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 대중, 군중 – 관객성의 분석을 위한 몇 가지 주장


Lower Dens – To Die In L.A.

“실제로 각자는, 타자가 자기처럼 버스를 기다린다는 점에서, 이 타자와 동일하다.
그렇지만 이들의 기다림은 동일한 기다림의 동일한 예들로서
별개로 체험된다는 점에서 공동의 사실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집단은 구조화된 것이 아니라 군집이며,
이 군집에 속한 개인들의 수효는 우연적인 것이다.”
J. P. 사르트르,변증법적 이성비판 2, 박정자 외 옮김, 나남, 2009, 549쪽.

‘영화-이후적 관람양식’의 관객

지난 몇 년간 천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 영화들이 잇달아 등장하여 기록을 갱신하였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천만 관객 돌파의 기록. 그러나 그것은 흥행의 기록이지 영화가 초래한 감각적 사태로서의 기록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지나치다 싶으리만치 영화에 관객이 몰렸을 때,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그것이 미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뭔가 의미심장한 일이 벌어졌음을 알리는 징후일 것이라고 짐작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천만 관객 돌파의 성적표는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범박하게 말해 그 숫자는 많은 관객을 동원하여 많은 객석을 채웠고 제작사와 감독, 배우들이 많은 돈을 받았다는 것을 가리키는 일에 불과할 뿐이다. 아마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눈을 끔벅이며 “그래서 뭐”라고 심드렁하게 대꾸할지 모를 일이다. 그런 반응은 천만 관객 돌파는 그저 그런 무의미한 소식, 천만 명 이상의 관객이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 그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시사할 것이다. 천만이라는, 어쩌면 가공할 숫자, 기록은 그러므로 아무런 충격을 자아내지 않는다. 천만이나 되는 관객이 어떤 영화를 보았다는 것은 어떤 징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짐작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훨씬 그럴 듯한 가설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 영화의 생산과 수용을 둘러싼 형세에 아무런 효과도 발휘한 게 없을 것이라 짐작하는 것이야 말로 놀라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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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의 회계학: 금융화와 일상생활 속의 신용물신주의 2


Alice Cooper – You and Me

자본물신주의 변종, 신용물신주의
마르크스의 ‘자본’을 헤겔의 정신의 현상학과 대조하면서 부의 현상학이라고 읽는 것이 크게 억지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부의 현상학이란 관점에서 자본을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은 마르크스의 ‘자본’에서의 분석이 완결되는 ‘자본’ 3권에서 분명하게 제시된다. 알다시피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어떤 제시(exposion), 표상(representation), 현상(appearance)의 형태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지 매우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사고 방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가치 형태’ 및 ‘물신주의’에 관한 서술일 것이다. 특히 그는 ‘자본’ 3권의 마지막 부분이라 할 수 있는 48장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수입 혹은 부가 ‘현상하는’ 세 가지 형태를 자본의 “삼위일체 정식”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분석한다. K. 마르크스, 삼위일체 정식, ‘자본 III-2’, 강신준 옮김, 길, 2008, pp. 1087-1109.
이 때 마르크스는 부의 현상학이라고 부를 만한 관점에서 수입, 소득, 부 그리고 그것이 물질화된 물적 존재의 형태(이자, 지대, 임금 등)가 어떻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착취적 사회관계를 은폐하는지 분석한다. 물신주의란 낯선 개념을 그가 굳이 채택해야 했던 이유를 밝혀주는 많은 서술이 말해주듯 물신주의는 착각이나 미망(迷妄)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경제적 삶을 생산하는 과정이 취하게 되는 필연적인 가상(Schein)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주관적인 ‘착각’이나 ‘오류’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타당한 객관적 사유형태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이미 ‘자본’ 1권에서 상품(화폐) 물신주의를 분석한 바 있었다. K. 마르크스,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 ‘자본 I-1’, 강신준 옮김, 길, 2008, pp. 133-148.
이때 마르크스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적 형태’인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인간의 노동생산물이 하필이면 왜 상품이라는 형태를 취하게 되는지, 나아가 구체적으로 유용한 대상인 상품(사용가치)이 동시에 형이상학적이고 신학적인 대상으로서 가치라는 대립적 ‘형태’를 띠게 되는지(가치-대상성), 나아가 그 결과 자본주의적 사회관계가 왜 상품들 사이의 물신적 연관을 통해 ‘나타나게’ 되는지 폭로한다. 그리고 나아가 그는 가치형태의 완성되고 보편적인 형태로서 화폐라는 보편적 등가 형태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결국 화폐가 더 많은 화폐가치를 낳는 것으로서 자본에 관한 최초의 단순한 규정(M-M’)을 낳게 되는지를 제시한다. 그러나 상품, 화폐라는 추상적인 규정 속에 스며있는 물신주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다양한 사회적 실천과 매개된 연후 나타나는 자본물신주의를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그리고 일상적 의식 속에서 상품, 화폐 물신주의는 자본물신주의라는 형태를 통해 지각되고 체험된다. 그런 점에서 상품(화폐)물신주의에 대한 이해는 자본물신주의에 대한 이해를 통해 보완되고 또 재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물신주의의 비밀에 대한 이해를 위해 자본물신주의에 대한 이해가 관건적이며 그것이 ‘자본’ 전체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것이란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M. Heinrich, An introduction to the three volumes of Karl Marx’s Capital, Alexander Locascio trans.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12. H-G. Backhaus, On the Dialectics of the Value-Form, Thesis Eleven 1 (1), 1980. H. ReicheltMarx’s Critique of Economic Categories: Reflections on the Problem of Validity in the Dialectical Method of Presentation in Capital, Historical Materialism, 15 (4), 2007.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인간의 구체적이고 무한히 다양한 물질적 생산행위가 추상적 노동으로 규정되며, 인간의 노동생산물이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적 형태인 상품, 화폐라는 가치형태를 취하게 됨으로써만 작동한다. 그러나 그것이 직접적으로 현상하는 것, 즉 우리의 자생적인 의식 속에서 나타나는 방식은 바로 수입(이윤, 지대, 임금 등)의 원천에 대한 사고를 통해서이다. 금융화를 가능케 한 그 객관적인 환상은 바로 이 자본물신주의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글을 시작하며 말했듯이 소득과 부채, 임금과 빚은 서로 대립적인 것이기는커녕 동일한 물신주의로부터 비롯된 환상의 성분들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이윤(기업가수익+이자), 토지-지대, 노동-임금, 이것은 사회적 생산과정의 모든 비밀을 포괄하는 삼위일체적 형태”를 말하며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K. 마르크스, ‘자본 III-2’, 강신준 옮김, 길, p. 1087.
“(……)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은 사회적 생산과정 일반의 역사적으로 규정된 형태이다. 이 사회적 생산과정은, 인간생활의 물질적 존재조건의 생산과정이면서, 또한 특수한 역사적․경제적 생산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하나의 과정[다시 말해서 이 생산관계 그 자체와 이 과정의 담지자, 그리고 이들 담지자들의 물적 존재조건과 그들 담지자 상호 간의 관계(요컨대 이들 담지자의 일정한 경제적 사회적 형태) 등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이 생산의 담지자들이 자연에 대해서나 그들 상호 간에 맺는 관계, 그리고 그 속에서 그들이 생산을 수행하는 관계, 바로 이런 관계 전체야말로 경제적 구조라는 측면에서 본 사회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은 그것에 선행하는 모든 생산과정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물질적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이들 조건은 또한 동시에 개인들이 자신들의 생활을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맺는 일정한 사회적 관계의 담지자이기도 하다. 이들 관계와 마찬가지로 그들 조건도,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전제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결과물이자 소산이다. 그것들은 이 생산과정에 의해서 생산되고 재생산된다.” ibid., pp. 1093-4.
“자본, 토지, 노동! 그런데 자본은 물적 존재가 아니라 일정한 역사적 사회구성체에 속하는 특정의 사회적 생산관계이며, 이 생산관계는 어떤 물적 존재를 통해서 표현되고 이 물적 존재에 하나의 독자적인 사회적 성격을 부여한다. 자본은 생산된 물적 생산수단의 합계가 아니다. 자본이란, 자본으로 전화된 생산수단을 말하는 것으로서, 생산수단 그 자체가 자본이 아닌 것은, 금과 은 그 자체가 화폐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자본은 사회의 일정 부류에 의해 독점된 생산수단이고, 살아있는 노동력에 대해 독립적인 것으로서, 바로 이 노동력의 생산물이자 활동조건이며, 이것들이 이러한 대립을 통해서 자본으로 인격화된 것이다. …… 그러므로 이것(-자본)은 역사적으로 창출된 하나의 사회적 생산과정의 요인들 가운데 한 가지가 갖고 있는 일정한(언뜻 보면 매우 신비스러운) 사회적 형태이다.” ibid., p. 1088.
여기에서 마르크스가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자본을 물적 존재, 즉 생산요소(생산수단이나 원료, 혹은 그에 해당하는 투입된 금액으로서의 화폐)로 바라보는 순간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더 이상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적 생존,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라는 영원한 자연필연성의 세계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형태’에서 어떻게 특수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회형태란 관점에서 혹은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이라는 관점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이해한 것이 마르크스의 핵심적 특징으로 간주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주된 해석의 경향은 아니다. 이를 강조함으로서 마르크스 읽기를 혁신한 것은 알튀세르를 비롯한 그의 후계자들 그리고 가치형태 분석을 통해 자본의 새로운 읽기를 강조한 루빈, 1970년대 이른바 가치형태론적 자본 읽기를 선도한 독일의 신독해 그룹(특히 M. 하인리히) 등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마르크스의 ‘자본’이 정치경제학 ‘비판’이란 점에서 준별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이를 노동가치론과 마르크스의 가치라는 역사적 사회적 형태에 대한 분석의 차이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이에 관해 대표적인 글로는 일단 다음의 글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L. 알튀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J. Ranciere, Critique, I. 루빈, ‘마르크스의 가치론’, M. Heinrich, Introduction of , Monthly Review Press,
자본은 오직 가치증식을 위하여 자본이라는 물적 형태로 자신을 나타낸다. 이 때 자본이 자신이 투입한 자본을 통해 이윤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고, 토지를 제공한 자본가는 그의 대가로 지대를 얻는다는 환상이 만들어지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유의해야할 점은 바로 수입, 분배, 소득의 원천이 노동이라는 독특한 그러나 사회주의 운동을 비롯한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항시 지지받아왔던 그 물신주의이다. 마르크스가 비아냥거리며 말하듯이 “노란색의 대수(對數)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불합리한 표현”이 바로 ‘노동의 가격’이라 할 수 있다. K. 마르크스, op. cit., p. 1093.
노동자에게 임금이란 그의 노동의 대가라는 것은 지극히 불합리한 표현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거의 직관적으로 노동자가 자신의 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 노동자가 자신의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 오직 가치를 만드는 것은 노동임에도 노동은 빈곤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그것을 물신주의로서 맹렬하게 비난한다.
‘자본’ 1권에서 마르크스가 밝히듯이 노동력과 노동은 다른 것이다. 자본주의는 노동력의 가치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불하고 노동력 상품의 가치와 모순되는 그의 사용가치, 즉 자신의 가치 이상으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상품의 사용가치를 착취한다. 노동력(상품)은 노동과 다른 것이다. 그런 탓에 “임금(또는 노동의 가격)이라는 것은 노동력의 가치[또는 가격]의 불합리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것이라 할 수 있다. ibid., p. 1099.
그렇지만 우리는 임금을 노동의 대가로 바라보는 데 지극히 익숙하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라는 사회형태를 바라보는 대신에 오직 부와 분배라는 시점을 통해 물질적 생존을 위한 영원한 자연적 삶의 세계로서 자본주의를 바라보게 된다. 그럴 경우 잉여가치란 노동자의 몫에서 빼앗아간 부분으로 정의될 뿐이다. 물론 이런 가정에 선다면 가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노예제이든 봉건제이든 모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착취는 초역사적인 도덕의 문제가 되고 자본주의에 대한 과학적 비판은 윤리적 비판으로 치환되고 말아버린다. 이는 노동자운동의 역사는 물론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언제나 확인할 수 있는 유혹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르크스 역시 자신이 살아있을 즈음 이러한 윤리적 사회주의, 혹은 진정한 사회주의란 이름의 사회주의에 대하여 끊임없이 비판한 바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의 부와 분배의 사회주의의 영향력은 21세기의 금융화된 자본주의에서의 자본주의 비판에서 나타나는 분배와 소득의 조합주의적 환상에 견주면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자본삼위일체 정식에서 노동이란 계기에 주목하며 리카르도적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차이를 자본물신주의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강조하는 머레이의 글을 보라. Patrick Murray, The Illusion of the Economic: The Trinity Formula and the ‘religion of everyday life’, The culmination of capital: essays on volume three of Marx’s Capital, M. Campbell & G. Reuten eds., Houndmills & New York: Palgrave, 2002, pp. 246-72.
그렇다면 ‘수입의 원천’은 어떤 연유로 물신주의의 가장 완성된, 현실적(actual) 형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시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하여 보자.
“우리는 이미 앞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상품생산의 가장 단순한 범주들[즉 상품과 화폐]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사회적 관계[즉 부의 소재적 요소들이 생산담당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적 관계]를 이들 물적 존재 그 자체의 속성으로 전화시키고(상품), 또 더욱 분명하게는 생산관계 그 자체를 하나의 물적 존재로 전화시켜버리는(화폐) 바로 그 신비화하는 성격에 대해서 지적한 바 있다. 모든 사회형태는, 그것이 상품생산과 화폐유통을 가져오는 것인 한, 이런 전도에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는 그리고 그것의 지배적 범주이자 규정적 생산관계인 자본 아래서는 이 마법에 걸린 전도된 세계가 더한층 발전한다.” K. 마르크스, op. cit., pp. 1103-4.
(강조는 인용자)
“더욱이 자본은 연간 노동가치[따라서 노동생산물] 가운데 일부분을 이윤이라는 형태로 고정시키고, 토지소유는 다른 일부분을 지대라는 형태로 고정시키고, 임노동은 셋째 일부분을 임금이라는 형태로 고정시키고, 바로 이런 전화를 통해서 그것들을 자본가, 토지소유주, 노동자의 수입으로의 변환-그러나 이들 각각의 범주로 전환되는 실체(Substanz) 그 자체를 창출하지는 않으면서-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분배는 오히려 이 실체를 현존하는(Vorhanden) 것으로 전제한다. …… 자본, 토지소유, 노동은 생산담당자에게 세 개의 서로 다른 독립된 원천으로 나타나고, 바로 이들 독립된 원천으로부터 매년 생산되는 가치[따라서 이 가치가 그 속에 존재하는 생산물]의 서로 다른 세 개의 성분이 발생하며 이들 원천으로부터 이 가치의 여러 형태[즉 사회적 생산과정의 각 요소들의 몫으로 돌아가는 수입]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 이 가치 그 자체[즉 이들 수입형태의 실체]도 발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ibid., p. 1098.
인용한 두 개의 문단은 상품(화폐)물신주의와 자본물신주의(혹은 이 글에서의 분석을 위하여 변경하자면 소득물신주의, 신용물신주의)가 동일한 것임을 간략하게 밝혀준다. 이 둘의 공통점은 바로 “가치 대상성(value obejctivity)”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가치는 사회적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사물, 어떤 대상 자체의 속성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노동생산물이라는 물적 존재는 상품 형태라는 사회적 관계와 다르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그것은 그렇게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어떤 노동생산물이든 다른 노동생산물과 교환을 위해 생산된 것인 한 그것은 결국 상품이란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상품 형태는 모든 노동을 동등화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구체적 노동과 구분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특유한 노동인 추상적 사회적 노동이다.
그렇지만 이는 보다 풍부하게 발전된 경제적, 사회적 관계를 거치면서 자본물신주의로 나타난다. 이제 자본이라는 물적 존재는 그 자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노동력을 상품으로 만들어냄과 더불어 노동자에게 자신이 받는 임금이 노동이라는 구체적인 노동의 대가와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는 자신의 생존과 재생산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 상품의 가치를 임금이란 형태로 지불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노동 전체에 대한 대가를 받은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자본가에게는 그의 자본이, 토지소유자에게는 그의 토지가, 노동자에게는 그의 노동력이 …… 이윤, 지대, 임금이라는 그들의 독자적인 수입의 세 가지 다른 원천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ibid., p. 1097.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노동을 바라볼 경우 그것은 “임노동이라는 규정성과는 다른 어떤 사회적 규정성으로 살펴보는 것”이 되고 만다. ibid., P. 1099.
그렇다면 이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가치 관계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부의 생산과 분배의 문제로 바라보는 끈덕진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의 위기의 시기에 접어들면 더욱 왕성한 형태로 되돌아온다. 노동자의 빈곤이 점차 완화되고 개선된 듯이 보이는 역사적 시대가 저물고 실업과 빈곤이 확대되는 것이 누구의 눈에나 뚜렷해지는 시기에 접어들면 물신주의는 더욱 극성스럽게 그리고 보다 화려한 형태로 자신을 확장하며 나타나게 된다. 그렇지만 앞서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물신주의는, “착시 또는 미신처럼 – 하나의 주관적 현상, 현실에 대한 잘못된 지각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현실(특정한 사회적 형태 또는 구조)이 나타나지 않을 수 없는 방식을 구성한다. 이러한 적극적인 나타남(착각(Schein))인 동시에 현상(Erscheinung)은 그것 없이는 특정한 역사적 조건들 속에서 사회생활이 전연 불가능한 매개 또는 필연적 기능을 구성한다. 외양을 제거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를 제거하는 것이다.” E, 발리바르, ‘마르크스의 철학/마르크스의 정치’, 윤소영 옮김, 문화과학사, p. 92.
그러나 우리의 상식은 이를 끊임없이 부인한다. 우리에게 있어 그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기만으로도 제거할 수 없는 유일한 실재,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한 삶의 실체는 노동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노동은 환상의 적수이고 해독제이며 유혹의 사이렌에게 자신의 목숨을 내주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우리의 체험과 의식의 돛대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말하듯이 노동은 “단지 하나의 유령일 뿐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추상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 그것만으로 보면 결코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K. 마르크스, op. cit., p. 1089
그러므로 노동을 통한 살림살이, 임금소득을 통한 보다 나은 세상이라는 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둘러싼 환상을 더욱 연장시키는 데 기여할 뿐이다. “부의 사회적 요소들 간의 독립화와 화석화, 물적 존재의 인격화와 생산관계의 물화, 일상생활의 종교”라고 마르크스가 말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ibid., pp. 1108-9.
그렇지만 임금소득이라는 것이 자본물신주의의 편린이라면, 이는 금융화와 더불어 더욱 강화되고 화려한 재주를 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신용물신주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부채가 소득의 타자인 것이 아니라 소득의 또 다른 원천으로 둔갑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그것은 바로 노동자에게 임금이란 바로 화폐적 형태를 통해 나타나고 다시 이 화폐는 신용이라는 경제적 실천에 의해 매개되면서 소득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현상하기 때문이다.
“화폐는 그 자체 이미 잠재적으로 스스로를 증식하는 가치이며, 그것이 그런 가치로서 대부되는 것이 곧 이 고유한 상품의 판매형태이다. 배나무가 배를 열매 맺는 것이 그의 속성이듯 화폐가 가치를 창출하고, 이자를 낳는 것도 바로 화폐의 속성이 된다. 그리고 화폐대부자는 자신의 화폐를 바로 그런 이자 낳는 물적 존재로서 판매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즉 이미 본 바와 같이 실제로 기능하는 자본까지도 그것이 기능하는 자본으로서가 아니라 자본 그 자체[즉 화폐자본]로서의 이자를 낳는 것처럼 스스로 나타난다.”(강조는 인용자) K. 마르크스, ‘자본 III-1’, 강신준 옮김, 길, 2008, p. 515.
“G-G′에서 우리는 자본의 무개념적 형태, 그리고 생산관계가 극도로 전도된 형태와 물화된 형태를 보는데 그것은 곧 이자 낳는 형태로서, 자신의 고유한 재생산과정을 전제로 하는 자본의 단순한 형태이며, 또한 재생산과정과 무관하게 자신의 가치를 증식시킬 수 있는 화폐[혹은 상품]의 능력이다. 그것은 극히 휘황한 형태로 신비화된 자본의 형태이다.”(강조는 인용자) ibid., p. 515.
마르크스는 이자 낳는 자본의 형태에서 나타나는 화폐의 마법에 대하여 폭로한다. “배나무가 배를 열매 맺는 것이 그의 속성이듯 화폐가 가치를 창출하고, 이자를 낳는 것도 바로 화폐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화폐의 환상은 이제 더 이상 대부자본가의 환상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자의 임금 소득은 바로 화폐라는 형태로 인해, 이자 낳는 자본의 환상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예컨대 부동산담보대출은 주거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즉 사용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유일하게 자신의 생존을 지켜줄 수 있는 자산이 된다. 그것은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얼마든지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지속적인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그것이 화폐를 낳을 수 있는 화폐로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확고부동하게 믿도록 한다. 화폐물신주의의 환상은 부동산불패의 환상과 함께 서로 즐겁게 춤을 추는 것이다. 그리고 이 환상은 이자 낳는 자본의 전유물이 아니라 노동자에게로 전염된다. 노동자 역시 임금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소득을 획득하는 한, 그것의 화폐 형태로 인해 그 환상에 얼마든지 전염될 수 있다. 어느 투자상품 광고가 천연덕스럽게 말하듯이 스스로 일하지 말고 ‘돈이 스스로 일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자 낳는 자본에서는 자본물신성의 개념(표상)이 완성되어 있다”는 마르크스의 지적은 이제 임금 소득을 통해 부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노동자에게 확장된다. ibid., pp. 524-5.
노동자는 자신의 신용등급에 따라 보장된 미래의 화폐 소득을 미리 당겨 쓸 수 있는 능력을 이용해 신용구매를 한다. 그리고 그는 신용카드가 제공하는 할인 구매의 이점, 다양하게 적립된 포인트와 부가적인 혜택(이를테면 A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B 체크카드로 5만 원 이상 결제하면 계란 한 판을 거저 주며, C 데빗카드로 결제하면 적립금을 두 배로 준다는 식의)을 누리면서 돈을 벌었다고 흡족해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사용할 부분을 줄이고 미래에 얻을 자신의 부 즉 미래에 얻게 될 사용가치에 대한 기대로, 어느 상품과도 교환될 수 있는 상품의 신, 사회적인 권력을 개인화해주는 바로 그 화폐를 투자한다. 그것이 정기예금이든 연금저축펀드이든 상관없다. 그는 거의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금융상품(최근 보험상품을 비교하고 구매할 수 있다는 어느 서비스업체의 말을 빌자면 보험상품만 해도 1만5천 가지에 해당된다) 속을 헤엄치며 자신에게 달콤한 미래의 부를 꿈꾸게 된다. 마치 쇼핑을 하듯이 매일 새로운 금융상품을 골라 구매하도록 추천하는 대중문화적 현상(TV와 신문, 그리고 인터넷 매체, 다양한 재테크 관련 강좌와 소모임 등을 상기하자)은 이러한 전환을 더욱 일상화한다. 그리하여 자본물신주의는 신용물신주의와 만나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조직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물신주의는 위선적이고 잘못된 의식(意識)이기는커녕 “주체가 삶의 조건들과 맺는 필연적인 관계의 토대”이기에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원리로서 작용한다. J. Milios & D. Dimoulis, Commodity Fetishism vs. Capital Fetishism, Historical Materialism, 12 (3), 2004, p. 39.
그것은 주관적인 환상이면서 그 환상을 통해 작용하는 객관적 세계의 편에서의 환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물신주의는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것이다. 아니 앞서 인용한 발리바르의 생각을 빌자면 그것은 동시적이고 동연(同延)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고전경제학을 두고 말하듯이 그들이 경제적 삶을 인식하는 방법은 지극히 타당한 “객관적 사유형태”인 것이다. K. 마르크스, 『자본 I-1』, 강신준 옮김, 길, p. 139.
그렇기에 고전정치경제학은 과학적인 지식이지만 또한 필연적으로 환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가 유의할 점은 그것이 ‘주관적’이지 않은 객관적 사유형태라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신용물신주의를 통해 극단적으로 확장된다. 신용은 화폐의 모순(가치척도로서의 화폐와 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 전체 상품의 가치 크기를 나타내야 하는 화폐의 기능과 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 기능에 따른 화폐의 근본적인 불안정성이라는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잠정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신용이 담당하게 될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을 통해 이뤄진다. 화폐와 신용의 관계에 대한 마르크스의 사유를 이해하기 위해 다음의 주요한 이론적 기여를 참조할 수 있다. S. de Brunhoff, Marx on money, M. Goldbloom Trans. Urizen Books, 1977. M. Itoh & C. Lapavitsas, Political economy of money and finance, New York: Palgrave Macmillan, 1999.

그러나 신용(credit), 즉 신뢰를 향한 믿음과 그것을 구성하는 다양한 장치, 기술, 윤리적 규범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내부로부터 직접적으로 내재적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발달시킨 다양한 금융의 관행과 이에 딸린 장치들을 통해 보완되어야 한다. 신용의 사회적 형성과 변화는 사회학과 인류학에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한 간단한 개관으로는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B. G. Carruthers & L. Ariovich, Money and Credit: A Sociological Approach, Polity, 2010. K Hart & H. Ortiz, The Anthropology of Money and Finance: Between Ethnography and World History, Annual Review of Anthropology, Vol. 43. G. Peebles, The Anthropology of Credit and Debt, Annual Review of Anthropology, Vol. 39.
예를 들어 국가에 의한 예금보증과 같은 법률적 형태에서부터 펀드, 선물, 옵션과 같은 다양한 금융 거래에 대한 국제 시장의 인가와 장려, 신용파산 승인을 통한 부채의 보전과 재판매에 이르는 온갖 관행들이 없다면 신용은 전개되고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신용은 언제나 국가를 비롯한 비경제적인 사회적 실천의 권력을 동원하고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적 신용의 사회적 특성에 관한 분석에 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D. 하비, ‘자본의 한계’, 최병두 옮김, 한울, 1995. C. Lapavitsas, Social foundations of markets, money and credit, London & New York, Routledge, 2003.
이는 신용의 사회적 토대의 본성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신용의 특성을 과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지불수단이자 축장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에서 비롯되는 신용을 과장하는 것이 유행이다. 이들은 화폐의 본성을 바로 신용에서 찾고 이로부터 화폐 역시 신용에 근거하여 정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자본주의의 모순은 일반화된 상품생산으로부터 비롯되는 착취적 사회관계, 즉 자본과 임노동 간의 적대적 모순이 아니라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환원된다.
그러나 채권/채무의 관계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사회관계에 우선한다는 발상은 또 다른 형태의 물신주의일 뿐이다. 보다 우선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물신주의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물신주의에 관한 가장 유명한 정의는 “인간 두뇌의 산물이 독자적인 생명을 부여 받고 그들 간에 또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관계를 맺는 자립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K. 마르크스, ‘자본 I-1’, 강신준 옮김, 길, 2008, p. 135.
반면 신용의 선차성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이는 다시 뒤집혀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르크스가 표현한 것처럼 상품과 화폐라는 ‘필연적인 가상’을 통해 객관적인 사회 형태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눈에 자본주의는 더 없이 투명한 폭력의 세계로 나타나고 빚이라는 영원한 저주에 속박된 삶의 만화경으로 현상하게 된다. 이러한 주장은 금융위기를 전후하여 화폐와 금융을 악마시하는 무정부주의적인 정치적 상상을 통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경제신학비판으로서의 자본주의 비판은 사회관계로서의 자본주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런 경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시도로는 D. 그레이버의 저작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D. 그레이버, ‘부채 그 첫 5,000’,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11. 아울러 다음의 저작 역시 참조하라. M. 라자라토, ‘부채인간’, 허경, 양진성 옮김, 메디치, 2012.
이는 상품, 화폐 물신주의를 배가한(re-doubling) 형태로 생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상품, 화폐, 자본 물신주의가 사물들의 관계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나타내며 사물의 자연적, 대상적 속성으로부터 모든 경제 현상을 설명하려 한다면, 이제 신용물신주의는 인격적 사회관계 그 자체로부터 물질적인 사회관계의 기원을 발견하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물의 물신주의는 이제 인격적인 주체의 물신주의로 뒤집어진다. 금융위기 전후하여 상당한 윤리적 매력을 발휘하는 것이 신용의 도덕 경제를 비판함으로써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비판을 대신하는 것이란 점은, 예상할 만한 일이고 또 불가피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신용물신주의를 지속시키고 증대시키며 또 공고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그것이 상품, 자본물신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란 점 때문이다.
물신주의 비판의 문화정치학
지금까지 우리는 마르크스의 물신주의 담론을 참조하면서 금융화된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형태의 물신주의, 무리를 무릅쓰고 스스로 만들어낸 조어로 ‘신용물신주의’라고 정의한, 그것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신용물신주의의 토대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초래한 빈곤과 실업, 삶의 불안정성을 배경으로 한다. 발전 국가로서 남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꾸준한 환상, 즉 열심히 일을 하면 삶은 언젠가 나아질 것이라는 환상, 노동으로부터 부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객관적) 믿음은 ‘워킹 푸어’같은 냉소적인 개념을 통해 부정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부의 원천으로서의 노동, 그리고 그 노동의 대가로서의 임금이라는 환상은 금융화를 경유하며 새로운 물신주의적 형태로 번안된다. 그것은 이자 낳는 자본이 만들어내는 극단적인 형태의 환상에 노동자를 연루시킴으로써 가능하다. 노동자는 이제 노동자와 가계의 개인적 소득을 통해 수탈을 하려는 금융자본의 기획에 포획된다. 그리고 가장 믿을만한 자산이자 수익의 원천으로 간주된 부동산을 구매하려는 부동산담보대출은 물론 신용을 통한 소비, 나아가 배당과 이자를 통해 출산, 육아, 교육, 노후, 건강 등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투자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이런 전환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모순이 새롭게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렇지만 현재의 노동자 임금 소득을 탈취하고 나아가 미래의 소득을 압착하여 이윤을 얻는 금융자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간단히 찾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양극화 혹은 극단적인 분배의 불평등은 윤리적인 멜로드라마를 그려내는데 쓸모 있을지 몰라도 상품, 화폐, 자본, 임금, 이자와 같은 형태를 통해 물질적 생산이 조직되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불평등을 초래한 원인이 바로 그러한 형태로 물질적 사회관계가 현상하게 되기 때문이란 점 역시 파악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운동을 조직하는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원리는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보다 다채롭고 음험한 형태로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세련되게 자신을 관철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새삼스럽게 물신주의란 개념을 참조하고 또 강조하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금융화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수탈자로서의 금융자본가의 전횡과 폭력을 고발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는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을 비판하는 것과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부정하는 것을 동일시했던 것과 동일한 사유와 실천의 노고를 요구한다. 물신주의를 넘어선다는 것은 그런 방식으로 필연적으로 현상할 수밖에 없도록 한 사회적 관계 자체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그 사회적 관계를 제거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이 그렇게 나타나는 외양을 제거하여야 한다. 그것을 제거하지 않은 채 실체를 제거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금융자본의 수탈이라는 “비합리적 과열”을 제거함으로써 자본주의를 합리화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없다. 금융의 과도한 지배를 제거하고 화폐와 신용의 폭력을 제어함으로써 보다 생산적이고 안온하며 나름 공정하기조차 했던 자본주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에 의해 파괴된 사회를 보호하고 그 사회를 보호하고자 하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적인 투쟁”(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신용조합, 지역통화, 기본소득 등)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공적으로 공급되어야 할 사용가치의 상당부분을 시장에서 구매하여야 하고 자신의 재생산을 위해 임금은 물론 다양한 금융적 수단에 의존해야 할 때, 우리는 금융화된 자본주의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만다. 자녀를 교육하고 노후의 안전한 생활과 예기치 않은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저축을 하고 투자를 해야 한다. 그렇게 모아진 돈은 거대한 대부자본을 이루어 다시 노동자에게 대출을 비롯한 다양한 신용을 통해 공급된다. 그리고 결국 이는 다시 노동자의 개인적 소득을 빨아들인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장에서 구매하여야하는 사용가치 대상(주거, 교육, 교통, 보건, 상하수도, 전기, 통신서비스 등)을 공적인 공급 대상으로 만들어내려는 투쟁은 지극히 중요하다. 자기소유 주택+공적 연급+개인 펀드라는 3중벽을 쌓아야 노후가 안전하다는 재무설계 컨설턴트와 금융업자의 능청맞은 서사는 불안과 위태로움에 떠는 이들에게는 유혹적이다. 그러나 이는 금융화된 자본주의에 깊이 연루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금융에 대한 문해력(literacy)을 기르는 시민경제교육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임금 수입에 의존하지 않은 채 생존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내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화폐와 신용의 물신주의가 만들어낸 삶의 문화적 경제적 조건을 개혁하려는 투쟁, 유럽과 남미에서 확대되고 있는 무료의 혹은 저렴하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재를 획득하려는 투쟁은 중요하다. 그것은 작고 사소한 개혁이지만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폐지하기 위한 투쟁에 불가결한 물신주의 비판의 계기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
_맑스 꼬뮤날레 발표 원고 초고

착취의 회계학: 금융화와 일상생활 속의 신용물신주의1



Beacon – Into The Night

“이자 낳는 자본에서 자본관계는 가장 표피적이 물신적인 형태에 도달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G-G′을 보게 되는데, 이는 곧 양극을 매개하는 과정 없이 스스로 증식하는 가치이며 더 많은 화폐를 생산하는 화폐이다.” K. 마르크스, 자본 III-1, p. 513.

빚과 소득의 정치경제학: 부채주도성장에서 소득주도성장으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처한 모습을 묘사할 때 이제 더 이상 빚이란 음산한 유령을 떼어놓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자본 간의 거래를 조직하고 다양한 신용 및 신용화폐를 만들어내는 배경이 될 때 빚은 전연 음산하지 않다. 외려 그것은 경제를 더 없이 윤활하게 작동시키는 마법의 장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한계를 모르는 것처럼 불어나는 개인과 가계 및 정부의 부채로 나타날 때, 그 마법은 이제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주문과도 같은 모습으로 돌변하게 된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희대의 빚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그 빚을 증권화(유동화)함으로써 더 많은 신용을 창출하고 그로부터 엄청난 이익을 얻으려한 금융자본의 개입 그리고 그에 연관된 정치적 제도와 법률, 이를 뒷받침한 정보통신기술 및 금융혁신기법이란 해괴한 명칭으로 알려진 다양한 금융공학과 그 테크놀로지가 뒤엉킴으로써 가능하게 된 일이었다. 그렇지만 고도금융을 통한 전례 없는 자본주의의 성장이라는 환상은 빚이라는 유령과 만나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다.
한국에서도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국경제가 처한 최대의 문제가 가계부채와 정부부채라는 진단은 굳이 경제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리고 사태는 그리 복잡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개인이나 가계 그리고 정부 모두 너무나 많은 빚을 지고 있고 그 빚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소비가 줄고 경제도 어려워지며 나아가 성장 자체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2015년 초 야당 대표를 맡게 된 문재인은 부채주도성장에서 소득주도성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새로운 경제민주화의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그가 제시하는 소득주도성장론은 ‘분배’라는 쟁점에 쏠린 잇단 관심과 그를 에워싼 뒤숭숭한 정경 속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난을 못이겨 자살을 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은 빈곤의 끔찍함을 증언하였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출간과 반향 그리고 이를 둘러싼 떠들썩한 논쟁은 분배를 둘러싼 지적, 정치적 탐색을 부추겼다. 그리고 야당의 대표를 급기야 맡게 된 그는 이른바 부채주도성장론에 대응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소득주도성장’이란 것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것은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소비 능력을 키우고 이를 통해 내수활성화를 이루겠다는 소위 ‘두툼한 지갑론’이 핵심”인 것으로 요약된다. ‘‘소득주도 성장’의 경제정책‘, ‘경향신문’, 2015. 2. 10.
문재인은 2014년 11월 12일에 “부채주도성장에서 소득주도성장으로”란 이름으로 개최된 소득주도성장 2차 토론회의 기조발제 원고에서 “박근혜 정부의 부채주도성장은 지속불가능한 성장전략”이라고 성토하면고 “빚내서 집사고, 빚내서 소비하고, 빚내서 투자하면 그 귀결은 결국 파산”이고, “부채를 기반으로 경제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은 잠시는 달콤할지 모르지만 결국은 다음 정부로 폭탄을 떠넘기는 무모한 짓”이라고 강변하다. 그리고 “진보는 성장에 무능하거나 성장을 소홀히 한다는 편견”은 어불성설이며 김대중, 문민정부의 경제성적표가 좋았음을 상기시키고, 성장을 이루면서도 국민의 생활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소득주도성장’을 제안한다. 이는 그의 말을 빌자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높여줘서 중산층과 서민을 살리면서 내수기반의 성장동력을 높이는 전략, 즉 ‘더 벌어 더 쓰는 성장전략’,” “소득이 증가하면 그만큼 소비가 확대되고, 내수가 살면, 일자리가 늘면서 성장이 이뤄지는 선순환”을 도모하는 기획이다.
그가 언급하는 부채주도성장에서 소득주도성장으로의 전환이라는 제안은 상당히 그럴싸하게 들린다. 이는 심지어 금융 주도 축적이라는 일부 좌파 경제학자들의 표현을 매우 대중적인 용어로 각색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문제를 둘러싼 학술적인 토론과 논쟁을 알기 쉬운 표현으로 바꾸어 내고 노동자를 비롯한 대다수의 근로 소득 생활자에게 위안과 희망이 될 만한 전망을 제시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자본주의가 처한 모순과 적대를 규제하거나 조정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특정한 정치적 표상을 통해 나타난다. 이는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착취와 불평등을 초래하는 원인을 특정한 대상(예를 들면 금융 투기, 부채 등)이나 주체(약탈적 대부업자, 투기적 해외금융자본가, 자산소득을 통한 부의 축적을 장려하는 정치가 등)에게서 찾는다. 그리고 이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지갑을 채워주는 성장, 소득, 일자리 등이 자리하게 된다. 그리고 야당의 정치지도자의 발언을 따르자면 부채인가 소득인가라는 상징적인 대립이 한국 자본주의가 처한 문제를 압축적으로 표상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관심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런 정치적 상상은 명쾌하다. 경제적 곤궁과 고통과 그를 해결하기 위한 전망을 단순한 표상 속에 이전한다. 부채 대(對) 소득. 이런 대구(對句)는 매우 효과적인 듯 보인다. 빚 부담, 소득 감소, 경기 침체, 그리고 저성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그것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괜찮은 일자리를 얻어 꾸준히 소득을 늘리며 그를 통해 내수를 확대하고 성장 역시 이룩할 것인가. 당연히 이에 대한 답은 뻔하다. 부채가 아닌 소득, 그리고 부채주도성장보다 소득주도성장이 나은 것도 당연해 진다. 게다가 소득주도성장이란 슬로건은 그에 연관된 정책과 법률, 제도 개혁 등으로 구체화될 수 있는 은유의 사슬을 만들어낸다. 소득주도성장은 고용과 분배, 수요와 공급 등의 일련의 경제적 대상을 결합하며 그 사이에 연관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소득주도성장 프로그램은 일을 하고 그를 통해 먹고 살아가는 이들을 변화의 주역이자 수혜자로 내세운다. 그로부터 보다 보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정치적인 프로그램이 제안된다. 그렇기에 부채주도성장에서 소득주도성장으로 나아가자는 주장은 자유주의적 야당과 시민사회운동 그리고 광범한 좌파 정치세력들을 유인할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프로그램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부채와 소득은 서로 대립적인 것일까. 부채주도성장에서 경제의 악(惡)으로 취급되는 부채가 소득 그 자체가 스스로 변신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또 어떤 경우에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면 어떨까. 부채가 소득의 타자이기는커녕 새로운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물신화된 부의 화신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양한 금융기관(투자펀드, 신용평가기관, 주택대부조합, 소매금융회사, 학자금융자기관, 신용카드업자를 위시해 중앙은행과 IMF, 세계은행에 이르는 잇단 자본주의적 신용의 사슬)과 국가기구, 그리고 산업자본가 집단은 금융에서 부가 나온다는 주문(呪文)을 되풀이 했다. 단적으로 그들은 빚을 얻어 집을 사게 하였고 소유자 사회(the ownership society)의 오랜 꿈을 실현하고 있다고 자처했고, 그렇게 생겨난 채권은 자산유동화기관을 통해 다양한 증권으로 탈바꿈했으며 그것은 높은 수익을 낳는 즉 스스로 가치를 낳는 황금 거위에 다름 아니라고 역설하였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은 주택가격의 상승으로 얻을 수 있는 잠재적 부에 도취되어 즐겁게 신용카드로 쇼핑을 다녔다. 그들은 최신형 휴대전화를 구입하고, 신형 SUV를 몰며, 새롭게 단장한 근교 쇼핑몰로 갔을 것이다. 그들은 전에 없던 비상금(nest egg) 주머니를 찼다고 믿었고 그것이 더 필요하면 다시 계약금도 낮고 초기 이자 역시 낮은 주택대출을 이용해 다시 돈을 낳는 거위 한 마리를 더 구하면 될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리고 이는 뒤에서 밝히겠지만 절대 기만도 아니고 착각도 아니었다. 사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반면 소득은 어떨까. 부채로부터 부가 나온다는 믿음이 순전히 기만이라면 임금 소득, 노동을 통한 대가는 기만으로부터 벗어난 투명하고 정직한 현실 자체인 것일까. 우리는 오늘날 진정한 부의 원천, 유일하게 현실 속에 굳건히 뿌리내린 부의 기원, 그것은 노동이라는 믿음을 배반당한 것처럼 분노하기 일쑤이다. 빚은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고 어떤 가치도 만들어내지 않은 채 오직 노동의 결실로부터 자신의 몫을 빼앗아가려는 자들의 몫이기만 한 것일까. 그렇기에 빚은 노동이 스스로를 실현하는 것을 가로막는 수렁 혹은 장애물이기만 한 것일까. 이런 정치적 상상은 더욱 노동에 대한 애착을 강화한다. 일을 하면 할수록 가난을 면치 못하고 빚을 지고 살아야 한다는 비극적인 플롯은 노동을 더욱 숭고하고 존엄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빚의 악에 노동의 선을 대치시키는 것은 동일한 물신주의 안에 머무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관한 비판을 부의 분배와 불평등에 대한 비난으로 제한하고 윤리적인 거부로 과학적인 비판과 전환을 대신하게 만들 뿐이다.
이 글은 이런 문제를 염두에 두면서 금융화란 최근의 변화와 그에 따른 효과로서의 부채의 경제를 준별한다. 이를 위해 다음 장에서는 금융화를 금융자본에 의한 노동자 및 가계의 개별 소득의 수탈(expropriation)이라고 정의하고 이것이 전개되고 나타나는 모습을 간략하게 묘사한다. 다음으로 이러한 금융화가 경제적인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또한 경제적 삶을 재현하고 체험하게 하는 객관적인 가상, 즉 물신주의와 불가분하다는 점을 밝힌다. 이를 위해 마르크스의 자본물신주의 담론을 참조하고 이를 상품, 화폐 물신주의와 연결하면서 금융화된 경제에서 출현하는 물신주의를 신용물신주의로 규정하고 임금 소득이라는 자본의 삼위일체 가운데 하나의 계기가 이자라는 또 하나의 계기와 결합하면서 작용한 결과로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분배의 정치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적대적 모순을 제어하고 나아가 그를 폐지하기 위한 ‘전화(transformation)’의 정치와 결합하기 위해 무엇보다 물신주의 비판과 자본주의 비판을 결합해야 함을 강조할 것이다.
자본물신주의와 신용: 프롤레타리아에서 크레디타리아(creditariat)로?
1) 금융화된 세계의 일상 종교
최근 자본주의의 변화를 재현하는 주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금융화(financialization)일 것이다. 금융화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를 모두 망라하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수많은 작업이 있었다. 금융화를 둘러싼 논의를 요약하고 소개하는 대표적인 글로 일단 다음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금융화에 관한 논의의 흐름을 개관하는 글로 다음의 글들이 있다. Thomas Marois, Finance, finance capital and financialization, Elgar companion to Marxist economics, Ben Fine et.al. eds., Cheltenham, UK & Northampton, MA: Edward Elgar, 2012. C. Lapavitsas, Theorizing Financialization, Work Employment & Society, 25(4), 2011. 금융화를 둘러싼 비판적 정치경제학 및 문화연구, 지리학, 인류학 등의 분야에서의 논의의 대표적 경향을 요약하는 것으로는 다음 저작을 참조할 수 있다. Ismail Erturk et. al. eds. Financialization At Work: Key Texts and Commentary, London & New York, Routledge, 2008.
금융화가 정작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관한 의견들은 분분하다. 이를 축적 체제 자체의 전환으로 이해하며 금융주도축적이란 개념으로 부르는 의견에서부터 R. Boyer, Is a Finance-led growth regime a viable alternative to Fordism? A preliminary analysis, Economy and Society, 29: 1, 2000.
소유자계급의 반격을 통해 경영자본의 헤게모니를 제압하며 금융부문을 통해 이윤을 만회하려는 경향으로 간주하는 이들 뒤메닐과 레비의 입장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G. 뒤메닐, D. 레비, ‘자본의 반격’, 이강국, 장시복 옮김, 필맥, 2006. G. 뒤메닐, D. 레비, ‘신자유주의의 위기’, 김덕민 옮김, 후마니타스, 2014. J. 비데, G. 뒤메닐, ‘대안마르크스주의’, 김덕민 옮김, 그린비, 2014.
, 주주가치의 극대화를 통해 기업지배구조를 조정하고 단기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 순환의 경향으로 보는 이들, 나아가 일상생활의 금융화란 개념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의 전환의 계기로서 금융화를 바라보는 이들 R. Martin, Financialization of daily life, Philadelphia: Temple University Press, 2002. R. Martin, An empire of indifference,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7. The everyday life of global finance : saving and borrowing in Anglo-America, P. Langley, The everyday life of global finance, Oxford &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와 강조점 역시 각기 다르다. 그렇지만 금융화란 개념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규정할 수 없으므로 그것을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거꾸로 그것이 바로 그 용어의 장점이기도 할 것이다.
금융화는 현실에 대한 술어적인 규정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현재의 역사적 시대에서 조직되고 전개되는 모습을 규정하기 위한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금융이라는 경험적 대상 세계(은행, 투자은행, 국가, 도소매업자, 개인 소비자, 부채와 선물, 옵션, 파생상품, 월스트리트와 시티, 여의도 등)와 주체(정부, 기업, 금융업자, 노동자, 대중매체 등), 제도(국제금융기구, 중앙은행, 역외금융, 그림자금융, 미소금융, 금융 관련 시민운동, 여성주의 운동조직 등) 등을 어떻게 분석하고 표상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금융은 자본주의가 자신을 실현하는 다양한 요인들 사이의 관련과 그 배치를 새롭게 이해하도록 이끄는 쟁점일 것이다. 그리고 지역사회, 공동체, 국가는 물론 국제관계에 이르는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현실이 조직되고 변형되는 계기를 파악하도록 한다. 유로화와 유로존, 공공부채에 대한 토론 없이 유럽연합을 생각한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이 글에서는 금융화를 정의하고자 할 때 마르크스주의자인 라파비차스와 도스 산토스의 분석을 참조한다. C. Lapavitsas, Profiting Without Producing: How Finance Exploits Us All, London & New York, Verso, 2014. Financialised capitalism: crisis and financial expropriation, Historical Materialism, 17 (2), 2009, P. L. dos Santos, On the content of banking in contemporary capitalism, Historical Materialism, 17, 2009.
그들이 정의하는 바에 따르면 금융화는 지난 수십 년간 선진 자본주의국가와 발전국가에서 나타난 자본과 노동 간의 착취적 사회관계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규정하는 원인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입장은 금융화를 자본주의 축적과 순환의 체계나 자본주의의 위기의 경향(특히 이윤율의 추이) 등에서 금융화를 이해하려는 입장과 구분된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들의 생각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자본이 산업자본가로부터 노동자계급이 생산한 잉여가치(이윤)의 일부를 이자의 형태로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노동자의 삶을 위해 소비되어야 할 임금을 이윤의 원천으로 수탈하는 것이라 보는 데 강조점이 있다. 라파비차스의 저작의 제목처럼 “생산 없는 이윤 취득”에 따른 지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좇을 때 우리는 자본물신주의의 가장 극단적이고 사악한 형태를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의 임금은 노동자 자신의 재생산을 위해 이용되어야 할 즉 소비를 통해 사용가치로 전환되어야 할 가치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를 가치를 낳는 가치로 둔갑시키며 금융자본은 수탈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소득의 수탈이 외려 새로운 소득의 원천으로 둔갑하는 물신적인 전도를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그들이 제시하는 금융화는 자본물신주의 나아가 신용물신주의라 부를 수 있는 물신주의의 논리를 설명하는 데 이점을 제공한다.
라파비차스와 도스 산토스가 정의하는 금융화는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197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의 금융적 이윤의 추이(라파비차스), 은행업의 성격 변화(도스 산토스)를 분석한다. 물론 이는 금융화의 추세가 서구의 발전된 자본주의국가에만 해당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워싱턴-컨센서스 이후 발전국가에 강요된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특히 금융시장의 개방을 중심으로 미국 헤게모니의 자본주의체제로의 편입을 강요하였고, 특히 유사 세계화폐(world money)로 기능하는 달러의 영향 하에서 해외 자본의 금융업 진출은 발전국가에서도 금융화를 폭발적으로 진척시켰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노동자 개인 소득과 가계의 수탈을 통한 금융 자본의 이윤 취득이란 관점을 중심으로 볼 것이기에 둘 사이의 역사적 지배 관계는 뒤로 미뤄두기로 한다. ‘종속적 금융화(subordinate financialization)’이란 용어를 통해 발전국가에서의 금융화 경향의 특성(특히 종래의 제국주의와 구분되는 자본의 역 흐름 혹은 역수출 경향)에 대해서는 라파비차스의 다음 글을 참조하라. C. Lapavitsas, Profiting Without Producing: How Finance Exploits Us All, London & New York, Verso, 2014, pp. 245-55.
그리고 이로부터 거대 산업 및 상업 기업들이 신용의 원천으로서 은행을 이용하는 것을 피하고 대신 공개시장에서 금융 자원을 얻거나 유보 이득에 점점 의지하는 자기금융(self-finance)을 통하는 경향을 확인한다. 이 때문에 은행은 주거, 교육, 연급 등의 공적 공급이 삭감되는 과정에서 개인 대출로 방향을 전환하고 이를 통해 개별 노동자들에게 대한 새로운 금융 서비스 제공을 통해 수익 원천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상업은행들은 공개금융시장에서 채권, 증권, 파생상품 등의 거래에 쏠리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금융화를 자본주의의 착취적 사회관계의 재구조화로 바라본다고 여길 수 있다. 그들이 보기에 금융화란 개인의 사적 소득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금융적 이윤을 수탈하는 것과 보다 확대된 금융 시장 영업을 결합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윤의 일부 즉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 가운데 일부를 이자란 형태를 통해 수취하는 것을 넘어 노동자의 임금을 빼앗아가는 수탈을 통해 지배한다. 라파비차스는 이를 ‘소외(alienations)’ 혹은 ‘수용(expropriation)’에 따른 이윤이라고 칭하면서 그것을 잉여가치의 분배를 통해 획득한 이윤과 구분한다. 앞의 글, pp. 138-68. 이는 공유지의 수탈을 통한 자본의 축적을 설명하며 이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특징이라고 설명하는 데이비드 하비의 분석과 대조적이다. D. 하비, ‘신자유주의’, 최병두 옮김, 한울아카데미, 2007.

이는 발전된 자본주의국가에서 전개된 추이이지만 이는 한국 자본주의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은행업의 성격의 변화라는 면에서도 역시 우리는 동일한 과정이 관철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도스 산토스는 “은행활동에서 최근의 변화 가운데 가장 의미심장한 측면은 은행 이윤의 원천으로서 개별 임금 소득으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은행 대부는 기업 대부로부터 가계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소비 및 모기지 대출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투자 은행 영업 역시 소매 투자 펀드 서비스들에 의해 상당하게 추동되는 전체 은행 형태들에 있어 증가하여왔다”고 말한다. P. L. Dos Santos, At the Heart of the Matter: Household Debt in Contemporary Banking and the International Crisis Research on Money and Finance, Discussion Paper No. 11, SOAS, 2009, p. 6.
그런데 이런 언급은 한국에서도 거의 일치한다. 한국에서 은행업을 비롯한 금융자본의 활동 추이를 보여주는 것으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할 수 있다. 양두용 외,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금융국제화 진전과 향후 과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04. 한국금융연구원, ‘한국금융산업발전사’, 한국금융연구원, 2014.
한국은행이 2012년 가계부채의 원인을 진단하기 위해 행한 조사보고서를 살펴보면 방금 언급한 산토스의 서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행, ‘부채경제학과 한국의 가계 및 정부부채’, 2012.
『가계부채 상황에 대한 분석 및 평가』라는 해당 보고서에 실린 연구는 가계부채 급증의 배경의 공급 측 요인으로서 금융기관의 운용 방식에서의 변화를 꼽는다. 이는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먼저 은행의 대출 여력을 확대한 금융기관의 대출가용성이 신장한 것(특히 CD, 은행채 발행의 증대), 다음으로 대기업의 내부 보유가 증대하고 직접금융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에 따라 은행 경영 전략이 가계대출 우선으로 선회한 것 물론 이에는 신바젤협약으로도 알려진 바젤II 협약과 같은 국제금융기관의 규율 역시 작용한다. 이는 은행 자기자본비율을 산정하는데 있어 위험도에 따른 보다 정교한 비율을 적용하도록 하였는데 이 때 가계 주택담보대출은 BIS비율 산정시 위험가중치가 기업대출에 비해 절반이 된다. 결국 가계부채가 촉진될 수 있는 요인을 제공한 것이다.
이다. 앞의 글, p. 50-1.
이는 국내의 은행업의 발전과 그 추이를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것은 국내 일반은행의 이자 수익에서의 변동을 통해서 쉽게 파악할 수 있는데, 이자수익의 경우 1992년의 10.3조원에서 2009년 57.3조로 급격하게 성장하는데, 이 때 이자수익의 압도적인 부분은 49.1조원을 차지하는 대출채권이자라고 할 수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한국금융산업발전사’, 2014, pp. 96-9.
대출채권은 다양한 종류로 구성될 수 있다. 그러나 대출채권의 종목이 무엇인지 따로 찾아보지 않더라도 그것이 주택담보대출채권이라는 것은 누구나 상식처럼 아는 일이다.
그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을 통해 본 2002년-2014년 가계신용의 추이
위의 표는 국내의 은행 및 비은행예금취급기관 등에 의한 가계신용 대출의 변동 추이를 보여준다. 2014년 하반기에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까지 누적된 가계부채 총액은 1060조원에 이른다. 그리고 OECD가 역시 같은 즈음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연간 가계부채 증가율은 금융위기 이후 매년 8.7%에 이른다. 이는 가계부채가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는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상당한 차이이다. 물론 이로부터 얻어 들이는 은행들의 이자 수익, 즉 노동자의 가계소득으로부터 얻어 들이는 수익은 상당할 것이다. 물론 은행들은 저금리기조의 정부 통화정책 때문에 낮은 예대마진율로 낮은 이자 수익을 얻었다고 불만을 터뜨리지만 바로 그런 조건 탓에 대출을 공격적으로 확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주탬담보대출로 벌어들인 은행들의 이자 수익은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그나마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료로는 지난 2011년의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것으로 이에 따르면 대출채권 가운데 5년(2006년~2010년)간 7대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로 벌이들인 이자수익이 51조 627억 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간 가계부채,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전체 가계부채 가운데 절반 이상을 이루었음을 감안하면 이 역시 상당하게 증가했을 것임을 손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이자수익은 개별 임금과 가계의 소득을 수탈한 것임은 물론 미래에 얻게 될 임금소득을 떼어낸 몫에서 비롯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림 가계신용의 구성(KOSIS 100대 지표 참조(2015. 2. 20. 최종 접속))
다음으로 은행을 비롯한 금융자본이 판매신용 등을 비롯한 소비 신용을 제공함으로써 이뤄지는 수탈을 살펴볼 수 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일반 가계에서 빌린 돈과 외상으로 물품을 구입하고 진 빚의 합인 가계신용 즉 가계부채는 2014년 3/4분기에 1,060조 3,457억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은 445조 1636억, 이를 제외한 일반대출금 및 신용카드회사를 통한 현금 서비스, 카드론 등의 대출은 277조 7,213억, 나머지 신용카드를 통한 구매 및 할부로 상품을 구입한 금액을 합한 판매신용은 57조 4,329억이다. 2002년의 ‘카드대란’ 이후 상당량 축소되었다고 말하지만 판매신용을 통한 금융자본의 이윤 역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또 여전히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판매신용보다는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의 높은 이자와 수수료를 통한 대출을 통해 신용카드회사들은 상당한 이윤을 취득한다.

특히 소득이 낮은 계층을 중심으로 생계비 마련을 위한 대출, 혹은 대출 상환을 위한 대출 역시 꾸준히 증가하여 왔다. 물론 단지 이것만을 지적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할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소비의 하방경직성이라고 부르는 소비수준의 상승과 재생산 역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어느 계층에 속했느냐와 관계없이 스마트폰의 사용은 당연한 것이고, 대학교 진학 역시 당연한 일인 듯이 여겨지는 것은 정보통신, 교육, 의료 등에서 노동자의 소비가 줄어들 수 없도록 한다. 그러나 실질 임금의 정체, 감소, 불안정은 점차 부채에 의존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거의 상식이다시피 되었다. 아니 이는 이제 소비생활의 일상 의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용카드, 체크카드를 비롯하여 광범하게 발달한 신용구매 수단을 이용하지 않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신용구매는 거의 경제적 시민권의 한 종류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권이라는 시민권 담론의 한 장르가 화폐, 금융적 실천과 어떻게 맞물려 전개되는지에 관해서는 미국의 사례이지만, 다음의 분석을 참조할 수 있다. J. Harsin. The lost histories of American economic rights, Cultural Studies 24(3), 2010.
마르크스가 말한 상품의 수평주의와 냉소주의는 이제 신용의 냉소주의와 수평주의로 전환되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상품의 세계는 갈수록 더 위계화, 심미화되며 소비는 계급적인 구분을 위한 상징적 행위로 전환된다.
2) 재테크(財tech)하는 주체: 착취의 회계학
그러나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수단은 신용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신용을 물질화하여 주는 다양한 금융 수단을 이용하여 소비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서로 평등해질 수 있다. ‘지름신’이라는 저항하기 어려운 유혹을 탓하지만 은근히 지름신에 굴복한 것은 자랑이자 미덕이 될 수도 있다. 소비는 자신의 정체성을 실현하는 몸짓이고, 마침내 소비의 유혹에 굴복했다는 것은 절욕에 실패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자유를 실현한 것으로 얼마든지 비쳐질 수 있다. 2년 약정으로 새로운 모델의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것이 당연한 청년 세대를 유혹하는 길거리의 이동통신사의 호객꾼이나 해외여행객에게 보다 알뜰한 신용카드 결재 방법을 안내하는 저녁 TV 뉴스의 흥분한 기자에 이르기까지 신용을 통한 소비, 즉 부채를 통한 소비는 노동자의 미래의 소득을 전유할 수 있는 권리를 장악하고 이 과정에서 금융자본은 수수료를 비롯한 막대한 이윤을 획득한다. 자신의 생활을 위한 일차적인 수단인 주거의 경우에 이러한 부채에의 의존은 더욱 심화된다. 한 때 한국적인 특수성으로 분류된 전세제도의 이점은 금융화된 소비의 장벽이기는커녕 최근의 전세값 급등으로 인해 점점 더 부채의 유인으로 자리잡게 될 것처럼 보인다. 전세자금을 마련하고 그에 더해 자신의 미래 근로소득의 흐름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한다는 공식은 이제 통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수년간 급증하고 있는 임대차 관련 대출(특히 전세 대출)의 증가 추세는 전세의 신화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제 입사한지 만 1년이 다 돼 가는 28살 직장인입니다. 고정급여는 300만원 이며 매달 100만원을 3년 만기 적금에 넣고 있습니다. 나머지 여유자금은 펀드나 주식 등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우선 제 지출내역을 말씀 드리면 실손보험 7만원, 통신비 8만원, 교통비 10만원, 용돈 35만원 입니다. 또 5년째 들어둔 연금이 매달 50만 원가량 나갑니다. 취업 전에는 어머니가 대신 넣어주셨는데 취업 후에는 제 돈으로 내고 있습니다. 남는 돈 90만 원가량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또 차를 사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집을 사는데 돈을 집중할 지 아직 판가름이 서지 않습니다. 여자친구는 아직 없는데 5년 내로 결혼할 계획입니다. 서울 내에 빌라 등에 전셋집을 구해서 결혼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맞춤형 재테크] 월 급여 300만원 직장인… 자금 운용 어떻게”, ‘서울경제’, 2015. 01. 25.
인용한 어느 신문기사의 재무설계와 관련한 상담기사는 이제 대중문화 현상이 되었다 할 수 있다. 재무문화(financial culture)라고 불러도 좋을 문화적 행위의 관습이 일상생활로 스며든 것은 금융화의 주요한 효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는 자기(self)를 상상하고 체험할 때 새로운 시점(perspective)을 마련해준다. TV 쇼에서 인구학적으로 분류된 세대들에 따라 어떻게 재무설계를 해야 할지 말을 건넬 때, 그 안에 자리 잡은 수사는 결혼, 육아, 노후 등 인생 주기에 따른 변화를 소득과 부채의 흐름 속에 말끔히 옮겨 적는다. 이 때 우리는 인생의 흐름을 화폐의 흐름으로 둔갑시켜 응시하게 된다. 또한 그것은 불안, 공포, 성취, 안전, 위기감 등의 다양한 심리적, 미적인 표상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미래의 삶의 흐름, 즉 지출과 소비의 흐름에 무관심하고 대비되지 않은 삶은 불안하고 위태로운 것이다. 재무상담 TV 토크쇼에서 상담가가 곧잘 뱉는 재무상태의 마음의 모습이라는 말은 이를 적나라하게 전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적 풍경은 수많은 연금저축, 보험, 저축상품 광고에서 보듯이 미적인 장면으로 번안되어 나타난다.
앞의 인용에서 본 상담 내용에 대해 전문가는 그의 고민을 이렇게 진단한다. “첫 번째 여유자금운용에 대한 자산포트폴리오 구성, 두 번째 자동차 구입고려, 내 집 마련을 위한 재테크에 대한 고민, 세 번째 5년 이내 결혼자금마련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흔한 조언을 듣게 된다. 먼저 무조건 수입 가운데 상당 부분을 저축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목표로 하는 자금을 저축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25만원을 “주택청약종합저축”에 15만원을 “재형저축”에 가입하고 그 후 나머지 20만원은 절세효과를 누릴 수 있는 “연금저축펀드와 소득공제 장기펀드 가입”을 하도록 권한다. “매년 400만원 한도로 세액공제 받는 연금저축펀드는 필수”인데, “매년 되돌려 받는 환급금을 재투자하여 복리효과도 누릴 수 있으며, 안정적인 MMF부터 채권형, 공격적인 국내주식, 해외주식까지 다양한 포트폴리오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덧붙여 그는 “일반펀드대비 보수도 저렴하고 환매수수료도 없고 언제든지 원하시는 펀드로 전환 할 수 있어 주기적으로 리밸런싱을 통한 자산증식의 좋은 수단”이라고 추어올린다. 그리고 “여유자금 90만원”을 “적립식펀드”에 투자하도록 추천한다. “원금보장이 되지 않는 투자형 상품이긴 하나 ‘분산투자, 장기투자, 정기투자’에 충실한 합리적인 투자의 원칙을 지킨다면 변동성을 줄이면서 수익을 추구하는 성공적인 투자의 길잡이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재테크와 거리가 먼 이들에겐 좀체 알아듣기 어려운 마법의 세계로부터 흘러나오는 중얼거림처럼 들릴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거의 매일 신문과 TV, 인터넷 지면을 채우고 있고, 이른바 재테크에 관한 테크닉을 조언하는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을 통해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금융화의 주요한 추세 가운데 하나인 ‘소매 투자 펀드 서비스’를 통한 이윤 획득을 더욱 매끈하게 전개할 수 있도록 이끈다. 그러나 이 역시 노동자의 현재와 미래의 임금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가치를 이전시켜 그것을 금융자본가들과 그에 자본을 선대한 산업자본가들로 하여금 이윤을 획득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서구 자본주의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폭발적으로 확대되어온 일이기도 하다. 신문의 경제 면을 대신하여 등장한 “머니”란 이름의 지면은 현기증이 나리만치 다양하고 복잡한 투자 상품과 금융상품에 대한 기사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자산을 증식할 수 있는 대상은 금, 밀, 석유에서부터 미술작품에 이르기까지 무한하게 확장한다.
그렇지만 앞의 재무설계를 의뢰하는 직장인과 그에 조언하는 재무상담가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회계학적인 언표는 가장 복잡하고 화려한 형태로 물신적 환상을 만들어내며 그 안에 깃든 착취와 수탈을 감춘다. 금융을 통해 취득하는 가치 즉 이자는 산 노동의 착취로부터 생겨난 잉여가치, 즉 이윤의 한 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배당금의 형태든 이자의 형태든 그 형태와 상관없이 그것은 이윤 즉 잉여가치의 분배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라파비차스가 명쾌하게 보여주듯이 금융화는 금융적 이윤의 원천을 이윤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찾는다. 가공자본의 형태로 금융자본가가 취득하는 이윤의 상당 부분은 노동자의 소득, 즉 임금의 현재 가치와 미래에 획득할 가치를 탈취하는 것으로부터 얻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금융화는 바로 금융 이윤의 주된 원천을 여기에서 찾는다. 라파비차스는 오랜 동안 간과되었던 마르크스의 분석을 참조하면서 오늘날의 금융 이윤을 잉여가치(이윤)를 기업가 이윤과 이자로 분배하는 것과 관련 없이 이뤄지는 이윤이라 정의하고, 이를 “수탈 혹은 소외를 통한 이윤(profit upon expropriation/alienation)”이라고 부른다. C. Lapavitsas, op. cit., p. 143. 한편 전유, 비전유, 수탈 등의 개념을 통해 자본의 형이상학을 비판하고자 하는 데리다의 개념 역시 수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크 데리다, 베르나르 스티글러, ‘에코그라피 : 텔레비전에 관하여’. 김재희, 진태원 옮김, 민음사, 2002, pp. 34-35.
이는 단적으로 노동자와 가계의 개인적 소득의 금융 거래를 통해 획득되는 이윤으로 잉여가치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이윤은 생산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잉여가치의 수탈을 통해 나타난다. 그러나 금융 이윤은 잉여가치의 일부로서의 이자만이 아니라 “소득과 타인들의 화폐 저량(stock)”을 수탈함으로써 생겨날 수도 있다. ibid., p. 145.

노동자가 금융거래에 참여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임금재를 구매함으로써 생활에 필요한 사용가치를 실현하여야 하는 데 사용하여야 할 화폐 수입을 현재의 대출과 이자 지급 아니면 미래의 연금 소득이나 기타 배당을 위해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용가치로서 실현되어야할 화폐 수입이 대출, 신용구매 수수료와 이자, 펀드 등을 비롯한 돈으로 대부자본에 의해 흡수될 때, 이는 현재는 물론 미래에 만들어질 소득으로부터 수탈을 가능케 한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가치증식의 결과를 분할하는 것이 아니라 제로섬 게임으로, 가치증식과정과는 상관없이 노동자의 소득을 직접적으로 탈취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이의 말처럼 이제 노동자는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크레디타리아(creditariat)”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Max Haiven, Finance as Capital’s Imagination: Reimagining Value and Culture in an Age of Fictitious Capital and Crisis, Social Text, Vol, 29 No. 1, 2011.
그렇다면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지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소득과 빚을 함께 나아가게 하는 환상,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자면 금융화된 세계에 적합한 새로운 일상생활의 종교인 신용물신주의가 작동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금융화의 진행과 함께 국민의 더 많은 구성원이 자신의 경제적 삶의 기초를 금융시장의 주된 참가자들의 의사결정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갖고 있다. 대중펀드의 확대, 연기금의 주식투자, 그리고 노후 재테크 운동 등을 통해 자산보유의 대중적 확산이 추진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자산시장 확대에 대한 대중적 이해관계의 연결이 강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민다수의 경제적 삶이 금융시장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이며,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의 퇴직 후 생활이 금융시장의 변동에 따라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대중의 경제적 삶이 불안해질수록, 대중이 점점 더 불안의 원인인 금융화와 주식시장을 지지하게 만들 것이다.” 유철규, 금융화와 한국자본주의: 특성과 전망, ‘동향과 전망’ 통권 73호, 한국사회과학연구소, 2008, p. 162.
“새로운 사회적 타협체계는 금융을 지향하는 새로운 소득흐름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이른바 다양한 계급간 협력을 가능케하는 금융적 포섭이다. 이러한 포섭형태는 금융을 지향하는 새로운 소득흐름과의 관련 덕분에 보다 폭넓은 계급에게까지 확장하게 된다. 즉, 중간계급을 포함하는 폭넓은 타협의 구축이 신자유주의 생존의 핵심이 된다. 중간 소득 노동자에 대한 주식시장 지분분배를 통해 노동 대 자본의 계급갈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가정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임노동자들에게 임금보상을 대체하는 주식의 분배, 스톡옵션, 연금기금의 분배이다.” 윤여협, 최원탁, 『금융세계화와 연금제도의 변화와 쟁점: 기업연금 도입을 중심으로』, 민주노총 사회보장정책워크숍 자료, 2001, p. 8. 강조는 인용자.
인용한 두 개의 글에서 저자들은 모두 빚의 역설을 언급한다. 앞의 글은 대다수의 삶이 금융시장에 의해 위협을 받게 되는데도 그것을 낳는 원인인 금융화를 지지하게 만든다는 것, 뒤의 글은 금융을 지향하는 소득흐름이 초래하는 이른바 사회적 타협체계, ‘금융적 포섭’을 고발하며 금융을 통한 착취가 외려 금융을 통해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려는 역설을 낳는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렇지만 이런 역설은 단지 금융상품을 구매하고 투자를 통해 안전한 노후와 불안한 생활로부터의 걱정에서 벗어나라는 금융업자의 기만 때문에 벌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자본물신주의라는 마르크스의 생각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사진의 궤적 그리고 변증법적 이미지


Ben Lee – Catch My Disease – Live On Fearless Music

“경과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 속에서 시간이 멈춰서 정지해버린 현재라는 개념을
역사적 유물론자는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현재 개념이야말로 그가 자기의 인격을 걸고
역사를 기술하는 현재를 정의하기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폭력비판을 위하여/초현실주의 외’, 최성만 옮김, 길, p. 347.
“은유적으로 받아들였을 때, 운항이라는 개념은 사진적 의미-그리고 바로 그 사진 담론-가 루카치가 부르주아적 사유의 이율배반이라고 칭한 것 사이에서의 끊임없는 동요를 통해 특징지어지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는 언제나 객관주의와 주관주의 사이에서의 운동이다. 그런 처지에 따를 때, 그것(사진적 의미-인용자)은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 실증주의와 형이상학, 과학주의와 미학주의 사이에의 운동이기도 할 것이다.” Alan Sekula, Photography against the Grain: Essays and Photo Works 1973-1983, Halifax, N.S.: Nova Scotia College of Art and Design Press, 1984, p. xv.

W. G. 제발트를 떠올리며…..
독일 출신이었으며 오랜 시간 영국에 살았으며 독일어로 소설을 썼던 소설가 제발트(W. Sebald).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그것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읽는 것은 미련스런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부터인가 끈끈이에 붙잡힌 파리처럼 그의 소설에 갇혀있다. 가뜩이나 수선한 꿈자리는 그의 소설 탓에 더욱 뒤숭숭해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머리맡에 제발트의 소설을 둔다. 그리고 그의 소설 몇 페이지를 읽다 잠이 든다. 새벽 혹은 늦은 아침, 잠에서 벗어나 눈을 뜨자마자 소스라치게 꾸었던 꿈을 가두고 잡아보려 하지만 부옇게 감돌던 꿈은 연기처럼 자취를 감추고 만다. 아마 그 꿈은 지난 밤 읽었던 제발트의 소설에서 말미암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의 소설을 읽은 이들은 알겠듯이 그가 들려준 이야기의 어느 빈틈으로부터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가지를 뻗는다고 믿는 것은, 그럴 듯한 가설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리고 그것은 하염없이 우울하게 심정을 파고든다. 그러나 그것을 내 것으로 삼아 나의 이야기를 짓는 재료로 삼기는 어렵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 독자는 완강하게 오직 제발트란 소설가에게 소속된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을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에 직면한다. 함께 나누고 반응하기 어려운 이야기, 반드시 스스로에 속한 이야기임을 강변하는 글은, 독자의 동일시를 완강하게 거부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흥미와 관심이 시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에 개의치 않고 계속 귀 기울인다.
소설은 언제 체험과 사건을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구성한다. 그것이 비극이든 희극이든 아니면 서사시이든 아니면 어떤 장르의 수사를 통한 것이든 그것은 교훈을 전하거나 반성을 촉구하거나 하는 식으로 독자를 자신이 읽은 이야기에 참여시킨다. 그렇지만 제발트의 소설에서 우리는 세상에 둘도 없이 오직 혼자인 사람을 마주하는 기분에 빠져든다. 그것은 아마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화자들이 모두 이주민이거나 여행자인 탓에 그런 것이기도 하다.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세계를 유랑하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개인 대 세계라는 대립을 상연한다. 그렇지만 성장 소설이나 모험 소설에서의 떠돌이 혹은 방랑하는 개인이 세계를 대하는 것과 제발트 소설의 화자들이 그런 관계를 맺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의 소설 속의 인물은 자신의 자유의 실현을 가로막는 장벽으로서의 세계를 상대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인물들에게 세계는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제한하는 구체적인 외적인 힘이 아니라,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거의 폐허와도 같은 잔해로 가득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처음부터 극복하거나 넘어서야할 무엇이 아니다. 성장 소설이나 모험 소설에서 흔히 세계란 그것을 뚫고 나가거나 넘어섬으로써 미래로 향해 나가는 시간적 전환(그리고 이를 서사화하는 주인공의 변이 즉 성장, 성숙, 완성, 발견 등)의 알레고리이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런 세계의 면목을 제발트 소설에서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의 소설에서 세계란 미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침범하는 과거로 인해 현재라는 시간적 지평이 항시 불안하게 뒤흔들리고 마는, 위태롭거나 윤곽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을 읽을 때, 이런 인상을 결정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계속하여 등장하는 사진들이다. 그것은 그가 여행을 하면서 찍은 비망록(aide-mémoire), 즉 체험된 세계의 현존을 속기(速記)하기 위해 거머쥔 사진일수도 있고(‘토성의 고리’, ‘현기증/감정들’, ‘아우슈터리츠’), 가족 앨범이나 엽서, 누군가의 사진첩에서 획득한 사진들(‘이민자들’, ‘현기증/감정들’)일 수도 있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 거의 몇 페이지를 건널 때마다 마주쳐야 하는 사진들은, 흔히 사진 이론과 비평에서 말하는 사진과 텍스트의 관계로는 절대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벤야민이 포토-몽타주(photo-montage)에 열광하며 사진이 만들어내는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를 중지시키는 힘으로서 텍스트를 발견하듯이, 바르트가 사진의 신화적 특성을 고발하며 사진설명이란 텍스트가 사진의 이데올로기를 부양한다고 비난하듯이 말이다. 그들이 사진의 미적, 이데올로기적인 효력이란 측면에서 사진/텍스트의 관계를 말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제발트의 사진과 텍스트의 관계를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의 소설 속에서 사진은 무엇보다 사진이라고 말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때 사진이 사진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진은 그것이 제시하는 정보와는 상관없이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사진이 촉발한 충격 혹은 자극에 반응하여 하염없이 무언가 이야기를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는 이를 서사화를 하도록 몰고가는 사진의 힘은 지금 마주하는 한 장의 사진과 그것의 재현, 혹은 재현적 효과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 그것은 심지어 차라리 이를 웃도는 사진 자체의 힘을 발견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제발트가 자신의 소설에서 사진을 사용하는 방식의 아이러니는 바로 이 때문에 비롯될 것이다. 그의 사진은 크게 보아 아카이브로부터 획득한 사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진은 특정한 사진적 사실의 세계에 묶여있다. 그것이 개인의 앨범에 있을 때 그것은 사진에 재현된 인물의 전기적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 된다. 그것이 여행자가 방문한 장소와 인물의 기록일 때 그것은 그 장소와 인물의 정체성에 대한 기록으로서 간주된다. 그런 것이 아카이브에 속한 사진의 속성이다. 그렇지만 제발트는 이러한 아카이브적 이미지에 완강하게 들러붙어 있는 ‘재현으로서의 사진 이미지’라는 특성을 무시하거나 외면한다. 아카이브적인 사진은 오직 사진을 찍고 관람하는 자의 눈길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변모한다. 아카이브적인 사진 이미지가 이 사진 속에는 무엇이 재현되어 있고 그것이 이 사진의 전체라고 침착하고 무뚝뚝이 말할 때, 제발트는 그 같은 사진이 자처하는 스스로의 임무로부터 그 사진을 떼어낸다. 아카이브적 이미지는 세계의 기록이 아니라 반대의 방향으로 내닫는다. 그 사진 이미지는 세계가 없기에, 즉 세계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찾을 수 없기에 초조하고 우울하게 시선을 두는 주체를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사진은 자신의 편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자신의 삶이 나타나는, 즉 현상학적인 깨어남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변신한다. 아니 그런 듯이 보인다.
스투디움의 노선/푼크툼의 노선 – 사진의 존재론적 전환?
제발트의 소설을 읽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페이지마다 빼곡히 산재한 사진을 마주할 때 직면하는 멜랑콜리를 떠올리며, 박진영의 사진과 마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근년 사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둘러싼 변화를 그의 사진을 통해 가늠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풍경 사진이거나 인물 사진이든 아니면 심지어 패션 사진이든 모든 사진들이 갑자기 자신이 재현하는 대상, 사진 내부에 기재된 정보라 할 만한 것을 볼 것이 아니라 바로 사진을 보고 있음을 환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진은 상당히 아름답고 눈길을 끌어맨다. 바르트의 그 악명 높은 이분법을 빌자면 우리 시대의 사진은 스투디움(studium)에서 푼크툼(punctum)으로 일제히 전향한 듯 보인다. 롤랑 바르트, ‘밝은 방 : 사진에 관한 노트’,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6.
그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 그것이 예술 사진의 문제라면 말이다. 발터 벤야민, 빅터 버긴이나 앨런 세큘러, 존 탁 등의 비평가 혹은 사진가들의 글을 읽고, 도서관에 어쩌다 들어온 사진집을 들춰보며 희귀하게 열리는 사진 전시를 기웃거리며 믿었던 것, 사진 이미지가 현실의 투명한 재현이 아니라 그것은 이데올로기이며 담론이고 언어적 코드에 다름 아니라는 확신, 다시 한때 그 스스로 열정적인 사진의 기호학적 비평가였던 바르트의 말을 빌자면, 스투디움으로서의 사진과 그것의 비판에 우리는 열광하였다. 다시 말해 사진을 보고 즐긴다는 것은 언제나 ‘비판’의 즐거움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진작가는 비판적 예술가였던 연유로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내가 존경하는 그리고 같은 학교에서 일하는 터라 자주 말을 섞는 사진이론가 한 분의 발언이 떠오른다. 몇 해 전인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이 망할 푼크툼을 조져야 한다!”고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역정을 냈다. 그 후에도 가끔 그가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푼크툼에 저주(?!)를 퍼붓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증거로서의 사진이라는 주장을 통해 근대적인 규율권력의 주도적인 시각 장치로서의 사진을 분석해 유명했던 존 탁과 함께 공부를 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그는 스투디움 세대이다. 그렇지만 정치적 이미지 비판의 세대, 스투디움 세대는 이제 패퇴한 듯 보인다. 이 세대는 사진적 재현과 사진 이미지의 생산, 분배, 소비가 어떻게 자본/노동, 제국주의/식민, 남성/여성, 이성애/동성애 등의 권력관계를 구성하고 재생산하는지 폭로하고 교육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사진이 해방적이고 전투적인 정치적 매체가 될 수 있는지 탐색하려 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그 사이에 급변하였다. 비판과 해방 따위의 말은 주가가 떨어졌다. 이제 사진의 담론적 정치 같은 따분하고 신나지도 않는 이야기보다는 사진의 존재론 같은, 알쏭달쏭하기는 하지만 조금 더 그럴 듯해 보이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눈치이다. 아마 몇몇은 푼크툼으로의 전환, 그것을 지지하는 숱한 이론적인 시도 나는 여기에서 푼크툼을 직접 참조하지 않지만 사진의 존재론을 기획하는 데 적극 참여하는 비평가들의 이름을 떠올린다. 국내에 소개된 주장들을 꼽아본다면 그들은 필립 뒤바, 빌렘 플루서,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마이클 프리드 같은 이들이 될 것이다. 필립 뒤봐, ‘사진적 행위’, 이경률 옮김, 마실가, 2004. 빌렘 플루서,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윤종석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1999.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반반딧불의 잔존: 이미지의 정치학’, 김홍기 옮김, 길, 2012. 마이클 프리드, ‘예술이 사랑한 사진’, 구보경, 조성지 옮김, 월간사진, 2012.
가 마뜩찮았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푼크툼이라는 암호와도 같은 낱말을 깊이 의심한다.
사진은 스투디움의 사진과 푼크툼의 사진으로 분할할 수 있는가. 푼크툼은 사진의 분석적 개념이자 이론적, 정치적 지침일 수 있는가. 아니면 그것은 어떤 사진에 과도한 애착을 보이는 사적인 감상자의 태도를 가리킬 뿐 사회적 장에 속한 사진을 말려면 제외시켜도 좋은 것인가. 사진이라는 기술적, 화학적 매체로서의 복잡한 특성 혹은 매체의 물질성을 간과하거나 무시한 채 오직 그것의 의미의 차원-이를테면 기호학적인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의미작용의 실천(signyfing practices)에만 주의하는 일면적인 접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한 인식론적, 미학적인 돌파구, 그것이 푼크툼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빈정거림처럼 ‘매체의 특수성’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되뇌면서 사진 역시 모더니즘적인 비평의 세례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당당히 예술로서의 작위를 차지하기 위해 내세운 새로운 허울인가. 나는 각축하는 주장들을 기웃거린다. 그리고 의문은 잦아들지 않고 부풀어 오른다. 푼크툼에 근거하여 사진의 새로운 존재론을 역설하는 이들의 그럴듯한 주장과 이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이들의 환멸감에 찬 목소리의 웅얼거림 사이에서 당혹감은 깊어간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것도 사진이론과 비평의 전문가도 아닌 내가 이 쟁점에 관하여 어떤 결산을 시도하겠다고 덤비는 일은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 역시 사진 이미지를 매순간 마주하고 그것이 초래하는 효과에 의문을 품고는 하는 사진의 관람자이자 소비자이다. 또 갑자기 글을 쓸 책무가 주어진 한 더미의 사진을 앞에 두고, 언제나 머릿속을 감돌던 그 의문을 모른 척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푼크툼이라는 모호한 낱말에서 사진의 새로운 존재론을 기꺼이 구성할 수 있다고 믿는 주장이 ‘타블로 사진(tableaux photography)’의 유행과 사진의 미술관으로의 입성과 미술 시장에서 사진 거래의 증대와 호가의 상승 등과 어떤 상관이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마이클 프리드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몰입(absorption)’과 연극성이란 개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이를 사진에 도입할 때 그리고 이를 통해 동시대 사진의 경향을 모더니즘적인 이미지의 자율성을 완수한 사례들로 간주할 때, 그것이 결국 사진을 미술관의 박제로 만들려는 작위에 불과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마이클 프리드, 앞의 글.
터무니없는 도식이기는 하지만 스투디움에서 푼크툼으로의 이행이라는 동시대 사진의 궤적을 상연하는 듯이 보이는, 그렇지만 그것이 무엇보다 절박하고 또 정당하게 보이는 한 사진작가에게 말을 건네고 싶다. 그의 사진들의 궤적은 사진적 실천이라는 것이 직면한 난관을 스스로 감당하고 또 해결하려는 의미심장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적 사진/장면의 사진
2004년의 <서울-간격의 사회>라는, 박진영을 널리 알린 전시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잊지 않고 언급하는 또 지금 보아도 여전히 아름답고 강력한 사진들을 담고 있다. 그 전시에 나온 사진들을 담은 전시와 같은 제목의 사진집 ‘서울-간격의 사회’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흥미로운 점은 ‘사회’라는 개념이 집요하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시의 제목에 간격의 사회(society of gap)란 말을 가져다 놓으며 사회란 개념을 끼워 넣는다. 그리고 크게 두 개의 파트로 나뉜 사진들 가운데 첫 번째 파트에 속한 사진을 ‘사회적 풍경(social landscape)’이라고 부른다. 다시 사회란 개념이 등장한다. 그리고 사진집 말미에 수록된 “작업노트”를 이렇게 시작한다. “그동안 나에게 있어 사진은 치기어린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막연한 습관이자 사회를 바라보기 이전에 동시대를 살고 있는 내가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거의 무조건적인 대화법이었다.” 하나의 문장 안에서 우리는 세 번이나 사회란 개념이 등장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전시 이후 갈수록 그 개념을 사용하는 경우가 잦아들지만 분단 풍경을 제시하는 사진들로 구성된 세 번째 개인전 까지 그의 사진을 둘러싸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 사회라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서울-간격의 사회’에 등장하는 아르바이트 연작 사진은 사회학적인 실천으로서의 사진이라는 관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 나는 인류학적 실천을 자신의 예술적 실천의 전망으로 택한 미술가들을 비평하며 할 포스터가 말한 ‘민족지학자로서의 미술가’란 개념을 떠올린다. 훗날 공동체, 공공, 대화, 참여 미술 등의 이름으로 알려지고 관계미학이란 미학적인 이념에 의해 자신의 예술적 실천을 옹호받게 될 예술가들의 실천에서, 그는 인류학자로서의 예술가로서의 모습을 찾는다. 그렇지만 그가 소홀히 한 것은 민족지적(ethnographic) 실천과 거의 평행하게 진행된 사회학적인 실천의 추세라 할 수 있다. 할 포스터, 민족지학자로서의 미술가, ‘실재의 귀환’, 경성대출판부, 2003.
그 사진들은 얼핏 보아서는 인물 사진이다. 그 사진들은 각기 “반나절에 4만5천원 받는 강창훈(22)/강변북로”, “한 달 평균 120만원 버는 K모씨/중량천”, “일당 7만원의 윤기웅(24)과 4만원의 최철호(21)/홍대 앞” 같은 제목이 달려있다. 그렇지만 사진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사진 어디에도 출현하지 않는 ‘사회’라는 이미지이다. 사진 이미지가 외시하는 정보 안에는 직접 존재하지 않지만 사진을 볼 때 우리는 사진 안에는 부재하는 대상인 (한국) 사회를 상상하게 된다. 사진을 볼 때 우리는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구학적인 정보 즉 나이, 이름, 그가 일하는 장소 등의 정보를 제공받는다. 그런 사진 제목을 알고 난 연후에 사진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우리가 보는 것은 바로 사회학적인 표본으로서 제시된 인물들이다. 그 인물들은 고유한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실존으로서의 개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라는 특수한 세계의 성원(member)이라는 정체성을 부여받으며 구성된 추상적인 인물이다. 사회학적인 표본 혹은 사례(case)로서의 인물, 푸코가 말한 것처럼 주권적인 개인이라기보다는 출생, 사망, 질병, 교육, 직업 등의 다양한 벡터들의 작용을 통해 상상되는 인간(인구라는 생명정치가 상상하고 가시화하는 인간의 표상)이 바로 “사회”라는 상상적 세계에 속한 인간의 형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미셀 푸코, ‘안전, 영토, 인구’,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1.

사회국가(the social state), 우리에게는 복지국가로 알려진 국가는 바로 그런 인간을 상대한다. 사회국가는 인민이라는 주권적인 개인들의 연합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격자를 통해 인식되고 분절된 인구를 통치 대상으로 삼는다. 다시 말해 사회국가는 현실을 사회라는 이름의 대상으로 구성하고 그것을 권력이 행사되는 표면으로 다듬어낸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 살아가는 인물들은 인구와 그 인구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식별한다. 이를 위해 사회국가는 방대하고 복잡한 인구(그리고 그 일원으로서의 개인)에 관한 기록을 생산하고 분류하며 분석하고 보관한다. 이런 생명체로서 인구-개인을 관찰, 규율, 평가하도록 돕는 핵심적인 수단이 바로 사진이다. 아우그스트 잔더의 사진은 바로 이러한 인물사진의 전범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벤야민이 말한 것처럼 그는 관상학적인 과학의 도움을 빌어 ‘사회’(질서)를 표상한 전대미문의 사진가였다. 발터 벤야민, “사진의 작은 역사”,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 최성만 옮김, 길, 2007.
관상학이나 법의학, 범죄학과 같은 새로운 과학은 인구의 분류와 관리를 위한 과학이자 동시에 사회를 상상하도록 만드는 담론적 장치의 핵심적 성분이었다. 관상학적 상상을 통해 사회의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것은 인물 즉 인구학적인 표본으로서 발견되고 고정된 사진들을 연쇄시키고 또 구축함으로써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즉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인물 사진의 연쇄이다. 그렇지만 그 사진 이미지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사회라는 상상적인 대상이다.
이러한 사회학적인 사진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갖는다. 그것은 사회국가가 만들어내는 사회학적 상상에 참여할 수 있다. 혹은 조합주의적인(corporatist) 상상을 통해 계급이나 계층과 같은 ‘사회학적인 집단’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때 사진은 노동자, 농민, 빈민, 인종집단 등과 같은 ‘사회적’ 계층을 표상하게 된다. 이를테면 제이콥 리스(Jacob Riss), 루이스 하인(Lewis Hine) 등의 사진이나 농업안정국의 의뢰로 제작된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등의 사진은, 이를 떠나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것을 ‘사회적 다큐멘터리’라고 부르면서 사회 개혁 혹은 사회 운동의 형태로 사진이 정치적인 교육과 선전, 동원을 위한 자원으로 고려될 때 역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라는 현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이념이 상기시켜 주듯이 ‘사회’라는 관념은 정치가 이뤄지는 대상이자 그러한 정치가 설립하게 될 미래 세계의 모습에 역시 사회라는 상상을 주입하였다. 그것은 예술적 실천에서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리고 우리는 물론 그와 먼 거리에 위치한 예술적 실천 역시 규정하였다. 그러므로 현대 사진의 내부에 깃들어 있는 사회학적 상상을 모두 망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현대 사진 전체가 이런 사회학적 상상에 의해 채색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전통적인 노동자계급 운동이 쇠퇴한 지금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 없는 세계를 촉진하고 오직 개인들이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돌보아야 하는 것을 통치의 원리로 삼는 (신자유주의) 정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그러한 사회학적 사진 이미지가 여전히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2000년대 초반에 이뤄진 박진영의 사진은 어떤 동요에 의해 흔들린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대형카메라를 운반하고 자신이 선택한 위치에 그것을 설치하며 노출을 조절하고 파노라마적인 장면을 통해 세계로부터 잘라낸 하나의 풍경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는 언제나 예외 없이 하나의 인물 혹은 몇 명의 인물이 배치되어 있다. “#1 모 회장의 자살현장/한남대교”라는 유명한 사진에서 우리는 어느 대기업 회장의 자살 사건을 보도하는 기자와 방송진들이 사진 화면의 왼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조금 더 먼 거리에는 경찰복인지 제복을 입은 두 사내가 강기슭에서 강을 향해 등을 돌린 모습을 본다. 그리고 다시 화면의 오른쪽 중간 부분에 역시 몇 명의 인물이 모여 있는 모습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들을 잇는 선처럼 오른쪽으로 기운 채 붉은 기운이 감도는 억새가 화면을 비스듬히 가르며 화면 아래를 채운다. 이런 이미지의 짜임새는 “#9 일요일의 캠퍼스/경희대”, “#13 재단장한 탑골공원/종로” 그리고 “#14 어버이날/중량천” 같은 사진들에서도 반복된다. 그러나 이런 구성에서 우리는 파노라마 사진에 으레 따라다니는 어떤 시각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아니 외려 그것이 배반당한다고 차라리 느끼게 된다. 파노라마 사진은 자신이 지시하는 대상을 스펙터클한 매력으로 변형하고 관람자로 하여금 그 대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듯한 인상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그 대상의 숭고함에 압도되어 위축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그러한 파노라마 사진 이미지에 대한 흔한 생각은 박진영의 사진에서 식별하기 어렵다. 그가 보여주는 사진 안에서 우리는 많은 정보를 가지게 되지만 그 정보들이 하나의 이미지를 구상하는데 조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외려 이미지, 즉 그가 말하는 것처럼 사회라는 상상적인 가상(imagery)을 구축하기는커녕 그것에 이르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듯이 보인다. 화면 속의 인물들은 화면의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거나 따로 모여 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을 벗어난 표면을 채우는 것은 수평으로 넓게 펼쳐진 바닥-강 혹은 하천의 수면, 공원의 휑한 바닥, 시멘트 바닥과 계단, 언덕 기슭을 가득 채운 폐허더미, 혹은 시멘트 계단으로 이뤄진 관중석에 에워싸인 테니스코트 등-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그의 사진들을 사회적 다큐멘터리라고 보기엔 어렵다. 그것은 오히려 사회를 상상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곤경에 처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보다 적절한 용어를 택하자면 그의 사진들은 사회의 불가능성에 대한 사진이고 그런 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이라기보다는 강한 시학적인 함축을 지닌다.
초점의 대상이 된 인물들이 어떤 이미지를 제안하는 역할을 발휘하기는커녕 더욱 그 인물들과 그들이 놓인 배경 사이의 극적인 대조로 인해 ‘세계 없는 인물들’임을 더욱 강하게 환기시키는 사진들은, <도시 소년 Boys in the City> 연작에서 더욱 뚜렷하고 도드라진다. “감시카메라”나 “어깨동무”, “등돌린 소년과 퓨마”, “1단지를 접수한 소년들”, “어떤 약속” 같은 사진들은 소년들의 초상 사진을 보여준다고 약속하지만 우리는 그 초상 사진들을 의미있게 식별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나는 그 사진들이 청소년이라는 사회학적 세대를 지시하고 이미지화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사진 속에 등장하는 10대 소년들은 청소년이다. 그들은 소년이지만 그것은 2차 대전 이후 서구 사회에서 시작되어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이야기하는 이른바 ‘사회 문제’의 하나로서의 ‘청소년 문제’가 자신의 상상 속에 운반하는 그 소년들이 아니다. 그 이미지 속에 등장하는 청소년은 사회화에 실패했음을 가리키기 위해 고안된 저 악명 높은 사회학 용어인 ‘일탈’이라는 내포적 의미를 가리키지도 않는다. 10대라는 생물학적인 연령은 사회학적 렌즈를 통해 청소년이라는 인구학적인 정체성을 지닌 집단으로 분류되고 그들이 겪는 곤란은 사회문제라는 큰 범주의 하위 범주인 ‘청소년문제’로 각색된다.
그런 점에서 <도시 소년> 연작을 보게 될 때 나는 ‘소년’이라기보다는 ‘도시’에 흥미를 갖게 된다. 소년들이 자신을 제시하기 위해 함께 이미지의 표면 위로 동반하는 그 풍경은 터무니없으리만치 무의미하다. 그리고 파노라마 카메라는 그것을 자신이 노출한 시간만큼 자신이 선택한 스케일만큼 사진 이미지로 운반한다. 그것은 이미지 속에 놓인 소년들이 속한 세계를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정반대의 결과, 가장 자명한 것처럼 보이는 청소년이란 사회적 도상이 생뚱맞으리만치 사회적인 초상으로서 나타나지 못하는 이미지 내부의 부조(不調)를 말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가 이르게 된 최근의 사진, 특히 그가 야심천만하게 <사진의 길>이라 명명한 사진 연작들을 헤아려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그 사진들은 방금 언급한 사진들로부터 벗어나는 사진들이 아니라 그 사진들이 처한 미학적인 전략과의 연장 속에서 이해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전작(前作)이 사회적 다큐멘터리라는 범주에 속한 사진들이 아니라 다큐멘테이션(documentation)을 가능케 하는 정치적 매개(즉 20세기를 지배했던 사회라는 매개)가 사라지거나 혹은 무력해지게 된 조건들을 언급한다는 것, 그리고 바로 사회적 다큐멘터리의 방법을 차용하지만 거꾸로 사회를 불가능케 하는 그 부정성(negativity)을 화면에 기재한다는 것(파노라마 사진의 표면을 뻑뻑하게 채우는 마치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평면화된 수평 혹은 수직의 주변 풍경)을 ‘징후적’으로 혹은 과도하게 가정할 수 있다면 말이다.
“사진의 길” 혹은 사진의 기술적 현상학
사회적 다큐멘터리 사진은 그것이 존립할 수 있도록 하는 코드, 즉 사진적 메시지를 읽을 수 있도록 돕는 맥락, 사진 이미지가 기록하고 재현하는 대상을 인식하고 시각적 쾌락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담론이 작용하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러한 인식가능성의 조건이 없다면 시각적 가시화의 조건 역시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박진영의 2000년대 초반의 파노라마 연작 사진들이 바로 그런 정황을 드러내고 있었다고 짐작하게 된다. 따라서 그는 기록과 증언, 보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수행하는 사진 이미지의 제작이 처한 조건이 어렵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그의 사진은, 앨런 세큘러의 용어를 짓궂게 뒤튼다면, 사진 이미지가 표류하는 조건을 나타낸다. 세큘러는 사진 이미지의 의미를 가리키기 위해 ‘운항(traffic)’이란 개념을 제안한 바 있다. Alan Sekula, Photography against the Grain: Essays and Photo Works 1973-1983, Halifax, N.S.: Nova Scotia College of Art and Design Press, 1984.
즉 사진의 의미는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에 의해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사진이 생산, 분배, 수용되는 문화적 체계에 의해 항상 규정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운항이라는 개념은 한편으로는 그것이 기착지 혹은 종착지를 갖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즉 사진은 항상 어떤 의미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그 용어는 낙관적으로 암시한다. 그러나 박진영의 사진은 그보다는 비관적이다. 그의 사진들은 ‘운항 중의 사진’이 아니라 외려 표류하고 있는 사진을 보고 있다고 쓸쓸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진은 이제 말할 수 없는가. 사진을 말하게 하고 그것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사진의 말을 듣게 하는 담론적 조건이 희박해짐으로써 사진이 역사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인가. 아니 우리는 마침내 사진의 민주주의에 이르게 된 것일까. 큐레이터와 평론가들이 말하는 형식적 미학의 시점을 통해 상찬하는 사진에서부터 상품을 심미적 환상의 대상으로 운반하는데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능력을 발휘하는 광고, 잡지 사진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진들은 각자 자신들을 읽을 수 있는 다원적인 읽기와 수용의 담론을 채용한다. 이는 사진에 하나의 보편적인 의미, 해방, 자유, 평등, 무엇이든 어떤 보편적인 정치적, 윤리적 규범이 불가능하다는 세간의 믿음을 적극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오직 무한히 다양한 사실들의 ‘다양태’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하나의 질서로 조직하는 초월적인 규범을 요구하는 것은 오직 형이상학적인 폭력일 뿐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한 다원적인 민주주의의 세계에서 사진 역시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사진에게 무한히 다양한 사진적 진실, 사진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선언하고 현기증 나는 사진의 민주주의에 기꺼이 참여하면 되는 것일까.
박진영은 그의 두 번째 단계의 사진의 시작을 알리는 <히다마리(ひだまり): 찬란히 떨어지는 빛> 전시를 위한 사진집에서 이렇게 말을 건넨다. 그것은 너무나 솔직하고 또 명료하게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비치고 있어, 읽는 이를 놀라게 한다.
“나는 그동안 사진이란 매체로 사회적 관점 혹은 동시대적 관점에 천착해 작업을 진행해 왔다. ……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또한 뭔가 의미심장한 주제와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사진가란 항상 사회를 향해 발언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또한 지나친 문제의식에 사로잡혀 대상의 본질을 보기보다는 대상의 효과적인 시각화에만 전념 했던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이미 사진이 현대 사회에서 가장 대중적인 매체로 자리 잡은 오늘날, 나는 사진가로서 어깨에 힘을 빼기로 한다. 이는 불특정 대중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멈춤이자 편협한 사고를 걷어내기 위한 치유이기도 하다. 그저 시간과 공간을 담는 사진 본연의 속성을 믿으며 기술적 발전이 급격한 이즈음 사진이 태동하던 시기의 자세와 정신으로 돌아가 사진적인 사진을 찍는 시도를 시작한다. ‘ひだまり: 찬란히 떨어지는 빛’, 메이드, 2008, p. 52.

그는 사회적-동시대적 관점을 버리겠다고 말한다. 그것은 강박관념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대상의 본질’을 보지 모했다고 말한다. 또 ‘시간과 공간을 담는 사진 본연의 속성’을 믿기로 다짐한다. 그리하여 놀라운 결의에 이른다. ‘사진적인 사진’을 찍겠다는 것이다. 그는 ‘어깨에 힘을 빼기로’ 했다고 말하지만, 실은 우리는 그의 어깨에 실린 단호한 힘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그 모든 것, 그가 내세우는 대당(對當), 사회적-동시대적 관점의 사진 대(對) 시간과 공간을 담는 사진 본연의 속성, 즉 사진으로서의 사진이라는 것에서, 코드, 맥락, 제도, 담론, 아카이브 등 사진적 실천을 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모든 관념들이 소거되는 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 모든 몸짓은 사진 자체, ‘바로 그 사진(photography as such)’을 향한 관심으로 모아진다. 그렇다면 그는 사진이란 ‘재현인가 아니면 현상학적인 실재(real)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후자를 향해 스스로의 사진을 몰고 가기로 결심한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그의 근작들인 <사진의 길>에서의 사진, 그리고 그가 채택한 전시와 관람의 전략을 검토하게 된다.
사진 그 자체로 회귀하기를 원하는 사진가들이 흔히 택하는 전략처럼 박진영 역시 <사진의 길>에서 ‘기억’이라는 주제를 택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우리 모두를 경악시킨 후쿠시마라는 재난의 기억이다. 물론 기억이라는 경험적인 지각 대상은 없다. 기억을 담고 있는 대상 그 자체란 없다. 그런 이유로 기억은 여러 가지 차원을 연루시키며 사진의 독특한 능력을 발언할 수 있도록 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 또 그것이 많은 사진작가들이 새로운 사진적 실천을 위해 선택하는 전략으로서 기억을 선택하게 한 것인지 모른다. 기억에 관한 사진은 사진의 주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진 자체의 존재론을 정의하려는 근년의 사진적 전망을 가리키는 이름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억의 이미지는 그 사진이 재현하는 대상의 편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초과하는 사진 자체의 능력의 편에서 말을 건넨다. 기억을 재현하는 이미지로서 선별될 수 있는 대상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을 재현하는 대상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역사화(歷史畵)를 통해 재현하거나 공식적인 역사 서술의 아카이브와 서적, 전시에서 나타나는 이미지 역시 기억에 호소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미지 자체가 말을 건네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조직된 관람객, 즉 그것을 무엇으로 어떤 관념과 지향 속에서 기억해야할지 미리 알고 있는 관람객을 초대한다. 설령 그 이미지에 저항하거나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전유하는 일이 일어난다할지라도 이미지 자체의 진실은 이미 그것이 제시되는 순간 이미 규정되어 있다. 이때의 기억은 거의 자동적이고 또 정치적, 미학적인 규범에 복종하는 행위이다.
그렇지만 기억의 이미지는 공식적적인 혹은 미리 규정된 역사적 이미지와 다른 것이다. 역사적 이미지란 기억할 가치가 있고 재현될 자격을 갖는 대상을 전제한다. 그러나 기억의 이미지는 다르다. 그것은 먼저 미리 프로그램된 기억-대상을 갖지 않는다. 기억을 재현하기 위해 적합하다고 할 수 있는 대상은 없다. 차라리 우리는 어떤 대상이든 기억을 재현하기 위해 선택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의 이미지는 오직 다양태(multiplicity)의 이미지이다. 그것이 다양태인 이유는 역사적 기억처럼 이념화된 대상(정치적 의례, 전쟁, 시위, 소요, 산업 장관, 빈곤의 풍경 따위)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억의 이미지는 모든 대상에게 기억의 잠재성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을 열어놓는다. 한편 기억의 이미지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국민이라든가 특정한 정치적, 사회적 주체와 동일시할 것을 요구하는 그러한 역사적 이미지와 다르다. 기억의 이미지는 관람객을 어떤 주체-위치로 호명하지 않은 채 관람객의 눈길에 호소한다. 그러므로 기억의 이미지는 집단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이고,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빌자면 상징적이라기보다는 상상적이고, 사회적이라기보다는 비사회적이다.
<사진의 길>에는 <카네코 마리의 앨범 金子滿里の アルバム>이라는 사진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2012년 서울 에르메스 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때 바닥경사를 4도로 만들고 관람객이 기울어진 지면을 디디며 감상하도록 한 설치 작업의 일부분이었다. 전시장 바닥을 그토록 배치한 것은 사진을 관람하는 행위를 감각적 나타남으로서 체험하길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의 길>에 수록된 이 작업에 대한 소개는 이렇게 말한다. “센다이현 초등학교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마추어 사진가, 카네코씨. 이 일본인 사진가가 남겨둔 앨범을 매개로 해서 일본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 사진가가 낯선 언어로 상상의 대화를 나눈다. 작가는 이 앨범을 뒤적이면서 한국의 아마추어 사진가, 전몽각의 <윤미네 집>을 떠올리며, 칼라사진의 첫 등장시기를 한국과 비교해보기도 한다.” 박진영은 3월11일 쓰나미가 일본의 동북부 지역을 휩쓸고 지난 이후 현장을 찾았다. 그리고 미야기현의 센다이 근처에서 “2011년 7월 중순경” 우연히 앨범을 주웠다. 사실 그는 자신이 우여곡절 끝에 방문한 재난 현장에서 놀랍게도 많은 사진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쓰나미가 생존의 물질적 환경, 즉 집, 도로, 자동차, 통신, 수도 등을 모두 흔적 없이 파괴하고 난 이후 그 자리에서 주인을 알수 없는 사진들이 흩어져 있었다는 것은 새삼스럽고 또 기묘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와 나눈 사적인 대화에서 박진영은 사진의 ‘물질성’이란 개념을 들어 이를 설명하려 했다. 이제 픽셀화된 비물질적 정보로 존재하는 사진 이후의 사진과 달리 그는 아날로그(analogue) 사진, 혹은 말장난을 하자면 유비적인(analogous) 사진이 지닌 역량, 그리하여 지금 잊고 있거나 애도할 처지에 이른 어떤 사진 본연의 힘을 안간힘을 다해 역설하는 것, 그것이 아마 물질성이란 낱말을 통해 가리키려 했던 생각이 아닐까 짐작한다. 나는 그것이 대형 카메라를 사용하여 작업을 하는 사진가가 자신의 기술적 선택을 으스대기 위하여 한 발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소멸한 것처럼 보이는 재난의 현장에서 완고하게 자신을 알리는 사진의 현존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진영은 자신이 재난 현장에서 습득한 사진 앨범의 주인 카네코 마리를 애타게 찾는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가 보여주는 사진들을 통해 카네코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것은 전후 일본 현대 생활사의 풍경에 속한 여느 사회학적인 캐릭터로서의 카네코는 아닌 듯 보인다. 멀리서 전람차가 보이는 공원에서 어깨 깃이 넓고 손부리가 다 드러나는 짧은 외투를 입은 소녀 카네코의 모습, 소풍을 가거나 아버지와 나들이를 나선 귀여운 카네코의 모습, 겨자 색 스웨터를 입고 혹은 물방울무늬가 가득 프린트된 민소매 셔츠를 입고 마침내 칼라사진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카네코의 모습. 그 사진 이미지 안에 기재된 시각적인 정보는 우리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풍속화적 이미지도 아니고 역사적 이미지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냥 사진적인 이미지일 뿐이다. 그것은 재현하는 대상과는 무관한 채, 재난 이후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사진적 현전을 통해 여기에 존재하는 그녀, 카네코이다.
이 때 나는 앞서 인용한 박진영의 다짐, 사진 본연의 속성에 천착하는 사진, 사진적인 사진을 찾겠다는 의지를 스스로 실천하고 있음을 확인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는 그것을 ‘기억’이라는 이미지와 행위, 사진적 전략에서 찾고자 하는 듯이 보인다. 기억이란 바로 무엇을 찍을 것인가라는 선택과 상관없기 때문이다. 기억은 재현되어야할 대상, 그 대상을 어떤 방식으로 재현할 것인가에 대한 숱한 기술적, 미학적 고려 등으로부터 사진가를 해방시켜준다(아니 그렇다고 가정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기억의 이미지라고 말할 때 그것은 사진의 제재나 주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진, 혹은 사진의 다른 존재방식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박진영의 어법을 빌자면 그는 기억의 이미지를 통해 사진의 ‘길’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그 길이란 무엇일까. 그는 사진이 막다른 길에 이르렀고 사진이 지닌 힘을 회복하고 갱신할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것일까. 아니면 사진이 가야할 온전한 길, 사진의 원칙, 사진 그 자체의 길로 귀환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박진영은 “나토리시(名取市) 연작”에서 재난 현장에서 사진액자, 카메라, 란도셀, 야구 글러브, 비너스, 음료수병, 정 등을 수집하고 이를 찍은 사진을 제시한다. 이 때 그가 보여주는 사진들이 각기 그 사물들을 보여주는 사진들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사진액자=사진, 야구 글러브=사진, 음료수병=사진, 비너스=사진 등으로 이어지는 등가적 관계의 제시일 것이다. 사진은 사진 속에 재현되는 대상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드러낸다는 말이 그 사진을 통해 비롯되는 미학적 효과를 제대로 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차라리 사진 그 자체(in itself)의 현현 혹은 계시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비너스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보는 것이다. 이는 사진 자체의 놀라운 능력에 눈뜨도록 우리를 촉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진적 이미지가 어떻게 이데올로기적인 효과를 생산하며 사진 이미지가 자신의 표면에 가시화하는 것은 어떤 비가시성과 항상 변증법적 관계에 있는지를 캐묻는 이미지의 비판적 정치와는 상관없다. 그가 보여주는 사진이란 숨길 것이 없다고 말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진의 길>을 압축하는 사진은 현명하게도 그가 사진집의 맨 앞자리에 놓은 <초여름에 내린 눈>이라는 작업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 사진적 이미지의 미학적, 정치적 효과를 조직하는 권력, 담론, 코드 등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초여름에 내린 눈을 찍은 이 사진은 사진이란 아무 것도 숨기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 사진은 우리에게 그것이 걸려들어 있는 코드를 벗겨내어 해독하는(decoding) 식의 읽기의 실천 따위는 무시해도 좋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사진은 순수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세계가 숨김없이 자신을 현상하도록 하는 일을 행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이 군다.
감각하게 하는 이미지
그렇다면 박진영이 택한 사진의 길은 너무 나아간 것인가. 그는 사진에서 사진 그 자체를 보도록 요구한다. 그는 사진적 사진을 발견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런 몸짓을 강제하는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사진-이미지에 거의 익사할 지경이다. 이미지는 너무 많고 그것은 거의 아무런 효력도 없이 우리를 스쳐지나간다. 사진은 어디에서나 휴대할 수 있고 어디에서나 전시되며 어느 자리에서나 볼 수 있다. 사진은 무의미한 과잉 그 자체를 가리키는 이름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이미지의 불임성을 보여주는 증좌가 바로 사진이라고 말한 다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에게서 관람객을 붙잡아매고 사진에게서 어떤 효력을 생산하게 하는 것은, 바로 사진의 그러한 자기 현존, 재현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사진 자체의 현존을 사진은 생산해야 한다는 소망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더 흥미로운 것은 바로 20년의 시간의 궤적을 거치며 그가 주파한 사진의 여정이다. 그것은 그의 개인적인 행로를 말하여주기도 하지만 또한 동시대 사진이 직면한 근본적인 쟁점을 성실하고 또 묵묵히 해결하고자 시도했다는 점이다. 그가 선택한 해법이 과연 옳은 것인지 나는 단언할 수 없다. 그것은 건방지고 무례한 짓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사진적 실천이 거쳐 온 궤적들을 추적하면서 그를 동시대 한국 사진의 하나의 증상으로서 헤아려보는 일이다.
박진영은 앞서 선택한 도식에 따르자면 스투디움인가 푼크툼인가의 노선에서 후자를 향해 나아간다. 그는 사회학적 사진을 찍으면서 동시에 그와 같은 사진을 가능케 한 정치적 조건이 소멸했음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사회 없는 세계의) 사회학적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는 사진의 표면, 사진의 이미지와 그것의 재현으로서의 성질에 대해 깊이 실망한 듯이 보인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자신의 ‘사진의 길’을 찾아간다. 그것은 장면의 사진, 사진의 감각적인 힘이 현현하는 사진이다. 그는 사진적 사진, 바로 그 사진을 발견하고자 하였고, 재난의 잔존물을 찍은 사진에서 재현을 초과하는 사진의 잠재성을 증언하려 한다. 그것은 역사-이미지에서 기억-이미지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사진-이미지의 외부에서 사진을 제한하는 이데올로기, 의미의 체계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사진의 순전한 내재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나는 제발트의 소설 속에서 마주하는 사진을 떠올린다. 그것은 기억의 이미지라고 부를 만한 것의 원형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가 발견하고 또 스스로 찍은 조악한 사진들, 비망록에 가까운 사진들은 체계화할 수 없는, 완결된 역사적 서사의 삽화로 도저히 환원할 수 없는 이미지의 행렬을 보여준다. 그의 사진들이 20세기 인간의 인류학이라고 할 만한 것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아무도 말하지 않은 알려고 한 적도 없는 인물, 사건, 대상들의 이미지들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회학적 상상이 일컫는 것처럼 자신을 대표하거나 재현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소수(자)의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벤야민이 말한 변증법적 이미지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그가 그의 소설 속에 심어놓은 이미지들은 인물이고 세계이다. 그렇지만 그 사진-이미지는 또한 한없는 정서적인 힘을 환기한다. 그것은 소설 속의 화자의 시선을 장악하고 그 이미지가 불러일으킨 충격에 반응하도록 이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진을 본다기보다는 사진의 위력, 이미지의 역량을 보라는 부름을 듣는다. 그것은 사진이 재현하는 대상보다 더 큰 사진의 힘을 말해준다. 기억은 재현된 대상에 구속되고 결정되지 않는다. 기억은 자신이 마주친 이미지의 현상학적인 힘에 의해 추동된다. 그러므로 기억의 이미지는 재현을 초과하는 사진, 감각적인 충격으로서의 사진을 가리키는 것인가.
벤야민의 변증법적 이미지란 개념에 의지하면서, 디디-위베르만은 “인민이란 재현할 수 있는가”란 물음에 답하는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변증법적 이미지라는 벤야민의 개념을 통해 이미지의 존재론을 새롭게 제안하는 그의 시도는 ‘반딧불의 잔존’에서 전개된다.
그는 “단일성, 정체성, 총체성 또는 일반성으로서의 인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감각할 수 있게 만들기, ‘인민이란 무엇인가’, 알랭 바디우 외, 서용순 외 옮김, 현실문화, 2014, p. 98.
그런 점에서 그는 인민이라는 정치적 주체를 실체화하고 그것을 유일하고 적법한 보편적 이미지에 가둘 수 있다는 믿음을 거부한다. 그렇다면 인민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다양태로서, 각자 자신의 이해와 욕구를 제시하는 의견을 가질 뿐인, 인간들의 군도(群島)가 있을 뿐인가. 디디-위베르만은 인민의 부재, 인민을 가시화할 수 없음이라는 이런 비관적인 허무주의 역시 거부한다. 그렇다면 인민이란 누구이고 어떻게 재현될 수 있는가. 그는 지배적인 이미지 체제가 만들어내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도록 만드는 이미지를 찾아낸다. 그가 말하는 인민이란 이미지의 전체성을 흔드는 부정을 가리킨다. 그 때 그 이미지는 잔존물을 기록하고 재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이름 없는 자들을 사진 이미지로 운반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에게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 결정적인 것은 바로 감각하게 만들기,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정동의 효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디디-위베르만은 교차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교차시킨다. 먼저 그는 초월적 보편성을 대표하는 인민은 없다고 말하지만 인민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감각적 사건을 통해 항시 만들어지고 만들어져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음으로 그는 그것은 누구를 재현하고 어떻게 재현하여야 하는 가의 문제를 감각의 변증법 속에서 공식화한다. 그리고 그는 ‘냉혹한’, ‘무감각한’ 이미지들에 맞서 ‘감각할 수 있게 만드는’, ‘증후의 변증법’을 가동시키는 이미지를 내세운다. 이 때 그는 사진을 이미지라기보다는 감각적인 체험, 현상학적인 나타남과 결부시킨다. 앞의 글, pp. 140-3.

여기에서 우리는 최근 등장하는 흥미로운 사진의 미학적, 정치적 프로그램의 어떤 윤곽을 식별할 수 있다. 그것을 나는 다시 앞에서 편의를 위해 선택한 바르트의 이분법을 빌어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은 스투디움인가 푼크툼인가라는(either/or) 사진의 대립적인 노선을 종합하는 즉 스투디움이면서 동시에 푼크툼인(and) 사진-이미지의 노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바르트의 스투디움/푼크툼의 이분법을 가짜 대립으로 거부하면서 그의 특유의 미학적 체제란 관점에서 사진-이미지에 관한 미학적 반성을 시도하는 랑시에르의 저술들 역시 떠올려볼 수 있다. J. 랑시에르, ‘이미지의 운명’, 김상운 옮김, 현실문화, 2014. Notes on the photographic image, Radical Philosophy 156, 2009. 특히 그는 ‘해방된 관람자’란 저작에서 “골몰케 하는/골몰하는 이미지(pensive image)”란 개념을 제시하며 바르트의 주장을 비판한다. 그는 재현과 정동, 사진의 언어적 특성과 감각적 효력을 분리할 수 없고 이것이 바로 현대의 미학적 체제의 핵심적인 특성이라고 역설한다. 즉 스트디움과 푼크툼은 현대의 감각성의 체제인 미학적 체제에서는 기원적으로 서로 얽혀있다는 것이다. J. Rancière, “The pensive image”, The emancipated spectator, G. Elliot. trans. London: Verso, 2009, pp. 107-132.
사진-이미지는 단지 재현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감각적인 실재이다. 사진-이미지는 언어적 기호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감각적인 육체이다. 사진-이미지는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성립할 수 없음, 그것의 불가능성의 부정적 증후를 드러낼 수 있다. 나는 박진영의 사진이 그러한 사진의 노선, 사진의 길을 열어 보일 것인지 모르겠다. 당장 그가 자신의 카메라의 노출을 활짝 열고 찍은 선명하고 환하게 발색된 근작 사진들 속에서 그가 가까스로 숨기고 있는 멜랑콜리를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가 앓고 있는 멜랑콜리는 그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우울이기 때문이다.

코다(coda): 낮잠 자는 변증법


Andrés – New For U

“모순은 희망이다.” B. 브레히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 마성일 편역, 책읽는오두막, 2014, 316쪽.)


우리는 아침마다 눈을 뜨면 신문과 TV 그리고 인터넷에서 오늘의 불행을 탄식하는 서정시를 듣는다. ‘휴먼다큐’란 희한한 장르의 볼거리는 불행을 꾸며주는 따뜻하고 심지어는 서정적이기까지 한 잔재주를 부리며 불행이라는 것을 안온하고 나른한 감상의 대상으로 꾸며 놓는다. 이는 그로테스크하다 못해 역하다는 기분까지 들게 한다. 비참함은 쓰라린 것, 차마 듣고 보기 어려운 것, 만류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적절한 감정적 기대를 가지고 느긋이 감상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가장 불쾌한 것은 불행한 이들이 자신의 불행을 바로잡고자 대들거나 싸우는 것은 불행의 축에 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수동적인 불행, 피해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불행,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고발, 비난, 규탄, 호소, 투쟁의 흔적은 말끔히 표백된 불행, 잠시의 감상적인 연민을 통해 쾌적하게 소비되고 곧 휘발되어 버려야 하는 불행을 매일 한 꾸러미씩 선물 받고 태연자약 즐긴다.
이러한 불행의 경연(競演)은 진보적 저널리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르포르타주와 같은 장르는 더 이상 위선적인 세계가 은폐하고 있던 거짓의 증거로서 불행을 폭로하지 않는다. 폭로는 한 번으로 족한 것이다. 그 다음에 일어나야 할 것은 바로 그러한 폭로를 통해 깨닫게 된 세계를 향해 어떻게 대처하여야 할 것인지 토론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일이다. 그러나 진보적인 체 하는 언론 역시 불행을 폭로하는 일에 분주하다. 그리고 그를 듣고 읽는 독자로서의 우리는 천연덕스럽게 마치 다음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 불행을 기다리며 연민을 준비한다. 이는 피해자는 있었지만 투사는 없는 세계가 보여주는 도착적인 초상일 것이다. 어쩌면 이는 윤리적인 허무주의가 취할 수 있는 극단적인 모습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더불어 이는 정치적 노선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나타난다. 좌파나 우파나 모두 불행이라는 세상의 기후(氣候)를 즐긴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긍정의 공리주의(utilitarianism)가 극성을 부린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전환을 통해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조직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이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방면에서 실용적인 대안을 추구하고 가능한 변화를 모색하는 데 있다는 정반대 편에 있는 긍정의 감정에 몸을 떠는 생각은 어떨까. 알다시피 우리는 이런 생각을 기꺼이 받아들인 지 오래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실현할 수 있는 행복을 위하여 숱한 조언, 대안, 처방에 시달린다. 이를테면 우리는 맘만 먹으면 성생활의 쾌락을 극대화하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외모를 바꾸고 수명을 한계 없이 연장할 수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가장 맛난 식재료와 음식들 역시 돈 만 있다면 실컷 먹을 수 있다. 마우스를 클릭하거나 홈쇼핑의 자동주문 리모컨 버튼만 누르면 낙원과도 같은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다. 우리는 행복을 위하여 못 할 것이 없다. 단 돈 만 있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뭐든지 할 수 있지만 실은 돈이 없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품과 쾌락의 만신전(萬神殿)은 휘황하게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가진 것은 일자리도 없고 호주머니에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젊은 세대들이 있다. 그들이 가진 재산이라면 고작해야 2년 약정으로 빚을 내어 산 휴대전화 한 대 정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과거의 프롤레타리아가 가졌다는 ‘쇠사슬’ 대신 그들에게 유일하게 허용된 소유물, ‘증오’가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자본과 노동의 적대적 모순을 상징화하고자 이뤄졌던 시도들, 자본가 대 노동자라거나 소유계급과 무산 계급, 자본의 지배와 스스로의 지배로부터 소외된 자들 등으로 이어지는 변증법적 대립의 사슬은 제거된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의 라캉주의 정신분석학자 뒤푸르는 최근 어느 책에서 ‘신자유주의적 인간학(neoliberal anthropology)’을 분석하며 계급투쟁은 없고 오직 투쟁만이 있는 세계(대개 아무런 요구 없는 무의미한 분규, 아무런 이유 없는 살인, 다앙한 대상에 대한 중독 등으로 이어지는)라 부를 법한 것을 파헤친다. 그 글에서 그는 한 때 부르주아 계급의 특권처럼 보이는 특징들, 일로부터 면제되고 여가를 누리는 등의 삶을 살아가는 계급 아닌 계급으로서의 젊은이들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역설한다. D-R. Dufour, The Art of Shrinking Heads: On the New Servitude of the Liberated in the Age of Total Capitalism, D. Macey trans. Cambridge: Polity Press, 2013.
비록 그들은 간헐적으로 일자리를 얻지만 그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구성하던 과거의 노동자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들은 단지 그들을 하나의 집단 혹은 철학적으로 말하여 주체화할 수 있는 어떤 정체성도 갖지 못한 비생산적인 소비자 인구집단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 사이의 사회적 교류를 가능케 하고 누군가와 더불어 살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도와주는 것은 카카오톡이니 페이스북이니 트위터니 하는 ‘소셜(social)’ 미디어뿐일 것이다. 소셜미디어가 지닌 커뮤니케이션의 잠재력을 침 튀기며 칭찬하는 주장들이 강조하는 그것의 ‘사회성(sociality)’이란 단지 덧없는 일시적인 사교일 뿐이다. 그것은 기껏해야 내일이면 사라질 지금의 공감, 흐릿한 감정이입을 만들고 거품처럼 꺼지고 만다. 그 사회성을 통해 조합을 만들고 협회를 창립하고 상조회를 조직하는 등과 같이 단체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여기에서 단체라고 말할 때 나는 헤겔이 말하는 것과 같은 단체(cooperative)를 염두에 둔다. 헤겔의 ‘법철학’의 우리말 번역에서는 직능단체라고 번역한다. 그렇지만 이를 굳이 직능단체로 번역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협력을 통해 공동의 목표를 도모하는 근대적인 형태의 모임이라는 뜻에서 코포라티브(cooperative)를 ‘단체’라고 불러도 무방할 뿐만 아니라 훗날 직능단체를 넘어 다양하게 형성되는 그러한 결사체들을 망라하는 이름으로서는 ‘단체’란 말이 더 나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헤겔은 ‘법철학’에서 무산자와 자본가의 대립은 빈곤을 초래하고 이로 인해 ‘천민(Pőbels, rabble)’이 생겨난다고 관찰하며, 이렇게 말한다.
“빈곤 그 자체가 사람을 천민화하지 않는다. 천민은 빈곤에 결부된 마음의 자세에 따라, 즉 부자나 사회 또는 정부 등에 대한 내심으로부터의 분노 여하에 따라 비로소 그렇게 규정된다. 게다가 이런 마음가짐을 갖게 되면 인간은 우연에만 의존하게 되고 경박해지며 노동을 기피하게 되는데, 이를테면 나폴리의 걸인이 그런 경우이다. 이렇게 되면 천민에게는 자신의 노동을 통하여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간다는 데 대한 자부심은 없이 생활비를 얻어 쓰는 일이 스스로의 권리인양 이를 요구하는 악습이 생겨난다.” G. W. F. 헤겔, ‘법철학’, 임석진 옮김, 한길사, 2008, 429쪽.
‘나폴리의 걸인’. 이들은 훗날 룸펜-프롤레타리아라고 불리게 될 이들의 화신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무력하고 추상적인 부정에 휩싸인 젊은 세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헤겔은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모순의 효과, “빈곤의 과잉과 천민의 출현” 앞의 글, 430쪽.
이라는 부정성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단체를 제시한다. 이때의 단체란 노동조합이나 협동조합, 상조회 같은 집단적으로 조직화된 형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헤겔이 단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무엇보다 ‘인륜적인 토대’로서의 그것이다.
그렇다면 왜 단체가 인륜적인 토대라는 것일까. 헤겔을 읽어본 이라면 잘 알고 있듯이, 그가 생각하는 인륜이란 느끼고 생각하는 주체의 편에서의 정신적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객관적인’ 윤리로서의 인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집단과 스스로 동일시하며 그 모임이 지닌 객관적인 절차나 규칙을 수행할 때 부지불식간에 어떤 윤리적 태도에 따라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하기 일쑤이다. 그런 점에서 헤겔이 말하는 인륜은 죄책감을 느끼거나 명예롭다는 느낌을 갖는 주체의 내면적 상태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복장, 말투, 의례, 습속, 공간의 형태 같은 객관적 사실의 편에서 본 것도 아니다. 둘은 동시에 발생하고 동일한 차원에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엄숙하게 꾸며진 장례식장에서 사랑하던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도사를 들을 때 굳이 내면적으로 반성하지 않아도 애틋한 슬픔에 휩싸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는 장례식 같은 단순한 의례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직업적 생활로부터 만들어지는 단체는 자신을 계급적인 주체로 조직하는 단체를 가리키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헤겔이 말하는 단체란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 그리고 그런 조직을 통해 스스로를 주체화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계급적인 문화 혹은 ‘계급의식’ 같은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계급의식이란 말을 누구보다 혐오했던 이로 알려져 있다. 그가 곧잘 말하고는 했던 것처럼 계급의식이라는 개념은 인간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투사하여 계급을 주체로서 가정하고 계급에게 특유한 의식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를 좇아 계급이란 언제나 계급투쟁을 통해 만들어지는 효과일 뿐이라는 점을 십분 인정한다고 해서 계급의식을 손쉽게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프롤테라티아트라는 계급이기 때문에 자생적으로 그러한 계급의식을 갖는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얼토당토 않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혹은 주체로서 자신을 구성하는 것이 항상 좌절되기 때문에 특수한 자기의식의 형태로서 자신을 체험하려 한다는 것, 달리 말해 자신을 자유로운 주체로 구성하기 위해 단체(노동조합이나 당 등)를 조직하고 그로부터 계급의식을 체험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계급의식이란 어떤 계급적 주체의 투명한 자기의식이기는커녕 그러한 자기의식의 불가능성을 해결하려는 시도 속에서 나타나게 된 자기의식의 현상(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륜과 단체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 헤겔이 살던 시대로부터 멀어진 지금 우리는 단체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확장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적인 대의제에 영합하는 것은 아닐) 정당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형태의 투사들의 조직일수도 있다. 우리는 다양한 역사적 모습으로 존재했던 그런 단체들을 알고 있고, 그것이 미래에 취할 형태 역시 다양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단체를 조직한다는 것은 단지 힘을 모으고 조직하며 투쟁을 감행하며 성원을 교육하고 단련시키며 또 필요한 기금을 조성하는 일 등에 국한되지 않는다. 스스로를 단체로서 조직화한다는 것은 이미 세계의 모순을 다른 방식으로 주관하면서 동시에 객관화하는 것이다. 조직화된 노동자계급이 서있을 때, 그것은 단순히 주체의 편에서의 전환이 아니라 객관적인 현실에서의 전환을 초래한다. 노동자계급이 조직화되어 자신을 새롭게 주체화할 때 자본은 전과 같은 방식으로 생산방식을 조직할 수 없고, 이윤을 착취할 수 없으며, 국가를 지배할 수 없으며…, 등등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더 이상 전과 같은 방식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주체의 편에서 단체로 조직된 주체로의 전환이 이뤄지자마자 나타나는 일은 주체의 각성이 아니라 현실 자체가 새로운 세계로 바뀌는 것이다.
물론 이는 세계는 결국 보는 이의 관점에 달려있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력한 낭만적 부정을 가리킬 따름이다. 느낌의 공동체니 기억, 애도의 공동체니 하는 말들은 우리 시대의 윤리-정치적 유행어구들일 것이다. 그런 몸짓은 ‘세계 없는’ 주체의 편에서 이뤄지는 낭만적인 부정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적 부정을 회피한다. 현실적 부정 혹은 변증법적 부정이란 객관적인 세계를 주관적인 의지와 계획에 따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변증법적 부정이란 객관적인 것에 항시 주관적인 것이 연루되어 있고 또 그 역이기도 하다는 점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흔히 유물론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주체의 의식이란 자기 앞에 놓인 세계의 반영이라 여기는 것으로 간주되고는 한다. 그러나 그런 발상은 유물론이라기보다는 소박한 경험적 사실주의에 가까운 것이다. 유물론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객관적인 세계는 주관적인 의식으로 결코 투명하게 반영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반영을 방해하고 좌절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순적인 세계란 주체의 의식 속에 반영되는 사실의 세계가 불가능하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모순이란 그런 점에서 이중적이다. 그것은 주체가 세계를 투명하게 반영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요인임과 더불어 주체가 자신을 주체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한계라고 말할 수 있다.
누구나 자유롭다고 말하는 세계에서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인민은 자신을 그러한 주체로서 체험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로 스스로를 주체화하지 못한다. 그들은 단지 자본가나 임금노동자로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만 가까스로 객관적인 세계에 참여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의 삼위일체 공식이란 것을 통해 고발한 것처럼, 자본을 통해 기업가적 이윤을 토지로부터 지대를 노동을 통해 임금을 얻는다는 물신주의적 환영을 통해서만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객관적 사실의 세계에 입장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만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던 바대로의 세계로서 나타난다. 그 탓에 지금은 더 이상 인기 없는 개념이 되었지만 물신화와 소외란 말을 손쉽게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릴 수 없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자기 소외란 개념이 자본의 적대적 모순으로 인해 자신을 영원히 주체화할 수 없게 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면 무슨 말이겠는가. 물신주의란 개념이 상품, 화폐, 자본, 이윤, 지대, 임금이라는 환상을 통해서만 자본주의라는 장치가 순조롭게 운행할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면 무슨 말이겠는가. 그러므로 자본주의에 대한 객관적 분석은 그것을 모순 없는 세계로 나타도록 하는 주관성에 대한 분석과 다르지 않다. 마르크스가 생전 출간한 ‘자본’의 첫 번째 권에서 ‘물신주의’에 대한 장을 그토록 공들여 다시 쓰고 다듬으려 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애도와 기억, 느낌 등의 아름다운 개념으로 조직된 공동체는 부정의 정치를 조직하는 힘을 갖지 못한다. 부정이란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만드는 세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나에게 왜 그러한 방식으로 나타나는지를 반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 신자들이 회심이나 개종이라고 부르는 절차와 같은 어떤 것을 감행하는 것이다. 즉 세상이 그렇게 굴러갔던 것은 내가 세계를 그런 식으로 응시했던 탓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택한 이후에 세상은 전연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는 스스로를 바꾸어야 한다. 모순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세계를 모순으로서 바라본다는 것은 세계의 악이라든가 고통을 발견하고 그것을 비난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자유로운 주체로서 만들어내지 못하도록 만드는 힘을 원망하고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세계를 탐색하고 추궁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최악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무력한 허무주의와 최선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긍정적인 능동주의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최악의 세계와 최선의 세계를 변증법적인 부정의 관계 속에서 매개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한 것처럼 보인다. 변증법이 긴 낮잠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낮잠 자는 변증법을 깨워야 한다.
“잘 알려진 한 구절에서 마르크스는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을 할 것을, 즉 이 발전을 긍정적이면서 동시에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을, 다른 말로 하면 누가 보아도 해악한 자본주의의 특징들과 자본주의의 독특한 해방적 역동성을 하나의 사고 속에 동시에 어느 쪽 판단도 희석시키지 않고 다룰 수 있는 사고의 형태를 가지기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의 사고 능력이 자본주의가 인류에게 생긴 최선의 것이자 동시에 최악의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프레드릭 제임슨, 포스트모더니즘-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 ‘포스트모더니즘론’, 정정호, 강내희 편, 터, 1990, 191-2쪽.

프레드릭 제임슨은 ‘후기자본주의의 문화 논리’란 조건 아래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한다는 것이 직면한 어려움을 깊게 사색한 드문 마르크스주의자 가운데 하나이다. ‘향수(nostalgia)로 대체된 역사’, ‘비판적 거리의 소멸’, ‘안과 밖을 분간할 수 없는 쇼핑몰화 된 세계의 공간감’ 등, 그가 열거한 조건들은 자본주의 비판이 처한 곤경을 밝혀준다. 그렇지만 그는 인용한 글에서 그런 곤경을 자본주의의 해방적 역동성으로 기꺼이 인정하면서 그것을 부정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것을 요청한다. 말하자면 최선과 최악의 것을 함께 사고하고 그것을 변증법적인 모순의 관계 속에서 인식할 것을 주문한다. 그 역시 잠에서 깨어난 변증법을 찾는 것이다.
변증법? 변증법적 사고?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다시 실제적인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벗어나 지루한 철학 공부를 시작하고 머릿속에서 사물과 사태의 연관을 사색하는 일에 탐닉해야 한다는 말인가. 당연 그래도 좋고 또 그러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진정으로 변증법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브레히트가 말한 것처럼 다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의 모순 때문이다. 모든 일과 사물과 사람에는 그것들을 지금의 상태로 만드는 무언가가 있고, 동시에 다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왜냐면 그것들은 발전해나가고 머물러 있지 않으며 못 알아볼 정도로 변한다. 지금 있는 것들 안에는 ‘아무도 모르게’ 다른 것, 그 이전의 것, 현재에 적대적인 것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B. 브레히트, 앞의 글, 340쪽.
브레히트는 ‘모순은 희망’이라고 말한다. 모순이 난관이나 절망이기는커녕 희망인 이유를 그는 말한다. 우리가 경험 속에서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의 세계에는 모순이란 없다. 쉼 없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세계, 발전하고 변화하는 세계는 모순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외려 모순은 그런 변화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되돌아오는 것, 모든 눈부신 변화와 발전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것을 가능케 했던 무엇, 브레히트의 말을 빌자면 “지금의 상태로 만드는 무언가”를 일컫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는 이를 자본주의의 적대라고 칭했고 또한 정치가 자리하여야 할 장소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는 최선이면서 동시에 최악인 듯 ‘보이는’ 세계에 살고 있다. 최선인 듯 보이는 세계와 최악인 듯 보이는 세계를 조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극과 극은 결국 통한다는 싸구려 지혜로 이런 배리(背理)를 설명하여 봤자 그것은 자신의 무지를 은폐하는 짓에 불과하다. 서로를 배척하는 두 가지의 시선을 조정할 수 있는 방편은 없다. 최선이거나 최악일 수밖에 없는, 서로 전연 다르게 현상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를 보는 관점을 통합하는 방편을 찾으려면 그것을 발명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한 관점은 저절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날 가장 무관심한 것으로 전락한 정치를 되살려 냄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그런 변증법의 가능성을 정치에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자 했다. 내게 있어 정치란 그런 변증법적 부정의 다른 이름이다. 모쪼록 그것이 글을 읽은 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
_ <변증법의 낮잠:적대와 정치>의 마지막 장

말해질 수 있는 것과 말해질 수 없는 것 – 세월호 참사 이후의 사유


Nina Simone – Revolution

1.
말해 질 수 있는 것과 말해 질 수 없는 것이란 제목은 언뜻 언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할하자는, 그리고 그러한 분배에 관련된 어떤 윤리-정치적인 기준이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말처럼 들릴 듯싶다. 언뜻 랑시에르의 미학 교본에서나 볼 만한 주장을, 나는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 사태 이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란 물음을 던지는 자리에서, 자신의 발언을 아우르기 위해 그런 제목을 택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아마 다른 이들 역시 버거워하고 또 두려워했을 어떤 말의 제약을 지시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다. 그 제약이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온전히 말한 것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 그러나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상황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차라리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말해질 수 있는 것과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분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이런 언표 혹은 나아가 사유의 망설임 아니 이중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잔꾀는 계속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 탓에 나는 세월호 사태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물론 내가 침묵한다고 해서 신경 쓸 이도 없을 것이고 실은 그건 아무런 대수도 아니다. 말해야 한다는 압력을 견디는 것보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것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이 더 견디기 어려울 때, 물어온 이도 없는데 아무 말도 않겠다는 터무니없이 제 혼자 선제적으로 답변하는 짓. 그것은 말하기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태도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각자 하나의 가설을 만들어내면서 기꺼이 사태를 해석하는 윤리적 능동성, 그것을 하나의 사유되어야 할 과제로서 내세우는 열정은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그것이 적잖이 퇴폐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 탓에 더욱더 말문을 열려다 멈칫 멈춰선 채 반쯤은 입의 문턱에 걸친 말들을 엉거주춤 되삼키며 흘러나올 뻔 했던 말을 되삼키곤 했다.
그러므로 비망록(備忘錄)에 가까운 글쓰기가 난무하는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나에게 실은 그렇다고 자백하는 것이 옳을 일이다. 비망록이란 지금으로서는 미처 해결할 수 없는 물음을 대하면서 당장은 해결될 수 없을지라도 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며 그를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둔 것이다. 세월호 사태에 관하여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비망록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도 그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몇 가지 사유해야할 과제를 기록해두고자 한다.
2.
세월호 이후를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에 대해 사유한다는 것일까. 이를 빗대어 생각해 볼만한 게 있다면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일본에서 전개된 사유의 풍경일지 모르겠다.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 가운데 일부는 “사상적 문제”로서 후쿠시마사태를 규정하고 그를 사변화하고자 시도한다. 쓰루미 슌스케 외, ‘사상으로서의 3.11’, 윤여일 옮김, 그린비, 2012.
그런데 그것이 사상적 문제라면 어째서 사상적인 문제일까. 3.11을 경유하며 더 이상 전과 같이 사유할 수 없게 되었으며 세계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노선을 발명해야 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자연적인 재해 혹은 사회적인 재난의 한 사례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유되어야 할 문제로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일까. 실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사색하는 한국의 지적 풍경 역시 그런 식의 모습을 펼쳐 보인다. 외상, 트라우마, 애도, 파국, 재난 등의 개념들을 뒤섞으면서 그들은 세월호 참사가 “인식론적 재난의 계기”라거나 가족과 국가를 잇는 열정적 애착의 관계가 탈구되어 마치매 국(國)과 가(家)가 분리되는 역사적 불귀점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열띤 목소리로 발언한다. 그러나 이런 논의에 저항감을 품는 이도 없지 않는 것 같다.
최근 ‘인문예술잡지 F’에 실린 아즈마 히로키와 아사다 아키라의 대담은 3.11을 사상적 문제로 규정하고자 하는 아즈마와 이를 거부하는 아사다 사이의 대립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아사다는 3.11은 그저 기술공학적 혹은 사회공학적인 문제일 뿐 허풍스럽게 이를 사상적 문제로 고양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렇게 대꾸한다.
“(……) 지진 재해를 많은 국민이 ‘국가적 위기’로서 받아들였죠. – 특히 수도권에서는 단순히 정전돼서 전철이 멈췄을 뿐인데도 인터넷을 보면서 집으로 가는 동안에 많은 사람이 자신도 재앙 영화 주인공인 것처럼 느끼고 지진 재해를 필요 이상으로 ‘주체적 위기’로서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 게(거기에서 ‘세카이계’의 상상력을 보든 말든) 문제라면 문제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신 이와지 대지진 재해는 지역적 재해였기에 당연하겠지만, 그 후 ‘힘내라 고베’라는 슬로건도, ‘힘내라 일본’ 따위 목소리도 일체 들을 수 없었고 그것으로 괜찮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도호쿠 지진 피해자들은 차치하고, 상당히 많은 일본인이 ‘일본의 위기’인 동시에 ‘나의 위기’인 것처럼 받아들여버린 듯합니다.” 아사다 아키라, 아즈마 히로키, “후쿠시마는 사상적 과제가 될 수 있는가”, [인문예술잡지 F], 2014, 사이, 32쪽.

여기에서 아사다의 발언은 되새겨 볼만하다. 철학자가 3.11 같은 사태에 끼어들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으니 “잠자코 낮잠이나 잘” 일이라고 빈정거리면서도, 그는 그것이 초래한 반응에 대해 위와 같이 반응한다. 그의 발언에서 눈에 띄는 점은 그것이 주체적 위기로서 수용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위기’인 동시에 ‘나의 위기’라고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그는 3.11이 주체적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전의 한신 대지진때만 해도 특정한 지역 사회의 일로 여기며 그 사태를 겪은 이들에게 격려와 지지를 보내던 일본인들이 이제는 지금의 사태는 단지 그들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나아가 나의 문제라고 새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저 없이 수긍할 수 있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런데도 어딘가 석연치 않은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사다의 다소 사변적인 발언을 통해서 알게 된 후쿠시마 이후의 현실은 우리에게서도 다르지 않다.
“저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각자 그런 식으로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픔이 계속해서 더 커지고 있죠. 굉장히 큰 충격 상태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죠. 범국민적으로 집단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상태까지 온 것 같아요. 이렇게 크게 아파하는 경우는 저도 본 적이 없거든요.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것을 떠나서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경우는요.” “한국이라는 나라, 희망은 있는가”, [녹색평론 137], 2014년 7-8월, 7쪽.
여기저기에서 들을 수 있었고 또 우리 스스로 지척에서 들었던 이런 발언 역시 아사다가 말한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범국민적으로 집단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상태까지” 온 것 같은 정신적 혼란에 휩싸여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는 주관적으로 힘들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위에서 아사다는 그것이 주체적 위기라고 할지라도 객관적인 위기라고 볼 수는 없다는 듯이 말한다. 그는 원전문제에 관한 한 기꺼이 공산당을 지지한다면서 좌파라면 반문명적인 몽매로 치닫지 않고 냉정하게 핵에너지를 비롯한 문제를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요컨대 무리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그는 설령 그것이 주관적인 위기로 새겨질지 몰라도 그것을 객관적 위기로 사고할 수 없으며 그렇게 사고하려고 시도하는 한 그것은 반이성적인 몽매에 가깝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말처럼 주체적 위기와 객관적 위기를 그렇게 간단히 분리할 수 있는 것일까.
3.
세월호 사태 역시 비슷한 질문을 들게 한다. 우리는 과적된 선박과 부실한 위기관리 등 우리가 익히 듣고 알게 된 이유들을 통해 또한 아직도 은폐된 채 진실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이유들을 통해 그 끔찍한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장차 그렇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모두 알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객관적 이유들을 수집하고 끼워 맞추어 그것의 객관적인 경과를 분별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야기한 섬뜩하고 아득한 충격을 헤아리는데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유를 알고 있지만 실은 원인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에서 이유와 원인을 이렇게 간단히 구분해보고자 한다. 어느 날 회사에 다니던 엄마는 느닷없이 집으로 돌아오던 어린 딸이 차에 치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치자. 그 아이의 죽음의 이유는 명백하다. 그것은 자동차가 아이를 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로 그녀는 아이의 죽음을 수용할 수 없다. 그녀는 분명 자신이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 그녀는 다른 무엇이 잘못되어 그 아이가 죽음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녀는 차에 치었다는 것이 이유임을 분명히 알지만 그것으로 모든 사태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 집요한 확신은 원인을 찾으려는 몸짓으로 이어진다. 이로부터 우리는 이유를 항상 초과하는 원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세월호 사태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세월호 사태가 나자마자 그것에 대한 전문가들의 수많은 분석과 진단을 듣는다. 공학적인 이유, 경제적인 이유, 행정적 시스템의 이유 등. 그러나 그것은 이 사태를 온전히 납득하게 하지 못한다. 그것은 어떤 원인과 연결됨으로써 우리에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 사태가 되기 위해 계속 머무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원인을 규정하고 제안하는 초월적인 심급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이를테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신이 없다. 그러므로 신의 심판이거나 시험이라는 이유를 들어 우리가 겪게 된 사태를 어떤 초월적인 질서의 계기로 등록시킬 수 없다. 만약 누군가 그런 식으로 발언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외설스럽고 추악한 헛소리로 들리지 않을 수 없다. 가끔 극우파 정치인이 그런 식으로 발언을 하는 것을 듣게 될 때 우리가 느끼는 역겨움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런 발언을 비합리적인 몽매에서 비롯된 헛소리로 치부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보수적이고 부정적인 방식으로 원인을 찾으려는 몸짓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발언들은 세상의 무대에서 퇴장한 신이 여전히 무대에서 제 역을 수행하고 있다는 착각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신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우리는 충분히 탈종교화된 주체가 되어 자신의 사고에 대한 반성을 통해 충분히 원인을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을 것일까. 그렇지만 이유와 원인의 간극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반성적인 사고를 초과하는 무엇을 발견하고 그것에 의지하고자 한다. 루카치는 ‘영혼과 형식’에서 신은 무대에서 퇴장했지만 여전히 객석에 머물고 있는 세계의 문학적 형식을 비극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여기에서 그는 근대 세계가 직면한 진퇴양난의 곤경을 말한다. 먼저 신이 무대에 있을 때 세계란 신에게 완전히 종속된 채 자신의 자율적 가치를 잃고 인간은 피조물에 머문 채 자신의 자유를 상실 당한다. 이때 인간은 그저 신에 의해 조종당하는 무력한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반대로 신이 부재한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우리는 세계가 스스로의 의미를 잃고 인간은 자유를 얻게 되겠지만 그것은 그저 무가치한 세계에서의 자율일 뿐이다. 신은 세계의 진리를 규정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곤경에서 벗어날 방법은 무엇일까. 루카치는 여기에서 비극이 비롯된다고 말한다. 무의미하고 비참한 세계에서 인간이 진실한 세계를 창설하는 자유를 적극적으로 떠맡는다는 것이다. G. Lukacs, Soul and Form, Anna Bostock trans. The MIT Press, Cambridge, Massachusetts, p. 154.

그러나 비극이 과연 신이 퇴장한 세계에서 신을 대신하는 인간 즉 신의 의지에 의해 조직된 질서가 사라진 이후 세계의 무의미를 대체할 수 있을까. 그것을 문학에 빗대어 말하고 있지만 실은 루카치의 심중에 비극의 역할을 떠맡은 것으로 짐작된 것은 정치일지도 모른다. 물론 정치는 신을 대신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 비판의 자리에서 정치가 들어섰다는 것, 언제나 유사-신학적인 세계로 정치를 동결시키거나 아니면 근본적인 우연성에 정치를 개방시키거나 하는 방식으로 정치가 언제나 원인의 문제를 다루고자 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것을 되짚어 볼 자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신이 사라진 이후에 자유를 떠맡은 주체, 자유의 심연으로서의 주체라는 널리 알려진 주장을 상기하며 주체의 자유란 것을 상기하는 것으로 멈추도록 하자. 그리고 이와 더불어 주체의 자유를 어떻게 원인을 발견하고 제어하는 행위와 결합시킬 수 있냐는 물음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덧붙이도록 하자. 원인을 더 이상 신에게서 찾을 수 없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원인을 발견하여야 할까. 과학적 이성을 통해 이유로 알려진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제어하는 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유를 초과하는 원인을 애타게 찾으려 할 때 우리는 재난과 불행을 그저 과학 다큐멘터리의 초연한 목소리가 말하듯이 정연한 객관적 세계의 규칙과 질서로 환원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원인의 자리는 제거할 수 없는 과잉으로서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이는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관계를 둘러싼 우리 시대의 논쟁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4.
그렇다면 이런 과잉으로서의 원인은 근대 세계에서 제거하고 저항할 수 없는 숙명이므로 불가피한 것으로서 기꺼이 인정하고 이성의 폭주를 막는데 전력하여야 하는 것일까. 다시 말해 인간의 무제한적인 자유가 주어졌다지만 그것이 항상 자신의 자유를 산산 조각낼 수 있는 파국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겸허히 인정하고 그러한 자유의 과도한 사용을 억제하고 냉정한 실용적 태도를 살아가면 충분할 것일까. 그러나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우리가 목격하는 현실은 전연 다른 모습인 듯하다. 앞서 보았듯이 우리는 객관성 없는 세계, 즉 우리에게 나타는 바대로의 세계, 아사다가 말한 대로라면 주체화되기 만할 뿐 그것을 어떻게 조정하고 지배할지 모르는 세계가 주어져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럴 때 우리는 새로운 윤리적 용기를 요청받는다. 믿을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일 뿐이라는 것, 우리 내부에서 비롯되는 공감과 연민의 몸짓에 의탁하는 것을 빼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없다는 서글픈 주장들이 우리 주변에서 맴돈다.
그러나 그런 윤리적인 유혹은 세계를 변형할 수 없다는, 세계를 부정할 수 없다는 체념을 순순히 수락한다는 것에서 문제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한 비순응적 순응이라는 몸짓은 사회의 외부, 세계의 바깥에서 윤리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낸다고 상상함으로써 객관적 세계로부터 떠날 수 있다고 순진하게 믿는다. 그렇지만 그런 윤리적 주체를 상정하는 것 자체가 물신화이다. 세계란 언제나 주체를 통해 매개된 채 존재한다. 그것은 나의 의식적 반성의 효과로서만 세계는 있을 뿐이라는, 흔한 말로 모든 실재는 담론적인 실재일 뿐이라는 요즈막의 포스트구조주의적 상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담론적으로 매개된 실재만이 있을 뿐 세계 그 자체는 없다는 말은 주체의 외부에 세계가 놓여있다는 흔한 이분법을 되풀이하면서 둘이 매개되어 있음을 무시한다. 둘이 매개되어 있다는 말은 객체 안에 존재하는 주체의 차원 혹은 그 역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존재가 주체에 ‘대하여’ 존재할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자적인 존재를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들어낸 것은 우리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본주의 하에서의 노동의 소외를 비판하는 것, 노동생산물의 가치가 그것에 투입된 노동의 가치와 일치하도록 노동증권을 발행함으로써 착취를 극복할 수 있다는 프루동 식의 발상은 상품의 형이상학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된다. 상품이라고 말할 때 이는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노동생산물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마르크스는 노동이라는 주관적인 활동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라는 것을 통해 규정된다고 말한다. 그 말은 노동이란 활동이 객관화될 때 그것의 가치는 그저 사회의 평균적 노동시간이라는 척도를 통해 규정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품이라는 형태로 노동생산물이 존재하게 되는 한 내가 노동을 하게 되는 방식은 완전히 바뀌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상품을 더 많이 생산함으로써 이윤을 얻고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자본가/노동자 편에서의 물신주의는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은 이미 주어진 노동시간의 평균값이라는 뜻에서의 소여로서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추가적인 잉여가치를 얻기 위한 맹목적인 주관적 충동을 말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상품을 두고 그것의 ‘유령적 대상성(spectral objectivity)’을 말할 때, 그는 전적으로 객관적인 것도 아니면서 주관적인 것도 아닌, 마르크스 자신의 말을 빌자면 감각적이면서도 초감각적인 것으로서의 주체-대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노동이라는 합목적적인 주체의 활동의 소산이면서도 주체를 끊임없이 충동질하는 욕망이기도 한 셈이다. 이럴 때 우리는 객관적으로 매개된 주체 혹은 주관적으로 매개된 객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보다 강하게 말하자면 존재는 주체에 의해 매개된 것으로서만 존재한다는 말은 주체의 능동성이 아니라 대상의 능동성이란 역설을 가리키는 것으로 고쳐 읽어볼 수 있다. 지젝이 어느 글에서 간지럼을 타는 주체(ticklish subject)라고 말한 바처럼 주체는 대상에 의해 간지럽혀진다. 슬라보예 지젝, ‘까다로운 주체’, 이성민 옮김, 도서출판b, 2005.
주체의 전환은 대상을 다른 방식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것이고 그렇게 부정 즉 규정을 통해 재인식된 대상은 주체로 하여금 전과 같은 방식으로 대하지 못하게끔 이끈다. 이를테면 우리는 더 이상 조국의 발전을 위해 땀 흘려 일하는 산업역군이 아니라 한 줌의 배부른 가진 자들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일 뿐이라고 주체적 위치의 전환을 하게 될 때 실제 바뀌는 것은 주체 이상으로 세계이다. 세계는 다른 좌표 위에 배치되고 노동자들은 그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라는 요청을 쏟아낸다.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달리 보이고 세계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것이 지젝 식으로 말해 새롭게 상징화된 대상 세계를 통해 간지럼을 타는 주체가 만들어진다는 셈이다. 즉 주체는 짐작과 달리 지극히 수동적일지도 모른다.
5.
“파국을 진리의 원천으로 비극적으로 갈망해서는 안 된다. ‘결과’를 형이상학적으로 무시하거나, ‘예외’를 바로크적으로 즐겨서도 안 된다.” 프랑코 모레티, ‘공포의 변증법’, 조형준 옮김, 새물결, 2014, 364쪽.
어느 글에서 모레티는 이렇게 말한다. 위기 혹은 파국을 진리가 스스로 계시하는 순간으로 바라보려는 충동에 대하여 내리는 경고이다. 이는 파국을 다시 옹호하는 이들과 견주면 너무나 소심한 반응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와 유사한 발언을 하는 보들레르의 말을 상기하면 조금 더 선명한 인상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거리, 하나의 화재, 하나의 교통사고는 사회적 계급으로 정의되지 않는, 그저 사람으로서의 사람들을 집합시킨다. 그들은 구체적인 집합에 참여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사적 이해의 국면에 사로잡혀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추상적이다. 자신들의 사적 이해관계 속에서 ‘공통의 물건’을 중심으로 시장에 모여드는 고객이 그들의 모델이다. 이들 집합은 흔히 통계적 실제밖에는 지나지 않는다.” 발터 벤야민,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외’, 김영옥, 황현산 옮김, 길, 118쪽.
보들레르의 문장들을 읽으면서 그간 우리가 겪었던 일련의 사태들과 그에 대한 반응들을 상기할 수 있을지 않을까. 거의 타성이 되다시피 한 윤리적 능동성이란 규범을 생각해보도록 하자. 이는 거의 참기 어려울 만큼 “참여하라, 참여하라, 그것이 너의 윤리적인 의무이다”라고 다그치는 무언의 압력을 말하다. ‘촛불 시위’ 이후 우리는 ‘조직 없는 다중’으로서 어떤 위계와 권위적인 지침 없는 자유로운 윤리적 주체로서, 모든 사태에 적극적으로 윤리적으로 참여하도록 독려 받아왔다. 광화문이거나 대한문 앞이거나 밀양이거나 강정마을이거나 아니면 두리반 칼국수집이거나 마리 카페이거나 그 모든 곳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극적인 윤리적 열정을 가지고 참여하여야 할 순간들이 있다고 통지를 받는다. 그러나 그 자리에 모이는 다중은 추상적인 세계를 상대할 뿐이다. 그리고 각각의 사태는 모두 동등한 보편적 대의를 위해 헌신해야 할 무엇으로서 상징화된다. 게다가 그런 사태는 너무나 많고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채 다음에 오는 화려한(?) 사태에 자리를 넘겨준다. 이는 실은 너무 퇴폐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파국의 시학을 열정적으로 발언하는 철학자나 시인의 말을 들으면 나는 솔직히 우리 시대의 윤리적 데카당스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한 하나하나의 사태들은 지극히 추상적인 주관적 윤리를 요청할 뿐이다. 그것은 해결해야할 사태의 총체 속에 등록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세계를 부정하는 몸짓인척 하지만 부정으로부터 수축된 더 심하게 말하자면 부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행위처럼 보일 지경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팽목항에서 밀양으로 다시 어딘가로 희망버스를 타고 떠난 벗과 동지들에게 미안하고 착잡할 뿐이다. 어느 순간이나 ‘운동’은 너무 많고 너무 강하지만 그것은 또한 너무 적고 너무 유약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길게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세계 없는 세계에서 우리를 경악시키는 주관적인 충격의 연속으로서의 세계, 윤리적 파국의 이미지로 전환된 세계에 당도하게 되었다면, 이는 그렇게 가볍게 여길 일은 아닐 듯 싶다. 나는 쌍용자동차사태를 비롯한 중요한 사태에 개입하는 담론이 “외상후 증후군”과 같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에 놀라곤 한다. 그것은 고통을 겪는 심리적인 개인을 전면에 내세울 뿐 그들을 투쟁 속에 있던 집단적인 사회적 주체 혹은 계급으로서 재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불쾌한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그것이 정치와 윤리의 관계를 왜곡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정치의 윤리란 부정 혹은 투쟁을 주체화하는 것이 곧 부정/투쟁의 대상을 규정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흔히 정치의 윤리화라고 말할 때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나는 그것을 정치의 도덕화라고 불러야 옳다고 본다. 정치를 도덕화한다는 것은 정치를 도덕적인 규범의 문제로 환원하고,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세계에 어떤 책임이 있으며 어떻게 그것을 감당할 것인가로 묻는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즉 그것은 세계 없는 주체의 자폐적인 반성을 가리킬 뿐이다.
반면 정치의 윤리화란 부정하는 주체를 규정하는 일은 부정하는 대상을 규정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이 때 주체화란 곧 객관화이고 헤겔식 어법을 빌어 말하자면 주체는 실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파국의 시학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것, 사상적 문제로서의 세월호, 주관적 문제로서의 세월호라는 판단에서 벗어나 주관적이면서도 ‘동시에’ 객관적 문제로서의 세월호라는 문제에 이르러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객관적 문제로서의 세월호란 다양한 객관적인 기술적, 공학적, 행정적 등의 이유에 의해 초래된 불행한 사고로서의 세월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주관적인 것이 삽입된 것으로서 이미 말한 대로라면 주관적인 것에 의해 매개된 것으로서의 세월호일 것이다.
6.
그로부터 이제 우리는 국가란 문제로 옮겨갈 수 있게 된다.
“흐느낌 사이로 돌림노래처럼 애국가가 불려지는 동안, 악절과 악절들이 부딪치며 생기는 미묘한 불협화음에 너는 숨죽여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하면 나라란 게 무엇인지 이해해낼 수 있을 것처럼.” 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18쪽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우리는 이런 구절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국가란 무엇인가란 신음과 탄식을 떠올리게 된다. 다시 국가란 무엇인가란 물음을 던지는 이들이 넘쳐난다. 어느 시사주간지가 세월호 사태 이후 제호로 삼았던 말처럼 “이것이 국가인가”를 묻는 질문이 폭발한다는 것은, 일견 가늠이 되면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첫 번째 그것은 너무나 가볍게 신자유주의 비판의 상투적 수사에 편승한다. 그것은 국가의 퇴각 혹은 국가의 안전으로부터의 철수라는 흔한 주장에 의지한다. 안전(security)을 방기한 국가 오직 공안과 형벌의 기능에만 유능한 국가를 고발하며 경찰 국가, 호러 국가, 비-국가, 숫제 국가 없는 세계라는 투의 비난이 세월호 사태를 둘러싸고 계속해서 꼬리를 문다. 그렇지만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국가 비판이 현재 처한 문제를 사변화하는 무대가 될 수 있을지 진심으로 의문이다. 그렇다면 국가를 다시 불러들이자는 것인가. 해방적 정치는 그런 방식으로 정치에 관한 사유의 노선을 구성하려는 시도를 분명히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장에 내포된 두 번째 문제는 그것이 충분히 신자유주의적 국가에 대하여 비판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푸코 식으로 말해 주권적 국가로부터 안전기구의 메커니즘으로 전화한 국가는 더 이상 정의나 공공선과 관련이 없다. ‘사회 국가’라고 말하는 복지국가란 안전으로 알려진 일련의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다양한 지식, 장치, 제도, 법률의 복합체일 뿐이다. 따라서 사회국가란 이미 더 이상 일반의지나 공공선을 강제하는 국가가 아니라 가능한 적게 통치하는 국가, 변화하는 사실의 세계에 따라 자신의 통치의 내용과 형태를 조정하는 국가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의 쇠퇴나 몰락은 자유주의의 시점 속에 기재되어 있다. 국가는 정의의 윤리적 시좌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냉소적인 사실의 지평 위에서 자신의 무능과 실패를 조정한다. 국가개조론이 말하는 국가 장치의 비효율, 비능률이란 수사는 기만으로 조롱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말은 진지하고 계산된 것이며 자신의 이념에 충실한 것이다. 얼마나 효율적이고 능률적으로 작동하는지 현실에 비추어 통치를 개선하고 개량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점은 이것이 국가인가라고 말하며 경악하는 이들에게서 국가가 사회적 총체성을 직접적으로 대의할 수 있으며 또 그러해야 한다는 환상을 발견한다는 점에 있다. 이런 환상은 지금은 인기 없는 주장이지만 여전히 고수할 가치가 있는 계급 국가란 인식을 단숨에 추방한다. 계급 국가란 개념이 국가란 결국 지배계급의 국가이거나 계급지배의 도구임을 가리킨다고 해서 나는 굳이 크게 틀린 것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비 같은 이가 말하는 것처럼 더 이상 지배계급은 더 이상 우회하여 자신의 정치적 대표자에게 정치를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위원회로서 스스로 국가를 인수하고 관리한다. 그러나 계급국가란 개념의 요점은 정치란 근본적으로 당파적이란 것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치란 부분들의 총화로서의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총체화 할 수 없는 적대 혹은 분열을 억압하거나 그것을 치환하는 영속적인 과정일 뿐임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나파르티즘이나 군사독재는 정치의 예외적인 형태인 것이 아니라 본원적이고 정상적인 형태의 정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사회 위에 선 정치가 아니라 정치에 의한 사회적인 것의 설립이라는 것이다. 사회란 것이 국가가 관리하고 통치해야 할 주어진 사실의 세계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정치와 사회의 관계를 표상의 문제로 환원한다. 그리고 국가는 사회적 총체성을 대의하는 공공선으로서 상상된다. 이는 놀라운 퇴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앞서 말한 바 있는 오직 객체 없는 주체, 세계로부터 물러난 채 트라우마, 애도, 재난, 파국 등의 이름으로 자신의 주체적 위기를 반성하는 주체가 번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짐작케 한다. 국가는 정의, 공공선, 안녕의 윤리적 이상을 떠맡는 주체로서 격상된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직면한 갈등적인 사태를 국가 비판이라는 형식 속으로 운반한다. 이는 실은 어처구니없는 역설을 보여준다. 우리는 금융 위기 이후 세계를 뒤덮은 자본주의적 위기를 목격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말 그대로 재현불가능한 숭고처럼 바라보는 듯하다. 그것이 주체화되기 어려운 한계를 가리키는 양 말이다. 반면 우리는 재난, 참사, 외상적 위기를 겪게 하는 사태들에 매혹당하고 열중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신이 겪은 분노와 우울, 고통을 호소한다. 마치 모두가 현상학자인 것처럼 나에게 나타나는 바대로의 세계 너머의 세계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 둘을 어떻게 좁힐 것인가. 아니 앞서 말한 대로 ‘매개’할 것인가. 그리고 자유의 대가로서 세계의 무의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유를 세계의 원인을 확정하고 그것을 지배하는 자유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그것은 영어에서 원인(cause)을 가리키는 낱말의 또 다른 말뜻인 대의(cause)를 구축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을 정치적으로 주체화하는 것이지 않을 수 없다. 계급투쟁은 계급 간의 투쟁이 아니라 계급을 만들어내는 것이란 말을 따른다면, 다시 말해 새로운 대립의 배치를 만들어냄으로써 세계를 존재적으로 전환하면서 동시에 새롭게 주관화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좇자면, 우리는 세월호 사태란 없다고 기꺼이 말해야 한다. 이것이 어떻게 원인과 연결되어 있는지 물어보도록 하는 기회가 아니라 그 원인과 대면하는 것을 회피하도록 한다면, 즉 자본주의적 적대와의 대면을 회피하도록 하는 구실이 된다면, 우리는 고작 비극 없는 멜로드라마의 세계에서 배회하고 말 것이다.

_세월호 토론회를 위해 쓴 비망록

플래시백의 1990년대: 반기억의 역사와 이미지


장현 – 빗속의 여인

시작이라고 알려진 찌꺼기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 연작 드라마 시리즈는 어쨌거나 ‘리얼리즘’이 처한 야릇한 형국을 말해주는 데 손색이 없다. 그것을 리얼리즘이라 불러도 좋다면 말이다. 예술론에서 흔히 리얼리즘이라고 일컫는 미적 정치의 규범을 <응답하라>에서 발견할 수 있는 리얼리즘과 대응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리얼리즘이란 문학이론이나 미학사에서 말하는 그 리얼리즘과는 사뭇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회화의 역사에서 말하는 리얼리즘, 그러니까 인상주의 이후 현대 회화의 혁명을 일컬을 때 그것의 전사(前史)로서 말하는 원근법적인 환영에 근거한 리얼리즘 같은 것을 말할 때의 그런 리얼리즘은 아니다. 혹은 문학에서 3인칭 객관적 시점에 근거하여 사태를 제시하는 근대적 소설의 리얼리즘을 비난하며 반-소설이나 누보로망에서 성토했던 그 리얼리즘을 말하는 것 역시 아니다.
차라리 여기에서 나는 리얼리즘을 역사적인 미적 상징화 양식으로서가 아니라 현실을 상징적으로 총체화하려는 모든 미적 기획 그 자체로서 간주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할 때, 리얼리즘이란 특정한 역사적 단계에 성행하고 소멸하거나 쇠퇴한 미적 조류나 스타일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리얼리즘은 피할 수 없고 언제나 이루어야할 목표이다. 그것은 현실을 표상하지 않은 채 현실을 인식하고 또 그것에 개입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마르크스주의 문학이론가들이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이용해 리얼리즘을 파악하려고 하는 시도를 떠올린다. 이데올로기의 바깥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리얼리즘을 떠난 채 감각하고 체험하고 인식한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데올로기의 영도(零度)는 곧 리얼리즘의 영도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리얼리즘을 생각하는 것은 영화를 이해할 때 특히 쓸모 있을 것이다. 음모론적 SF 영화는 반리얼리즘의 극치인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을 전체화하고 그것을 서사적인 시간 속에서 재현하려는 리얼리즘적인 충동을 떠난 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이런 접근을 대표하는 이는 프레드릭 제임슨일 것이다. Fredric Jameson, Archaeologies of the future: the desire called utopia and other science fictions, New York: Verso, 2005.
그런 점에서 그를 두고 리얼리즘적인 몸짓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응답하라> 시리즈 역시 그럴 것이다. 그것은 1990년대라는 시대를 회상하고 기억하는 시늉을 취하며 역사적 시간의 리얼리티를 제조하려 진력한다. 그리고 <응답하라>의 성공은 우리가 채택하고 즐기는 기억의 양식에 대하여 적지 않은 질문을 던지도록 이끈다. 많은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근본적인 감각적 전환이 나타난 시기를 1990년대로 상정한다. 본격적인 소비문화의 형성, 개성을 존중하는 적극적 자기표현의 증대, 기율적, 가장적인 권위에 대한 저항 등을 언급하며 민주화 이후의 감성 혁명을 역설하는 것은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먼저 이런 물음을 떠올려보자. 진정으로 감각적 전환을 촉발한 진정한 단절적 시점은 1980년대 아니었을까. 1990년대가 가진 진정한 효과라 한다면 감각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관계를 인식하는데 있어 1980년대의 효과를 제거하거나 억압한데 있지 않을까. 그리고 감각적인 전환의 시대의 출현을 나타내는 범례로서의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발견하는 감각적인 것은 실은 감각적인 것의 몰락 혹은 부패를 가리키는 것이지 않을까. 바꿔 말해 1990년대의 감성 혁명이란 감성적인 것과 공동체의 관계를 제거하거나 억압함으로써 생성된 부산물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할 때 1990년대의 감성혁명, 주체의 발견 운운은 실은 감각적인 것이 불모화(不毛化)되고 말았음을 보여주는 증후이자, 감각적인 것을 주체화할 수 없게 되었음을 말해주는 표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랑시에르(J. Ranciere)로부터 배울 수 있듯이 감각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관계는 공동체의 분할과 적대라는 차원과 분리할 수 없다. 만약 그런 차원과 분리된 채 감각적인 것만이 남게 될 때, 그것은 유행 혹은 패션에 머무르고 만다.
대중잡지에 실린 화보들은 유행을 제시한다. 그것은 최신의 감각, 미의 감각, 가치 있는 감각을 자랑하고 뽐낸다. 그러나 이런 유행의 주체는 특정화될 수 없다. 그것을 선택하거나 무시하는 다양한 개인들이 있을 뿐이다. 유행, 패션의 주체란 말은 멍청한 동어반복적인 표현이다. 패션이란 패션의 주체가 듣고, 보고, 입고, 즐기는 것이며, 패션의 주체란 그것을 듣고, 보고, 입고, 즐기는 사람이란 말이다. 둘은 서로를 환원적으로 규정하며 주체(화)의 여지를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패션이라는 취향의 세계, 습속의 우주 속에 사는 주체를 부를 이름이 있다면 개인일 것이다. 이 개성적인 취향의 주체로서의 개인이란 가짜 주체는 감각적인 것을 주체화하는 데 실패한 주체들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꺼이 1980년대와의 단절이자 새로운 시작으로서의 1990년대라는 시각은 착시에 불과하며 외려 1990년대는 1980년대의 연속이자 그 효과로서 찌꺼기라는 것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1980년대에 등장했던 이의의 공동체가 습속과 취향의 동일성에 대한 비판을 통해 감각적인 것을 마침내 의식적인 고려이자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감각적인 것의 폭발을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시의 시대라는 전무후무한 문학의 성행, 민중미술로 대표되는 한국 현대미술의 급진적 단절, 영화운동의 출현을 비롯한 마당극, 소극장 연극운동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연행예술의 분출 등을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1980년대가 감각적인 것이 극적으로 등장한 시대이자 감각적인 것은 곧 정치적인 것이라는 것이 거의 모두에게 직관적으로 승인되었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것, 즉 적대적 차이의 질서를 감각적인 것으로 외재화하려는 충동은 1980년대의 급진정치가 퇴락하고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쇠락하거나 소멸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에 활성화되었던 감각적인 것을 통해 사회적 현실을 변별하고 구분하려는 심미적 삶의 형식도 함께 그런 운명을 겪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1990년대라는 시대가 하나의 단절로 보이는 것은 실은 그 시대가 소실매개자로서 기능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짐작할 수 있다. 감각적인 것 혹은 미적인 것을 현실과 역사적 시간을 식별하는 일차적인 매체로서 정립한 것은 1980년대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며 감성을 자율화하며 이를 역사적 시간을 분별하고 재현하는 원리로서 자리 잡도록 하는 전환이 나타난다. 물론 그것은 더 이상 전통적인 예술의 몫이 아니었다. 이를 떠맡은 것은 외려 대중문화를 비롯한 소비문화 자체였다. 그런 연유로 1980년대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의 쟁점이야말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를 1990년대와 다르지 않았던 감각적인 질서로 흡수함으로써 1980년대의 이례성을 삭제하는 것, 1990년대에 이르게 된 감성적 형식의 자율성 속에서 1980년대를 아무런 형식을 갖지 않는 미적 재현의 소재로서 환원하는 것, 아마 이것이 2000년대에 제작된 한국영화가 고통스럽게 이뤄낸 성과일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이런 가정을 떠올리며 2000년대의 몇몇 한국 영화를 다뤄보려 한다. 그 사례에 대해 제기하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첫 번째 풍속 혹은 습속의 역사로서 시간 혹은 시대를 구성하는 새로운 역사 드라마의 리얼리즘적인 특징을 분석해보자는 것이다. 두 번째로 그런 역사 드라마가 어떤 미적 형식을 통해 자신의 기획을 조직하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역사 드라마의 리얼리즘이 반동적인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데카당트’한 리얼리즘을 생산하며 역사적 시간과 이미지의 관계를 조직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밤과 음악 사이” – 노스탤지어와 상기(想起) 사이
“‘마음은 그곳을 달려가고 있지만 가슴이 떨려오네.’ 비트가 빨라진다. 20년 전처럼 가슴은 떨리지 않지만 대신 심장이 뛴다. 음악이 무지막지한 수준의 데시벨로 고막을 울려대고 엉덩이를 두드리는 덕분이다. 옆 테이블의 사람들은 벌써 흔들기 시작했다. 이상우의 ‘피노키오춤’이 저렇게 박자가 빠른 줄 예전엔 몰랐다. 20년 전의 심장박동 수를 만들어내는 이곳은 서울 홍익대 앞 ‘밤과 음악 사이’다. … 음악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로 바뀌자 환호가 터졌다. 서태지가 목 놓아 ‘떼창’하는 손님들을 본다면 골든벨을 울리고 싶겠다. 어차피 대화가 불가능한 데시벨이다. 하나둘 춤추기 시작했다. 밤 10시를 넘어서자 ‘밤과 음악 사이’는 디스코장으로 바뀌었다. 방금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듯 항공사 승무원 제복을 단정히 입은 여성도, 양복에 넥타이를 맨 차림의 회사원도, 넓은 챙 모자를 눌러쓴 ‘홍대족’도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들썩인다. 패티김의 젊은 시절 사진이 걸려 있고 ‘뽀빠이 과자’가 기본 안주로 나오는 이곳은 ‘7080’을 안주 삼아 1990년대의 음악을 들이켜는 곳이다. 1층에서는 비교적 점잖은 가요를, 지하층에서는 댄스곡 위주의 가요 리믹스를 틀지만, 그래봤자 소용없다. 1층 좁은 홀에서도 손님들은 노래 <담다디>를 핑계 삼아 ‘이상은 춤’을 춘다.” “돌아온 3040, 젊음의 행진”, <한겨레21>, 2012. 03. 12, 제901호.
1970년대산, 1990년대 세대, 소비의 신인류 운운. 그들은 기억의 주체이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자신이 살았던 역사적 시기를 기억한다. 그 기억에서 역사적 시간은 인용한 기사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7080’을 안주 삼아 1990년대의 음악을 들이키는” 것. 이 때 70년대와 80년대는 안주 삼기 좋은 그 시대의 풍속이다. 그것은 그 시대에 풍미했던 유행가와 패션, 헤어스타일, 군것질 거리 그리고 상품의 디자인 같은 것이다. 90년대 역시 다르지 않다. 그들이 기억하는 90년대란 바로 그 시대의 대중음악의 풍경이다. 이런 식으로 시대를 기억하는 것이 기억하기의 관례로 굳어졌다는 것을 굳이 지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7080’이라고 말하는 역사적 시간과 1990년대라는 역사적 시간은 “밤과 음악사이”라는 공간을 채운 이들에게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패티김”과 “하여가”, “뽀빠이과자” 그리고 “담다디” “피노키오춤” 같은 잡동사니의 물렁한 덩어리이다. 그들이 기억하는 시간은 이런 유행과 습속의 집적(集積)이다. 따라서 기억은 그 때 무엇을 들었나, 무엇을 입었나, 무엇을 가지고 놀았나, 그 때의 베스트셀러는 무엇이었나 따위 일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둘러싼 소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디테일의 정수”라는 것도 전연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런 디테일의 리얼리즘을 포토-리얼리즘의 반-리얼리즘과 짝을 지워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너무나 세부적이지만 그 세밀함은 실은 상투적인 관념으로 대상화된 대상의 세밀함이라는 것.
이제 우리는 하루키적 리얼리즘이라 불러도 좋을 리얼리즘의 기괴한 풍경으로 이동하게 된다. 풍경은 특정한 역사적인 시대의 삶을 상징화하는 도식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특정한 역사적 시대는 그것을 풍경으로서 미적으로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홍상수 영화에서처럼 삽화적인 사건을 위해 마련된 가장 적절한 장소로서의 풍경일 수도 있을 것이고 이창동의 영화에서처럼 시대를 환기하기 위한 설정 숏이나 장면의 분할 면에서의 풍경일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아예 풍경을 제시하는 것의 곤란을 말하는 듯한 그로테스크한 외적 세계의 환유로서의 풍경을 제시하는 봉준호의 일부 영화에서 풍경을 상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시각적인 이미지로서 대상화되는 풍경만이 여기에서 거론하는 풍경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풍경은 개념이자 도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풍경이란 주체가 상대하기 위해 재현되는 현실, 그리고 그렇게 그것을 주조하는 감각적인 매개의 원리 그 자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미술평론가인 케네스 클라크가 근대적 풍경화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오늘날에도 농업노동자는 자연미에 열광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사회집단”이라고 지적할 때 Kenneth Clark, Landscape into art, Penguin Books, 196(李孝德, ‘표상공간의 근대’, 박성관 옮김, 소명, 2002, 85면에서 재인용).
, 그는 근대 세계에 특유한 시각적 이상(理想)으로서의 풍경을 역설한다. 영어 낱말에 존재하지 않았던 랜드스케이프(landscape)라는 어색한 어휘는 네덜란드 풍경화를 도입하고 그런 화풍에 따라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기 위해 고안된 신조어라고 알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지각양태’로서의 풍경에의 눈길이 등장한 과정에 대한 개관으로는 앞의 글을 참조하라. 81-88면.
매일 마주하는 삶의 세계로서의 외적 실재를 관조적인 미적인 대상으로 구성할 수 있을 때 풍경이란 것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를 가능케 하는 요인은 쉽게 떠올려 볼 수 있다. 여가활동으로서의 여행의 등장, 자본주의적 도시화에 따른 목가적인 전원이라는 장소에 관한 심미적 이미지의 대두 같은 것을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학적인 설명에 더해 가라타니 고진을 좇아 근대적인 원근법과 언문일치(지적 언어와 세속어의 일치)의 출현에 따른 전환과 이를 매개한 자본주의의 출현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 ‘근대문학의 종언’,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06.
그렇지만 이러한 근대적인 초월론적 원근법이 등장하며 풍경이란 이름으로 대상화되는 실재가 출현했다는 것이, 동시대의 풍경에 대한 논의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마땅히 우리는 이런 근대적 풍경이 역사적으로 변용되었으리라 짐작하고 풍경의 후기 근대적인 도상과 코드를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작업을 위한 야심적인 시도로서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나 장 보드리야르의 여러 역작을 반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여기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역사적 시대의 풍경을 조직하고 그것을 상(像, vision)으로서 표상하도록 하는 매개자로서 기억이다. 기억은 지나간 시간을 이미지로서 그러모으고 그것에 초점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는 이의 시점을 생산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대상화하고 또 주관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사례화된 그렇지만 1990년대부터 이미 실행되고 또 진화하여 온 이러한 역사적 기억하기의 방식이란 무엇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 기억하기의 역사적 성찰 가운데 주목할 만한 시도일 프레드릭 제임슨의 “노스탤지어” 영화 분석을 참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알다시피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라는 저작에서 노스탤지어 영화를 분석하며 향수(nostalgia)를 역사적 기억의 코드이자 미적 담론(aesthetic discourse)으로서 정의한다.
그가 향수영화가 채용하고 전개하는 역사적 표상의 특징으로 꼽는 것을 요약하면 이럴 것이다. 향수란 과거라는 역사적 시대를 “유행(fashion)의 변화”와 “세대”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굴절시키면서 혼성모방(pastiche)을 집합적, 사회적 차원으로 투여한다. 그리고 이는 역사적 내용의 표상에는 전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양식적인 함축(stylistic connotation)을 통해 과거성(pastness)이라는 것을 1930년대스러움 혹은 1950년대스러움과 같은 번지르르한 특성들을 통해 접근한다. 이렇게 될 때 미적 양식의 역사가 실제(real) 역사를 대체하면서 과거성(pastness)과 사이비역사적인 깊이감을 만들어내는 작인으로서 기능하게 되고, 상호텍스트성(intertexutality)이란 것이 주된 미적 코드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런데 조지 루카스와 로만 폴란스키, 프란시스 코폴라 등의 감독을 겨냥해 말하는 향수영화의 미학적인 양식을 2000년대 이후 <박하사탕>의 제작년도가 1999년이었음을 감안하면 1990년대 후반 이후의 영화라고 불러도 좋겠지만 여기에서는 일단 편의상 2000년대의 영화로 부르기로 한다
한국영화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F.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1991, pp. 19-22.

이를테면 이창동의 <박하사탕>과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에 대해서도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금방 떠오르는 몇 가지만을 열거하자면 이럴 것이다. 먼저 이 영화는 1980년대라는 외상적인 역사적 시대를 기억하고자 시도한다. 그렇다면 1980년대의 역사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두 감독은 모두 1980년의 광주항쟁과 민주화운동 혹은 그것의 이면으로서의 88올림픽을 역사적 시기의 내용으로서 인용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다른 역사적 내용 속에 포함된 서사적 사태들을 규정하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것은 1980년대에 벌어진 숱한 역사적 사태들 가운데 하나로서 그친다.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에서 연쇄살인이라는 알레고리는 역사적인 시대를 표상하기 위한 적극적인 장치로서 기능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알다시피 영구미제의 사건으로 머물고 만 그 사건은 시대 자체의 알레고리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시대의 알레고리를 표상하기 위해 제시된 서사적인 장치라기보다는 스릴러라는 장르적 형식의 쾌락을 위해 동원된 순수하게 형식적인 수단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이는 <박하사탕>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역사적 시대의 외상적 체험을 멜로와 결합하는 서사로서 볼 때 우리는 그것이 켄 로치의 멜로(?) 영화인 <랜드 앤 프리덤>과 <칼라 송> 같은 영화와 얼마나 먼지 짐작할 수 있다. 니카라구아 내전과 스페인 내전 시기에 조우한 남녀의 사랑이라는 얼개를 쫓는 두 영화에서 사랑과 내전이라는 역사적 체험은 도식적이리만치 서로에게 기입되어 있다. 반면 광주 진압과 1980년대의 학생운동가의 고문 경관의 체험을 상기하는 <박하사탕> 주인공인 김영호(설경구 분)에게 사랑과 역사적 사태는 썩 효과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물론 영화는 광주항쟁의 진압군으로서의 경험과 고문을 강요받으며 짐승 같은 자로 변신하며 자신의 사랑 앞에서 수치스러워하는 김영호의 이야기를 쫓는다. 그렇지만 그가 상기하는 1980년대는 잇단 플래시백을 통해 세부적으로 재현되지만 그 시대는 일종의 상투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이런 기억하기의 본보기를 훗날 <변호인>과 같은 영화에서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된다. 곧 다시 말하겠지만 김영호는 섬세하고 정교하게 1980년대를 기억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그 1980년대는 널리 알려진 의견, 다시 앞서 언급한 프레드릭 제임슨이 즐겨 인용하는 루카치 식의 표현을 빌자면, ‘대상화된 정신’으로서의 1980년대를 재현할 뿐이다.
다시 말해 과거로서의 1980년대는 의견이나 고정관념으로 고착된 1980년대(국가폭력, 군사독재 운운)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이 때 중요한 것은 상기되는 장면, 플래시백이라는 장치를 통해 재현되는 과거의 시간은, 정박할 주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방금 말했던 “김영호는 섬세하고 정교하게 1980년대를 기억한다”는 표현은 잘못인 셈이다. 그것은 기억하는 주관적인 개인에 의한 회상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을 아니 더 심하게 말하자면 기억하는 주체가 누구더라도 상관없는 현실(reality)이다. 이는 봉준호의 영화에서도 동일하다. <괴물>의 경우를 보자. 그것은 숫제 캐릭터의 주관적인 심상으로서 이바지하는 것을 포기한 듯이 보이는 서울 올림픽 전후의 서울의 한강변 풍경과 괴물의 세계를 제시한다. 이것이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그렇지만 동시에 대중문화가 상투적으로 정형화한 이미지들을 열거하고 있을 뿐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는 역시 화성 인근의 쇠락한 산업도시와 그 주변의 농촌 풍경을 탐미적으로 묘사하는 <살인의 추억>에서도 동일하다.
한편 두 감독의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1980년대를 기억하는 세부적인 묘사의 테크닉에 있다 할 것이다. 특히 이들 감독의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사운드트랙을 사용하는 방식에 있다 할 수 있다. <박하사탕>의 마지막 야유회 장면으로 돌아가는 플래시백에서의 정겨운 노동자들의 합창이나 강요에 못 이겨 마침내 학생운동가를 잔인하게 고문하고 난 이후 룸살롱에서 희번덕거리는 교활한 미소로 마침내 짐승 같아진 자신을 인정하는 김영호가 김수철의 <내일>을 부르는 장면 등은, 사운드트랙을 사용함으로써 1980년대를 제시하는 방법을 반복한다. 마치 1980년대를 가장 생생하게 상기하는 장면, 시대의 외상(外傷)으로부터 영향 받은 개인을 드러내기 위해 당시 유행했던 노래가 불가피하다는 듯이 말이다. 물론 여기에서 초점은 노래가 아니라 유행하는 노래였다는 점이다. 그것은 영화 속의 인물들이 서사 속에서 자신을 상징화하는 부담을 외부화한다. 주관적인 기억의 바깥에서 시대를 환유하는 자질구레한 유행의 품목들이 시대를 상징화하는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면에서 두드러진 예는 <살인의 추억>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유제하의 <우울한 편지>가 시위 장면보다 이 영화에서 1980년대라는 시대를 상기하게 하는 가장 두드러진 장치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시위장면에서 이중 인화된 빨래를 걷는 장면으로 전환하고 다시 빗길을 걷는 여자의 모습으로 화려하게 이어지는 유명한 장면도 떠올려볼 수 있다. 이 신은 <살인의 추억>이 1980년대라는 서사적 시간성을 구성하는 가장 두드러진 장면 가운데 하나이다. 이 때 우리는 1980년대를 응축하는 두 개의 사태(시위와 살인사건)를 중재하는 장면에서 화면 외부로부터 장현의 <빗속의 연인>을 듣게 된다. 물론 우리는 곧 빗속에서 한적히 길을 걷게 될 여인을 만나게 될 터이다. 그렇지만 가사가 화면의 내용을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사운드트랙의 사용은 적잖이 장난스럽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 유머는 실은 1980년대라는 역사적 시대를 표상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실은 그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거나 거의 모든 일이 일어났지만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잡다한 다양한 사건들이 혼잡스럽게 뒤엉킨 시간대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대를 기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감독과 관객은 이미 1990년대의 편에 와 있다. 그들에게 1980년대라는 역사적 시대는 1990년대라는 역사적 시대의 평면 위에서 다시금 시기구분되어야 한다. 1980년대는 광주항쟁과 이를 잇는 민주화 운동이라는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통해 그 이전과 이후의 시대에 연속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1980년대라는 시간으로 분할하고 고립시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4.19 시대, 긴급조치 시대, 계엄령 시대 등의 시대 역시 연도(年度)라는 역사적인 시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을 1960년대나 1970년대라는 시기구분을 통해 기억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10년 단위로 시대를 구분하고 그것을 풍부한 경험적인 세부 사항의 내용으로 목록화하는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인용한 제임슨의 노스탤지어의 또 다른 특징, 즉 세대라는 주체가 기억하는 시간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앞에서 말한 영화들은 1990년대를 통해 기억하기의 미학적 양식을 세공하는 작업을 시도한 것으로 여겨도 좋을지 모를 일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두고 어느 관객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봉테일’이라고 지칭하며 1980년대를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고 혀를 내두르며 칭찬할 때, 실은 그가 감탄한 1980년대의 풍부한 재현이란 배역들의 절묘한 80년대 풍의 의상, <수사반장> 등과 같은 당시 TV 드라마의 인용, 무엇보다 그 수사반장에 출연했던 배우들을 영화의 배역으로 기용하는(변희봉의 캐스팅), 말 그대로 혼성모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기억하기의 심미적인 양식화는 1990년대를 기억하기를 통해 일반화된다. 그리고 이제 기억하기의 주체는 본격적으로 ‘세대’화된다. 제임슨의 말처럼 향수라는 기억하기 방식이 역사적 시대를 유행 변화와 세대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굴절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유행과 세대라는 두 가지, 역사적 시대를 대상화하는 방식(유행으로서의 시간)과 주체화하는 방식(세대로서의 주체) 모두를 똑같이 찾아볼 수 있는 셈이다.
80년대의 실패로서의 90년대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2000년대의 한국 영화들이 왜 1980년대를 경유하여야 하였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아무런 저항감 없이 1990년대를 기억한다. 그것은 이미 역사적 시간을 재현하는데 어떤 미적 양식이 필요한가를 자의식적으로 반문할 필요가 면제되었음을 말해준다. 우리는 1990년대를 재현하는데 삐삐, 농구게임, 박광수 만화, 꼬깔콘, 빼빼로, 밀키스, 서주우유 등의 군것질, 486컴퓨터 등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것이 얼마나 사실적인 재현인가를 말하기 위해 우리는 이른바 고증적 재현의 오점, 이른바 ‘옥의 티’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게 된다. 당시에는 아직 쿼터제가 도입되기 전이었는데 전후반제 뿐이었던 당시 농구경기를 쿼터제로 묘사하고 있다는 둥, ‘슬램덩크 31권’은 한참 뒤에 나왔는데 극중 주인공이 훨씬 전에 보고 있다는 둥과 같은 것이다. 누군가 “디테일의 정수”라고 말한 이 기이한 디테일은 물론 역사적 기억의 세부라는 것을 전환하는 몸짓이다. 흔히 근대 문학이나 현대 영화에서 우리가 세부라고 생각했던 것들, 수사적 양식이나 시점, 장르적 서사의 코드 같은 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러한 세부는 서사적 공간 안에 주체의 강력한 현존을 염두에 둘 때에나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주체가 무엇을 세계로부터 체험하고 또 그것과 대면하느냐는 물음은 그러한 세부들에 의해 조정되고 심각하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응답하라> 시리즈는 그런 구속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은 더 이상 주관화해야하는 주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때 일본의 문학이론가인 가라타니 고진이 발표한 <근대문학의 종언>이란 글이 입소문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그가 자신의 글에서 한국 문학의 처지를 두고 직접 언급한 대목 탓에 그 글은 더욱 많은 이들을 솔깃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가 그 글을 보다 확장하여 일본의 현대 문학의 궤적을 주파하면서 쓴 『근대 일본에서의 역사와 반복』은 직접적으로 두 명의 일본 소설가인 오에 겐자부로와 무라카미 하루키를 대조하며 문학의 종언이라는 주제를 언급한다. 가라타니 고진, “2부 근대일본에서의 역사와 반복”, ‘역사와 반복’,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08.
그가 말하는 문학의 종언은 물론 문학이 끝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락이나 취미의 소비 행위로서의 문학이 끝났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실은 사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장르 소설은 더욱 유행이고, 사람들은 이제 전과 같이 주눅 든 채 소설을 읽거나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소설은 어느 와인, 커피를 마실 것인가와 같은 가벼운 기분으로 소설을 골라 읽을 수 있다.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말했던 것으로 지적이고 도덕적인 행위로서의 소설 쓰기와 읽기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이 그러한 역할을 떠맡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역할을 계속하고 싶다면, 고진은 주저 없이 문학을 단념하고, 아룬다티 로이처럼 사회운동에 참여하거나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적잖이 충격적인 그의 단언은 강한 인상을 주지만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제한을 만회하는 분석이 오에 겐자부로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대조적으로 읽는 앞의 글이라 할 수 있다.
고진이 분석하는 겐자부로와 하루키의 소설은 묘한 대조를 이루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한 편은 ‘만엔원년의 풋볼’이고 오에 겐자부로, ‘만엔원년의 풋볼’, 박유하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7.
다른 한편은 ‘1973년의 핀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1973년의 핀볼’, 김난주 옮김, 열림원, 1997.
이 두 소설을 대조하며 고진은 이렇게 말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것을(‘1973년의 핀볼’-인용자) 오에 겐자부로의 ‘만엔원년의 풋볼’의 패러디로서 의식하고 이름을 붙였는지 어떤지는 아무래도 좋다. 사실로서 그렇게 된 것에 주의하고, 양자의 비교가 무엇을 명백하게 드러내는지를 보면 된다.” 고진, 앞의 글, 140쪽.
그리고 그는 두 소설이 어떻게 풍경과 주관의 관계를 구축하는지 세심하게 분석한다. 이 자리에서 그의 분석을 되풀이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글에서의 논의를 위해 간략히 하루키적 리얼리즘의 면모와 관련한 고진의 분석을 참고하고자 한다. 고진은 하루키 소설에서 고유명이 없다는 것에 유의한다. 그것은 말 그대로 “나(私)) 따위는 없다”는 것 앞의 글, 142쪽.
이다. 하루키 소설은 얼핏 보면 사소설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고 고진은 말한다. “사소설이 전제하고 있는 경험적인 ‘나’가 부정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소설에서는 “‘나’는 어지러이 흐트러져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렇게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는 ‘나’를 냉정하게 주시하는 초월론적 자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하루키에 의해 출현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일본 근대문학의 원형적 장면들에서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보다 자세한 것은 다음을 보라. 가라타니 고진,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 박유하 옮김, 민음사, 1997.
이런 나의 발생은 당연히 풍경의 발생과 상관이 있다. 그 때의 풍경이란 아이러니의 발현으로서 외적인 풍경과 대립하는 내적인 인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풍경이란 것은 이러한 초월적 주관과 짝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풍경은 하루키에게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경험적 자아와 초월론적 주관 사이의 거리(라캉식 어법을 빌어말하자면 상상적 자아와 상징적 주체 사이의 거리)를 통해 내면이라는 세계를 가지게 된 주체에게 풍경이란 항상 초월론적 주관의 타자인 것이다. 그런데 그 타자로서의 풍경이 더 이상 아이러니의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될 때, 하루키 소설에서 드러나는 풍경은 역사의식의 “공무화(空無化)”, “역사의 종언”을 주장하는 것이게 된다. 고진, 2008, 앞의 글, 151면.
그의 소설들에서 1961년은 리키 넬슨(Ricky Nelson)이 “헬로 마리 루(Hello Mary Lou)”를 부른 해이고, 1973년은 지상에 3대 밖에 없는 최고의 핀볼 기계가 만들어진 해이며, 1960년은 보비 비(Bobby Vee)가 “러버 볼(Rubber Ball)”을 부른 해이다. 그리고 이는 하루키 식의 리얼리즘, 즉 독아론적인 자기만이 존재하는 세계의 풍경이다. 혹은 “경험적 자기는 ‘축소’되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초월론적 자기는 극단적으로 비대해진” 세계의 풍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의 글, 159면.
그것이 굳이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표상되는 통속적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하루키에게서 주된 배경으로 등장하는 1960-70년대를 한국에서의 1980년대와 대조하는 것은 어떨까. 고진은 학원투쟁의 시기였으며 똑같이 ‘만엔원년의 풋볼’과 ‘1973년의 핀볼’의 배경이었던 그 시대를 지적한다. 그렇지만 하루키에게 그것은 제거되고 겐자부로에게는 알레고리로서 현전한다고 말할 뿐 그것이 어떻게 초월론적 자기가 대면하는 풍경을 초래하는지 상세히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간과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전사(前史)를 구성하는 기억하기의 방식, 즉 노스탤지어적 기억이 등장하기 위한 조건을 생각하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하나의 기억하기의 방식이 새롭게 주관과 풍경의 관계를 조직하며 앞의 것을 대체하였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작 문제는 그러한 대체가 왜 일어났는가를 말함으로써 그러한 전환의 효과를 정치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의 1980년대의 풍경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고진의 생각과 갈라서게 된다.
1990년대 이후로서의 1980년대
고진은 흥미롭게도 하루키 식의 주관, 독아론적 자기의 출현을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서 구조에서 찾는다.
“‘비판’이라는 말은 취미판단의 영역에서 온 것이다. 취미의 영역에는 확실한 기준이 없다. 결국 어떤 의견도 ‘독단과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칸트는 진리나 선의 영역을 실은 취미판단의 영역에 지나지 않다고 간주했으며, 모든 판단을 취미판단과 같은 것으로 보려고 했다. 그것이 ‘비판’이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모든 것을 미적 취미판단에 종속시키는 독일 낭만파가 파생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무라카미의 ‘나’는 이런 의미에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정확히’ 읽고 있다고 해도 좋다. ‘나’는 모든 판단을 취미, 그러므로 ‘독단과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고 간주하는 초월론적 주관인 것이다. 그것은 경험적 주관(자기)이 아니다.” 앞의 글, 143면.
인용한 부분을 보면 우리는 의외라 하리만치 소박하게 취미판단의 문제를 성급히 초월적 주관의 독단적 자기 몰입으로 환원하는 해석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식의 생각은 미적 판단 혹은 취미(taste)를 둘러싼 논의에서 흔하게 마주하는 상식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쨌든 너무나 안이한 해석이다. 칸트에서 독일의 낭만주의로 이어지는 미적인 상상력에 대한 고진의 해석은 취미가 초월론적 주관의 문제이기에 앞서 공동체의 문제였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미학 철학자인 실러를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마르쿠제의 ‘에로스와 문명’에서 등장하는 심미적인 반자본주의적 기획의 원천으로서의 실러이든 아니면 최근 부쩍 관심을 얻는 랑시에르의 일련의 저작에서 등장하는 이의의 공동체, 감각의 공동체의 사상가의 원형적인 인물로서의 실러이든, 어쨌든 실러는 공동체와 미적인 취향을 결합하는 사상가로서 초월론적인 자기와는 가장 거리가 먼 인물로서 환기된다. 실러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프리드리히 실러, ‘미학 편지’, 안인희 옮김, 휴먼아트, 2012.; 오타베 다네히사, “‘미적 국가’ 혹은 사회의 미적 통합”, ‘예술의 조건-근대 미학의 경계’, 신나경 옮김, 돌베개, 2012.

고진은 취미의 세계에 몰두하며 독단과 편견에 따라 동요하며 자신을 변별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유행이라는 습속의 코드라는 무한히 변용하는 규범 아닌 규범만을 지닌 주체를 하루키의 주체로서 간주한다. 물론 그것은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주체는 어떻게 출현하게 될까. 초월론적 자기를 정립하는 것은 어떤 역사적인 처리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가능하게 될까. 그러나 그것을 굳이 고진에게 물어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고진은 손쉽게 자본주의의 역사적 단계의 전환과 미적 담론과 형식의 변화를 대응시킨다. 그러한 일대일 대응 관계는 매우 매끈하고 또 정합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의 역사적인 원인을 헤아리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간단히 자본주의의 기술적, 생산적 변화와 자본의 주도적 분파(상업, 금융, 산업 자본 등)의 헤게모니적 지위 등에 의지하여 간단히 처리한다. 즉 그는 의외로 경제주의적 환원의 논리에 빠진다. 실은 그에게서 빠진 것은 이러한 역사적 변형의 과정을 조직하는 원인에 대한 인식이 제거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이를 간단히 말하자면 모순이나 적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용어를 빌자면 계급투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계급투쟁이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이라는 두 개의 인격적 집단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란 뜻에서가 아니라 적대적인 분할을 통해서만 자신을 움직여가는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선험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발상은 알튀세르와 그를 잇는 발리바르의 마르크스주의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관념이라 할 수 있다. 루이 알튀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고길환, 이화숙 옮김, 백의, 1990. 에티엔 발리바르, ‘역사유물론의 전화’, 서관모 엮음, 민맥, 1993.

취향은 감각적 통일성을 조직함으로써 초월론적 주관을 개별화한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고 오직 그것을 바라보는 나만이 존재한다고 보는 주체는 있을 수 없다. 세계를 갖지 않는 주체란 상상할 수 있지만 실재하기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초월론적 주관이라는 사변적인 관념이 그려낸 주체는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어떤 주체든 타인과의 관계와의 교감이나 소통을 위해 암묵적으로든 아니면 명시적으로든 어떤 공동의 세계에 살아간다는 것을 전제함으로써 자신을 누구로서 개별화할 수 있다. 사실 고진이 말하는 초월론적 주관도 상호주관적 주체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상호주관적이란 말은 이미 성립된 주체들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서로 상관하는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상호주관적이라는 이미 주어진 주체들 사이의 관계들을 함축하는 표현을 기피하며 어떤 철학자들은 관-개인적(trans-individual)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를 선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정이 어떻든 주체화의 과정은 개별화의 과정이면서 동시에 공동체화의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변증법을 무시한 채 초월론적 주관만을 바라보는 것은 공동체 없는 공동체라는 역설적인 형식을 통해 움직이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의 풍경을 방기하게 될 뿐이다.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자면 “동일한 의미 아래 사물들이나 실천들을 한데 묶는 가시성과 인식가능성의 틀이며, 이를 통해 특정한 공동체적 감각이 만들어진다. 감각의 공동체는 실천들, 가시성의 형태들, 인식가능성의 유형들을 한데 결합시키는 특정한 시공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것” J. Rancière, Contemporary Art and the Politics of Aesthetics, Beth Hinderliter et. al. eds. ibid. p. 31.
이다. 그렇다면 감각의 공동체는 취미의 동일성에 의해 묶여진 공통 세계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가능성/불가능성을 사유할 수 있는 쟁점으로서 공동체를 사유하라는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실은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표상되는 1990년대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감각의 공동체이다. 각각의 인물은 바로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감각적 공동성의 소재라고 할 수많은 디테일을 통해 각자를 개별화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 노래를 함께 들었던 우리, 그 운동경기를 함께 보았던 우리, 그 옷가지를 함께 입었던 우리,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유사한 취미를 가졌던 우리인 것이다. 이는 초월론적 주관이라는 주체의 외양을 취하고 있지만 실은 초월할 것을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주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주체일 지도 모른다. 혹은 들뢰즈 식의 어법을 패러디한다면 우리는 무한히 많은 n개의 주체라는 외양 아래에서 1/n의 주체라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체는 어떻게 성립하는 것일까. 이는 적대 혹은 모순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사유할 때에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가까이 있었던 1980년대라는 적대적 삶의 세계가 정치적 분쟁의 형태로 상징화되었던 시대를 어떻게 상징화할 것인가의 문제가 관건이라는 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앞서 언급했던 2000년대의 특출한 한국 영화의 대표작들이 그런 과제를 떠맡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들은 1990년대 이후의 시점 속에서 1980년대를 재현한다. 그렇지만 이 때의 1990년대 이후는 1980년대와 단절한 시대가 아니다. 그것은 1980년대의 실패 혹은 그것의 좌절의 증후이지 1980년대를 대체하고 새롭게 출현한 감각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990년대를 취미 혹은 감각의 신기원을 열었던 시대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직 1980년대를 어떻게든 사상(捨象)하거나, 아니면 1990년대 이후의 감성에 따라 재현되기를 부정하는 그 시대를 특정한 이미지로 고사(枯死)시킴으로써만 가능하다.
이는 봉준호나 이창동 같은 지성적 감독이 빼어나게 대결하려 했던 문제일지 모른다. 혹은 강우석 같은 감독이 <투캅스>에서부터 <이끼>에 이르는 일련의 액션 혹은 조폭 영화라는 토착적 장르 영화에서 건망증에 걸린 것처럼 그 시대의 세부를 생략한 채 1980년대를 포퓰리즘적인 갈등의 세계로 재현하려 했던 것의 요점일지도 모른다. 강우석 감독과 그를 뒤잇는 일련의 액션 영화 감독들은 포퓰리즘적인 미학을 통해 중간계급 지식인 출신의 영화학교 출신 감독들이 1980년대의 적대적인 갈등을 심미적으로 굴절시키는 것과 분기한다. 이들 감독들은 1980년대를 풍속화시키기는커녕 보편적인 대립으로서의 우리 같은 없는 자들과 교활하고 속물스러우며 기생적인 그들이라는 포퓰리즘 대립의 프리즘을 통해 재현한다. 그들에게 1980년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1990년대 이후에도 영원히 지속되는 영원한 규칙이다. 세상은 가진 것 없는 우리와 사악하고 기생적인 그들 사이의 드라마이다. 이들에게 1980년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은 세상이란 원래 그런 것이고 그러므로 역사적 시간은 영화의 공간에서 유예된다.
그러므로 역사적 시간의 투쟁에서 최종 성적표는 이렇게 보고한다. 1990년대의 승리. 그렇지만 그것은 1990년대라는 나름의 특수한 역사적 내용을 가진 시대의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1980년대라는 시대, 즉 세대라기보다는 대학생, 노동자, 농민으로 이뤄진 민중이라는 이름의 보편적인 주체가 감각적 공동체를 분열시키며 어떤 실체화될 수 있는 감각적 보편성, 취미의 일반성을 거부했던 시대가 실패했음을 수긍하고 그것을 만회하려는 반동적 몸짓일 뿐이다. 그리고 이제 그것은 하나의 양식으로 일반화된다. <응답하라>가 재현하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1990년대가 1990년대의 풍경이라 볼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1980년대의 음화일 뿐이다. 1990년대는 바로 감성을 발견한 1980년대,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감각적인 것을 발견하였던 시대가 질식당한 후 감각적인 것을 자신의 취미생활의 노리개로 사취한 시대일 뿐이다. ❐
_영상예술학회 2014 봄 정기학술대회 발표

이토록 아둔한 취미의 인간을 보라


M83 – L’inconnu

‘개취’의 세계 – 취미의 인류학
누구나 아마 듣자마자 불에 덴 듯이 펄쩍 뛰며 정색하는 말이 있을 것이다. 나도 다르지 않아, 울화를 치미게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개취(개인 취향)”이거나 “취존(취향 존중)”이니 하는 따위의 말이다. 어쩌다 대화를 나누다 누군가 시중에 유행하는 말이라고 별 뜻 없이 그 말을 꺼낼 참이면 십중팔구 낯이 구겨진다. 어색하고 불편한 기색을 참지 못하고 어쩌다 시비가 붙기도 한다. 참을성 없이 발끈하는 데는 그 말 속에 내가 혐오하는 동시대의 모든 윤리가 응축되어 있는 탓이다. 무엇보다 그 말은 내게 비겁하게 들린다. 개취라는 말에는 우리는 서로에게 개입할 필요가 없는, 간섭하지도 간섭받고 싶지도 않는 안전한 거리 속의 세계에 살고 싶다는 의지가 담겨있다는 듯이 들린다. 당신이 그렇게 살건 말건 내가 알게 뭐냐는 사악한 윤리적 기회주의는, 취향이라는 낱말을 빌려와 그 뒤에 숨는다.
그 때 취향은 윤리적 알리바이로 둔갑한다. 그런 탓에 취향의 다원주의는 윤리적으로 허무한 세계를 가리키는 말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것은 거부하거나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 앞에서 불화를 피하기 위해 뒷걸음친다. 그리고 ‘개취’란 이름으로 자신의 윤리적 비겁함을 숨긴다. ‘그것이 싫다’거나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또 서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다. 나아가 취향으로 인정하게 된 그의 말, 몸짓, 태도를 문제 삼았다가는 타인의 취향을 존중 않는 몰상식한 독단적이고 권위적이고 보수적이고 운운으로 이어지는 시답잖은 반발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므로 취향이란 이름으로 우리는 자신을 거북하게 만드는 그것과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고 또 회피한다. 다시 시쳇말을 빌자면, ‘너님, 꼴리는 대로 사세요.’로 끝.
취향 존중이라는 것이 더욱 불편한 점은 취향 존중이란 간단한 선언을 끝으로 인정과 동일시에 따르는 수고를 모면하려 한다는 점이다. 이때에 인정되고 동일시할 인물은 손쉽게 취향의 주체로 둔갑한다. 과연 나를 거북하게 하는 그/그녀는 과연 취향의 주체이기만 한 것일까. 아무튼 내가 이해할 수 없고 상대하기에 어려운 상대는 취향이란 개념 덕택에 손쉽게 괄호 속에 넣을 수 있다. 그리고 취향은 이해에 따르는 어려움을 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이해란 취향 따위를 알지 못할 것이다. 이해는 내가 너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는 개별적인 것 사이의 관계가 아닌 까닭이다. 해석학적인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우리는 공통의 의미의 지평에 속해 있을 때 오직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느 개인과 개인 사이의 취향 존중은 세계 없는 자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비(非)-교류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일 뿐이다. 결국 ‘취존’은 이런 말이다. 내게 당신은 무의미하다, 당신은 내게 없어도 좋은 것이다, 당신과 관여하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하는 이 앞에서 그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지 못한 채 몰상식하게 이렇게 묻는 지도 모른다. “나는 네가 왜 그런지 모르겠어.” 내가 연인의 취향을 존중할 때 그것은 연인이 아니다. ‘취존’은 무관심하게 방치될 타인을 위해서나 예비된 윤리적 표현일 터이기 때문이다.
‘개취’의 윤리가 혐오스러운 두 번째 이유는 이로부터 비롯된다. 취향의 세계는 부정을 모른다는 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규정적인 부정’을 모른다는 점이다. 스피노자 식 어법을 빌어 말하자면 ‘부정은 규정’이거나 그 역이다. 부정은 항상 부정되는 대상을 규정한다. 규정 없는 부정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무언가를 부정할 때 불가피하게 우리는 그 무엇을 규정한다. 규정 없는 부정은 이런 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글쎄 잘 모르겠어, 그냥 난 무조건 싫어.” 이런 발화는 부정을 하지만 부정하는 대상을 규정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규정하지 못하는 무력한 부정이다. 이런 식의 부정은 함부로 드러내기 쉽지 않다. 그것은 부정하는 쪽의 모호하고 병리적인 태도, 말하는 이의 납득하기 어려운 신경질적 태도를 보여줄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규정적 부정을 피하는 품위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부정하는 대신에 그를 기꺼이 긍정해주는 것이다. “그래요 모든 것은 개취의 문제이니까, 기꺼이 존중해 드리지요.” 물론 여기에서 존중해야 할 타인은 없다. 그것은 있으나 없으나 똑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개취’라 말 속에 등장하는 개인이 가진 특성은 그것이 개별화될 수 없는 개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나’ 여도 좋은 개인, 자신을 개별화할 수 있는 기회를 처음부터 박탈당한 개인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이해를 제거한 존중으로 은밀히 부정을 대체하는 몸짓은, 부정에 따르는 어려움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근년 대중문화 속의 여러 작품들은 물론 범죄사건 보도에서, 우리는 이유 없는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는 비규정적인 부정, 추상적인 부정을 끊임없이 마주친다. 몇 해 전 그러니까 2011년 영국 런던에서의 ‘묻지 마’ 폭동과 약탈을 두고 벌어진 논란은 이를 잘 보여준다. 아무 이유 없이 상점을 약탈하고 자동차에 불을 지르는 청년들의 폭력이 정작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것이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지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도대체 그들은 그런 몸짓을 통해 말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메시지 없는 폭력을 철학적 용어로 번역하면 규정 없는 부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몸짓의 윤리가 ‘취존’의 윤리와 같은 것이라면 어떨까. 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를 보완하고 있는 것 아닐까. 전자가 폭력적인 양태로 규정 없는 부정을 행한다면 후자는 보다 세련되고 예의바른 형태로 그를 실행한다. 후자가 예의바른 존중으로 실제 하는 짓은 자신이 승인한다고 자처하는 그 대상이 이해되어야 할 대상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부정한다는 것의 가장 단순한 표현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정의 가장 흔한 형태는 대상의 잘못을 밝히고 고발하는 것이다(물론 부정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소비, 침묵, 은둔, 도피, 축제 등도 모두 부정의 형태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런 것은 일단 미뤄두자). 이는 부정할 대상을 규정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규정 없는 부정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불가능한 부정이 흔하게 출현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추상적 부정, 규정 없는 부정이 창궐하는 것은 결국 부정의 위기라 부를 수 있을 난국에 갇혀있기 때문일지 모를 일이다. 물론 추상적인 부정의 반대 극에 선 부정도 역시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부정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부정이라 부를 수 있는 종교적 근본주의나 맹목적인 인종주의 같은 것에서 발견할 수 있는 부정이다. 이때에 부정은 규정과 완벽히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정되는 대상 자체가 나를 부정한다고 간주할 때, 부정하는 나는 이미 그 자체 규정이 된다. 그것의 부정은 나이고 나의 부정은 그것이다. 이때의 타자는 나의 동일성을 방해하는 외부의 적 그 자체이자, 나의 동일성을 제공하는 거울이다. 나는 나의 적에 비추어 나의 이미지를 얻는다. 그러나 역사적인 단절을 이뤄내는 눈부신 부정의 순간, 이를테면 혁명이나 봉기의 시간은 지난 것을 고발하고 제거하지만 동시에 그 자리에 놓여야 할 것을 창설하고 생산한다. 따라서 그러한 부정은 폭발적으로 규정-부정의 연쇄가 나타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낸다. 해방이나 혁명 직후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열정적인 시간이 그런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더 길게 이야기하지는 않도록 하자. 일단 ‘취존’하는 세계의 윤리적 풍경은 부정한다는 것이 직면하는 곤경을 암시한다는 것을 확인해 두는 것으로 그치자.
마지막으로 ‘개취’의 세계가 혐오스러운 이유는 타자의 존중이라는 가면 뒤에 숨으면서 정작 자신이 존중한 그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세계는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개취로 존중하게 된 타인과 어떤 세계에 살고 싶은가. 이 물음에 대해 ‘취존’의 윤리는 그다지 답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개취의 세계도 과연 세계라 부를 수 있을지 궁금하다. 개취의 세계가 공동성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공동체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답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고 살아가는 개인들의 다원적인 네트워크. 세계 없는 세계의 매(개)체인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하는 SNS가 보여주는 취향의 우주. 그러나 개인들의 묶음을 공동체라고 부를 수 없는 일이다. 공동체는 단순한 모임 이상의 차원을 생각하기 위해 고안된 낱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많은 공동체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공동체라는 것은 결국 제거할 수 없는 어떤 미세한 초월성을 도입한다. 민족(국민), 인민, 인종, 계급 같은 낱말들은 그에 속한 사람들이 공유하는 속성과 기질들을 지시하지 않는다. 민족, 인민, 인종, 계급은 무엇이다, 라고 말할 때 주어는 이미 술어와 일치하지 않는다. 술어에 해당되는 것들은 이미 주어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들을 공동체라고 부를 때 이는 거기에 있다는 것 이상의 차원을 도입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공동체라는 것은 함께 있음을 상징화하는 몸짓과 더불어 실존할 수 있게 된다. 거기에 더해 그런 상징화의 몸짓은 항시 그와 더불어 공동의 취향이라는 것을 만들어낸다. 특정한 문화적인 의례와 습속 없는 공동체를 상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개취’와 ‘취존’의 세계는 공동체를 부정한다. 그것은 취향이 항시 공동체를 겨냥하고 또 그를 통해서만 움직인다는 것을 무시한다.
그러나 ‘취존’과 ‘개취’가 창궐하는 세계라고 해서 공동체 없는 세계라고 서둘러 단정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사정은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지겹도록 다양한 공동체에 살고 있다. 공동체가 사라졌다고 개탄하는 이들을 조롱이나 하듯이 우리 주변에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자는 캠페인이 넘쳐난다. 이름난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국민-공동체에 호소하는 광고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다. 국제 스포츠 게임은 어김없이 한국과 한국인을 호명한다. 그러나 이런 커다란 규모의 공동체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아래쪽에는 수많은 취미의 공동체들이 넘쳐난다. 이런저런 취미를 함께 하는 동호회들이 넘쳐나고 이는 과거와 같은 사회학적 소속의 공동체(향우회, 동창회, 재향군인회 등)를 대체한다. 그렇지만 이런 취향의 공동체는 반-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반대의 상태 역시 초래한다. ‘취존’과 ‘개취’의 윤리는 개인을 개별화하는 데 있어서도 장벽을 세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취향의 주체로 얼어붙을 때, 나의 타자는 더 이상 자신을 타자로서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지당한다.
‘취존’과 ‘개취’에 대한 불만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어떤 이는 이보다 더 많은 항의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서 나는 방금 짚어본 ‘취존’과 ‘개취’의 윤리 가운데 그것이 공동체에 대해 맺는 관계에 유의하여 이야기해 볼 작정이다. 이는 그런 사유의 습관이 취향(taste) 혹은 감성적인 것이란 개념 자체의 전락을 표시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취미 혹은 감성적인 것은 관용과 배려의 윤리에 동원되면서 공동체의 미적 정치와 맺는 관계가 흐릿해져버린다. 그러나 그것을 대수롭지 않는 일로 무시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취향의 우주 그리고 반(反)-공동체
감성 그리고 그를 주체화하는 것으로 근대철학자들이 선택한 개념일 취향, 이는 공동체를 분열시키는가 아니면 공동체를 창설하는가. 아마 이런 물음보다 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관계를 생각할 때 더 근본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최근 자크 랑시에르같은 철학자는 이런 물음을 정면에 내걸며 기존의 미학적 토론을 재구성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랑시에르의 미학적 저작, 특히 ‘감성의 분할’과 ‘미학 안의 불편함’을 비롯한 여러 글들이 이를 다룬다. 자크 랑시에르, ‘감성의 분할’, 오윤성 옮김, 도서출판b, 2008.; ‘미학 안의 불편함’, 주형일 옮김, 인간사랑, 2008. 자신의 개입을 두고 제기된 그간의 비판을 참조하며 현재 미적인 것-정치적인 것의 관계에 관한 논쟁에서 자신의 위치가 무엇인지를 되새기는 글로 다음이 유용할 것이다. Jacques Rancière, The Thinking of Dissensus: Politics and Aesthetics, Reading Ranciere, Paul Bowman and Richard Stamp eds. London & New York: Continuum, 2011.
그러나 그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지나가는 김에 1990년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던 미적인 것의 종언, 예술의 종말을 에워싼 논의를 잠시 살펴보아도 좋을 듯싶다. 미적인 것의 종언을 외치는 미학이론가들이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취존’과 ‘개취’의 논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다를 바 있다면 그것이 보다 학술적으로 복잡하고 세련된 논증을 펴는 척 한다는 점뿐이다.
1990년대 ‘아름다움’ 혹은 ‘미(the beauty)’로 되돌아가자고 주창한 많은 학자들을 그저 후기-칸트주의적인 미학을 복권시키는 이론적인 전환의 사례로 국한시키는 것은 너무 안이한 지성사적인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대표하는 논의로는 다음의 글들을 참조하라. Elaine Scarry, On beauty and being just, 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9.; 데이브 히키, ‘보이지 않는 용’, 박대정 옮김, 마음산책, 2011.; 아서 단토, ‘예술의 종말 이후’, 이성훈, 김광우 옮김, 미술문화, 2004. 한편 이런 논의에 대한 주목할 만한 비판적 평가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Julian Stallabrass, The rules of art now, Art incorporated: the story of contemporary art, Oxford &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pp. 164-178.
그들은 아름다움의 보편성, 아름다움의 윤리적인 선(good)을 주창하면서, 그럴듯하게 ‘코스모폴리탄적 보편주의’를 역설한다. Beth Hinderliter et al. Introduction, Communities of sense: rethinking aesthetics and politics, Beth Hinderliter et al. eds.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9, p. 4.
그러나 미적인 것의 보편성을 강변할 때, 그것은 실은 아름다움에 감응하는 감상자, 그의 개인적 취향만이 감성적인 것의 정치에 관해 말할 수 있는 전부라고 역설하고 있을 뿐이다. 미적인 것에서, 예술에서, 나아가 감성적인 것에서, 아름다움을 빼면 남는 게 뭐가 있냐는, 짐짓 뻔뻔스런 그러나 뭔가 틀린 말도 아닌 것처럼 들리는 이러한 주장은, ‘취존’의 윤리가 예술을 위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전부라고 은밀히 강변한다.
“‘무엇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생각은 4세기가 넘도록 우리의 문화용어에서 중추적인 것이었다. … 이미지는 교회나 국가를 통하지 않고 곧장 개인에게 가는 유일한 직행통로였다.” 데이비드 히키, 앞의 글, 41쪽.
고 말할 때, 히키는 그가 말하려는 바의 요점을 잘 보여준다. 미적인 것의 귀환을 외칠 때, 그를 말하는 이들이 행간에 감춰두고 있는 것은 단순하다. 이미지를 공동체의 매개자로 만드는 곳, 즉 이미지의 교회(미술관과 같은 제도?), 이미지의 국가(아방가르드?)를 제거하자고 말할 때, 남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고 그 취향 사이의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뿐이다. 히키의 미덕이 있다면 다른 미학자들, 평론가들과 예술애호가들이 위선적으로 짐짓 악취를 맡은 척 손사래를 치는 시장에 대해, 자신은 정직하게 그것을 두둔하고 사랑한다고 고백한다는 점에 있다. 그가 파악한 개인의 취향과 시장이 서로 어울린다고 말하는 것은 전연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개취의 세계는 시장에 의해 서로가 보이지 않게 매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추세는 미적인 것에서 언제나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효과를 간파하며 미적인 것의 자율성이라는 환상과 맞서 싸우고자 했던 아방가르드를 비롯한 급진적인 예술이론과 전적으로 구별된다. 그들은 미적인 것의 세계 안에서 자본주의적 스펙터클에 현혹된 집단적인 관중(기 드보르), 일차원적인 사회의 관리된 대중(마르쿠제), 문화산업의 수동적인 소비자(아도르노), 물상화된 의식에 사로잡힌 소외된 주체(루카치) 등을 식별한다. 거기에서 취향은 의심받고 분석되어야할 수상쩍은 대상이다. 그러나 그들은 취향이라는 것이 자본주의적 세계에 예속되도록 하는 취향의 세계를 간파한다. 그렇지만 그런 접근은 어딘가 추상적이다. 미적인 것은 자본주의적 경제로부터 바로 연역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시적 국가’라는 해괴한 관념을 제출했던 독일의 낭만주의자, 특히 실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 독일 낭만주의의 특징은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열광과 그에 대한 회의로 특징져진다. 그들은 구체제를 몰아낸 프랑스혁명의 근본적 가치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지만 잇단 테러로 점철된 자코뱅주의의 폭력은 그들을 경악하게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급진적 해방의 정치가 갖는 무력함, 푸코의 동료였던 자크 동즐로가 언급했듯이 공화국만으로는 사회를 창설할 수 없다는 곤경을 나름대로 해결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감성으로부터 공동체를 창안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으려 했다.
공화국, 즉 자신의 주권을 선언하는 인민들의 연합은 전체로서의 사회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공화국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원리, 즉 구세계에 대한 거부,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고 오염시키는 것에 대한 비판이라는 원리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추상적인 주체들로 이뤄진 세계만을 가지고 있다. 폴란드의 감독 안제이 바이다가 스탈린주의에 대한 완곡한 비판을 시도하려 자신의 영화 <당통>에서 혁명의 추상적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자동인형 같은 인물인 로베스피에르를 거리의 사람들과 호흡할 수 있는 따뜻하고 평범한 행복의 혁명을 역설하는 당통과 대비시킬 때, 로베스피에르와 당통 사이의 거리는 프랑스의 공화주의자들과 독일 낭만주의자 사이의 거리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공화국의 인민은 공동체 없는 추상적인 계약의 세계 속에 놓여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따라서 인민 혹은 시민이란 이름의 주체는 반-공동체의 이름일 것이다. 푸코의 동료였던 동즐로는 “주권을 가지고서 혁명을 할 수는 있지만 하나의 사회를 만들 수는 없다.”고 압축적으로 이를 요약한 바 있다. 앞의 글, 103쪽
공화국이라는 정치체(polity)는 공동체(community)라고 말할 수 없다. 정치체는 공동체를 의심하고 그것을 가로지르는 분열과 차이를 드러내는데 더욱 쓸모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던 초기 낭만주의는 ‘미적 국가’, ‘시적 국가(der poetische Staat)’라는 이념을 제안한 바 있다. 이 때 우리는 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이접시키는 독특한 입장이 출현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저서들을 참조하라. 프리드리히 실러, ‘미학 편지’, 안인희 옮김, 휴먼아트, 2012.; 오타베 다네히사, “‘미적 국가’ 혹은 사회의 미적 통합”, ‘예술의 조건-근대 미학의 경계’, 신나경 옮김, 돌베개, 2012.; 프레더릭 바이저.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 김주휘 옮김, 그린비, 2011.
잘 알려져 있듯이 실러를 비롯한 낭만주의자들은 주권적인 시민들의 세계인 공화국이 초래한 결과, 자코뱅주의로 대표되는 혁명적인 테러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분열과 적대가 만들어낸 공동체의 불가능성을 상상적인 미적 공동체로 대체하고자 하였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좋았던 예전의 공동체, 구체제로 돌아가기를 원했던 에드먼드 버크 류의 보수주의와 갈라선다. 그들은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공화적인 정치체, 인민들의 모임에 공통의 영혼, 상징, 음률, 신체를 부여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회상적이지 않았다. 실러는 프랑스혁명을 지속하되 그것을 미적으로 급진화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민주주의의 공허한 추상성을 비판하고 (민주주의 이후의) 군주제를 통해 정치의 상징적 신체(corpus)를 구성하기를 원했다. 공화국보다 더 나은 정치적인 세계로서 입헌군주제를 제안하는 것은 너무나 외설스럽고 황당무계한 생각일 수 있다. 이를 우리는 입헌군주제라는 발상에 내재된 이율배반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왕은 인민에 의해 선출될 수 없다. 왕은 그가 왕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왕인 자이다. 그러므로 그는 선출이라는 절차에 의해 임명될 수 없다. 그는 저절로 왕이 되는 자이다. 그렇다면 대관절 입헌 군주는 어떤 왕일까. 선출된 왕은 이율배반 그 자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왜 선출된 임의적인 정치지도자로 그치지 않고 그를 운명적인 인물로서의 왕으로 추켜올려야 하는 것일까. 이는 언제나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우리의 노예근성 때문일까. 그러나 입헌군주제를 민주주의의 필수적 조건으로서 생각하려 한 이들이 있었다. 독일 낭만주의자뿐 아니라 헤겔을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이 그들이다. 최근에는 지젝 같은 이는 헤겔을 원용하며 레닌과 같은 영웅적인 지도자를 요구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런 생각은 더 없이 불편하고 어색하다. 이 때 우리는 칸트 식의 의무 윤리를 떠올려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칸트에게 있어 도덕적 명령은 나의 정념에 따른 판단에 따라서는 안 된다. 내가 원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도덕적 명령을 따를 때 그를 따르는 이유는 그것이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선출된 왕이 필요한 이유를 얼마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물론 왕이 내가 선출한 자임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기꺼이 그에게 복종한다. 왕이 선출될 때 그는 그를 선출한 자들의 이해를 대표한다. 그렇지만 그는 그런 이해와 무관한 척 굴어야 한다. 왕은 나의 욕구를 만족시켜주기 때문이 아니라 옳기 때문에 복종해야 하는 자가 된다. 그리고 나는 그가 나를 대표한다고 여기면서도 그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의무로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입헌군주제를 가장 완벽한 정치적 공동체의 형태로 생각한 철학자들의 생각은 얼핏 듣기엔 기괴한 것으로 들리면서도 의외로 진실을 간파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반역과 같은 부정 혹은 거부는 나의 욕구를 거슬렀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의를 배반하였기 때문에 이뤄진다. 그러므로 반란이나 봉기는 불의에 대한 것이지 욕구불만에 대한 항의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대목은 다른 곳에 있다. 입헌군주와 세습군주는 다르다. 세습군주는 나에게 복종을 강요한다. 그렇지만 그에게 복종할 이유는 한가지 밖에 없다. 그는 군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주어진 것은 맹목적인 복종일 뿐이다. 그를 거부하는 것은 그 자체 불의이거나 반역이다. 반면 입헌군주에게 그런 식으로 복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그에게 무조건적으로 복종하지만 나는 그것이 정의로운 한에서 복종하는 것이다. 그것이 불의한 것인 한 나는 그를 폐위할 수 있다. 따라서 세습군주가 정의로운지를 물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반면 입헌군주는 윤리적인 정의의 권화(權化)로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꾸며야 한다. 더 없이 화려하고 사치스러우며 퇴폐적이기까지 한 세습군주의 삶과 달리 윤리적 삶의 모범처럼 끊임없이 덕행을 연기해야 하는 꼭두각시 같은 현대의 입헌군주의 차이를 생각하여 보면 이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굳이 군주가 필요한 것일까. 아니 더 명민하게 묻자면 왜 군주가 거의 사라진 시대에 군주 같아 정치적 지도자들이 최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공동체를 상징화하는 미적인 계기(군주라는 독특한 심미적인 대상)가 필요한 것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물론 이는 정치적인 것의 미학화라는 발터 벤야민의 주장을 떠오르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벤야민이 말하는 정치의 미학화하는 파시즘이 만들어낸 정치적 경관과 그에 대한 매혹을 가리키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일 것이다. 그렇지만 정치의 미학화는 예외적인 또는 병리적인 정치의 상태를 가리키지 않을 것이다. 앤더슨의 저 유명한 ‘상상의 공동체’란 말이 시사하는 것처럼 인민으로 구성된 추상적인 정치체는 상상력으로 채워진 공동체가 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인민의 모임은 민족의 모임으로 상상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자를 오염시키는 이데올로기적인 덮개로서 후자를 비판하는 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니다. 후자를 제거한 채 공동체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상상에 의해 매개되어야 하고, 그것을 떠맡는 것이 바로 감성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감성적인 것의 분배를 통해 공동체의 내적 모순과 전환을 사유하는 랑시에르의 포스트-실러적인 접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인민의 공화국에서 감각의 공동체로?
랑시에르는 “이의의 공동체(dissensual community)”라는 감각의 공동체(community of sense, sensory community, sensus communis) 혹은 미적 공동체(aesthetic community) J. Rancière, Aesthetic seperation, Aesthetic community, The Emancipated Spectator, translated by Gregory Elliot, London: Verso, 2009.
를 민주주의에 대한 급진적 사고의 핵심에 놓는다. 그가 상상하는 공동체는 흔히 떠올리는 ‘합의의 공동체(consensual community)’나 ‘사실의 공동체(factual community)’ J. Rancière, Dissensus: on politics and aesthetics, translated by Steven Corcoran, London & New York: Continuum, 2010, p. 190.
와 다른 것이다. 합의의 공동체란 조화로운 유기적 공동체, 파편화되고 도구적 관심에 의해 분열된 사회 이전의 좋았던 세계를 가리키기 위해 흔히 회고적으로 추정되는 공동체이다. 혹은 회복되거나 재창설되어야 할 것으로 기획되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그런 공동체와 다른 이의의 공동체란 대관절 무엇이고 또 왜 하필 그것은 감각의 공동체인 것일까.
“정치적 공동체는 실제로 구조적으로 나누어진 공동체이다. 서로 다른 이익집단이나 반대집단들로 나누어질 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 대해서도 나누어진 공동체이다. 정치적 인민이란 결코 인구의 총합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인구와 그것의 부분들에 대한 모든 계산에 덧붙여진 상징화의 형태이다. 그리고 이 상징화의 형태는 항상 분쟁의 형태이다.” 자크 랑시에르, ‘미학 안의 불편함’, 주형일 옮김, 인간사랑, 2008, 179쪽
“나는 감각의 공동체라는 구절을 어떤 공통의 느낌에 의해 형성되는 집합성(collectivity)를 가리키자고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해하기에 그것은 동일한 의미 아래 사물들이나 실천들을 한데 묶는 가시성과 인식가능성의 틀이며, 이를 통해 특정한 공동체적 감각이 만들어진다. 감각의 공동체는 실천들, 가시성의 형태들, 인식가능성의 유형들을 한데 결합시키는 특정한 시공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것이다.” J. Rancière, Contemporary Art and the Politics of Aesthetics, Beth Hinderliter et. al. eds. ibid. p. 31.

방금 인용한 글에서 그는 사회적 상호작용, 즉 합의(consensus)를 분쟁(dissensus)과 대비한다. 이는 연관/비연관(dis-connection), 동일시/탈-동일시(dis-identification) 등을, 공동체를 사고하기 위한 개념들로서 제시하는 것을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랑시에르는 실러 이후 지속되어온 독특한 미적 정치의 경향을 연장한다. 랑시에르는 여러 글에서 실러를 참조하며 감각적 공동체로서 이의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실천이 바로 실러의 미학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들을 참조하라. Jacques Rancière, Aesthetic seperation, Aesthetic community, The Emancipated Spectator, translated by Gregory Elliot, London: Verso, 2009; The Aesthetic Revolution and Its Outcomes, J. Ranciere, 2010.
실러는 앞서 말한 것처럼 감성적인 것을 통해 공동체를 창설하고자 하는 미적-정치적 기획을 제안하였다. 랑시에르 역시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그가 염두에 두는 것은 연관과 동일시, 공속(共屬)의 공동체가 아니다. 그는 “정치는 공동체와 공동의 것을 규정하는 감성의 분할을 재구성하는 일을 하며, 새로운 주체와 대상을 공동체에 끌어들이고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만들고 시끄러운 동물로만 지각됐던 사람들의 말을 들리게 하는 일을 한다. 대립들을 창조하는 이러한 작업은 정치의 미학을 구성한다.”고 말한다. J. 랑시에르, “미학의 정치”, ‘미학 안의 불편함’, 주형일 옮김, 2008, 55쪽.

그는 공동체 내부에 균열을 만들어내는 것, 공동체라는 것의 자기동일성을 부정하는 부분,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셈해지지 않는 부분(‘몫 없는 몫’이라는 유명한 어구)을 통해 공동체의 스스로와의 차이화에 주목한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공동체와 미래의 대안적 공동체와의 차이도 아니고 한 공동체와 다른 공동체 사이의 차이도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 자체의 (불)가능성을 이른다.
“정치적 주체들은 셈해지지 않은 것의 셈을 잉여(surplus)로 기입하는 잉여 주체이다. 정치는 정치생활이라는 특수한 영역도 아니고 다른 영역들로부터 분리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 전체를 스스로부터 분리시키면서 작동한다. 공동체는 두 가지 대립적인 방식을 통해 셈해질 수 있다. 부분들(즉 집합들, 그들 각각이 담지하는 자질들)의 총계로서 스스로를 셈하는 내치(police)적 방식이 그 하나이다.; 그와 더불어 총계에 추가된 잉여로서(몫을 갖지 않는 자들의 몫으로서 그리하여 몫들, 장소들, 기능들 그리고 자격들로부터 공동체를 분리시키며 작동하는) 그것을 셈하는 정치적 방식이 또한 있다. 내치적 셈하기(police count)는 구분되는 영역들 위에서 이뤄진다. 그렇지만 정치는 영역이 아니라 과정이다.” J. Rancière, Dissensus: on politics and aesthetics, translated by Steven Corcoran, London & New York: Continuum, 2010, p. 70(강조는 원저자).
물론 이러한 주장은 낯설지 않다. 이는 자신의 동일성을 완성하는 것을 가로막는 구조적인 과잉을 고려하지 않은 채 어떤 공동체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구조적인 과잉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따라 사람들은 의견을 달리할 것이다. 라캉주의자들이라며 성관계는 없다는 명제를 들이밀 것이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계급 관계란 없다, 오직 계급투쟁이 존재할 뿐이라고 역설할 것이며, 포스트-하이데거적인 정치철학자들이라면 클리나멘(clinamen) 같은 범주를 끌어들여 원자들(atoms)로만 이뤄진 세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우연성(contingency)이 도입됨으로써만 세계가 형성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랑시에르 역시 이런 식의 사유와 궤를 같이 한다. 다만 그는 그러한 구조적인 과잉, 방금 인용한 그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잉여’를 가리키기 위해 ‘이의(dissensus)’이거나 ‘불화(disagreement)’란 개념을 채택하면서, 그러한 사유에 일종의 비틀기를 꾀한다는 점이다. 그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공동체를 역설하면서 내재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어떤 유토피아적인 미래를 거부하는 이들(대표적으로 네그리)과도 다르고, 메시아 혹은 유령(ghost) 등을 끌어들이며 목적론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묵시록적인 사유가 해방적 사유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이들(예컨대 데리다)과도 다르다.
나아가 랑시에르의 특별한 점은 이러한 이의나 불화만을 언급하며 그것이 어떤 특정한 종류의 정체성을 지닌 주체로 주체화하려는 주장(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일부 경향, 특히 헤게모니적인 주체 혹은 인민주의적 주체를 제시하는 라클라우)이나 아무리 그것이 우연적이고 비규정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에 특정한 존재론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그를 실체화하려는 주장(예컨대, 사건을 특권화 하는 바디우)과 극구 거리를 두려한다는 점이다. 오직 불화와 이의라는, 어떤 존재론적 지위로도 어떤 주체로도 실체화할 수 없는, 실천만이 있을 수 있다는 랑시에르의 주장이 지나치게 소심한 것이라고 실망할 수 있다.
랑시에르는 물론 구체적인 인격체나 민족-신화에 의지한 공동체를 갈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배격하는 합의의 공동체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공동체의 열리고 닫힘을 사유하기를 원한다. 그는 군주나 민족이 체현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공동성(the common)을 생산하는 감각적 실천이 만들어내는 공동체, 차라리 공동체의 불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이의의 공동체를 그려낸다. 실러에서 랑시에르에 이르는 미적 공동체(aesthetic community)의 정치는 공동체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이란 물음 그리고 미적인 것과 정치적이 것은 어떻게 결합되는 가란 물음을 결합한다. 이 때 그들이 제시하는 주체란 랑시에르의 말을 빌자면 감각적인 것의 나눔 혹은 분배를 통해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주체화하는 인물이다. 그런 주체가 ‘개취’를 가진 주체라고 말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취미-차이의 윤리와 적대의 정치
부르디외는 그의 대작 ‘구별짓기’에서 야심적인 칸트 미학 비판에 착수하며 취향의 보편성을 취향의 구분과 계급적 차별화라는 취향의 사회학으로 대체하려 시도한 바 있었다. 삐에르 부르디외, ‘구별짓기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최종철 옮김, 새물결, 1996.
그렇지만 그가 칸트의 미학을 충분히 넘어섰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미적 인간학을 사회적 사실의 세계의 분류를 둘러싼 취미의 사회학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취향과 미적인 것을 충분히 다른 것으로 사고했다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개인마다 취향은 다르다는 말이든 우리는 서로 다른 취향의 집단으로서 서로를 구분한다는 말이든 둘은 크게 다르지 않은 주장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취존’의 윤리는 바로 그런 자세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 그 말에서 취향은 적대나 분열을 모른다는 점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취존’이란 말은 모든 취향은 그 자체로서 존재할 의의를 갖는다는 윤리적인 명법을 부과한다. 알다시피 취미는 어떤 경우에도 부정성을 모른다.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든가, 공동의 삶의 자원을 갖고 있지 않다든가 하는 따위의 부정적 상태란 취향에는 불가능하다. 취향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취향이 없다는 말 대신에 취향은 나쁜 취향, 악취미(bad taste)가 있을 뿐이라고 말하길 좋아한다. 그러므로 취향은 모든 것을 긍정하고 존중하는 것을 자신의 윤리로 자랑한다. 나쁜 취향은 불쾌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처벌하거나 제거할 수는 없다. 우리는 자유주의자들이 군사독재 정권의 사악한 점을 말할 기회만 되면 장발 단속과 퇴폐 가요 단속을 들먹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군사독재에서 박해를 받은 정치적 투사들이나 노동자의 증언보다는 금지곡 파동으로 인해 자신의 노래를 부를 수 없었던 가수의 푸념을 듣는 것이 그 세계의 이미지로서 더 실감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취향을 금지하고 단속하다니! 우리는 거기에서 독재의 투명한 이미지를 본 것처럼 소란을 피운다. 문화사나 미시사니 하는 새로운 역사쓰기의 추세가 의심스러운 것도 이러한 습속과 취향의 분쟁으로 공동체와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를 사고하려 들 때이다.

이미 말했듯 취향은 공동체를 열고 닫는 매개자이다. 그 점에서 우리는 기이한 시차(視差)를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근본적인 감각적 전환이 나타난 시기를 1990년대로 꼽는다. 본격적인 소비문화의 형성, 개성을 존중하는 적극적 자기표현의 증대, 기율적, 가장적인 권위에 대한 저항 등을 언급하며 민주화 이후의 감성 혁명을 역설하는 것은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1980년대의 민주주의 투쟁을 촉발한 것이야말로 감각적 전환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왜 그것은 그토록 보이지 않거나 간과되는 것일까. 1990년대의 감성 혁명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 이전 시대의 감성적인 전환 혹은 분열이 자신을 은폐한 채 지속되다 스스로를 부패한 형태로 종료하고 마감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따라서 우리가 단절적인 시작이라고 인식한 것이 실은 이미 시작되고 성숙되었던 갈등적, 감성적 공동체가 새로운 합의의 공동체에 무릎을 꿇고 종속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이는 엉뚱한 가설적 주장으로 들릴지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가설을 입증하고 싶은 욕망을 떨치기 어렵다. ‘개취’와 ‘취존’의 윤리가 창궐하는 세계와 대면하고 그것에 환멸을 느낀다면, 그 취향의 계보를 어떻게든 분별할 필요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전연 보이지 않은 채 숨어있는 것들이 있다. 아마 지난 수십 년간 신자유주의적인 공동체 속으로 우리가 이주하며 제작하고 경험한 감성적인 질서의 변화도 아마 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

종합할 수 없는 두 가지, 정치와 경제


Curtis Harding – Keep On Shining

경제는 핵심영역이고 전투는 이곳에서 결정될 것이다.
우리는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주문(呪文)을 깨야 한다.
하지만 개입은 경제적이 아니라 전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
– 슬라보예 지젝, ‘혁명이 다가온다’, 157쪽
자각적인 이성의 실현이라고 하는 개념은 바로 민중의 삶 속에서(In der Leben eines Volkes)
그의 완성된 실재성을 지닌다.
– 헤겔, ‘헤겔 정신현상학 입문’, 리처드 노먼, 오영진 옮김, 한마당, 88쪽에서 재인용

정치와 경제-불가분한 것과 종합
한동안 한국의 사회과학자들이 입씨름을 벌인 쟁점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은 과연 어떤 체제냐는 것이었다. 그 토론이 얻고자 한 결론은 좌파 정치가 자신을 자리매김해야 할 한국 사회의 정체성은 무엇이냐는 것이었으리라. 알다시피 몇 가지 유력한 주장이 있었다. 1987년 체제론과 1997년 체제론 같은 것이 그것이다. 어떤 이는 그에 더해 2013년 체제라는 용어를 추가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이런 개념들은 비록 막연하기는 해도 한국사회가 처한 맥락을 총체적 재현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주의를 기울일 마땅한 가치가 있다. 1987년 체제론은 말 그대로 1987년의 시민항쟁을 통해 한국사회가 전연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음을 역설한다. 이는 대통령 직선제와 대의민주주의의 정착 그리고 뒤이은 광범한 시민사회운동의 활약에 주목하면서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한국사회의 정치 변동을 근본적으로 전환시켰음을 강조한다. 비록 그 과정에서 노동이 제대로 대표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으나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일차적인 요인이 민주주의라는 정치라는 점을 힘주어 강조한다. 이 주장에서 요점은 정치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재민주화이든 아니면 민주주의의 정상화 혹은 급진화이든, 관건은 민주주의이고, 그것 안에 내장된 가능성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개혁, 감시, 통제가 바로 좌파 정치가 할 일이다.
한편 1997년체제론은 경제적 질서의 변화를 우선으로 꼽는다. 한때 유행했던 표현을 빌자면, “멍청아, 문제는 경제야”인 셈이다. 아니면 삼성반도체의 백혈병 문제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에서, 진성반도체란 이름으로 나온 기업의 인사담당자가 냉소적으로 지껄이는 말처럼, “정치는 표면이고, 경제가 본질”인 셈인지도 모른다. 1997년체제론은 민주주의라는 정치적인 텔로스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로 변신하기 위한 미끼일 뿐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 그것은 돈을 통해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기회를 말하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노동자의 마지막 항의 수단인 파업을 시민권으로 인정하기는커녕 경제적 득실에 따라 평가하며 마침내 손해배상가압류라는 사악한 법조항으로 질식시키는 민주주의가 이른바 민주주의란 것의 요체 아니던가. 자유?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마음껏 골라 자신의 재능과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것처럼 떠들어대지만 일자리를 얻기 위해 가능한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희대의 부자유, 심지어는 얼굴의 표정과 말투, 상상의 방식까지 모두 자본의 요구에 맞추도록 종용하는 부자유, 그것을 가리키는 도착적인 이름 아니던가.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이 모든 변화는 실은 자본의 고삐 풀린 착취와 자유를 보장한 신자유주의적 전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등. 결국 문제는 결국 문제는 미쳐 날뛰는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를 어떻게 제어하느냐 혹은 대체하느냐의 문제가 될 것이고, 좌파 정치는 그 문제에 대처해야 한다, 운운.
그렇다면 우리는 1987년체제론과 1997년체제론 가운데 무엇이 옳은가를 두고 따지면서 다시 한 번 정치란 무엇인가란 물음으로 되돌아 온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정치란 본연의 정치로서의 정치, 즉 민주주의로서의 정치를 두고 다투는 일인가 아니면 정치의 진정한 핵심이자 숨겨진 비밀로서의 정치, 즉 경제적 사회관계의 변화를 위한 투쟁으로서의 정치인가. 다시 말하자면 ‘해방의 정치’로서의 정치인가 아니면 정치의 진정한 실질인 사회적 관계를 재구성하는 실천으로서의 ‘변혁의 정치’인가. 이런 물음은 물론 어제 오늘 등장한 것은 아니다. 1980년대의 운동권 출신 세대라면 걸핏하면 벌이곤 했던 허황된 논쟁을 기억할 것이다. 정세분석이니 전술이니 하는 것을 두고 격한 토론을 벌이는 자리에서 사람들은 곧잘 상대를 경제주의나 정치주의, 우익 기회주의나 좌익 소아병 따위의 레테르를 갖다 붙이며 힐난하는 입씨름에 골몰하곤 했다. 물론 그런 딱지붙이기로 도모하려 했던 바는 간단하다. ‘당신은 경제적인 상태로부터 정치적 행위의 조건을 찾으려고 함으로써 급진적인 변화를 제지하는 기회주의적 핑계를 찾을 뿐이야. 당신의 진화주의는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고!’이거나, ‘당신은 충분히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은데도 모험적인 선택을 강요함으로써 패배를 자초하는 셈일 뿐이야. 문제는 과연 우리가 하려는 일이 충분히 객관적인가를 알아내는 것이라고!’
그러나 우리는 운동권 세대의 어쩌면 어처구니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언쟁을 치기 가득한 말장난으로 경멸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나름 유치한 방식으로 정치의 자리 혹은 정치의 존재론이라고 할 만한 것을 가늠하고자 하는 몸짓이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정치란 경제의 이면이거나 거울에 불과한가, 아니면 토대이든 실체이든 그 어떤 경제적 사회관계로 환원할 수 없는 자율적인 영역인가란 물음을 두고 다투고 있다. 물론 그에 답하기란 쉽지 않다.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로부터 환원할 수 없는 근본적인 틈새를 가지고 있다. 시민은 계급으로 환원할 수 없으며, 자유는 평등으로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이 난문(難文)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이를테면 정치와 경제를 ‘종합’할 수 있는 묘책은 없을까. 그러나 종합이라는 유혹은 정치와 경제 모두를 손으로 움켜쥐는 일이기는커녕 두 가지 모두를 잃어버리는 일이 될 위험만 초래할 공산이 클지 모를 일이다.
이를테면 경제 문제를 직접적인 정치투쟁으로 옮겨놓는 순간 우리는 경제를 더 이상 자본주의로 보지 않게 된다. 그것은 주어진 사태의 집합, 이미 우리에게 알려진 경제적 사실들의 꾸러미로서의 경제만을 가지게 된다. 유행하는 하이데거적인 어법을 빌자면 우리는 존재로서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평범한 객관적 사실들의 세계, 즉 존재자로서의 경제를 가지게 될 것이다. 이는 정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존재 방식을 결정하게 되는 행위로서의 정치 대신에 단순히 이미 주어진 경제적 이해를 각기 대표하는 사회 집단 간의 경쟁과 합의를 다루는 것으로서의 정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이 자유주의적 대의민주주의를 정치의 유일한 형태로 인정하는 일로 귀결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결국 정치와 경제를 분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둘을 종합할 수도 없다. 그럼 이러한 불가분성과 종합 불가능함의 모순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우리는 그 쟁점을 해결하여야 하는 일이 자본에 반하는 정치를 구축하기 위해 필수적인 작업이라 생각한다. 이 글에서 우리는 그 쟁점을 풀어보기 위한 몇 가지 논점을 제시하려 애써 볼 작정이다.
정치의 역설을 넘어
사회주의 정치를 겨냥한 자유주의적 비판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하나를 꼽자면 당연 폴 리쾨르의 『정치의 역설』이란 글일 것이다. 폴 리쾨르, 정치의 역설, ‘역사와 진리’, 박건택 옮김, 솔로몬, 2002.
이 글이 프랑스를 비롯하여 여러 나라의 좌파 지식인들에 큰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그닥 크게 알려지지 않은 듯하다. 최근 들어 정치적인 것의 자율성이란 입장에 근거하여 좌파 정치를 재구성하는 주장들이 부쩍 관심을 끌면서 그의 글을 다시 들먹이는 일이 자주 눈에 띈다. 그 가운데, 프랑스 정치철학 전통 안에서 이 글의 영향을 상세하게 논하는 글로는 일단 다음을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 Oliver Marchart, Post-foundational political thought: political difference in Nancy, Lefort, Badiou and Laclau, Edinburgh: Edinburgh University Press, 2007, 2장.
정치철학자들은 이 글을 되새김질하면서 이미 현실사회주의가 붕괴되고 사회주의 정치를 향한 환멸과 이탈이 등장하기도 전에 선구적으로 사회주의 정치의 급소를 찌른 것으로 이 글의 가치를 추켜올리기도 한다. 그 글에서 리쾨르는 정치를 경제의 표출로서 간주하는 것, 정치의 자율적인 차원을 무시하는 것에 대하여 비판을 던진다. 헝가리 사태 이후, 그리고 무엇보다 흐루시초프의 스탈린주의적 개인숭배 비판의 비밀 연설이 있은 연후, 리쾨르의 논변은 불가피한 것일 뿐 아니라 하나의 돌이킬 수 없는 질문을 요약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흐루시초프, ‘개인숭배와 그 결과들에 대하여’, 박상철 옮김, 책세상 2006.
그 질문이란 짐작할 수 있듯이 해방의 기획으로 출발한 혁명이 왜 전체주의적인 질서로 변질하였냐는 것이었다. 따라서 리쾨르는 만약 혁명의 변질을 어느 개인이나 정치적 당파의 우연한 역사적 실수로 변명하지 않으려면 기꺼이 그것을 깊은 사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혁명이 전제(專制)로 퇴락하게 된 이유를 우연한 역사적 사정 탓으로 돌리지 않으려면 그 필연성 혹은 적어도 가능성이라고 할 만한 것을 밝혀야 한다. 그리고 리쾨르는 이 과제에 부응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훗날 우리가 마주치게 될 허무주의자들만큼 리쾨르는 너무 멀리 나가지는 않는다. 자코뱅주의에서 스탈린주의로 이어지는 전체주의의 계보를 추적하며 해방적 유토피아를 희구하는 모든 정치적인 기획 안에는 음산한 전체주의가 잠재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를 집요하게 규탄하는 것이 유행이 된지는 제법 오래이다. 그러나 이런 자유주의자들의 합창과 달리 리쾨르는 신중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근대 정치 내부에 ‘정치의 역설(paradox)’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을 검출하고 이를 해결할 방편을 고심한다. 그는 근대 정치에 깃든 기원적인 역설 때문에 정치의 악이 초래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역설이란 근대 국가의 이율배반 그 자체이다. 그의 생각은 짐작보다 단순하다. 국가를 경제적 사실의 표현으로 간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의 정치적 실존은 경제적 기초를 갖는 변증법으로 축소될 수 없는 특수한 형태의 합리성을 발전시킨다.”고 단언한다. 그런데 그 합리성으로부터 “정치적 악, 정치권력의 악”이라는 특수한 악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정치적인 것의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기발함”이라고 말한다. 리쾨르, 앞의 글, 318쪽.

그가 말하는 (근대) 정치의 이중성 혹은 모순이란 무엇일까. 그는 그것을 근대 세계에서 정치의 근본 문제인 국가 자체로부터 추적한다. 리쾨르는 근대 정치에서 국가는 이성 그 자체와 등치된다고 말한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국가는 ‘관념적인 실재’인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먼저 모두의 평등이라는 ‘이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또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이상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가는 관념적이다. 그리고 국가를 실재라고 말할 수 있는 점은 말 그대로 국가라는 형태로 물질화되어 현실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때의 국가란 베버 식으로 말해 합법적인 폭력으로서 다양한 강제와 폭력의 장치를 거느린 기구의 총체이다. 다시 말해 국가는 군대, 경찰, 관료제 등을 거느린 거대한 장치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에서 리쾨르는 정치의 특수한 악이 초래될 가능성을 찾는다. 물질적 힘으로서 군림하는 관념, 즉 이성이라고 자처하는 폭력의 횡포라는 악 말이다.
국가가 이성이 되어버린 근대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정치가 경제적인 현실의 기만적 표현이라는 마르크스의 생각에서 리쾨르는 정치의 악을 찾지 않는다. 외려 리쾨르는 정치 자체의 내적 역설 혹은 모순이 더 근본적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이를 “헌법과 군주, 법과 전횡의 분할은 모든 정치권력에 내부적인 모순”이라고 표현한다. 앞의 글, 332쪽.
정치와 정치 외적인 것 사이의 모순에 앞서, 정치 자체에 이미 기원적으로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정치가 스스로 이성 혹은 공동체의 진리를 떠맡고 그것을 국가라는 형태로 현실화하는 한, 이성적인 힘으로서의 국가의 성격과 합법적 폭력을 독점한 권력으로서의 국가의 성격 사이의 모순은 제거할 수 없게 된다. 결국 국가는 보편성을 자처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현실의 특수성과 언제나 대립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정치는 언제나 악에 노출되어 있고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구 동구권의 전체주의일 것이다. 얼추 말해 이런 논변이 리쾨르의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를 “정치 ‘악(惡)’은 본래의 의미에서 위대성의 광기, 다시 말해서 위대한 것의 광기이다.-권력의 위대성과 유죄성!”이라는 매력적인 문장으로 요약한다.
리쾨르는, 요즈막 흔히 듣게 되는 주장, 즉 이성 혹은 진리로서의 정치(정치의 자율성)를 사회의 관리로서의 정치를 구분하는 주장처럼, 정치를 이성과 진리의 차원에 놓는다. 그리고 이성-진리로서의 정치가 스스로를 배반하면서 초래하는 악, 이성-진리를 자임하면서 국가가 저지르게 되는 탈선을 고발한다. 그럼 국가가 물질적인 힘으로 전환함으로써 나타나는 잘못, 즉 전제의 위험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리쾨르의 결론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철학자가 폭군이 될 수 있다면, 여우가 사자로 돌변할 수 있다면, 진리가 교만하게 자신의 힘을 믿고 비-진리가 될 수 있다면, 그를 제어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은 단 한가지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자유이다. 이때의 자유란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라기보다는 진리의 여부를 논쟁할 수 있는 자유에 가까울 것이다. 그리하여 리쾨르는 “정치의 핵심문제가 바로 자유라는 것이다. 국가가 그 합리성을 통해 자유를 확립하든지, 아니면 자유가 그 저항을 통해 그 권력의 열정을 제한하든지 말이다.”라고 결론을 내린다. 앞의 글, 346쪽(강조는 원문).

리쾨르의 논변에서 경제를 참조하지 않은 채 정치의 기하학을 구성하는 나무랄 데 없는 시도와 마주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의 결론처럼 정치의 악을 제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자유일 뿐일까. 자유를 선택한 이후 동유럽이 직면한 빈곤과 착취의 자유를 들먹이며 리쾨르의 반응을 구하는 것은 잔인한 일일까. 전체주의적 폭정보다 결코 덜하지 않을 오늘날의 자유의 폭정을 고발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역사적 시험을 거친 자리에 선 자들의 특권에 불과한 것일까.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손쉽게 리쾨르의 주장을 물리칠 수는 없을 것이다. 경험적인 사실을 들어 그의 주장을 부정하는 것은 비판이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온전한 비판을 위해 우리는 리쾨르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가 제기했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럴라치면 사정은 훨씬 복잡한 것처럼 보인다. 먼저 우리는 리쾨르의 질문 자체를 무효화해버리는 시대에 이미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리쾨르는 정치를 관념적인 행위, 혹은 바디우같은 철학자의 표현을 빌자면 이념적인 행위로 규정한다. 그는 정치는 진리/비진리를 가늠하는 행위이고 그런 점에서 진리의 이름으로 어떤 행위도 정당화될 수 있기에 근대 정치에 특유한 정치의 악이 초래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이런 식의 주장을 들어줄지 의문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겸손한 실용주의는 진리로서의 정치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치에 어떤 진실을 부과하는 시도도 부정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들의 눈으로 보기에 정치란 것이 떠맡아야할 보편적 이상은 없으며 오직 주어진 사실의 세계 위에서 이해를 조정하는 협상의 게임만이 있을 뿐이다. 또한 정치를 비판하는 일은 정권 교체로 한정되어야 하며 정치가 따라야 할 기준이 있다면 그것은 부패하지 않고 청렴하며 공정한 통치가 이뤄지는가 여부를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청렴함과 책무성(accountability)의 윤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정치를 정치 이후의 정치, 즉 포스트-정치(post-politics)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리쾨르의 질문은 아예 제기될 가치조차 없는, 유효기한이 지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리쾨르의 질문을 기각해야 할까. 그 질문을 계속 유지하면서 그에 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까. 우리는 기꺼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리쾨르의 주장이 시대착오적인 것이기는커녕 공리적 현실주의에 정치를 내맡겨야 한다고 분주히 떠들어대는 오늘날 역설적으로 더욱 현실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리쾨르의 주장을 보충하여야 한다. 그것은 그가 말한 정치의 역설은 정치의 밝혀진 비밀이기는커녕 또 하나의 비밀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실은 그가 발견하고 고발한 정치의 역설에는 한 겹 더 역설이 숨겨 있었다는 것이다. 리쾨르의 한계는 정치를 이성과 진리라는 관념적 실재의 차원으로 환원한데 있지 않다. 실은 그런 논리에는 아무런 오류가 없다. 다만 그가 미처 간파하지 못한 것은 바로 어떻게 하여 정치가 그런 이성-진리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었냐는 것이다. 이 때 우리는 그가 자신이 정치를 사유하기 위해 ‘두 제곱된’ 사유를 하여야 한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비판해야 한다.
두 제곱된 사고란 프레드릭 제임슨이 마르크스주의의 변증법적 사유를 가리키기 위해 제시한 유명한 표현이다. 그는 “변증법적 사유란 두 제곱된 사고, 즉 사유 자체에 대한 사고로서, 정신은 대상이 되는 자료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고과정도” 사유의 대상으로 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맑스주의와 형식’, 여홍상, 김영희 옮김, 창비, 2014, 68쪽.
이를 리쾨르에게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리쾨르가 생각한 것처럼 정치는 완전히 자율적이다. 정치는 어떤 외적 규정 없이 스스로의 장 안에서 이성과 진리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조직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는 경제를 번역하거나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런 식으로 정치를 반성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경제라면 어떨까. 경제는 정치의 내용도 아니고 정치의 실체도 아니다. 정치 내부에서 경제의 흔적을 찾는 것은 경제를 전적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경제는 정치가 자신의 대상을 가지고 자율적인 원리에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규정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정치를 규정한다. 경제가 정치를 결정한다는 것은 결국 경제가 정치의 궁극적 대상이라는 말이 아니다. 정치는 ‘사고된’ 경제가 아니다. 제임슨의 표현을 빌자면 그것은 한번만 제곱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한 번 제곱해야 한다. 경제가 정치의 대상인 것이 아니라 정치가 스스로의 대상을 갖도록 함으로서 정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의 비밀은 정치 자체의 비밀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치의 비밀이 되도록 하는 또 하나의 숨겨진 비밀을 풀어야 한다.
그런 비밀을 풀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정치란 순전한 형식에 속하고 그것의 실질적 내용은 경제에서 찾아야 한다는 식의 아둔한 경제주의에 빠지지 않고 동시의 자율성을 온전히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경제가 정치를 결정한다는 생각 역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것을 상기한다면 경제와 정치를 종합할 수 있는 제3의 자리를 찾으려 하지 않으면서, 즉 둘 사이의 불가분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양자의 전치(轉置)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길, 그것을 찾아내야는 것이다.
전경(前景)과 배경(背景)
[그림 생략]
위의 그림은 우리가 흔히 마주할 수 있는 눈속임 그림 가운데 하나이다. 이 그림은 어느 시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이미지로 보인다. 그림의 흰색에 유의하여 보면, 이 그림은 영락없이 꽃병 그림이다. 그렇지만 검은색을 주목하면 이 그림은 서로 마주보는 두 사람의 얼굴을 그린 그림이 된다. 그런데 얄궂은 것은 꽃병과 사람의 얼굴을 동시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꽃병을 보거나 아니면 사람의 얼굴, 두 가지 가운데 하나 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를 형태심리학에서는 형상(figure)과 배경(background)이라고 부른다. 이는 사람들이 어떤 대상을 지각할 때 어떤 부분을 반드시 분리해서 보며 이를 통해 어떤 부분은 형상이 되고 다른 부분은 배경으로 물러난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니엘 챈들러, ‘미디어기호학’, 강인규 옮김, 소명출판, 2006, 248쪽.
그런데 이 그림은 자본주의에서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지각하는데 따르는 배리(背理)를 잘 요약해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젝 같은 이는 자본주의에서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곧잘 이 그림에 빗대어 설명하곤 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사람들은 꽃병의 두 측면을 보거나 한 사람의 얼굴을 볼 뿐 두 가지를 다 보지는 못한다. 사람들은 선택해야 한다. 동일한 방식에서 사람들은 정치적인 것에 집중하여 경제적인 영역을 경험적인 ‘상품의 공급’으로 축소하거나 혹은 경제에 집중하여 정치를 상황의 무대, 스쳐지나가는 현상으로 축소한다. 그리하여 후자의 경우 정치는 ‘인민의 통치’가 ‘사물의 통치’ 속으로 사라져버린다고 이미 엥겔스가 말한 것처럼, 발전된 공산주의(혹은 전문 관리자) 사회가 도래하며 사라져 버린다.” 슬라보예 지젝, ‘혁명이 다가온다’, 이서원 옮김, 길, 2006, 153-4쪽.
여기에서 지젝은 방금 본대로 두 가지를 동시에 볼 수 없는 곤란을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빠져들 수 있는 유혹, 즉 그림에서 얼굴만을 보거나 꽃병만을 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는 경제로부터 정치를 도출하거나 아니면 정치로부터 경제를 제거하거나 하는 것과 같은 유혹에 굴복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경제와 정치를 동시에 시야에 놓을 수는 없을까. 결국 경제 아니면 정치라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통해서만 자본주의와 관련한 정치를 생각할 수 있다면, 경제적인 영역에서의 투쟁과 정치 고유의 영역에서의 투쟁 사이의 구분을 순순히 인정하고 어느 하나를 다른 것으로 대체할 때 비롯되는 오류를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를테면 경제 자체로부터 정치의 모든 원인을 발견하려 함으로써 착취적인 경제질서를 폐지하면 곧 더 이상 정치는 불필요해지고 마침내 국가는 소멸하게 될 것이라는 환상을 피해야 한다. 혹은 반대로 오직 정치는 법적 평등과 권리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정작 그런 발상이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작동시키는 조건을 이룬다는 것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둘을 함께 사고하면서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는 정치를 생각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물음을 제기한 지젝 스스로로부터 답을 찾자면 이럴 것이다.
“만약 라캉에게 성적 연관이 없다면, 엄격한 의미의 마르크스주의에는 경제와 정치의 연관성이 없다. 어떠한 ‘메타언어’로도 동일한 중립적 시점에서 두 수준을 파악할 수 없고, 오히려 그 때문에 이 수준은 풀 수 없이 얽혀있다. ‘정치적’ 계급투쟁은 경제의 한 가운데(‘자본론’ 제3권의 마지막 구절을 상기하라. 그곳에서 갑자기 텍스트가 중단된 뒤 계급투쟁이 다루어진다)에서 일어난다. 반면 동시에 경제 영역은 정치 투쟁을 풀어내는 열쇠가 된다. 이 불가능한 연관 구조가 뫼비우스의 띠를 닮은 것은 놀랍지 않다. 첫 번째로 우리는 정치적 상황에서 경제적 하부구조로 전진하여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는 경제의 심장부에서 되돌릴 수 없는 정치 투쟁의 차원에 직면해야 한다.” 앞의 글, 155-6쪽(강조는 원문).
이 때 지젝의 결론은 기대와 달리 적잖이 싱겁고 단순하다. 즉 둘을 어느 하나로 환원할 수 없지만, 그 둘의 연관을 잊지 않고, 두 영역 모두에서의 싸움을 감행하자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곧 하나의 영역이 다른 영역과 교차하는 지점에 운 좋게 당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은 채, 두 곳의 전선에서 모두 투쟁하여야 한다는 하나마나한 싱거운 답변을 늘어놓고 있는 것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전경과 배경을 동시에 볼 수 없다. 어느 하나를 보기 위해 다른 것은 배경으로 물러나야만 한다. 그런 시점(視點)의 한계는 정치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영역에서 어떻게 동시에 싸울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지젝의 생각을 보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제임슨의 생각을 참조해도 좋을 듯싶다.
“확실한 것은, 마치 성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특징짓기에 만족스러운 용어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경제학 또한 마르크스주의를 특징짓기에 만족스러운 용어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정신분석학은 성애학 erotics이 아니며 성적 치료의 형식도 아니다. 정신분석이 성적인 측면을 궁극적이고 결정적인 심급으로 삼는 것으로 묘사된다면, 그것은 사실 단순한 인상만으로 뭉뚱그려 일반화한 정신분석일 뿐이다. 프로이트 제자들이 정신분석을 순전히 성에 관한 경험적 추문으로 격하하고 리비도를 그리 특별할 것 없는 형이상학적 영역이나 실존적 영역의 힘 또는 정신성으로 일반화하는 정식을 향해 나가려는 것을 감지했을 때마다-예를 들어 잘 알려졌다시피 아들러, 융, 랑크의 경우가 그러했는데-프로이트는 자신이 원래 구성했던 대상에 대해 날카롭고 거의 본능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을 초점과 경계를 고수하며 이론적으로 물러났다. 이것은 사실 우리가 프로이트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존경스러우며 영웅적인 계기들인데, 이는 또한 그가 자신의 발견과 관점에 대해 가장 고집스럽게 믿음을 고수했던 계기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성이 프로이트주의의 중심이라고 긍정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성이라는 사실로부터 후퇴하는 것은 일종의 수정주의를 열어젖히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프로이트 자신이 언제나 재빠르고 기민하게 비판하고 비난해 마지않았던 것이다.” 프레드릭 제임슨, ‘레닌 재장전: 진리의 정치를 향하여’, 슬라보예 지젝, 알랭 바디우 외, 이현우, 이재원 외 옮김, 마티, 2010. 115쪽.
『레닌과 수정주의』란 제목이 붙은 글에서 제임슨은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를 동일한 구조를 가진 지식으로 비교한다. 이 때 그가 둘을 동일한 종류의 지식으로 보는 이유는 정신분석학과 성애학(erotics)의 관계가 역사유물론(혹은 정치경제학비판)이 경제학과 맺는 관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제임슨은 프로이트주의에 늘 따라다니던 비난을 피하기 위해 변절한 프로이트의 제자들과 프로이트를 대조한다. 인간의 심리적 삶 전체를 성이라는 보편적인 원인으로 환원하는 범성주의라는 추문을 피하려 이탈했던 프로이트의 제자와 달리 프로이트는 꿋꿋이 성에 따른 결정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프로이트는 결국 문명의 모든 현상을 성으로 환원하는 범성주의를 고수했다는 것일까. 제임슨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성을 경험적인 사실들로서 이해하는 한 그것은 그저 성애학에 불과하다. 상품을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상으로 이해하고 그것의 심미적, 정신적 가치를 거론하는 것은 상품학이거나 마케팅 담론에 불과한 것처럼 말이다. 데이비드 하비, ‘맑스 자본 강의’, 강신준 옮김, 창비, 2011.
마르크스에게 상품은 그것이 화폐로 나아가 자본으로 전환하는 한에서의 상품, 즉 가치로서의 상품이자 사회적 관계로서의 상품이다. 그것은 물론 상품의 생김새, 쓸모,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 따위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우리는 자본주의 비판이란 이름으로 이러한 종류의 담론이 성행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정신분석학도 역시 그럴 것이다. 만족스러운 성 생활을 위한 실용적 해법을 전달하는 객관적 지식이라면 정신분석학은 기껏해야 만족스런 성생활을 위해 조언하는 그저 그렇고 그런 심리요법 가운데 하나에 머물 것이다. 더 심하게 말한다면 요가나 기체조, 단전호흡만도 못한 효용을 가질 것이다. 그렇다면 정신분석학에서의 성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에서 잉여가치 혹은 계급투쟁이란 무엇인가란 물음과 같을 것이다. 잉여가치는 이윤과 다른 것이라고 말 할 때, 그것은 사물이 아니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잉여가치가 이윤이라면 생산된 상품의 전체 가치 가운데 노동자의 지불되지 않은 노동력의 가치를 체화하고 있는 상품의 크기라고 말하면 충분할 것이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는 끈질기게 그와 같은 생각을 비판한다. 잉여가치는 사물이 아니라 바로 사회적 관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잉여가치는 계급적인 착취, 혹은 계급투쟁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잉여가치는 어떤 추가적인 크기의 양이 아니다. 그것은 공장 안팎에서 노동자의 일하는 방식을 결정하고 전반적인 생활양식을 조정한다. 이는 성이란 것이 이러저러한 신체의 생리적인 활동이 아닌 것과 같은 것이다. 인간과 자연의 보편적인 물질대사를 수행하는 노동이 자본제적 임금노동이란 형태로만 존재하게 되듯이 성 역시 그럴 것이다. 동물과 인간을 가르는 구분선 가운데 하나가 자연적인 운명의 몸짓으로서의 교미와 달리 독특한 성적인 욕동에 의해서만 가능한 섹스로 분리되었다는 점을 생각하기만 해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섹스 안에 깃든 우리의 모든 성적 환상과 행위는 바로 그런 사회적 관계를 통해 매개된 것일 뿐이다.
에티엔 발리바르가 “이윤 분석을 잉여가치 분석에 종속”시켜야 한다고 말할 때, 강조하는 것도 그러한 것이다. 에티엔 발리바르, ‘역사유물론 연구’, 이해민 옮김, 푸른산, 1989, 194쪽.
그는 (정치)경제학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비판 혹은 역사적 유물론을 구분하면서, 전자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전화에 관한 이론, 즉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에 관한 비전을 가질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윤의 전화의 결과와 그 표상의 역사(특히 개별자본의 재생산이라는 새로운 역사적 차원으로서의 자본제적 회계의 적응이 제기하는 기술적, 이론적 문제의 역사)밖에 갖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앞의 글, 195쪽.
여기에서 발리바르가 이윤과 잉여가치, 경제학과 경제학 비판을 구별하는 것은 성을 생리적인 본능과 인간의 심적 생활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갈등으로 보는 성애학과 정신분석학 사이의 차이와 다르지 않다. 정치경제학은 오직 이윤의 관점에서 바라본 회계학만을 가질 뿐이고, 자본-토지-노동으로부터 각기 이윤(이자), 지대, 임금이 나온다는 성삼위일체의 조화로운 영구적인 질서만을 응시한다.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이 바로 물신주의 비판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사회적 관계를 사물 그 자체의 속성으로 인식하는 것, 이러한 전도된 표상이야말로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특성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사회적 관계[즉 부의 소재적 요소들이 생산담당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적 관계]를 이들 물적 존재 자체의 속성으로 전화시켜버리는 (화폐) 바로 그 신비화하는 성격”이라고 말한다. K. 마르크스, ‘자본 III-2’, 강신준 옮김, 길, 2010. 1103쪽.

그렇기 때문에 자본의 관점에서는 오직 회계학으로서의 정치경제학이 있을 뿐인 셈이다. 자본에게 경제란 곧 재무제표에 나오는 이윤의 문제이고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지출과 소비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상품학이나 회계학의 오류는 정치경제학 비판을 통해서 고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가 해방의 경제학자일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는 경제적 분석을 통해 정치의 열쇠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아니 보다 강하게 말하자면 왜 그럴 수 없는지에 관하여 말한다. 어떤 이들이 자본주의의 한계는 자본주의 그 자체라고 말하곤 한다. 자본의 한계는 노동(의 저항)이 아니라 그 자체의 내적 모순이라는 것이다. 그 말은 자본주의가 잉여가치의 착취를 통해 조직되는 사회적 관계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자본은 잉여가치의 생산, 실현, 분배의 모순들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물론 그 변화는 노동과 맺는 관계를 폭력적으로 혹은 평화적으로 변화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위에서 우리는 항상 복잡하고 예상할 수 없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경제에서 빠져나온 적대적 모순이 정치라는 곳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 쟁점을 다루는 과정에서 우리는 상이한 정치적인 경향과 마주하게 된다.
방금 인용한 글에서 제임슨은 자본주의 비판을 위한 정치에 있어 혁명적 정치와 수정주의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규정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는 난데없이 정신분석학을 참조한다. 정신분석학에서의 수정주의란 무엇인가. 그는 그것이 성의 일차성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좌파 정치에서의 수정주의란 무엇일까. 당연히 경제의 일차성을 부인하는 것에 해당될 것이다. 그것은 심적 갈등과 좌절의 기원을 성에서 찾으려는 스승의 거북한 주장에서 벗어나 심적 현상의 기원을 형이상학적이거나 정신주의적인 것에서 찾으려 뒷걸음질 친 정신분석에서의 ‘수정주의자’처럼, 좌파정치에서의 수정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논쟁을 자유에 대한 논쟁으로, 경제적 착취에 대한 논쟁을 정치적 대표에 대한 논쟁으로 뒤바꾸는” 것이다. 제임슨, 앞의 글,

그러면서 제임슨은 거의 동시대의 개종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라면 경악할만한 주장을 태연스레 제시한다. 마르크스주의가 정치의 자율성에 관한 이론, 나아가 정치 자체에 관한 이론이 없었다는 점이 “마르크스주의 자체의 힘이자 독창성”이며, “권력의 수사학”이야말로 “수정주의의 근본적 형태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분석은 권력에 관한 분석이어야 한다는 수많은 정치철학자들의 주장(푸코의 지식/권력, 규율권력, 생명관리권력에서부터 들뢰즈의 통제사회, 아감벤의 예외상태론에 이르기까지 숱한 급진 정치이론은 되풀이해서 권력을 말하지 않는가)에 대해 수정주의자라는 비난을 마다하지 않는 제임슨의 몸짓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그의 무모함은 그가 외려 가장 강인하게 사유한다는 점을 반증해준다.
그렇다면 제임슨은 정치를 경제로 환원하자는 것일까. 물론 그가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할리 만무하다. 그 역시 지젝과 거의 동일한 어조로 자본주의적 경제와 사회계급 및 계급투쟁이라는 것을 종합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그는 그 두 가지가 “어떤 메타언어를 통해서도 상관되지 않는 방식으로, 그러나 또한 끊임없이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의 번역 translation-나는 트랜스코딩 transcoding이라고까지 말하고 싶은데-을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탓이다. 앞의 글, 114쪽.
지젝이 전경과 배경으로 분리되어 어느 한 가지밖에 볼 수 없는 그림을 두고 말하는 것처럼 제임슨 역시 경제의 언어와 계급투쟁(정치)의 언어를 동시에 말할 수 있는 메타언어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임슨은 여전히 경제의 일차성을 강조한다. 이때 그의 이상한 논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는 경제가 일차적이며 모든 것을 규정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서슴없이 정치가 경제를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것을 그저 상호규정한다고 말하거나 때에 따라 둘 가운데 하나가 다른 하나를 결정한다고 말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경제기 일차적이라고 말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정치를 생각하고자 했던 이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쟁점일 할 수 있다. 이 쟁점에 답하고자 했던 시도 가운데 가장 악명 높은 것은 단연 알튀세르의 생각일 것이다. 그것은 지금은 반쯤 파문당하거나 망각된 ‘부재하는 원인(absent cause)’으로서의 적대(계급투쟁))라는 수수께끼 같은 주장이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알튀세르의 부재하는 원인이라는 관념에 준거하여 문학 텍스트를 독해하는 마르크스주의적 문학 비평을 개척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Fredric Jameson, The political unconscious: narrative as a socially symbolic act, Ith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81.
얼핏 듣기에 부재하는 원인이라는 말은 말장난 같이 들린다. 존재하지 않는 원인을 ‘있다’란 용어로 가리키는 것은 무슨 엉뚱한 말인가. 원인과 결과를 말하면서 원인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당구공을 움직이는 다른 당구공의 충격이 있었다면 당구공의 운동의 원인을 손쉽게 분별할 수 있다(알튀세르가 기계적 인과성이라고 부르는 것). 또는 모든 것이 신의 뜻에 따른 섭리라고 말하거나 세계를 대상화하는 인간 정신에 의해 문명의 기본방향이 예정되었다고 말할 때처럼 모든 것을 하나의 완결된 전체로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특정한 기원적 지점을 원인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역시 알튀세르가 표현적 인과성이라고 부른 것). 그렇지만 그러한 인과성이 상상하는 원인과 다른 원이 존재할 수 있다면, 과연 그것은 어떤 원인일까.
먼저 우리는 원인이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어떤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원인에 관한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앞서 제임슨이 정신분석학과 성애학의 구분을 경제학과 역사유물론의 구분과 대조한 이유이다. 정신분석학과 역사유물론이 서로 유사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인과성을 생각하는 방식에 있어 서로 닮았다는 점에 있다. 효과를 통해서만 알려지고, 그것의 있음을 소급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어떤 요인, 그 가상의 요인을 가리키기 위해 알튀세르는 부재하는 원인이란 개념을 제시하였다. 그가 생각하는 인과성, 즉 구조 인과성(structural causality)이라고 부르는 그 인과성은 경험적이고 직접적으로 주어진 어떤 사태나 대상이 아니라 다른 어떤 원인을 상정한다.
라캉과 같은 정신분석학자는 정신분석학에서 프로이트가 우리의 심적 현상에서 성이라는 부재하는 원인을 발견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똑같이 부재하는 원인이란 개념을 사용하였다. 우리는 성을 특수한 심적 에너지라고 정의하는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것을 어떤 객관적이고 경험적인 무엇으로 규정하려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심리학이나 뇌 과학, 뉴에이지 같은 담론으로 빠져든다. 실은 범성주의라고 할 만한 환원론은 이런 사이비 심리과학의 편에 있지 정신분석학의 것은 아니다. 정신분석학은 우리의 모든 심적인 혼란과 좌절(불안, 강박, 분열증 따위)를 성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부재하는 원인으로서, 분석을 받는 이가 자신의 모든 문제의 발단이라고 생각한 무대(부모의 첫 성교를 목격하는 무대 등)와는 다른 무대(another scene)에서 은밀하게 그의 심적 질서를 규정하는 원인으로서 작동한다.
그런데 이는 경제라는 원인의 경우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경제의 일차성이라는 것을 경제라는 사회의 한 영역이 다른 사회 영역들, 이를테면 정치나 문화를 결정하는 차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경제가 자신을 독특한 규칙을 가진 질서로 나타낸다는 것은 경제가 자신을 마치 자율적인 실체인양 나타낸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일이 실현될 수 있는 조건은 오직 자본주의의 적대적 사회관계, 즉 노동을 착취함으로만 자신을 자율적인 운동으로써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한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경제를 경제로서 나타낼 수 있는 조건은 경제를 경제화하는 것, 즉 착취적인 사회관계를 사물의 세계에서 나타나는 자율적인 법칙으로서 전환하는 것이다. 이 때 우리는 경제가 경제로서 스스로를 나타내기 위해, 즉 경제가 그것을 주어진 경험적으로 주어진 사실적인 대상으로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조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경제의 근본적인 비밀이라 할 수 있는 것, 적대적인 사회관계, 계급투쟁을 억압하고 제거하는 것을 통해서 이다. 그러므로 경제는 실은 정치적인 것과 정치를 구분하기 위한 진정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숱한 정치철학자들이 현실 정치(realpolitik)로서의 정치(a politics)와 본연의 의미에서의 정치(the political)을 구분하여야 한다고 강조할 때, 실은 그것은 선험적인 원리로서의 경제적인 것과 경험적이 사실의 세계로서의 경제의 관계를 치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연유로 알튀세르는 전체(whole)와 총체(totality)를 구별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헤겔이 총체를 주장했다면 바로 그것을 전체란 범주로 전환한 것이 마르크스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말한다. “마르크스가 사회를 하나의 지배 속에 구조화된 복합적인 전체로서 생각했던 반면 헤겔은 그것을 하나의 총체(totalité) 사고했음을 이야기함으로써 그들 간의 차이를 드러낼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나에게는 …… 헤겔에게는 총체성의 범주가 있는 반면, 맑스에게는 전체라는 범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루이 알튀세르, ‘아미엥에서의 주장’, 김동수 옮김, 솔, 1991, 149-50쪽.
실은 이 두 개념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은 그의 평생의 목표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문제이다. “최종심급, 구조화된 전체, 과잉결정, 모순을 불균등성” 같은 명제들은 앞의 글, 155쪽.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에서 이 개념들이 차지하는 의의와 그것이 초래한 난점에 대해서는 발리바르의 주석을 참조할 수 있다. E. Balibar, Structural causality, overdetermination, and antagonism, Postmodern Materialism and the Future of Marxist Theory, A. Callari & D. F. Ruccio eds. Hanover: Wesleyan University Press, 1996.
실은 바로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제안된 것들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총체와 전체의 차이는 무엇일가. 이를 우리는 총체란 중심과 기원을 갖는 반면 전체란 탈중심성과 불균등성 그리고 원인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총체와 전체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식은 앞서 말한 표현을 빌자면 자본의 한계는 자기 자신인 것처럼, 자신을 총체화할 수 없는 자본의 한계를 전체라는 개념으로 나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경제는 정치를 결정한다고 기꺼이 말할 수 있다. 경제는 근본적으로 모순에 의해 시달리기 때문에, 자신을 온전히 총체로서 완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은 자신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정치로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지젝은 이렇게 풀이하기도 한다.
“‘정치’는 경제가 자기 자신과 취하는 거리에 대한 이름이다. 정치 공간은 부재원인으로서의 경제를 전체 사회의 원인 중의 하나인 ‘대립적 규정’ 속의 경제와 분리시키는 간극에 의해 생긴다. 경제가 ‘전부는 아니기’ 때문에, 즉 ‘무력’하고 무감각적인 유사 원인이기 때문에 정치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적인 것은 여기서 정확히 라캉이 말한 실재의 의미로 이중적이다. 그것은 다른 투쟁들 속에서 전치와 다른 형태의 왜곡을 통해 ‘표현되는’ 단단한 중핵인 동시에 이러한 왜곡을 구조화하는 원리 그 자체다.” 슬라보예 지젝, ‘멈춰라, 생각하라’, 주성우 옮김, 와이즈베리, 2012, 60-61쪽.
여기에서 지젝은 정치와 경제를 두 개의 부분 사이의 관계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자기 이중화라는 것을 통해 정치가 발생한다는 논리를 제안한다. 경제를 대립적인 규정이라고 말할 때 그가 염두에 둔 것이 그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마르크스가 말하는 노동의 대립적인 규정을 두고 했던 이야기에 익숙한 편이다. 그가 노동의 대립적 규정이라 부르는 예 가운데 하나를 들면, 노등의 대립적 규정, 즉 구체적이고 유용한 노동과 가치를 생산하는 추상적인 노동이다. 이를 간단히 설명하면 이럴 것이다. 우리는 미싱을 돌리거나, 계산대에서 수납을 하거나, 용접을 하는 등의 구체적이고 다양한 일을 한다. 실은 현실에 있는 노동이란 그런 구체적인 노동일뿐이다. 그렇지만 자본에게서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노동은 단지 잉여가치를 낳는 무차별적인 노동일일 뿐이다. 그것을 추상적 노동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노동은 구체적 노동과 추상적 노동이라는 대립적인 규정을 지닌다. 대립적 규정이란 개념은 마르크스의 사고 속에 끈질기게 남아있는 헤겔 철학의 흔적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가 그 개념을 애용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는 그러한 개념이 자본주의의 적대적 모순을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지젝은 이런 대립적 규정을 경제에 대입한다. 먼저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결정하는 경제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동시에 흔히 현실 경제, 경제현상이라고 부르는 경제도 역시 가지고 있다. 그러 점에서 경제는 두 가지 대립적인 규정의 결합이다. 지젝은 이런 대립적 규정 사이의 차이, 두 가지 경제사이의 간극이 정치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지젝은 ‘전부는 아닌’ 다시 말해 그것을 완결적인 총체로 닫아버리지 못하게 하는 적대, 모순(=경제)으로 인해 정치가 등장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치는 경제적 대립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불가능성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가 계속 작동하기 위해 정치를 발생시키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경제가 자신을 이중화(적대적 관계이기 때문에 안정된 질서를 갖춘 대상이 될 수 없는 경제와 현실경제라고 말할 때의 실제적인 경제적 사실들의 세계로서의 경제)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들뢰즈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이렇게 말한다. “‘경제적인 것(the economic)’은 사회적 변증법 자체이다. 다시 말해 한 주어진 사회에 제기된 문제들의 총체 혹은 그 사회에 대한 종합적이고 문제설정적인 장이다. 엄밀히 말해 오직 경제적인 사회 문제들이 있을 뿐이다. 해법들이 법률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일 수도 있고 또 그 문제들이 이러한 해결가능성의 장들 안에서 표현될 수 있을지언정 말이다.”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김상환 옮김, 민음사, 2004, 406쪽(번역은 필자가 부분적으로 수정하였다).
이 때 들뢰즈가 말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경제적인 것이 사회적 변증법 자체라고 말할 때 그는 사회의 하위 영역 가운데 하나가 경제인 것이 아니라 사회의 자기부정의 몸짓 자체가 경제임을 분명히 한다. 사회가 자신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를 찾아낼 때, 그것은 실은 경제에 의해 사회가 스스로를 재조직하는 과정 자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들뢰즈가 자신의 전매특허 개념이라 할 “미분적 잠재성(differential virtuality)”을 알튀세르가 말하는 구조 개념과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구조는 자신의 변이성들을 상이한 사회들 안에서 구현하면서 움직이고, 또 매번 각 사회 안에서 그 현실성을 구성하는 모든 결합관계와 항들의 동시성을 고려하면서 움직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유한 의미의 ‘경제적인 것’은 결코 주어져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해석을 요구하는 어떤 미분적 잠재성을 지칭하고, 이 잠재성은 언제나 자신의 현실화 형식들에 의해 이미 은폐되어 있다.”, 앞의 글, 405-6쪽.
미분적 잠재성이란 부분들의 합으로서의 전체가 아니라 각 부분들의 결합관계 자체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는 경제에 의한 과잉결정이나 과소결정과 같은 방식으로 조직되는 전체(whole)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포퓰리즘이라는 수수께끼?

경제를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면 ‘표면은 정치이지만 본질은 경제’란 같은 말은 고쳐 읽을 필요가 있다. 결국 경제는 자신이 돌아가기 위해 언제나 표면에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경제적 지배계급이 곧 정치적 지배계급이 아니라는 것을 기꺼이 인정해야 한다. 경제적 모순은 그것과 무관해 보이는 정치적 당파들 사이의 갈등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최근 세계 전역에서 횡행하는 포퓰리즘, 즉 무력한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극단적인 정치적 우익이 대표하는 것 같아 보이는 기이한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이는 중요하다.
이를테면 한국 판 포퓰리즘으로 간주되는 박근혜 정권을 생각해보자. 거의 부동의 높은 지지율을 누리고 있는 현 정권은 얼마 전부터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기치 하에서 이데올로기적인 선제공격을 펼치고 있다. 코레일의 민영화 이후 의료서비스의 민영화로 이어지는 행보를 박근혜 정권은 공기업을 비롯하여 사회 각 부분에서 고통분담을 회피하는 기득권 수호 세력에 맞서는 정의로운 투쟁이라 강변한다. 그리고 국가는 바로 그러한 특권세력에 맞서 단호히 정의를 행사하는 권력이라 역설하다. 이는 신자유주의적 금융화가 초래한 사회적 불평등을 기득권세력과 열심히 일하고 살아가는 평범한 보통 국민이라는 대립으로 치환하고 스스로를 기꺼이 반기득권 정권이라 선언한다. 당연히 이는 얼토당토 않는 헛소리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이 먹힌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문제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해가 바뀌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전년 영업실적 결산에 따른 대주주 배당금 분배 기사는 기득권 세력이 누구인가를 남김없이 말해준다. 재벌 총수나 경영자들은 가만히 앉은 자리에서 배당금만으로도 각기 수십억 원씩이 넘는 돈을 챙긴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깨닫는다 해서 크게 달라질 일이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착취적 사회관계가 어떻게 정치를 조직화하도록 결정하는가이다.
공기업의 방만한 부실 경영이 일어난 실제 이유는 기업처럼 이윤을 내야한다는 이유로 바깥 돈을 끌어들여 투기적 사업을 벌이도록 강요받고 그를 위해 끌어다 쓴 돈의 이자를 갚느라 엄청난 빚을 진 데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진짜 적 대신에 고액 임금에 다른 이들은 꿈도 꾸지 못할 온갖 복지 혜택을 누리는 귀족 집단이라 낙인찍힌 이들을 애꿎은 공적(公敵)으로 비난한다. 그럼 진실을 알리기 위해 박근혜 정권의 기만을 폭로하고 민영화에 반대하는 투쟁을 하는 것으로 충분할까. 알다시피 우리는 그 이상 나아가지도 못하고 있고 그렇다고 그러한 투쟁이 광범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 접근해서는 현 정권은 가진 자들의 이해를 대표하는 정권이라 규탄하며 윤리적인 분노를 조직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더욱 난감한 것은 박근혜 정권이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표하기는커녕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해를 대표하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권은 과도한 특권을 누리는 나머지 집단에 성실히 살아가고 있는 보통 국민을 대립시킨다. 그리고 사람들은 순순히 그렇게 믿는다. 그러므로 현 정권을 비판하는 사회운동에 대한 대중의 전반적 반응은 야박하게 말하자면 짜증스럽고 성가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을 포퓰리즘의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것이 자본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모두를 대표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박근혜 정권이 자본의 이해를 대표할 뿐이라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은 아마 그런 식의 비난에 크게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성실하게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착한 국민과 조금도 “특권을 내려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우리에게 기생하는 사회의 공적(公敵)이라는 대립을 통해 더할 나위 없이 인기를 누리는 정치권력과 마주하고 있다. 그 정치집단이 능란하게 활용하고 있는 포퓰리즘은 정치의 실제 내용은 경제라고 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경제적인 것이야말로 부재하는 원인이란 입장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경제는 절대 투명하게 자신의 힘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자신의 내적 모순을 다른 갈등으로 언제나 탈바꿈한다. 그러므로 경제적 모순을 정치적 갈등과 분리시키는 이 간극이야말로 박근혜 정권에 대항하는 정치가 대면해야 하는 근본적인 쟁점이다. 많은 이들은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현 정권이 그 어느 때보다 가진 자들의 권력을 거침없이 휘두르고 있다고 개탄한다. 반면 없는 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이 정권이 믿음직하고 자신을 편들어 준다고 믿는다. 이 터무니없는 낙차는 전연 엉뚱한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자본주의에서 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경제는 물론 결국 정치를 결정한다. 그렇지만 경제가 정치로 직접 내달리는 경우는 없다. 경제는 정치가 어떤 식으로 조직될 것인가를 결정한다. 혹은 경제는 정치가 어떻게 자신을 정치로서 현실화할 것인가를 결정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포퓰리즘은 그러한 작용의 결과라 할 것이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실은 정치적 분석의 무능을 말해주는 또다른 이름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현실에서 나타나는 정치를 결정하는 그 정치, 그것을 분석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그것을 지지와 인기를 가능케 한 대중심리의 역학에서 정치의 원인을 발견하고자 한다. 포퓰리즘이라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정치의 진정한 원인인 경제적 진실을 폭로하는 것이 좋은 선택일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좌파 정치가 박근혜 정권이 성공적 집권할 수 있었던 정치적 논리를 포퓰리즘에서 찾고 이를 극복할 방편으로 그것이 은폐하는 경제적 불평등을 고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을 때, 실은 그것은 정치를 부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경제적 이해의 대립이 정치적 입장의 대립으로 직접 번역될 수 있다면 운동으로서의 정치는 굳이 필요 없을 것이다. 둘은 절대 대응하지 않고 항상 어긋나기 때문에, 정치를 정치화하는 운동이 필요한 것이리라. 오늘 우리가 직면하는 전례 없는 정치적 무능은 바로 그러한 운동으로서의 정치에 대한 무지에서 기인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일도 없다. 바로 이런 곤경으로부터 정치는 자신을 재발명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제는 정치를 두 제곱한다. 경제는 정치의 실체도 내용도 아니다. 경제는 정치가 스스로를 만들어내도록 한다. 포퓰리즘은 바로 그런 두 제곱된 사고가 불가능할 때 불투명하게 보이기만 하는 정치를 그리기 위해 만들어낸 무력한 표상일 뿐이다. ❐
_말과활에 기고한 글

형이상학의 집으로서의 자본주의: 집요한 내재적 유물론의 난관


Grace Jones – La Vie en Rose

자본의 존재론을 향하여?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제국” 삼부작 가운데 마지막 권인 ‘공통체’가 마침내 출간되었다. 그런데 조금 인색하게 말해 이 세권의 저작을 삼부작이라고 부르기엔 어려움이 있다. ‘제국’과 나머지 두 권인 ‘다중’ 그리고 ‘공통체’가 상이한 주제나 대상을 놓고 분리되어 있는 저작들이라고 볼 수 없는 탓이다. 외려 ‘제국’이라는 문제적인 저작이 출간되고 난 이후 이 저작의 불명료하고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는 일련의 저작을 내놓으며 저자들이 꾸준히 증보판을 출간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 싶다. 그런 탓에 삼부작이라는 연속적 기획이라는 시점에서 근작인 ‘공통체’에 접근하기는 곤란한 일이다. 그렇다고 이 저작의 가치를 쉽게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어쨌든 ‘제국’ 이후 자율주의 마르크스주의에서 연원하고 푸코와 들뢰즈의 철학적 사유를 자본주의의 새로운 존재론의 구성에 통합하고자 했던 두 공동 저자의 완고하고 영웅적인 탐색의 자취는 이 저작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제국’의 출간이 던진 충격은, 어느새 지난 일처럼 추억거리가 되었지만, 일종의 사건이었다. 그 저작이 품고 있는 야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레닌 이후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단절을 꾀할 만한 이론적, 정치적 기획이 부재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그람시, 알튀세르, 프랑크푸르트학파 등의 마르크스주의의 현대화를 위한 기획이 있었지만 그것들이 레닌주의에 필적할만한 반자본주의적 정치의 기획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네그리와 하트의 작업은 분명 주목할 만한 것이다. 더욱이 현실사회주의 몰락 이후 반자본주의적 기획 전체를 의문시하고 또한 마르크스주의 역시 지난 시대에 명멸한 정치적 이데올로기 가운데 하나의 종(種)으로 취급되며 이를 안락사 시키려는 시도가 난무했음을 떠올릴 때, ‘제국’의 출현은 반란과 저항의 사유가 소생하고 쇄신된 마르크스주의가 출현할 수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그들은 낙천적이고 대담하였다. ‘공통체’에서 더욱 주의 깊게 확인하고자 하듯이 그들은 “자본의 코뮤니즘”, 즉 요원하거나 불가능한 미래로서의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가 아니라 이미 편재함에도 불구하고 미처 그것을 인정하고 장악하지 못한, 이미 도래한 코뮤니즘의 존재를 역설한다. 그들이 자본이 더 이상 사회적 관계를 생산하고 조직하는 권력으로서 작용하지 못한 채 흡혈귀처럼 가치를 탈취하는 외적 형식적 명령으로서의 자본이라고 강변할 때, 많은 이들은 저항감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전미래(前未來)적인 시점을 통해 현실을 사유하려는 가장 강한 사례란 점을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은 지구화 과정을 통하여 지구 전체를 그 명령 아래 둘 뿐 아니라 사회적 삶 전체를 창조하고 그것에 스며들어가서 착취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삶에 경제적 가치의 위계에 따른 질서를 부여한다. 정보‧코드‧지식‧이미지‧정동 등을 포함하는 새로운 지배적 생산형태에서는 생산자들이 공통적인 것-특히 그 사회적 형태인 소통네트워크들, 정보은행들, 문화적 회로들-에의 자유로운 접근과 함께 더욱 많은 자유를 점점 더 필요로 한다. ……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탈중심화된 네트워크에서 이루어지는 생산의 모든 형태는 (컴퓨터 테크놀로지를 수반하든 아니든) 자유와 공통적인 것에의 접근을 요구한다. 더 나아가, 생산되는 것-아이디어, 이미지, 정동 등-의 내용은 쉽게 재생산(복제)되기 때문에 이를 사유화하거나 공적 통제 아래 두려는 모든 법적‧경제적 노력에 강하게 저항하는 경향, 공통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이행移行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공통체’, 정남영․윤영광 옮김, 사월의책, 2014, 19쪽.
‘공통체’ 안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빈번히 출현하는 이러한 주장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존재론으로서는 물론 네그리와 하트가 가정하는 해방적 주체의 윤리학을 응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행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거나 “착취는 오늘날 더 이상 생산적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고 단지 지배의 도구로서만 기능하는 경향이 있다.” 앞의 글, 98쪽.
는 그들의 주장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간단히 현재의 현실에 대한 판단이나 서술로서 간주하는 것은 온당치 않을 것이다. ‘공통체’에 이르는 세 권의 저작을 통해 두 저자가 서로 다른 역사적 시점에 대응하는 자본주의 세계의 이미지를 제시하고자 했다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세 권의 저작을 통해 서로 다른 중요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격변의 혼란스러운 정세들을 분별할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여전히 동어반복에 가까운 주장만을 들을 수 있다고 푸념하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다. 실은 이러한 두 가지의 ‘제국’ 3부작을 읽는 시점은 그 저작들이 집요하게 구축하고자 하는 인식론적, 존재론적인 기획을 간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저작을 현실의 표상으로서의 적합성이라는 눈금에 따라 읽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저작을 연례보고서나 정세보고서로 읽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이 짧은 서평에서는 이제 세 권의 저작을 통해 윤곽이 다듬어지고 그것의 이론적인 프로그램이라 할 만한 것이 견고해진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특히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내재적 유물론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론적, 인식론적 기획의 난점과 그로부터 그들이 자본주의 비판을 위해 제안하는 정치경제학 비판 혹은 반경제학적 접근이다. 물론 이 둘은 분리되어있다기보다는 서로를 규정한다고 볼 수 있다.
생산력주의와 고집스러운 내재적 유물론
네그리와 하트의 존재론적 사유를 이끄는 내재성의 관점을 어떻게 생각하여야 할까. 두 저자는 자신들의 존재론적인 관점을 “내재성-형이상학적 초재성transcendence에 대립될 뿐 아니라 인식론적 초월론 transcendentalism에도 대립되는 내재성-이 철학의 유일한 지평”이란 것으로 요약한다.” 앞의 글, 65쪽.
그리고 “근대성을 규정하는 정체성-소유-주권이라는 세 주요 요소가 대안근대성에서는 특이성-공통적인 것-혁명에 의해 대체된다.”고 규정하며, 앞의 글, 471쪽.
이번 저작을 통해 더욱 정교해진 근대성의 변증법, 즉 근대성과 대안근대성(alter-modernity)의 변증법을 전개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근대성의 자기운동을 위협하는 대안근대성의 힘이라는 외재적 대립의 변증법이 네그리와 하트의 사유를 제약하는 근본적인 난점의 주요한 원인을 이룬다는 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는 결국 자본의 자기 극복의 필연성이라는 목적론에 근거한 역사적인 전망을 이끌어낸다. 이 때 그들은 그들의 명민함을 생각할 때 어이없으리만치 소박하고 조야한 생산력주의를 고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이라는 관점은 흔히 알려진 생각, 자본주의는 생산력의 역사적 발전을 통해 자신을 진전시켜나가지만 특정 시점에 이르면 생산관계는 오히려 그런 생산력의 발전을 제약하게 되고 결국 자본주의는 자신의 생산력을 해방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다른 것으로 전화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생산력이란 그들이 주류 경제학의 다양한 가설들(예컨대 외부성의 경제 운운)을 참조하면서 언급하는 노동자들 사이의 직접적인 사회적 협력 그 자체의 역량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가치이다. 그들은 이제 생산이 협소한 공장 내부에서 이뤄지는 활동과 그것의 노동생산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네그리가 자신의 초기 저작에서 노동의 사회적 구성의 역사란 관점에서 제시한 바 있듯이 더 이상 사회노동자도 아니다. 포드주의적 산업노동자의 형상으로서의 대중노동자들이 벌인 투쟁과 반항은 자본을 위기로 몰아넣고 새로운 지배의 전략을 취하며 대중노동자는 사회노동자로 변신하였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렇지만 사회노동자는 여전히 생산적 노동이란 관점에 머무르며 노동자들이라는 제한된 특수한 집단과 그들의 생활에 머물러 있었다면 네그리와 하트는 이제 새로운 프롤레타리아의 형상을 찾아야 한다고 누누이 역설하였다. 물론 그 형상의 이름은 다중이다. 다중이란 그들의 직접적인 사회적 협력과 소통을 통해 가치를 만들어내는 삶정치적 자본주의의 주체이다. 그러나 어느 자리에서 발리바르가 말하듯이 그들은 “노동의 점진적 사회화의 텔로스로 보는 군더더기 없는 서사” 에티엔 발리바르, “공통적인 것, 보편성, 코뮤니즘에 대하여”, ‘자본의 코뮤니즘, 우리의 코뮤니즘’, 연구공간 L 엮음, 난장, 2012, 100쪽
를 통해 자본주의를 표상하고 생산력주의의 논리로 뒷걸음질 친다.
네그리와 하트는 노동과 가치의 역사적 변양(變樣)이라는 서사를 통해 생산력의 발전의 역사로서의 자본주의의 역사 서사를 제시한다. 그리고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서 생산력의 발전을 제약하고 자신을 궁극적으로 위기에 몰아넣는 생산관계와의 대립을 발견한다. 물론 역사적인 서사 그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주의적 목적론에 빠지지 않고 역사를 재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 때 첫째도 둘째도 역사화하라는 구호를 내걸었던 프레드릭 제임슨의 독특한 입장을 떠올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이 때 제임슨이 상상하는 역사의 표상은 네그리와 하트가 생각하는 역사의 표상과는 전연 다른 전략이다. 알다시피 제임슨은 라캉과 알튀세르의 생각을 참조하면서 자본주의의 실재(the Real)은 재현불가능한 것이라고 전제한다. 그렇지만 조잡한 라캉주의적 사고와 다른 점은 제임슨이 그것이 역사란 상징적인 허구에 불과하므로 역사는 오직 헛된 이미지일 뿐이라고 취급하는 것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Fredric Jameson, The political unconscious : narrative as a socially symbolic act, London: Routledge, 2002.

제임슨은 외려 바로 그 점에서 역사적 서사-물론 그에게 그것은 문학적인 서사와 그것에서 표상되는 역사를 가리키지만-의 의의를 강조한다. 그는 적대를 직접적으로 표상할 수 없지만 역사를 서사화할 때 적대는 그 안에 자신을 각인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역사적 서사의 내용 자체의 차원에서 적대를 발견하고자 애쓰는 조야한 사실주의를 제임슨은 거부한다. 이는 제임슨이 그러하듯이 프로이트주의에서의 비유를 든다면 더욱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무의식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프로이트는 잠재몽과 현재몽의 관계를 말하면서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위치는 잠재몽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꿈 작업” 자체라는 형식적 차원에서 발견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자본주의적 적대를 분별하기 위한 논리로 원용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적대는 다른 무대(another scene)에서 최종적으로 모든 역사적 사태를 결정한다. 프로이트주의가 성의 결정론인 것은 맞지만 성의 본질론이 아니고 그리하여 정신분석이 성애학(erotics)이 아니듯이, 마르크스주의 역시 경제라는 자본주의적 적대의 결정은 맞지만 모든 현실적 사태에서 노동이나 생산의 흔적을 발견하려는 관점은 아닐 것이다. 그 적대는 계급투쟁의 형태로 나타나고 그것은 다양한 정치적 대립과 갈등을 형성한다. 즉 적대는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관계를 형식화한다. 이를테면 파시즘이나 페론주의같은 코포라티즘은 노동자계급을 자신에게 적대하는 자본주의적 정치의 무대 위에 세운다. 그러므로 이런 정치적 계급투쟁의 형식을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표현으로 읽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클리나멘으로서의 정치를 어디에서 발견할 것인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되풀이되는 네그리와 하트의 주장에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끊임없이 “소통과 협력의 수평적 네트워크를 통한 생각․이미지․코드․언어․지식․정동 등의 생산은 경향적으로 공통적인 것의 자율적 생산, 다시 말해 삶형태의 생산과 재생산을 향한다. 그리고 삶형태의 생산과 재생산이야말로 정치적 행위의 엄밀한 정의이다.” ‘공통체’, 498쪽.
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정치는 생산(과 재생산)의 존재론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발현한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정치라는 “형식” 즉 정치의 우연성을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의 문제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그들이 상정하는 존재론적 틀에 의해 모든 일이 결정되어 있는 곳에서 정치적 행위의 우연성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정치는 존재의 문제를 초과한다는 계기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생산의 보편적 존재론으로부터 정치를 연역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가 생산의 보편적 존재론 속에 예약되어 있는 탓에 그들은 기꺼이 자본의 코뮤니즘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회의하는 이들에겐 자본주의로부터의 단절(두 저자의 트레이드마크인 엑서더스가 아닌)을 고지하는 사건이 중요할 것이다. 나아가 노동과 생산의 내재적 존재론으로 환원할 수 없는 적대와 차이의 형태인 민족, 인종, 성적 차이의 문제들이 자본주의적 적대를 전치하는 과정을 분석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 된다.
이런 정치의 부재 혹은 정치의 우연성의 거부는 내재적 생산 대 초재적 주권이라는 존재론적인 이분법에서 비롯된다. 이런 이분법은 물론 (적잖은 네그리 식의 가공을 거친) 푸코의 주권적 권력 대 삶정치적 권력의 차이를 참조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한 들뢰즈와 가타리의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연작에서 강하게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자본주의의 연대기적 역사(chronology)를 규정하기 위한 결정적인 그리고 중심적인 원리로서 “초재성(혹은 초월성) 대 내재성”이라는 이분법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이라는 의외로 투박한 생산력주의적인 목적론을 사변적 어휘로 혼란스레 제시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통체’란 저작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네그리와 하트는 그러한 존재론적인 공리를 숫제 20세기 철학적 사유의 경향으로 끌어올린다는 점이다. 두 저자는 흥미롭게도 지난 세기의 철학적 투쟁을 초월성(초재성)의 철학과 그에 대한 “다양한 개입과 비판의 결과는 비판의 ‘현상학화(phenomenoligization)’”이라고 요약한다. 앞의 글, 57쪽.
물론 이는 퐁티와 하이데거, 나아가 현상학의 가장 강력한 비판가였던 일군의 철학자들을 그 계보에 집어넣는, 적잖이 억지스럽게 보이는 드라마이다. “신체들 그리고 신체들이 가진 힘의 관점만이 소유공화국이 휘두르는 규율과 통제에 도전할 수 있다.” 앞의 글, 61쪽.
는 그들의 생각을 좇자면, 소유공화국을 옹호하고 세례하는 철학적 사유의 경향과 그에 대립하는 사유의 경향을 대조하는 어법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정치적 변화를 위한 인간학적인 토대로서 생산력에 결정적인 의의를 부여하는 두 저자의 입장은 “소유 공화국은 이제 더 이상 자본을 위해 봉사하지 못하며 오히려 생산에 족쇄가 되었다. …… 삶정치적 시대에는 경제적 과정과 정치적 과정이 점점 더 긴밀하게 서로 맞물려서 때로는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라는 주장으로 하염없이 되풀이된다. 앞의 글, 416쪽.
그렇지만 이런 입장은 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한 그들의 독특한 윤색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는 그것은 그들이 제시하는 독특한 가치론으로부터 말미암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기존에 자본주의 분석을 위하여 원용된 가치법칙에 대한 이해를 정정한다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가치법칙을 자본주의 체제의 균형보다는 근본적인 불균형의 발동기로 간주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가치법칙은 균형의 근본적 위기를 규정하는 한에서 실로 잉여가치 법칙의 일부이다. 가치법칙은 자본주의 발전 전체에 적용될 때 위기를 발생시키는데, 이는 유통과 불비례의 위기(즉 체계적 균형의 모델로 환원될 수 있는 현상들)일 뿐 아니라 투쟁이 그리고 주체와 연관된 주기적 불균형이 야기하는 위기이기도 하다. 후자의 위기는 수요의 성장을, 바꾸어 말해서 생산하는 주체들의 욕구와 욕망의 성장을 봉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로부터 나온다. 이러한 구도에서 가치/잉여가치 법칙은 자본주의 발전의 주기가 계속해서 탈구조화되고 재구조화되는 법칙인 동시에 다중이 변형의 힘으로 구성되고 재구성되는 법칙으로서 나타난다. 이처럼 고전 정치경제학이 정의하는 노동가치론은 자본이 탈산업 시대에 들어와서 새로운 조직형태들을 생산함에 따라 자본주의 발전의 과정에서 소멸되고 있는 것이다.” 앞의 글, 432쪽.
여기에서 그들은, 항용 말해 왔듯이, 전통적인 노동가치론(!)을 기각하면서 가치법칙을 자본주의 발전의 주기의 법칙으로서 규정함과 더불어 다중이라는 변형의 주체가 구성, 재구성되는 법칙으로 정의한다. 그런 점에서 다중이 지배적인 생산의 주체가 된 탈산업화된 시대의 자본주의에서 노동가치론이라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들은 적극적으로 삶정치적 자본주의에 대응하는 가치론을 구축하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 우리에게 새로운 가치론이 필요하다. …… 삶정치적 맥락에서 가치는 정치‧경제적 통제의 모든 문턱을 넘쳐흐른다. 삶정치적 가치의 척도는 필요노동력 전체를 재생산하는 데 지출되는 시간의 양으로부터 도출될 수 없고, 시간의 양에 기반을 둔 사회 질서로부터 나올 수 없다. 삶정치적 가치는 협력을 바탕으로 한 공통적인 것에서 근거한다. 가치화에 의해 해석되는 욕구는 주체로부터 나오며, 다시 주체들을 계속적으로 변형시킨다. 공통적인 것의 지형은 주체성의 생산에 의해 활성화되는 것이다.” 앞의 글, 434-5쪽.
인용한 글에서 요약되듯이 네그리와 하트는 삶정치적 가치라는 측정 불가능한 가치, 노동이라는 실체에서 그 기원이자 내용을 발견할 수 없는 가치, 그것을 사유하려면 새로운 가치론이 필요하다고 강변한다. 그리고 이제 가치를 “결정론”(?)에서 벗어나 “장치”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가치론이 결정론에서 벗어나서 삶의 시공간을 창조적인 관점에서 재정의하는 ‘장치’로서 해석될 수 있고 해석되어야 한다.”). 앞의 글, 438쪽.
그러나 이런 생산의 시학(詩學)을 과연 새로운 자본주의의 생산의 배치와 역학에 조응하는 가치론으로 승인할 수 있을까. 그를 위해 우리는 네그리와 하트가 변경되거나 철회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치론이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가치론이었음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네그리와 하트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그들이 시대에 뒤처진 가치론으로 고발하고 비판하는 가치론은 리카르도(Ricardo)의 가치론일지 몰라도 무엇보다도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서의 가치론 비판과는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일단 다음의 글을 참조할 수 있다. Louis Althusser & Etienne Balibar, Reading Capital, Ben Brewster trans. London: Verso, 1979; Michael Heinrich, An introduction to the three volumes of Karl Marx’s Capital, Alexander Locascio trans.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12; Moishe Postone, Time, labor, and social domination: a reinterpretation of Marx’s critical theory, Cambridge &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역설하듯이 정치경제학 비판이 상품, 화폐, 자본의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주어진 경제적 현실의 불평등을 고발하고 폭로하며 또 그에 저항하는 피착취자의 경제학은 아니며 더욱이 노동자계급의 경제학도 아니다. 그러나 자본의 운동을 투쟁의 사후적 효과의 연쇄로 보는 네그리와 하트의 생각은 그런 관념에 근접한다. 그들이 노동자계급의 투명한 이해를 대표하는 가치론을 꿈꾸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과 생산의 일의성이라는 관점에서 자본의 운동을 파악하는 그들의 관점에서는 자본이 형이상학적인 선험을 통해 작동하는 것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이 봉쇄되어 있다. 마르크스는 투쟁의 구체적인 아름다움을 예찬하기보다는 자본의 운동이 구성하는 형이상학적인 초재성을 비판하고자 했을 것이다. 이는 왜 자본의 세계가 그러한 방식으로 표상되고 체험되고 현상하는지에 관한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상품과 화폐의 형이상학이라고 말할 때 여기에서 말하는 형이상학은 단지 사회적 관계가 수량화된 가치의 규정과 증식의 운동으로 나타나는 점을 고발하기 위해 도입된 수사학적인 표현은 아닌 셈이다. 마르크스에게서 형이상학이란 유령적인 대상성(ghostlike objectivity)으로서 나타나는 경제적인 실재에 대해서나 감각적인 대상을 동시에 초감각적인 초월적인 대상으로 다루는 주체의 편에서의 환상과 의식 모두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자체가 형이상학적인 신비를 통해서만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본주의를 전적으로 내재적인 존재론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네그리와 하트의 주장을 자본주의는 초재적 형이상학의 관점에서만 분석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대조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우리는 ‘공통체’에 이르는 ‘제국’ 삼부작이 자본(주의)를 반성하기 위한 존재론적, 인식론적인 기획으로서의 성취와 난점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아마 그런 토의를 조직할 수 있는 결정적 쟁점은 “금융화”라는 자본의 논리, 자본의 형이상학의 극치일지도 모른다. 이 저작에서 소략하게 두 저자는 금융화를 준별할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이미 살펴본 내재적 생산과 소유의 초재성 사이의 대립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에 대한 불만은 자율주의 내부의 분열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아마 대표적인 사례는 공개적으로 네그리와 하트의 삶정치적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나선 라자라토의 ‘부채인간’일 것이다. 마우리치오 라자라토, ‘부채인간: 채무자를 만들어 내는 사회’, 허경, 양진성 옮김, 메디치, 2012.
더없이 화폐의 형이상학에 의해 좌우되는 시대에 내재적 유물론은 시험에 오른 셈이다. ❐
_포지션에 기고한 [공통체] 서평 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