처럼 <월페이퍼> 특집호는 디자인 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조감한다. 물론 그 10년의 세월이란 신경제란 이름의 자본주의, OECD 소속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의 용어를 빌자면 “지식기반경제”란 이름의 자본주의와 디자인이 완벽하리만치 공생하였던 세월이다. 그것은 또한 디자인 잡지와 라이프스타일 잡지 사이의 경계를 흐리며, 상품의 카탈로그를 훑어보는 일을 또한 좋은 디자인을 느긋이 감상하는 쾌락으로 뒤바꿔낸 <월페이퍼>의 능력이 펼쳐진 세월이기도 하다.
창간 10주년을 맞은 <월페이퍼>가 자신의 10년을 돌아보는 눈길이 어떤 것인지는 편집장의 서문 아니 <월페이퍼>답게 “선언(manifesto)”이란 제목의 글에서 잘 드러난다. 여기에서 편집장은 <월페이퍼>를 만들기로 했던 몇몇이 고집했던 취향을 자랑스럽게 과시한다. 그들은 “상스런 주름장식”보다는 “20세기 중반의 모더니즘”에 열광했고, 스칸디나비아식 색배합, 훈제 와사비 참치, 리처드 제임스의 넥타이에 집착했다고 으스댄다. 그리고 그는 이제 디자인은 주류가 되었으며 쇼핑몰에서 미니멀리즘을 팔고 건축가들이 팝 가수와 놀러 다니고,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축구 스타와 사귀는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일갈한다. 아무렴, 왜 아니겠는가. 디자인은 승리하였고 그럼으로써 또한 디자인은 자신을 배반하였고 완전히 자신을 소멸시켰다. 그리고 그것이 <월페이퍼>가 디자인을 위한 묘비명을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한 이유일 것이다.
<월페이퍼>의 기념호는 현대 디자인에 대한 자신의 남다른 안목과 유별난 취향을 과시하는 것과 달리 기사를 구성하는 방식은 매우 저속하고 심지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월페이퍼>가 기념호에 야심적으로 내놓은 기사들은 모두 싸구려 연예정보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차트로 채워져 있다. 이를테면 <우리가 주목하는 40살 이하의 신예 디자이너 40>, <우리가 그리워하는 사라진 스무 가지>, <다음 10년간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50가지의 사람, 장소, 물건>, <우리가 뽑은 최고의 파워 커플 10쌍>, <우리가 살 꿈의 집에 없어선 안 될 지난 10년간 최고의 디자인들(참고, 우리는 그 디자인 제품이 없다면 집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디자인 산업의 리더 5명이 뽑은 내일의 고전이 될 지난 10년의 최고 디자인> 등등(물론 제목이 그렇지 않다. 제목은 미니멀한 모더니즘 취향의 잡지답게 간단하다. 이를테면 <40 언더 40> 따위). 물론 이 밖에도 우리는 <월페이퍼>가 제시한 수많은 순위를 볼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지난 10년간 우리 주변을 스쳐간 디자인 스타들을 망라할 수 있다. 그것은 사람이고 물건이고 장소이며, 또한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것이다. 결국 디자인된 모든 것, 혹은 근대 디자인을 창립한 영웅들이 꿈꾸었던 “토털 디자인”의 세계가 <월페이퍼>를 통해 실현되었다. 나아가 그것은 모두 점검받고 평가되었으며 마침내 순위까지 얻게 되었다. 어쩌다 순위선정이 우리시대에 가장 유행하는 강박적인 이야기 방식이 되었는지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선택의 의무라는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가 부과한 명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믿을만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쇼핑몰에 쌓여있는 휘황한 물건들 앞에서 우리가 느껴야할 것은 현기증나리만치 황홀한 “선택의 자유”이다. 우리는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으며 나의 욕망에 부합하는 대상을 골라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고를 것인가. 물론 우리는 취향이 사회적으로 구분되며 그것에 의해 계급적인 정체성이 형성되고 또한 유지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부과되는 타율적인 강요임에도 불구하고 취향은 가장 내밀한 주관성의 표현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것은 마치 우리에게 남아있는 마지막 자유의 영역인 것처럼 보이기조차 한다. 캠프 취향을 가진 어떤 괴짜가 숱한 비난과 조롱을 무릅쓰고 라파엘 전파 그림 한 점을 구하기 위해 가산을 탕진하던 것처럼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고 또한 살아야 한다. 앞서 보았듯이 “우리가 살 꿈의 집에 없어선 안 될 지난 10년간 최고의 디자인들”과 같은 기사를 읽을 때 우리는 “나는 스테파노 지오반노니(Stefano Giovannoni)가 디자인한 알레시(Alessi)사의 주방저울이 없는 집에서는 살지 않을 것이다” 따위를 행간 속에서 주장해야 한다.
물론 그런 주장은 또한 어떤 외적인 압력도 거부하며 자신의 자유를 행사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실 자유는 이제 차갑게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저울 속에 물질화되어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주관성은 놀랍게도 완벽한 객관성 혹은 오브젝트 안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슬픈 사실이지만 우리는 오늘날 디자인 문화가 만들어놓은 유명한 철학, “주관성은 객관성이다”를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우리는 아도르노가 <미니마 모랄리아>의 “그림 없는 그림책”이란 단장에서 언급했던 것과 대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형상이 인간에게 미치는 힘을 제거하려는 계몽의 객관적 경향”이 “우상금지로 나가는 주관적 경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한다. 이로부터 그는 대중신문의 사단만화에 대한 흥미로운 설명을 던진다. 그렇다면 그의 수수께끼같은 철학적인 표현은 무슨 뜻을 담고 있을까.
그 말은 간단하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강박적인 기독교의 선언이 가장 중요한 종교적 계율이 된 이유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부르주아 혁명이 내놓은 자유의 선언과 유사하다. 그의 외양, 지방색, 출신을 믿지 말라. 오직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믿으라. 자유는 그의 형상 속에 새겨져있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차원, 즉 그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에 달려있다. 물론 이는 순전히 주관성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도르노는 그런 주관성이 왜 다시 우상금지에 빠져든다고 이야기할까. 그는 계몽 즉 합리적 사유의 등장이 만들어낸 추상이 다시 형상의 역할을 떠맡는다고 역설한다. 그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끄집어내는 것은 통계표, 표지판, 신문, 광고 따위이다. 이런 것들은 사고의 노력을 덜어준다. 우리는 형상을 믿음으로써 사고할 부담에서 즉 계몽적인 인간이 짊어져야 하는 “생각하다”는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사유한다는 것의 다른 말인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도르노의 말은 디자인의 역사를 되읽는 말이 될 수 있다. 모더니즘 디자인은 얼마나 추상적이고 합리적이었던가. 그들은 발전과 진보, 자유 등의 개념을 가지고 디자인을 사고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디자인한다는 것은 우상을 금지하는 것, 추상적인 사유를 통해 사물과 환경을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모더니즘 디자인을 그토록 사랑했다는 <월페이퍼>의 모더니즘 디자인은 그와 정반대이다. 그것은 순전히 형상 혹은 우상에 다름 아니다. 모더니즘 디자인이 만들어놓은 모든 사고의 흔적은 기념물로 하얗게 얼어버리고, 모더니즘 디자인이 열어놓았던 주관성의 세계를 순전히 객관성의 세계로 전환한다. 따라서 어떤 외적인 타율성에서 벗어나 자신의 선택을 고집한다는 자유의 세계를 주장하지만 그것은 자유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것은 아도르노 식의 표현을 빌자면 자유가 숨쉬기 위해 반드시 부정해야 할 것인 형상에 대한 숭배, 즉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다.
<월페이퍼>가 디자인의 완전한 승리를 외치고 자신이 그것의 후견자임을 자처할 때,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반대로 결국 디자인의 죽음이다. 예술이 죽었다고 할 때 그것은 예술을 통해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 점점 불가능해져버렸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디자인이 죽었다고 할 때 그 역시 같은 말로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월페이퍼>의 압권은 단연 지난 10년 디자인의 역사를 소개하는 특집기사에 있다 할 것이다. <월페이퍼>는 지난 10년의 역사를 연대기화한다. 그 연대기는 “양 돌리의 인공복제 성공”에서 “아이포드의 탄생”을 거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승하”로 이어지고 그 사건들은 유수의 디자인 명품들의 콜라주를 통해 서술된다. 사실 지난 10년 동안 역사는 없었던 것이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역사는 뉴스와 유행으로 전락했을 뿐이다. 우리에겐 역사를 대체한 물건들의 유행이 있었으며, 디자인은 역사와 완벽히 두절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월페이퍼>는 디자인의 죽음을 위하여 그토록 분투했던 것이다. 또는 모던 디자인의 명예를 걸고 모던 디자인을 완전무결하게 교살했던 것이다.
= 디자인플럭스에 기고한 글

할 포스터의 <디자인과 범죄>를 읽는 한 가지 방식

노재운, 스위스의 검은 황금

디자인과 범죄 아니면 디자인과 정치
다시 아돌프 로스를 기억하며
동시대의 디자인 문화에 대한 가장 진지한 비판을 접하려는 생각에서이든 아니면 급진적인 디자인 비평의 한 사례를 접해보려는 의도에서이든, 할 포스터의 에세이 모음집인 <디자인과 범죄 그리고 그에 덧붙인 혹평들>은 읽을 가치가 크다(이 책을 모두 읽을 여유가 없다면 이 책에서 언급된 주요한 아이디어를 요약한 <동시대 디자인의 ABC들>을 읽어보아도 좋다. 이 글은 유명한 미술 저널 옥토버(October)의 2002년 봄 호에 실려 있다). 디자이너들에게는 언짢은 제목일지 모르겠지만 이 책의 제목이 “디자인과 범죄”란 제목을 건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는 아돌프 로스(Adolf Loos)의 전설적인 글인 “장식과 범죄”의 제목을 본 딴 것이다. 이는 겉멋을 부리려는 것이거나 저자의 현학적인 박식함을 과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로스가 19세기말의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태동하던 디자인 문화(특히 아르누보의 문화)를 두고 내놓았던 생각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도 의미심장하고 또한 되새김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을 빌자면 “각 분야 사이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 사물이 작은 주체(mini-subject)처럼 다루어졌던 시대, 토털 디자인의 시대, ‘스타일 2000’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한, 그 기분은 아돌프 로스가 자신의 시대에 느꼈던 기분과 다를 바가 없다.
장식은 범죄라는 명제로 유명한 아돌프 로스의 주장은, 물론, 그러므로 미니멀해야 한다는 생각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를 아르누보풍의 베르사체의 드레스와 미니멀리즘이라 자처하는 캘빈 클라인의 양복의 차이를 두고 싸구려잡지에서 오가는 취향의 잡담으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장식은 범죄라는 생각은 무엇보다 요즘의 표현을 빌자면 ‘토털 디자인’이라는, 근대 디자인문화의 핵심적인 사고를 겨냥한 것이다. 알다시피 토털 디자인은 삶은 곧 예술이어야 한다는 생각이고(오스카 와일드의 유명한 경구처럼 예술이 삶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 장식은 범죄라는 명제는 바로 토털 디자인이 초래한 참담한 결과에 대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토털디자인의 악몽
토털 디자인의 전신이라고 할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이란 건축에서 일상적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예술처럼, 작품처럼 다루려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모든 것이 디자인되는 것이 되어버린 우리 시대의 문화, 즉 토털 디자인의 문화와 멀지 않다. “모든 것들-건축과 예술에서부터 청바지와 유전자에 이르는 모든 것들-이 ‘디자인’의 대상이라고 간주되는 오늘”, “디자인된 상품이 당신의 가정인지 아니면 당신의 사업이지 혹은 당신의 축축 늘어진 얼굴(디자이너 성형술)이거나 혹은 당신의 꾸물거리는 성격(디자이너 약품)인지, 아니면 당신의 역사적 기억(디자이너 미술관)이나 당신의 유전자 미래(디자이너 아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날”이 바로 지금이다. 그래서 포스터는 “토털 디자인의 세계는 모더니즘의 오랜 꿈이지만 이제 그것은 전도된 형태로 범-자본주의적 현재 속에서만 오직 실현된다”고 한탄한다. 그렇다면 그의 말처럼 “‘디자인된 주체’는 포스트모던 문화가 자랑하는 ‘구성된 주체’가 낳은 예상치 못한 새끼인가?” 그리고 “동시대 디자인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자본주의의 위대한 복수의 일부분”일까?
물론 이에 대하여 우리가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언젠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지만 디자인과 문명 혹은 디자인과 자본주의의 관계를 묻는 디자이너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프랭크 게리같은 그래픽 디자이너이든 아니면 렘 쿨하스같은 건축 디자이너이든 아니면 “노브라우(No brow)”란 이름으로 몰교양적인 디자인문화에 대한 아첨을 늘어놓는 문화평론가이든, 저자는 모두에게서 디자인(문화)의 바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극적인 결론에 이른다. 여기에서 디자인의 바깥이란 당연히 토털 디자인이 자신을 움직이기 위해 비판적인 긴장의 대상으로 삼는 외부의 세계를 가리킨다. 다시 말해 디자인은 삶을 향해, 세계를 향해 개입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은 언제나 삶과 세계에 대한 이미지와 사고를 조직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것이 제거되어 버린다면 디자인이란 사물에 적용된 형식적인 스타일로 환원되어버리고 만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런 시점에 이르렀다. 디자이너들이 동시대의 지식인들과 어깨를 겨루며 논쟁적인 대화를 주고받던 세계는 사라졌고 우리 시대의 “현장” 디자이너들은 단지 대중잡지와 일러스트 북을 뒤적이며 자신이 응용할 디자인의 견본을 찾을 뿐이다. 그렇다면 디자인은 디자인된 세계를 만들지만 그 디자인은 삶과 세계를 향한 투쟁이 아니라 그것을 억압하거나 추방하고 나아가 “여기가 전부이다”는 생각을 위해 이바지할 뿐이다.
디자인의 자율성?
그렇다면 우리는 “디자인은 분명 우리를 당대 소비주의의 시스템으로 몰아넣는 핵심적인 작인에 불과한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고 주저앉아야 할까. 할 포스터는 디자인이 나르시시즘적인 욕망의 주체를 위한 표면의 세계, 어떤 내면성도 없는 세계를 위하여 존재할 뿐이라고 단언한다. 아돌프 로스가 자신의 삶을 집 안을 채우고 있는 모든 사물을 디자인함으로써 마침내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하였지만 결국 어떤 내면도 존재하지 않는 죽은 사물과도 같은 주체로 전락해버렸다고 비웃었던 “가엾고 어리석은 부자”, 그 아르누보 시대부자의 “디자인된 삶”처럼 우리 역시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항하기 위하여 할 포스터가 내놓는 대안은 초라하다. 디자인이 삶과 진보된 미래를 향한 사회적 행위로 거듭나기 위하여 그가 제시하는 선택은 “미적 자율성”이다.
그러나 문화와 경제가 더 이상 구분할 수 없게 녹아버린 우리 시대 자본주의에서 그것은 불가능한 꿈일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문화와 경제의 탈분화(de-differentiation)라는 경향은 언제나 그것의 구분을 통해서만 가능할 뿐 아니라 역설적이지만 모더니즘의 미적 자율성은 예술이 전적으로 경제화됨으로써 비로소 완벽하게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모더니즘의 심미적 이상 속에 존재하는 미적 자율성, 다른 모든 사회적 삶의 영역으로부터 예술이 가지는 자율성을 여전히 고수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미적 자율성을 옹호하는 것은 “전략적인” 것이라 주장한다. 모든 영역들 사이의 경계가 사라져버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미적 자율성을 옹호한다는 것은 디자인을 비롯한 문화예술의 정치적 비판 행위를 위한 여지를 확보하기 위한 방어적인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저자가 덧붙이는 또 하나의 구체적인 대안 즉 “활동공간(running-room)”의 획득이라는 것이다. 아돌프 로스는 아르누보의 토털 디자인이 몰개성적인 세계,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 제목을 빌자면 “특성 없는 인간”를 만들어 놓았음을 비난하며 활동공간이란 대안을 내놓은 바 있었다(물론 이는 상황주의자의 “우회”를 비롯한 수많은 반문화적 정치학을 통해 반복되고 증폭되었던 것이기도 하다).
결국 디자인과 삶 사이의 간극, 디자인이 개인과 사회로 하여금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위하여 유지해야 하는 그 틈새가 사라짐으로써 디자인이 인간을 사물화시켜버리고 내면적 자아가 가지는 반성의 능력을 고사시켰다면 우리는 그것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되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거리가 바로 활동공간이다. 나는 디자인이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 자신의 모든 정체성이 규정될 수 없는 반성적인 주체라는 것, 그리고 나는 디자인을 통해 완전히 소외되어버릴 수 없는 나의 내면성을 고집함으로써 나의 자유를 위한 공간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런 결론은 너무나 뻔한 것 아닌가. 그것은 적어도 “소외”라는 테마를 통해 자본주의의 문화를 비판하던 낡은 주장의 반복에 불과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어떤 다른 대안이 가능한가. 비판적인 내면적 주체가 꿈지럭 댈 수 있는 활동공간을 보장하고 그를 위하여 전략적으로 문화와 예술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면? 물론 그것은 첫 단추를 다시 꿰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저자는 소비자본주의의 디자인된 주체의 나르시시즘적 주체성의 모습이 내면적 반성의 능력을 지닌 개인적 주체와 얼마나 다른 것인지 헤아려보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 문제는 경제와 문화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삶과 세계를 변화시키는 희망, 즉 정치의 불가결한 조건이라는 생각에 있을 것이다. 정치는 문화와 경제 사이의 거리 속에 있지 않다. 문화와 경제를 벌여놓는 것이든 아니면 그것을 뒤섞어버리는 것이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문화와 경제 사이에 정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정치는 작용한다. 그렇지만 않다면 그는 거창한 주장을 하지만 결국은 디자인 문화의 상업주의에 대한 수많은 그렇고 그런 잔소리를 추가한 것에 머물고 말 것이다.
디자인 플럭스에 기고한 글

<애드버스터>는 계속 전진한다?!

<애드버스터스>에 관한 세 권의 책
<애드버스터스>는 잡지이기에 앞서 1990년대 이후 가장 주목할 만한 사회운동의 경향임에 분명하다. 이 운동은 현기증나리만치 지나친 성공을 거두었고, 그 덕에 지금 맹렬한 반격과 조롱을 받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애드버스터스>를 다루거나 언급하고 있는 몇 권의 책이 잇달아 국내에 번역되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책들은 그다지 큰 관심을 끌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디자인의 사회적 책임과 가치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이 책들은 읽어볼 가치가 있다.
한국에 소개된 첫 번째 책은 <애드버스터스>의 주역인 칼레 라슨과 그를 지지하는 디자이너들의 주장을 망라한 <애드버스터스-상업주의에 갇힌 문화를 전복하라>(칼레 라슨 외, 길예경/이웅건 옮김, 현실문화연구, 2004)이고, 그 다음은 그보다 2년 먼저 출간된 나오미 클라인의 (김효명/정현경 옮김, 랜덤하우스중앙, 2002)이다. 출간 즈음 세계 어느 유명 서점을 가나 베스트셀러 진열대를 넓게 차지하고 있던 책이 바로 <노 로고>였다. 그러나 이 책은 한국에서 이렇다 할 관심을 받지 못하고, 역설적이게도 마케터나 상업디자이너를 위한 참고서적쯤으로 취급 받았다.
… [후략] …

– 전문을 보시려면 다음의 링크를 따라 가십시오. [디자인플럭스 designflux]
= 디자인 문화 관련 사이트인 <디자인플럭스> 사이트에 알바를 뛰고 있습니다. 서글픈 일이지만 몇달 간은 이것이 제 유일한 고정 수입원이 될 듯 합니다. 매달 디자인/문화에 관련된 잡지를 리뷰하고 디자인 문화에 관련된 글을 한꼭지씩 기고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시각문화에 관심이 많기는 하지만 디자인에 관해서는 아직 문외한인 처지인지라 아직 좋은 글은 못쓰고 있습니다. 심심한 분들 읽어보시압. 여기에 기고한 글은 아티클이 아니면 블로그에 따로 올리지 않겠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에 관한 짧은 메모

Muntean and Rosenblum/The Pay Doesn't Promise... /2003/acrylic on canvas
230 x 280cm

지금, 예술의 사소함
얼마 전 가라타니 고진이 발표한 <근대문학의 종언>이란 글이 입소문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그가 자신의 글에서 한국 문학의 처지를 두고 직접 언급한 대목 탓에 그 글은 더욱 많은 이들을 솔깃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대개 그렇듯이 나 역시 소설을 읽거나 시집을 열심히 들춰보길 관둔지 오래이다. 소설을 읽지만 그것은 오직 소설이 줄 수 있는 재미 때문이다. 그것은 영화가 줄 수 있는 재미, 낚시가 줄 수 있는 재미란 뜻에서의 그런 재미일 뿐이다. 이는 소설이라고 알려진 것의 재미를 누리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는 뜻일 뿐이다. 물론 소설가들 역시 소설이라고 알려진 것을 쓰지, 자신의 체험과 상상력을 전하기 위하여 어떤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인양 소설을 쓰지 않는다. 대학을 중퇴하고 혹은 전공과는 무관하게 소설가가 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얼마 전부터 신인 소설가나 시인들은 대개 ‘문창과’ 출신들이란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들은 운 좋게 등단을 한 후엔 다시 문학과 관련한 대학원을 진학하여 대학에서 강의를 하거나 교수가 된다. 명민한 고진은 이는 1950년대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경향이며 그것이 어느 나라의 문학에서나 일반화된 것이라고 간파한다. 물론 이 역시 한국의 문학에서도 예외 없이 정확히 적용된다. 어쨌든 그렇게 변화된 여건에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소설을 읽음으로써 곧 세계를 대한다는 뜻에서의 그런 소설 읽기가 아니다.
역시 고진 식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는 “문학과 종교”니 “문학과 정치”니 하는 말을 통해 문학에게 문학 이상의 것과 대면하도록 하는 긴장을 잃은 지 오래이다. 알다시피 근대 사회에 접어들며 그런 긴장은 만들어졌고, 그것은 이전 단계에 “오락”에 불과하던 문학이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나며 얻어낸 성취였다. 지성적이고 도덕적인 것에 미치지 못하는 오락이었던 문학이 근대에 접어들며 전연 다른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을 때, 즉 문학에 속하던 감성이나 감정이 지성적이고 도덕적인 힘과 불가분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을 때, 문학은 종교 혹은 정치와 대적할만한 것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문학 단독의 힘으로 이루어낸 것이라 볼 수 없음은 분명하다. 고진이 따로 지나가면 언급하듯이 새롭게 부상하는 시민계급의 힘 때문이었든, “감성적, 감정적, 구체적인 것과 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연결”할 수 있도록 하였던 언문일치같은 새로운 글쓰기의 방법이든, 아니면 그것을 통해 국민-국가라는 ‘상상의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든, 다양한 요인이 문학의 새로운 위상을 가능케 했음은 분명하다.
앞서 말했듯이 문학과 종교 혹은 정치의 관계 속에서 문학을 어떻게 정의하고 또 그 특유의 위치를 어떻게 획정할 것인가는 지극히 근대 문학만이 앓았던 물음이었다. 물론 그런 물음은 문학의 순수함을 향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외려 근대 문학이 탄생하면서 내재적으로 견뎌내야 했던 문학의 “가능성의 조건”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근대 문학이 상상력에 속하는 것으로 자신을 주장하게 되고, 상상력을 통해 감성과 지성을 매개하는 것으로 자처하게 되는 순간 불가피한 것이었다 할 수 있다. 따라서 문학과 종교 혹은 정치의 관계를 묻는다는 것은 문학에만 순수하게 속하는 것을 따로 분리하여 구획하려는 것이 아니다. “일찍이 ‘종교와 문학’이라는 문제의식에서 ‘문학’을 옹호하는 논의는, 언뜻 보면 그것이 반종교적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제도화된) 종교보다 더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것을 지신한다는 것”이라거나 “‘정치와 문학’이라는 논의에서도 문학의 옹호는 대개 문학은 무력하고 무위이고 반정치적으로도 보이지만, (제도화된) 혁명정치보다 더 혁명적인 것을 가리킨다, 또 그것은 허구지만 통상의 인식을 넘어선 인식을 보여준다는 식”이라는 고진의 말 역시 그 점을 잘 보여준다.
혁명적 상상력이 불가능하다
그의 말을 쫓자면 문학은 종교보다 더 종교적이고, 정치보다 더 정치적인 것을 보여준다. 물론 고진이 말하는 문학의 종언은 문학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종교의 종언의 반향이자 정치의 종언의 반향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몇몇 급진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바울”이라는 인물에 관한 책을 다투어 쏟아낸 바 있다. 그들에게 있어 바울이란 교회를 통해 제도화되기 이전의 믿음의 차원을 보여주는 화신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생각 속에는 종교가 더 이상 믿음을 전달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이런 믿음의 위기는 단순히 종교의 위기를 넘어 혁명적 상상력 자체의 위기를 증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고민이 스며있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지금 우리에겐 결국 두 가지의 종교가 있을 뿐이다. 하나는 믿음을 잃은 종교, 수많은 신학적 지식들의 경연장이 되어버린 종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계에 대한 어떤 인식도 동반하지 않으며 맹목적인 환상으로 근본화 되어버린 종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미국에서 새롭게 각광받는 모르몬교이거나 아니면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찰슨 맨슨에서 옴진리교에 이르는 광란적인 이교이든 그것이 무엇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알다시피 현세기복적인 이데올로기만을 흩뿌리며 현실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를 가로막는 것으로 지탄받던 종교가 정작 바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예상과 달리 반대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종교를 보게 된다.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주제 넘는 말이겠지만 문학의 처지 역시 이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많은 이들의 생각인 듯하다. 나 역시 문학에서 무얼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같은 인기 소설가에서 전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느니 대중음악에 대하여 조금 해박한 사람이라면 잘 알고 있을 “시부야계” 음악을 듣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시대와 장소를 종횡하며 선택한 다양한 등속들로 자신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끈기 있게 읽기보다는 시부야계 음악을 듣는 것이 간편하고 또한 더욱 직접적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짧은 소견이지만 하루키의 소설과 시부야계 음악의 감각이 다를 게 없다고 나는 믿는다. 시부야계 음악이란 서구 대중음악의 다양한 장르나 요소들을 합성하여 만들어낸 일본 대중음악의 독특한 산물이다. 물론 그것은 모든 대중음악을 순전히 양식적인 것으로 환원할 때만 성립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시부야계 음악에서 록큰롤은 특유의 형식적 구성으로, 보사노바는 특유의 리듬으로, 샹송은 특유의 멜로디의 감각으로 환원된다. 따라서 시부야계의 음악은 ‘분위기’의 음악이다. 그것은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존재했던 다양한 음악들의 분위기를 수용하고 모방하지만 그 분위기 안에서 ‘느낌’은 사라진다. (물론 서구 대중음악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곧 이것이 미국과 유럽의 “포스트-록(post-rock)”이라고 부르는 것에도 해당되는 것임을 알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느낌’은 앞서 말한 ‘상상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상상력이란 고진 스스로도 언급하듯이 지성적이고 도덕적인 능력을 감성이나 감정과 매개하는 것으로서의 상상력, 즉 서구의 철학(특히 독일의 고전 철학)에서 미학으로 불리는 것이 겨냥했던 바로 그것이다. 적어도 칸트 이후 상상력은 더 이상 환상이란 이름으로 조롱받고 거부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성적이고 도덕적인 것보다 더 지성적이고 도덕적인 것이었다. 또한 상상력은 환상으로서 감정과 감성을 자극하는데 머물지 않고 감성과 감정을 더욱 강화하고 그것에게 새로운 능력을 선물하는 것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 시대의 문학이나 예술은 시부야계 대중음악과 같다. 그것은 이전 시대의 문학과 예술을 흉내내며 자신을 반복하지만 그것은 그저 분위기를 소비하는데 쓸모가 있을 뿐이다. 그것은 더욱 감성적이지만 또한 동시에 단순히 도락적인 취미를 위한 것일 뿐이다.
정치와 예술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단연 민중문학 이후의 문학, 민중미술 이후의 미술, 민중문화예술운동 이후의 문화예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중문학 혹은 민중예술 이후에 우리는 과도하게 정치를 의식하는 도식적인 이념 문학으로부터 벗어나 본연의 문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위협에 익숙해 있었다. 그러나 물론 그런 주장은 전연 틀린 것이었다. 정치로부터 거리를 두게 됨으로써 정치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속박이 풀린 순백의 문학을 얻기는커녕 우리는 문학 자체를 잃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이르는 한국 문학의 연대기적 시차와 그것의 의미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물론 여러 가지 접근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세상 어디에도 있을 것 같지 않은 비현실적인 난쟁이 가족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독자들에겐 어디에나 존재하는 가족이었다. 우의(寓意)가 가득한 그 가족의 이야기는 그 어떤 실제적 삶에 속하는 것도 아니면서도 또한 동시에 순전히 그 세계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구체적인 삶을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전체를 재현해주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물론 그것이 너무나 정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소설의 인물들과 상황은 누가 읽든 알레고리였다. 그것은 노동자가 읽든 지식인이 읽든 아니면 학생이 읽든 어떤 개념으로도 끄집어낼 수 없는 공감된 세계를 떠올리게 하였다.
반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양식화된 알레고리와 아이러니가 가득하지만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런 기교가 필요했던 이유, 즉 개념적인 것의 한계를 돌파하여야 한다는 이유와는 전연 관계가 없다. 그것은 곧 직접적으로 한 시대 혹은 사회적 층위의 생활방식을 보여줄 뿐이다. 그것은 이제는 촌스런 말이 되었지만 시대정신이란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풍속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 소설은 재밌지만 그뿐이다. 그것은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가라는 문학의 오랜 물음을 어떤 방식으로 우리는 각자 살고 있는가라는 묘사로 바꾼다. 그 때의 알레고리와 아이러니는 묘사의 기술일 뿐이다. 이는 영화와 대비하면 더욱 잘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른다. <박하사탕>이나 <살인의 추억>같은 영화에서 1980년대를 회상하는 장치로 김수철이나 이문세의 노래가 사용될 때 그것은 이전 시대의 감독들이 보여주었던 ‘기억’의 알레고리와 전연 다르다. 그것은 프레드릭 제임슨이 말했던 것을 빗대자면 “뉴딜 시대”니 “대공황 시대”니 하는 시대가 “비밥재즈의 시대”니 “XX 자동차 모델의 시대”니와 같은 것으로 재현되기 시작한 것과 유사하다. 그런 기억의 방식을 포스트모던의 특성이라 설명하며 제임슨은 그를 “노스탤지어”라고 부른 바 있다. 그것은 거칠게 말하자면 무한히 다양한 사건들로 가득 찬 시대를 더 이상 추상적이고 지적인 것과의 긴장 속에서, 혹은 정치적인 것과의 대결 속에서 상상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저 시대는 유행의 집합이며 풍속의 카탈로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하사탕>이나 <살인의 추억>이 군부독재 시대의 비합리적인 광기와 그로 인해 파괴된 삶을 보여준다는 상투적인 분석에 맞서 우리는 그 영화들이 그런 상상력의 부담에서 마침내 벗어난 영화들이라고 주장해야 할지 모른다. 그 영화들은 직접적으로 시위, 폭동, 학살의 장면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시대적 풍속의 풍경 속에 속한 장면들에 불과하다. 외려 이 영화들 속에서 그 시대를 상기하는데 가장 강력한 장치는 오히려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된 대중음악이고 그것은 그 시대의 분위기를 정확하게 회상시켜준다. 그것이 “광주항쟁세대”니 “민청학련세대”니 하는 말들이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그런 용어들의 자리를 “서태지 세대”니 하는 말들이 교체한 때의 일이란 점을 상기한다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는 물론 “상상력”이 빈사상태가 되어버린 상황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는 민중문학이니 민중예술이니 하는 것에 대하여 퍼부었던 힐난을 반성하도록 이끈다. 물론 결론은 간단하다. 과도한 정치적 요구와 이념적 주장에 도구화된 예술이라는 명분으로 민중예술을 비방하고 그로부터 예술을 구제하려 할 때, 그로부터 얻게 되는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론은 너무 단순하다. 최근 “낸시 랭”이라는 미술가가 대단히 화제를 뿌리고 인기도 누리고 있다. 그녀는 은밀하게 돈을 밝히는 고명한 미술가와 달리 자기는 당당하게 노골적으로 돈을 밝히며 예술의 근엄한 젠체하는 태도를 경멸하고 자신의 인기와 명성을 적극적으로 즐긴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자신 스스로가 미술 상품이라고 자처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언제나 역설하는 말버릇을 그대로 빌어, 낸시 랭이라는 ‘물건’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할 수 있을까. 물론 가장 올바른 태도는 그것을 그저 ‘물건’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녀의 주장처럼 예술은 언제나 돈이었으며 그것은 언제나 판매되었고 거래되었다. 그녀의 그런 주장에 대하여 충격을 받는 체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것이다. 왜냐면 한 번도 예술의 타자는 경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술의 타자는 정치일 뿐이다. 정치는 순전히 개념적인 공간에 속한다. “민생정치”란 말에서 암시되는 것처럼 정치란 것이 사회 성원들의 이해를 표상하고 대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정치가 개념적인 것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것이 정치라면 좋은 정치를 위해 필요한 것은 여론조사일 뿐이다. 그러나 정치가 그것이 아니라면 정치의 자리는 개념적인 공간에 있다. 그것은 현재의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엄격한 의미에서) 부정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것은 지금 여기의 사회가 자신의 관리를 위해 만들어낸 개념을 거부하고 다른 개념을 발견하는 것이다. 동어반복이지만 그런 점에서 정치야 말로 사유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나은 세계가 가능하다”는 식의 주장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외려 “지금의 세계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순수한 개념적 사유를 통해 획득될 수 없다. 그것은 상상력을 경유하여야 한다. 적어도 근대 예술이 우리에게 증명한 바에 따르면 개념은 언제나 그것의 중재를 통해서만 등장한다. 그런 상상력을 떠맡는 예술이 되는 것을 예술의 정치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예술이 정치에 속박되는 것이기는 커녕 예술이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고 오락을 위한 상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고 예술 자체의 소멸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된 마당에 예술은 어찌되어도 좋으며 자본주의와 국가의 운동에 대항한 정치의 본연의 책임을 생각하자는 고진의 패배적인 주장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정치가 종언하지 않으려면 예술도 종언을 하지 않아야 한다. 예술의 종언을 선언한 후에 정치를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현재의 정치를 다른 방식으로 개조하는 것에 그쳐버릴 수 있다. 그가 <트랜스크리틱> 이후 생산의 입장,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벗어나 유통의 입장, 소비자/시민의 입장에서 자본주의를 개조하자고 주장하며 그것이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가장 유효한 입장이라 역설할 때, 그의 주장이 미심쩍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그는 유통의 입장에서 가능한 정치, 즉 경제의 입장에서 도출된 정치를 생각할 따름이다. 그런 입장에 대하여 마르크스주의가 오랜 동안 사용해 온 정당한 개념이 있다. 물론 그것은 경제주의이다.
연대 대학원신문에 기고한 글 (끝 문장의 일부는 조금 다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