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군대 military 軍部/軍隊

P J Harvey – Sheela Na gig

“몇몇 사람들이 개인과 계급 사이에서 계속 다투는 그것과는 다른 하나의 구조 내에 집중되어 있는 세력을 상호신뢰할 수 있고 그네들 자신 충분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바로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세력 – 신속하고 결정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잘 장비되어 있는 세력이 요구되었으며, 이 같은 조건은 오직 군부 내에서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사건을 일으킬 역할을 결정한 것은 군이 아니었다. 사실은 그 반대에 더 가까웠다. 가장 중요한 민족해방전쟁에 있어 군의 역할을 결정한 것은 제반사건이었으며 또한 그네들이 발전시킨 것이었다.”(나세르, 「혁명의 철학」 중에서)

군부/군대 military 軍部/軍隊 더보기

줄리어스 캄바라게 니에레레 Julius Kamparage Nyerere (1922-1999)

ليب) | Samira Said – Mazal

므왈리무(Mwalimu)! 스와힐리어로 선생님이란 뜻을 지닌 이 낱말은 탄자니아 민중들은 물론 아프리카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했던 한 인물의 별명이다. 그는 위대한 제3세계 정치 지도자인 줄리어스 니에레레이다. 니에레레는 제3세계의 흥망성쇠와 함께 한 인물로서 숱한 논란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우자마(Ujamaa)라는 독특한 아프리카식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실험했다. 그것은 때로는 후진적인 러시아 사회가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은 채 바로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을 상기시켜준다. 이 논쟁에서 마르크스는 농촌의 공동체가 사회주의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며 자본주의를 거친 상태에서만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반박했던 바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던 많은 제3세계 급진주의자들은 니에레레의 생각을 비웃곤 했다. 한편 니에레레는 제3세계 민중들이 식민주의와 그 유산에 맞서 싸운데 있어 민족과 아프리카라는 ‘상상된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했던 인물이기도 하였다. 그는 ‘범아프리카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아프리카 언어인 ‘스와힐리어’를 보급하고자 평생 헌신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영문학의 고전을 스와힐리어로 옮기기도 했다. 또한 그는 제3세계 프로젝트가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기사회생시키고자 ‘남부위원회(Southern Commission)’를 조직해 열정적으로 활동하였다. 이미 비동맹운동은 붕괴되고 있었고 제3세계의 많은 나라의 지배계층들은 새로운 기회를 엿보고 있는 위기의 시대였다. 제3세계 나라들의 자본가계급은 식민주의자가 남기고 간 자산을 불하받거나 원조나 차관을 독점하여 축적했던 자신들의 부 위에서 새로운 곳을 향해 나갈 채비를 했다. 이를테면 외국의 투자자들과 손을 잡고 수출가공공단이나 경제특구 같은 곳에서 값싼 임금을 이용한 수출 상품을 제조하는 식이었다. 남부위원회를 통해 제3세계 프로젝트가 내세웠던 꿈을 되살리고자 했던 니에레레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는 1999년 폐렴으로 입원한 영국 런던의 어느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줄리어스 캄바라게 니에레레 Julius Kamparage Nyerere (1922-1999) 더보기

브란트 위원회 보고서 Brandt Commission Report

Scorpions – Wind Of Change

제3세계 나라들은 신국제경제질서를 끊임없이 요구했다. 과거 식민지 국가들이 남기고 간 경제 구조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민족국가를 수립하기위해, 이는 불가결한 것이었다. 그러나 뻔뻔하게도 과거의 식민 모국들은 이러한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제3세계 나라들의 신국제경제질서를 위한 압력은 두 가지 회의로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그것은 신국제경질서를 수립하기 위한 시도였지만 동시에 그것을 기대했던 역사적 시대, 즉 제3세계의 시대, 비동맹운동의 시대를 마감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조만간 제3세계는 남부(South)란 이름으로 대체될 것이고, 신국제경질서는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체될 것이었다.

브란트 위원회 보고서 Brandt Commission Report 더보기

아밀카르 카브랄 Amílcar Cabral (1924-1973)

Super Mama Djombo – Sol Maior Para Comanda

아밀카르 로페스 카브랄은 포르투갈령 아프리카 식민지 해방 투쟁을 이끈 혁명가이다. 그러나 제3세계 프로젝트를 이끌고 비동맹운동에 헌신한 혁명가들은 어쩌면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을 것이다. 카브랄이 특별한 인물인 점은 그가 제3세계 유토피아주의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나타내는 전사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는 기니비사우 민중들 사이에서 순교자이지만 역시 영원히 자신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는 인물로 기억된다. “카브랄은 죽지 않았다(Cabral ka muri)”는 말은 언제나 카브랄을 따라다닌다. 그리고 많은 뮤지션들은 이 문구를 노래 제목으로 삼기도 했다. 수퍼 마마 좀보 Super Mama Djombo의 노래 (1979)가 그 대표적인 노래일 것이다. 이 아름다운 노래는 유튜브에서 들을 수 있다.

아밀카르 카브랄 Amílcar Cabral (1924-1973) 더보기

월터 로드니 Walter Rodney (1942-1980)

Walter Rodney-African Identity

제3세계 프로젝트와 비동맹운동은 민족주의적이었지만 동시에 국제주의적이었다. 1955년 반둥회의에 모인 29개 나라의 아시아, 아프리카 대표들은 각 나라의 대표이면서 동시에 비동맹운동의 대표이자 제3세계 프로젝트의 대표였다. 그들은 제3세계라는 상상된 국제적 공동체, 민중들의 공화국의 대표였다. 이들은 글로벌 거버넌스를 읊어대는 오늘날의 어떤 기관이나 인물들보다 더 뼛속깊이 글로벌하게 행동하고 생각했다. 민족이라는 상상된 공동체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꿈은 같은 꿈을 꾸는 다른 민족과의 연대를 요청했다. 이러한 원칙은 곧 진정한 제3세계주의자들에게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방침이었다. 그 탓에 그들은 범아프리카주의, 범남미주의를 내세웠다. 특히나 월터 로드니의 삶을 돌이켜본다면 제3세계주의가 국제주의라는 것을 확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으면서도 또한 모든 나라에 속한 채,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을 위한 투쟁의 동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제3세계라는 세계의 화신이라 간주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월터 로드니 Walter Rodney (1942-1980) 더보기

유엔 무역개발회의 UNCTAD: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 國際聯合 貿易開發會議

Victor Jara – Venceremos

1944년 아바나에서 여러 나라의 경제 관료들이 모여 20세기 후반 세계경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그것은 흔히 가트(GATT)로 줄여 부르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을 말한다. 이 협정은 회원국들 사이에서 자유무역을 가로막는 장벽을 낮추고 감시하는 활동을 하고자 만들어진 것이었다. 1945년 탈식민화를 위해 투쟁하면서 독립을 쟁취한 많은 제3세계 나라들은 자신들의 민족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식민주의가 남긴 유산을 해결하여야 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바로 과거의 식민주의 종주국들로 이뤄진 제1세계와 제3세계 나라들 사이에서의 불리한 교역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자유로운 무역은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공언하면서 만들어진 GATT는 단지 선진산업국가들에게 이로운 무역 조건 만을 강요하는 기관이었다. 제3세계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자신들의 기관을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그 결실이 바로 유엔 무역개발회의였다. 이 기관의 수장은 프레비시가 맡게 되었다. 물론 그는 이미 종속이론의 아버지로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상태였다. 그는 급진적인 경제학자는 아니었지만 남미 국가들의 저발전 문제가 그들이 전통에 얽매여 있기 때문도 아니고 국내 정치의 문제 탓도 아닌 바로 오랜 식민주의로부터 비롯된 경제 종속의 결과란 점을 밝힘으로써 유엔에서 남미의 처지를 개선하고자 이미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온 터였다.

유엔 무역개발회의 UNCTAD: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 國際聯合 貿易開發會議 더보기

자유무역지구 FTZs: Free Trade Zones 自由貿易地區

임흥순, <위로공단> 중에서

“1967년 4월 1일 꽃샘추위가 한창이던 이날 오전 11시 구로동 공업단지 내 한국 수출산업공단본부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각료 및 산업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수출산업공업단지 준공식이 열렸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날 축사에서 ‘허허벌판을 불도저로 밀어붙인다고 수출 공장이 되겠냐며 의심한 사람도 많았지만 우리는 결국 해냈다. 정부는 이 단지를 25개 공장이 더 들어설 수 있도록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구로공단은 탄생하였으며 정식 명칭은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 제1단지였다.”

자유무역지구 FTZs: Free Trade Zones 自由貿易地區 더보기

민족주의 nationalism

النشيد الوطني الفلسطيني “فدائي” | Palestinian National Anthem

베네딕트 앤더슨은 오늘날 민족주의에 관해 공부하는 이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꼽힐 상상된 공동체란 책을 썼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책이 어쩌다 갑자기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는지 토로한 바 있다. 말인즉슨 이렇다. “그런데 1980년대 말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무너지자 상황이 급속도로 바뀌었다. 제국들이 다 그렇듯이 미 제국도 적이 필요하다. ‘공산주의의 위협’이 사라지자 그 공백을 ‘위험한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채웠다. 소련 연구의 센터 중 하나였던 케넌 연구소(Kennan Institute)의 높은 분이 급히 전화를 걸더니 빨리 와서 강연 좀 해달라고 호소했던 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 나는 소련이나 러시아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소련 연구는 끝났네. 그래서 연구비도 안 들어오고 학생들도 취업을 못하고 있지. 구소련은 온통 민족주의자들로 넘쳐나는데 우리 연구소에는 민족주의를 연구한 사람이 없거든. 지금 미국에서 우리를 도와 연구소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안 되는데, 자네가 그 중 한사람이거든.’ 나는 가지 않았다.”(베네딕트 앤더슨, 경계 너머의 삶 중에서)

민족주의 nationalism 더보기

브레턴우즈 기관 Bretton Woods Institutions

Pink Floyd – Money

2차 세계대전이 남긴 전쟁의 참화 속에서 세계 경제를 재건하려는 서구 선진국들의 노력은 국제 은행을 설립하려는 계획으로 이어졌다. 이는 처참하게 무너진 세계 무역을 되살리고자 했다. 전쟁이나 식민 지배로 황폐해져버린 나라들에 신용 대출을 해준다면 무역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는 곧 세계 여러 나라들이 참여하는 은행을 만들자는 계획으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의 브레턴우즈에서 세계 44개 나라에서 온 재무장관들은 새로운 국제 은행 체제를 만드는데 합의했다. 그 결과 훗날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하게 될 두 개의 자매 기구가 만들어졌다. 세계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과 세계은행(World Bank)가 그것이다. 사람들은 이 두 개의 기관이 만들어진 회의 장소를 본 따 이 두 기관을 ‘브레턴우즈 기관’이라 부르고 있다.

브레턴우즈 기관 Bretton Woods Institutions 더보기

민족해방전선 FLN: Front de Liberation Nationale, National Liberation Front, 民族解放戰線

Independence Cha Cha(라울 펙의 영화 “루뭄바” 중에서)

아프리카의 해로 불린 1960년,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자신이 현장연구를 진행하던 가나에서 프란츠 파농을 만난다. 크와메 은크루마가 주도하던 가나공화국은 범아프리카주의의 산실이자 요람이었다. 골드코스트와 아아이보리코스트의 민족주의 운동과 여러 자발적 결사체들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게 될 월러스틴은 은크루마의 범아프리카주의를 마음 깊이 지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체제론으로 20세기 후반 사회과학에서 중요한 혁신을 이룩하게 될 이 사회학자의 마음을 두고두고 사로잡은 것은 파농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론 세계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세 명의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파농을 꼽았다. “내게 파농은 근대세계체제에 의해 권리를 빼앗긴 자들이 그들 자신의 목소리와 전망을 가지고 있으며, 단지 정의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 판단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월러스틴 선집 서문 중에서) 파농을 아는 이들은 많다. 그러나 그가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의 투사였다는 것을 깊이 헤아리는 이는 드물다.

민족해방전선 FLN: Front de Liberation Nationale, National Liberation Front, 民族解放戰線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