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로드니 Walter Rodney (1942-1980)

Walter Rodney-African Identity

제3세계 프로젝트와 비동맹운동은 민족주의적이었지만 동시에 국제주의적이었다. 1955년 반둥회의에 모인 29개 나라의 아시아, 아프리카 대표들은 각 나라의 대표이면서 동시에 비동맹운동의 대표이자 제3세계 프로젝트의 대표였다. 그들은 제3세계라는 상상된 국제적 공동체, 민중들의 공화국의 대표였다. 이들은 글로벌 거버넌스를 읊어대는 오늘날의 어떤 기관이나 인물들보다 더 뼛속깊이 글로벌하게 행동하고 생각했다. 민족이라는 상상된 공동체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꿈은 같은 꿈을 꾸는 다른 민족과의 연대를 요청했다. 이러한 원칙은 곧 진정한 제3세계주의자들에게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방침이었다. 그 탓에 그들은 범아프리카주의, 범남미주의를 내세웠다. 특히나 월터 로드니의 삶을 돌이켜본다면 제3세계주의가 국제주의라는 것을 확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는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으면서도 또한 모든 나라에 속한 채,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을 위한 투쟁의 동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제3세계라는 세계의 화신이라 간주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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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무역개발회의 UNCTAD:United Nations Conference on Trade and Development 國際聯合 貿易開發會議

Victor Jara – Venceremos

1944년 아바나에서 여러 나라의 경제 관료들이 모여 20세기 후반 세계경제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그것은 흔히 가트(GATT)로 줄여 부르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을 말한다. 이 협정은 회원국들 사이에서 자유무역을 가로막는 장벽을 낮추고 감시하는 활동을 하고자 만들어진 것이었다. 1945년 탈식민화를 위해 투쟁하면서 독립을 쟁취한 많은 제3세계 나라들은 자신들의 민족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식민주의가 남긴 유산을 해결하여야 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바로 과거의 식민주의 종주국들로 이뤄진 제1세계와 제3세계 나라들 사이에서의 불리한 교역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자유로운 무역은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공언하면서 만들어진 GATT는 단지 선진산업국가들에게 이로운 무역 조건 만을 강요하는 기관이었다. 제3세계는 이에 대항하기 위해 자신들의 기관을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그 결실이 바로 유엔 무역개발회의였다. 이 기관의 수장은 프레비시가 맡게 되었다. 물론 그는 이미 종속이론의 아버지로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상태였다. 그는 급진적인 경제학자는 아니었지만 남미 국가들의 저발전 문제가 그들이 전통에 얽매여 있기 때문도 아니고 국내 정치의 문제 탓도 아닌 바로 오랜 식민주의로부터 비롯된 경제 종속의 결과란 점을 밝힘으로써 유엔에서 남미의 처지를 개선하고자 이미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온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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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지구 FTZs: Free Trade Zones 自由貿易地區

임흥순, <위로공단> 중에서

“1967년 4월 1일 꽃샘추위가 한창이던 이날 오전 11시 구로동 공업단지 내 한국 수출산업공단본부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각료 및 산업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수출산업공업단지 준공식이 열렸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날 축사에서 ‘허허벌판을 불도저로 밀어붙인다고 수출 공장이 되겠냐며 의심한 사람도 많았지만 우리는 결국 해냈다. 정부는 이 단지를 25개 공장이 더 들어설 수 있도록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구로공단은 탄생하였으며 정식 명칭은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 제1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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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nationalism

النشيد الوطني الفلسطيني “فدائي” | Palestinian National Anthem

베네딕트 앤더슨은 오늘날 민족주의에 관해 공부하는 이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꼽힐 상상된 공동체란 책을 썼다. 그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책이 어쩌다 갑자기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는지 토로한 바 있다. 말인즉슨 이렇다. “그런데 1980년대 말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무너지자 상황이 급속도로 바뀌었다. 제국들이 다 그렇듯이 미 제국도 적이 필요하다. ‘공산주의의 위협’이 사라지자 그 공백을 ‘위험한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채웠다. 소련 연구의 센터 중 하나였던 케넌 연구소(Kennan Institute)의 높은 분이 급히 전화를 걸더니 빨리 와서 강연 좀 해달라고 호소했던 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 나는 소련이나 러시아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왜 그러냐고 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소련 연구는 끝났네. 그래서 연구비도 안 들어오고 학생들도 취업을 못하고 있지. 구소련은 온통 민족주의자들로 넘쳐나는데 우리 연구소에는 민족주의를 연구한 사람이 없거든. 지금 미국에서 우리를 도와 연구소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안 되는데, 자네가 그 중 한사람이거든.’ 나는 가지 않았다.”(베네딕트 앤더슨, 경계 너머의 삶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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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턴우즈 기관 Bretton Woods Institutions

Pink Floyd – Money

2차 세계대전이 남긴 전쟁의 참화 속에서 세계 경제를 재건하려는 서구 선진국들의 노력은 국제 은행을 설립하려는 계획으로 이어졌다. 이는 처참하게 무너진 세계 무역을 되살리고자 했다. 전쟁이나 식민 지배로 황폐해져버린 나라들에 신용 대출을 해준다면 무역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는 곧 세계 여러 나라들이 참여하는 은행을 만들자는 계획으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마침내 1944년 미국 뉴햄프셔주의 브레턴우즈에서 세계 44개 나라에서 온 재무장관들은 새로운 국제 은행 체제를 만드는데 합의했다. 그 결과 훗날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하게 될 두 개의 자매 기구가 만들어졌다. 세계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과 세계은행(World Bank)가 그것이다. 사람들은 이 두 개의 기관이 만들어진 회의 장소를 본 따 이 두 기관을 ‘브레턴우즈 기관’이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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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해방전선 FLN: Front de Liberation Nationale, National Liberation Front, 民族解放戰線

Independence Cha Cha(라울 펙의 영화 “루뭄바” 중에서)

아프리카의 해로 불린 1960년,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자신이 현장연구를 진행하던 가나에서 프란츠 파농을 만난다. 크와메 은크루마가 주도하던 가나공화국은 범아프리카주의의 산실이자 요람이었다. 골드코스트와 아아이보리코스트의 민족주의 운동과 여러 자발적 결사체들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게 될 월러스틴은 은크루마의 범아프리카주의를 마음 깊이 지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체제론으로 20세기 후반 사회과학에서 중요한 혁신을 이룩하게 될 이 사회학자의 마음을 두고두고 사로잡은 것은 파농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론 세계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세 명의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파농을 꼽았다. “내게 파농은 근대세계체제에 의해 권리를 빼앗긴 자들이 그들 자신의 목소리와 전망을 가지고 있으며, 단지 정의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지적 판단을 요청하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월러스틴 선집 서문 중에서) 파농을 아는 이들은 많다. 그러나 그가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의 투사였다는 것을 깊이 헤아리는 이는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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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변증법의 시금석이다.: 엥겔스의 ‘자연변증법’과 신유물론

Destroyer – Cue Synthesizer

“구태의연한 유물론의 입지점은 시민사회이며, 새로운 유물론의 입지점은 인간적 사회 또는 연합적 인류 die vergesellschafttete Menschheit이다.”(마르크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10)

  1. ‘인류세’ 이후의 유물론: 다시 엥겔스를 읽는다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기 위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역사를 이해하고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면 어떨까. 뉴런과 원자에서 행성과 인공지능에 이르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합당한 마르크스주의적 인식 기준을 충족할 때 온전한 마르크스주의가 될 수 있다면? 만일 이러한 요구가 터무니없고 지나친 것이라고 반발하며 마르크스주의란 근본적으로 역사적인 사회관계의 비판에 불과한 것임을 겸손하게 인정하여야 하는 것일까. 어느 마르크스주의자가 ‘만물의 유물론’을 구성한다고 강변한다면 이는 독단에 불과할 뿐이라고 배격해야 마땅할까. 이러한 잇단 질의는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와 이론적 논쟁에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는 그다지 생소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전체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의 뒤꼍에서 마치 배음(背音)처럼 윙윙거렸던 어떤 질문(마르크스주의는 역사유물론은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반한 것인가 아니면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공식 ‘철학’과 무관한 역사유물론일 뿐인가)을 떠올리게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이른바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구(舊)소련의 공식마르크주의와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결정적인 차이로서 간주되어 왔다. 또한 이는 나아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관계를 비롯해 엥겔스의 저 악명 높은 ‘자연변증법’에 대한 고발과 거부를 둘러싼 오랜 쟁점과 관련되어 있다. 비록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친밀한 지적인 협력자로서 활동하였고, 엥겔스 자신의 지적 업적을 인정한다하더라고 마르크스의 사고와 엥겔스의 사고를 동일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는 암묵적 동의가 널리 퍼져왔다. 물론 엥겔스의 지적 이력에서 가장 마르크스와 먼 것으로 지목된 것은 그의 자연변증법일 것이다. 그것은 나쁜 자연주의(naturalism)로 채색되어 있고 마르크스를 ‘만물의 유물론’을 고안한 인물로 오인되도록 한 모든 오해의 원천이었다.

모든 정신, 사고, 표상, 의식 등을 신경뉴런의 신경생물학적인 메커니즘의 작용 효과로 환원하는 인지주의(오늘날 성행하는 기계적 유물론의 주된 형태)나 인간의 사유 활동에 고유한 것을 자연에 투사하면서 자연에 어떤 일반적 법칙이 존재한다고 가정함으로써 보편적 자연이라는 대상을 상정하는 자연주의(naturalism)을 선뜻 받아들이는 마르크스주의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 외적 세계나 자연의 독자성을 손쉽게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물론자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은 물질적이라고 말하는 것(푸코나 라클라우와 같은 담화적 유물론을 포함하여)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다. 인간의 의식도 결국엔 뇌라는 물질의 활동에 불과하다는 식의 극단적인 인지주의나 생물학주의적 입장을 유물론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것은 그다지 유익한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물어야 할 물음은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이 이러한 유물론과 구별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유물론인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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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제정보통신질서(NWICO: New World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Order)

Band of Horses – The Funeral

2019년 원주민 출신의 볼리비아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저질렀다고 의심하는 잇단 시위 끝에 결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주변의 인물들이 잇단 신변의 위협을 받고 테러를 당하기도 하자 결국 망명을 결심하였다. 그 때 세계의 모든 언론은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하야를 성난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에 의해 물러난 것처럼 일제히 보도하였다. 그러나 정작 그것이 미국이 주도하는 남미 나라들의 연합의 지지를 받고 미국이 비호한 군사쿠데타에 의한 정권 찬탈이라고 보도하는 곳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양심적이거나 진보적인 소수의 학자와 언론인, 운동가들은 실상을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이는 세계의 모든 눈과 귀를 장악한 국제통신사들의 독점적인 뉴스 공급을 막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원주민 출신으로서 베네수엘라와 더불어 남미에서 가장 끈질기게 빈곤층과 농민, 노동자들을 위한 경제 개혁을 실시하고 더불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물리치고자 했던 에보 모랄레스는 간단히 독재자라는 낙인이 붙여진 채 세상의 조롱거리이자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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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그룹 Group of 77

American Analog Set – Magnificent Seventies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서구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의해 고통을 겪어 왔던 많은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은 독립 국가를 건설하면서 착취와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국가적 주권을 얻어낸 것으로 과거의 식민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의 제국주의국가에 여전히 의존한 경제 구조로 인해 이들 나라들은 계속된 경제적 불평등과 저발전 상태에 처해 있어야 했다. 특히 농업이나 목축업과 같은 산업의 1차생산물이 주된 수출품이었던 나라들은 언제나 불안정한 수요 때문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처지였다. 반면 수요가 안정적이고 또 나날이 늘어나는 공산품을 비롯한 제조업 분야의 생산물을 수출하는 나라들은 언제나 막대한 이윤을 챙길 수 있었다. 특히 많은 신생 독립 국가들은 과거의 ‘모(母)’ 국가들에 경제적으로 의지하면서 결국엔 과거와 같은 식민주의의 사슬에 다시금 속박되는 처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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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해와 오은주 – 눈물의 십 분간

“오적은 무엇이며 어디 있나 말만하면 네 목숨은 살려주마./꾀수 놈이 이 말 듣고 옳다꾸나 대답한다./오적이라 하는 것은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란 다섯 짐승, 시방 동비고동에서 도둑시합 열고 있소./으흠, 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다./정녕 그게 짐승이냐?/그라문이라우, 짐승도 아주 흉악한 짐승이지라우.”

한국의 대표적 시인이자 사상가였던 김지하는 1970년 6월 잡지 사상계에 그의 걸작 <오적 五賊>을 발표했다. 이 시를 발표한 죄로 시인 김지하는 당시 정권으로부터 노여움을 사 다시 한 번 옥고를 치러야 했고 시를 게재했단 이유로 월간 『사상계』는 1970년 9월 29일자로 등록을 취소당했다 그의 시는 한국을 지배하고 있던 다섯 무리의 인물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었다. 그가 다섯 짐승이라고 칭한 것은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다름 아닌 매판 세력이었다. 일본 제국주의 지배가 청산되지 못한 채 일제에 부역했던 많은 이들이 여전히 권력을 쥐고 휘두르는 데 대한 분노는 1960년 4.19 혁명과 더불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대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유행한 낱말은 매판이 되었다. 세상을 걱정하는 이들의 말과 글에선 어디에서나 매판이란 낱말이 등장했다. 매판이란 제국주의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총독과 제독만 없을 뿐 여전히 계속되는 식민주의를 일컫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었다. 매판이란 제3세계 민중이 피땀 흘려 이룬 결실을 제1세계 자본가들에게 팔아치우고 그들이 나눠주는 떡고물로 위세와 부를 차지했던 이들을 가리키는 말에 다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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