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짜증스럽군..

–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지지글을 발표한 이후 끼리끼리의 비판과 그에 대한 반론 이후 나는 또 우울해졌다. 역시 나는 논쟁이 지겹다. 논쟁이 공론장을 만들고 그로부터 보다 좋은 합리성을 만들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은 우습다. 논쟁에 참여하는 주체는 언제나 하나의 문법 안에서 순환하는 가여운 쥐이다. 지배의 담론이나 허위의 지식은 반박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효가 되거나 잊혀진다. 부디, 논쟁에 끼어들지 말자. 그것은 그를 즐기는 이들에게 맡겨도 될 일이다.
– 여성주체의 입장을 게이남성지식인은 절대 알 수 없다는 투의 언제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독특한 유사페미니즘적 윤리는 이제 짜증스럽다 못해 지겹기까지 하다. 그런 류의 주장, 자신의 체험에 대해 투명한 주체라는 가정은 누구에게도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옳음을 위한 원리로 내세운다. 그것은 여성을 제외한 모든 주체, 나아가 여성의 핍진한 체험으로부터 소외된 주체를 비난하는. 본질주의의 가장 나쁜 형태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염증과 경멸은 깊어만 간다. 그리고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그것과 다른 페미니즘 사이의 분열을 경계하고 언제나 전전긍긍한다. 안타깝다 못해 우울하다. 여성의 본연의 체험이란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남성적 담론은 언제나 여성의 자기인식의 조건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므로 여성은 불가능한 주체라는 것, 그런 입장에서 남근주의적인 세계에 싸우는 입장을 발명하는 것이 여성의 “입장”이라는 것 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나는 설문조사와 참여관찰과 보고와 폭로와 고백 속에서 여성주체의 잊혀진 목소리, 배제된 권리를 주장하는, 거의 판박이같은 언어의 인플레에 멀미가 날 지경이다. 여성의 권리는 여성의 체험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언어화하도록 종용하며 그 주체를 길들이는 체계의 힘으로부터 유도되는 것 아닐까. 여성의 체험은 정말 근본적으로 번역될 수 없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차라리 김정란처럼 어떤 신비한 그 무엇에 여성은 있다고 알 수 없는 그것에 정박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것에 가닿으려는 꾸준한 욕망의 충동을 부추김으로써 그것에 관한 대화의 길을 발명해야하는 것 아닐까.
– 남자가 모르는 여자의 무엇 따위의 제목을 단, 갖가지 책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여성 자조지침서의 저자들이나 남자들을 위한 조언서의 저자들을 나는 절대 믿지 않는다. 그들이 성공하는 여성을 위해, 좀 더 여자와 통하기 위해 들려주는 여성 이야기의 여성은 과연 누구인가. 그럼에도 역설적으로 그들은 아주 평범한 상식을 알려주는 것 아닐까. 그들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남성의 타자라는 여성의 위치 안에서만 자신의 체험을 해석하는 주체일 뿐이다. 그렇지만 바로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유일한 여성의 체험이자 주체성이라면?
– 정상인으로서의 게이, 자신이 게이라는 것에 자긍심을 느끼는 게이라는 미국의 독특한 자유주의적 게이시민권운동에 나는 깊은 환멸감을 갖고 있다. 나는 그들이 변태로서, 도착자로서 자신을 상연하는 수많은 “안전한” 의례(SM, 강간 등)를 만들어놓고, 우리 시대의 도덕적인 감정으로부터 비롯된 수많은 비난과 공격에 정확히 대응하는 그것을 즐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은 자긍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또한 동시에 자신의 모욕을 즐긴다. 그를 긍지있는 성욕의 주체로 인정하며 즐기는 섹스도 있는가? 더티하지 않은 섹스? 그것은 불가능한 환상이다.
– 사르트르 왈, 타인은 지옥이다.
– 랭보 왈, 나는 타인이다.
– 그들은 지나치게 민감했던 것일까, 아니면 타인을 모두 자신의 욕망, 자신의 나르시시즘적인 이미지 안에 투영하려고 했던 비겁한 자들이었을까.
– 내일의 강의를 위해 다시 읽는 계급론 그리고 오늘 읽었던 침울한 기사들. 분배를 강조하는 빨갱이에 의하여 점령당한 정부와 의회를 규탄하는 조선일보의 끔찍한 사설, 죽음의 근거리에 놓인 빈곤을 재생산하는 노숙자들의 삶을 폭로하는 한겨레의 기사, 타워팰리스에 입주하는 동서로부터 비웃음을 당한 덕윤이 엄마의 이야기, 신용불량자가 400만에 육박했다는 비보… 오늘도 버텼다는 것이 용하다.

패러디는 무효다


패러디는 법 앞의 몸짓이다. 법이 없다면 패러디도 없다. 패러디는 의미작용을 규제하고 조직하는 상징적 질서로서의 법을 항상 전제한다. 그렇지만 탈근대자본주의의 표준적인 에토스는 법의 권위를 부정하거나 삭제하는 데 있다. 법은 없거나 무력한 공식적인 규칙과 협약으로 대체되어가고 있다. 데리다 식으로 말하자면 부재하는 초월적인 기의로서 법은 없다. 우리에겐 자의적이며 맥락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소소한 규칙이 있을 뿐이다. 사정이 그렇다면 패러디는 무효다. 법이 없다는 데 패러디가 서 있을 자리 역시 없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만끽하고 있는 패러디는, 필경 다음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먼저 없는 법, 사라지고 있는 법을 환상 속에 설립하고 존속시킴으로써, 법의 부재가 초래하는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상상된 법. 다른 하나는 탈중심화된 세계임을 선선히 인정하며 약한 법, 혹은 실용적인 협약과 법령으로 탈신화화된 법.
패러디의 ‘명가’ “딴지일보”를 생각해보자. 딴지일보의 패러디가 주는 쾌락은 무엇보다 법을 ‘구제’함으로써 얻게 되는 쾌락 아닐까. 딴지일보에서 우리가 느끼는 쾌감은 법의 허위성, 편파성을 감지한 탓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없는 법의 존재를 허구적으로 상연함으로써 얻는 “자유로운 주체”라는 환상의 쾌감 아닐까. 딴지일보를 읽으면서 흘리는 웃음과 흥분은 권위적이고, 관료적이며, 가부장적이고, 반공주의적인 상징 체계를 비판하고 있다는 믿음으로부터 연유한다. “딴지일보”의 패러디는 이데올로기적인 비판으로서, 우리의 심리적인 사고를 규정하는 법의 허구를 폭로하는 것으로 믿어진다. 이번 총선과정에서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의 인터뷰 기사는 그런 패러디의 정수를 보여준다. 예컨대 그는 고상하고 위엄있는 공적인 장면의 주체를 세속적이고 실제적인 이해에 오염된 인물로 격하시키고, 예의 딴지체로 그들을 묘사한다. 따라서 “DJ보다 이쁜 한화갑”이거나 “선수들과 잔 적이 없는 홍준표” 식의 표현은 공적인 정치적 주체(직업적인 정치가란 뜻에서가 아니라 “정치”라는 상징적 장을 규정하고 집행하는 상징적 주체라는 점에서의 정치가)를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속물스런 이기적인 개인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렇지만 패러디의 풍자성 그리고 그것에 결부된 이데올로기적 비판의 효력은 이젠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 이는 패러디의 풍자와 정반대되는 태도, 즉 맹목적인 신화적 이데올로기와 패러디 사이의 거리를 더 이상 고집할 수 없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한나라당의 총선 반전은 당대표인 박근혜가 국모의 딸이자 박애주의자 영부인의 딸로서 신화적인 이미지를 획득한데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박근혜를 “반공규율자본주의”를 이끈 파시스트의 딸이 아니라 신비한 모성적 여성으로 신화화한 것은 이데올로기적인 무지가 아니다. 박근혜의 이데올로기적 위장과 딴지일보의 탈이데올로기적인 풍자라는 구분은 옳지 않다. 공적인 법의 세계가 무너진 자리에서 정치를 규정하고 좌우하는 것은 여론조사와 토크쇼, 정치인의 이력과 소소한 사생활, 그의 인간적 자질과 매력 따위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딴지일보의 패러디와 박근혜의 이데올로기적인 신화화는 모두 동일한 형식적 절차에 의존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공적인 정치적 주체를 세속적인 이해에 오염된 개인으로 풍자함으로써 허구적으로 이미 법이 있었던 것처럼 상상하는 것과 자의적인 상상으로 선택한 정치적 주체를 숭고한 법의 화신으로 신화화함으로써 법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는 듯이 시치미를 떼는, 소소한 형식적인 차이에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스펙터클이 되어버린 정치 그 자체이다. 이 때의 정치란 자유주의적 정치학에서 말하는 선거와 투표, 법치, 언론의 자유라는 외적인 정치적 장치와 그것이 재현(대변)한다고 가정하는 현실 사이의 관계가 모호해져 버린 정치이다. 아마 우리가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적인 특성을 지적하자면 바로 이러한 정치의 재현적인 특성이 사라져버리고 정치적 행위 자체가 정치를 구조화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최근 인플레를 이루고 있는, 포스트 정치적 담론으로서의 “거버넌스” 개념이 유행하는데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거버넌스란 국가의 통치가 아닌 지역사회와 개인의 선택과 참여에 의한 통치로의 변화를 가리킨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따위는 곧 정치를 규제하는 일반적인 이상이 없는 정치의 세계, 곧 정치가 사라지고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개인들과 지역사회만이 있을 뿐임을 주장한다. 여기에서 법은 국가인권위원회, 노사정위원회, 청소년보호위원회 등등의 다양한 위원회와 시민단체와 여성단체의 수많은 입법 투쟁을 통해 공급되는 다양한 사회적 협약과 공식적인 규제 따위로 축소된다. 물론 법은 없고 선택을 하는 개인과 지역사회, 비정부기구 등이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패러디란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는 자율적인 주체의 환상을 공급하고, 상징적인 질서를 풍자함으로써 법을 극복하며 자유를 실천한다는, 순응적인 이데올로기 장치로 전락하여 버린다. 재차 말하지만 패러디는 무효다. 적어도 탈근대자본주의에 있어 이데올로기적 비판은 법의 비판이란 형식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유라는 환상을 비판하는 형식을 통해 실현되기 때문이다. ■
(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에 기고한 글)

전주 行…

– 전주엘 다녀왔다. 유쾌하지 못한 이유로 전주영화제를 떠난 후 내내 그곳을 가기가 어려웠다. 이젠 시간도 흘렀고 다른 낯의 사람들로 채워져 쉽게 걸음할 수 있다 여겼다. 그 전 내가 차지했던 지위에 가늠할만큼 융숭한 대접을 받을 생각도 없었고, 그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시비를 붙을만큼의 기력도 없으니, 이젠 그저 영화나 보고 식당이나 기웃대는 가벼운 여행일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내게 그곳과 어떤 인연을 상기시키는 이들을 피하자는 작정대로 낮은 포복으로 움직여 다녔고, 사람이 모일 만한 곳이면 피하려 애썼다. 덕분에 맘 주름질 일 없이 3박4일, 전주행을 했다.
– 이렇다 할 좋은 영화를 건지지 못해 아쉬웠다. 장유웬의 신작 <녹차>는 아주 실망이었고, 개방개혁 시대에 문혁의 그늘을 규탄하고 처치하려던 한 명의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그가 글로벌 자본주의의 괴물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어떻게 전락하는지 보는 듯 했다. 그에게서는 더이상 중국도 없고, 자유도 없고, 심지어는 자신에 대한 혐오와 분노도 없었다. 아르노 데스플레셍의 <파수꾼>이 그나마 건진 수작이라면 수작일까.
– 카롤린느 샹페띠에라는 촬영감독의 작품이란 이유로 선정된 그의 작품은 고전적인 카프카적인 세계였고, 드물게 인물에 관한 영화였다(모든 영화는 인물을 다루지만 그것은 캐릭터이지 인물은 아니다. 스토리를 상연하는 배역과 불가사의하리만치 충일한 한 인물을 재현하는 영화는 다르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인물을 다룬 영화는 많이 희귀해졌다. 이를테면 나는 데칼로그는 인물에 관한 영화라고 본다. 아니 키에슬로프스키의 모든 영화는 그저 인물에 관한 영화라고 본다). 한시도 한 인물의 낯을 떠나지 않는 영화를 만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데스플레셍은 냉전의 종식과 평화라는 세계의 표면 뒤에서 어떤 공식적인 제도와 권위로부터 그의 자유가 면제된 한 인물 – 역설적으로 그는 자유를 선택한 인물이다 – 과 그의 죽음을 쫓는 한 법의학도의 병적인 집착을 쫓는다. 영화는 아버지가 외교관이었으며 독일에서 성장한 프랑스 청년인 법의학도 마티아스의 파리행을 쫓는다. 마티아스는 프랑스로 가는 기차 안에서 외교부의 관리라는 자로부터 불법입국자란 혐의를 받고 곤욕을 치른 후 파리에 도착한다. 끔찍하고 영문모를 사건에 시달렸던 그가 파리에 도착한 후 열어본 가방에는 괴이한 사람의 머리 하나가 들어있다. 마티아스는 이 영문모를 머리의 신원을 추적하려 발버둥치고, 그는 그가 구 소련에서 살았던 인물이며 수마트라에서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 프랑스의 외교부 안에는 구 소련에서 자유를 택한 과학자를 몰래 서방세계로 빼내 그가 가진 첨단의 과학적 지식을 얻어내는, 일종의 인신매매 비즈니스 팀이 있다. 그들은 소련의 한 인물을 프랑스로 빼내는데 성공한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자유의 영지로 배당된 수마트라에서 자신의 온전하지 못한 자유에 저항을 했고 살해를 당한다. 그리고 그의 친형이었던 프랑스인은 그의 동생의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 외교부에 안에서 투쟁을 벌이다 지금은 미치광이이자 반역자로 몰려 추방을 당하게 된다는 신세가 된다. 마티아스에게 머리를 넘긴 인물은 바로 그였다.
– 그러나 이 영화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마티아스의 윤리적인 얼굴이다. 음모적인 비밀경찰과 맞서 싸우는 영웅적인 인물이란 설정은 흔한 것이고, 그렇게 보자면 이야기의 얼개는 매우 진부해 보인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시시해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그런 이야기에 실린 서스펜스를 쫓는 것이 아니라 거의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한 듯 보이는 한 미지의 인물을 향한 그의 집착이다. 그의 그런 태도는 국가권력의 뒤안에서 희생당한 한 인물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려는 자의 도덕적인 태도가 아니라 자신 안에서 자신을 뒤쫓는 저항할 수 없는 윤리적인 요구이다. 그는 마치 그것이 없다면 그의 삶이 무너질 것처럼 그것에 매달린다. 그러나 그의 안티고네적인 모습이 숭고하기는커녕 그로테스크하고 부조리하게 보이기만 한다.

– 알랭 기로디의 신작 장편인 <용자에겐 쉴 곳이 없다 No Rest for the Brave>를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래도 나는 그의 <오래된 꿈 That Old Dream That Moves>(일전 나는 이 작품을 “쿨 타임”이란 영어 제목으로 봤던 듯 하다. 로테르담이었던가..)을 다시 볼 수 있어 행복했다. 특히 내가 보지 못했던 다른 단편들 역시 만났다. 그러나 아마 그는 매우 난삽한 이력을 가진 감독인 듯 하다. 그의 단편들 가운데 <그것들의 힘>은 적잖이 실망스런 치졸한 작품이었다. 다른 단편 둘은 재치가 있었고, 특히 그가 미장센을 조직하는 능력에 있어 매우 탁월하며, 특히 사운드에 관한 한 금욕적이고 또한 이미지와 대사 사이에 소박하지만 그러나 사려깊은 연관을 부여하는 재주를 지녔음을 알려주었다. 다시 본 <오래된 꿈>은 파스빈더의 <팍스와 그의 친구들>을 연상시키는 그러면서도 그와 동년배일 울리히 사이들이나 미하엘 하네케 혹은 로베르 귀에드기엥을 연상시킨다. 그들의 정묘한 사회적 사실주의나 노동계급 출신 게이의 삶에 관한 치밀한 재현은 무조건적으로 나를 감동시켰다.
– <영화보다 낯선>이란 프로그램을 섭렵하지 못한 것은 후회할 일이다. 조나스 메카스나 론 라이스의 영화를 스크린에서 만나지 못한 것은 분명 후회할 일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영화를 보기 위해 생계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니. 아이작 줄리앙의 근작을 보지 못한 것 역시 안타깝고 분하다. 그렇지만 마침 상영일정에 포함된 패트릭 킬러의 작품들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그는 탈근대적인 도시인 영국에 관한 일종의 “도시의 교향곡” 풍의 영화를 만들려는 듯 했다. 그는 어느 산보객을 내세우며 런던이란 도시를 주유하고 도시의 풍경과 산보객의 파노라마적인 시선을 제시하려 애쓰지만 그 작품은 그 어디에서도 베르토프의 <카메라를 든 사나이>를 능가하지 못한다. 그저 그 영화는 수다스럽게 기억과 체취가 사라진 도시에 대한 한탄만을 늘어놓고 새로운 도시에서 배양되는 지각의 세계를 근거 없이 혹은 막연하게 축복한다. 그는 너무 책을 많이 읽었거나 아니면 남에게 지루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인 듯 하다.
– 끌로딘 에이지크만과 기 피만의 실험영화는 볼 만 했지만 흥미로울 것이 없었다. 그들은 영화와 사진의 연관을 대신하여 영화와 회화의 관계에 주목하는 실험영화 감독들 같았다. 그들은 이미지의 환영적 성격을 강조하는 사진으로서의 영화와 이미지의 정동적(affective) 능력을 강조하는 회화로서의 영화 가운데 후자의 편에 서있음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들이 시도했던 영화의 이미지의 회화적 성격 – 이 말은 이제 우스운 말이 될 것이다 -을 향한 집요한 관심은 디지털 영화 이후의 시대엔 매우 진부한 물음이다. 아마 많은 이들은 그들이 카메라를 통해 시도했던 수많은 이미지의 회화적 변조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이중인화와 빛과 색채의 다양한 변용을 통해 보여준 이미지들은 디지털 소프트웨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이미지들 사이에서는 이미 식상한 것이거나 흔한 것이다.
– 전주에서 체재하는 어제, 내겐 귀빠진 날이었다. 후배 녀석이 케익과 선물을 준비해 날 감격케 하였다. 동석했던 전주의 토박이 게이들도 내게 후한 축하를 베풀어주었다. 산란해진 마음을 빗질하기 위해 갔던 여행이기도 했던 터라, 그들의 우연한 호의가 날 가격했을지도 모른다.

2004. 4. 23.

– 왜 이렇게 마음이 수상한지 모르겠다. 중독되거나 몰입되거나 하는 이상항진상태에서 살았던 몇 해 동안의 삶의 여독인가. 문득 며칠전 글을 읽다 생각난 것이 떠오른다. 요즘 한참 자기강화, 자긍심 따위를 떠들어대고 장려하는 사회적 변화를 살피다가 의존증후가 미국인의 최대의 악폐라는 이야기를 접했다. 곰곰이 살피니 비단 미국의 일만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심지어 나 역시 그런 의존증후에 시달린다는 확신이 든다.
– 알콜중독인 남편에게 시달리면서도 더욱 그에게 매달리는 아내들을 두고 의존 증후라고 한단다. 제 정신으로 보면 제게 이로운 것이 뭔지를 헤아릴 줄 모르고 결단하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들에게 자주 떠넘기는 비난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긍심도 부족하고 자기를 강화시키려는 의지도 빈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난 그런 “자긍심과 자기강화에의 의지”를 탈근대적인 자아를 조성하는 또다른 권력에의 의지의 변종이라고 본다. 차라리 난 그런 사람들을 모질지 못한 사람이라고 위로할 것이다.
– 의존증후는 사실 자신의 피해와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는 왜곡된 희생이 아니라 어떤 윤리적 선택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복종하려는 욕망은 지배의 결과를 계산하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배가 있어 복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이 고안해 낸 덫에 타인을 지배의 위치에서 자리잡도록 꾀어내는 것은 아닐까. 매를 맞으면서 함께 사려는 강한 욕망을 굽히지 않는 것, 그것이 거래하는 무엇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내어야 옳지 않을까.

–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던 소설의 어느 귀퉁이에서 뻔한 말 한토막에 정신이 욱신거렸다. “속 깊은 대화”라는 글귀였는데, 그게 돌부리처럼 눈에 채였다. 그리고 혼자 속 깊은…속 깊은….을 뇌였다. 내가 언제 누구와 속깊은 대화를 나눴었지… 가물하기도 하려니와 숫제 전혀 내 생애에 그런 일은 없었던 듯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몹시 슬펐다.

위안부 누드, 강간 환상 그리고 식민주의의 섹슈얼리티

정반대로 위안부 누드는 강간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역사적인 기억마저 소모하고 있기에 더욱 위악하고 또한 폭력적이다. 위안부 누드는 역사적 기억을 강간 환상의 무대 안에서 소비한다. 그 자리에서 강간당한 여성은 존재하지 않고 스스로 은밀히 즐기고 있었음에 분명한 성적인 파트너, 마조히스틱한 여성이 존재할 뿐이다.

이승연의 위안부 누드(그것의 공식명칭은 종군위안부 테마영상집이었다 한다)로 북새통이다. 식민의 역사를 다시 기억해보자는 진지한 발로에서 위안부 누드를 기획했다는 제작사 측의 주장은, 참으로 가소롭고 기상천외한 설레발이다. 이런 졸렬한 변명을 할 생각이었으면 그냥 함구하고 있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위안부 누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이들의 태도 역시 이들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위안부 누드를 만든 이들은 위안부 여성들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었을지 모를 은밀한 성적인 환상을 천연덕스럽게 이용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오해했거나 무식했던 점은 여기에 있다. 그들은 “다들 즐기고 있다”는 순진한 사실만을 알고 있었지 “아무도 즐기지 않는 척 즐기고 있다”는 사실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어제 나는 친구 누나를 따먹었다”는 식의 흔해빠진 저질스런 음란한 낙서와 비슷한 수준으로 다루고 말았다. 그리고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물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옆집에 사는 친구 누나를 따먹었다는 식의 화장실 낙서와 위안부 여성들의 성적인 재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둘 모두 은밀한 강간 환상의 틀을 통해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위안부 여성들이 식민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는 위안부 여성들의 체험을 집요하게 성으로부터 떼어놓으려 애써왔다. 우리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체험을 상징화하는 유일하게 허용된 방식은 “식민지 백성”이다. 이는 그녀들이 겪은 고통의 핵심적인 원인이 강간이라는 사실을 삭제하는 것이다. 이는 전시에 강간을 당한 여성들의 체험을 인종적 폭력과 식민적인 지배의 결과로 환원하려는 (보스니아나 르완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남성의 역사적 법정의 논리이다. 설령 그녀들이 겪은 강간의 체험을 마지못해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강간당한 여성의 분노가 아니라 자기 여자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힘없는 남자들의 무력과 자괴를 위한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 오랜 세월 숨죽여 살다가 마침내 ‘커밍아웃’을 하였을 때 그녀들을 그토록 침묵하게 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그것은 그녀들이 전시에 강간을 당했기 때문이다.
위안부 누드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신대 할머니들을 식민지 백성이 아니라 성적인 대상으로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국주의를 기억하는 남성 주체의 입장 안에 강간당한 여성의 자리는 없거나 부정된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누이이거나 어머니로서의 여성이다. 그렇지만 민족의 역사가 위안부 여성들이 겪은 강간당한 여성으로서의 체험을 소외시키고 식민지 백성으로 상징화하였다고 해서, 그것이 위안부 여성들의 강간의 체험을 완벽히 잊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억압된 채 긍정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위안부 누드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런 억압된 채 즐겨지고 있던 남성적 환상이다. 위안부 누드는 위안부 여성(혹은 성의 희생을 강요당한 역사 속의 여성들)에게 투입되어 있는 은밀한 성적인 환상을 그만 어이없이 누설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위안부 누드는 괜찮다는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정반대로 위안부 누드는 강간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역사적인 기억마저 소모하고 있기에 더욱 위악하고 또한 폭력적이다. 위안부 누드는 역사적 기억을 강간 환상의 무대 안에서 소비한다. 그 자리에서 강간당한 여성은 존재하지 않고 스스로 은밀히 즐기고 있었음에 분명한 성적인 파트너, 마조히스틱한 여성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 때의 위안부 여성은 재국주의적 전쟁에 징발당한 채 성적인 보상을 제공해야 했던 여성이 아니다. 그녀는 모든 사회적 관계로부터 빠져나와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집행하는 “나의” 상상적인 여성일 뿐이다. 이는 강간이나 성희롱을 자행한 남자들에게서 흔히 듣는 이야기의 한 토막이다. 그는 왜 그녀가 그것이 싫었다면 왜 감히 저항하고 부정하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과 그녀 사이에 놓인 권력관계를 보지 못한 채 오직 욕망의 대면만으로 그 상황을 각색한다. 성폭력과 강간을 저지른 남자들의 집요한 환상은 언제나 그녀도 분명히 즐겼다는 것이다.
이는 위안부 누드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그리고 위안부 누드의 비참함은 바로 이런 성적 환상을 위해 전시 강간이라는 비극적 진실을 망각한다는데 있다. 위안부 누드는 위안부 여성의 체험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우고 있다. 어떻게 감히 “어머니 조국”을 능욕하느냐고 위안부 누드를 비난할 때 그 주장은 식민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식민의 역사 안에 놓인 위안부 여성의 체험에 숨어있는 성을 떼어내고 아울러 자신의 몰역사적인 강간 환상을 유지하려는 몸짓에 가깝다. 위안부 누드는 식민의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강간 환상을 이용한 싸구려 포르노일 뿐이다. 그것은 식민적 역사와 전시의 강간을 자신의 환상의 무대 안의 간단한 장치로 소비하려 했을 뿐이다. 따라서 위안부 누드의 평범하고 순진한 의도가 격렬한 거부에 좌절된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것은 강간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견지되어야만 하는 “망각의 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성적인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없이 우리는 상대의 욕망을 무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욕망의 무대가 되는 사회적 조건과 역사적 현실을 가능한 모른 척해야 한다. 그래야 그 환상은 달콤하고 뜨거워진다. 그러나 위안부 누드는 시퍼렇게 살아있는, 결코 그것을 무덤까지 비밀로 지킨 채 가지고 가지 않겠다는 강간당한 여성의 분노와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안부 누드가 실패한 것도 이 점에 있을 것이다. 자신의 체험을 진술하고 증언하는 여성 앞에서 남성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지만 위안부 여성은 결코 자신의 체험을 역사화하지 못했다. 역사를 기억하는 주체가 민족인 한 그것이 기억하는 여성은 어머니나 누이 뿐이다. 민족-역사의 환상과 강간 환상은 결국 동전의 양면이다. 물론 그것이 역사를 기억하는 온당한 방식일 수 없고 또한 위안부 여성을 기억하는 올바른 방식일 수 없음은 물론이다. 위안부 누드를 비난하는 것은 그것을 은밀히 즐기는 자들의 허울좋은 농담일 뿐이다.
– 컬티즌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탄핵정국을 바라보는 어느 급진주의자의 생각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길 거부하는 수구반동 세력의 “테르미도르의 반동”인지 아니면 노무현 식 신자유주의의 순항을 위한 “올인” 계략인지 아직은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지만 어쨌거나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세상은 뒤집혔다. 당장 7만 명이 넘는 이들이 광화문에 모였고, 광주에서도 부산에서도 탄핵반대를 외치는 목소리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탄핵안이 가결된 그 날 더럽고 꿀꿀한 기분으로 한 나절을 어영부영 보내고 난 후 우리는 티비 앞에서 여론조사의 발표를 보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런데 불과 며칠 사이에 상황은 야릇하게 흘러가고 있다. 여론조작과 언론공세를 탓하며 제 분수를 모른 채 투덜대는 야당은 그렇다 치자. 그렇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폭거라는 둥 헌정 위기, 국정 문란이라는 둥 갖은 해괴한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질서유지당으로서의 본색을 유감 없이 드러내는 열린우리당의 방황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렵다. 급기야 정동영은 오늘 시위 자제를 호소하고 나섰다. 아직은 흐뭇하고 반갑기 짝이 없는 현상이겠지만 이 시위가 언제 어느 곳으로 튈지는 아직 알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무현을 향한 여론과 탄핵을 향한 여론 사이에 놓은 간극은 바로 그런 불안의 원천이다. 헌법재판소의 무난한 판결로 사태를 수습하고 여세를 몰아 총선에서 대박을 터뜨리려는 열린우리당의 정략은 순조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유동적인 상황은 열린우리당이 그리 쉽게 헤게모니를 쥘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자발적인 시민들의 저항과 행동은 열린우리당이 어떤 오버를 하든 쉽게 그들의 의지대로 따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물어보자.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런데 “탄핵무효 국민행동”의 행보 역시 시원찮은 것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인가 친노 대 반노인가라는 이상한 대비를 내세우며 열린우리당의 헤게모니를 조금은 따돌리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잘못 들어선 길이란 점을 덮어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미리 밝히자면 나는 민주노동당의 비판적 지지자이며,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는 무슨 지식인이지 뭔지 하는데 참여했던 작자이다. 사태를 분명히 하자.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는 IMF의 신탁통치라는 금융위기를 발판으로 벤처 캐피탈리스트, 펀드 매니저, 닷컴 졸부 등과 함께 입성했다. 그것은 거의 해일처럼 들이닥친 구조조정의 태풍을 낳았고 실업과 비정규직 노동의 참담한 현실을 선물로 주었다. 국민의 정부는 서슬 푸른 군부통치의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겐 전에 없던 민주주의였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들에겐 인간의 모습을 한 신시대형 개발 독재였다. 이것이 파시즘적인 개발독재와 다른 점은 국민적 합의를 동원하는 새로운 조합주의적인 통치체제라는 점 뿐이다. 그 어느 것이든 민중적 이해와 상관없는 정권임은 다르지 않다. 게다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노사정 위원회니 청소년보호위원회니 아니면 국가인권위원회니 하는 수많은 시민사회 참여형 위원회를 통해 참여의 환상을 심어주었다. 또한 통합된 정치적 개혁과 변화의 프로그램에 대한 상상은 질식시키고 사안마다 각 이해집단의 협의와 조정으로 풀어낸다는 새로운 위원회형 정치체제를 만들어 놓았다. 물론 시민사회단체는 총체적인 정치 변화란 낡은 사회주의정치의 유산일 뿐이라고 빈정대며 무수한 모모 연대와 위원회로 흩어져 열심히 신자유주의적인 퇴행에 “참여”했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이 들어섰다. 노무현 정권은 거의 공포에 질려있는 국민과 상대하고 있다. 전무후무한 경제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고용은 줄어드는 시대에 대다수 사람들의 꿈은 오직 하나 변변한 일자리와 약간의 임금 소득이다. 탄핵 정국이라는 이름의 정세 역시 이같은 분위기를 판박이처럼 반복하고 있다. 우리는 이 웃지 못할 상황에서도 여전히 국제신용평가기관의 눈치를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성장과 발전이라는 근본적인 한계는 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맹위를 떨친다. 국민의 정부가 경제적 위기 관리를 위한 조합주의적 정치 체제를 효과적으로 만들어 놓았고, 그 최대의 수혜자는 노무현 정권이었다. 이제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적인 구조 개혁을 성공리에 마친 한국 자본주의의 두 번째 라운드의 위기를 관리하고 해결해야할 책임을 떠맡았다. 그것은 전무후무한 빈부격차와 실업, 공교육의 위기 그리고 이런 사회적 변화가 초래한 숱한 혼란이다. 신자유주의의 슬로건은 수도 없이 바뀌어왔다. 지식주도, 유연화, 혁신과 변화 등의 개념은 입사준비용 시사상식에나 등장하는 먼 옛날의 용어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배드 뱅크”와 “신불자”, 생계형 자살, 이태백과 사오정, 웰빙족과 명품족같은 신조어들에 휩싸여 있다. 노무현 정권이 서있는 자리도 여기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세계화 시대의 경제에 연착륙하였고 IMF와 굴지의 신용평가사들과 초국적기업들로부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들었다.
노무현 정권은 바로 그 변신한 한국 자본주의의 사회적 위기 관리의 책임을 떠맡았다. 다행히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변화의 흐름에 “유연하게” 정착한 신자유주의적 정권은 여러 가지 보호막에 싸여 있었다. 노빠부대는 바로 노무현 정권의 아이러니 그 자체이다. 그 어느 때보다 가진 자들의 정권으로 기능하는 노무현 정권이 그 어느 때보다 없는 자들의 희망의 역할을 떠맡은 것이다. 한국 보수정치의 구태에 염증 난 이들의 선량한 희망을 모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군부독재를 무너뜨리고 쟁취한 시민민주주의를 수호하여야 한다는 이들의 선의를 의심할 생각 역시 눈곱만큼도 없다. 그렇지만 넥타이부대의 전설은 이제 끝날 때도 되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보다 열린우리당이 건전하고 신선하며 양호하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노무현 정권이 군부독재의 공포정치보다 훨씬 국민적인 정권이란 주장은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렇지만 노무현 정권이 변화된 한국 자본주의의 관리를 위해 전보다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정권이란 점은 인정할 수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약간의 지역주의와 악랄한 반공, 반북주의 그리고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보수주의를 버무린,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데올로기 없는 헤게모니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대중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향한 반동 때문에 가까스로 살아남았고 또 버텼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고 있는 힘들은 바로 한국 자본주의가 변화하며 낙오를 강요당한 이들의 분노와 좌절감이 뒤섞여 있다. 임금 경쟁에서 밀려난 중소기업인들, 대형할인점에 쫓겨난 재래식 상가의 상인들, 자기관리와 취업을 강요당하는 중산층 이하여 여성들, 심지어 미래가 안 보이는 데도 끊임없이 능력과 창의성, 계발을 강요당하는 지친 20대들(이들이 반공단체를 능가하는 막가파 꼴통 보수라는 것을 모르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들이 바로 그 지지세력 아닐까. 따라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수구반동 대 민주의 이분법의 틀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다면 그렇게 입바른 소리 잘하는 진보는 뭐했냐고 물으면 할 말은 별로 없을 것이다. 진보진영은 지금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로 이어지는 변화의 와중에서 아주 넋을 잃고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들러리로 전락한 세력과 당장 절대절명의 삶의 순간에 사로잡힌 이들의 분노에 끌려다니는 세력으로 나뉘어졌다. 물론 압도적으로 성공하였으며 대세인 것은 전자이다. 이들은 사회책임경영, 상생의 기업문화 등을 내세우고, 주총을 쫓아다니고 공인회계사와 변호사를 동원해 투명 경영과 합리적인 착취를 강변한다. 사회운동은 이제 재단을 설립하고 변호사의 자문을 받고 공인회계사의 평가를 받는 프로페셔널한 비즈니스가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세력은?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노동자 혹은 빈민화한 제조업분야의 노동자들과 함께 주변화될 만큼 주변화되고 있다. 다들 자기고용과 기업가정신의 신경제의 이데올로기에 홀라당 넘어가 착취에 대한 반대는커녕 행여나 자기가 부족한 게 있을 새라 <아침형 인간>을 읽으며 자신을 혁신시키는 것이 신경제의 시대의 삶의 풍경이다. 따라서 저임금과 비정규직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절망적인 분노에서 계속 악순환을 거듭하는 전투적인 조합주의는 여간 심란하고 심지어 거리를 두고 싶은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민노총과 진보적인 사회운동은 계속 그런 빈민화된 민중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지난 토요일 오후 2시 서울역 앞에서 벌어진 초라한 민중운동 진영의 집회와 그리고 울산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의 쓸쓸한 분노는 아마 그런 진보진영이 직면하고 있는 답보의 단면이었을 것이다.
다시 탄핵정국으로 돌아가자. 맘에 들지 않지만 그것이 사회적인 위기관리를 떠맡은 노무현 정권의 순조로운 통치를 위한 호기라는 점은 분명하다. 노무현 정권은 어쩌면 다수 여당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고 국민의 정부 시절 순조롭게 완수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뼈대 위에 정책과 제도의 살을 붙여 이를 완수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이를 가로막았던 장벽은 놀랍게도 민중 진영이 아니라 정치적 이해를 달리하는 보수정당이었다. 그러나 판은 새롭게 짜일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노빠부대와 참여형 경선 그리고 대선을 통해 확보한 국민적 헤게모니를 사사건건 무너뜨리려 했던 반동적인 보수 야당은, 이제 몰락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러한 변화에서 우리가 진정 우려하는 것은 열린우리당과 현 정권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향한 비판을 보수반동에 대한 저항이란 이름으로 흡수해버리는 것이다. 이는 더없이 나쁜 시나리오이다. 항간에서 들려오는 총선 연기와 개헌 음모의 시나리오는 대수로운 것이 아니다. 설령 그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 해도 그것은 제2의 탄핵이 될 것이고 또 한번 들붙같은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궁지에 몰렸어도 사양길에 접어든 보수적인 당파들이 그런 무모한 모험을 하리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그런다면 아마 그들은 아마 가장 추악하고 참담한 파멸에 이를 것이다. 따라서 몰락을 자초한 보수적인 당파들에 관하여 심판을 내리는 일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그렇지만 노무현 정권이 이후의 상황에서 발휘할 바람직하지 못한 효과를 어떻게 저지할 수 있을지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국민의 힘으로 재기에 성공한 참여정부는 이제 신자유주의적 개혁 드라이브를 접고 국제신용평가기관의 평가에 아랑곳없이 또한 미국의 간섭과 주문을 가볍게 물리치며 국민의 이해를 살피는 정권으로 거듭 날까. 물론 그것은 전연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정반대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참여 정부를 위해 국민에게 남겨진 것은 노동운동이 아니라 성장과 발전을 위한 사회적 협의에 참여하는 것이고, 부안 거리에서 떼지어 시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자세로 대책 협의회에 참여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신불자가 되어, 불안한 미래에 몸서리치는 반실업자가 되어, 이 미증유의 변화를 강요하는 사회의 논리에 압사당할 것이다. 결국 탄핵 정국을 돌파하는 옳은 대안은 질서유지당이 되어버린 열린우리당의 개입을 물리치고 국민적인 저항의 진정한 방향을 가늠하는 길이다. 무엇보다 관건은 화염병을 던지고 육탄전을 벌이며 시내 전역을 숨바꼭질했던 울산의 노동자대회와 10만개의 촛불을 밝히고 아름답고 성숙한 축제를 벌인 광화문의 행사장 사이에 놓인 거리에 있다. 그 거리는 곧 참여정부가 수구세력의 정치적 반동의 피해자라는 연민과 분노 그리고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이 초래한 불안하고 참담한 삶을 향한 분노 사이에 놓여있다. 이 거리가 참여정부형 신자유주의적 정권이 성공적으로 데뷔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줄지 아니면 군사독재의 유령에 짓눌린 채 민주주의만을 되뇌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민중적인 개입의 출발점이 되어줄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민주주의가 이렇게 신자유주의적 질서 수호의 이데올로기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그 무엇으로도 완성될 수 없고 완성되어선 안되는 명령이다. 우리는 이미 실현된 민주주의를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부족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탄핵무효·부패정치 척결 비상시국선언문

2004년 3월 12일은 한국정치와 민주주의의 치욕의 날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우리는 한나라당·민주당 등 야당에 의해 저질러진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대통령탄핵 소추 가결을 강력하게 규탄하며 현 시국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첫째, 의회쿠데타를 자행한 수구 부패정치인들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국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야당은 오직 총선을 겨냥한 정략만을 앞세운 채 의회 쿠데타를 자행하고 말았다. 이는 명분없는 정치적 폭거이며 합법을 가장한 다수의 횡포이자, 국민에 대한 배반이다.
수구 부패 정치인들의 대통령 탄핵으로 온 나라는 순식간에 심각한 혼란에 빠져 있다. 정치가 이렇게 나라와 국민을 욕보여도 되는 것인가? 국민들은 나라를 온통 혼란에 빠뜨린 두 야당의 대통령탄핵에 결코 동의한 적이 없다. 오히려 전국 곳곳에서 정치적 폭거를 자행한 국회는 해산되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 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87년 6월, 국민항쟁으로 일궈낸 민주주의의 요체는 바로 국민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회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아무런 명분도, 국민적 동의도 없이 함부로 끌어내리겠다고 하는 것은 87년 민주항쟁으로 꽃피운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에 정면도전하고 있는 낡은 정치세력의 이같은 시도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헌법재판소는 탄핵무효임을 신속하게 결정하라
헌법재판소는 탄핵 무효를 요구하는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여 탄핵소추안에 대해서 신속하게 기각함으로써 국가적 혼란을 하루 빨리 끝내야 한다. 국회에서 가결한 탄핵소추는 법률적으로도 근거가 없으며 국민적으로도 명분이 없다. 헌법재판소는 신속하고도 명쾌하게 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서 국민적 불안을 해소하는데 그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셋째, 우리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범국민적 운동에 나설 것이다.
탄핵가결을 비판하는 국민적 여론은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와는 구분되는 것이다. 위는 두 야당의 쿠데타나 다름없는 정치폭거를 준열히 규탄하며 나아가 국민을 배반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는 수구부패정치권의 작태에 대해서 엄중히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이는 국민의 피땀으로 일군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범국민적 운동이며 우리 정치를 한 단계 전진시킬 역사적 운동이 될 것이다. 무책임한 정치를 국민의 뜻에 철저히 복속시키고, 민주주의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모든 국민들과 함께 할 것이다.
2004년 3월 13일
탄핵무효 부패정치척결 범 국민행동 준비모임

35세 정년, 조 스트러머 그리고 386 세대

단 한번도 386이란 문자와 동일시해 본 적이 없는, 그 동네에서 스스로 호적을 파버린 날라리 문화평론가인 내게, 30대를 향한 모욕과 적대는 참으로 우습다. 가소롭다. 솔직히 말해 이보다 별 시덥잖은 꼴이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오정(45세 정년)이란 괴담이 떠돌더니 이제는 삼오정(35세 정년)이란 더 섬뜩한 괴담이 횡행하고 있다. 완전계약제와 연봉제라는 유연한 고용 형태가 시대의 흐름이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니던 탈근대자본주의의 나팔수들마저 이런 추세에 뜨끔해 한다. 그래도 일말의 눈치는 남은 것이다. 시한폭탄이 째깍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만년 철밥통을 꿰찼거나 아니면 고액연봉의 오르가즘에 진저리치는 이들이 복창하는 노동의 자유가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겐 해고의 자유이며 빈곤의 자유란 것은 지난 5년의 세월이 충분히 증명하여 주었다. 그런데 이제 삼오정이라니 이건 해도 너무했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30대 이후의 일 맛을 터득한 숙련 노동자에게 조기 퇴직이 아니라 노동시장에서의 이동을 보장해주라는 썩 겸손한 조언이 다투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잠시만 기다리자. 전통적인 위계의 고리타분한 직장에서 벗어나 “와우”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법한(물론 나는 지금 마돈나나 에미넴만큼이나 유명한 톰 피터스의 [와우,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고 있다), 자신을 브랜드화한 30대 초반의 CEO가 등장하여 우리의 불안을 씻어줄 것이다. 쇄신이 아니라 혁명이고 질서가 아니라 혼돈이며 직업이 아니라 인생의 실험이라는 탈근대 자본주의의 경영 구루들의 복음은 나날이 인기를 더해 가는 우리 시대의 대중문화이다. 아쉽게도 나는 선착순 몇 천명만 받는다는 세계적인 경영 전도사 스티븐 코비의 장충체육관 내한 강연 이벤트에 가지 못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주제에 주5일제 근무가 어디 언감생심인가. 내가 아는 한 일초도 쉬지 않고 “좆뺑이”치는 것이 탈근대자본주의이다. 그래도 스티븐 코비 박사의 강연은 들어야 했을지 모른다. 그는 바로 내게 시간관리의 잘못을 알려주고, 베르그송이나 들뢰즈보다 더 쓸모 있는 지속과 생성의 시간론을 귀띔해 주었을지 모르는 일인데 말이다. 게다가 그는 스타 아닌가.
정말 우연히 며칠 전 조 스트러머(Joe Strummer)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 해 말 죽었다는 것이다. 그가 몸담았던 펑크 원조 [더 클래시(The Clash)]를 기억하는 이들은, 이제 더 이상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랑 동갑내기인 커트 코베인조차 존 레논만큼 늙은 영혼처럼 추억되고 있는데, 하물며 조 스트러머를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될 것인가. 그러나 그의 부음은 내게 영 새삼스럽다.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가 죽었다는 부음을 들은 지 불과 며칠 전이었기 때문일까. 엘리엇 스미스의 죽음은 마치 예상한 부음인 듯 여겨진다. 언제나 음울한, 죽음을 자청한 자들의 괴팍한 기분을 그가 풍기고 다닌 탓일까.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두툼한 스웨터를 걸치고 탁자 옆에서 일본산 사탕 깡통 옆에서 찍은 사진의 기억 뒤로 나는 그의 멜랑콜리가 지겨웠다. “아픈 척도 한두 번이지 너는 해도 너무 한다”는 내 졸렬함 탓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조 스트러머의 부고를 접했다. 그리고 나는 이제 거의 끝났다는 우울에 빠졌다. 록큰롤의 명예의 전당의 역사에나 어울리는 기억을 주억거리며 내가 센티멘탈해질 이유가 뭐 있겠는가. 그가 조용필도 아니고 신중현도 아니고 한대수도 아닌데.
아마 그것은 내가 30대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사회생활을 시작도 하지 못한 것 같은데, 아직 주택청약예금에 가입도 못했는데, 남들 다 한다는 뮤추얼 펀드에 계좌도 만들지 못했는데, 30대 쁘띠 부르주아지를 향해 세상이 선고하는 부음을 들어야 하다니. 그래서 억울하고 약이 올랐던 탓일까. 60년대를 미국의 몰락과 타락으로 단죄하는 미국의 우익들과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86세대가 나라를 망친다고 거품을 쏟는 꼰대 정객들의 광란 사이에는 묘한 닮은 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 한번도 386이란 문자와 동일시해 본 적이 없는, 그 동네에서 스스로 호적을 파버린 날라리 문화평론가인 내게, 30대를 향한 모욕과 적대는 참으로 우습다. 가소롭다. 솔직히 말해 이보다 별 시덥잖은 꼴이 없다. 이광재란 자가 얼마나 대단한 자인지 몰라도 그를 두고 그렇게 막말하는 게 아니다. 자기가 극구 노동운동을 하다 잘린 손가락이라는데, 모 일보의 논설위원이란 자가 나서서 그의 소영웅주의에서 비롯된 만용인지 아니면 출세의 의지에서 비롯된 쇼였는지 따지고 그의 순정한 삶에 침을 뱉을 일이 아니란 것이다. 댁들이 배불리 와인 홀짝이고 골프치고 해외여행 다닐 때, 정신이 나갔는지 마음이 본래 약했던 것인지, 눈물을 뿌리며 말리는 부모들에게 등돌리고 구로공단에 들어갔던 젊은 청년을 향해, 그렇게 사후적으로 뒷다마 까는 건 역사적인 예의가 아니다. 청와대 상황실장이 별거라면 별 것이겠지만, 문득 내가 작별했던 그 고약한 386들에겐 그건 정말 발톱에 낀 때만도 못한 것이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그런데 이번 글은 왜 이렇게 감상적인 거지, 제길. 편집자 양반, 자르려면 자르쇼.

욕망의 해방, 그리고 새로운 성혁명

커플 매니저, 타워 팰리스 그리고 새로운 성혁명
결혼전문가 혹은 커플매니저야말로 우리 시대의 중요한 사회학적 증상일 것이다. 모든 사회이론은 만남 자체를 괄호친다. 만남을 성사시키는 조건은 묻지 않은 채 만남이 이뤄진 뒤의 공식적인 사회적 계약 요컨대 결혼과 가족, 연인 등을 분석한다. 따라서 그런 만남이 이뤄지도록 만들어주는 조건을 분석하는 것은 망각되거나 포기된다. 그런 점에서 커플매니저와 결혼전문가는 사회학자들이 방만하게 무시했던 중요한 영역, 즉 만남에 관하여 분석하고 종합하는 우리 시대의 숨은 사회학자들이다. 그들은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분석하며 그것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중요한 상징적 지식을 생산한다. 물론 그것을 통해 꽤 많은 돈까지 벌어들인다.
접대 혹은 손님을 맞이하는 정신적 태도가 제3자 혹은 이방인과의 만남이라면, 결혼이나 연애는 내부에서의 만남에 해당될 것이다. 전자의 경우 제법 많은 사회이론가들이 분석을 시도하였다. 예를 들어 호텔은 전문화되고 상업화된 접대의 공간이다. 나날이 번창하는 컨벤션 센터류의 접대 공간과 파티서비스업과 캐터링 산업 등이 선도하는 접대 행위의 산업화는, 만남의 행위가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가능한 손님을 집으로 맞이하길 꺼린다. 푸짐한 성찬과 과시적인 증여로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던 과거의 접대의 에토스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우리는 가능한 집을 밀실화하고 있으며 “둥지”와도 같은 집이 바깥에 드러나길 꺼린다. 탈근대적 주거문화의 표본이자 “한국판 상류층의 신주거문화”의 상징인 “타워팰리스” 아파트는 아예 입주자를 찾는 손님을 재울 게스트룸을 따로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아파트의 입주자들을 취재한 어느 신문의 기사는 “그들의 생활양식”에 관해 흥미로운 소식을 전해준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정의하는 태도는 한마디로 말하면 “예절과 매너”라는 것이다. 동네 수퍼마켓을 갈 때라도 츄리닝을 입어선 안되는 예절이 바로 그들의 에토스이다. 그렇지만 접대의 문화적 정체성이 이렇게 바뀌어가듯이 만남의 정체성 역시 상당히 바뀌었다.
일전 누가 서평을 게재한 적이 있는 미셀 우엘벡의 소설 [소립자]은 우리 시대의 만남의 불가해한 성격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보고서일 것이다. 그는 놀랍게도 욕망의 철학을 비판하는 과격한 선언을 제출한다. 그는 이미 노환에 시달리고, 그 자신의 잦은 표현에 따르면 망령이 들은 노인들의 헛소리에 불과한 것으로 “욕망의 철학”을 규탄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그 염병할 노인들이 누구일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들은 분명 들뢰즈와 가타리, 푸코 나아가 욕망과 쾌락을 예찬한 모든 철학자들일 것이다. 우엘벡의 이야기를 따르자면 욕망의 철학과 생활양식은 미국에서 건너온 비트족과 히피족의 정신적인 에토스를 흡수하고 욕망에서 자유와 행복을 찾다가 스스로 파멸했으며 나아가 그 뒤를 잇는 세대를 파멸시킨 자들이다(따라서 들뢰즈와 푸코가 미국에서 복잡계이론과 초끈이론, 분자생물학을 뒤섞은 희한한 히피들 사이에서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예찬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들은 나체 해수욕장과 뉴에이지 풍의 레저시설의 주인이 되었으며, 불감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병자들이다. 그들은 사회의 비판을 자신의 욕망을 확보하기 위한 저열한 경쟁과 아집으로 몰아넣은 자들이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바로 이러한 68 세대의 철학 아래에서 황폐한 삶을 살아야 했던 그의 아들, 딸들이다. 그들이 근사한 아파트의 테라스에서 스와핑을 즐기고, 저녁 식사에서 욕망의 철학을 회상하며 쭈글해진 뱃가죽을 쓸어 내릴 때, 바로 그들이 번식시킨 두 아들, [소립자]의 주인공인 브뤼노와 미셸은 우울증과 편집증 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든다. 그런데 우엘벡의 [소립자]나 [플랫폼]같은 소설이 들려주는 하염없이 서글픈 20세기를 향한 부고는 또한 우리에게도 더없이 해당된다.
그러나 우엘벡의 소설이 환기하는 것은 만남에 대한 음험하고 도저한 향수이다. 그것은 낭만적 사랑, 진실한 사랑을 향한 안타까운 열망을 제외하곤 만남의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우엘벡은 실증주의와 무성생식의 세계를 꿈꾸는 미셸과 결국은 미쳐버린 채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에 수감된 섹스중독자인 브뤼노로부터 지극히 애매하고 반동적인 주장을 암시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사랑의 재발견이다. 그들이 죽기 직전 마침내 진정한 사랑인 듯한 운명적인 그녀들과 재회하고, 잠시 행복을 맛본 후 곧 끔찍한 죽음으로 그녀들을 잃어버릴 때, 그들은 각자 파멸적인 선택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러나 우리는 우엘벡의 싱겁고 시시한 결론의 암시로부터 가정의 가치를 일깨우고 진정한 헌신과 맹세에 바탕한 결혼을 강조하는 통일교와 모르몬교의 복음을 들을 뿐이라고 강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실, 우엘벡같이 총명한 작가가 주장하려 한 바는 바로 섹스를 둘러싼 “풍속의 해방”이 가져온 파국적인 결과, 사이비 절대 자유주의의 감당할 수 없는 결과에 대한 반성의 시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우엘벡의 주장 따위는 아랑곳 않을 것이다. 신체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옹호하며 기꺼이 안전하고 쾌적한 SM을 즐길 것이고, 애널 섹스를 둘러싼 공포를 극복하고자 애쓸 것이며, 스와핑을 둘러싼 논쟁에 참여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사이버네틱스를 통해 추출된 상대와 수백 번이 넘게 미팅을 할 것이다. 또한 자신의 가장 안전하고 훌륭한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기꺼이 요금을 지불하고 데이터베이스 속에 자신의 자질구레한 신상명세를 넘길 것이다. 또한 “동쪽에서 오는 귀인을 만나게될 것이다”는 따위의 점괘를 얻고자 복채를 지불할 것이며, 타로카드와 사주궁합을 보는 데 아낌없이 주의를 집중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싸구려 행동심리학과 뉴에이지 풍의 사이버네틱스, 허접한 동양학이 뒤섞여 만들어낸 만남의 과학을 통해 만남의 “기적”을 통제하고 지배하려 한다. 그러나 이같은 “만남”을 둘러싼 인식의 증대가 어느 사회학자의 말마따나 “친밀성의 구조변동”을 가져오고 한결 “자기성찰성”이 증대된 “순수한 관계”, “조형적인 섹슈얼리티”로의 진화를 가져오는 것일까. 물론 우리는 그런 주장에 한치도 동의할 수 없다. 우엘벡의 주장처럼 우리는 사랑을 더욱더 지혜롭게 통제할 수 있는 세대가 되기는커녕 만남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한 인류 최초의 세대가 되었다. 여기에서 벗어날 탈출구는 무엇일까. 그것에 대한 답을 찾느라 우리는 또 수십 년을 허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바야흐로 또 한번의 성혁명이 있을 것이다. 부디 그것이 극우가족주의자에 의한 반혁명이 아니길 학수고대할 뿐이다.

“비”의 성공 시대, 아도르노의 문화 산업론을 다시 생각한다


연예 비즈니스에 의해 기획된 가수라는 것이 오명이던 시대는 갔다. 물론 이미 사라지고 만 HOT를 비롯하여 JTL과 문희준을 여전히 증오하고 경멸하는 이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을 혐오하는 청중의 반응은 SM기획사의 어설픈 몸짓 때문이었지 그들에게 속한 어떤 속성과 자질 때문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것을 텍스트라고 부를 수 있다면 우리는 그들이 부르는 노래와 춤의 텍스트에는 별반 관심이 없다. 정작 우리가 작품과 제작된 상품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며, 소비자가 아니라 “미적 대상”과 무관심한 척 거리를 둔 우아한 고전적인 청중으로 스스로를 제 아무리 위치시키려해도, 그들을 비웃는 조롱 안에는 이미 소비자로서의 적극적인 “참여”가 스며있다.
이제 HOT와 GOD로 대표되는 기획 연예 비즈니스의 시대는 이제 한물 간 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그것은 처량한 향수에 깊이 빠진 채 프로모터와 매니저와 음반기획자로 상징되던 록큰롤의 한 시대를 상기하는 짓과 같다. 비틀즈의 위대한 매니저였으며 특히 존 레논과의 동성애적인 애착을 억제하지 못한 채 우울증에 사로잡혀 자살한 브라이언 엡스타인, 뉴욕의 언더그라운드 하위문화와 스펙터클한 소비문화의 전령 사이를 오가며 “벨벳언더그라운드”라는 밴드를 후견했던 앤디 워홀, 그리고 저 유명한 “월 오브 사운드”의 필 스펙터와 디스코 시대의 영웅 버트 바카락의 스튜디오를 기억하는 이들. 그러나 알다시피 탈근대 자본주의의 음악산업의 아이콘은 데이빗 게펜이다. 그는 록큰롤의 비즈니스를 “신경제”의 패러다임과 접속시킨 장본인 아닐까. 비록 그는 닷컴 기업의 CEO는 아니었지만 게펜이라는 레이블을 “아마존닷컴”과 같은 브랜드로 만들어내고, 스토커와 같은 모습으로 청소년 하위문화의 흐름을 포착하여 그것을 취향의 규범으로 만들어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는 인수합병의 지옥 속에서 어마어마한 가치로 그것을 팔아 넘겼다.
어쨌거나 프로젝트를 통해 기획된 콘텐츠가 곧 문화와 예술인 시대가 도래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음악 비즈니스를 대표하는 아이콘은 누구일까. 아마 “비”라는 가수가 바로 새로운 시대의 문화산업의 화신 아닐까. 먼저 그는 요즘 뜨고있다는 새로운 트렌드인 “메트로섹슈얼”의 전형으로 평가받는다. 남성적이면서 또한 동시에 여성적인 그의 외모와 인상, 분위기. 시중의 평가는 그가 메트로섹슈얼이라는 컨셉의 진정한 재현이라고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꽃미남”의 느끼한 감상적 호소와도 거리를 두고 촌스럽고 멍청한 진짜 사나이와도 무관한 그의 이미지는 물론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그저 진부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것은 HOT와 GOD 모두 분발했던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를 기획한 회사는 그를 정보경제의 콘텐츠로 가공하고 판매하는데 발군의 능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요즘 마케팅과 경영학이 토해내는 살벌한 용어는 “비”를 위해 마련되어 있다. 이를테면 닷컴 기업을 떨게 만드는 “비즈니스 모델”이란 용어는 “비”에게는 우스운 말이다. “원소스 멀티유즈”란 디지털 경제의 황금율 역시 “비”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편익과 효용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을 팔아야 한다는 마케팅 구루들의 예언도 “비”를 두고 만들어진 말이라 싶을 정도이다. 이제는 시들해진 “고객관계 경영”과 “휴먼 네트워크'”도 역시 “비”의 전공분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의 음반은 디지털콘텐츠의 쿠폰을 내장하고 있고, 그의 초상은 상품권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그의 뮤직비디오는 간접광고기법을 도입하여 여러 브랜드와 윈윈 전략을 구사한다. 그는 모 치킨회사의 광고에 출연하여 “야마카시”란 익스트림스포츠를 즐기는 분위기를 선사하고 브랜드를 감성화한다. 그의 음반에는 “비의 1일 매니저되기”와 “리니지 무료이용권’이 들어있어 고객관계관리를 솔선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저 유명한 문화산업론은 이 정도면 무색해진다. 도구적 합리성이 문화를 좀먹고 상품 세계의 추상적인 화폐가치에 의해 문화는 표준화된다는 그들의 문화산업론은 그간 많은 질타를 받았다. 어쩌면 아도르노는 사르트르의 운명과 흡사할 지경이다. 알다시피 우리는 더 이상 사르트르를 철학자로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가 실존주의 철학자였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의 철학적인 “사고”에는 관심이 없다. 우리는 그를 데카당트한 혹은 저항적인 에세이스트로 기억할 뿐이다. 이러한 처지는 아도르노에게도 해당되지 않을까. 우리는 “계몽의 변증법”을 역설하고, 파시즘의 정신병리가 만들어내는 집단적 주체성에 골몰했으며, 무엇보다 문화산업의 등장을 고발했던 아도르노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 그는 고상한 더욱이 마르크스주의자이기조차 했던 고상한 에세이스트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아도르노의 주장을 되새길 때가 오지 않았을까. 문화산업은 탈근대 자본주의의 경제 자체가 되어 우리에게 복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약간의 유보 조건을 달 필요가 있다. 그가 문화의 상품화를 우려했다면 지금 그것은 정반대의 모습으로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왜냐면 모든 상품이 문화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헤겔적인 논리로 그것은 부정의 부정이다. 먼저 경제가 문화를 부정하였고 그리하여 경제는 문화를 자신의 논리로 물들이며 ‘식민화’하였다. 그러나 문화는 이제 곧 경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의 최종적인 승리가 어떤 모습을 취하는 것일지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아도르노가 보았던 것은 문화가 판매될 수 있는 상품이기 위해 그리고 상품의 핵심적인 논리인 장벽 없는 이동과 거래 즉 교환의 대상이 되기 위해 “일차원적”인 물신이 되어야 했다는 것이다. 문화는 언제나 출판사, 방송국, 음악산업, 영화산업을 통해 매개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너무나 진부한 이야기이다. 상품은 스스로를 가치화하기 위해 곧 문화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품은 이제 트렌드와 유행, 라이프스타일을 연출하고 장식하는 심미적인 대상이다. 따라서 비의 마케팅 성공담은 곧 우리 시대의 문화산업의 “인지적 지도 그리기”를 실천하는 역설적인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