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폭력애호가 모임 회원의 자술서?

우리 시대의 악을 순수하게 증류한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폭력이란 말로 모아지지 않을까. 학교폭력, 군대폭력, 성폭력, 가정폭력, 국가폭력… 폭력이라는 “자명한 악”에 대하여 반대한다는 것은 무모할뿐더러 미친 짓으로 여겨질지 모른다. 우리는 아직도 폭력의 목록을 충분히 작성하지 못했다는 초조감에 어쩔 줄 모르는 듯하다. 그래서 끊임없이 폭력을 수색하고 적발하며 규탄하고 처벌한다. 그리고 반성한다. “왜 우리는 그토록 폭력에 무감각했던가, 왜 우리는 그토록 폭력에 휘둘렸던가”. 그러나 폭력이 악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인지 간단히 규정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서구의 내로라하는 철학자들이 그동안 그 비슷한 주장을 잇달아 내놓았다. 그들은 고통스럽게 그리고 장황하게, 폭력과 그것의 반대편에 속한 것, 즉 폭력이라는 독(毒)과 그것의 해독으로서의 법을 나누는 구분은 명확하게 결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폭력은 권력의 부산물, 겉으로 드러난 찌꺼끼일 뿐이라는 주장에 수긍할 수 있지만 우리는 폭력이라는 것이 불러일으키는 명징한 공포와 분노에 먼저 반응할 수밖에 없다. 구타, 고문, 살인, 대량학살 그리고 가스실. 과연 이보다 더 분명한 악이 어디 있을 수 있는가! 설령 그것이 자유와 민주주의, 그 어떤 이념의 이름으로 행사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에 저항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폭력 비판에 관하여 판단중지를 요구해야 한다. 법과 폭력의 동일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폭력과 대항폭력의 악순환적인 관계를 상기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폭력 비판이 우리 시대의 정치적인 비판의 자리를 차지하고 종국에는 정치적 상상력을 삼켜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얼마 전 왁자지껄하게 논란을 불러일으킨 “일진회” 사건만 해도 그렇다. 왜 우리가 지금 그것을 새삼스럽게 우리 시대의 악의 화신으로 급상승시키며 근절할 대상으로 삼게 되었을까. 그러므로 조심스럽게 물어야 할 것이다. 과연 폭력이 자명한 악일까. 이런 물음이 절박한 이유는 분명하다. “폭력 비판”이 정치적 비판을 대신할 때 그것은 폭력을 구성하는 정치 자체를 시야에서 지우기 때문이다. 폭력 비판은 정치의 영도, 정치는 불가능하다는 순순한 자백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문제는 폭력 비판이 아니라 친절과 배려의 비판이라 해야 도리어 옳지 않을까. 사실 우리는 폭력의 정반대에 압도당해 있다. 그런 점에서 폭력 비판의 이면에 놓인 강박적인 상냥함의 명령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친절함 또는 배려의 말과 몸짓들이 우리를 질식할 듯한 기분에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에서부터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무개 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호의와 아량으로 가득 찬 말들에 푹 잠겨서 살고 있다. 소비자가 고객이 되었을 때, 근로자가 파트너가 되었을 때, 변태가 게이-시민이 되었을 때, 계집년이 여성이 되었을 때, 그 자리바꿈에 끼어있는 것은, 알다시피, 그냥 “친절” 뿐이다. 친절함의 무조건적인 분명함을 거부하기란 어렵다. 그렇지만 그것을 거부할 수 있다면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시대의 대중영화들, 예를 들어 <파이트 클럽>이나 <피아니스트>같은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흥미롭게도 폭력애호가들의 모습이다. <파이트클럽>의 “폭력애호가 모임”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모더니스트들의 탐미적인 폭력예찬과 전연 다른 것이다. 그들이 문명화된 질서 이전에 존재하는 삶의 생생한 실체로서의 폭력을 상상하였다면, 우리 시대의 대중영화에 등장하는 폭력은 “질서 너머의 세계”가 아니라 질서에 대한 확인이고 발견이다. 자신이 예속된 삶을 삶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상징화하는 것이 금지된 주체. 그 주체를 미치게 만드는 것은 당연히 시치미를 떼고 있는, 혹은 보이지 않는 권력의 질서일수밖에 없다. 지금 권력은 자신에게 반말을 지껄이라고, 서로 친구처럼 대하면서 지내자고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자신의 권위를 벗어던진 아버지가 아니라 결국엔 더욱 잔인하게 권력을 즐기는 아버지에 불과하다.
따라서 폭력을 애타게 찾는 폭력애호가의 모임, 멍든 생생한 신체 속으로 돌아옴으로써, 자해적인 상처를 만들어냄으로써, 비로소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끼는 주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아니 거꾸로 예찬해야 차라리 옳을 것이다. 그들은 예외적이고 병든 매저키스트가 아니라 삶 속으로 악착같이 들어가려는, 미치지 않기 위하여 발버둥치는, 온전한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들이야말로 속박당한 삶을 증언하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건강한 히스테리를 감당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은 친절과 존중이 홀연히 증발시켜버린 권력의 모습을 계속 불러내고, 스스로 피멍이 듦으로써 혹은 따뜻한 피의 온기를 느낌으로써 속박당한 삶의 현실을 스스로 창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윤리적인 악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아존중감”의 결여, “동기부여”의 빈곤, “자기주도성”의 박약이란 점을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폭력애호가들은 누구인가. 바로 그 모든 “시민의 덕”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들은 과연 누구이겠는가. 거의 불가능해져버린 저항을 어두운 지하실에서 펼쳐 보이는 가여운 저항의 유령들이 아니라면 그들은 누구인가.

어느 정신분석학자가 재치 있게 말한 바 있는 “디카페인된 세계”로서의 탈근대자본주의야 말로 이를 가리키는 것 아니었을까. 카페인 없는 커피, 니코틴 없는 담배, 접촉이 없는 가상섹스, 이 모든 쾌락의 몸짓은 폭력 없는 쾌락을 발견하려는 가련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폭력 없는 권력에의 욕망과 모든 유해한 실체가 제거된 욕망은 어쩌면 같은 동전의 양면 아닐까. 폭력과 강제는 나쁜 것이므로, 사랑의 매조차 폭력이므로, 우리는 모든 장소에서 폭력을 추방하고자 분투하여 왔다. 평범한 실제 삶의 세계를 돌아보라. 그곳에서 권력을 상징화하는 모든 것들이 떨어져나간 채, 노동자는 파트너로, 학생은 고객으로, 통치받는 자는 능동적인 시민으로 평면화되어있다. 물론 권력은 바로 그곳에 있다. 학생을 벗처럼 대하라, 사원을 동반자로 대하라, 통치받는 사람을 능동적인 시민으로 대하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권력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때문이다. 복종은 이제 권력의 폭력과 강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꺼운 마음과 자발적인 동기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는 것, 복종의 테크놀로지가 자기실현의 테크놀로지와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탈근대자본주의의 정치적 합리성이라면 당연히 폭력은 권력이 가장 증오하는 적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저 악명 높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통해 권력의 이미지를 상상하여온 우리들에게 지금 우리 시대가 펼쳐 보이는 “두 주인”의 그림자놀이는 삶의 현실감을 빼앗아 버리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의 비판을 강제와 동의의 변증법,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여야 한다. “폭력 없는 권력”은 동의와 헤게모니, 이데올로기적인 회유가 완전히 성공에 이른 권력이란 말로 오해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자본주의사회의 권력을 설명하며 들뢰즈는 “사형은 폐지되는 경향을 보이고 학살은 같은 이유로 증가한다”고 말한 바 있다. 생명과 안녕, 안전을 보장한다고 말하며 권력은 더욱 잔인해진다는 그의 말이 옳다면 강제가 없고 폭력이 없는 세계를 종용하며 권력은 더욱 난폭해진다고 말하는 것 역시 옳지 않을까. 그렇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우리는 지금 권력을 폭력과 동의의 이미지 속에서 상징화하는데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폭력애호가들이 절망적이고 자학적인 몸짓으로 권력을 상징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오직 정치의 개입뿐이다. 그것은 근대적인 정치학이 권력을 상징화하면서 특권화시켰던 이訣? 폭력의 이미지로부터 정치를 분리시키는 것이다.
컬티즌(/연세대대학원신문)에 기고한 글. 조금 버전이 다르다.

웰빙 시대의 소비문화 “비판”을 위하여


“우리 시대의 인간은 더 이상 갇힌 인간이 아니라 빚을 진 인간이다.”
질 들뢰즈
이데올로기 비판으로서의 소비문화 비판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이 요 몇 년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다. 티비 프로그램은 앞다투어 웰빙 라이프를 위한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아침, 저녁 가리지 않고 쉼 없이 건강과 행복에 이르기 위한 비결을 쏟아낸다. 으레 이런 식이다. “한국인의 첫 번째 사망원인인 심혈관 질환, 그것을 예방할 수 있는 혈관 청정 식단”. 얼마 전부터는 웰빙이란 소비 규범을 막무가내로 쫓다 웰빙은 커녕 몸은 몸대로 축나고 마음은 마음대로 피폐해지는 부작용까지 문제가 되어, 이를 일러 일빙(ill-being)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웰빙이란 소비 현상에서 눈에 띄는 한 가지를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웰빙이란 소비문화에 대한 비판으로서의 “로하스”같은 현상이다. 로하스(LOHAS: 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란 웰빙의 타산적이고 이기적인 생활방식을 비판하며 등장한 “사회적” 웰빙으로서 환경과 건강을 중시하는 생활방식이라는 것이라 한다. 웰빙 비판으로서의 로하스란 현상은 소비문화로 소비문화를 극복하거나 비판하려는 것이다. 우리에게 흥미를 자아내게 하는 것은 바로 여기이다. 소비문화 “비판”은 소비에 깃들어있는 나쁜 태도나 가치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소비가 비록 자율적인 활동인 듯 보이지만 그것은 언제나 생산에 의해 결정되고 지배된다는 것, 그리하여 나쁜 소비문화를 좋은 소비문화로 대신하는 식의 규범적인 비판이 아니라 외려 소비를 자율적인 삶의 영역으로 보려는 시점 자체를 비판하는 것. 그것이 소비문화 비판의 요체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소비문화 비판은 소비 자체를 자율적인 삶의 세계로 인식하게 만드는 그 (가능성의) 조건, 즉 생산과 소비를 분열시키는 조건 자체에 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거칠게 말하자면 소비문화 비판은 “분업과 의식의 연관”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인 이데올로기 비판의 문제설정과 다르지 않다. 이데올로기 혹은 사회적 의식이 자율적인 것으로 보이게 되는 것은 언제나 의식과 현실의 “구성적인 괴리”에 의존하듯이, 소비가 소비하는 주체의 자의적인 취향과 개인적인 선택에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 역시 언제나 생산과 소비의 “구성적인 분열”에 의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마케팅과 광고 따위에 의해 소비자의 욕망을 조작하고 허위적인 욕구를 주입한다는 식의 상식은 소비문화 비판과 거리가 멀다고 해야 한다. 소비문화 비판이란 건전하고 본래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완전한 소비의 이상에 다가서기 위해 ‘나쁜’ 소비문화를 교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마르크스주의적인 소비문화 비판의 전통을 염두에 둔다면 거꾸로 그런 소비문화의 이상을 가정하는 것 자체가 가장 완벽하고 순수한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라는 점을 폭로하는데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웰빙으로 상징되는 우리 시대의 소비문화가 암시하는 소비문화를 통한 소비문화 비판의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소비문화 비판을 소비문화로 대신하는 근래의 변화는 우울하지만 “이데올로기의 종말”이라는 우리 시대의 기류와 일치하는 것 아닐까.
“소비문화” 이후의 소비, 웰빙

웰빙 현상이 소비문화의 어떤 질적인 변화를 가리킨다면 그것은 소비 행위에 반영된 새로운 가치나 태도란 점에서가 아니라 소비문화 자체의 스스로를 생산하는 방식에서의 재귀성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소비문화”를 비판하고 대신하는 것은 또 다른 소비문화라는 현상. 이는 “소비문화”란 개념이 등장했던 이론적 혹은 역사적 맥락을 되짚어 볼 때 분명 생소하고 당황스런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소비문화 비판은 언제나 소비의 타자인 생산으로의 회귀였기 때문이다. 소비문화란 개념에 대응하는 개념으로서의 “생산문화”란 개념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상상하기 어렵다.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공유하는 정체성이나 신념 혹은 가치라는 뜻에서의 “노동자 문화” 혹은 “생산자 집단의 문화”란 말은 가능하겠지만, 생산의 문화란 개념은 불가능하다. 한편 소비문화라고 말할 때의 문화 역시 소비에 “관한” 문화가 아니다. 사실 소비문화란 동어반복이다. 왜냐면 소비가 소비자라는 자율적인 주체의 행위로 체험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이미 말했듯이 생산과 소비의 분열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의 보편적인 역사란 있을 수 없다. 구체적으로 유용한 대상을 사용한다거나 소모한다는 뜻에서의 소비란 보편적인 것이겠지만 소비하는 주체의 개인적인 취향과 판단에 따라 상품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소비 행위는 전적으로 자본주의를 전제한다. 따라서 소비문화라고 말할 때의 문화란 소비에 관한 문화가 아니라 오히려 소비라고 불리는 행위 자체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비란 생산, 유통, 소비라는 경제적 활동의 다양한 영역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활동이나 실천을 상상적으로 표상하는 것을 가리킨다. 결국 소비란 생산과 대칭적인 지위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의 소외된 표현, 혹은 생산과정에서 이뤄지는 사회적인 적대나 착취에 대한 인식을 소비자라는 상상적인 표상으로 치환시키는 것을 뜻한다. ….(중략)
[문화과학] 2005년 봄호에 기고한 글

민생정치 시대의 정치를 생각하며

해가 바뀌었다. 벽두부터 “무한경쟁”, “생존경쟁”이니 하는 말들이 어김없이 덜미를 잡는다. 여기저기에서 다투어 전하는 올 한해 국민의 소망은 부자가 되는 것이고, 돈을 버는 것이란다. 어쩌다 소망이 이렇게 초라해졌는지 헤아리자고 구차히 토를 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살기 어려워졌고, 그 가운데서도 무엇보다 빈곤해졌기 때문이다. 아니 당장 먹고 살기가 팍팍해서 문제인 것만도 아닐 것이다. 지금의 빈곤은 객관적인 처지이기도 하지만 또한 기약 없는 불안에 따른 주관적인 고통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지금은 탈 없이 살고 있어도 내일도 그럴 것이란 보장은 아무데도 없기 때문이다. 임금이 유일한 소득의 출처인 자본주의에서 일자리 없는 세상 따라서 임금 없는 세상으로 내동댕이쳐진다는 것은 곧 출구 없는 삶으로 내몰린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임금 소득은 자신의 사회적인 삶을 재생산하는 밑천이기도 하지만 또한 자신이 살아갈 삶의 의미와 경로를 제공한다는 뜻에서 근본적인 것이었다. 실업률은 치솟고, 일자리를 찾는 젊은이들과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은 불안해 어쩔 줄 모른다. 뻔한 해답은 고용이고 일자리 만들기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경제적인 논리를 곧이곧대로 따를 때, 문제를 해결할 묘책이 있을 수 없다는 것 역시 자명하다. “고용 없는 성장”을 우려하는 사람들은 지천이다. 처방도 각양각색이다. 그렇지만 그 대책이란 것이 대개 지금의 질서가 덧나지 않을 수준의 땜질에 불과하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분배니 고용이니 일자리창출이니 하는 말들에 각다귀처럼 붙어있는 수많은 단서와 조건들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단, 그것은 시장을 존중해야 한다”, “단 그것은 성장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 “단 그것은 경쟁을 보장해야 한다”, 등등. 물론 그런 곁달린 부대 조건들은 오직 한가지를 겨냥한다. 이는 정신분석학자들이 즐겨 써먹는 농담, 요컨대 “너는 어떤 짓을 해도 좋다. 단, 그것이 옳은 짓이어야 한다”, 그것의 논리를 연상시킨다. 이를테면 지금 우리는 어떤 대책과 묘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생중계 “시사토론”의 시끌벅적한 논쟁도 좋고, “씽크탱크”의 보고서도 좋으며, 수많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들의 제안서도 좋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단 그것은 옳은 것이야 한다. 그 옳은 것이란? 당연히 전지구적인 자본주의의 논리이다. 결국 성장과 분배란 서로 대칭하고 있는 맞짝이기는커녕, 오직 “하나”를 위해 만들어진 허깨비같은 둘일 뿐이다. 그리고 마주하는 두 항들 사이의 대립은 오직 하나만을 택할 수 있는 타율적인 폭력을 감추기 위해, 다른 하나를 만들어놓고 그것을 “보충”할 뿐이다.
– 곧 나올 당대비평 봄 특집호 에디토리얼로 쓴 글 (퍼가시면 안됩니다 ^^)

일전 “부자되세요”라고 외치던 어느 신용카드사의 능청스런 광고도 이젠 더 이상 새삼스럽지 않다. 이 광고는 조잡하지만 그래도 명쾌하게 우리 시대의 삶의 윤리를 요약해 준다. 윤리란 말의 뜻이 따르고 복종해야할 추상적인 도덕적인 코드란게 아니라 제가 어떻게 살 것인지 스스로 인식하고 스스로를 다루는 방식과 지혜란 것이라면 세속의 윤리는 이런 “부자의 윤리”가 몰수해 버렸다. 이제는 서울의 명문 대학에도 버젓이 부자되기 동아리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그 드러난 꼴이 노골적이고 적나라해서 볼썽 사나울 뿐, 그네들을 유혹했던 “자기계발”의 윤리가 굳이 그들만의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부자되기”의 윤리는 기업 안에서는 우수 사원되기의 윤리, 세일즈 여왕되기의 윤리이고, 학교에서는 자기주도적인 학습자되기의 윤리이며, 지역사회에서는 능동적인 시민되기의 윤리이고, 소비의 세계에서는 몸짱되기의 윤리로 번역될 수 있다. 부자되기가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가치에 병든 세태를 탓하려는 무력한 논리를 빌어 비난될 수 없을 것이다. 반대의 극에 놓인 비세속적이고 탈물질적인 삶의 태도 역시 한치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요가와 명상을 비롯한 뉴에이지주의적인 상품들이 시장에 창궐한지도 오래이다. 이쯤에서 근대의 철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을 끊임없이 매료하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좋은 삶(good life)”이란 개념이 문득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말했던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이 좋은 삶인가 하는 것, 즉 좋은 삶이란 것에 부합하는 삶의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좋은 삶”에서의 핵심은 단연 “좋은 삶”이란 물음을 가능케 하는 근본적인 조건에 있다. 그 조건이란 단연 자연의 맹목적인 필연성에서 벗어난 삶, 언어와 노동을 통해 매개된 삶이 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좋은 삶”을 향한 물음은 결국 항상 이미 사회를 구성한 삶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사회 안에서 삶을 어떻게 지배할 것인가를 묻는, 즉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행위를 향해 마련된 단 하나의 개념은 정치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좋은 삶, 행복한 삶에 관한 기대는 거의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을 향해 나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웰빙”이란 이름으로 회자되는 삶이란 것의 핵심이 “삶 이전의 삶”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그것이 우리 시대의 몽매를 조장하는 수많은 지식들(뉴에이지주의, 사이비심리학, 생태주의 등)이 잡탕으로 뒤섞여 그려내는 좋은 삶이란 것이, 정치로부터 해방된 삶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따라서 부자되기의 윤리가 창궐하는 시대의 분위기 뒤안에는 정치에 의해 매개된 삶을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는 세계, 즉 맹목적으로 삶 이전의 삶, 아마 프로이트라면 죽음충동이라고 불렀을, 삶 이전의 지복의 세계가 놓여있다. 그 세계에서의 삶이란 더 이상 “좋은 삶”이 아니라 자연의 맹목적인 필연성에 동화되어버린 삶, 그저 말없는 무의미한 축축한 생명으로 화해버린 삶일 것이다. 우리 시대에 만연한 무병장수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 불화와 갈등으로부터 면제된 성적인 쾌락에의 요구 따위에서 상대하는 삶이, 정작 삶이 아니라 삶 없는 생명 자체를 향유하려는 것일 뿐이라는 생각은 지나친 망상일까. 정치가 사라졌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지나친 말일 것이다. 외려 정치는 번성하고 있다. 만약 정치란 것이 행복한 삶을 조성하고 확산시키기 위한 통치의 테크닉에 불과하다면 지금은 정치로 충만해있다. 행복을 요구하는 소비자로서의 시민이 정치의 주체를 가리키는 이름이라면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정치에 더 많이 더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삶을 살 것인가를 규정하고 판단하는, 즉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자면 “좋은 삶”을 구상하고 실현하는 행위로서의 정치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정치가 사라졌다고 말해야 옳다.
“좋은 삶”, 그냥 투박하게 근대적인 어투로 고쳐 말하자면 “해방”이나 “자유”라고 불러도 좋을 프로젝트는 이제 정치와 외면적인 관계에 놓여있다. 그리고 정치의 자리에 놓여있던 진정한 결정과 선택의 행위가 사라진 대신, 우리는 역설적으로 수많은 선택과 결정의 자유를 떠맡도록 되어있다. 예컨대 저출산과 고이혼율, 고령화사회로의 진입과 같은 사회적 변화 역시 그 안에는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개인이 놓여있다. 이제 더 이상 아이들이 저절로 큰다고 믿는 어른은 아무데도 없다. 사랑이 어느 날 섬광처럼 자신의 삶으로 뛰어들 것이라고 믿는 고독한 영혼 역시 찾기 어렵다. 육아와 결혼 나아가 연애를 비롯한 친밀한 감정적 생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모두 선택하여야 한다. “유혹의 기술”, “연애의 방식”같은 자조지첨서들이 잘 팔리고, 연예인과 명사들의 독특하고 근사한 삶의 비결을 고백하고 배우는 토크쇼가 인기를 누린다. 이제 우리는 부부관계와 아이기르기, 연애에서부터 직업의 선택, 정치적인 신념, 심지어 종교의 선택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책임지고 선택할 수 있는 무한한 선택의 자유에 다다른 것처럼 보인다. 명민한 사회학자들은 그런 변화를 축복하자고 말한다. 더 이상 전통과 규범에 얽매이지 않은 채, “감히 제 자신의 오성을 사용”하여 판단하고 결정하는 성숙한 반성적인 주체가 출현한 것이 아니냐고 그들은 너스레를 떤다. 이제 우리는 감정의 전문가, 육아의 전문가, 종교의 전문가, 가족의 전문가, 성공의 전문가들에게 카운슬링을 받으면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은가. 왜 우리가 전통의 볼모, 억견의 노예가 되어야 하는가. 그렇지만 식자들 몇을 빼곤 이를 곧이 듣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성숙한 근대, 성찰적인 근대를 주장하는 이들이 걸핏하면 울궈 먹던 “위험 사회”란 말은 얼핏 듣기엔 그럴싸하다. “확실성”이든 “안전”이든 “신뢰”이든 모든 것이 위기에 빠져들었으며, 최종적인 보증이 있는 합리적인 예측과 계획은 불가능하다는 그들의 말은, 슬프지만 사실이다. 따라서 근거와 권위 없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다양하게 협상된 작은 진실들로 만들어진 산호초같은 작은 진실의 세계에 머물며 기꺼이 책임을 지면서 선택하고 살자는 그들의 충고는, 더욱 그럴싸하다. 그렇지만 이 무한한 선택의 자유, 협상의 자유는 결국 근본적인 선택을 자유를 배제할 때 가능한 것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가 조금씩 망각하여왔던 진정한 자유, 즉 어떤 세계에서 살 것인가를 선택하는 자유와 맞바꾼 대가일 것이다.
우울하지만 우리 시대의 정치를 향해 건네진 소망은 한결같다. 거의 어떤 반대와 이견도 없이 우리 시대의 정치의 좌표는 “민생정치”로 조율되어있다. 단적으로 말해 경제를 살리는 정치를 하라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올 해 정치를 “경제에 올인”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차마 미친 짓이라고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는 불량 도시락 사건이 터졌다. 아마 이 사건은 두고두고 많은 이들에게 정신의 피멍이 될 것이다. 이 사건을 그저 복지행정체계가 조금 고장이 난 것이라거나 도시락 업자의 후안무치한 이기심에 따른 결과인 것으로 치부하자면, 새삼스러울 게 없다. 이는 흔해빠진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흔한 관료제의 병폐나 타산적인 기업가의 과실로 상징화되기에는 사태가 너무 과격하다. 그것은 끼니를 거르는 가난한 아이들이라는 가장 연약한 주체에게 가해졌다는 점만으로두 우리는 수치심과 분노를 가누기가 어렵다.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느낌을 떼어내기가 어렵다. 그리고 뒤이어 앞다투어 그런 일들이 만연해 있었음이 폭로되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가능해졌을 때 그것도 대량으로 행해지고 있을 때 우리는 결국 이 외상을 다스리기 위해 발버둥쳐야 한다. 그것은 결식아동이라는 “사회문제”를 한달음에 시대를 지배하는 “정치의 물음”으로 바꿔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우리는 이 외상을 불가피한 질서의 논리 속에 끼워 넣음으로써 다시 한번 양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는 20 대 80의 사회를 불가피하게 만든다, 운운을 뇌이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외상적인 충격이 빈발하고 있을 때 기분 나쁘고 불길한 기운이 움트는 것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혼잣말로 뇌이듯이 “이러다 뭔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는 예감 섞인 말들이 세상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이는 새로운 세계를 기대하는 좋은 예감, 그리고 그를 만들어낼 행위를 준비하고 책임지려는 예감이 아닐 것 것이다. 그것은 선택을 포기하는 것, 차라리 어떤 운명적으로 격발된 사건이 자신들을 선택하기를 기대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런 자유의 행위가 포함되지 않은 타율적인 선택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시한 결과를 낳는지 잘 알고 있다. 신의 섭리와 역사의 철칙, 자연의 운명 따위에 의해 우리가 선택되었다는 유혹에 굴복함으로써, 결국 결정과 판단으로서의 정치가 파탄해 버렸던 정치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결국 우리 시대의 정치의 문제는 새로운 세계를 선택하는 행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것이 빠져들 수 있는 유혹(아렌트 이래 근본악이란 이름으로 비난받아왔던 전체주의의 악몽)에 거리를 둘 수 있는 정치를 발명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속시원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분단체제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끔찍한 강박관념으로 인해 우리는 더욱 가로막혀 있다. 자동적으로 자본주의적인 발전의 길이 승리한 것으로 결론이 난 뒤, 우리는 정치로부터 더욱 격리되고 있다. 그러면 남는 길은 “경제에 올인”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는 정치를 반성하기 위해 주어진 격렬한 삶의 행위, 그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사유”를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더욱 사유를 살려야 한다. 차라리 사유에 “올인”하여야 한다. 그럴 수 있다면 <당대비평>은 은 그런 사유를 위해 계속 분투할 것이다. 여러 차례 말씀드렸듯이 <당비>는 지금 체질을 바꾸려 애를 쓰고 있다. 심각한 계간지가 버틸 수 있는 객관적인 여건도 여의치 않으려니와 지금 어떤 사유의 길을 찾아야 할지도 막막하기 때문이다. 독자와 더 쉽고 진하게 만날 수 있도록 지면을 쇄신하려는 궁리도 계속하고 있다. 이번 호는 특집호로 조금 일찍 나오게 되었다. 돌아가는 정세에 바짝 붙어서 사유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이기도 하고 다양한 문제들을 점검하는 글을 통해 우리 시대의 진보적인 사유의 결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려는 뜻에서이다. 조만간 <당비>가 새로운 면목으로 독자들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윤리에 관하여

지난 해에 이름을 날린 광고라면 아무래도 어느 신용카드 회사의 “아빠 힘내세요”란 광고에서부터 “외로워도 슬퍼도 난 안울어”란 심금을 울리는 광고까지, 이른바 윤리적인 메시지의 광고들일 것이다. 우리 주변의 광고는 상품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업의 특성도 아닌, 삶의 태도와 가치 자체에 관한 이야기를 건넨다. 소비자본주의를 격렬히 비판하던 60년대의 신좌파들, 그들의 과격한 아포리즘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말들이 이제는 아주 실감날뿐더러 직접적인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들은 걸핏하면 광고가 자본주의 시대의 삶의 가치에 순종하는 교회가 되었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바로 그런 가치를 경배하고 전도하는 예배의 행위가 되었다고 분개했다. 이제 우리는 그 말이 전연 빈 말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광고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변화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 알고 있을 이야기이겠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이럴 것이다. 먼저 초기자본주의 시대의 광고. 이 때의 광고란 상품이 가지고 있는 직접적인 쓸모와 편익을 알리는 메시지로서의 광고일 것이다. 이 때에 광고의 주인공은 단연 상품이며 광고란 바로 그 상품이 체현하고 있는 가치를 알려준다. 그리고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사용하는 사람이고 광고에서 상품에 관한 정보를 찾는다. 이를테면 묵은 때를 말끔히 빼준다는 세제 광고 따위. 반면 사회학자들이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시대라고 부르는 포드주의적 자본주의 시대의 광고는 상품이 제공하는 느낌과 기분, 가치를 전달한다. 이제 우리는 쓸모를 전달하는 물건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보드리야르 식으로 말하자면 기호학적 가치를 찾는다. 더불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소비자가 된다. 성능과 효용에 있어 거의 차이가 없는 상품의 세계에서 우리는 차이를 발견해야 한다. 광고는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전쟁터이고, 광고와 브랜딩, 포장과 진열을 통해 상품은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야만 한다. 코카콜라와 맥도날드의 시대, 농심라면과 미원의 시대가 바로 그런 광고의 시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광고란 무엇일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반세계화 운동의 투사이자 우리 시대의 소비주의 비판의 가장 유명한 이론가일 나오미 클라인 말대로라면 아마 “로고”일 것이다. 그렇다면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포스트-소비자를 가리키는 말은 무엇일까. 당연히 우리 시대의 경영학의 핵심 용어를 빌리자면 “고객”일 것이다. 역시 어느 광고의 표현을 빌자면 “2등이 시끄러운 나라, 누구를 위해서? 고객!” 바로 고객이 1등인 사회가 후기 자본주의사회일 것이다. 고객이란 표현이 거칠고 딱딱하다면 대안은 많다. 이 포스트-소비자를 가리키는 말은 부지기수이다. 상품의 제조와 판매가 순전히 문화적인 현상임을 역설하는 수많은 우리 시대의 담론들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주변의 대중잡지를 펼쳐보면 우리는 거의 모든 면마다 “팬”이나 “라이프스타일 개척자”, “트렌드 셋터(trend setter)”같은 용어들과 마주한다. 소니가 제조하는 각각의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란 없다. 소니의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필립스와 제네럴 일렉트릭의 제품보다 멋진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이 더 이상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구 시대의 “소비자”일뿐이다. 지금 소니의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소니라는 로고를 구매하는 사람이다. 소니의 모든 것, 소니가 만드는 제품이 아니라 소니가 풍기는 매력과 가치, 줄여서 스타일. 따라서 그들은 소니 제품의 소비가 아니라 소니라는 문화적 대상의 애호가이자 팬이다. 따라서 소니는 세계에 이른바 “소니스타일”이란 상점도 아닌 갤러리도 아닌 기묘한 전시장을 만들어놓았다. 알다시피 소니스타일을 체현하는 상품이 있는 것이지 소니 표 워크맨, 소니표 텔레비전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소니는 소니일 뿐이며 소니적인 스타일일 뿐이다.
– 컬티즌에 기고한 글
이제 처음에 말한 윤리로 돌아가자. 광고가 우리 시대의 윤리를 떠맡게 되었다면 이는 무슨 연유인가. 유명한 소비자본주의 비판가들이 말하듯이 우리 시대의 “정신적인 환경”(국내에서도 유명한 소비자본주의 비판 잡지인 <애드버스터>의 부제는 “정신적인 환경에 관한 저널”이다)마저 자본주의가 식민화했다는 뜻일까. 생산의 영역 바깥에 위치한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세계마저 소비의 리듬과 체계에 따라 식민화하는 것을 넘어, 바야흐로 자본주의는 우리의 내면적인 삶의 세계, 우리의 윤리적인 영역마저 식민화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분석으로는 충분히 못하다. 우리 시대의 윤리의 운명과 광고의 관계는 다른 방식으로 사유해야 한다. 우리는 근대 사회가 등장하면서 윤리가 직면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위치를 점검해보아야 한다. 전근대사회에서 윤리란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규범이 아니라 삶의 질서 그 자체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직접적인 인격적 유대로 결속되어있는 세계에서 윤리란 곧 자신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질서와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아버지의 명령과 윤리적인 명령이 다르지 않고 공동체의 규범이 곧 윤리적인 규범이 되었던 것이 전근대사회일 것이다. 따라서 윤리란 추상적이거나 형식적인 것이기는커녕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경험적인 내용과 분리될 수 없이 결합되어있었다.
반면 근대사회는 이런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적 대상으로부터 윤리를 떼어놓았다. 윤리 자체를 대변하는 구체적인 인격적인 주체(왕, 성직자, 아버지 등)란 있을 수 없다. 그들은 순전히 상징적인 형식적 위치에 불과할 뿐이다. 윤리가 민주주의의 문제와 흡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특성은 권력의 비어있음, 즉 그것이 어떤 구체적인 사회적인 내용(이를테면 어떤 신분이나 지위, 혈통)이나 구체적인 인격(왕, 사제 따위)으로부터 분리된 채, 논리적으로 누구나 차지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점이다. 이는 윤리가 근대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흡사하다. 아무리 아버지, 스승의 말이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옳지 않으면 거역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다. 윤리는 어떤 구체적이고 실정적인 내용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고 모두에게 반성되어야할 것이기 때문이다(그 때문에 우리는 양심의 자유와 소통의 자유(언론, 출판의 자유 따위)가 왜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다양한 구체적인 제도들 중의 항목이 아니라 그 자체 민주주의의 핵심으로서 왜 그토록 강조되어왔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근대 사회에서 윤리를 언제나 애매하고 비결정적인 상태로 남아있도록 만든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차지할 수 없는 빈자리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善)이란 무엇인가? 자유란 무엇인가? 알다시피 우리는 아직 그것에 관해 결정적인 진실을 알고 있는 어떤 주체를 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근대 사회의 윤리의 논리와 우리 시대의 광고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바로 광고가 전달하는 윤리를 – 이런 말이 가능하다면 자본의 윤리, 혹은 지배의 윤리로 만들어버리는 논리를 – 비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논리의 비판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국제정치는 인도주의적인 개입(물론 이의 또다른 이름이 테러리즘과의 전쟁이라는 점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이란 이름으로 진행된다. 부의 분배를 둘러싼 사회체계를 조정하는 정치의 문제는 빈곤 문제라는 이름으로 변화되어 기부와 자선의 논리에 따라 처리된다. 이 모든 겉으로 드러난 변화의 전면에는 윤리란 이름이 새겨져 있다. 우리 시대의 광고 역시 이런 변화와 다르지 않다. 당장 우리는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기업가들이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윤리를 설교하는 것에 깊은 모멸감과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책임 경영”이니 “윤리 경영”이니 하는 이름으로 보편적인 윤리의 세계까지 가치화하는 극한에 이른 자본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마르크스의 표현대로라면 “악마의 맷돌”이던 자본주의가 이제는 천사의 모습으로 육화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모두가 잘사는 희망역으로 달려가는 한국을 만들자”고 너스레를 떠는 광고를 하는 기업이, 노조를 결성하겠다는 대형할인점의 아줌마 노동자들을 감금하고 위협하는 자본 일뿐이라고 말하는 것, 그러므로 그것은 윤리가 아니라 편파적인 기업의 이해를 감추고 있을 뿐이라고 역설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결국 문제는 윤리적인 메시지 안에 숨겨진 편파적인 이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윤리를 소생시키기 위해 윤리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 알다시피 모두 행복하게 잘 먹고 잘살라는 메시지, 모두 부자되라는 메시지, 가난한 이를 가엾게 여기자는 메시지를 곧이곧대로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어떻게 그 악의 없는 호의와 아량을 거부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는 인도주의, 인권, 생명의 존엄, 행복의 추구같은 우리 시대에 군림하는 정치적인 개념들을 비판할 때 직면헤야하는 곤경과 다르지 않다. 이미 지상선이 되어버린 그 절대적인 윤리적인 명령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 불가능한 것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물론 그것은 인도주의의 반대, 생명의 존엄의 반대, 행복의 반대를 향해 나아가란 말이 절대 아닐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윤리란 것의 특성은 오직 그것의 비어있음을 통해서만 유지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만 하면 된다. 빈자들과 실업자들에게 양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고, 이라크와 르완드, 보스니아의 난민들에게 인권을 떠넘기는 것은 윤리적인 행위이기는커녕 비윤리적인 행위이다. 윤리적인 행위의 내용은 누구에 의해서도 독점될 수 없고 누구의 지위와도 결합될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는 현존하는 질서와 윤리 사이에서 어떤 차이를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신자유주의의 제국의 논리가 인권의 논리가 될 것이며, 신경제의 논리가 자선의 논리가 될 것이다. 그것은 윤리가 번성하는 세계가 아니라 윤리 자체가 질식된 세계일 것이다. 자신의 삶이 어떤 것인지 성찰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 그럼으로써 자신이 더 나은 삶을 위한 사유와 투쟁의 공간에서 배척된 채 피해자/희생자의 위치에 머무르는 것, 그것이 우리 시대의 윤리의 절차라면 그것은 윤리를 질식시키는 과정이다. 그들은 이 세계의 윤리에 대하여 발언하고 참여할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다. 빈자로, 난민으로 명명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선과 인권의 윤리일까. 그들을 사회의 윤리적 주체로서 참여시킬 때 그들의 이름은 다르게 명명될 것이다. 자선과 인권을 베푸는 주체 역시 다른 이름으로 명명될 것이다. 그리고 물론 윤리 역시 되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바야흐로 윤리적이지 못한 세계를 위한 투쟁이 등장할 것이다. 윤리가 항상 투쟁과 심판이라는 불편한 이름과 짝을 이룬 것도 이 때문이다. 조화와 균형의 세계는 윤리와 상관없다. 그것은 윤리를 탈윤리화하려는 몸짓이 윤리를 질식시킬 때 써먹는 수사학일 뿐이다

<발레교습소>와 영화의 윤리

– 이 좋은 “탈훈육시대”의 청춘들에게, 구질구질한 현실을, 그것도 두시간 가까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환영받을 짓이 아니다. 변영주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발레교습소>는 딱 그 짓을 한다. 이 영화에는 민재와 수진이 그리고 정말 ‘기타 등등’이라고 해야 옳을 수많은 인물들이 장황하게 등장한다. 그리고 거의 모든 인물들이 에누리 없이 제 이야기를 배출하고 나서야 화면 바깥으로 사라진다. 우리 시대의 “훌륭한” 영화란 것의 상투적인 모습은 이런 것 아닐까. 폐소공포증에 걸린 듯한 인물이 한 두 명 등장하여 내면이라는 디제시스적인 환영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금욕적일 만큼 침묵하는 뻘 짓의 영화. 그에 견준다면 <발레교습소>는 차라리 상스러운 영화이다. 부르디외 식으로 말하자면 추상 사진을 좋아하는 쁘띠 부르주아에게 잔칫집 사진은 너무 사실적이어서 하층계급의 취향에 어울리는 것이듯이, <발레교습소>는 하층계급 취향의 영화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취향의 문제이겠는가.
한마디로 이 영화는 시대착오적이고 너무 “구리다”. 더욱이 이 영화는 역설적으로 보수적이다. 이는 지식정보자본주의의 시대에 더 이상 노동자는 없다고 젠체하는 거듭난 ‘제3의 길’ 좌파들 앞에 작업복 차림으로 나타나, 촌스럽게(!) 고용안정과 복지보장을 외치는 육체노동자의 보수성과 같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보수성이 아마 그런 것이라면 나는 그에 동조한다. 그리고 그런 고루한 주관적인 정치적인 취향으로 역시 나는 <발레교습소>를 사랑한다. 우리 시대의 청춘을 압축하는 것은 차라리 “20살의 자유, TTL”이라고 해야 옳다. 아니 이마저 지금엔 별 실효가 없을 것이다. 요즘 어느 청춘이 자신을 세대의 정체성과 더불어 생각할 것인가. 여전히 스무 살 언저리의 나이를 사는 청춘들이 있지만 그들은 더 이상 훈육사회의 학생이란 정체성에 매달려있지 않다(고 믿는다). 교육인적자원부 버전으로 말하자면 “자기주도적인 학습에 힘쓰는 자율과 책임의 나”가 있을 뿐이다. 이런 때에 지나간 가부장적-관료적-훈육 자본주의시대의 악몽을 연상시키는 가족, 학교, 입시, 가난을 들먹이다니! 그리고 더욱이 그 자리에서 가장 멀리 도망친 청소년들을 불러 앉히다니! <발레교습소>는 그런 핀잔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씨네21>에 기고한 글. <발레교습소>에 관한 리뷰이다. 일전 출판 전에 올렸다가 씨네21의 편집진 눈에 확인되어 물의를 빚은 글. 지상논쟁이란 틀 안에 놓인 글인데 누구와 논쟁을 해야는지 모른다. 아직 씨네21을 읽지 않았는데 아마 황진미 아닐까. 사실 나는 그녀의 비평을 꼼꼼히 읽어본 적도 없지만 그녀는 비평보다는 자신의 도덕적인 주장을 외삽하는 시사평론가에 가깝다는 생각한다. 어쨌든 그간의 비평적인 비난에 맞서 일종의 반론을 던지는 글로 썼다. 글을 쓰면서 <발레교습소>를 사랑한다는 착각과 확신에 빠졌다. 친구에 대한 의리를 실천하고 애정에 답하려고 쓴 글이었지만 나는 그것이 허위적인 자기최면 탓은 아니었으리라 믿는다. 영주야, 잘했다~!

<발레교습소>는 “지금 여기에서 산다”는 것의 꼬락서니에 관하여, 처량하다 싶을 만큼, 중언부언 그리고 아주 시시하게 늘어놓는다. <엘리펀트> 식의 지독한 우아함도 없고, <트레인 스포팅> 류의 신랄한 스타일도 없다. <고양이를 부탁해> 식의 달콤쌉싸름한 페이소스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영화가 영화 스스로에 복종하려는 욕망을 거부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재현하는 대상에 逆피狗졍?윤리적인 몸짓을 고집하고 있음을 인정해 주어야 옳다. “좋은 영화”로 불리는 것들이 가장 따분하고 상투적인 작위만을 반복하며 예술이든 영화이든 둘 다를 파산시키고 있는 지금, 나는 차라리 <발레교습소>같은 영화야말로 영화에 충실하려는 역설적인 몸짓을 밀고 간다고 확신한다. 자신이 재현하려는 대상에 관한 윤리적인 헌신을 고집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영화가 잃어버린 것 아닐까.
<발레교습소>는 로맨스와 우정 그리고 가족의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통과하면서 쾌락을 던져주지만, 군데군데 거북한 장면들로 얼룩져 있다. 이를테면 민재와 수진이 마침내 사랑을 나눌 때의 장면은 적잖이 불안하고 불편하다. <지구를 지켜라>를 함께 보다 그 짓을 하려는 둘의 서툰 몸짓은 낭만적이기는커녕 조금 기이하다. 퉁명스럽게 둘의 몸을 잡는 화면도 그렇지만 계속하여 들려오는 성가신 소음(민재의 성마른 호흡, 소파가죽의 적나라한 마찰음 등) 때문에 도무지 거슬리기만 하다. 클라이맥스의 열정을 끌어올려야 할 구민회관에서의 발레 공연은 놀랄 만큼 초라하고 심심하며 나아가 황당하기까지 하다. 이야기는 우리를 박진감으로 죄어오는데 정작 눈에 보여지는 것은 우리를 배반한다. 아무런 수사학적인 스타일도 고려함이 없이, 시야의 길이와 깊이 만을 의식한 평범한 숏들이 교대하여 등장한다. 아마 관객은 실망감을 넘어 내심 분노할 수도 있다. “에이, 영화를 왜 이 따위로 못 만드는 거야”
그러나 나는 이 대목에 가서야 감독이 거의 통제불능의 상태로 영화를 막 만들었다는 인상을 접었다. 아니 나아가 <발레교습소>는 어떤 숨겨진 논리적인 공정을 거치며 만들어진 영화일 것이라는 망상까지 품게 되었다. 예를 들어 대중영화의 상투적인 플롯이란 것은 모두 수집하여 연결한다. 그리고 그것에서 자동연상될 수 있는 아름답고 쾌적한 모든 시각적인 풍경을 지우고 다른 것, 즉 현실의 것으로 대체한다. 아마 이는 나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난 체 하는 영화들 사이에서 “못난 체” 하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윤리적인 용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감독은 그걸 그냥 자신의 주관적인 진정성에의 집착 탓이라고 주눅든 채 말한다. 그러나 그건 너무 겸손한 짓이다. 당신은 한국의 영화 자체를 위해 아주 좋은 짓을 했다. <발레교습소>는 못 만들려 애쓰는 안타까운 몸짓으로 좋은 영화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영화에서 윤리를 구제하려는 보기 드문 몸짓을 실현했다.

기부의 문화와 동냥의 윤리

– 아마 우리 시대의 가장 참담한 윤리적인 풍경은 대개 티비 속에서 득실대고 있을 것이다. 먼저 우리는 빈곤에 허덕이는 이들을 향해 연민과 공감을 호소하는 휴먼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본다 그리고 우리는 그후 곧장 “김치도 건강해야 한다”는 김치 냉장고 광고와 마주해야 한다. 김치의 건강, 김치의 삶. 부조리한 유머를 즐기는 일본의 컬트 만화 제목같지 않은가. 물론 우리는 이런 광고가 우리 시대의 “과학적인 진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 알고 있다. 코미디에 가까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뉴에이지적인 관념은 이제는 거의 과학적 진실이 되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당신 집의 화초를 생각하라. 그것도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당신에게 반응한다. 그 여린 꽃과 작은 잎이 당신과 교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이런 생물학적인 지식이 세간의 통속적인 과학 서적을 채우는 내용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물며 김치인들 왜 우리와 대화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이 좋은 생명의 윤리의 시대에 김치라고 건강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물론 이런 모습에 우리는 더없이 절망적인 슬픔에 빠질 수 있다. 당장 이주노동자의 뼈저린 가난과 장애자의 참담한 굴욕을 우리는 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의 삶을 김치의 건강과 맞바꿀 수 있다는 말이냐. 인간을 이렇게 막 대하는 미친 사회를 향해 우리는 분노하고 나아가 고약하게 생명의 물신으로 군림하는 것들을 향해 더없이 전율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으로 충분하지 않다. 인간의 생명이 김치의 건강보다 존엄하다는 상식조차 농락하는 현실은 기괴하다 못해 역겹기까지 하지만 그것은 매우 패배적인 생각이다. 왜 그럴까. 마침 성탄절이 다가왔으므로, 가난한 이웃에게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뻗쳐야 하는 시절이 돌아왔으므로, 그것을 두고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하여보자. 알다시피 빈곤이 “사회문제”화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구사회라면 우리는 이를 복지국가 혹은 사회적 국가의 몰락에 따른 결과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서구의 좌파들이 경악한 낯으로 외치는 “유럽의 브라질화” 즉 극단적인 빈부격차와 빈곤의 대량화에 대한 놀라움은 분명 20세기의 역사가 부정당한 데 있을 것이다. 왜 그것이 매우 우연하고 구체적인 사회적인 현상으로 이해되지 않고 역사의 궤도 이탈이라는 고통스런 체험으로 받아들여질까. 왜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폭발적인 확산과 네트워크화된 경제의 도래, 지식과 정보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상황의 출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역사를 체험하는 자신들의 지평 자체가 뒤흔들리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될까.
컬티즌에 기고한 글입니다.
사실 서구에서 빈곤은 사회문제가 아니라 곧 정치였기 때문일 것이다. 신경제의 도래 이후 빈곤이 양적으로 많아졌다거나 사회의 대다수가 빈곤 계급의 나락에 빠져들고 그 위에 상상할 수 없는 부를 누리는 “하이퍼 부르주아” 계급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그냥 현상에 대한 서술에 불과할 뿐이다. 물론 끔찍한 상황 그 자체만으로도 그들은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충격의 외상은 다른 데 있을 것이다. 부의 분배를 둘러싼 문제는 바로 어떤 사회에서 살 것인가의 문제를 결정하는 유일한 행위,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실천을 이름짓기 위해 마련된 근대 사회의 개념인 “정치”의 문제였다. 그렇지 않다면 근대 정치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이름 가운데 하나인 사회주의를 과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러나 이제 빈곤은 어떤 사회에서 살 것인가를 둘러싸고 투쟁해야 하는 근본적인 물음의 대상이 아니게 된다. 즉 정치를 향한 물음이 아니게 된다. 이제 빈곤은 범죄, 안전, 오염, 성차별같은 다양한 사회문제의 하나로 취급되며 정치를 압박하고 규정하는 문제의 지위에서 해방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가 빈곤이 “사회문제화” 되었다고 할 때, 그것은 그저 저널리즘적인 표현을 흉내낸 것이 아니다. 이는 빈곤한 삶을 표현하는 새로운 시대적 논리 그 자체를 반영하는 것이다. 정치가 물러난 자리에 혹은 퇴각한 자리에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알다시피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새로운 용어이다. 디지털 거버넌스에서부터 글로벌 거버넌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우리는 거버넌스란 용어가 부착되어 있음을 본다. 그러나 이는 거칠게 말하자면 어떤 사회에서 살 것이란 물음을 던지고 결정을 행하는 정치가 사라지고 곧 사물의 관리, 비정상적인 상황의 처리를 뜻하는 것일 뿐인 행정이 만연하게 되었음을 알릴 뿐이다.
그러나 이는 물론 서구 사회에 국한된 일이 아닐 것이다. 정치의 공간인 국회에 관하여 생각해보자.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진짜 정치를 하지 않는 국회를 질타하는 상투적인 비난에 질릴 만큼 익숙해져 있다. 9시 티비 뉴스가 끝날 즈음 앵커들은 거의 표준적인 멘트를 덧붙인다. 추문과 욕설 그리고 폭력에서 벗어나 진짜 삶의 문제를 다루는 국회로 거듭나라는 식의 주문이 그것이다. 민생 국회와 정쟁 국회를 나눌 때 우리는 그것이 삶의 구체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고 공허한 이데올로기만을 내세우는 선량을 향해 비판을 보내는 것이라고 자꾸 오해한다. 그러나 진실은 정반대일 것이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지금 실업 문제보다 뭐가 중요한가, 과거사 청산이 지금 빈곤 문제보다 뭐가 중요한가. 이제 공허한 이념의 정치에서 삶의 정치로 돌아가야 하지 않는가. 이런 논리에 우리가 설득 당하는 순간 우리가 돌아가게 되는 곳은 당연히 삶의 정치가 아니라 정치가 없는 행정의 공간, 우리가 살 수 있는 세계란 자유주의적 전지구적 자본주의일 뿐이라는 어처구니없게 한계 설정된 세계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요구해야 할 진짜 정치란 어떤 사회에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 즉 국가보안법을 따를 것인가 어길 것인가라는 선택이 달려있던 문제일 뿐이다. 국가보안법이 무엇인가. 한국 사회에서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그것은 다른 사회를 꿈꾸는 희망에 족쇄를 채우는 질서의 폭력이다.
과거 급진적인(?) 정치조직에 몸담았던 한 국회의원을 향해 노동당원이었다는 협박을 들이대며 국회에 간첩들이 암약하고 있다는 가공할 코미디를 펼치는 한나라당은, 어찌 보면 진짜 정치가들이다. 그들이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내세우는 열린우리당이 정작 그것을 탈냉전 시대에 걸맞지 않은 악법이란 이름으로 폐지를 주장할 때 그리고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 정치란 없고 서로가 정책이란 이름으로 상생의 경쟁을 펼치는 사회적 관리의 파트너일 뿐이라고 주장할 때의 포스트정치적인 입장보다 투박하게 그러나 온전하게 정치적이다. 물론 우리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하여 과거사 청산에 대하여 열린우리당보다 더 나아가야 한다. 열린우리당 혹은 노무현 정권의 비열한 기회주의, 즉 책임내각제를 운영하며 이헌재라는 경제전문가에게 모든 경제적인 문제를 맡긴다는 식의 주장은 그야말로 정치를 정치에서 해방시킨다. 이러한 정치와 경제의 분리, 민생의 정치와 이념의 정치의 분리야말로 우리 시대의 빈곤이 차지하게 될 위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오직 사회문제일 뿐이지 우리가 살아야할 사회, 노동은 어떻게 측정되고 평가되어야 할 것인가, 부는 어떻게 관리되고 분배되어야 할 것인가의 논리를 결정하는 정치의 문제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투명한 경영, 소유자 자본주의 그리고 이에 더한 기부의 문화가 “경제정의”란 이름을 뒤집어쓰고 등장할 때, 아직도 그것을 지킬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면 정의란 개념을 그 모욕스런 처지에서 구제해야 한다. 옷깃에 빨간 열매를 달고 고통받는 삶을 향한 연민 따위에 정치를 희생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의 자본주의가 가난한 자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 그들은 승자 독식의 세계에서 실패한 패배자들이란 것이고 둘째 그들은 측은하고 불쌍한 희생자들이란 것이다. 첫 번째의 패배자를 위한 사회적인 배려는 “청년 실업 극복”을 위한 사기 진작 쇼의 연출이며,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고 노래를 틀어주는 “힘내라 한국” 식의 코미디 보급이다. 두 번째의 희생자를 위한 사회적인 배려는 “러브하우스”를 통해 디즈니랜드를 방불케 하는, 이웃공동체로부터 완전히 떼어내어진 못살 집을 지어주고 다함께 울음에 북받치는 것이다. 아니면 사회공헌도 경영전략이며 윤리경영, 책임경영이 살 길이라며 “아름다운 가게”에 거액을 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꽤 인간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런 몸짓의 사악함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신이 언제나 실패하도록 규칙이 입력된 게임의 룰 때문에 우리는 패배자일 뿐이다. 우리는 패배자가 아니라 사기를 당한 것이다. 또한 우리는 희생자도 아니다. 우리는 지배당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어쩌자는 말인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소박한 실험은 이런 것이다. 그것은 기부가 아니라 동냥의 권리를 무조건적으로 보장하자는 것이다. 알다시피 기부를 위한 바자회는 따뜻하고 분위기 좋은 백화점과 호텔에서 이뤄지지만 동냥질은 찬바람 부는 길바닥에서 하는 짓이다. 그러나 거지들에게 따뜻한 지하철 역사, 북적대는 멀티플렉스, 분위기 좋은 호텔 로비에서 동냥을 할 수 있게 하자. 물론 우리는 곧 걷잡을 수 없는 입씨름에 사로잡힐 것이다. 주변사람들을 불편하고 어색하게 만들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둥, 공공공간이 아니라 사유지이므로 동냥을 할 수 없다는 둥의 갖은 이야기를 들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곧 우리에게 정치에 다가서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얼마 전 고인이 된 데리다의 타자성의 윤리를 빌려쓴다면 진정으로 윤리적인 행위(그가 “환대”라고 불렀던)를 복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부와 동냥은 어떻게 다른가. 기부의 대상은 불쌍해진 나의 또 다른 거울이미지이지만 적선의 대상은 견디기 어려운 거북하고 불편한 심지어 그들이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그들”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부와 동냥은 전연 다른 윤리적인 태도를 보인다. 기부란 것이 인간은 약한 자를 돌보아야 한다는 평범한 규범을 쫓는 시늉을 하면서 그 안에서 나르시시즘에 빠져버리는 것이라면 동냥은 말 그대로 가난한 자들을 가난한 자들로 표시하는 조건 자체가 풍기는 거북함을 자각하고 그들을 타인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그저 타인을 타인 그대로의 온전한 모습으로 인정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태도 역시 나의 일관되고 안정적인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또 다른 몸짓에 불과하다. 내가 그를 그 스스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당신”이란 이름의 자리에 그를 앉히는 것, 즉 나의 타인으로서 그를 자리바꿈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궁지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가능한 그를 추상화하는 것이다. 물론 그를 추상화한다는 것은 그를 사회의 질서, 그들의 삶을 규정하는 관계의 한 항(項)으로 그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와 나는 서로의 삶을 규정하는 질서의 체계에 속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은 그를 객관화시키거나 대상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그것은 그를 자신이 살아가는 삶에 맞서 주체화하도록 이끄는 조건을 던진다. 겉보기에 이는 매우 건조하고 냉정한 행위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윤리적인 몸짓은 본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윤리란 마오쩌뚱 식으로 말하자면 조사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

[文] 성적 소수자 그리고 인권의 전망

1. 성적 소수자 사회와 인권
1) 1990년대 이후 성적 소수자 인권의 변화
지난 십여 년 간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 인권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인권 현안 가운데 하나로 받아 들여져왔다. 여기에는 여성이나 이주노동자, 장애인 혹은 다른 사회적 약자들과 같이 성적 소수자 역시 자신의 인간적, 사회적 삶의 권리를 차별 받아 왔다는 반성적 자각이 스며있다. 나아가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다양한 국가기관에서 동성애자의 권리에 관해 적극적으로 언급하고, 성적 소수자에 관련된 재판에서 재판부가 잇달아 동성애자들 역시 헌법상의 기본권을 누려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바야흐로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신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법과 제도, 정책을 마련할 요구와 마주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지난 수십 년 간 자신들에 가해진 차별과 모멸에 맞서 성적 소수자들이 자신의 인간적인 존엄과 평등한 삶을 살 수 있을 권리를 요구하는 투쟁의 성과라 할 수 있다. 비단 이는 한국 사회 내부에서의 변화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동안 1990년대 이후 다른 나라에서도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둘러싼 변화는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유럽을 비롯한 북미, 나?남미와 아시아의 일부 국가(대만, 태국, 일본 등) 그리고 미국 등지에서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법률과 정책, 제도 등이 잇달아 도입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계속 가속되고 있으며 보다 넓게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다음에서 이에 관해 다시 살펴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성공회대학교 인권교재에 수록하기 위해 쓴 글. 2년전에 고사를 거듭하다 결국 맡게 된 글. 결국 1년반이나 늑장을 부리다 더이상 출간을 지연할 수 없으니 선원고료를 게워내라는 협박까지 받고서야 넘기게 되었다. 이런 망신과 수모가 있나. 교재에 걸맞는 쉽고 조곤조곤한 글을 쓸수 없을 뿐더러 언제나 그런 글이 요구하는 “온건하고” “적정한” 정치적인 수준을 맞추는데 나는 젬병이다. 히스테리컬한 좌익 성향의 나에게 이런 글은 편치 않은 것인데, 왜 결국 마다하지 않았을까. 다음엔 이런 청탁에 절대 응하지 않아야 겠다!! 혹시 보시는 레즈, 게이, 트랜스, 기타 변태 제위들. 코멘트 좀 부탁합니다. ^^

한편 국제 사회에서 성의 권리에 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인권에 관련된 규범과 기준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급속하게 확산되어왔다. 전지구적인 사회에 접어들면서 이런 국제 인권 규범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자신의 인권을 제기하는데 소극적이었던 많은 국가의 성적 소수자들에게 큰 자극과 용기가 되어주고 있다. 유엔(UN)과 그에 속한 국제기구들(세계보건기구, 유엔인권소위원회, 유엔고등판무관실 등)에서도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제적인 규범을 수립하는 데 관심을 기울여 왔다. 또한 지역별 국제기구인 유럽회의, 유럽재판소, 미주간 인권위원회, 아프리카인권위원회 등 역시 소속 국가들로 하여금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차별하거나 억압하는 법률이 폐지되는데 더욱 역할을 늘려가고 있다. 나아가 이들의 권리를 적극 보장하는 법률과 제도의 마련에 힘을 쓰고 있기도 하다. 또한 전지구적인 사회에서 인권의 규범을 확산하고 인권 차별의 폐지에 노력하여온 국제 비정부기구들 역시 동성애자 인권에 적극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테면 국제사면위원회,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등은 물론 국제레즈비언게이인권위원회(IGLHRC: International Gay and Lesbian Human Rights Commission), 국제레즈비언게이협회(ILGA: International Lesbian and Gay Association) 등의 조직 역시 성적 소수자의 인권향상을 위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알다시피 이런 국제기구의 활동은 국제인권체제에서 마련한 인권의 규범과 기준이 서구적인 문화적 기준에 따른 것이라는 이유로 많은 국가들로부터 저항과 반대에 부딪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런 주장을 제기하는 국가의 성적 소수자들이 보여주는 투쟁 그리고 그들이 역설하는 오랜 역사와 관습은 그런 국가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든다. 어쨌든 종교적인 근본주의를 통해 사회의 통합을 이뤄나가려는 일부의 국가(중동이나 동유럽 일부의 이슬람권 국가들이나 미국 등)를 제외하곤 이제 인권의 보편적인 규범 가운데 하나로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인정하는 추세가 자리잡아가고 있다.
2) 한국의 성적 소수자 사회
따라서 현재 한국 사회는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소극적으로 보호하는 것은 물론 이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지속적인 요구를 구체화해야 한다. 이미 지난 십여 년 간 한국 사회의 새로운 성적 소수자의 세대들은 자신을 둘러싼 낙인과 편견을 극복하고 비록 주변화된 공간이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사회적인 활동과 친교의 공간을 모색하여왔다. 동성애자들 간의 친교를 위한 모임이 만들어지고(초동회, 그리고 초기의 친구사이, 끼리끼리 등), 각 대학에 동성애자들을 위한 모임(연세대의 “컴투게더”, 서울대의 “마음001” 등)이 등장함은 물론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지역에서 동성애자와 다른 성적 소수자의 권리를 위한 사회단체와 운동조직들이 등장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렇지만 가장 커다란 변화는 흔히 동성애자 사회(community)라고 불리는, 동성애자들의 개인적 친교와 사회적 활동을 위한 공간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는 데 있을 것이다. 서울을 비롯한 거의 모든 도시에 동성애자를 위한 바, 클럽, 사우나, 마사지숍, 극장들이 문을 열기 시작하였고, 동성애자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문적인 상업 시장 역시 등장하였다. 성적 소수자 운동을 상징하는 기념품에서 서적, 성보조기구는 물론 (남성) 동성애자를 위한 해외 관광 상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들이 성적 소수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성적 소수자 사회를 위한 독자적인 문화, 사회적인 활동 역시 괄목할만하게 성장하였다. “서울퀴어영화제(서울퀴어아카이브)”를 비롯하여 “퀴어문화축제” 등 다양한 행사들이 개최되어 왔고 이런 행사들은 성적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삶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은 물론 성적 소수자들을 위한 공적인 공간으로서 큰 역할을 하여왔다. 또한 이외에도 도서 출판, 미술 전시, 토론회와 공청회, 교육 모임 등 다양한 행사와 공적인 이벤트가 열림으로써 성적인 소수자들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으리 만치 다양한 사회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성적 소수자 사회가 만들어지고 발전한 데에는 디지털 미디어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전화사서함 서비스에서부터 인터넷 웹사이트에 이르기까지 가상공간은 성적 소수자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친교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의 사용에 익숙하고 적극적인 젊은 세대들은 성적 소수자들은 자신의 공적인 정체성을 보호하면서 안전하게 친교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폭발적으로 가상공간에 모여들었다. 또한 가상공간은 자신의 성정체성에 관한 자각과 인정 그리고 성적 소수자로서의 자아정체성을 구성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성적 소수자로서의 주체화(subjectification)에 필요한 다양한 이야기의 틀과 재료를 제공하였다. 이에 따라 극도의 고립과 무력감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하여야 했던 이전 세대와 전연 다른 방식으로 성적 소수자로서의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디지털 미디어의 전지구적인 정보와 지식의 소통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젊은 세대의 성적 소수자들은 전지구적인 성적 소수자의 문화의 흐름에 쉽게 결합할 수 있었다. 따라서 기존 세대의 성적 소수자들의 경우 은밀하고 고립된 지역 안에서 구전된 기억과 입말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고 설명할 언어, 문화적 틀을 만들어냈던 데 비해, 현재의 젊은 세대의 성적 소수자들은 거의 전지구적인 성적 소수자 세계에 속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물론 이는 또한 소수적 성정체성의 미국화라고 불러야 옳을 것이다). 레즈비언, 게이, 트랜스젠더, 탑/바텀, 부치-팜므 등의 정체성을 가리키는 용어는 물론 성생활에 관련된 속어와 문화적 관습을 표현하는 언어, 사회운동에 관련된 용어에서부터 성적 소수자에 관련된 전문적인 학술적 지식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수입된” 용어들에 의존한다.
3) 성의 전지구화, 성정체성의 미국화
물론 이를 도식적으로 소수적인 성정체성의 “식민화(colonization)”라고 부를 수는 없다. 성적 소수자의 정체성은 전지구적으로 공급되는 상품을 통해 전달되고 순환한다. 그리고 이런 미국적 성 소수자 문화를 매개하는 것은 굳이 상품에 한정되지 않는다.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더 많은 기금과 자원을 얻으려고 애쓰는 비정부기구(국제레즈비언게이인권위원회, 국제레즈비언게이협회, 에이즈에 관련된 국제비정부기구 등)의 활동 그리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사회에서 발간되는 학술 저널이나 여러 학술행사 역시 “미국화된 동성애 정체성”을 매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유럽은 물론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전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에 관해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둘러싼 사회 운동 내부에서도 다양한 입장의 차이가 나타나고 또 심각한 논쟁으로 이어지기까지도 한다. 따라서 시민으로서의 “권리의 보편성”을 주장할 것인가 아니면 미국을 비롯한 일부 사회에서의 주장처럼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란 관점에서 “다문화주의적(multiculturalist) 관용의 사회”를 내세울 것인가 등은 장차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둘러싼 사회의 틀과 목표를 규정함에 있어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수적 성정체성의 미국화 혹은 전지구화는 또다른 문제를 자아낸다. 그것은 바로 각 사회에 존재하던 소수적 성정체성과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같은 용어 사이에 빚어지는 긴장이다. 대다수의 비서구 사회에는 비이성애적인 소수적 성정체성이 존재하여왔고 현재에도 그 사회의 중요한 위계의 분류, 성에 따른 하위 인구집단 가운데 하나를 차지한다. 그러나 최근 특히 80년대를 전후한 에이즈 위기와 소비자본주의의 확산은 기존의 소수적 성정체성과 게이, 레즈비언 정체성 사이에 단절과 연속의 문제를 제기하였다. 예를 들어 필리핀의 바클라(bakkla), 인도네시아의 반치(banci), 와리아(waria), 태국의 카토이(kathoey) 등은 남성 동성애자(게이), 성전환자(트랜스젠더), 이성복장착용자(트랜스베스타이트 transvestite) 등 어떤 개념과도 정확히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인도네시아의 와리아는 대부분 문맹이며 하급의 노동에 종사하고 여성의 일부로서 여성사회에 참여한다. 그러나 그들은 성전환자라거나 이성복장착용자가 아니다. 그들은 와리아라는 성의 한 부류일 뿐이다. 반면 “호모”라고 불리는 남자들은 “진짜 남자” 혹은 “사나이”(인도네시아어로는 “라키-라키 아스리 laki-laki asli”)와 섹스를 한다. 만약 “호모”끼리 섹스를 한다면 그것은 “레즈비언”이다. 호모는 여장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식의 성의 분류가 비단 인도네시아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회가 이같은 독특한 성의 분류 체계, 위계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성(sexuality)과 성별(gender) 가운데 어느 것을 강조하고 그에 따라 어떤 분류를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조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분류와 조합에 따라 서로 다른 성의 종(種)들이 만들어질 수 있고 그에 따라 사회에 참여하고 친족공동체와 관계를 맺는 방식, 경제적인 활동을 영위하는 형태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도 역시 다르지 않다. 90년대에 접어들며 시작된 성적 소수자에 대한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된 “교정” 작업은 사실은 새로운 세대의 성적 소수자들이 자신이 동일시할 수 있는 새로운 분류 체계를 선택하고 강화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테면 동성연애자는 동성애자에 대한 경멸적인 표현이라거나, 게이라고 불렀던 자기가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은 트랜스젠더가 맞는 표현이라거나, 호모라고 불렀던 사람들이 게이라거나 하는 주장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렇지만 이런 교정 작업은 사실은 새로운 성 정체성의 분류 체계를 만들어내고 이를 과거의 것과 조정하는 복잡한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적어도 70-80년대에 동성간에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식을 일러 게이라거나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그다지 맞지 않다. 상대의 성정체성과 상관없이 남자와 성행위를 하고 친밀관계를 맺고자 하는 지속적인 성향이 있다면 그는 “보갈”이라고 불렸다. 이 때의 “보갈”이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하는 방식은 남자의 몸 안에 여성의 영혼이 갇힌 남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여장을 할 수도 있고, 이성애적인 남성성과 다른 양성적인(androgenic) 기질의 남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며 또한 자신의 영혼과 모순되는 몸을 여성의 몸으로 바꿀 수도 있다. 물론 “보갈” 남성과 성행위를 하거나 교제를 할수도 있지만 자신은 남자이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의 용어로 보자면 “보갈”은 성전환자일 수도 있고, 이성복장착용자일 수도 있으며, 수동적인 남성 동성애자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금의 성적 소수자들과 과거의 성적 소수자들 사이에 연속적인 역사를 그려내고 그 안에서 본질적인 공통점을 가정한다는 것은 허구적인 가정에 불과하다.
4) 요약
이런 문제들을 둘러싼 관심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성별, 성정체성 나아가 성을 인식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성을 에워싸고 나타나는 지배와 복종의 권력관계를 분석함에 있어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분석을 피하기로 한다. 이 글에서 우리가 다룰 중요한 문제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동질적이지도 않고 일관되지도 않지만) 성의 분류 체계, 그리고 그에 따라 자신의 성의 정체성을 분별하고 살아가는 구체적인 성적 소수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현재 한국의 성적 소수자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소수적 성정체성의 개념에 근거하여 성적 소수자를 정의하기로 한다. 이는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이다. 이런 성적 소수자의 정체성과 분류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살펴 본다. 일단 여기에서는 성적 소수자의 인권에 관련된 요구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요약하는 것으로 그치기로 한다.
앞서 우리는 1990년대에 접어들며 성적 소수자들이 공통의 삶의 관심과 욕구, 문화적 관습과 언어 세계를 만들어내며 자신들의 독자적인 사회를 형성하여 왔음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성적 소수자 사회”라는 자신들의 특수한 사회를 구축하면서 공유된 기억을 형성하고 공통적인 삶의 감수성과 취향, 그리고 생활양식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통해 축적된 사회적 관계와 공통적인 이해와 욕구가 성적 소수자 인권을 둘러싼 요구가 제기하게된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다. 물론 이런 성적 소수자 인권을 둘러싼 관심이 고조되게 된 중요한 배경으로 우리는 국제 사회에서 성적 소수자에 관한 관심이 폭증하고 또 괄목할만한 변화가 여러 국가에서 구체화되었음을 꼽을 수 있다. 아울러 국제기구, 국제비정부기구, 글로벌 미디어 등에 의해 생산되고 확산된 “인권의 전지구화”를 통해 성적 소수자의 인권은 더 이상 낯선 문제만은 아니게 되었다. 아울러 성적 소수자의 인권은 각국의 인권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한국 사회의 경우 “국민의 정부”가 등장한 이후 탈냉전시대의 민주화를 위한 중요한 사회적 전략으로 국가 차원에서 인권의 보호와 증진을 내세우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국가 폭력에 의한 인권 침해는 물론 그간 무시되어왔던 다양한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등장하였다. 따라서 소수자 인권에 관한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성적 소수자의 인권은 빠지지 않는 중요한 대상이 되었고 그런 변화에 힘입어 성적 소수자 인권 운동은 비록 극히 미진한 것이었지만 정부로부터의 지원을 받는 등의 다양한 성과를 이뤄냈다. 그렇지만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성과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거의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성적 소수자의 인권에 관련된 보다 깊은 이해와 성찰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다음에서 이런 점에 주목하면서 성적 소수자의 인권의 주체, 그리고 인권의 내용과 그 주요한 현안을 짚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가능한 한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는지 제시해 보기로 한다.
2. 비역(sodomy)-동성애자-게이-퀴어 : 동성애와 동성애자 그리고 정체성
1) 동성애적 욕망과 동성애적 정체성
거칠게 말하자면 성적 소수자(sexual minorities)란 비이성애자를 가리키는 포괄적인 용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성적 소수자가 무엇이며 누구인지 분명하게 또 일반적으로 규정하기란 어렵다. 이미 앞에서 성정체성을 분류하는 체계가 다양하다는 점을 간단히 지적한 바 있다. 사회마다 성에 관하여 각기 달리 분류하고 또한 그에 대한 이해와 평가 역시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소수적 성정체성에 관련된 분류와 인식이 사회마다 문화마다 다르지만 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등의 개념이 근대 사회의 등장과 더불어 그것도 19세기 후반에야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 관한 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동성애자란 용어가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관해서는 사실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것은 “일군의 사람(a class of people)”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특정한 “행위의 종류”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는 동성애자란 개념을 통해 역사상 처음으로 동성간의 친밀함(굳이 성聆岵訣?않아도)에 근거하여 사람들을 따로 분류하는 최초의 구분법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인류는 이성애자(이 명칭은 나중에야 등장하였다)와 동성애로 구분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동성애자란 용어가 19세기 후반에 처음 등장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미 그 전에도 동성에 관한 관심과 욕망을 표현하는 용어가 없었던 것은 아니고 그를 묘사하고 표현하는 다양하고 풍부한 전통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역사적 처음으로 성의 대상, 즉 그 성적 관심의 대상이 무엇이냐, 성의 목표 즉 그것이 생식이라는 목적을 위한 것이냐 아니냐, 이런 두 가지 기준에 따라 성을 분류하는 성의 사회적 체계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사람들이 성을 단순히 행위나 욕망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의 주체, 즉 인간의 기질이자 성향의 결과로 정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동성을 향한 우연적이고 음란한 욕망에 빠져들 수 있는 “인간 일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로서의 육체적인 특성과 심리적 기질 때문에 동성애적 욕망을 보이는 별개의 “동성애자”라는 인간 집단이 있는 것이다. 동성애자란 용어의 출현은 근대 사회에 접어들며 나타나기 시작했던 점차적인 성의 체제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성의 체제란 단순히 종교적인 신념이 변화하였거나 성을 둘러싼 태도와 가치가 바뀐 것이 아니라 보다 큰 사회적인 변화가 만들어낸 복잡한 지식과 삶의 관습, 제도와 정책 등의 복합체를 가리킨다. 여기에서는 극히 간략하게 새로운 근대적인 성체제의 특성을 요약해보자면 이성애적인 성인의 혼인에 바탕한 가족관계 즉 핵가족이 지배적인 가족의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는 점, 가정이라는 사적인 영역과 사회라는 공적인 영역 사이의 구분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점, 이에 따라 남성과 여성, 미성년자와 성인 등에 관련된 새로운 가치와 관습이 자리잡게 되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어쨌든 이런 변화의 결과 결혼과 가족, 출산과 생식을 중심으로 성을 둘러싼 새로운 담론이 만들어져 왔다. 이 과정에서 동성 간의 욕망은 이성애와 구분되는 “다른 것”으로서 정의되기 시작했다. 이때 이성애적인 생식의 성과 다른 성을 발견하고 정의, 구분하는 일은 주로 의학자(과학자)들의 수중에 맡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저 유명한 성의 정상과 비정상, 즉 정상과 도착(inversion/perversion)이란 구분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냥 이상한 성 행동을 가리키는데 흔히 쓰이는 도착이란 명칭은 본디 과학의 용어로 등장했다.
이런 변화가 초래한 궁극적인 결과는 “동성간의 욕망(same sex)”과 “성의 한 종(種)으로서의 동성애자(the homosexuals)”를 마침내 분리시켰다는 것이다. 동성간의 욕망은 인류의 역사 언제나 존재했고 인류의 어느 사회에나 존재한다. 그렇지만 동성애자는 근대 사회에서 그것도 일부 서구 사회에서만 존재했던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동성간의 욕망이란 누구에게나 우연히 출현하고 생겨날 수 있는 음란한 유혹과 욕망이었고 그것은 모든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성애자란 것은 자신의 특정한 신체적, 심리적인 기질로 인해 동성에게 성적 욕구를 가질 수밖에 없고 독특한 신체의 구조와 심리적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별개의 인간군이다. 따라서 동성애는 이제 사악한 유혹 혹은 부도덕한 꾀임에 맞서 투쟁해야하는 모든 인간의 문제인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라고 불리는 특별한 인간의 종에 속한 신체적 특성, 심리적 기질의 문제로서 즉 질병(illness)으로서 정의된다.
동성애자란 명칭은 사실은 질병을 앓는 사람, 즉 병자(patient)란 뜻에서의 의학적인 분류이다. 19세기 후반부터 골상학, 우생학, 사회위생학, 생리학, 정신병리학과 심리학, 정신분석학 나아가 심지어 최근의 유전공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과학적인 담론들은 동성애라는 질병, 즉 신체적인 특성과 심리적인 기질의 “원인을 발견하고 치료”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여 왔다. 비록 1973년 미국의 정신병리학협회가 정신질환진단통계편람(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Psychiatric Disorders)에서 동성애를 정신질환 항목에서 삭제함으로써 동성애를 정상으로 간주하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로 인해 동성애를 비롯한 소수적인 성정체성이 마치 더 이상 질병이 아니라는 승인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동성애를 질병으로 간주하고 전기충격, 심리치료, 약물처방 등을 통해 치료하려는 노력을 굽히지 않고 있다. 195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동성애자를 대신하여 등장한 호모필(homophile)이나 게이(gay), 레즈비언(lesbian) 등의 용어는 바로 의학적인 명칭으로서의 동성애자란 개념을 거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동성애의 의학화(medicalization), 과학화(scientification)”가 끼친 뜻하지 않은 효과도 있었다. 그것은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욕망이 더 이상 윤리적인 악덕과 죄악의 문제가 아니므로 종교적, 윤리적 박해 그리고 공중도덕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처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의 성과학자들이 주도했던 성개혁운동이 “과학을 통한 정의를!(Justice Through Science!)”이란 구호를 내걸고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에 반대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뿐이 아니었다. 동성애에 관한 과학적 지식은 곧 숨어살고 있던 동성애자들에게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지식을 안겨주었고 이들 사이에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또한 도시화 그리고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사회적인 이동성의 증대로 인해 서구의 대도시에는 성적 소수자들을 위한 사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예에서 보듯이 동성애와 동성애자의 구분이 분명한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최근까지 동성애자는 처벌하지 않지만 동성애(적 성행위)는 처벌하는 독특한 법률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 비역법(sodomy law)이다. 놀랍게도 2003년 6월 마침내 로렌스 대 텍사스(Lawrence V. Texas)의 재판에서 로렌스가 승리를 거두며 비역법이 마침내 폐지될 때까지 미국의 많은 주들은 동성애를 금지하고 법률을 통해 처벌하였다. 비역법에서 말하는 비역이란 중세 시대의 종교법의 유산으로서 자연에 반하는 죄악을 혹은 신의 섭리에 반하는 모든 행위와 욕망을 가리킨다. 비록 그것이 미국 사회에서 구강성교와 항문성교로 좁혀졌지만 이 안에는 비정상적인 체위로 알려진 성교 시의 체위(여성 상위), 수음, 수간 등 다양한 성행위 및 윤리적인 지위가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비역법은 비록 근대 사회에 접어들며 주로 남성 동성애자들을 단속하고 처벌하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되었을지라도 실제로는 “죄악”을 다루는 것이지 “성정체성” 혹은 “성적인 소수자”와는 전연 관계가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비역법의 대상에는 이성애자도 포함될 수 있고, 적어도 2003년까지 미국의 많은 주들은 그런 규정을 유지하였다. 로렌스 재판의 경우 그는 휴스턴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파트너와 구강성교를 하였던 것이 경찰에 발각되어 하루 동안 1일 동안의 구류와 20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텍사스의 주법은 동성애적 성행위를 “C등급의 경범죄(a class C misdemeanor)”로 분류하고 징역 및 최고 50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이 판결에 불복한 로렌스는 소송을 제기하였고 이 사건은 다시 한번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연방대법원은 미국 헌법 수정안 14조의 적법절차조항이 포괄하는 자유의 보호란 면에서 로렌스에 관한 판결이 헌법을 위배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성인끼리의 합의에 따른 사적인 성행위를 금지한 것은 법률적 판결이 아니라 단지 도덕적인 불인정일 뿐이라는 것이 다수파(5 대 4의 판결)의 의견이었다. 이로서 미국에서는 마침내 비역법이 폐지되고 동성애적 성행위는 자유의 권리로 인정받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도 동성애와 동성애자, 비이성애적인 성욕 혹은 성행위와 소수적 성정체성을 뚜렷하게 구분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이들은 동성애적 욕망은 군대에서의 강요된 동성애적 성 체험, 아동기의 성인 동성애자 남성의 “유혹” 등에 의해 “학습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에는 동성애적인 욕망과 성행위는 윤리적인 자제와 거부를 통해 극복될 수 있는 것이란 믿음이 깔려있다. 이는 동성애적 욕망은 선천적인 것인가 후천적인가를 둘러싼 논쟁을 낳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동성애가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를 둘러싼 시비는 짐짓 동성애의 “과학적 진실”을 캐묻는 중립적이고 타당한 물음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많은 이들이 주장하듯이 이성애적 성욕 역시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아무도 물을 수 없고 또한 그것은 물음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성장하면 우리는 누구나 “저절로” 이성애자가 되는 것으로 믿고 있다. 따라서 이성애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의 지향성이나 성행위의 대상에 구분되지 않는 “인간 일반”이 존재할 따름이다. 동성애의 원인을 둘러싼 물음은 동성애자를 따로 구분하고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정치적인 사고의 틀 짜기라고 볼 수 있다. 줄여 말하자면 그 물음은 자연스러운 과학적인 질문이 아니라 특정한 신념과 태도가 반영된, “만들어진” 문화적, 정치적인 물음이다. 이런 식의 질문법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먼저 동성애란 구분된 대상을 전제하는 특수한 역사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 동성애자 및 성적 소수자들이 만들어낸 자기정체성과 그들의 경험과 관습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사회적 실체로서의 동성애를 개별화된 심리적인 성향, 신체적 특성으로 환원한다는 점 등이다.
어쨌든 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성을 신체적, 심리적 기질과 성향에 따라 분류하려는 시도는 성을 정체성의 문제로 만들었다. 그리고 “나의 성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과 결합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동성애자라는 것은 단순히 동성간의 성행위를 하거나 성욕에 이끌린다는 뜻이 아니라 동성애자로서의 자신의 독특한 성향, 관습, 태도 등을 아우르는 말 그대로 “자아정체성”의 문제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근대의 초기 동성애자들은, 비록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이들이 예술가이거나 문학인의 모습이었던 탓도 있겠지만, 섬세한 심미적인 감수성, 멋내기를 비롯한 독특한 몸에 대한 태도, 인습적인 성역할을 부정하는 자유스러운 생활방식 등으로 동성애자 정체성을 이상화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는 지금까지도 동성애자들의 중요한 문화적인 전통으로 지속되고 있으며, <사막의 여왕 프리실라>나 <투웡푸>, <버드케이지>같은 헐리우드 대중영화를 통해 표현되기도 하였다. 동성애자란 용어가 등장하고 이를 별도의 인간집단의 특성으로 정의하면서 “동성애자”들은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공통의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특히 2차대전이 끝나고 난 직후 미국 사회에서 발표된 {킨제이보고서}는 미국인들을 경악에 빠트리게 되었다. 흔히 10% 가설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킨제이 보고서의 결과는 미국인들 가운데 약 10% 정도가 동성애자이며 상당수의 성인 남성과 여성들이 동성애적 성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하였다. 이런 소식은 많은 동성애자들을 고무시켰다. 그들은 동성애 정체성이란 것이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펴져있는 질병이나 윤리적인 악덕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영유하는 삶의 방식이자 관습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인종, 계급, 문화에서도 한결같이 일정한 비율의 동성애자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질병이 아니라 소수의 성, 즉 다른 소수 인종처럼 성의 소수자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1950년대에 접어들며 최초의 근대적인 동성애자 운동으로 알려지게 될 “호모필 운동”이 출현한다. 먼저 1951년에 미국 공산당 당원이었던 해리 해이가 주도하여 만든 남성 호모필 조직인 “마타신 협회(Mattachine Society)”가 그리고 1955년에는 필리스 라이언(Phyllis Lyon)과 델 마틴(Del Martin) 등이 주도한 레즈비언 조직인 <빌리티스의 딸들 Daughter of Bilitis>이 각각 결성되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억압된 문화적 소수자(an oppressed cultural minority)라는 획기적인 정의를 만들어냈다. 즉 그들은 동성애적인 욕망이나 개별적인 동성애자가 아니라 동성애자들의 공유하는 사회문화적인 정체성에 근거하여 동성애 정체성을 정의하려는 중요한 첫 걸음을 내딛게 된다. 또한 과학적인 정의란 이름으로 동성애가 악(惡)이 아니라 질병이기 때문에 박해받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던 20세기 초반의 성개혁운동에서의 동성애자 운동과 전연 다른 비전을 보여주었다. 그 운동의 주체가 동성애에 관한 과학적인 지식을 가진 의학자들이었다면 이제 동성애자운동은 동성애자들 자신이 되었으며 동성애 정체성에 관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권한은 바로 그 문화와 사회를 잘 알고 있는 동성애자 자신이게 되었다.
2) 소수자로서의 동성애자 ; 성소수자 모델과 정체성의 정치학
그러나 초기의 호모필 운동은 동성애자들 사이의 체험과 감정을 교류하고 반동성애적 차별에 맞서 공동체를 만들어낸다는 전망으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카시즘”이라는 미국의 냉전적 마녀사냥에 위축되어 동성애가 정상임을 널리 알림으로써 주류사회에 통합되고 동화된다는 입장으로 보수화되어간다. 그리고 마침내 1969년 6월 미국의 뉴욕에 있는 게이바인 스톤월 인(Stonewall Inn)에서 상습적인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괴롭힘과 학대에 맞서 저항이 벌어지고 이것이 미국 전역으로 들불처럼 확산되면서 이른바 “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를 전후하여 당시에 폭발하고 있던 새로운 급진운동(흑인공민권운동, 페미니즘, 제3세계 해방운동, 대안적 생활운동 등)에 영향을 받은 급진적인 게이, 레즈비언 운동이 터져나오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미국은 물론 유럽 주요 국가와 남미 등지에서 “게이해방전선(Gay Liberation Front: GLF), “급진레즈비언들(Radicalesbians)” 등의 조직이 등장하게 되면서 소수자(minority)로서의 동성애자라는 새로운 정의가 널리 뿌리를 내리게 된다. 이들은 커밍아웃(coming out)이 단순히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개인적인 행위가 아니라 동성애자로서 자신들의 사회에 참여하는 정치적인 실천으로 재정의하였다. 어쨌든 동성애자들은 이제 더 이상 의학적인 병명이자 환자를 가리키던 개념인 과학의 용어 동성애자를 버리고 게이, 레즈비언이란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이러한 운동의 성과는 미국과 유럽의 전역에서 이른바 게이 사회(gay community)라는 이름의 독자적인 생활공동체가 등장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로스엔젠레스, 뉴욕, 시드니, 파리, 런던 등 서구 주요 대도시에서 동성애자들이 모여 살고 그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양한 사회적 시설과 단체, 상점, 유흥업소 등이 들어선 “지역 사회”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어쨌든 양차 대전 이후에 나타난 커다란 변화들은 성적인 소수자들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사회적인 정체성으로 조직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독자적인 문화를 지닌 사회로 정의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의 경우 보다 깊은 관심과 조사가 있어야겠지만 소수자(minority)로서의 동성애자 사회 즉 미국의 게이, 레즈비언 운동이 만들어낸 일종의 “인종적인 집단의 모델(ethnic model)”에 가까운 동성애자 사회가 출현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였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초반을 전후하여 서울의 낙원동 일대를 중심으로 동성애자들의 성적인 친교를 위한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동성애자들은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안정적인 사회적 기반을 형성하였다. 특히 에이즈 위기를 둘러싼 공포가 급습하면서 에이즈를 동성애자의 질병으로 간주하는 믿음 역시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에 대한 반향으로 이즈음 본격적으로 동성애자들에 관한 잇단 르포와 폭로 기사가 황색 저널리즘이나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 고립된 채 동성애적인 욕망을 자신의 천형(天刑)으로 받아들이고 절망하던 많은 동성애자들에게 중요한 정보가 되었다. 낙원동 일대는 비록 더딘 속도이긴 하지만 드나드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수많은 유흥업소들이 생겨나 동성애자들의 만남과 친교의 장소가 되었다. 또한 90년대에 접어들며 등장한 동성애자 인권운동은 곧바로 “소수자”란 모델을 동성애자와 다른 성적 소수자들에게 확산시키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동성애자들은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 같은 명칭들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면서 공통의 문화, 공유하는 체험과 기억을 가지고 있는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수자란 모델에 따른 동성애자 인권 운동 나아가 성적 소수자의 정치운동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비판적이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1970년대 이후 미국을 비롯하여 서구사회를 휩쓸었던 “성의 관용(permissiveness)” 나아가 “성혁명”의 흐름은 게이, 레즈비언들에게 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의 세계를 열어주는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이에 따라 게이해방운동이 내세웠던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란 구호는 퇴색하고 성적 소수자운동의 주류가 내세웠던 소수자 모델은 기존 사회에 동화되어 사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이는 현재 미국 사회의 주류 게이, 레즈비언 운동이 내걸고 있는 다문화주의적인 관용이라는 모델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공통의 경험과 문화에 기반한 정체성이란 모델은 에이즈 위기를 전후하여 급격한 도전에 직면하기도 하였다. 먼저 그것은 에이즈 위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많은 새로운 젊은 세대의 성적 소수자들은 에이즈를 둘러싸고 나타난 극렬한 동성애혐오와 적대에 직면하면서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것이 이성애자의 잘못된 편견이 아니라는 점을 자각하게 되었다. “게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레즈비언이라는 것은 자랑스런 일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대도시에서 행진을 벌이곤 했던 성적 소수자들에게 8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는 매우 가혹한 것이었다. 새로운 전염병이 도래하자마자 그것을 성과 연관시키고 그에 따라 동성애자를 극렬하게 공격하고 배척하는 사회적 태도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새로운 자각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80년대의 젊은 세대의 많은 동성애자들은 동성애가 정상이라는 더 많은 계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성애란 것이 존재하는 한 즉 성을 이성애와 다른 성으로 나누는 구분의 체제가 존재하는 한 언제나 다른 성은 차별받고 착취당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들은 이성애자와 성적 소수자들이 서로의 문화적인 차이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성애정체성을 중심으로 사회를 조직하고 유지하기 위해 언제나 성적인 소수자들을 배제하고 부정하는 사회적 구조를 비판하려는 새로운 사회운동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곧 “퀴어 정치학”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새로운 흐름과 “퀴어 이론”이라는 지적인 운동으로 폭발하게 된다. 이들은 기존의 게이, 레즈비언의 소수자 모델이 정체성의 정치학을 강조하면서 인종, 계급 등의 다양한 차이를 부정하고 백인 중산층 게이 남성의 정체성을 강요하였을 뿐 아니라, 이성애정체성이 성의 지배를 통해 현존하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성적 소수자들을 만들어내고 착취하고 있음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따라서 성적 소수자를 모욕하기 위해 사용하던 속어인 “퀴어”란 말을 게이, 레즈비언 대신에 사용하면서 이성애가 부정하고 차별하는 모든 종류의 성, 심지어 관습적인 이성애에 동화되지 못하는 이성애자까지 아울러 그들을 모두 “퀴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급진적인 에이즈운동조직인 “액트업(ACT UP)”을 비롯하여 “퀴어 네이션(Queer Nation)”같은 조직이 출현하여 활발한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그러나 소수자의 모델 그리고 정체성에 기반한 운동을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단견이라고 할 수 있다. 소수자의 모델은 흑인운동과 여성운동으로부터 빌려온 독특한 사회집단의 모델이란 점에서 미국 사회의 독특한 맥락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역시 다문화주의적인 관점에서 동성애 정체성을 단순히 문화적인 체험과 그 산물로 축소하여버림으로써 소수적 성정체성에 대한 차별을 낳는 사회적 힘을 무시한다는 점등에서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 그렇지만 비록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소수자의 모델은 많은 사회에서 자신들의 사회적 요구를 법률적인 권리로 요구할 때 중요한 개념적인 근거를 제공해주었다. 미국의 경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듯이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여야 한다는 것은 곧 인종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것과 다름 없는 논리로 받아들여진다. 그 이유는 둘 다 소수자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의 법률 체제 그리고 권리의 보장과 분배에 관련된 정치적 체제는 모두 소수자란 개념을 사용한다. 따라서 성적 소수자들이 “소수자”란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현존하는 법률, 행정, 복지, 교육, 경제적 제도 안에서 그들의 지위를 대변하고 정의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에서 여성들의 고용할당을 한다든가 대학교에서 흑인을 위한 입학정원할당을 하듯이 동성애자들에게 특정한 우대 정책을 할 경우 이는 모두 똑같다. 그것은 “소수자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 for minority)”이다. 그리고 이런 규정은 많은 서구 사회에서 성적인 소수자들의 권리를 사회 안에서 보장하고 정의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물론 이것을 당연시할 필요는 절대 없다. 이미 앞서 주장했듯이 소수자인가, 시민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동성애자의 인권 운동 내부에서 계속되어 온 논쟁이고 또한 중요한 함축을 품고 있다.
3) 요약
지금까지 근대적인 성적 소수자의 출현과 그것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동성애 정체성 및 소수적인 성 주체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단순한 소수적인 성의 역사에 관한 흥미 때문인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는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처음부터 그들을 “욕망”이나 “행위”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간주한다. 그 때의 동성애자-인간은 동성애적 성행위를 하는 순간의 개인적인 동성애자가 아니다. 인권의 주체로서의 동성애자란 동성애적 성행위와 상관없이 그가 자신을 동성애자로 정체화하는 한 그가 속했다고 느끼고 또한 그가 참여하여 살아가는 삶의 세계, 그리고 그에 속한 사회적 집단을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특정한 정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동성애자의 출현은 본격적인 동성애자의 차별과 박해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또한 동성애자 인권을 모색하는 사회적인 움직임의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앞에서 간단히 전근대사회에는 동성간의 성행위가 있었을 뿐 동성애자는 없었다고 이야기하였다. 요컨대 전근대사회에는 신의 섭리 혹은 자연의 이치에 반하는 죄악으로서의 비역, 즉 음란하고 외설스런 성 행동의 한 종류로서의 동성간의 성행위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근대 사회에서 성을 과학적으로 분류하고 신체와 심리의 특성으로 정의하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성에 따라 인간을 종별(種別)로 나누는 체제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결과 “동성애자”라는 의학적인 기준에서의 비정상인이 등장하게 되었다. 질병으로서의 동성애, 그리고 그것을 앓는 환자로서의 동성애자, 그리고 이를 둘러싼 치료. 이렇게 결합된 동성애 및 소수적 성의 인식은 적어도 서구사회에서는 양차대전을 전후하여 바뀌게 된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동성애자들은 자신에게 부착된 질병이란 낙인을 거부하고 억압당한 문화적인 정체성으로 자신을 재정의한다. 그리고 자신을 흑인과 유사한 마이너리티 즉 소수자란 이름으로 규정하게 된다. 이에 따라 처음으로 동성애자가 그 주체가 된 근대적인 동성애자의 인권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소수자의 모델에 따른 동성애자 운동이 최근 다양한 비판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는 동성애자 인권운동 나아가 성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를 인식하고 변화시키는데 매우 다른 전망을 갖게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였다.
3. 성적 소수자 인권의 주요 현안
이 장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성적 소수자의 인권에 관련된 주요한 과제를 점검하기로 한다. 각각의 권리의 요구마다 매우 복잡한 쟁점을 함축하고 있지만 이는 생략하기로 한다. 예컨대 성적 소수자의 혼인권, 그리고 성적 소수자로서의 “성적 시민권” 등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이 장에서는 그런 논의를 자세히 포함하지 않고 현재 한국 사회에서 성적 소수자의 인권과 관련하여 주요한 과제로 생각될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간단히 설명하기로 한다.
1) 고용 평등의 권리의 보장
먼저 성적 소수자들이 고용에 있어 평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 비록 한국 사회에서 어느 기업도 공식적으로 동성애자나 성적 소수자란 이유로 고용을 금지하거나 해고하는 등의 규정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렇지만 동성애자나 다른 성적 소수자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표현하였을 경우 이를 이유로 고용을 막거나 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비록 공식적으로 성적 소수자의 고용 및 해고에 관련된 규정이 포함되지 않았어도 성정체성을 빌미로 정당한 취업과 고용의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음 역시 분명하다. 아울러 고용평등에 관련된 현행 법규와 여러 절차에서도 역시 성적 소수자를 포함시켜야 한다. 성적 소수자란 이유로 취업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자신의 사회적인 생존이 위협당할 경우 성적 소수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에게 가해진 사회적 차별을 묵인한 채 은폐된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그들의 직장에서의 삶에 커다란 부담과 고통을 안겨줌은 물론 자신의 노동 활동에서 건강한 삶을 누릴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의 고용을 보장하는 지침을 제정하고 발표하도록 권장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것이 영리적인 사기업에 적용되기 어렵다면 정부 기관, 대학을 비롯한 고등교육기관, 문화예술관련 기관, 비정부단체를 비롯한 사회단체, 정당 등에서 이를 적극 실천하도록 권고할 수 있다. 정부는 부정적인 편견으로 인해 부당한 성적 소수자의 고용차별이 이뤄지지 않도록 적극적인 조처를 취할 필요가 있으며 필요하다면 이에 관련된 법을 제정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성적 소수자의 직업적인 활동에 평가와 보상에 있어 어떤 차별이 있어도 안될 것이다. 무엇보다 성적 소수자들이 파트너로서 실제로 가족에 준하는 동거와 공통의 경제적 생활을 할 경우 이성애자 고용인에게 보장된 여러 가지 혜택을 이들에게 역시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불가결한 부분이다. 정부기관, 교육기관은 물론 사기업 등의 경우 적극적으로 동성애자 파트너에게 수당, 의료 보험을 비롯한 다양한 혜택에 있어 평등한 지위를 보장하여야 할 것이다.
2) 혼인의 권리의 보장
대한민국 헌법 제36조 1항은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이 이성간의 혼인만을 인정하는 것인지 아니면 동성간의 혼인을 배제하지 않는 것인지에 관해 법학자들마다 의견을 달리한다. 최근의 몇몇 판례들은 몇몇 동성애자들의 재산분할권 등에 관련된 소송에서 그들을 법률혼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혼인으로서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법학자들이나 법 관련자들은 국민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을 짓밟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위의 조항을 이성애자 혼인만 인정하는 것은 헌법의 다른 조항들과 상충된다고 이야기한다. 혼인에 관한 법률적인 규정을 개정하는 것이든 아니면 그에 관련된 특별한 법률을 개정하는 것이든 성적 소수자에게 혼인의 권리를 보장하여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성적 소수자의 혼인의 권리는 “결혼할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통해서만 분배되고 향유될 수 있는 권리”를 성적 소수자에게도 역시 보장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주장하여야 한다. 이는 굳이 성적 소수자뿐 아니라 이성애적인 혼인관계 외부에 있는 다양한 관계에 대해서도 혼인한 자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미국 회계감사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미국에서 기혼자의 경우 연방정부의 다양한 법률과 규정에 따라 약 1,096가지의 권리와 혜태를 누린다고 한다. 여기에 각 주에서 보장하는 것으로 약 300여 가지를 추가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미국 사회에서 생존과 생활에 있어 결혼이 근본적이란 말은 크게 과언이 아니다. 결국 혼인은 성인들에게 있어 사실상 국가를 통해 제공되는 여러 가지 권리와 혜택의 가장 중요한 원천인 곳이다. 비록 미국과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그리고 아직 신뢰할만한 자료가 주어져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도 역시 결혼이 이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은 분명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혼인권은 결혼 제도를 통해 성적 소수자의 관계를 정당하게 인정받으려는 것과 별 상관이 없다. 사실 전통적인 가족관계에서 정의된 결혼으로부터 혼인은 벗어나고 있고 점차 부부의 친밀한 관계 중심으로 정의되고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높은 이혼율이 보여주듯이 결혼관계에서 일차적인 것은 친밀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성애자의 혼인과 다른 성적 소수자의 관계에는 어떤 근본적인 차이도 없다.
이미 네덜란드(2001), 벨기에(2003), 미국의 매사추세츠 주(2003) 등지에서 동성애자들에게도 완전한 결혼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또한 스페인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도 역시 동성애자 커플을 이성애자와 완전히 동일한 혼인으로 인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덴마크(1989)를 필두로 노르웨이(1993), 아이슬란드(1996), 스웨덴(1995) 등은 “등기파트너제(registered partnership)”를 도입하고 있다. 이는 동성애자 커플에게도 혼인과 동일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인데 대부분 자녀입양이나 이민자의 시민권에 관한 한 제한을 두고 있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 동성애자 커플에게만 그 권리를 부여한다. 단 덴마크는 이성애자 커플에게도 권리가 부여된다. 프랑스는 1999년 “시민유대협약(civil solidarity pact: pacte civile)”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동성애자커플은 물론 이성애자 커플에게도 모두 해당되는 것으로 역시 혼인에 보장된 공적인 권리를 보장한다. 그러나 이 법안은 미국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가족파트너제(domestic partnership)”에 가깝다. 이는 지방정부나 기업, 공공기관, 학교, 노동조합 등에서 지역 주민이나 피고용인 가운데 동성애자 파트너들에게 혼인에 해당하는 권리를 선택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또 하나 다른 것을 꼽자면 미국의 버몬트 주에서 시행 중인 “시민결합(civil union)”이다. 이는 이성애자 혼인의 권리와 책임에 해당되는 모든 것을 보장하는 것으로 혼인의 성립과 해소에 따르는 절차 역시 이성애자 부부와 유사하다. 그리고 역시 배우자, 직계가족, 인척 등의 모든 법적인 표현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 가운데 어떤 제도와 법률을 선택하고 어떤 자격과 권리가 부여되어야 할 것인지 분명히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성적 소수자에게도 역시 혼인의 권리가 부여되어야 함은 분명한 일이다. 그것은 혼인의 권리가 아니라 혼인한 자에게만 부여된 사회적인 권리를 평등하게 분배하고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3) 공공기관에서의 성적 소수자 권리와 관련한 교육
성적 소수자에 관한 부정적이고 적대적인 사회적 편견을 바로잡기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여야 한다. 특히 중고등학교를 비롯한 학교, 의료기관, 경찰, 군대 그리고 교도소를 비롯한 수형시설의 경우 이런 교육 프로그램의 도입을 의무화하여야 할 것이다. 청소년 교육시설의 경우 동성애자 및 다른 소수적 성의 청소년들이 다양한 폭력과 심리적인 위협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사회에서 이미 다양한 조사와 통계는 동성애자 청소년들이 학교 생활에서 엄청난 심리적인 고통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의료기관의 경우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성적 소수자란 이유로 치료를 기피하거나 환자로서 성적 소수자의 처우에 있어 부당한 대우가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의 도입이 필요하다. 경찰의 경우 범죄자가 성적 소수자인 경우 그의 성정체성을 이유로 그에 대한 모욕과 폭력, 부당한 대우가 이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성적 소수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범죄의 경우 상당수의 성적 소수자들은 경찰에 알렸을 경우 자신들이 직면할 고통이 더 클 것이란 이유로 피해를 감수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들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비롯한 다양한 권리의 보호를 요청할 경우 그들을 적극 보호하여야 한다. 범죄자이든 피해자이든 성적 소수자란 연유로 많은 이들이 모욕과 수모를 겪고 자살을 시도하는 등의 여러 가지 피해가 계속되어 왔다. 따라서 이런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적절한 절차와 제도 역시 마련되고 적극 홍보되어야 할 것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군대에서의 성폭력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폭력은 동성애자 간의 성폭력이 아니라 상황적인 동성애(situational homosexuality)란 것에 따른 성폭력의 경우가 많으며 이런 폭력의 피해자는 동성애자가 될 경우가 높다.
4) 공중보건 특히 에이즈 예방 및 감염 정책에서 성적 소수자의 참여
성적 소수자가 공중보건정책에 의해 특별한 취급을 당하고 그로 인해 여러 가지 차별을 겪을 경우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특히 현재 에이즈예방 및 감염인 정책의 경우 감염인의 권리를 적극 보호함은 물론 성적 소수자 감염인에 대한 역학조사나 입원 및 치료, 간병 등의 관행에 있어 특별한 불이익이 없도록 해야할 것이다. 또한 동성애적 성행위가 에이즈와 관련이 있음을 암시하거나 조장하는 일체의 정보를 금지하여야 하며, 동성애자들이 적극적으로 에이즈 예방에 나설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정책적 지원을 행해야 할 것이다.
5) 이민과 귀화의 권리 및 난민의 권리의 보장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들의 포괄적인 시민권을 인정하고 이를 보장하기 위해 이민 및 귀화의 권리를 인정하여야 한다. 이미 한국 사회의 많은 성적 소수자들은 다양한 해외 교류의 경험으로 인하여 해외의 파트너와의 장기적인 관계를 원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가운데 당당히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히고 이민을 원할 경우 그를 이유로 그의 이민을 막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를 보장하기 위해 성적 소수자의 이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규정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이는 귀화의 권리에서도 역시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다른 국가에서 성 지향성으로 인하여 부당한 박해를 받고 한국 사회에 정착하고자 하는 성적 소수자들에게 난민의 지위를 부여하여야 할 것이다. 최근 아시아 지역에서 많은 국가들이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박해와 차별이 고조되고 있다. 일부 국가의 경우 이슬람 근본주의, 전통적인 가치의 수호란 이유로 오랜 동안 함께 살아왔던 성적인 소수자를 서구 문화의 병폐로 규탄하며 박해하고 심지어 살해하는 경우가 증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그런 박해를 피하여 한국 사회에서 살고자 할 경우 그들에게 난민으로서의 지위를 부여하여야 할 것이다.
6) 성 자기결정의 권리의 보장
최근 하리수씨의 호적 정정 소송에서 보듯이 성전환자의 성별 규정에 관한 인권적 접근 역시 절실히 필요하다. 현재 한국 사회의 경우 무엇이 그의 진정한 성별인가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의견이 공존하고 있다. 성별을 의학적인 지식의 대상으로 정의하여 염색체, 유전자, 생식선 등을 판별함으로써 성을 “과학적으로” 규정하려는 관점, 성별에 관한 일반적인 통념, 즉 남성성과 여성성의 규범에 부합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규정하려는 규범적인 관점, 성별을 결정하는 것은 신체를 통제하는 개인의 권리에 속한다는 자기결정권적인 관점 등이 혼란스럽게 대립하고 있다. 물론 이런 각각의 관점은 나름의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 또한 성별을 결정함에 있어 그 주체도 전문가, 법률가, 개인 등 서로 달리 정의되고 있다.
그리므로 위의 관점들은 성별 정체성을 판별하는 지식의 종류, 그것을 결정하는 권한의 주체, 그에 따르는 처분의 방식 등에 있어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 성전환자의 경우 정신질환자로 정의하고 이들을 병역 의무에서 제외시킨다. 또한 의료제도의 경우 성전환자의 성전환수술을 암묵적으로 행하고 있고 이 경우 시술대상에 해당하는 성전환자와 제외되는 성전환자를 구별하는 과정에서 성전환자에 대한 나름의 의학적 정의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한편 하리수씨의 호적 정정 사례에서는 그가 사회적 통념에 비추어볼 때 여성이라는 점을 들어 그??

박정희 체제의 비판 – 어떤 민주주의를 위해 비판할 것인가

과거사 청산이라는 “문제”
거의 잊혀지고만 그렇다고 이렇다 할 주목을 받은 적이 없던 소설 한편이 생각난다. 재일교포 작가였던 이회성의 소설 {금단의 땅}이 그것이다. 차라리 공상과학적인 통속 정치소설이라야 제격일 이 소설은, 박정희체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워낙 읽은 지 오래여서 기억이 가물 하지만 줄거리는 제법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 소설은 박정희체제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꿈꾸는 지하전위조직의 활동을 다루고 있다. 안타깝게도 소설의 결말에서 주인공은 혁명을 성사시키려는 거사 직전 정체가 들통나 사형을 당한다. 조총련계의 사회주의자였던 이회성은 소설을 쓰는데 충분한 자료를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짐작컨대 그의 소설은 남민전이나 통혁당 사건에서 몇 가지 소재를 얻고 일본 언론 매체를 통해 알게된 남한의 정치체제에 그 나름의 상상을 교직하였을 것이다. 그 소설에는 조금 엉뚱한데도 있다. 주인공인 혁명가의 모습은 어딘지 박정희의 모호한 정치적 정체성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황당한 공상적인 정치소설을 싸구려 대중소설이라고 간단히 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득 “과거사 청산”의 시대에 우리가 직면한 기억의 과제를 생각하면 이 소설에서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지하고 엄격한 진실의 보고서보다 이 공상적인 정치소설이 더 큰 진실을 발언하는 것 말이다.

<당대비평> 겨울호에 기고한 글. 며칠을 끙끙대며 썼다. 기고하는 저널의 편집위원인데다 그 저널을 대표하는 원칙을 비판하는 글이어서 매우 부담이 컸다. 가능하면 게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아마 최근 쓴 글 가운데 가장 쓰고 지우길 많이 한 글이지 않을까 싶다. 털고나니 후련하다. !

“탈냉전 민주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지금, 우리는 “과거사 청산”이라는 과제에 직면했다. 그를 생각할 때, 이 소설은 정확한 조사와 기록을 통한 진실의 규명보다 더 올바르고 진정한 “청산의 실천”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과거사청산은 대충 지난 수십년 간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보수 세력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반공주의와 국가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려는 민주주의의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이데올로기 비판으로서의 과거사 청산을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작동시킨다. 과거의 정치체제 특히 박정희체제란 질서와 안정을 내세웠지만 국민을 항상적인 내전과 공포의 상태로 국민을 몰아넣고 사회에 대한 여하한 비판도 모두 반역과 체제전복으로 처분하는 “죽임의 정치체제”였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탈냉전의 시대, 민주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계몽된” 시민으로서 우리들은 더 이상 이런 정치 체제를 용인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반공주의와 국가주의로 대표되는 반민주적인 이데올로기를 비판해야 한다. 반공주의와 국가주의란 국가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허위적인 환상이다. 우리는 파시즘적인 지배 세력의 정치적인 이해를 은폐했던 반공주의와 국가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인 허구의 뒤편에 숨겨진 진실, 고문과 살인, 반인륜적인 삶의 존엄의 파괴를 폭로하고 고발하여야 한다. 반공주의와 국가주의 그리고 여전히 이에 의탁한 채 자신의 힘을 유지하고 있는 정치세력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사 청산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투쟁이 필요한 것이다. 질서와 안정, 번영과 조국근대화? 그것의 실질은 잔인무도한 국가의 폭력과 물샐틈없는 국민의 감시와 공포였다.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과 피해를 조사?그들에게 응분의 보상을 제공하고 온당한 복권의 기회를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어야 한다. 이는 어떤 위협을 무릅쓰고 관철시켜야할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과거사 청산이 위와 같은 논리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라는 것 역시 굽힘없이 주장해야 할 것이다. 송두율 교수의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또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비전향장기수의 민주화 운동으로의 인정에 관련한 파문에서 드러나듯이, 우리는 극우보수세력의 위협 못지 않은 자유주의적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듯이 보인다. 게다가 우리는 탈냉전 시대의 민주주의란 말을 무색하게 할 만큼 소심하고 냉전 시대의 유령에 시달린다. 시민사회를 소외시킨 국가권력, 시민사회의 주권과 이해를 매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민사회를 대신하여 사회적 삶의 내용을 결정하는 국가, 그리고 그런 국가가 존재하는 한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 전체주의적인 폭력으로서의 정치적인 억압과 살인. 이런 시민사회-국가의 모델에 얽매여 있는 한 우리는 과거사 청산을 위한 결정적인 몸짓에 결코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할 것이다. 이런 자유주의적인 관점의 정치적인 기획으로 진정한 민주주의를 전유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혁당은 무엇인가, 통혁당은 무엇인가, 남민전은 무엇인가, 또한 다른 수많은 정치조직의 투사들은 무엇인가. 그들을 국가 폭력으로 고통받은 무고한 시민으로 환원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그들의 삶은 모두 자유주의적인 민주주의의 틀에 적합한 삶, 단지 국가폭력의 피해자로서의 삶으로 환원되어도 좋은 것일까. 그들의 정치적 삶의 실체, 그들이 확신했고 실천했던 정치적인 삶의 내용은 함구되어도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면 {금단의 땅}이란 소설은 더욱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그 소설 역시 중앙정보부와 경찰, 군대 그리고 국가감시기구의 위협과 폭력을 폭로한다. 그렇지만 그 소설의 진정한 이야기는 혁명가들의 정치적인 삶이다. 그들의 정치적 삶이란 분명하다. 그들이 박정희체제를 타도하고 건설하려 했던 미래 사회의 청사진, 이를 이루기 위해 작성했던 그들의 섬세한 혁명의 전략. 우리가 그것을 지지하고 인정하느냐의 여부와 관련 없이 우리는 그것이 그들의 정치적인 삶의 실질이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 그것은 과거사 청산에서 마주하는 피해자들의 표정 없는 얼굴과 전연 다르다. 그 소설의 허구적인 주인공들은, 현재에 이르러 민주화 운동이자 국가폭력의 피해라고 불리는 애매한 “추상적인 삶”, 그것이 비워내는 정치적인 실질을 보여준다. 그 소설이 민주화운동의 투사, 국가폭력의 피해자에게 어떤 충분한 위안을 마련해줄 수 있을까. 그렇지만 그 소설은 적어도 성공적인 기억을 실천한다. 적어도 우리가 표준적인 정신분석학이 가르쳐주는 교훈을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정신분석학은 기억이란 것이 상징적인 질서와 화해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걸러진 과거에의 의식이 아님을 극구 강조한다. 적어도 기억이란 것이 견딜 수 없는 감정적인 압력과 불쾌를 겪으면서 외상적인 과거와 만나는 일이라면 그것은 자신의 상징적인 세계를 뒤흔드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 때의 기억이란 잊혀진 일을 의식 속에 되살려내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진 기억을 위협하는 과거의 공포와 경악을 체험하는 일이다. 그것은 “기억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의 상징적인 회로를 무너뜨리는 만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상할 수 있는 비판, 과거사 청산은 특별한 정치활동을 했던 자들뿐 아니라 광범한 시민들까지 지배했던 적나라한 국가폭력을 극복하는 것이라는 “한계 설정”에 수긍할 수 없다. 그러한 한계 설정은 곧 과거사청산의 범위와 방식을 한정하는 것을 넘어 과거사 청산이 지닌 정치적인 정체성 자체를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정치와 정치적인 것 그리고 민주주의
클로드 르포르가 말한 “정치(the politics)”와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의 구분을 참조하여 말한다면, 우리는 민주주의란 것이 정치로 결코 환원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말하는 “정치”란 경제적인 제도나 문화적인 관행처럼 사회를 구성하는 하위적인 영역 혹은 체계 가운데 하나를 가리킨다. “정치적인 것”이란 거칠게 요약하자면 정치와 경제, 문화 등의 하위 영역이나 체계로 구성된 사회, 바로 그 사회를 구조화하는 원리를 결정하는 몸짓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정치로서의 민주주의, 즉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 투표와 선거의 자유 따위와 구분해야할 것이다. 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실천하려했던 “좌익용공세력”의 활동, 그들의 실질적인 정치적인 삶을 표백시켜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인 삶의 내용을 비워낸 채 그들을 “정치” 즉 형식적인 제도와 절차로 환원된 민주주의 안에 놓인 무력한 존재로 전락시키고 말 것이다. 앞의 도식대로 말하자면 우리는 “정치의 주체”와 “정치적인 것의 주체(우리의 표현대로라면 민주주의의 주체)”를 구분해야 한다. 유신헌법을 지지하고 반공법을 준수한 정치적인 공동체 안의 시민은 정치의 주체이다. 여당인 유신공화당을 비판한 야당과 그들에게 투표한 시민 역시 정치의 주체이다. “좌익용공세력”도 물론 정치의 주체이다. 법률적으로 규정된 범죄자로서 재판을 받고 정치적인 반대파란 이름으로 알려졌다는 점에서 그들은 정치의 주체이다. 그러나 “좌익용공세력”은 정치적인 게임 구조 안에서 지배집단과 대칭적인 관계에 놓인 그런 주체인가. 당연히 아니다. 그들은 정치와 다른 하위체계들 사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조직하는 사건을 실천하려 했다는 점에서 정치를 넘어서는 공간에 속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짓궂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박정희체제의 한국적 민주주의 혹은 민족적 민주주의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위반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가장 순수하게 실현하는 형태가 아니었을까. 박정희체제는 정치가 정치를 기율하는 정치체제의 공간으로 정의되어야할 것이다. 박정희체제는 유신헌법을 제정하고 허수아비 정당을 결성하고 숱한 정치적인 결정과 제도를 통해 정치를 가득 채웠다. 박정희체제는 자유민주주의의 바보같은 원칙 즉 “정치는 정치이다”라는 동어반복적인 형식논리를 철저히 따른 체제였다. 따라서 박정희체제의 민족적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충분히 민주주의적인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정치적인 것을 사회의 하위체계인 정치로 환원함으로써 정치를 물신화한다. 자유민주주주의 정치적인 주체란 자본주의적인 상품관계 안에 놓인 물신적 주체처럼 1인 1표의 투표권이라는 정치적인 권리의 물신주의에 빠져든 주체이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를 구조화하는 원리를 변화시키는 정치적인 행위와 하위체계인 정치적인 장 안에서 벌어지는 형식적인 정치적인 활동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박정희체제는 진정 자유민주주의적이다. 박정희체제는 정치를 정치로서 즉 악무한에 가까운 자기반영적인 순환의 한계 안에 가두는 체제였기 때문이다. 박정희체제의 정치를 특징짓는 것은 무엇보다 숱한 헌법의 개정(“유신 헌법”)과 법률의 선포(긴급조치법을 위시한 수많은 특별법과 정치적인 포고, 칙령)에 있었던 것 아닐까. 그리고 수많은 정치적인 제도와 관행을 고안하고 복잡한 관료제를 실행함으로써 정치를 더없이 정치의 하위체계 안에 합리화시켰던 것 아닐까.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박정희체제는 완벽하게 비민주적인 정치적 권력이었다. 이는 “정치적인 것”의 공간, 즉 하위체계로서 정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공간인 “정치적인 것”의 공간을 질식시켰기 때문이다. 박정희체제가 수많은 자유민주주의적인 기본권을 제한하였다는 것, 자유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정당한 정치적 참여와 대표의 절차, 관행을 부정했다는 이유에서 비민주주의적인 체제였던 것은 아니다. 박정희체제의 특성은 정치와 “정치적인 것” 사이의 단락(短絡), 즉 하위체계로서의 정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정치적인 것”의 공간, 근본적인 사회적인 협약이 벌어질 수 있는 공간을 철저하게 가로막았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박정희체제가 불철저한 자유민주주의였다는 것, 충분한 법치국가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될 것이다. 박정희체제의 유산에서 벗어나는 민주주의의 기획이 고작 자유민주주의의 완성, 시민사회와 국가의 정상적인 관계를 정립하는 것으로 머물러서는 안된다. 정치 안에 더 많은 민주주의적 법률을 심어놓고 더 많은 민주주의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민주화가 축소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파시즘적인 형태로 정치를 정치의 한계 안에 가두었던 박정희체제의 논리를 단순히 뒤집는 것에 불과하다. 박정희체제의 파시즘적인 특성은 적나라하고 야수적인 국가 폭력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박정희체제의 파시즘적인 특성은 하위영역으로서의 “정치 안에서의 정치”를 벗어나는 정치, 앞서 말한 대로라면 “정치적인 것”을 개방하는 실천을 배제한데 있다. 따라서 진정한 정치적 행위는 정치의 파괴로 즉 헌정질서의 문란과 정치의 파괴로 몰아붙인 데 있다. 따라서 정치적인 이견과 반대는 곧 정치 자체의 부정 그리고 반사회적, 반국가적인 행위로 규정되었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진정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적인 실천을 행한 주체가 있다면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이름은 “좌경용공세력”이다.
정치와 경제의 이분법을 넘어, 강제와 동의를 넘어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박정희체제의 또 다른 결정적인 특성을 발견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박정희체제를 정치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장애물인 정치와 경제의 도착적인 관계이다. 박정희체제를 둘러싼 숱한 정의와 분석은 바로 이런 정치와 경제의 도착적인 관계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박정희체제에 대한 비판의 자유주의적 논리가 어쩔 수 없이 갇히고 마는 불가피한 논리적 궁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조국 근대화와 한강의 기적의 주역으로서의 박정희체제와 폭압적인 정치권력으로서의 박정희체제 사이의 관계이다. 조갑제와 이인화를 비롯한 극우보수적인 이데올로그는 차치하고서라도 범박한 민중의 여론은 경제적인 근대화의 성과에 관한 한 박정희체제의 업적을 인정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좇는다. 가난을 숙명처럼 알고있던 국민에게 하면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안겨준 체제, 보릿고개의 빈궁을 넘어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던 국가를 중진국의 대열에 올려놓은 체제, 아무런 자원도 갖지 않은 나라에서 수입대체 산업화와 수출 주도의 공업화로 세계가 경악할 경제적인 성장을 이룩한 체제. 박정희체제를 항상 따라다니는 이같은 시중의 상식은 박정희체제의 연루자들이나 숭배자들에게 국한된 신화적인 믿음이 아니다. 이는 박정희체제의 비판과 극복을 위한 논리 속에서 그리고 바로 현존하는 정치의 인식의 지평 안에 끈덕지게 따라다니는 신화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박정희체제를 둘러싼 논란도 바로 이 언저리에서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박정희체제를 정의하기 위해 제시된 수많은 정치학, 경제학 분야의 유사과학적인 개념은 앞서 든 신화적인 믿음을 공고히 한다. 이미 박정희체제를 정의하기 위해 과대성장국가, 개발독재, 발전국가, 국가주의적 근대화수동혁명체제, 관료적 귄위주의론 등 여러 가지 개념들이 제시되어왔다. 이러한 개념들은 모두 암묵적인 논리로서 정치-경제의 분리와 두 하위체계의 긴장을 가정한다. 아마 이런 박정희체제의 인식론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근 출간된 {개발독재와 박정희시대}에 실린 이병천의 말일 것이다.
“예컨대 박정희시대의 개발과 독재, 경제기적과 정치억압 사이에 과연 어떤 관련이 있는지, 나아가 한국 모더니티의 역사에서 개발독재와 민주화운동은 각기 어떻게 자리매김되어야 하는지 하는 기본문제에 대해서조차 본격적이고 충분한 학술적 토론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박정희시대의 성취를 애써 외면하는 ‘근본주의적 초비판’도 물론 문제지만 냉전 초국가주의·돌진주의의 위험성을 망각하는 ‘무반성적 승리주의’, 미성숙한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에 찬물을 끼얹는 박정희 우상화 담론이야말로 탈냉전 민주화시대 박정희 바로보기의 최대의 장애물이다.”
그는 박정희체제에 대한 보다 성숙한 인식이란 이름으로 개발과 독재, 경제와 정치를 대립시킨다. 한국자본주의 성격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비판적인 정치경제학자였던 그가 정치의 근본적인 우위라는 “정치경제학 비판”의 공리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만약 그것을 알고있지만 지금엔 그것을 부정하게 되었다면 그는 그런 입장과 결별하게 된 이유를 알려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어쨌든 위의 짧은 인용 글에서 보듯이 그는 “근본주의적 초비판”이란 이름으로 박정희체제의 정치적인 정체성을 비판하려는 입장을 극구 깎아내리고 있다. 물론 그는 ‘미성숙한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에 찬물을 끼얹는 박정희 우상화 담론’에 관해서도 비판한다. 그러나 박정희라는 정치지도자에 관한 우상화담론의 핵심이 바로 박정희라는 전직 대통령을 흠결 없는 영웅으로 이상화하는 성인전(聖人傳)적인 신화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정치와 경제의 구분 그 자체에 있는 것 아닐까. 그런 점에서 ‘근본주의적 초비판’이라고 그가 부른 입장은 ‘박정희 우상화 담론’과 대립적인 담론이기는커녕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조건 아닐까. 즉 탁월한 경제적인 성과를 이뤄낸 체제였지만 군사독재라는 비민주적인 정치체제라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논리야말로 근본주의적 초비판이든 우상화담론이든 대립적이기는커녕 상호보완적인 두 담론(?)의 조건 아니었을까. 이런 점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성숙과 시민사회의 복원을 주장하면서 박정희체제를 비판하는 자유주의적인 입장과 박정희체제의 경제적인 기적과 성과를 예찬하는 입장 사이의 유사성을 비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주목할 만한 비판은 이광일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 체제로의 이행이라는 변화의 흐름 안에서 박정희체제를 둘러싼 논쟁을 해석할 필요가 있음을 분명하게 밝혀준다.
“가장 일반화되어있는 박정권에 대한 다른 하나의 평가는 경제발전의 업적은 인정하지만 자유주의적 기본권리 등을 억압하였기 때문에 정치적인 측면에서 비판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평가는 경제(사회)와 정치를 서로 외재적으로(externally) 설정하고 양자의 내적 관계에 대해서는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고 있다. …… ‘국가 대 사회’라는 자유주의적 영합게임의 틀을 전제로 하는 이 입장은 그동안 제기된 모든 문제의 주요 근원이 국가의 권위주의적 개입에 기인하므로 국가의 경제개입 배제 및 시장경쟁 원리의 충실한 관철이 보장된다면 문제는 자연히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입장은 근대화론에 기반한 ‘기승전결론’을 신자유주의논리와 접합하여 수용한 ‘신근대화론’으로, 이제 제2의 경제도약을 기반으로 ‘정치적 민주화’만 공고화시키면 21세기에는 ‘세계 속의 한국(Korea in the World)을 구현할 수 있다는 논리를 함축하고 있다.”
앞의 인용문에서 단언하는 것처럼, 박정희체제의 정치적 과오와 경제적 공적을 분간하고 둘 사이에 균형잡힌 분석을 하자는 주장은 거부되어야 한다. 물론 이런 주장이 박정희체제 비판의 공간을 점유하게 된데에는 무엇보다 ‘자본주의 비판’의 위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체라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국가의 형태를 한국 자본주의사회구성체의 맥락으로부터 떼어낼 때 결국 우리는 정치와 경제를 분리시킬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정치와 경제의 외재성을 가정하는 논리를 극복하고 박정희체제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기획을 되살려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넘어가기 앞서 잠시 한가지를 지적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이는 박정희체제의 이데올로기 비판의 공간이 “강제였는가 동의였는가, 파퓰리즘이었나 합의독재였는가, 기동전이었는가 진지전이었는가” 등을 묻는 기존의 논의에 대해서이다. 박정희체제가 강권적인 국가폭력의 체제였는가 아니면 국민의 동의와 내면적인 동일시에 바탕하고 있었는가를 둘러싼 논쟁은, 박정희체제 비판의 기획을 계속하여 정치적인 빈곤에 허덕이게 만들어버린다. 비록 그런 논의에 내장되어있던 비판적인 함의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박정희체제 비판을 빈곤한 자유주의적 주권의 모델 안에 감금한다는 폐해에 견주면 무시할만한 것이다. 앞의 논의는 주권이라는 법의 모델 혹은 주권적인 개인의 계약으로서의 국가라는 모델을 보편화시킨다. 그 결과 박정희체제와 그 지배대상이었던 민중을 모두 정치적 주권성(sovereignty)으로 간단히 환원되어버린다. “인민은 어떻게 국가권력에 주권을 양도하였는가”라는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정초적인 환상은 언제나 국가권력을 강제와 동의, 합의와 폭력이라는 틀 안에 각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의 주권적인 법의 모델은 국가권력이 얼마나 강제와 동의였는지를 측정하느라 자신의 모든 정력을 소모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 비판의 공간을 밀폐시켜 버린다. 국가의 폭력과 일상의 폭력을 함께 분석하여야 한다는 정치 비판의 확장과 심화는,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정치비판을 자유주의적인 지평으로 계속 뒷걸음질치게 만드는 유혹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국가권력이 얼마나 강제였고 동의였는가, 합의였고 폭력이었는가를 묻는 물음은, 해체주의적인 말장난을 하자면 자유주의의 국가권력을 둘러싼 환상을 유지시켜주는 소급적인 환상, 즉 주권성의 신화를 대리보충(supplement)하는 수행적인 언표에 불과하다. 요컨대 그것은 박정희체제가 얼마나 전체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였는가를 분석하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박정희체제를 둘러싼 향수와 선망이 얼마만큼의 합의였고 동의였는지을 분석하기 위해 그토록 힘을 쏟을 필요가 있을까. 과연 그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차라리 그것은 모두 상식적으로 모두 아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뿐이라고 조롱받아야하지 않을까.
조국 근대화에서 민생까지 – 박정희체제의 생권력
우리는 박정희체제 비판을 지금의 민주주의의 기획과 결합시키기 위해 박정희체제의 정치경제학비판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박정희 향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자생적인 이데올로기를 분석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박정희체제에 대한 비판은 여러 갈래이다. 박정희체제의 정치적인 이념, 유신헌법과 국민교육헌장, 훈시와 포고, 담화문, 그리고 새마을노래의 가사 등에 등장하는 공식적인 교의로서의 박정희 이데올로기가 있다. 그것은 형식화된 지식, 관념, 교의 등으로서의 이데올로기이다. 지식인들은 주로 이를 겨냥하여 박정희체제를 비판한다. 다음으로 물질화된 이데올로기, 즉 학교, 가족, 경찰, 감옥, 군사제도 안에서 실행되는 관행, 의례와 캠페인 등이 있다 이를테면 “새마을운동”은 알튀세르 식으로 말하자면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의 원형이다. 이런 물질적인 이데올로기로서의 박정희 이데올로기는 박정희 향수론에 물든 극우보수세력들이 주로 의존하는 관점이다. 이들의 관점은 정확히 물신숭배적이다. 극우보수세력의 박정희 향수의 특성은 어느 철학자의 말을 비틀어 사용하자면 “정당화 담론”이 아니라 “우상화담론”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상화담론인 이유는 박정희체제에 대한 합리적인 이성을 통한 이해가 아니라 병적인 열광과 맹목적인 이해관심에 물들어있다는 뜻에서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물신숭배란 엄격한 뜻에서 진정으로 우상화이다. 우상화로서의 이데올로기는 바로 이데올로기의 물질적 장치로부터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즉 박정희체제의 의례적인 실천, 관행, 기념물(경부고속도록, 포항제철, 구미수출자유공단 등)로부터 그리고 그것이 각인해 놓은 신체적인 기억, 삶의 활력과 열정이라는 정서적인 힘의 반복충동. 극우보수세력은 그런 점에서 박정희체제의 “이념”에 호소하지 않는다. 조갑제와 이인화를 비롯한 박정희 “우상화담론”의 열성적 이데올로그는 그런 점에서 한결같다. 그들은 박정희체제를 둘러싼 정치적인 논쟁 자체를 불신하고 혐오한다. 박정희체제를 정당화하는 것 자체가 자유주의적인 수다, 공허한 민주주의적인 일탈로 박정희체제의 삶의 정수를 배반하는 지식인적인 불평에 동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이는 모든 파시즘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또 한가지 이데올로기적인 차원이 있다. 그것은 박정희체제에 관한 자생적인 이데올로기이다. 그것은 거칠게 말하자면 국민의 기억 안에 담겨있다. 과거사 청산을 둘러싼 논의에 대해 나타나는 전반적인 염증과 혐오는 민생에 관해서나 신경쓰라는 것이었다. 참여정부의 4대개혁입법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격 역시 민생정치였다. 열린우리당의 보수적인 분파들이 국가보안법폐지와 과거사청산을 비롯한 주요한 현안에 대하여 거리를 두기 위해 동원하는 논리 역시 민생 우위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민생의 이데올로기를 우리는 바로 자생적인 이데올로기의 표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박정희체제의 경제적인 업적에 대한 퇴행적인 향수가 아니다. 차라리 박정희체제라는 권력에 대하여 맺는 혹은 그 체제가 권력 일반에 대하여 맺도록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적 관계의 모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수 있다. 우리가 박정희체제의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박정희체제의 권력 비판을 완결할 수 없다고 말할 때 염두에 두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박정희체제라는 특수한 자본주의에 대한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중단해서는 안된다. 박정희체제가 어떻게 주체성을 만들어놓았는지 분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근대 자본주의의 독특한 생권력(biopower)으로서 박정희체제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셀 푸코는 그의 생애 후반부에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계보를 추적하며 근대자본주의의 권력에 대한 분석을 확장하려 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사후 그의 이론적인 작업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1976년에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이뤄진 강의를 기록한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이다. 이 글에서 푸코는 나치권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분석을 제시한다.
“나치사회의 특이한 점은 생권력과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주권이 사회전체에 확산된 사회라는 점이다. 시민을 마음대로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한을 국가에게 허용하는 고전적이며 구시대적인 메커니즘과 규율 및 조절 주변에 형성된 새로운 메커니즘, 즉 생권력이 메커니즘이 정확하게 한데 합쳐져있다. 그래서 나치국가는 자신이 정돈하고 보호하고 보증하고 생물학적으로 배양하는 삶의 장과, 누구든지-타민족이 아니라 자기고유의 국민들까지도-죽일 수 있는 주권을 공존시킨 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위에서 인용한 푸코의 글을 정확히 박정희체제에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박정희체제야말로 생권력의 화신이다. 박정희는 국민이 따뜻한 쌀밥을 배불리 먹고 기와집에서 살게 하는 꿈을 꾸었던 도착적인 모습의 근대 군주였다. 그가 도착적이었던 것은 파시즘의 핵심적인 특성이 그렇듯이 살리기 위해 마음껏 죽였다는 점에 있다. 즉 삶을 위해 죽음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아리안 인종의 삶, 독일 국민의 생명을 위해 생식과 진화라는 생물학적인 논리(우생학과 사회위생학 등)를 동원했던 나치즘은 생명, 삶에 미친 권력이었다. 이처럼 박정희체제도 역시 국가의 부강과 국민의 안녕을 위해 마음껏 죽일 수 있었다. 긴급조치와 반공법으로 상징되는 죽일 수 있는 군주적 권력은 번영과 행복이라는 근대적 생권력과 함께 회전하였다. 알다시피 박정희는 평생동안 자신이 복지사회를 위해 매진하고 있다고 믿었다. 예컨대 유신체제의 수립 직후 박정희는 이렇게 강변하였다.
“우리가 남보다 뒤지지 않고 앞서 나가려면 남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고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하겠으며 능률을 극대화하고 국력을 배양하여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야할 것이다. 그래야만 비로서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고, 그 터전 위에서 평화통일을 추구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하자는 것이 10월유신인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체제는 단순히 억압적인 정치체제로도 후후발 산업화 국가의 효율적인 경제체제로도 환원할 수 없는 독특한 권력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국민을 순수한 상태의 삶, 즉 건강과 생명, 행복이라는 상태로 환원하는 권력이었다. 따라서 나치즘에 있어 유태인의 학살이 순수한 삶의 형상으로 둔갑한 독일 국민의 진화와 안녕을 위한 것이었다면 박정희체제는 그에 대응하는 인종주의를 가지고 있었다. 근대 사회에서 인종주의란 지배받는 대상으로서의 국민을 인구(population)로 치환하면서 탄생한 정치적인 테크놀로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인종이란 건강과 장수, 안전과 행복을 위해 보호받아야할 정상인과 병자, 범죄자, 정신병자로 분류된 주민, 인구의 종이기도 하고, 인구의 조절과 관리를 위해 구분되는 남성과 여성,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이기도 하며, 유전적인 기질과 특성에 따라 구분된 좁은 의미에서의 인종적인 종(類)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종주의란 특별한 이념도 아니고 정책도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자신의 울타리 안에 통치하는 자와 통치받는 자 사이에 설정한 지배의 합리성이며 이를 실현하는 다양한 기술과 제도, 관행의 복합체일 뿐이다. 그렇다면 박정희체제의 인종주의란 무엇일까. 박정희체제가 생물학적인 종(species)으로서의 인종, 생명 혹은 삶의 주체로서의 국민을 상대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지금 우리에게 상기되는 박정희체제란 삶, 생명을 돌보는 권력의 형상이다. 배고픔, 질병, 무지, 실업, 부패, 게으름, 이 모든 삶의 위협과 박정희체제는 투쟁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극악한 죽임의 체제였던 박정희체제야말로 국민의 삶을 극대화하려고 했던 권력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새마을운동과 유신체제가 같은 동전의 이면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근면, 자립, 협동을 통해 보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하는 국민과 부패, 자조, 게으름에 빠진 국민을 구분하며 훈육과 통제를 실행했던 새마을운동. 따라서 새마을운동이야말로 원형적인 생권력의 테크놀로지가 아닐까. 그렇다면 박정희체제의 유태인은 누구였을까. 물론 좌경용공세력 혹은 더 확대하자면 북한이었을 것이다. 박정희체제의 반공주의와 반북주의가 공산주의체제에 대한 이념적인 부정으로 환원하는 것은 전연 오해일 것이다. 권력이 마음껏 유린할 수 있고 처치할 수 있는 비정치적인 생명으로 환원된 좌경용공세력과 간첩. 이들이야말로 아감벤이 말했던 저 유명한 “호모 사체르(homo sacer)”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정치적인 공동체 안에 더 이상 속하지 않은 “벌거벗은 삶(bare life)”, 순수한 생명으로 환원된 대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거리낌없이 죽을 수 있었고 죽여야 했다. 삶을 위해 살아가는 국민 그리고 그와 연결된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외부, 그것이야말로 유태인의 세계였고 간첩과 좌경용공세력, 그리고 북한 아니었을까.
박정희체제의 비판에서 신자유주의 비판으로
우리가 박정희체제를 그토록 오랜 동안 극복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 그는 애꿎은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살해하고 고문한 독재자였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았는가. 그는 우리를 빈곤과 질병, 기아와 부패로부터 구제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박정희체제를 둘러싼 이런 직접적인 향수에 박정희체제는 가둬져 있지 않다. 민생의 이데올로기는 박정희를 더 이상 언급하지 않지만 박정희체제를 재생산하는 자생적인 이데올로기이다. 민생의 이데올로기란 자신의 행복과 안전을 돌보는 자기(the self)가 되어버린 국민적 주체의 에토스이다. 민생(民生)이란 이름으로 압축되는 인민의 삶, 나치즘의 용어를 빌자면 민족의 신체(Volksk rper), 그것이 박정희체제의 유령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유산이다. 그리고 진중권이 생체권력으로서의 박정희체제가 국민들에게 각인한 바이오코드라고 불렀던 바로 그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권의 이름으로, 시민사회란 이름으로 박정희체제를 비판하는 것이 왜 불충분하고 불가능한지 자각해야 한다. 우리는 인권의 이름으로 장식된 추상적인 민주주의와 삶의 권리란 내용으로 충만한 “한국적 민주주의” 사이에서 오갈 데 없이 엉거주춤 서있다. 그 불안한 표류의 자리에서 박정희체제의 유령은 죽지 않고 살아 날뛴다. 민생의 이데올로기에 갇힌 주체는 바로 박정희체제의 유령에 홀린 주체이다. 박정희체제는 자신의 삶을 돌보는 자기에의 배려와 국민의 삶을 돌보는 권력의 행사를 일체화시켰다. 그리고 그런 권력의 이데올로기가 바로 민생의 이데올로기이다.
지금 우리가 무력하게 휩쓸려 들어가고 있는 전지구적인 자본주의체제는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내고 있다. 포괄적인 집합적 삶으로서의 인구, 즉 주민으로서의 삶을 인구로서의 삶을 돌보는 권력은 퇴장하고 있다. 포드주의적인 복지국가의 퇴락이 그것을 보여준다. 설령 존재한다하더라도 그것은 점차 쇠퇴하고 있다. 그 자리를 메우는 것은 바로 자율과 책임의 개인이다. 우리는 이것이 신자유주의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자본주의 권력이 삶의 권력을 작동시키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는 간단히 말하자면 사회와 경제의 구분을 삭제하고 모든 사회적인 삶의 행위를 경제적인 합리성의 모델에 따라 정의하고 조직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더 이상 인구는 전과 같은 국민적 주체가 아니라 스스로를 책임지는 자율적인 시민, 기업가적인 개인과 그들의 네트워크로 된다. 한국사회에서 인플레처럼 사용되고 있는 시민사회란 용어야말로 우리 시대의 인구를 가리킨다 할 수 있다. 새로운 권력은 전보다 더 생권력을 극대화시키고 전면화한다. 노동력과 임금은 인적 자원으로 둔갑하고, 사회적 보장과 공중보건, 고용, 주거, 교육정책의 대상으로서의 국민은 “생산적인 복지를 책임지는 개인”, “능력개발에 애쓰는 자기”, “자유계약자이자 인적 자본으로서 자신을 책임지는 기업가적 노동자”, “자기주도적인 평생학습에 진력하는 나”로 바뀐다. 이는 모두 자신의 생명, 삶을 위해 애쓰는 새로운 자본주의적인 주체이다. 국민의 정부 이후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진행된 일련의 한국 사회의 구조조정은 바로 박정희체제의 권력을 조정하고 새로운 자본주의 체제의 권력을 조형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이 탈냉전 민주화 시대의 권력이 박정희체제와 단절한 체제라는 믿음은 자유주의자들의 정치적 환상 속에서나 가능한 것일 뿐이다. 박정희체제는 생권력의 주체로서 국민을 주조하였고 이는 지금에도 여전히 잔존하고 또한 배가되고 있다.
따라서 박정희체제의 비판이 현재의 비판을 위한 기획이라는 모두가 동의하는 입장을 제대로 실현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신자유주의적인 체제로서의 한국 자본주의 비판을 우회할 수 없다. 물론 그것은 신자유주의 비판을 더 많은 사유화, 더 많은 탈규제, 더 많은 고용유연화를 비판하는 것으로 한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우리는 이런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으로 인해 초래된 실업과 빈곤, 삶의 위기를 겪고 있고 또한 충분히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이라면 굳이 신자유주의란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다. 그것은 그저 언제나 존재하던 반민중적인 정책, 자본의 전략의 한 종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인 이행이란 곧 한국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변형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권력을 형성한다. 우리가 박정희체제 비판에서 또한 과거사 청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바로 오랜 동안 건망증에 빠진 채 있고있던 자본주의 비판의 기획을 되살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인 개혁이 정점에 달해있는 지금 박정희체제의 비판은 자유주의적인 사유의 유혹에 굴복하고 변화된 체제가 요구하는 주체의 형상을 축복하는 늪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반대의 방향으로 달려갈 수도 있다. 박정희체제의 국민을 자본주의의 근대적인 주체의 계보학 속에서 사유함으로써 우리는 새로운 사유의 씨앗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탈냉전 민주화가 고무하는 관용과 존중의 민주주의, 자유자본주의적인 민주주의를 넘어 우리의 사회적 삶의 세계를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민주주의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박정희체제의 비판이 어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인가를 잊는다면 잃는 것은 민주주의 그 자체가 될 것이다. ■

포스트정치시대의 정치학 – 미국식 민주주의여 영원하라


마침내 미 대선이 끝났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부시가 사실상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받은 충격 가운데 하나는 아마 뜻밖의 뒤늦은 자각이었을 것이다. 그 자각이란 더 이상 정치적인 사건으로서의 어떤 내용도 담고있지 않은 포스트정치적인 이벤트를 두고, 순진한 청맹과니처럼 진정한 정치적 결정의 행위가 이뤄지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시의 당선에서 기분 나쁘고 우울한 것은 가장 반동적인 정치적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는 매파가 당선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저 그런 것이라면 전보다 더 열심히 투쟁하면 될 뿐이다. 그가 4년 동안 연장하는데 성공한 위임받은 주권을 제한하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평화의 비둘기를 날리고 더 많은 저항의 장미꽃을 던지면 된다. 그리고 부시의 당선이 모호한 정치적, 군사적, 사회적 공약으로 일관했던 케리의 당선보다 훨씬 유익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어쩌면 “요새 미국”의 악몽에 맞서 싸울 새로운 정치적인 연합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정작 우리를 정작 슬프게 하는 것은 우리가 바보처럼 미국 대선을 정치적 사건으로 믿었다는 것, 마치 진정한 사회적 운명을 결정하는 정치적인 사건인 양 천치처럼 믿어버렸다는 었다는 깨달음 때문에 비롯된다.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 것은 레이건 정권이래 거의 상식처럼 알려져 있던 도덕적 다수파(moral majority)의 위력에 대해 우리가 왜 기억상실에 빠졌었냐는 것이며, 미국의 민주주의가 감정과 관습의 민주주의였다는 점, 우리 시대의 정치가 문화 전쟁(culture wars)로 끝없이 번역되고 있음을 왜 우리가 까맣게 잊은 척 했냐는 것이다.
아마 그런 착각에 빠지게 된 것은 9.11 테러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미국이 9.11 테러를 통해 마치 진지하게 정치적 공간에 참여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버렸다. 그렇지만 그것은 미국의 바깥, 특히 다극적인 체제를 유지하고 사회주의 붕괴이후 새로운 유라시아적 제국을 건설하려는 유럽 국가의 환상이거나 아니면 동북 아시아에 속한 몇몇 사회가 자기의 개꿈을 제멋대로 투영한 환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알다시피 미국이 걱정하는 것은 침략과 점령이라는 정치적인 행위가 아니라 여론을 나쁘게 만들 수 있는 약간의 인권적인 문제일 뿐이다. 예컨대 관타나모 기지에 수용된 이라크 병사들에 관한 처우 등. 물론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그리고 잇단 “악의 축” 파문은 세계시민적인 사태이고 전지구적인 정치 의제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는 몇몇 사람의 믿음 속에서 정의된 것일 뿐이다. 우리는 많은 양심적이고 비판적인 세력들이 미국과 다른 주권 국가들 사이에서 협력과 조정을 위한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내길 요구하였다. 그러나 역시 같은 말이지만 그런 필요가 있었다는 우리의 기대와 믿음이 그런 정치적 공간을 상상 속에다 지은 것이지 그런 공간이 현실 속에 있었던 적은 한번도 없으며 미국 역시 진지하게 그에 책임을 지는 정치적인 행위자로 등장한 적은 한번도 없다.
미국은 9. 11 테러 이후 자신을 “비상사태 국가”, “안전 국가”로 자신을 규정하였다. 그것은 전쟁이 더 이상 정치적인 결정의 문제에 해당하지 않음을 선언하였다. 근대 국가에서 국가는 전쟁에 관한 권리를 독점한다. 혹은 오랜 그러나 여전히 올바른 맑스주의의 명제대로 말하자면 국가는 조직화된 폭력이다. 그렇지만 그 때의 폭력과 국가의 관계는 언제나 정치적 공간에 의해 매개된다.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하는 주권을 갖는다는 뜻에서 전쟁은 주권의 결정이다. 따라서 그것은 언제나 주권의 대리인들이 결정해야 하는 문제가 된다. 적어도 우리는 양차 대전까지 참전론과 반전론을 둘러싼 격렬한 갈등이 벌어졌던 의회에서의 시끌벅적한 논쟁을 기억한다. 그러나 이제 미국에서 전쟁은 더 이상 정치적 공간과 상관없는 일이다. 고작해야 미국의 의회가 하는 일이란 대량살상무기가 있었느냐에 대한 조사와 청문회, 전쟁 포로 수용소에서 반인권적인 처우가 있었느냐에 대한 항의를 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9. 11 테러가 우리에게 극명하게 알려준 것은 바로 이 점이다. 미국은 더 이상 국민을 정치적 주권을 지닌 폴리스의 성원으로 상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이란 이제 순전히 생명으로 환원된 삶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실체(substance)를 박탈당하고 순전히 생명의 활동으로 환원된 삶, 9. 11 테러 후의 미국의 권력은 바로 그런 대상을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 벌어지는 대통령 선거가 주권적인 국민이 참여하는 정치적인 행위의 공간이라 상상하는 것은 넌센스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이번 대선에서 9. 11 테러 이후의 이라크 전쟁의 문제가 미국민들의 주요한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을 이유가 없다. 동성애자의 결혼, 배아줄기세포의 의학적인 활용 등을 둘러싼 “사회적 가치의 논쟁”이 미국 유권자(?!)들의 주요한 관심사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를 寬?진짜 중요한 정치적 사안, 즉 전쟁, 부의 분배와 같은 이슈들이 소외되었던 것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될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간단하게나마 9. 11 테러 이후 전쟁은 더 이상 주권적인 정치적인 결정이 아니라 순수한 삶-생명의 보호와 유지를 위한 도구적이고 행정적인 활동으로 환원되었음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탈규제와 구조조정 이후의 경제적인 사안, 고용과 분배의 문제는 어떨까. 더 이상 과거의 사회주의에 머물러서 안된다고 주장하는 블레어가 이끄는 신노동당의 제3의 길처럼, 클린턴 정권 역시 더 이상 미국 민주당의 이상이었던 “위대한 사회(the Great Society)”에 연연하지 않은 신민주당이었음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뉴딜 정책으로 대표되는 풍요와 기회의 나라인 미국적인 꿈을 포기함으로써 20세기의 민주당과 작별을 고한 바 있었다. 아마 그런 전환을 압축하는 핵심적인 사건을 꼽자면 바로 “개인의 책임과 노동기회에 관한 법률”을 수용한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공화당의 압력과 강요로 수용한 것이었긴 하지만 이 법안은 또한 “국민의 부”라는 규범을 포기한 것이란 점에서 충격적인 것이었다. 근대의 자유주의 국가는 경제 정책과 다양한 제도적 절차를 통해 부의 분배를 관리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이 때 국가란 금융과 통화의 관리, 교육, 보건, 주거, 교통, 통신 등의 사회적 서비스의 관리, 직업교육과 훈련, 고용을 통해 주민들의 경제적인 삶을 살펴야 했다. 결국 국가는 주민의 경제적인 삶을 국민의 부라는 이름으로 다루었고 그것은 언제나 정치적인 공간을 통해 매개되어야 했다. 그렇지만 “개인의 책임과 노동기회에 관한 법률”은 그 이름이 상기시켜주듯이 부란 개인의 책임과 자율의 문제일 뿐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국민의 문제로서 정치적 결정에 의해 매개될 필요가 없다. 고작 국가가 해야할 일은 바로 그런 자기 스스로에 대해 책임을 지는 개인이 되도록 후원하는 역할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성애자 결혼이나 배아줄기세포 같은 이슈를 둘러싼 관심과 이라크 전쟁, 실업과 분배 정책에 대한 관심 사이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것은 더 이상 정치적인 주체가 아닌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포스트정치적인 시민, 자기책임의 개인이 참여하는 새로운 미국식 민주주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를 가족적 가치와 기독교 문명의 사명을 외치는 도덕적 다수파 그리고 그들이 대표하는 신보수주의에 의해 미국의 정치적 공간이 왜곡되거나 오염되었다고 한탄해서는 안된다. 신보수주의적인 환상에 현혹 당하지 않았더라면, “계몽된” 이해와 판단을 펼칠 수 있었을 본연의 정치적 공간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거듭 말하지만 지금의 미국식 민주주의는 그런 정치적 공간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여기에서 우리는 이런 현상을 두고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 사이의 구분이 사실상 사라져버렸으며 국가와 시민사회의 구분이 흐릿해져버렸다고 한탄하며 다시 한번 그러한 비판적인 구분을 되살리자고 요구하는 퇴행적인 꿈에 빠져들어선 안될 것이다. 지금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이 정치의 소멸이 아니라 정치의 또 다른 모습으로의 실현, 더 심하게 말하자면 정치의 완성이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이 들 정도로 새로운 모습으로, 정치가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권적인 국민이라는 정치적 주체의 형식으로가 아니라 자신을 책임지고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돌보는 개인이라는 주체성의 형식으로 미국은 새로운 민주주의를 명하?왔다. 그것이 바로 포스트정치적인 정치의 모습이고, 더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 시대의 신자유주의적 정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의 중요한 정치적, 법률적 결정은 과연 어떤 것들인가.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호텔숙박객이 객실 안에서는 오렌지 껍질을 벗겨선 안된다. 버몬트주에서는 물 안에서 숨을 쉬는 것이 법률로 금지되어있다. 뉴저지주에서는 공중들이 모인 앞에서 옷을 벗어선 안된다. 그래서 미국에 의해 자유가 제한되어있는 자유의 후진국이라고 낙인찍힌 나라의 국민들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받는 인상은 한결같다. 놀랍게도 자유민주주의국가인 미국이야말로 질식할 듯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라는 것이다. 일상생활을 둘러싼 수많은 금지와 처벌, 단속 그리고 끊임없이 이를 둘러싼 논쟁과 소동이 벌어지는 나라, 그리고 그것이 정치적인 공간을 채우는 나라. 따라서 미국에서 “자율(autonomy)”과 “책임(responsibility)”의 개인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적인 보수세력에 맞서 자유주의적인 좌파 혹은 진보세력이 내세우는 대안이 “존중(respect)”과 “관용(tolerance)”의 개인이라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식 민주주의는 미국이라는 대륙에서만 서식하는 지역적인 풍토병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그럴 리 없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고 어느 정치학자가 말한 한국의 민주주의가 미국식 민주주의와 다르다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참여정부의 “참여”가 혹시 국민의 주권을 소외시킨 과거의 비민주적 정권을 반성하고 극복하기 위한 아름다운 슬로건이라고 믿지는 않기를. 그 참여란 다름 아닌 정치적인 주체로서의 시민이 아니라 자율과 책임의 개인이기 때문이다. 기업가적 정부의 소비자적인 시민, 우리가 참여정부의 정책에서 마주하는 정치적인 매트릭스는 대개 이런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미국식 민주주의의 가장 나쁜 형태를 충분히 실험하였고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
컬티즌에 기고한 글입니다.

– 슬라보예 지젝의 미국 대선 결과에 관한 글이 떴군요. The Liberal Waterloo (Or, finally some good news from Washington!)이란 제목의 글입니다. 부제인 마침내 온 워싱턴 발 희소식이라는 반어적인 제목에서 암시하듯 부시정권이 제 무덤을 파기 시작한 것이니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조금은 자포자기적인(?) 위안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별 차이도 없고 다른 나라들에겐 더 불리하기까지 했던 멍청한 민주당 케리보다 현실 국제정치의 면에서 훨씬 좋은 자극이 되어줄(?!) 부시의 당선이 외려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 엉뚱하다 싶습니다. 이 잡지에 실린 다른 대선분석글들도 재밌습니다. 참고하시길..

불안의 시대와 주변의 공포

시대의 기분 – 우울과 불안
항우울제가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우울증의 시대는 어느덧 뉘엿뉘엿 저물었다. 알다시피 지금은 “비아그라”의 시대이다. 어디에선가 슬라보예 지젝이 말했듯이 비아그라는 만성성욕항진상태에 잠기도록 우리를 몰아넣는, 기괴한 혹은 물질화된 윤리적인 명령이다. 섹스는 오르가즘의 생리학으로 환원되었고 우리는 더 이상 섹스의 명령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 우리 시대에 쾌락을 포기하는 것보다 더 나쁜 짓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그것은 또한 소비자본주의의 스펙터클이 쉼 없이 쏘아대는 주문(呪文)의 모습이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우리를 찍어 누르고 있는 웰빙 현상은 바로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명령이 지닌 뻑뻑한 위협을 보여준다. 한 알의 푸르스름한 당의정 안에 객관화되어 있는 윤리적인 명령, 그것을 지젝을 쫓아 이야기하자면, 당연히 “즐겨라”일 것이다. 물론 그 즐겨야 한다는 명령은 외부의 어떤 장소를 점유하고 있는 통제자의 목소리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행복과 안녕을 돌보는 자의 보편적 심리학이 되었다. 더불어 자신을 돌보고 변화시키는 자유는 얼굴 없는 명령이 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이 상상하는 구속되지 않는 삶의 상태인 자유(자유에 관한 표준적인 정의처럼 되어버린 이사야 벌린이 <자유론>에서 언급했던 그 자유)는, 이제 실체 없는 강압이 되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얼굴 없는 명령, 목소리 없는 강제. 그런 점에서 불안은 또한 우리 시대의 자유에 부착된 미망(迷妄)이기도 하다. 우울의 시대에 명령은 바깥으로부터 도착했다. 자신이 복종하거나 따라야 할 규범은 외부에서 자신에게 행사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그 외부를 자신 안에 옮겨 넣을 수 있다. 바깥에서 행사되는 명령을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으로 바꾸어내는 장치가 만들어졌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푸코가 말했던 저 유명한 고백(the confession)의 주체나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양심의 주체가 바로 그에 해당될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에게서 우러나는 명령에 따르는 주체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것은 바깥의 명령의 반영이고 그것은 역으로도 그러하다.
그러나 불안이 비롯되는 장소는 따로 없다. 그것은 도처에 있고 또한 어디에도 없다. 그저 불안에 압도당하는 주체만 있을 뿐이다.
“파랑새 증후군”이니 “생존자 증후군(survivor syndrome)”이니 혹은 “노동중독”이니 하는 현상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이 모두는 노동과 상관되어 있다. 20대 초반의 직장인들이 자신이 일하는 직장에 지긋이 눌러있지 못하고 계속하여 자리를 옮기는 증상을 파랑생 증후군이라 부른다. 생존자 증후군이란 끊임없는 구조조정이 끝난 뒤에 자리를 지키게 된 이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불안을 가리킨다. “노동중독”이란 말뜻 그대로이다. 일에 미친 사람이다. 사람들은 일에 몰입하고자 하며, 일을 사랑하고 일을 숭배한다. 이 모두는 불안이다. 노동하는 주체의 모습 역시 우울에서 불안의 궤적을 따라 움직인다. 우리는 이런 변화를 설명할 작은 초상을 그려볼 수 있다. 노동자와 직장인들이 마시던 음료의 변천을 생각해보자. 스트레스와 피로에 찌든 노동자의 모습은 80년대와 더불어 사라지는 듯이 보인다. 그 때까지는 “박카스”와 “우루사”의 시대이다. 피로회복과 자양강장의 시대였고 노동자들에게 문제는 스트레스와 권태라는 우울이었다. 그리고 이는 테일러주의(Taylorism)과 포드주의(Fordism)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잠시 술독을 풀어주는 “컨디션”이 잘 팔리는 시대가 있었다. 90년대였다. 이 때엔 영업과 기획, 마케팅이 중요한 시대였고, 소비자본주의가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권태를 잊고 고역스러운 노동에서 벗어난 기쁨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획과 마케팅, 영업을 위해 술을 마시는 시대였다. 신세대가 등장하였고 틈새시장이니 고객만족이니 하는 용어들이 세상을 휩쓸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가 흔들리고 있었고, 과소비를 푸념하는 목소리가 웅성거리며 들려왔다. 마이카 시대니 배낭여행이니 하는 말들이 이제는 먼 옛날처럼 여기지리만치 소비자본주의는 맹렬하게 삶의 속도를 바꾸었다. 그리고 더 이상 우울에 시달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불안이 바야흐로 세상을 좀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불안이 바야흐로 세상을 좀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외환위기를 거쳐 지금에 접어들었다. 빠르게 바뀌는 제품생산의 주기, 변덕스러운 소비자의 욕구, 걸핏하면 들먹이는 무한경쟁의 전지구적인 개방 그리고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지식의 생산과 소비가 시대의 기분을 바꾸어버렸다. 외환위기와 구조조정이 들이닥친 이후 우리는 노동자와 직장인을 가리키는 표상이 사라진 음료의 시대를 살고 있다. “비타500”이니 하는 웰빙 음료가 이제 시장을 석권한다. 지식기반정보사회라는 개념이 상용어가 되었고 이태백, 삼팔선, 사오정, 오륙도같은 신조어가 세상을 떠다니는 시대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여선 안된다는 주장이 범람하고 안주하고 기생하는 사람보다 변화에 도전하고 변화를 촉진하는 직장인만 필요하다는 주장은 이제 시쳇말이 되었다. 고용없는 성장의 시대에 부와 노동의 관계, 그리고 일과 삶의 관계는 혼란스러워진다. 노동과 일을 둘러싸고 오랜 동안 유지되어왔던 사고의 습관이 바뀌기 시작했다. 변화를 두려워하다 망한 사람들에 관한 우화집인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ꡔ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ꡕ, 이영진 옮김, 진명출판, 2000
같은 책이 장안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구본형, ꡔ익숙한 것과의 결별 – 대량실업시대의 자기 혁명ꡕ, 생각의나무, 1998
이란 서정적인 제목의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 책을 쓴 이는 인문학적인 자기계발서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며 우리 시대의 최고의 경영컨설턴트 겸 윤리학자가 되었다.

시대의 기분, 시대의 인식 – 노동이라는 소실매개자(vanishing mediator)

우리는 이 글에서 우리 시대의 불안한 주체를 다루려 한다. 그러나 그 불안한 주체란 심리적인 문제를 앓는 개인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고 막연한 시대의 감정에 시달리는 사회적인 군상을 가리키는 것 역시 아니다. 불안한 주체란 탈근대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하는 주체를 가리키는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성적인 개인의 태도와 감정이기에 앞서 변화된 자본주의사회에서 살아가는 주체의 모습이다. 기분이라는 감정의 배치는 또한 사회의 물질적 관계의 배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안한 주체란 심리적인 개인이나 집단이 아니라 새로운 자본주의사회의 주체성을 가리키는 초상이다.
이 글은 불안을 겪는 주체를 탈근대 자본주의사회의 변화된 노동의 모습과 연결한다. 시대의 기분은 곧 자신이 사는 시대의 모습을 재현하려는 충동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러나 시대의 기분은 시대의 전모 혹은 아직도 그 개념에 충실할 필요를 느낀다면 시대의 총체성에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보이는 징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시대의 기분은 시대에 대한 인지적인 독해에 이르지 못했을 때, 우리가 시대를 사유하기 위해 의지해야 하는, 불완전하고 소극적인 사유의 방법이다. 당연히 (프레드릭 제임슨의 유명한 제안처럼) 시대를 “인지적으로 지도 그리는(cognitive mapping)”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Fredric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1991
그러나 인지적 지도그리기를 통해 탈근대 자본주의사회의 총체성을 그려내는 것은 비웃음의 대상이 될게 분명하다. 알다시피 우리 시대에 가장 비웃음거리가 된 개념 가운데 하나를 꼽자면 그것은 총체성이란 개념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자본주의 사회의 총체적 재현을 시도하려는 어떤 노력도 거대 서사란 이름으로 혹은 계몽적인 이성의 횡포란 이름으로 규탄받아왔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에 굴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우리가 비판해야할 대상은 거대서사가 아니라 외려 “물신적 총체성”이다. 사실 우리는 자신을 에워싼 세계를 재현하고자 하는 충동에서 한 치도 자유롭지 못하다. “위험사회”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것은 트렌드에 대한 분석과 기회 분석을 가능케 하는 프로그램과 소프트웨어라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한 일이다. 사이비 미래학이 시대의 학문이 되었다는 것도 우울한 일이다. 다시 프레드릭 제임슨의 말을 빌자면 이런 총체적 재현을 향한 충동은 “음모론(conspiracy)”이라는 알레고리적인 서사에게 포획되어 버린다. Fredric Jameson, “Totality as Conspiracy”, The Geopolitical Aesthetic: Cinema and Space in the World System,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92, pp. 9-35
아니면 스펙터클이 세계에 관한 해석을 전달하고 순환시킨다. 스펙터클은 우리 시대의 물신적인 총체성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다. 따라서 우리 시대의 사유를 지배하는 것은 거대서사와 계몽적인 이성이 아니라 물신적인 총체성이다. 이런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세계를 총체적으로 재현하려는 꿈 자체를 포기할 필요가 전연 없다. 반대로 그런 총체적인 재현에의 꿈을 물신적인 총체성에 양보하지 않는 것, 음모론과 스펙터클, 위험사회의 인식론적인 도구들에게 세계를 사유하는 권한을 주지 않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이 글에서 시대의 기분을 노동이라는 범주와 연결하려는 것은 그런 발상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시대의 기분을 통해 어렴풋이 시대를 감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시대의 기분으로부터 시대를 향한 인식으로 도약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노동이란 범주를 경유하여야 한다. 노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삶의 활동을 매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의 정체성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인식한다는 것은 탈근대 자본주의사회의 총체적인 모습을 재전유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노동의 종말이나 노동의 소멸을 주장하는 우리 시대의 주장들은 노동이란 매개자를 저주한다. 제레미 리프킨, ꡔ노동의 종말ꡕ, 이영호 옮김, 민음사, 1996
더 이상 노동으로부터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로부터 가치가 생산된다는 지식정보자본주의론 등은 노동이란 범주를 추방하고 새로운 매개자로부터 자본주의사회의 총체성을 재현하려 한다. 피터 드러커, ꡔ자본주의 이후의 사회ꡕ, 이재규 옮김, 한국경제신문사
따라서 노동은 소실매개자(vanishing mediator)가 되었다. Fredric Jameson, “The Vanishing Mediator; or, Max Weber as Storyteller”, The Ideologies of Theory : Essays 1971-1986 Vol. 2, pp. 3-34
물론 노동이란 범주를 저주하고 추방함으로써 자본주의사회에 관한 새로운 재현을 추구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후기산업사회론을 비롯한 여러 담론적 기획은 한결같이 노동을 지나간 산업사회에 속한 것으로 처분하려 하였다. 그러나 진실은 노동이 사라지거나 종말을 거둔 것이 아니라 노동을 규정하고 전유하는 새로운 권력이 등장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종래의 자본이 노동이라고 규정했던 노동의 정체성은 종말을 거두었다. 이에 우리는 연연해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노동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노동을 전유하고 지배하는 자본의 권력은 노동에 관한 새로운 표상을 생산하고 그를 통해 노동과 노동하는 주체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핵심 역량 혹은 인재와 주변의 노동
탈근대 자본주의사회의 주체는 특별한 장소의 은유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다. 예컨대 주변이라는 공간의 은유를 통해 탈근대자본주의 사회의 주체를 그려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탈근대 자본주의사회에서 공간의 배치는 중심과 주변의 차이를 지우기 때문이다. 벨리디안(Belidian) 사회란 말이 있다. 벨기에라는 가장 부유한 사회와 인도라는 가장 빈한하고 참담한 사회가 이제는 한자리에 모여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벨기에와 인도를 합성한 말이 벨리디안이고 벨리디안은 도처에 있는 사회이다. 로스엔젤리스도 벨리디안이지만 캘커타도 벨리디안이다. 전지구적인 이동을 즐기는 비즈니스맨을 위한 휘황한 컨벤션센터와 국제 수준의 호텔과 레스토랑이 모여있는 재개발 타운이 있고 동시에 벌거벗은 가난에 내동댕이쳐진 사람들이 동냥을 다니는 슬럼이 한 곳에 있다. 따라서 지정학적인 구분으로서의 중심과 주변은 뭉개진다. 탈근대 자본주의사회에는 중심과 주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안과 바깥이 있다. 전지구적인 화폐와 정보, 생산의 네크워크 안에 통합되어 있는 내부 그리고 그 바깥에 놓인 사막으로 변해버린 외부, 혹은 보이지 않는 곳.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ꡔ제국ꡕ, 윤수종 옮김, 이학사, 2001

한편 문화적 은유로서의 주변 역시 효력을 잃게 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주변에서 비롯되는 기분은 우울일 것이다. 중심을 향한 혐오와 회의로부터 주변은 움직이고, 우울은 냉소와 회의를 생산한다. 아이러니와 풍자는 우울에서 비롯되는 태도이다. 그래서 주변으로부터 우리는 중심을 조롱하고 전복할 수 있는 반항적인 가치를 얻어내곤 했다. 중심의 권력과 태도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목소리는 주변에서 나왔다. 그렇지만 지금 그런 문화적인 특권을 지닌 주변은 어디에도 없다. 주변의 감성을 집약하던 “쿨(the cool)”이 겪은 운명이 아마 이를 극명하게 보여줄 것이다. 쿨이란 거칠게 요약하자면 자본주의 도시에서의 정상적이고 규격화된 삶을 향한 환멸과 냉소, 그로부터 비롯된 삶의 형태이자 의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자세한 것은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데이비드 로빈스, 딕 파운틴, ꡔ세대를 가로지르는 반역의 정신 COOLꡕ, 이동연 옮김, 사람과책, 2003
그러나 지금 그 쿨은 전지구적인 마케팅, 홍보, 광고를 통해 존재한다. Thomas Frank, The Conquest of Cool: Business Culture, Counterculture, and the Rise of Hip Consumerism,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7
고객욕구조사를 하던 자본주의는 이제 새로운 마케팅과 광고의 테크닉을 개발하고 있다. “국민 소비자”를 대상으로 앙케트를 하거나 성별과 연령, 인종, 소득에 따라 구별된 인구학적인 집단의 욕구를 따르던 자본주의는 이제 취향과 소비의 규범, 라이프스타일을 수집하고 분석한다. Don Slater, Consumer Culture and Modernity, Cambridge, Polity Press, 1997
고정되고 안정된 인구학적인 분류 혹은 덩어리는 없어지고, 더 이상 평균(혹은 그 이상이나 이하)이란 척도로 측정할 수 없는 흐름만 있는 듯이 보인다. 이 모두는 소통의 네트워크를 통해 작동한다. 결국 우리는 주변의 감성과 의식으로서 쿨에 관하여 말할 수 없다. 문화적 은유로서의 주변은 숨가쁜 유행과 라이프스타일, 소비규범을 강박적으로 쫓고 모방하는, 질식할 듯이 밀폐된 소비의 스페터클 안에 흡수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변에서의 삶이 사라졌다고 여겨야 할까. 그러나 주변이란 용어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주변은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고 시대의 삶을 재현하는 도구로 자리 잡는다. 우리는 주변이라는 위치가 차지하는 새로운 자리는 노동이란 개념을 통해 조명될 수 있다. 노동을 재현하는 다양한 담론 안에 주변이란 개념은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핵심 역량(core competency)과 주변 인력이라는 구분을 도입하는 경제학, 경영학 담론이나 “한 명의 인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인재경영론같은 통속적인 매체 담론은 모두 핵심과 주변의 이분법을 도입한다. 구직과 채용에 관련된 기관과 기업, 교육, 직업훈련에 연계된 학교와 기관, 기업에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노동의 표상 역시 언제나 인재와 주변의 이분법을 동원한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며 구직자를 향해 조언과 충고를 쏟아내는 리쿠르팅 회사와 대학교의 취업상담실, 지식강국이 되어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인적자원개발계획을 마련해야 하며 핵심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국가 기구나 정책연구기관, 기업연구소들. 이 모두는 노동을 둘러싼 재현을 생산하고 그 안에는 핵심과 주변의 은유가 가로지른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노동의 재현에 등장하는 핵심과 주변은 무엇이고, 이 안에 등장하는 주변이란 무엇일까. 또한 이는 불안이라는 우리 시대의 기분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을까.
인재라는 담론은 노동하는 주체와 관련된 다양한 재현을 응축한다. 노동하는 주체의 능력에 관한 재현은 “자격(qualification)에서 역량(competency)으로” 바뀌었다. 노동하는 주체를 지배하는 권력의 재현 역시 “통제와 명령에서 동기부여(motivation)와 몰입(commitment)으로” 바뀌었다. 노동하는 주체와 그의 활동의 질 그리고 그 결과를 연결하는 재현 역시 바뀌었다. 예컨대 임금과 보상을 가리키는 용어와 개념들이 바뀌었다. 능력주의와 성과주의로의 이행, 연봉제를 비롯한 새로운 임금체계의 등장과 확산은 모두 그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 모두는 한국 사회에서 독특하게 강조되고 있는 인재론 혹은 인재경영의 담론 안에 집약된다. 이미 1990년대를 전후하여 기업 경영을 둘러싼 담론에서 인재 혹은 인재경영이란 말은 상투어구가 되었다. 삼성 그룹의 경우 경영 목표를 인재 경영이라 천명하고 인재론이라는 새로운 노동의 담론을 선취하고 또 확산시켜 왔다. 이는 그즈음 봇물처럼 쏟아져 들어온 새로운 경영학 담론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 톰 피터스나 피터 드러커, 짐 콜린스같은 경영학자들의 저작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 책들은 한결같이 노동에 관한 새로운 담론을 제안했다. <포브스>나 <이코노미스트>같은 외국의 경제 및 경영 관련 잡지들을 비롯하여 국내의 대중매체들을 통해 유포된 새로운 노동의 재현 역시 이를 거들었다. 지식근로자, 상징분석가, 골드칼라, 프리 에이전트, 변화촉진자, 창조적 계급같은 개념들이 노동하는 주체에 관한 새로운 표상이자 규범으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개념들은 인재, 혹은 핵심 역량 등의 개념과 교환될 수 있는 것들이다.
노동하는 주체에 관한 새로운 재현은 자본주의사회의 변화를 재현하는 새로운 담론과 대응한다. 이는 알다시피 “지식정보자본주의” 이 역시 무형의 경제, 네트워크경제, 탈조직자본주의, 미적 경제(혹은 체험의 경제), 창의적 경제 등 다양한 이름을 걸치고 등장한다. 그러나 이 모든 개념은 강조점을 달리 할뿐 모두 수렴한다.
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자세히 다룰 수 없겠지만, 지식정보자본주의론은 노동에 관한 새로운 표상을 산출한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바로 인재란 개념과 다르지 않을 지식근로자란 개념일 것이다. 지식정보자본주의론의 요점은 새로운 경제체제에서 무엇이 가치를 낳는가로 요약할 수 있다. 이에 관한 지식정보자본주의론을 주장하는 이들의 답변은 분명하다. 기존에 가치를 생산하던 것이 노동이었다면, 보다 구체적으로는 노동과 그것이 축적된 기계와 설비를 비롯한 생산수단이었다면, 이제 가치는 지식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기존의 산업 부문(농어업이나 제조업)은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추가함으로써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니면 지식과 정보 여기에는 심미적인 체험, 라이프스타일 등을 망라하는 정서적이고 상호주관적인 생산물 등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스포츠 용품 회사는 도전 정신이나 승부의 경쟁심, 유희적인 기분, 이국적인 쾌감 등을 생산해냄으로써 상품의 가치를 높인다는 식이다. 또한 보살핌(caring)과 관련된 지식과 서비스를 덧붙임으로써 기본의 서비스산업은 지식정보화된다고 주장된다.
그 자체로부터 가치를 생산(정보통신산업이나 생명공학산업, 금융 및 방송연예산업 등)해 냄으로써 새로운 성장과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이와 함께 노동을 둘러싼 표상 역시 바뀌게 된다. 지식정보자본주의론이 노동에 관한 새로운 표상을 위해 생산해낸 개념적인 쌍생아는 지식근로자이다. 지식근로자란 바로 그 가치를 생산해내는 노동의 주체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지식근로자는 특정한 직업적인 주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핵심기술을 지닌 엔지니어와 과학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경영컨설턴트, 펀드 매니저, 디자이너, 광고기획자, 영화감독 등의 새로운 직업적 주체들은 흔히 지식근로자이자 인재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들만이 지식근로자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심각한 조롱을 받았던 지식근론자론의 변종인 “신지식인”론이 가리키듯이 그것은 모든 주체를 포함하는 담론이다. 신지식인론은 지식기반경제로 이행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제시된 새로운 시민적 정체성 혹은 시민(citizenship)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를 주동했던 김대중 정권은 역설적이게도 그 개념이 제시하고 있는 자율적이고 자기책임의 개인이라는 규범에 거스른 채 국가동원의 캠페인이란 형태를 쫓음으로써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또한 신지식인을 경제적 주체로 환원하는 듯한 인상을 줌으로써 그것이 새로운 탈국민적인 시민 혹은 어떤 이의 개념을 빌자면 유연시민성(flexible citizenship)을 구성하려던 기획으로부터도 이탈하게 되었다. 이는 당시 신지식인론과 함께 법석스럽게 진행되던 보수 언론사들의 지식강국캠페인 등이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신지식인론은 실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거시적으로 국가의 교육 및 경제 정책의 변화(인적자원개발계획, 평생학습사회 구축, 생산적 복지로의 개혁, 지방분권화를 통한 기업가적 지역경영 등)에서부터 미시적으로는 기업의 구조조정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신경영전략부터 시작하여 최근의 지식경영, 품질경영, 가치경영 등에 이르기까지 국내의 기업조직은 다양한 경영을 둘러싼 새로운 기술과 제도, 관행을 실천하여왔다. 그렇지만 이는 단순히 생산성과 효율성, 합리성을 높이기 위한 자본의 실용적인 선택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함은 물론 개인들이 자기와 맺는 관계, 그리고 경제적인 주체와 다른 사회적 주체성의 형태(예컨대 시민이라는 정치적 주체성) 사이에 놓인 관계 역시 변형시키는 기획이었기 때문이다.
에서부터 “아침형 인간”으로 정점에 이른 이른바 자기계발의 붐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 스며들었다. 따라서 신지식인론에서 자기경영(self-management)의 주체에 이르는 일련의 연속체는 변화된 자본주의사회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주체성의 형태라는 점에서 동질적이다.
노동하는 주체의 불안
말하자면 지식근로자란 기업조직에 속한 특정한 부류의 집단 혹은 개인을 가리키지만 더불어 기업조직 나아가 시민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주체성에 관한 재현을 아우르는 패러다임적인(paradigmatic) 기능을 한다. 인재나 핵심 역량같은 개념은 기업조직에 속하든 아니면 그 외부에 있든 모든 이들의 삶을 규정하는 효력을 발휘한다. 우선 인재와 핵심역량은 노동의 능력을 둘러싼 재현을 바꾸어낸다. 이는 흔히 자격에서 역량으로의 변화로 설명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자격이란 쉽게 말하자면 자격증, 학력같은 것이며 그 안에 전제된 특정한 지식을 가리킨다. 그 지식이란 형식적으로 규정하고 반복적으로 생산될 수 있는 지식과 행위의 규칙, 코드를 가리킨다. 이는 주로 읽고 쓰고 셈하는 지식의 형태로 전달된다. 이를 지식정보자본주의에 관련된 담론들은 각자 나름대로 형식지, 명시지, 공식지라고 부른다. 이와 대별되는 새로운 지식은 “암묵지(tacit knowledge)”란 개념으로 대표된다. 언어나 공식, 시각적 표상처럼 언어적으로 표상할 수 없지만 노동하는 주체 안에 체현되어있는 비공식적인 솜씨와 기술, 감정과 태도 등을 가리켜 암묵지라고 부른다. 이는 마이클 폴라니의 인식론적인 입장에서 따온 것으로 폴라니는 형식지(explicit knowledge)와 암묵지를 구분하며 기존의 철학적인 인식론이 형식지만을 특권화하고 있음을 비판한 바 있었다. 자세한 것은 다음을 참조하라. 마이클 폴라니, ꡔ개인적 지식-후기비판적 철학을 위하여ꡕ, 김봉미, 표재명 옮김, 아카넷, 2001. 또한 지식경영 혹은 지식창조기업이란 이름으로 형식지와 암묵지를 노동과 노동능력에 관한 새로운 모델로 제안하여 엄청난 영향을 끼친 다음의 두 일본 경영학자의 저작 역시 참조하라. 노나카 이쿠치로, 히로다카 다케우치, ꡔ지식창조기업ꡕ, 장은영 옮김, 세종서적, 1998
이들은 과거의 경제에는 학교를 통해 배운 지식으로 평생 경제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지식과 정보의 급격한 혁신과 변화가 이뤄지는 지금에 그것은 쓸모가 없어졌거나 가치가 저하되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팀체제론이나 전사적인 품질관리, 식스시그마, 고성과작업장, 학습조직 등의 모습으로 잇달아 등장했던 노동과정의 관리 담론들 역시 이런 능력의 담론과 상관한다. 그것은 노동하는 주체에게서 협동, 주도성, 창의, 혁신 등과같은 비공식적인 지식을 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장치와 지식, 기술을 강조한다.
일본식 경영, 초우량기업, 위대한 기업 등의 이름으로 등장한 최근의 경영 기법에 관한 담론들 역시 기업조직에 관한 담론이면서 동시에 노동하는 주체의 정체성에 관한 담론을 만든다. 그것은 노동하는 주체의 다양한 삶의 능력을 자본의 편에서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한 다양한 테크놀로지(측정, 평가, 교육 훈련의 모델 등)를 포함한다. 결국 인재 혹은 핵심역량이 지배하는 노동은 당연히 그동안 익숙하게 여겨왔던 시간에 따라 분절된 노동, 기계를 다루고 근력이나 지식을 적용하는 노동이 아니다. 네그리와 하트의 표현을 빌자면 이제 탈근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이 지배하는 것은 비물질적인 노동, 정서적인 노동이다.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탈근대화, 생산의 정보화”, 앞의 책
또한 노동시간 동안에 이뤄지는 직접적인 활동이 아니라 그들이 삶 속에서 만들어내는 지성과 정서, 지각과 습관 등이다. 마우리치오 라차라토같은 이태리의 자율주의 철학자는 이제 자본은 노동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지배한다는 뜻에서 노동이란 개념을 버리도록 주장하기도 한다. 노동하는 주체의 정신적, 물질적 능력의 집행만을 강조하고 고용된 시간과 장소(작업장, 노동시간)에서의 노동만을 특권화하는 노동이란 개념을 버리고 “정신의 협력(cooperation between minds)” 혹은 삶의 무한한 잠재성(virtuality) 등의 개념을 사용할 것을 주장한다. 자본은 노동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지불되지 않는 삶의 힘(biopower) 자체를 전유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Maurizio Lazzarato, “From Capital-Labor to Capital-Life”, Ephemera-theory & politics in organization, vol. 4, no. 3, pp. 187-208. 이 글은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다. http://www.ephemera.org
따라서 인재와 핵심역량은 생애 전체에 걸친 능력의 습득과 향상을 강조하고 노동하는 주체를 모든 주체에게 확장한다. 따라서 그것은 고용관계에 놓인 노동자뿐 아니라 모든 주체들이, 능력있는 삶, 성공하는 삶을 위하여 평생 감당해야하는 의무이다.
두번째로 인재와 핵심역량이란 개념은 노동을 관리하고 지배하는 권력에 관한 재현 역시 변화시킨다. 가상 기업이니 네트워크 조직이니 나아가 1인 기업이니 하는 개념들은 모두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 지식기반정보사회를 주장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관료주의를 타도하고 창의성과 자율성을 죽이는 조직을 붕괴시키자고 주장한다. 아마 이 분야의 가장 대표적인 이데올로그는 누가 뭐래도 톰 피터스(Tom Peters)일 것이다. 그는 ꡔ초우량기업의 조건ꡕ이란 이름의 저서로 20세기 후반 최고의 경영학 분야의 스타가 된 이후 혁신, 해방, 혁명, 혼돈 등의 파격적인 개념을 동원하여 기업과 일터에 관한 새로운 담론을 잇달아 생산하여 왔다. 그에게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그가 직장인과 같은 노동하는 주체의 표상을 완전히 제거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자기(self)”에 관한 이야기만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우리는 자신을 고용된 직장인으로 여겨서 안되며 1인기업(가)의 자유계약, 노동자가 아닌 브랜드를 가진 나의 자기고용(self-employment)이란 형태의 새로운 주체성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국내에 유행하고 있는 많은 자기계발담론들이 공통적으로 참조하고 있거나 모방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톰 피터스는 푸코의 표현을 전용하자면 탈근대 자본주의사회에서 “자기의 배려(care of self)”의 에토스를 경제적인 주체성으로 변환시키는 우리 시대의 윤리학자라 할 수 있다. 그의 저작은 모두 우리말로 번역되어있다.
기업이 위계적이고 관료적인 조직체계를 통해, 표준화되고 파편화된 업무의 지시와 명령을 통해 운영됨으로써 노동하는 주체의 자율성과 자기실현의 욕구를 억압하였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재나 핵심역량은 곧 그런 능력이 발휘되고 조성될 수 있는 새로운 인간관계와 조직형태 등과 깊은 관련을 맺는다. 달리 말한다면 인재와 핵심역량은 권력관계에 관한 새로운 재현을 생산한다. 여기에서는 이제는 아무런 저항 없이 사용하는 일반 용어가 되어버린 리더십(leadership)이란 개념을 가지고 설명해 보기로 하자. 리더십이란 개념은 명령과 통제를 행사하는 감독자, 경영자, 관리자 등의 표상을 대신하며 일약 부상한 개념이다. 리더십은 기업 조직 안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관계를 규제하는 권력에 관한 담론이지만 종래의 권력의 표상을 제거한다. 그것은 명령이 없는 권력, 규범이 없는 권력의 모습을 취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기존의 권력에 관한 재현을 아우르고 있던 규범화시키는 권력(norminalizing power) 혹은 훈육의 권력(disciplining power)과 단절한 새로운 권력의 재현이 노동의 세계에 출현함을 볼 수 있다. 이런 새로운 권력의 등장을 분석하며 탈근대 자본주의사회를 분석하기 위해 푸코가 말한 훈육사회란 개념으로 부족하며 통제사회(society of control)란 개념이 요구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질 들뢰즈, “추신: 통제사회에 관하여”, ꡔ대담 1972∼1990ꡕ, 김종호 옮김, 솔, 1993
지시하고 명령하는 권력은 집단적으로 조직된 노동자를 상대하고 그들을 규범(norm)에 복종하도록 하며 그에 따라 정상과 일탈, 과오를 측정하였다. 그러나 이제 일터에서의 권력은 자신이 규범을 제정하고 타율적인 명령을 통해 자신을 행사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스스로 주장한다. 이제 권력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개인의 힘과 그런 의지를 유혹하고 고무하는 외부의 힘이 결합하고 소통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리더십을 둘러싼 담론들은 이제 리더란 개인 스스로 동기를 만들어내고 창의성을 발휘하며 몰입하도록 만들어내는 주체여야 함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리더십론은 앞서 말했던 노동의 능력을 창출하고 지배하기 위한 권력의 담론이다. 그것은 조직의 구성과 배치, 업무의 설계와 조정, 의례와 퍼포먼스의 상연 등을 통해 노동하는 주체로 하여금 스스로를 변형하도록 요구하고 유혹한다. 그러나 이 역시 기업 조직에 속한 노동자에게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성공하는 자기, 행복한 자아, 자기를 실현하는 주체란 새로운 주체성의 표상과 결합되고 모든 사회적 주체에게 적용된다. 셀프-리더, 셀프-매니지먼트, 퍼스널 브랜드 등은 모두 이를 반영하는 개념들이자 테크놀로지이다. 자신을 향상시키려는 의지는 자기 삶의 리더가 된다는 말이고, 자기 삶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 또한 자신을 지배하고 지배받는 주체로 만들어내는 권력을 작용시킨다는 말이다.
세번째로 노동의 평가와 보상에 관한 담론 역시 바뀐다. 이는 익히 들어왔던 성과주의, 능력주의 등에 근거한 새로운 평가 체계 그리고 연봉제로 요약되는 보상 체계를 통해 나타난다. 그것은 생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는 기법이기도 하지만 또한 노동하는 주체를 둘러싼 새로운 재현을 만들어내는 담론이기도 하다. 최근의 노동을 둘러싼 지배적인 담론은 인재와 핵심 역량은 거액의 연봉과 파격적인 근무 조건을 누리며 일에서 무한한 기쁨과 자신을 실현하는 즐거움을 만끽한다고 역설한다. 평생직장의 시대에서 평생직업의 시대로 바뀐 지금 노동하는 주체들은 포트폴리오 인생이 되어 자신을 평가하고 인정하며 자신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터를 찾아 자유롭게 이동하는 유목민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난무한다. 많은 신경제 담론은 우리 시대의 노동하는 주체의 모습을 압축하는 모델은 “프로스포츠선수”라고 즐겨 말한다. 프로스포츠선수는 자신의 투혼과 열정을 발휘하며 자신을 실현하는 쾌감을 맛보고 이를 연봉에 반영한다. 그리고 그는 자유로운 계약자가 되어 팀을 전전한다! 따라서 노동의 평가와 보상에 관한 담론 역시 노동하는 주체를 새롭게 재현한다. 이번에는 인재와 핵심 역량은 프로스포츠 선수와 겹쳐지고, 노동의 평가와 보상을 가리키는 연봉, 능력, 성과 등의 개념은 다시 노동하는 주체에 관한 새로운 재현과 겹쳐진다.
주변의 불안에서 벗어나기 – 노동과 총체성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노동하는 주체를 둘러싼 담론 속에서 주변은 어디에 있을까. 물론 그것은 모든 주체의 자리에 있다. 자신을 향상시키고 변화시키려는 데 주저한 사람, 평생에 걸친 직업생애 동안 요구되는 학습과 변신을 게을리 한 사람, 타인과 소통하고 그를 자신의 편으로 삼기위한 커뮤니케이션의 능력을 발전시키지 못한 사람 그 모두는 낙오자이며, 패배자이고 또한 주변의 존재이다. 따라서 주변에 속한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인재의 잠재성을 갖고 있으며 또한 동시에 주변의 씨앗을 품고 있다. 결국 모두가 불안하며 모두가 기괴한 흥분에 사로잡혀 자신을 표현하고 제시하려는 충동에 시달린다. 따라서 우리 시대의 기분인 불안은 우리 모두를 조울증에 사로잡힌 주체로 만들어 버린다. 열정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키고 향상시키려는 의지에 현혹되어 있는 나 그러나 끊임없이 무한경쟁에 낙오될 수 있으며 언제나 실패를 두려워해야 하는 나. 이런 불안한 주체의 모습은 곧 탈근대 자본주의사회가 자신의 노동하는 주체를 생산해낸다.
그러나 이미 언급했듯이 이런 불안한 나 혹은 자기(self)의 주체성은 동시에 노동자의 주체성이자 학생의 주체성이며 국민의 주체성이다. 최근 육군본부는 “군 자기계발 시범사업”을 시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현역병들은 지적탐구와 경력개발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배움, 문화, 가족 등으로부터 단절되므로 국가의 미래를 이끌 중요한 인적자원인 이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양성할 방안이 필요하다는데 전경련과 軍이 인식을 함께 하여” “재계, 군과 손잡고 軍 인적자원개발에 함께 나서”, 전경련 보도자료, 2004, 10, 14.
그 사업을 출범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사업의 내용은 어학과 자격, 소양(비즈니스 교양 등)과 경영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인재 혹은 핵심 역량이 되기 위해 실천하는 주체 혹은 자기계발하는 주체는 또한 군인이기도 하다. 이런 변화는 매우 흥미롭다. 군대는 훈육사회의 요람이자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군대 또한 탈근대자본주의 사회의 주체성을 생산하는 공간으로 흡수되고 있는 것 아닐까. 물론 감옥과 복지수용시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삶의 공간, 모든 삶의 주체는 이런 주체성의 범형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노동하는 주체와 시민적 주체 그리고 자신을 돌보는 자아를 연결하던 이전 시대의 매트릭스는 새롭게 바뀌었다.
가족에서 직장으로, 학생에서 노동자로, 정상인에서 감옥으로 이동하며 각각의 분할된 공간에 그러나 각각의 동종적인 훈육의 권력에 복종하던 우리의 삶은 이제 미분화된 삶의 흐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훈육의 권력이 낳은 우울의 기분은 이제 탈근대 자본주의가 자신의 주체성에 부여한 불안의 기분으로 변형되었다. 따라서 우리 시대에 중심과 주변은 불안이란 감정 안에 겹쳐져있다. 불안은 자신의 주변으로의 몰락을 두려워하는 공포 그리고 거꾸로 인재와 핵심 역량, 스타 플레이어와 초우량 퍼스널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들뜬 흥분 사이로 소용돌이친다. 그렇다면 이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는 어디에 있을까. 물론 그것은 탈근대 자본주의사회를 비판할 수 있는 새로운 주체성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주체성의 모습을 그려내려는 작업은 무엇보다 빈사상태에 이른 노동 그리고 노동하는 주체라는 매개자를 되살려내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비록 그것이 더 이상 과거의 함축과 다른 것이겠지만 그리고 더 이상 과거의 주체들과 다른 주체의 모습이겠지만, 그것을 발견하고 해석하려는 작업을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탈근대 자본주의사회의 총체성을 그려낼 수 있을 때, 그리고 그 총체성을 매개하는 노동을 되살려낼 수 있을 때, 결국 우리는 우리 시대의 인지적인 지도를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지도를 발견함으로써 불안에 표류하는 자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출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