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과 존중에 대하여

– 한겨레신문에 같은 저널의 편집위원으로 일하는 법학과 선생이 칼럼을 기고했다. 그는 이미 <헌법의 풍경>이란 좋은 책을 쓰기도 했다(아쉽게도 나는 아직 책에 손을 대지 못했다). 신문에 난 글을 읽고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분명히 선한 의도로 쓰여진 글이지만 그 글에 저항해야 할 때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곤혹스러움이었을까. 사실 나는 그와 편집회의에서 가끔 불편한 기운을 만들어내곤 했다.
–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며칠전의 보수기독교도들의 시청 앞 집회와 보수기독교에 관한 티비 프로그램에 대한 시중의 반응에 마음이 쓰였던 모양이다. 그가 말하는 시중의 여론이란 그의 글에서 나오는 표현대로라면 “민주화세대”가 보수 어른에게 보이는 싸늘한 냉소와 빈정거리는 비웃음이다. 그의 글은 쉽고 설득력있으며 또한 따뜻하다. 동아일보만을 보며 뼛속까지 반공주의자인 아버지를 언제나 악착같이 설득하고 가르치려고만 했던 자신을 그는 문득 되돌아보고 자신의 태도를 뉘우친다. 그리고 글의 제목처럼 <세대 차 해소를 위해> 그는 민주화 세대들이 위의 반공세대에게 보이는 반응, 그러니까 냉소와 비웃음에 대하여 꾸중한다. 어른 구실을 못하는 보수 원로들의 궐기와 만담에 관하여 그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 세대들에게 그것은 그 이념의 내용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 그들은 그것을 알고 그것이 옳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만들어낸 불안과 공포로 인해 그를 숭배했다.
–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세대차를 넘어서기 위해 그들을 존중하여야 한다는 것, 그들에 대한 관용과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화 세대의 경험을 나눠갖지 않은 다음 세대들에게서 우리 역시 조롱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경고도 덧붙여져 있다. 물론 그럴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낸 민주주의인데, 어떻게 만들어낸 평등의 기운인데..이런 절망적인 회한에 파묻혀 민주화 이후 세대를 핀잔하다 우리 역시 꼴통 보수 어른들과 같은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런 논리에 나는 불편함을 느낀다. 필요한 것은 차이에 대한 관용이 아니라 옳은 것을 향한 용기가 아닐까.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세대의 문화적 차이를 폭력적으로 동화시키고, 그들을 오직 나의 눈길에서만 이해하려드는 정신의 몸짓은 위험하다. 우리는 그런 경고를 지난 십여년 간 지루할 만큼 늘어놓았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폭력이란 말은 지난 세월 우리가 발견한 죄악의 목록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위치에 놓여있었을 것이다. 타자성에 대한 무한한 호의, 나의 동일성으로 환원할 수 없는 타자의 절대적인 차이를 향한 예의, 타인을 이해하는 태도 즉 疏通이 아닌 타인을 맞이함(hospitality)의 태도. 이런 식의 윤리학에 우리는 깊은 감동을 느꼈다.
– 대단히 쓸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해, 쓰다가 묻어둔 글..그냥 올리기로 했다. 또 언젠가 이어쓸 날이 오겠지. (사실은 데리다의 부음을 듣고 그를 힐난하고 싶어했던 이 글이 무안해졌던 탓도 있다.)

외상의 공간에서 만나는 기억의 눈길

5.18 자유공원 상무지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얼마 후 안 일이지만 “5.18 자유공원, 상무지구”란 지리적 명칭이야말로 광주의 알레고리 자체였다. 첫날은 떡 하니 5.18 기념광장인 도청 앞으로 데려다주었다. 황당하고 낭패한 심정에 다시 택시를 잡아탔다. 이는 아주 운 좋은 경우였다. 마침 택시 기사는 그에 관한 기억이 있었다. 그는 상무대의 비통한 기억을 들려주며 날 데려다 주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간 곳은 상무대였지 5.18 자유공원은 아니었다. 도착했을 땐 이미 전시가 끝날 즈음이었다. 다음날 아침 역시 나는 결국 두 번이나 헛걸음한 끝에 겨우 5.18 자유공원엘 갈 수 있었다. 한번은 광주시민공원엘 한번은 5.18 기념문화관엘, 택시기사들은 날 데려다주었다. 이곳이 아니라 해도 막무가내로 거기라고 우기는데 할 말이 없었다. 길 찾기의 명수들인 택시 기사들은 5.18을 기념하는 장소의 미로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결국 마지막의 택시 기사에게 5.18과 공원 어쩌구를 뺀 채 그냥 상무대로 데려다 달라고 몇 번 다짐을 주었다. 그리고 겨우 정오를 지나 5.18 자유공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 낭패와 곡절이 바로 5.18 이후의 광주 이야기임을 깨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광주 비엔날레 전시의 세 번째 전시 카테고리인 <그 밖의 어떤 것>에 참여한 작업의 상당수는 광주를 향한 기억의 전략과 상대한다. 기억에 발목 잡히지 않은 채 발전하는 광주에 관해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어느 전시물에 적힌 어느 광주 시민운동가의 인터뷰처럼 개발과 발전은 기억을 청산하려 애쓴다. 그는 광주시민이 기업가적인 진취성이 희박하다고 푸념한다. 그러나 민주화투사에서 경영마인드로 무장한 지역발전의 전략가로 변신한 사람들이 기억의 멍에를 규탄할 때, 그것은 자칫 유치하며 패배적인 주장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125번 버스”란 설치작업에서 중학생들이 보여준 놀라운 기억의 시각적 지도는 가치있다. 광주란 도회와 실핏줄처럼 연결된 시골마을과 그것을 잇는 125번 버스 노선을 관찰하며 아이들은 노동과 교환, 성장과 이동의 민중적 미시사를 기억해낸다. 그 시민운동가는 지방분권시대를 접수한 지역발전의 담론이란 좌표에서 기억의 위치를 찾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위치에서도 기억이 만들어지고 생산된다. “섬-중흥동 252번지” 역시 그런 기억의 전략을 향해 이의를 제기한다. 작가들은 “흔히 민주화의 성지, 항쟁의 도시, 인권의 도시, 문화의 중심도시, 예술의 도시로 상징되는 광주의 여러 가지 얼굴의 이면에는 감춰지고 가려진 또 다른 얼굴이 있다. 이 작품은 사회중심에서 소외되어 소수 또는 약자로 살아가는 주변부의 사람들에게 광주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편견과 오만의 가면을 벗겨내고자 한다”고 작업 의도를 설명한다.
“섬”의 작가들은 광주란 얼굴의 이면이라고 말했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것은 이면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허위를 벗겨내면 드러나는 진실의 얼굴이 아니겠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면에 있다고 말한 중흥동 252번지 마을 사람들은 기억의 권력에서 배제된 주체들이다. 그들은 기억의 이야기 안에 자신의 공식적 위치를 가질 수 없다는 점에서 차라리 인도의 탈식민주의자들이 말하는 하위주체(the subaltern)에 가깝다. 삶은 있지만 기억은 없는 주체, 현실은 있지만 재현할 언어를 결한 주체란 뜻에서 중흥동 252번지 주민은 기억의 공동체에서 배척당한 주체이다. “민주화 시대”에 광주는 복원되고 조사되며 기념되었다. 광주를 공식적인 국가와 지역의 이야기로 조직할 때 그것은 광주란 지역의 변화의 전략과 합성된다. 상무대가 상무지구란 이름의 개발 권역이 되고 그 옆에 자리할 공간적인 사건이 아파트 단지이자 전철역이란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기억의 전략과 발전의 전략이 뒤엉킨 공간 안에 “중흥동 252번지”를 끌고 들어오는 것 역시 정당한 일이다. 그것은 기억의 전략들이 대립하는 자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어쩌면 광주비엔날레란 이벤트가 그 대립의 공간 자체일지 모른다. 광주비엔날레는 지역 발전의 전략에서 비롯된 이벤트이다. 그리고 그 이벤트가 지닌 긴장을, <그 밖의 어떤 것>이란 전시에 참여한 주체는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상무대란 공간이 그런 긴장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한다. 그런 점에서 훈육적인 학교사회를 향해 소박한 비판을 던지는 “원(元)하자”의 설치작업이나 “풀밭 위의 식사” 팀의 섹스를 모티브로 한 설치작업은 엉뚱하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엉뚱한 것도 아니다. 산업화를 위해 치닫던 시대의 질식할 듯한 규율과 통제는 학교-공장-감옥-병영으로 이어지는 공간의 질서로 나타난다. “원하자”는 바로 그 학교사회의 훈육과 규율을 폭로한다. 관처럼 세워진 규격화된 종이박스와 그에 그려진 서로 다른 모습을 한 아이들의 실물 크기의 모습들, 욕조에 잠긴 교복과 그 앞에서 점멸하는 훈육사회의 슬로건들, 그리고 영창과 사열을 위한 뜰을 가르는 담벽을 에워싼 교실 책상의 벽들. 물론 그것은 폭압적인 군주의 모습을 한 권력의 모습 옆에 나란히 놓인 또 하나의 권력을 부감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산업화 시대의 국민을 길러내는 권력이고, 그 권력의 공간은 학교이며 공장인 것이다.
“풀밭 위의 식사” 역시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은 거리의 룸살롱과 술집들의 간판에서 채집한 이국적이고 천박한 상호들을 티셔츠에 프린트하여 빽빽이 진열한 후 그 위로 거리의 풍경을 영사한다. 헌병대 식당이던 옆방에 설치된 양초 덩이에서는 싸구려 냄새 물씬한 화학적인 방향이 스멀스멀 풍겨 나온다. 작가의 의도와 달리 이 설치 작업은 탈출과 도피의 자리를 차지하는 성욕의 공간을 비춘다. 그러나 그 욕망 역시 균질적이고 도식적이다. 벗어나려던 욕망은 언제나 같은 자리를 맴도는 욕망에 자리를 내준다. 그렇게 넓게 보아줄 때 “원하자”와 “풀밭 위의 식사”는 또 다른 기억의 켜를 들춘다. 그리고 아직 기억할 것이 남아있고 다르게 기억할 세계로 현실은 존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앞의 작업들을 압도하는 것은 역시 상무대라는 외상(外傷)적인 공간 자체일 것이다. 그것에 아무리 다른 기억의 이야기를 앉혀놓아도 상무대는 그것을 압도하는 “작품”으로 버텨낸다. 결국 우리는 기억은 언제나 외상의 자리를 맴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쉽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다시 기억함으로써,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냄으로써 기억을 극복할 수 없다. 새로운 서사적인 허구의 주인이 되는 기억으로는 충분치 않다. 외상은 다른 외상을 통해 사라질 뿐이다. 그 다른 외상이란 물론 광주항쟁의 꿈을 완수하는 사건이 만들어내는 역사적인 외상이다. 그 사건에서 만들어질 시각적인 표현을 선취하는 작업과 만날 때 상무대는 아마 전시의 공간이자 배경으로 조용히 물러날 것이다. ■
광주비엔날레로부터 청탁을 받아 쓴 제3전시에 관한 리뷰, 도록집에 실릴 예정

광주역에서+서울에서


– 열차 시간이 두시간이 남았다. 광주비엔날레 전시에 관한 글을 청탁받고 어제 광주엘 왔던 차다. 글을 쓰기로 한 전시가 열리는 상무대-518자유공원을 찾지 못해 어제 오늘 거푸 고생을 했다. 타지에서 온 나보다 더 고전한 것은 광주의 택시기사들이다. 어제는 도청앞 광장을 데려가더니 오늘은 광주항쟁기념문화관이란 곳과 광주시민공원을 데려가놓고 내가 가려는 곳이라고 윽박지른다. 그 탓에 어제 오늘 택시비를 길에 뿌리고 다녔다. 덕분에 본전시는 결국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서울로 돌아가게 되었다. 칠칠맞은 스케줄로 멍청히 보내야 하는 저녁 시간만 잔뜩 덤으로 얻은 셈이다.
– 호젓하다 못해 을씨년하기까지 한 전시장에서, 나는 서로 생각이 헛돌고 엇갈리는 산만한 작품들로 인해 적잖이 곤혹스러웠다. 어떻게 글을 쓸지 갈수록 막연해지는 기분이었다. 플라잉씨티와 믹스라이스의 작업은 익숙한대로 여전했고 성실하게 노력한 게 보였다. 그를 제외하곤 고승욱과 배영환의 비디오 설치는 그들에 대한 내 애정 탓이었는지 실망스러웠다. 개념을 제시하는 설치 작업이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의견의 과시에 머물 때, 실패하게 된다. 눈에 띈 것은 외려 광주 출신들의 작업이었다. 마이너리티란 개념과 어떻게 운을 맞추어야 할 지 모를 순전히 광주의 기억에 관한 작업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차이가 흥미로웠다. 한 지역사회의 기억을 압도하는 참혹한 학살과 저항으로부터 젊은 세대는 놓여나고 싶어했다. 그들은 시민군이 아니라 대중문화의 기호인 “해태 타이거즈”를 기억하는 응원 퍼포먼스를 촬영하고 그를 전시했다. 반면 같은 광주 출신 작가들의 작업의 다른 끝에는 80년대의 민중미술운동을 이끌었던 작가들의 기억이 재현되어 있다. “불로동 연가”란 설치 작업이 그것이다. 플라스틱 탁주사발과 귀퉁이가 떨어져나간 소반, 그리고 등사기와 벽에 나붙은 중국 목판화 풍의 민중판화들..
– 그러나 전시보다 날 압도했던 것은, 고백하자면 상무대 그 자체였다. 황석영의 광주항쟁에 관한 보고서나 다른 광주항쟁에 관한 기록에서 듣던 그 상무대를 어제 처음 목도했다. 영창과 식당, 사열대, 관물함이 놓인 창고 등. 벌써 5분짜리 인터넷 기계의 숫자가 껌벅댄다. 남은 글은 다시 서울에서…
– 객지에서의 旅愁를 몸서리치게 느낄 만큼 난 젊거나 민감하지 않다. 그런데도 아직 낯선 곳에서 잠을 뒤척인다. 방안 가득 웅웅대는, 엔진음같기도 하고 냉장고의 소음같기도 한 침침한 소리에 결국 일찍 잠을 깼다. 잠이 오지 않으면 보려고 모텔의 전당포같은 접수 창구 옆의 꽂이에서 가져온 비디오 테입은 포기했다. 대신 모텔에 들어오기 전 충장서림에서 샀던 고은의 2002년 판 백낙청 選 <고은 시선>을 읽었다. 백낙청이 묶을 만한 선집이었다. 그래서 그의 아득하고 전율할 언어보다는 그의 의지와 이념을 보여주는 시들이 골라졌다. 발문에 적은 그의 고은의 역정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억지스럽고 도식적이었다. 심지어 그는 고은이 하지 않은 반성과 자백을 대신 수행하는 듯 보이기까지 했다. 허무의 시인에서 분단극복의 통일 시인으로 변모하는 것이 고은의 일생이었다는 정리는 그가 점차 원숙해지고 나아지고 있다는 그의 독단에서 나온 이야기일 뿐일 것이다. 그는 언제나 당대에 가장 빼어난 시인이었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의 분석은 백낙청화된 혹은 분단문학론의 이념형적인 시인으로서의 고은을 상기시킨다.
– “문의 마을에 가서”부터인가, 그 뒤까지 몇 편의 시를 읽다 잠이 들었다. 몸이나 씻을까 했는데, 외풍이 드는지 서늘하고 을씨년한 모텔방에서 그럴 기분이 나지 않았다. 모텔은 언제나 역하고 뜨거운 공기로 가득차 있어야 제격인데. 그러고 보니 여관에서 잔 것은 언제나 겨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매캐하고 또 비릿한 훈증의 공기. 외설스럽고 또 비참한 냄새. 호텔의 카펫에서 나는 매캐한 듯한 냄새와 고요한 소음이 내는 냉정한 거부의 느낌보다 좋다.
– 상무대를 찾는데 헛걸음한 회수를 생각하면 그게 지금의 광주를 보여주는 알레고리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너무나 많은 5.18운운의 기념물과 장소들로 인해 길눈 밝은 택시 운전사들조차 어디가 어딘지 헷갈려 한다. 5.18자유공원을 찾지 못해 결국 나는 여러번 헛걸음을 했고, 1시간여를 넘게 헤맨 끝에야 장소에 도착했다. 어제 가본 곳인데도 이렇게 낭패를 보았다. 어제 낯을 익힌 자원봉사자 겸 출품 작가 가운데 한 명은 이 곳에 사는 제 후배들도 여길 찾지 못해 애를 먹는다고 한다. 딴 소리였지만 아마 날 위로하자는 이야기인 줄 알아듣고 그냥 웃었다. 제 자리를 못 찾아 낭패스러웠던 게 아니라 5.18 이란 이름으로 공간을 꼬아놓을 수 밖에 없었던 광주의 현실이 낭패스러웠는데.
– 아마 80년대에 상무대를 보았더라면 나는 아마 까무라쳤을 것이다. 84년 겨울 서울 뒷골목의 어느 헌 책방에서 주인이 아주 비장한 표정으로 내게 물경 5천원을 받고 팔았던 광주기독학생청년회의 자료집을 보고 그랬던 것처럼. 덕지덕지 오려붙인 사진의 등사판 인쇄물은 요란한 독일어들과 함께 내 눈에 박혀 며칠 동안 꿈 속을 둥둥 떠다녔다. 도무지 호흡을 가다듬을 수도 없고 침착하게 뒤로 물러선 반성 역시 불가능하게 만드는 적나라한 폭력 앞에서, 아마 누구나 그랬을 것처럼, 그냥 난 완벽히 수동적인 벽이었다. 정신이 얼어붙는 것. 감각이 일순 정지하는 것. 그리고 이제 청산과 반성과 기념이 끝난 시절에 나는 그 곳엘 갔고 원형 감옥을 반쯤 잘라 놓은 듯한 부채꼴의 영창 앞에서 마음이 산란해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감옥의 방들이 치즈조각처럼 생겼다는 어느 작가의 메모 앞에서 울컥 짜증이 일었다. 솔직한 심정은 “이 새끼, 제 정신인 거야”였을 것이다. 아마 왜 내가 그 겪지 못한, 알지 못한 사태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인가..라고 흔한 항변을 늘어놓았다면 정녕 더 흥분했을 것이다. 삶은 기억하지 못한, 겪지 못한 사건들에 자신이 연루되어 있음을 느끼는 것이지 않을까.

망할, 청소년…

– 오늘 청소년 국제교류프로그램 심사를 마치고 왔다. 오늘의 컨디션이 꿀꿀해서인가 아니면 내 심사가 뒤틀려서인가 내내 불편하고 짜증스러웠다. 딴에는 열심히 궁리하고 꾀를 짜내서 만들었을 파워포인트 파일을 보여주며 아이들은 열심히 이야기한다. 그런데,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죄다 생태적인 삶, 대안적인 생활공동체, 소수자적 문화, 시민사회 등을 떠든다. 자기의 행복한 삶, 자신의 이익과 욕구의 실현을 이야기한다. 결론은 이 아이들이 어느새 포스트모던 자본주의 사회의 모범생, 우등 청소년이란 것이었다.
– 학교가 감옥이자 공장이었던 훈육사회에서 벗어나길 결심한 잘 난 아이들이 세상에 넘쳐난다. 서태지 세대 이후에 아이들을 모두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장소로 몰아넣고 모두의 머리 속에 한가지만을 쑤셔넣던 시대는 우스개가 되어버렸다. 학교는 있지만 학교사회는 사라졌다. 학교와 학교바깥이 연결되는 방식이 달라졌고, 학생은 학생이지만 내 인생은 나의 것인 자기주도적인 학생들이 거기에 있다. 공장에 노동자가 있지만 그들은 회장님의 훈시와 직무지시서의 강제에 시달리는 종업원이 아니듯이 말이다. 그들은 그냥 자기경영에 힘쓰는 평생직업 시대의 브랜드-나라지 않는가.
– 여튼 아무도 그런 규격-훈육사회를 원치않게 되었고 섬머힐은 굳이 아닐지라도 온갖 대안학교와 탈학교 청소년의 쉼터, 훈육사회에 넌더리난 어른들의 퇴행적인 꿈의 후견 기관들이 늘어났다. 구빈법이 Workfare로 바뀌었듯이 그리고 수용소가 통원치료형 가정억류로 바뀌었듯이 청소년들은 다시 새로운 시대적 명령에 시달린다. 이러한 자유를 통한 강제를 부르는 또다른 이름이 제어(control) 권력이라는 들뢰즈의 말은 정확하다.
– 따라서 우쭐한 심정에서 역시 우쭐한 기분의 어른들 앞에서 어릿광대짓을 하는 아이들과 마주하고 나는 내내 비참했다. 참으로 비참한 것이 많다. 비오는 날 버스를 타고 길을 지나다 어둑해지는 초저녁 거리에 반라의 개업식 나레이터 모델들의 모습을 보는 건 정말 비참하다. 우비를 입은 채 천박한 댄스뮤직에 맞춰 억지 웃음을 담고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를 그리로 내 몬 세계 전체의 비참한 윤리를 보여주는 것 같아, 돌 것 같다. 웃으며 즐겁게 노동하라, 몸을 팔아라는 명령만큼 잔인하고 악랄한 것이 어디 있는가. 이럴 땐 너무나 상스러워진 세상을 껴안고 불구덩에 빠져들고 싶다.
– 그렇지만 아이들이 무슨 죄인가. 청소년들을 만나는 일을 하면서 드는 생각은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이미 어른들에게 복종하는 새로운 방법을 터득한 아이들에게 내가 절망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청소년 선도가 아니라 청소년 기살리기여야 한다는 것을 떠들 때, 그것이 카리스마적인 리더십이 아니라 서번트 리더십이어야 한다는 기업가들과 경영자들이 소란과 똑같은 것임을 간파하지 못했던 잘못이 있을 뿐이다. 이런 담론의 연쇄반응, 혹은 담론의 프랙탈적인 복제를 보면서 나는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아연해질 뿐이다. 청소년은 무엇을 욕망하는가를 들어야 한다고 개폼을 잡을 때, 이미 포스트모던 자본가들은 자신이 하인이어야 한다고 한술 더 뜬 너스레를 떤다.
– 그러나 좀체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 노동자들과 달리 힘없는 아이들은 더욱 복종적이다. 학교를 나오고 부모에게 개기는 아이들에게서 거꾸로 더욱 복종적인 모습을 보는 건 슬픈 일이다. 가방 끈 긴 어른들의 권력을 금방 흉내내고 그들의 언어게임을 시늉하며 자신의 처지를 유리하게 바꿔내는 아이들의 재주란 놀라울 따름이다. 난 퀴어청소년으로서 청소년 퀴어가 우리 사회에서 전혀 재현되지 않고 있으며 소수자 가운데 소수자라는 주장에서 내가 듣는 건 나르시시즘적인 흉한 욕망의 목소리분이다. 범생이들은 범생이처럼 믿지 않고 바뀌지 않고 수동적인 저항으로 버틴다. “글쎄 잘 모르겠지만 당신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끈질기게 버티는 아이들에게서 아마 희망이 생길 것이다. 들뢰즈가 곧잘 칭찬하고 감탄하던 “바틀비”의 그 고집스런 수동적인 저항은 어른들에게 자신의 영혼까지 서비스하는 아이들에게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 자기소개서는 잘 쓰지만 가족 이야기와 친구 이야기에 관한 한 놀라운 무능력을 보이는 아이들, 불화와 분란을 피해와 고통으로 금새 각색하는 아이들,.. 이쯤 해두자. 그냥 분한 심정이었다고 치자. 망할, 청소년들..
– 그런데 내일도 또 청소년이다. 이번 주말은 청소년들이 날 조진다.

오, 짜증스러울 뿐!

– 다능공 혹은 멀티 플레이어 혹은 포스트모던 지식노동자, 뭐라 부르든 나는 이 일에 익숙치 않은 체질인가보다. 짜증과 초조만 부글댄다. 오늘의 디지털문화에 관련된 행사 기획 회의 내일엔 대중문화 강의, 모레엔 청소년국제교류프로그램심사, 글피엔 국제청소년영화제 심사..이런 널뛰듯이 하는 스케줄에 집중하기란 괴로운 일이다. 서글픈 일이지만 이게 내 생계의 방식이니 마다할 수도 없다. 올 가을엔 계간지 원고 세꼭지를 써야할 형편이다. 일간 광주에도 다녀와야한다. 비엔날레 측의 원고를 써줘야기 때문이다. 인권위의 원고 수정요구는 거부했다. 그간 써서 제출한 원고가 아깝지만 주관적이다, 객관적인 주장이 없다 운운의 원고검토위원의 주장을 수긍할 수가 없었다. 널리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요구를 하라니, 그것이 무슨 요구인가. 인권은 무조건적인 윤리적인 요구여야지 사회적 규범에 종속되어선 안되는다는 초보적인 상식조차 무시한다. 인권이 국가기관의 정책이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이것으로 인권위와의 관계를 끊어야 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 어쨌든 장 마리 스타라웁과 다니엘 위예의 영화를 섭렵하겠다던 나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고 그게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갑자기 머리 속에서 계산해야할 일들이 늘어나면 신경질적이게 된다. 원고를 미리미리 감잡아둬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내가 이러고 있을 계제냐며 갑자기 논문과 관련된 자료를 뒤적이며 부산을 떠는 것, 등등. 이러다 결국 제풀에 마음이 불안해진다.
– 엉터리같이 물구나무 서기를 해 보았는데, 그게 아주 영험하다..늘 하루 종일 뿌옇게 그을음과 연기가 들이찬 듯한 머리를 세척하려고 한 짓이다. 박군이 그걸 추천했는데 조금 어렵다. 어쨌든 그 때문에 머리가 맑아진 것도 있겠지만 그 때문에 몸이 어째 조금 작동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우웅거리는 기계음을 내며 종이를 뽑아대는 프린터처럼 죽지 않을 만큼의 예열 상태에 있던 몸이 한번 작동한 기분? 나쁘지 않다. 아니면 자기계발서를 줄곧 읽으며 귀따갑도록 듣는 자기경영 = 건강경영 이라는 대목에서 소소하게 언급되는 건강의 숭배에 나 역시 감염되었던 탓이거나.
– 어제 CJ에서 높은 자리에 일한다는 어느 인류학자와의 만남을 포기했다. 엉거주춤 학교에서 일을 처리했지만 곧 Senef 영화제의 개막식에 가야했기 때문이다. 마침 올 넷페스티벌의 심사를 맡았던 터라 줄곧 연락이 왔다. 개막식의 내빈으로 행사의 위세를 과시하는게 그런 행사들의 생리인지라 아마 두루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여 못을 박아두려 했을 터이다. 제가 무슨 대단한 내빈인지는 모르겠지만 꼬박 약속을 받으려는 영화제 측의 인사 때문에 마다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내심 그리너웨이의 개막작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
– 지루한 개막식이 끝나고 보았던 그리너웨이의 <털시 루퍼의 가방> 2탄은 역시 끔찍했다. 지난 해 부산영화제에서 나는 거의 오기로 1편을 보았고 그 산만하고 요란한 영화에 질려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렇지만 감독의 이 집요하고 방대한 프로젝트에 대한 호기심까지 죽인 건 아니었다. 이제 남은 마지막 1편을 내년에 보아야 할 것이고, 또한 그의 전작이 실린 하이퍼텍스트형 이미지 아카이브로서의 DVD를 만나게 될 것이다. 아마 그것은 크리스 마께르의 CD롬 작업과는 다른 무엇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걸 굳이 다시 볼 엄두는 나지 않을 것 같다.
– 털시 루퍼의 20세기 주유의 경험(그는 거의 한 세기 동안 여러 감옥을 전전한 죄수이며 부랑자이고 보헤미안이다)을 추적하고 연쇄시키는 이 작품에서 내가 든 느낌은 간단했다. 그의 지성주의가 그의 프로젝트를 질식시켰으며 진부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프로그래머는 작품 노트에서 그를 시청각적 고고학자라는 조금은 겉멋같은 표현으로 그를 표현했지만 나의 인상은 그와 다르다. 그는 그저 영화의 제임스 조이스가 되려 했던 듯 하다. 영화가 어떻게 근대적인 재현의 기계였는가를 간단히 가정하고 그것을 초과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잠재성을 그것과 대비시키는 것. 그러면서 그는 영화 안에 삽입된 모든 영화 이후의 장치가 어떻게 영화에 통합되어 종래의 영화적 정체성을 변용시켰는가를 물을 수 없게 된다. 그는 얼마나 다른가, 얼마나 단절하는가, 얼마나 새로운가를 역설하는 진부한 주장을 하는 듯 보인다.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종래의 소설에 대한 평주로서의 조이스 소설 읽기처럼 그리너웨이는 자꾸 화면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영화에 대한 평주로서의 영화로 보인다. 그게 짜증스러웠다.
– 오늘은 짜증스러운 삶에 관한 이야기 뿐이다. 제길.

추석 유감

– 열심히 자기계발 서적을 읽고 있는데 – 날 계발하자는 뜻에서가 아님에 유의해주시길..난 내내 자기궤멸의 길을 달린다고 자괴하는 중입니다 – 진정, 자기파탄의 후배가 몇 년만에 불쑥 전화를 했다. 새벽 2시에.. 새벽의 전화는 부음이거나 푸념이거나 투정이기 일쑤이기에 나는 낯선 전화를 앞두고 내내 망설인다. 남편이 졸연 병으로 눕고 제가 밥벌이에 나섰으며 너무나 외롭고 힘들다는 후배의 말과 내내 갈현동으로 와서 함께 술한잔하자는 부탁을 나는 께른한 목소리로 거절했다. 내내 기별않다, 제 아플 때 제 힘들 때 뻔하게 날 찾는 이들의 심정에 대한 나의 오랜 분개 – 저 사람은 그래도 힘든게 뭔지 알지..라는 기억 속에 각인된 나는 얼마나 힘들고 측은하고 비루한가 –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늦기도 했고 무엇보다 먼 발치에서 제 자신과 떼어놓는게 좋을 것 같았다. 결국 작전대로 제게 감정이입해주길 기대하는 후배에게 찬물을 끼얹는 말을 늘어놓고 대수롭지 않은 듯이 우리는 대화를 끝냈다. 하고 싶었던 말은 입에 맴돌았지만 관뒀다.
– 갑자기 모기가 극성이다. 아무리 집안을 뒤져도 모기향을 피우는 그 작은 플라스틱 장치는 보이지 않고 결국 나는 마음껏 뜯기기로 작정하고 안티푸라민을 꺼내들었다. 물고 뜯으면 그 자리에 바를 작정으로. 일전 창문을 열어두어 날아든 모기들이 어디에서 암약하는가 보다. 결국 어젠 잠을 설쳤고 새벽에야 설핏 잠이 들었다. 오늘도 역시 모기는 극성이고 나는 녀석들과 화해하기로 작정했다. 모기향을 피우지 못한 탓이기도 하지만 이 빈약한 체구에 들러붙기로 한 그들의 궁벽을 동정하기로 했다.
– 추석이 다가온다고 들썩인다. 물론 쇼핑몰과 장사꾼들 뿐이다. 아마 대개는 질겁할 심정으로 추석을 기다릴테고 몇은 그래도 즐거운 기분에 그걸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역시 올 해에도 귀향을 하지 않을 것이고 성묘란 건 아예 포기한 채 호로자식으로 살고 있는 나의 은밀한 공포는 올 추석에도 극성을 떨지 모른다. 이를테면 나는 불현듯 어머니 얼굴이 떠오르면 거의 발광에 가깝게 그 생각을 떨친다. 꿈을 꾸다가도 호흡을 가다듬고 잠에서 달아난다. 무너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죄책감, 자신에 대한 분노, 그 엉망이었던 삶에 대한 연민…내가 지척에서 지켜보았던 유일하게 간곡한 가난하고 멍든 삶. 나는 그에 대해 대죄를 지었다는 슬픔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분하다. 왜 내게 그걸 변제할 기회를 주지 못했을까. 빚을 갚지 못한 이 어처구니 없는 분노로 나는 내내 명절마다 우울할 것이다.
– 올 추석엔 무슨 짓을 하며 지낼꼬… 그 즈음 읽을 책이나 볼 영화를 꼽아두어야 겠다.

Sweet Melody~~

-며칠 붙들고 훌훌 읽던 이진경의 <자본을 넘어선 자본>을 죄다 읽었다. 부담스런 두께지만 후배나 제자들에게 아낌없이 권하고 싶은 책이다. 80년대 중반, 대학에 들어와서 기초 의식화를 끝낸 후에 머리가 굵은 놈들에게 아주 인심을 쓰듯이 경제학 세미나에 입회할 자격이 주어졌다. 그리고 한 학기는 족히 지나야 – 사실 그 땐 공부를 너무 밝히는 것이 투쟁에 대한 기회주의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난 늘 죄의식에 쫓기며 학교 앞 서점에서 책을 뒤적이곤 했다 – 우린 경제학 책을 쥘 수 있었고 그때서야 겨우 읽을 수 있었던 수많은 맑스주의 경제학 서적들이 있었다. 그 때 우린 일본 오오스카 학파의 베버주의적인 경제사로 자본주의 이행에 관한 공부를 하고 우에노 학파의 입장의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다가 다시 소련공산당 버전의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는 식의 좌충우돌의 공부를 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 때 배운 잉여가치론이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공황과 위기론, 자본주의적 인구법칙 등의 이야기는 아주 짜릿한 과학의 세례를 주었다. 그것이 오직 몇가지의 개념을 터득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그 이상이었다. 겉멋이 아니라 어떤 개념은 세계를 인식하는 체험 자체를 상승시킨다. 그 때 내가 접한 정치경제학은 그런 것이었다. 충분한 도덕적인 훈련을 거친 우리에게 아주 뒤늦게 경제학 책을 쥐어준 선배들의 쓸데없는 오만한 치기는, 그렇지만 적절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난 위험한 비밀을 깨달은 듯 했고, 윤리적 존재였던 민중은 내게 프롤레타리아트, 자본주의의 적대적 모순이 되었으니..
– <자본을 넘어선 자본>은 책 읽어주는 남자, 이진경의 솜씨를 완연 잘 보여준다. 그는 <제국> 이후의 신경제를 향한 맑스주의의 비판적인 입장을 잘 간취하고 그것을 정치경제학 비판이라는 즉 맑스주의의 경제학의 불가능성이란 입장과 설득력있고 알기쉽게 설명한다. 적어도 우리는 알튀세르학파로부터 그리고 해리 클리버의 <자본론의 정치적 읽기>를 통해 알게된 이태리 맑스주의자들로부터 정치경제학 비판이 맑스의 입장이지 보다 완성되고 또한 오류로부터 해방된 경제학이 맑스의 입장이 아니라는 것, 혹은 자본의 경제학에 반한 노동의 경제학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주지하고 있었다. 경제란 언제나 권력과 매개되고 그것에 의해 가능성의 조건이 형성되는 것이란 점에서 경제학은 그 자체 이데올로기라는 것. 그런 관점에서 그는 외부의 역사적 유물론이라고 그가 부르는 인식론? 혹은 이론적 프로그램을 정의한다. 이 대목에서 그는 더 치밀하지 못하다. 이 점이 아주 아쉽다. 그는 포스트구조주의의 문제의식의 모든 핵심은 외부의 철학이란 점에 있다는 식의 나이브한 결론에 서있다는 듯한 생각을 버리기 어렵다. 모든 것을 규정하고 조직하는 보편적인 규범과 규칙, 코드에 대한 관심이 구조주의라면 포스트구조주의는 그것의 불가능성, 그것은 항상 외부에 의해 대리보충된다(데리다), 그것은 언제나 담론 외적 사건에 의해 우발적으로(계보적으로) 규정된다(푸코), 존재는 구조로 환원할 수 없는 사건의 시리즈일 뿐이며, 구조의 외부는 무가 아니라 사건이다(들뢰즈) 등.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그가 발명하고 추가하는 몇가지의 개념은 흥미롭다. 이를테면 생산의 정보화라는 <제국>의 유명한 장의 주장을 그는 잉여가치론의 개정을 위한 요소로 받아들여 이를 기계적 잉여가치론이란 개념으로 내놓는다. 가치론에 우선하는 자본주의적 폭력으로 가치화의 개념을 내놓은 것은 이미 이태리 맑스주의자들의 주장이었으므로 새로울 것이 없는 훌륭한 요약이며 해제이다. 그렇지만 절대적, 상대적 잉여가치론에 이어 기계적 잉여가치란 개념을 내놓으며 말 그대로 사회적 협동, 집합적인 정신활동 자체가 전사회적 차원에서 가치화되고 자본에 의해 전유될 때 그는 이를 기계적 잉여가치란 개념으로 명명한다. 노동자 없는 노동, 인간동력기로서의 절대적 잉여가치의 노동하는 주체, 인공지능적인 기계-인간으로서의 상대적 잉여가치의 노동하는 주체, 그리고 뒤이어 노동자 없는 노동, 삶의 능력 자체를 흡수하고 전유하는 자본이 등장하고 이 때 가치는 노동과의 관계로부터 해방된다.
– 그런데 이는 그가 명명한 개념의 옳고 그름을 떠나 네그리와 하트가 내놓은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지만 이처럼 자본이 전적으로 사회적인 협력과 소통 자체에 의존함으로써만 자신을 가치화할 수 있는 시대란 곧 자본주의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그 지점에 이르렀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같은 예언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내재적인 외부에서 즉 피안, 혹은 너머로서의 다음 단계, 이후의 현실이 아닌 지금 이미 존재하는 실천으로부터 그 대안을 조직하자는 그의 주장은 우리가 네그리에게서 듣고 이미 실망한 이야기이다. 자본에 의한 가치화가 아닌 대안적인 자기조직화 즉 우리의 삶을 우리 스스로 가치화하라는 명령은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전율하게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가? 그런 철부지같은 물음, 몇년째 우리가 진저리치고 있는 그 물음에 그는 변죽만 울리고 “21세기의 신경제를 읽기 위한 네그리식의 자본론 독본”을 제공하고 만다.
– 그렇지만 그처럼 이렇게 방대하고 잡다한 영역을 아우르는 노력과 솜씨는 치하해야 마땅하다. 그가 <노마디즘>에서처럼 더 재미나고 절묘한 현실의 예들을 꼽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그건 그 책을 읽은 이들이 덧붙여 나가면서 읽으면 될 일이다. 이런 쉽고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자가 된 우리는 분명 행운을 누리고 있다.
– 쓸데없이 바쁘게 온 종일 쏘다니다 집으로 돌아왔다. 회의를 마치고 보내기로 한 우편물을 부치고 서점에서 눈요기로 신간을 살피고 – 우연히 서가에서 아주 좋은 책 한권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새로 무크지를 창간하려는 후배와 수다를 떨고, 다시 회의를 하고 집엘 왔다. 혼자서 밥을 지어먹기 귀찮아 어제 사온 빵 두 조각으로 끼니를 떼우고 컴퓨터엘 앉아 읽다가 우연히 발견한 새로운 어떤 책에 관한 정보를 뒤지고 다녔다. 그럼 결국 걷잡을 수 없는 하세월의 유랑이 시작된다. 어느 두 명의 프랑스 학자가 공저한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이란 책에 관한 코멘트를 읽고 나는 전지구적 자본주의 버전의 자본주의 정신론-내 박사학위 논문에서 넘어서고 싶어하는 베버의 망령-이 나왔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 결국 검색엔진을 뒤지고 다니다 이들의 책이 영국의 유명한 맑스주의 출판사인 Verso에서 내년에 영역될 예정이란 걸 알게 되었고, 미국에서는 Norton에서 번역되어 시중에 깔릴 것이란 걸 알았다. 또 작년에 독일의 어느 대학에서 열린 자본주의 세계들이란 학술 대회에서 이들이 발제를 했고 클라우스 오페, 지오반니 아리기를 비롯한 쟁쟁한 좌파 학자들의 글과 함께 Routledge에서 번역될 예정이란 걸 알았다. 또한 들뢰지언에 가까운 프랑스의 현상학자인 에릭 알리에즈가 탈근대자본주의의 분석을 위해 <앙띠 오이디푸스>를 되읽은 짧은 글에서 이들을 인용하고 분석한 적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런 식으로 정보들을 따라다니다 보니 결국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렇게 올 여름 내내 소일하다 처음 시작했던 생각은 가물가물 졸아든다. 컴퓨터 모니터에 검색 1시간 내로 줄일 것..이라고 써붙여야 할 판이다.
– 어젠 다다주의자인 하우스만의 그림과 몽타주 사진들을 찾아 돌아다니다 그만 밤새 허튼 짓만 했다. 물론 놀라운 성과도 있었다! 테일러주의의 유명한 사도였던 길브레스가 초기의 공장노동자의 동작-시간을 연구한 짧은 영화를 어느 라이브러리에서 구할 수 있었다. 언젠가 학생들에게 보여줄 작정이다.!! 그리고 영국의 어느 비극적인 맑스주의 작곡가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먹었다. 슈톡하우젠의 제자였던 현대음악의 촉망받는 작곡가가 맑스주의자로 전향하며 <슈톡하우젠은 제국주의에 봉사하였다>는 팜플렛을 쓰고 노동자의 음악가가 된 이야기를 읽었다. 그가 쓴 책을 어느 전위예술 사이트에서 복간해서 올린 것을 보았고 그가 어떤 자인지 궁금해 검색을 하다 미국의 전위음악을 위한 사이트에서 그에 관한 짧은 약전을 읽었다. 결국 그의 음악을 들어보겠다는 일념으로 P2P 파일 공유프로그램을 열심히 돌렸지만 결국 파일 하나만 달랑 건졌고 그 음악은 별 대단한 것이 못되어 실망했다.
– 며칠 내로 올 가을에 이 블로그가 추천하는 추석맞이 OST를 추천할까 궁리 중이다. 허접한 쇼이지만 그래도 요즘 심심찮게 내가 즐겨듣는 음악들을 올려 볼 작정이다. 추석 귀향길에 MP3 플레이어로 담아 들어도 좋고 CD로 구워 방자하게 집안에서 가족들의 귓전을 고문하며 들어도 좋을 나의 올 가을 베스트를 제공하는 것. 이 곳을 드나드는 유령같은 나의 벗들과 함께 sweet melody~!

문화대혁명?

개강했으니 生活도 시작되었으렸다, 싶은데 아직 난 일과없는 한가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이 게으름에 재앙이 있으라.
– 편집회의 엉거주춤 끝내고 아트선재에서 씨네랑데뷰 상영작 두 편을 보았다. M씨가 온다길래 함께 만나자는 작정도 있었고, 광주엘 가지 못한 억울함을 달랠 심정도 있었다.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Otar Iosseliani란 러시아 감독의 <안녕 나의 집 Farewell Home Sweet Home>이란 작품과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마보로시 幻の光>란 꽤 유명해진 작품을 보았다. 두 편 모두 아주 지리하고 집요한 영화들인지라 초반엔 꼭 몇 번 졸음과 싸워야 했다. 하긴 이젠 영화를 보며 조는 일이 드물지 않다.
– 히로카즈의 <마보로시>는 들어왔던 소문과 달리 조금 배반당했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질리는 영화였다. 화면 안에 놓인 인물의 내면적인 감정을 가능한 삭제하고 그것을 화면 전체의 평면적인 직물로 대신하려는 감독의 의지는 보는 날 질리게 만들었다. 화면은 리듬이 없는 반복된 롱숏과 거의 무채색의 농담으로 조직된 화면의 음영만을 보여준다. 화면안에서 거의 감지되기 어려울 정도의 정보만을 전달받은 관객은 어쩔 수 없이 화면 전체가 만들어내는 감정에 몰입해야 한다는 감독의 요구에 응해야했을 것이다. 그런 압력에 선선히 응할 수 있으면 모르겠는데 화면으로부터 나는 카탈로그 그림같다는 인상을 벗기기 쉽지 않았다. 촬영감독은 아주 훌륭했고 금욕적이리만치 소극적인 몸짓을 펼치는 배우들 역시 훌륭했다. 하지만 그런 화면이 거리를 두려는 또다른 환영적인 세계와의 차이보다는 즉 그 영화의 비판적인 긴장보다는 외려 감독이 빠져든 미학적인 나르시시즘이 더 두드러져 보였다. 그래서 그 미니멀한 화면이 유치해보였다. 불가해한 자살을 택한 남편의 의중, 그리고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죽음을 해독하지 못해 괴로움을 겪는 재혼한 젊은 아내. 적막하고 기괴한 작은 어촌 마을. 감독은 그녀의 질식할 듯한 의구를 중심으로 영화를 조직한다. 근본적으로 인물(아내인 유미코)의 내면적인 주관성 안에서도 해석이 불가능하고 사건의 흐름을 보고 있는 관객의 시선 산에서도 해석이 불가능한 그 의문의 죽음을 감독은 이미지의 긴장으로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 반면 이오셀리아니의 <안녕 나의 집>은 꽤 좋은 영화였다. 비연속적으로 병존하는 다양한 사건 그 사건을 에워싸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이 그물망처럼 얽혀있다. 젊은 청년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그의 일과 주위로 영화는 흘러가지만 그것은 사건을 행위하는 인물이지 충만한 성격을 가진 고유한 인격체로서의 개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화가 만들어내는 서사적인 목적에 충실한 배역으로서의 인물도 아니다. 외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그렇다. 만나고 스치고 먹고 마시고 섹스를 하고…이렇게 오무려졌다 펴졌다 하길 반복하는 그러다 다시 다음 사건으로 거미줄이 뻗어 다시 그 자리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서술되는, 독특한 구조의 이 영화는, 그러나 불행히도 너무 길었던 것 같다. 부랑자들과 섞여 노는 부잣집 아들, 방탕한 한량의 아버지(감독 자신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헬리콥터를 타고 출근하며 밤마다 허위로 가득찬 연회에서 고니인지 홍학인지 알 수 없는 기괴한 큰 새를 동행하고 실내악에 맞춰 아리아를 부르는 어머니, 그리고 카페를 경영하는 늙은 중년 사내와 그를 돕는 젊은 급사인 딸, 기차 청소부이며 쪽방에서 살지만 퇴근하면 곧 쓰레기통에서 줏은 옷들로 성장을 하고 여자들을 유혹하여 섹스를 나누는 잘 생긴 젊은 건달, 그리고 거푸 실수만 저지르다 결국 청소부가 된 흑인 이주노동자 등. 감독은 이들을 보여주기만 한다. 있었던 일을 보여준다는 것은 나무랄 데 없이 보여줄 근거가 되지만 어떻게 보여줄지를 결정하지 않고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이다. 감독은 언제나 그것을 어떻게 보여줄지 결단하는 순간 화면 안에서 자신의 신과도 같은 지위를 행사한다. 그런데 이 영화의 감독은 디제시스적 현실과 그 너머의 또다른 현실적인 현실(물론 이도 허구지만) 사이의 거리를 방기하는 듯 하다. 그걸 표나게 강조하는 다큐멘터리적인 찍기와도 다르다. 자신에게서 영화로서의 특성을 삭제하기 위하여 그런 위악한 제스처를 취하는 영화들에 비해 나는 이 늙은 거장 감독의 능란한 즉물성이 더 솔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잘 조직된 장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덧칠 없이 걷어낸 현실의 단편같은 직접적인 감응이 있다.
– 노무현의 좌익 항일운동가의 항일 운동 공적 인정과 국가보안법 폐지 발언은 그가 유일하게 잘한 짓으로 기억될 것이다. 대법원과 헌재 그리고 의회와 행정권력 사이의 갈등을 조정할 새로운 민주주의의 법률적 토대를 만들자고 많은 이들이 떠들고 있다. 87년의 헌법 체제가 가진 근본적인 취약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손볼 때가 왔다는 개헌론자들의 이야기엔 분명 흥미로운 데가 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짐짓 과격한 입장을 주장할 것으로 짐작되었던 이들이 외려 퇴행적인 모습을 보인단 점이다. 헌법은 사회적 협약의 초월적 지평이란 것, 따라서 헌법을 법률적 구속이나 절차로 환원할 수 없는 근본적인 사회의 조건으로서 유지해야 한다는 것, 등등이 그들의 주장이다. 난감하다. 언제는 풋나기 대학생들이 제헌의회를 소집하자고 주장한 적도 있었는데…
– 아마 어젯밤 EBS 다큐멘터리 페스티벌 상영작 중의 한편인 <모닝선>(제목이 아주 불쾌하다)에서 내가 받은 착잡한 느낌도 그와 관련되어 있었을 것이다. 문화혁명의 광기와 자기 파멸을 추적한 이 서구인들의 다큐멘터리에서 과거의 홍위병의 창립 멤버들은 지극히 평범한 인권적 관점에서 문화혁명의 과도한 열정을 참회하고 있었다. “우리는 정당한 절차없이 그들을 모욕하고 심지어 감금하고 고문하였다. 우리는 맹목적인 정치적인 의지로 우리의 문화 유산을 파괴하였다.” 이런 이야기들 앞에서 나는 문혁이 과연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것이 바로 그런 흔하디 흔한 반인권적인 역사적 사태와 같은 이유에 있을 것이라고 믿기 어렵다. 문혁의 피해자였던 이들과 달리 과거의 홍위병들은 어두운 화면 안에 모습을 숨긴 채 홍위병으로 가담했던 자신의 무모하고 파괴적인 열정을 반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권을 무시한 그 난폭한 무법성의 세계로 문혁을 축소할 수 없을 것이다.
–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도 문혁의 열정을 숭배한다. 마오와 다른 정치적 분파 사이의 분파적 패권 투쟁의 도구가 되었던 문혁이든, 중소분쟁의 과정에서 소련의 현실사회주의 블록 안에서의 헤게모니 투쟁에 저항하기 위한 중국의 통치 테크닉이었든, 그것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삼류 정치학의 대상일 뿐이다. 그렇다고 프랑스의 비공산당 좌파들이 열성적으로 흥분하며 지지했던 그 중국, 줄리아 크리스테바와 텔켈의 동지들이 흠모했던 그 중국 역시 내겐 낯설다. 국유화와 풍부한 복지체제 그런 것으로 사회주의가 축소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혁명이 전문적인 관료들의 정확한 국가 행정 업무로 환원될 수 없음은 더욱 명약관화하다. 혁명을 지켜야 한다는 관점에서 혁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관점으로 옮기는 것이 쉬운 일일까. 여튼 문혁을 청산해야할 기억으로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아니면 인권위원회의 심사 대상으로 떠넘기는 자들에게서 벗어나게 해야 할 듯 하다.
– H형이 급한 전화를 걸어 돈 삼백만원을 마련해 달라고 했다. 내가 그런 면식의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아내를 끔찍한 병마로 잃고 홀애비가 되어 살아가는 그가 안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건달짓을 더이상 하지 않고 경비직이라도 하면서 살아야겠는데 3백만원이 필요하다는 그의 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결국 주변에서 돈을 빌고 모아 겨우 토요일 아침에야 그 돈을 마련해 부쳤다. 그가 갚지 않으면 고스란히 내가 다시 갚아야할 돈이다. 당장 학비를 내지 못해 대출을 받아야할 처지에 놓인 아우의 월급을 끌어다썼으니 대책없는 짓이다. 그래도 일주일 전전긍긍하며 마련한 돈이니 잘 쓰이길 바랄 밖에. 당장 추석인데 그도 이제 누울 자리 걱정하지 않으며 그 날에 죽은 아내에게 성묘를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백번 잘한 짓이다.
– 자신의 구차한 살림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적잖이 곤혹스런 기분이 든다. 이는 철부지 문학 소년 시절 <詩여, 침을 뱉어라>같은 산문집에서 김수영이 틈나는대로 자신의 일기에 적던 금연, 금다와 같은 초라한 결단을 읽을 때마다 받던 감동과는 조금 차원이 다르다. 나는 이 대단한 참여시인이 아내의 일수에 관하여 그리고 자신의 소소한 지출에 관하여 눈을 흘기고 반성할 때마다 감동했던 듯 하다. 첫째는 그의 솔직함 때문이고 둘째는 그의 삶이 그리 추상적인 환상에 매달린 것은 아니라는 데서 생겨난 안도감같은 것이었다. 반면 어느 땐가 읽은 기억이 나는 강경애의 소설에서의 주의자(사회주의자를 부르던 일제 때의 별명)의 아내인 나는 모처럼 생긴 목돈으로 옷도 해입고 맛난 것도 먹으려는데 당연한 듯 그 돈을 다른 병고를 치르는 주의자에게 보내자는 남편에게 항의를 하다 그만 다툼이 벌어진다. 물론 소설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제 짧은 소견을 반성하는 아내와 그깟 욕심을 알면서도 윽박지른 남편의 후회가 만나기 때문이다. 강경애와 김수영은 대조되는데 나는 이 사이에서 둘 다 나의 생계에 대한 태도로 받아들이는 듯 하다.
– 별 볼일없는 소소한 욕심을 고집하는 것. 이를테면 어떤 책은 반드시 보고 싶다. 그리고 보지 않으면 안되는 영화들이 있게 마련이다. 요즘의 그런 귀찮지만 떨치기 어려운 집요한 욕심은 대개 DVD이다. 홍콩에서 발매된 영어 자막이 딸린 오즈 야스지로의 후기작들의 DVD를 가지고 싶어 생각나면 웹사이트를 뒤지고 쇼핑카트에 넣어보고 혼자 셈을 치러본다거나 하는 미련한 짓. 미국에서 새로 나온 차이밍량의 청소년 나타의 DVD를 사야한다거나 BRD 삼부작으로 나온 파스빈더의 DVD세트를 빨리 절판되기 전에 장만해야 한다는 초조감. 물론 나는 콜렉터적 편집증은 없다. 가장 좋은 화질에 가장 완벽한 복원판에 가장 훌륭한 스페셜 피처가 붙은 것을 보면 좋겠지만 나는 본편만 볼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여긴다. 장 꼭또의 크리테리온 버전의 DVD세트가 있지만 국내에서 그것을 버젓이 베껴 나온 싸구려 따오판을 봐도 약이 오른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외려 이렇게 싸게 살 수 있는 것을 후회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욕심을 가끔 사무치게 비난하고 모욕을 준다. 창피하기도 하고 성품이 글러먹은 것 같기도 한 것 같으며 허영스럽다고 스스로 모욕을 주기도 한다.
– 그런데 큰 일을 닥치면 난 속수무책임에도 마음은 느긋하다. 이제 집도 장만하고 슬슬 노후도 생각하는 또래들의 야무진 치부를 보면 나는 너무나 한심해보이기도 하고 장래에 관해서는 눈꼽만큼의 대책도 없는 내가 미친 놈 같기도 하지만 곧 제 풀에 잊고 만다. 생각하며 살아보지 않은 일이기도 하거니와 생각한다고 뾰죽한 계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집 한 채 있으니 그걸로 충분하고 얼마나 유족한가 되려 위안하고 끝이다. 운이 좋아 – 이 대목에선 진심으로 미안한 심정이 든다 – 애도 낳지 않고 살게 되었으니 분유값, 유치원비, 과외비 걱정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생계에 대한 무심을 스스로 두둔하다가도 또는 그것에 무심한 것이 가진 뻔뻔한 딜레땅트의 특권으로 보여 부끄럽다가도 하는 오락가락한 심정에서 헤매는 것이다. 이럴 땐 영락없이 나는 소시민인 셈이다. 소시민의 부끄러움에서 벗어나면 비로소 나는 철이 들 것이다.

편집증

– 자신이 어떤 편집증적인 집착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을 때, 어떤 처방이 있을 수 있을까. 세상이 전연 아수라장이라는 것을 매일마다 발견하고 있을 때 그런 발견과 자각은 분명 자신이 고집스레 발견하고자 하는 무엇을 향한 편집증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무슨 글을 쓰고 있을 때 내가 고발하고 핀잔하며 규탄하고 싶은 사실들 만으로도 글 한 편을 채우고 남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웅성거리는 불만의 대상들로부터 어떤 규칙과 일관성을 발견하며 그것에 어떤 정체성을 부여할 수 있을지 모른 채 우왕좌왕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 의사소통? 좋다. 무엇을 의사소통할 것인가? 여의도의 제일 맛있는 중국집, 홍대 앞의 가장 멋있는 옷가게, 청담동의 가장 훌륭한 와인바, 그리고 당신의 잡다한 취미, 유명 연예인의 그렇고 그런 사생활, 역시 정치는 부패했어 따위로 도배되는 지겨운 방백의 게시판. 결국 이미 모두 알고 있는 것을 재잘거리는 소란, 모두를 변함없는 나의 상상적인 분신으로 끄집어내리는 그래서 한통속의 대상으로 타인을 깎아내림으로서만 가능한 대화, 이른바 의견조사 안에서 나날이 측정되는 동어반복에 가까운 그 의견, 여론들. 그것을 의사소통하는 것이라면 의사소통은 얼마나 끔찍한 재앙인가. 바로 인터넷이 바로 그 재앙의 장소아닐까. 화면의 시작 페이지로 지정한 포털사이트를 띄울 때 마다 화면을 메우는 실시간의 여론들. 이 블로그 안에서 나도 그런 여론의 한 조각을 띄우며 발버둥치는 것일까. 의사소통의 윤리, 그런 따위는 거부하자. 당신과 나랑 통한다는 것은 둘 다 여론을 익히 잘 안다는 것이며 둘 다 짐승처럼 살고 있다는 신호에 불과하다.
– <빅 피시>를 뒤늦게 보았고 실망했다. 고작 자신이 찍은 모든 영화들이 바로 이런 이데올로기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음을 해설하는 일종의 군더더기같은 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인가. 방문판매원이었던 아버지가 집을 비웠을 때 병원에서 초라하게 태어난 너의 출생담보다는 네가 태어난 날 아버지는 자신의 사랑의 서약이 담긴 반지를 삼키고 달아난 거대한 물고기와 마침내 만났다는 환상이 훨씬 견딜만 하며 중요한 것이라는 것? 환상으로 이 세상을 덧씌움으로써만 세상 안에서 활력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예끼, 이 사람아, 그렇다면 지금껏 우리가 즐겼던 그 영화가 다 그런 시시한 동기에서 나왔다는 거란 말인가?
– 구로사와 기요시의 <도플갱어>는 매우 무력한 작품이다. 그의 근년의 영화들은 모두 그렇게 무력하다. 자신이 억압했던 욕망을 솔직하게 실행하는 자신의 분신을 향해 그가 취하는 증오는 너무 단순하다. 적어도 수치심에 떨거나 자신을 부정하려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그는 나쁜 짓을 벌여 말썽을 벌인 자신의 분신을 비난하기에 바쁘다. 그것은 도플갱어라기보다는 그냥 평범한 다중인격자이다. 그처럼 기요시는 자신이 무엇을 찍고 있는지도 모른 채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인공지능 휠체어라는 의뭉스러운 기계와 그의 분열된 자기와의 관계 역시 아무런 연관을 만들지 못한다. 자신의 의지적 명령을 객관화시키는 인공지능 기계가 어떤 알레고리로 도입되었던 것일까. 아마 그는 이 영화를 공개한 후에 죽고 싶지 않았을까. <밝은 미래>의 어처구니없는 싱거운 우화보다는 그래도 노력은 가상하다.
– 몸의 철갈이가 해가 바뀔수록 철저하고 또한 처절하다. 반신욕을 할까 생각 중이다. 왼쪽 눈가의 발작적인 경련은 왠지 불안하다.
– “사랑이 화학변화라면 그것에 실패한 자는 마음의 산성화를 피할 길이 없다”. 따져서 다시 읽어보며 썰렁한 수사학인데 후루루 읽는 책에서 이런 대목을 발견하면 재밌다, 싶다. 이명원의 글을 읽다 찾은 대목이다. 그는 이처럼 소싯적의 감상에 많이 끌려다닌다. 그가 아직 젊어서 졸업못한 아둔했고 그래서 찬란했던 성장기의 풍성한 감정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젠 꿈에서도 지난 날이 등장하지 않는 나의 슬픈 망각에 비하면 그의 생생한 기억은 부럽다.
– 괜히 컴퓨터를 탓 할 일은 아니지만 좋은 글귀와 만났을 때 멍해져서 그것을 뇌이다 결국 공책 어딘가에 끄적여 두던 버릇이 없어졌다. 이를테면 어제 읽던 어느 책에서 마오쩌뚱의 “생각하는 자에게 하나는 둘로 쪼개진다”같은 구절을 읽었다. 맞는 말이고 정확하다. 그런 좋은 문장을 많이 기억해두어야 하는데 이젠 그런 습성이 스멀스멀 달아난다.
– 생계를 걱정하지 말라며 꺼칠한 뺨을 부비며 알랑방귀를 껴대는 아우에게 많이 미안했다. 그간 베푼 게 얼마인데 그 따위로 미안해 하냐며 탓하는 사람도 있긴 한데, 베푼 사람은 끝까지 베풀어야 맘이 편한 법이다. 그게 잘 안되며 갑자기 삶이 민망해지고 그러는 것 아닐까.

PARIAH…

– 가라타니 고진의 새로 번역된 <언어와 비극>을 드문드문 읽고 있다. 눈에 띄는 제목을 단 챕터들을 골라서 읽고 있는데, 강의록들이 많은 탓인지 듬성듬성 논리의 비약도 있어 까다롭게 읽힌다. 그런데도 입말이 살아있어 가벼운 기분으로 읽도록 독려한다. 어떤 대목에선 그의 완고함에 놀란다. 이를테면 들뢰즈와 푸코의 추종자들을 향한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아류들이라 비난할 때 그가 읽어들인 그 사상가들은 매우 정확해 보인다. 들뢰즈의 <앙띠 오이디푸스>는 별로 대단할 게 없는 이미 철학 안에 관류했던 몇가지 형식적인 주제들을 반복하고 있는다는 그의 주장은 명쾌하다. 외려 개념을 창조해야 한다는 들뢰즈의 주장을 고쳐 읽으며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이야말로 개념의 창조에 해당한다고 이야기할 때 그의 깊이는 잘 드러난다. 존재와 의식이란 언제나 철학에서 상용되어 왔던 아니 불가결한 내부의 언어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이 두 개념을 평범하게 다시 배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새로운 사유의 조건과 전제를 창출했다. 그것이 바로 개념의 창조인 것이다. 물론 이후 우리는 존재니 의식이니 하는 개념을 전처럼 사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 다시 우기처럼 비가 오고 있고, 나는 낡은 비디오테입처럼 찌부듯한 것인지 아니면 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흐느적한 상태에서 종일 허송했다. 집으로 배달되어온 물건들을 받고, 가끔 인터넷의 뉴스를 뒤지고, 올림픽 중계를 보고, 어제 보다 만 안토니오니의 히스테리컬한 영화를 다시 볼까 망설이고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을 모두 꺼내 다시 볼까 셈해보고…결국엔 날이 저물었다. 잠깐 초저녁에 눈을 붙였는데 그 때문에 또 늦잠을 잘까 걱정이다.
– 이주노동자들의 사정을 전하는 티비 뉴스를 보고 정신이 버쩍 들었다. 천민이 되어버린 사람들, 모든 이들에게 사회적 소속을 부여하고 그들에게 자격과 지위, 권리의 체계에 속하도록 했던 근대 자본주의의 통치체제는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아마 국내 정규직 노동자의 1/8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다는 산업연수생의 임금은 중요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6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국내에 기술연수 중인 어느 중국인 소녀의 이야기는 사실 이주노동자-여성-중국인 등에 속하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 사회학에서 언제나 말하는 개인은 사회에 속한 자신의 지위와 역할이다는 투의 이야기는 기각되거나 위기에 부딪쳐 있다. 사실 사회학은 인종이니 도시의 갱이니 마약중독자이니 하는 이들을 끊임없이 쫓으며 사회라는 경계에 벗어나 있는 개인들을 계속 사회 안에 끌어들이고 그들을 다시 사회 안의 주체로 정체화시키려 했던 시도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신용카드불량자는 이주노동자는 누구인가. 얼마 전부터, 그리고 아감벤의 글들을 읽으며 거의 확신을 굳힌 이러한 새로운 생정치학에 관한 사고를 더욱 발전시켜야 하지 않을까. 소수자의 정치학이라는 끔찍하고 위악한 포스트모던 정치학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면서 또한 근본적인 인권의 재전유, 자유평등이라는 근대 안의 극한적인 정치적인 지평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신뢰하기 어려운 사고를 다시 생각해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