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질하는 자들의 이데올로기적인 미망(迷妄): 문화비평의 윤리를 생각하며


Shamir – On The Regular

“종의 안중에 영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추문의 병리학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파문이 있었다. 이름난 인터넷 논객이었던 몇몇의 데이트폭력을 둘러싼 언쟁으로 며칠간 시끌벅적했다. 그 이상으로 나는 이 사태들에 관해 아는 것이 없다. 흐릿하게 아니 어쩌면 부정확할 수도 있을 방식으로 그 사태들을 기억할 뿐이다. 표절은 나쁜 짓이고, 연인을 위협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 역시 나쁜 짓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그것은 나쁜 짓이라는 확인으로 그치지 않는다. 따라서 이를 어떤 사태라고 부르는 것은 표절이나 폭력(?) 같은 행위가 오직 문제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보적인 문학인의 윤리이자 노동당에서 활동하는 진보적인 논객의 양심을 두고 사람들은 옥신각신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입씨름 전체가 사태의 불가결한 일부를 이룬다. 그게 어디 그들만의 일일 것이냐는 교활한 조소에서부터 똑같이 뒤가 구린 것들은 오늘 편하게 발 뻗고 잠들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아냥에 이르기까지 다들 훈수를 두고 대꾸를 한다. 수많은 이들이 엄청난 도덕적 열정을 투여하며 규탄하고 논란을 벌일 때 이는 심상찮은 일이라 할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이는 한국사회에서 흔하게 되풀이되어 왔던 일이다. 이를테면 그것의 오늘날 비판의 표준적인 꼴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보인다.
매분마다 그 추문을 중개하고 개탄하며 혹은 은밀하게 그런 사태를 둘러싼 반응에 끼어들고 댓글을 달며 열정을 보이는 이들을 마주하는 것은 심란하고 거북한 일이다. 물고 늘어지는 사건과 인물 자체보다 오히려 그에 관한 소란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소동과 시비 속에는 어쩌면 우리를 들뜨고 흥분시키게 하는 사악한 무엇이 스며있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믿고 의지했던 어떤 인물이 부도덕한 행실을 한 데 대한 실망과 분노를 표현하는 것에서 비뚤어진 쾌감을 식별하는 것은 지나친 일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동안 되풀이되어온 이러한 도덕적 추문과 소동, 비판을 대신한 비판 아닌 비판을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이유는 여전히 있다.
헤겔은 그의 저작 여러 곳에서, 곧잘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하는, 시종의 사악한 양심에 대한 비판을 되풀이한 바 있다. 이를테면 ‘역사철학강의’에서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 심리학자는 위대한 역사적 인물이 사생활에서 지니고 있는 특수한 사실들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인간인 이상 당연히 먹고, 마시고, 친구들과도 교제하고, 때로는 감동도 하고 격앙도 한다. ‘종의 안중에는 영웅은 없다(Fuer einen Kammerdienet gibt es keinen Helden)’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나는 전에 이에 덧붙여서 말했었다. ‘그것은 영웅이 영웅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종이 종이기 때문이다.’ 괴테는 내가 한 이 말을 10년 뒤에 가서 되풀이하고 있다. 종은 영웅의 장화를 벗기기도 하고 그의 잠자리를 돌보기도 한다. 또 그가 샴페인을 즐겨 마신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역사 기술에 있어서 이와 같은 종의 본성을 가진 심리학자에 의해 기술되는 역사적 인물은 화를 당할 것이다. 그 어떤 인물이라 해도 수평선 상으로 끌어내려져, 이러한 인정에 정통한 종의 도덕과 같은 줄에 세워지기도 하고, 운이 나쁘면 그보다 몇 계단 더 격하되기도 한다.” G. W. F. 헤겔, ‘역사철학강의’, 권기철 옮김, 동서문화사, 2008, 41-2쪽.
여기에서 헤겔은 ‘추문의 병리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을 두고 빈정거린다. ‘종의 안중에 영웅은 없다’는 격언을 인용하며 그는 종들이 ‘영웅의 장화를 벗기기도 하고 그의 잠자리를 돌보기도’하고 ‘샴페인을 즐겨 마신다’는 것을 알고는 세상 사람들이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본 모습을 오해하고 있다고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종의 도덕에는 나름의 평등주의가 깃들어 있다. 그가 법복을 입고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이든 교단에 서서 지엄한 척 진리를 가르친다 자처하는 선생이든 모두 알고 보면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시시한 치들이라는 것이다. 그자들 역시 맛난 음식을 보면 군침을 흘리고 잠자리에서는 교성을 내며 그 짓을 하는 그렇고 그런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헤겔이 말하는 이런 ‘도덕의 수평선’은 주인의 위선을 발견하고 고소해 마지않는 시종의 위선이 기대는 도덕의 기반이다. “역시 인간이란 다 똑같아”라고 냉소적으로 자조하며 우리는 뭔가 가진 것처럼 보이는 자들을 조롱하고 기뻐한다. 좌파 지식인이라고 행세하고 다니지만 알고 연애를 할 때에는 손찌검을 일삼고 폭력적 행동을 일삼는 ‘찌질한’ 인간일 뿐이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자신의 능력과 대단한 수완으로 사업을 이루었다고 자처하지만 자기를 몰라본다고 승무원이나 부하직원에게 욕설과 폭력을 일삼는 쓰레기일 뿐이야. 운운. 그런 이들의 말을 듣고 헤겔은 이렇게 대꾸한다. “그러니까 네가 시종이지.”
주인의 심리적 특성 몇 가지를 찾아내고 그것을 조롱하고 비난함으로써 그를 비판하였다고 믿는 것이 왜 잘못이었는지를 말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다. 주인이 주인인 것은 주인의 인격적 자질이나 면모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가 주인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나는 어떤 인격적인 인물에게 복종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가 복종하는 것은 그가 우연히 차지하고 있는 어떤 추상적인 자리, 지배와 복종을 조직하는 추상적인 사회관계에서의 어떤 위치일 뿐이다. 내가 복종하는 대상이 그 인물의 덕과 인품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자신을 여전히 시종의 자리에 묶어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비판도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단지 시종의 비판에 불과한 것이다. 그는 주인과 대등한 척, 수평선상에 있는 것처럼 혼자 우쭐해하지만 이는 제 꾀에 스스로 속아 넘어간 것일 뿐이다. 그가 비판을 그런 식으로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전혀 시종인 것이다. 주인의 심리적인 특성이나 자질을 비웃고 힐난하는 것이 주인을 비판하는 것은 주인의 자리를 전혀 의문시하지 않는다. 그는 현실을 비판하는 일은 주관적 태도에 대한 비판으로 충분히 해냈다고 착각한다. 헤겔은 이를 “비천한 의식”이라고 부르지만 이를 가리키는 보다 적절한 이름은 천치일 것이다. 주인 몰래 낮잠을 자고 나선 보기 좋게 주인을 엿 먹였다고 즐거워하며 자신이 하인이 아니라 주인 모잖게 생각할 줄 알고 사는 사람이라고 자처하는 하인은 자신이 얼마나 하인인 줄 모르는 천치이다. 그런 바보스런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것인 주인과 하인 관계의 규칙이라는 걸 모른 채 그것을 위반했다고 즐거워하는 일이야말로 진짜 천치스러운 짓 아닐까.
그러나 시종의 착각에 못잖은 반대의 착각도 존재한다. 정신분석학에서 자주 우려먹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마르크스도 언급하고는 했던, 자신이 왕이어서 왕인 줄 착각한하는 왕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자신이 왕이어서 왕인줄 아는 왕과 거지 주제에 자신이 왕이라고 착각하는 왕 가운데 누가 더 제 정신이 아닌지를 물어보도록 하자.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대답은 둘 다 거기에서 거기라는 것이다. 자신이 왕이라고 하는 비어있는 상징적인 위치를 우연히 떠맡고 있기 때문에 그는 왕으로서 간주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내면이나 외양에서 왕으로서의 인품과 외모가 있어 왕이 되었다고 믿는다면 그는 대단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거지이면서 왕이라고 믿고 헛소리를 해대는 왕인 줄 아는 미친 거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우습게도 우리는 이러한 주인의 착각과 시종의 도덕이 평화롭게 동행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런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특징적인 사례가 리더십 담론일 것이다. ‘유연화된’ 신종 자본주의가 경영을 새롭게 나타내고 그리기 위해 도입한 신종 담론, 한 때 신경영담론으로 불리다 이제는 우리 시대의 일반적인 지혜로 자리잡은 경영 담론 가운데 대표적인 종목이 ‘리더십’이다.
리더십이란 경영이란 것이 기업주나 전문경영자가 위에서 명령을 내리고 지시를 하는 수직적인 위계 관계가 아니라 코칭(coaching)이란 개념이 느끼하게 역설하는 것처럼 노동자들이 내면에서 비롯된 자발적인 충성과 협조에 따른 수평적이고 소통적인 관계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지도자, 명령가가 아니라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터나 학교, 공직에서의 권력관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재현하려는 이데올로기이다. 이는 지시, 명령, 강제와 같은 것이 경영이 아니라 소통, 존중, 자발성 같은 것이 경영의 원리가 되어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떠들어 댄다. 경영자들이 어떻게 하면 존경받는 리더가 될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지침서와 프로그램은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고 그 중에 몇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주장이 얼마나 코웃음을 칠만한 헛소리인지 밝히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간단한 사례를 떠올려 보자.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각자 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로 대하자는 ‘CEO’의 지시를 받은 노동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이는 국내 대기업에서 실제 행해졌던 일이기도 하다). 그가 회사 입구에서 자신의 명찰에 쓰인 이름을 보고 ◯◯님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자신이 온전한 인격으로 대접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니 사정은 정반대에 가까울 것이다. 전처럼 “이 봐, ◯◯대리”라고 부르는 것보다 그는 더 심한 인격적인 모욕을 느낀다고 말하는 게 더 옳을 것이다. 여전히 그는 경영자의 변덕과 기분에 따라 생사가 좌우된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의 지시에 따라 친구인 양 처신하도록 종용받는다. 그런 위선적인 코미디에 진지하게 참여하도록 종용받는다는 점에서도 수모스럽지만 더욱 모욕적인 것은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 먹고살려니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시늉이 아니라 심지어 내면에서 우러나는 존경에서 비롯된 것처럼 하도록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는 형식적인 복종을 넘어 내면적인 자발성에 따른 충성을 바치도록 요구받는 셈이다. 다시 말해 사장이라는 상징적 지위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그에게 직접적인 인격적인 호의와 충성을 바치도록 겁박 당한다. 접객이나 대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판매나 영업, 서비스 노동자들이 겪어야 하는 “감정 노동”이 서빙과 같은 도구적인 행위를 직접적인 친밀함을 교환하는 정서적인 교감으로 둔갑시키는 것도 이와 멀지 않을 것이다. 고객이 아니라 그는 나의 이웃과 벗처럼 대접해야 하는 인물이다.
아무튼 리더십이라는 신종 주인 담론보다 더 역겨운 것은 없다. 그러나 씁쓸한 일이지만 리더십 담론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정치 비판이라고 할 만한 것을 리더십 비판으로 대체하는 것이 규칙처럼 되었다. 얼마 전부터 정치의 잘못은 정치지도자의 리더십 부재이거나 일방독주의 리더십 문제로 순식간에 환원되기 일쑤이다. 야당 정치평론가의 논평에서부터 야당 성향의 언론매체, 시민단체 나아가 시위대까지 리더십을 비판하는 데 목소리를 모은다. 당연히 우리는 정치라는 제도화된 게임 자체는 문제 삼지 않는다. 자유주의적 대의민주주의란 것은 그 자체 좋은 것이고 모두가 그를 통해 온전히 자신을 대표할 수 있지만, 그것이 비민주적으로 왜곡된 것은 정치지도자의 소통 불능의 리더십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정치지도자를 뽑도록 조직되어 있는 그리하여 부득불 언제나 대표의 왜곡을 불가피하게 하는 정치제도 자체에 대해서는 함구하거나 무지하다. 우리는 수시로 정치지도자를 조롱하고 세부적인 처신이나 몸짓, 패션 따위에 대해 저질스러운 농담을 행한다. 지도자나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에 대한 풍자는 위력적이고 또 중요한 비판의 방식이다. 그러나 풍자란 이를 보며 웃는 이들이 스스로 차지하고 있던 위치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자각을 동반할 때 그것은 풍자로서의 효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주관성의 탈구를 통해 자연스럽고 또 운명처럼 노예로서의 자기의식은 흔들리거나 동요한다. 그러나 풍자의 미학적이고 정치적 효력은 패러디가 습관처럼 되어버린 시대에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시시한 개그 프로그램의 냉소적인 풍자처럼 즉 아무 것도 바뀔 것이 분명하므로 마음껏 풍자를 늘어놓는 것은 싱겁고 지루한 허위일 뿐이다. 아니면 미국에서 악명 높은 보수적 TV 채널인 팍스TV의 간판 프로그램인 <심슨 가족 The Simpsons>이 제 아무리 클린터과 빌 게이츠를 위시한 온갖 인물을 출연시키며 있는 자들의 위선과 착취에 대해 풍자적 비판을 퍼부어대도 아무런 상징적 효력을 발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을질”하는 자들의 도덕
“정치적으로 올바른” 주인은 좋은 주인이라는 노예적 도덕이 우리 시대의 주인 비판의 레퍼토리라면 이것이 가장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곳은 ‘갑질’ 비판일 것이다. 계급투쟁보다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부르주아 비판이 훨씬 매력적인 것처럼 보이고 또 자본주의 비판의 윤리적 서사의 골격을 이루게 되었다는 점은 서글픈 일이다. 그것은 윤리의 객관성을 오해하고 어떤 대상에 대한 윤리적 비판을 인격적인 개인의 심리와 내면에서, 헤겔의 표현을 빌자면 주관적 ‘양심’에서 찾는다는 점에서도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비판을 통해 진정한 비판의 대상을 실종시킨다는 점에서도 당혹스러운 일이다. 땅콩 회항으로 유명한 어느 황당무계한 2세 경영자나 열정페이랍시고 개처럼 부려먹고 생색을 낸 어느 유명 패션디자이너를 둘러싼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이 고용주라는 이유로 전횡을 일삼는 이들의 갑질에 대하여 증오심을 느낀다. 그렇지만 이러한 갑질에 대한 증오가 불평등한 사회관계, 갑과을 사이의 주종관계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는 핑계를 들어 갑질 비판에서 무언가 득을 보려는 짓은 일을 그르칠 뿐이다. 그것은 도덕적인 주인은 좋은 주인이라고 은밀하게 가정한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오늘날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둘러싼 비판의 어려움을 퇴행적인 비판으로 대신하고 나아가 이데올로기 비판이라는 힘든 노고를 포기하도록 만든다.
“계급적 비평”은 한동안 성행하다 지금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고야 말았다. 이러한 비평이 신용을 잃고 온갖 거창한 철학적 비난에 밀려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런데 이런 계급적 비평이 맥을 못추게 된 데에는 계급적 모순을 부인하는 사변적 말장난 못잖게 계급적 비평 자체가 그만큼 쉽잖다는 점이 작용한다. 이는 근자에 철학자들이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는 공식을 빌어 말하는 것처럼 어떤 의미에서 계급관계란 없다는 점에서 말미암는다. 계급관계의 비대칭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러한 비관계로서의 관계는 다음과 같은 이율배반으로 나타난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가운데 오직 하나 만이 계급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자본주의에서 투명한 객관적 사실의 세계로서의 계급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외려 현실 속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개별적인 상품생산자들의 무정부주의적인 세계, 개별적인 기업가와 노동자들만이 존재하는 세계일뿐이다.
그럼 계급이란 무엇일까. 계급이란 소득, 지위, 의식, 관습 같은 공통의 요소들로부터 얻어낸 일종의 사회학적인 분류인가. 만약 그런 것이라면 우리는 계급은 있어도 계급투쟁이란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이 경우 계급은 차이와 구별을 가리키는 개념이지 모순을 나타내는 개념은 아니기 때문이다. 코포라티즘적인 관념이 상상하는 계급이란 개념과 모순 혹은 적대란 개념을 통해 매개된 마르크스주의적 계급이란 개념은 엄연히 다르다. 계급투쟁은 두 계급 사이의 차이에서 비롯된 관계가 아니라 모순 관계이다. 코포라티즘은 계급 사이의 관계를 A라는 사회학적 집단과 B 혹은 반(反)A라는 사회학적 집단 사이의 관계로서 상상한다. 이런 발상이 가능하려면 우리는 두 개의 사회집단을 이미 주어진 사실로서 다루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어진 사회적 사실로부터 각 집단의 이런저런 특징을 관찰하고 분류하여 계급의 정체성을 가정하게 된다. 그렇지만 계급투쟁의 우위, 모순이란 개념을 통해 계급을 인식하는 이들에게 계급이란 개념이 가리키는 것은 다른 것이다. 흔한 오해처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는 짝패처럼 상보적이면서도 서로 대립하는 영원히 미워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야 하는 관계가 아니다. 둘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순간 언제나 좌절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독특한 관계를 맺는다. 거칠게 말하자면 부르주아의 자기모순이 프롤레타리아이고 프롤레타리아의 자기모순이 바로 부르주아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방금 언급한 계급관계의 비관계로서의 관계라는 이율배반을 생각해보면 한발짝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모순적 가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먼저 자본주의에서 계급은 오직 부르주아이다. 다음으로 자본주의에서 계급이 있다면 단지 프롤레타리아뿐이다. 첫 번째 부르주아만이 계급이라는 가정을 살펴보자. 이는 쉽게 설명될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국가는 자체 부르주아 국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르주아는 자신을 계급으로서 조직한다. 국가가 부르주아계급의 위원회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젠 충분히 반박된 경제주의적 환상에 근거한 도구주의적 국가관이라고 비난을 들을까봐 지레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국가의 자율성은 바로 국가가 도구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효과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도구일 수 있으므로, 계급적인 이해의 직접성으로부터 거리를 둔 채 존재한다는 환상이 작동할 때에만 국가는 자율적이지 않은가. 아무튼 부르주아 국가를 통해 지배계급은 자신을 계급으로서 조직한다. 그들은 자신의 배타적이고 파당적인 이해를 일반적 이해로서 혹은 국가라는 공동체 전체의 이해로 만들어낸다. 그들은 국가의 성장과 발전, 안녕, 평화 등을 위해 국가를 장악하고 운영한다. 따라서 부르주아는 자신을 항시 전체로서 표상한다. 이 때 노동자는 자신을 국민의 일원으로서 대표할 뿐이다. 노동자는 적대적인 사회관계의 모순적인 항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부분일 뿐이다. 따라서 여성(가족)부를 제외한 모든 부처가 남성부인 것처럼 노동을 대표하는 부분은 (고용)노동부이고 나머지는 모두 부르주아부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신을 계급으로서 조직하는 것, 즉 사회의 한 부분으로서 자신을 대표하는 것은 언제나 부분이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표상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논리를 만나게 된다.
이는 그 다음의 가정에도 역시 똑같이 적용해볼 수 있다. 먼저 부르주아는 자신을 계급으로서 조직할 수 없으며 영원히 그것을 금지 당한다는 것이다. 부르주아는 오직 개인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의 개별적인 이해를 좇아 침착하게 살아갈 뿐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굳이 계급으로서 대표하기 위해 자신을 조직할 필요가 없다. 노동조합이 있거나 노동자당은 있어도 부르주아조합이나 부르주아 당이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당을 만들 때 일체의 계급적 특색을 지운 채 자유당, 민주당, 공화당과 같은 이름을 붙이는 이유이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자유, 평등, 소유 그리고 벤담”이란 공식을 통해 통렬하게 조롱한 것이기도 하다. K. 마르크스, ‘자본 I-1’, 강신준 옮김, 길, 2008, 261-2쪽.
부르주아는 자신의 이해를 실현하기 위해 파당적인 이해를 도모하며 스스로를 조직하고 자신의 욕구를 관철시킬 필요가 없다. 그는 주어진 세계의 이치를 좇으며 묵묵히 살아가는 시늉을 하면 족하다. 이는 자신의 주관적인 이해는 그들은 부분적인 이해인 것이 아니라 현실을 올바르게 고려한 객관적인 이해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들의 탐욕이 제지당하면 그들은 굳이 자신의 이해를 말할 필요도 없이 영업의 자유, 사용자 측의 평등한 권리 등을 역설하면 족하다.

프롤레타리아의 경우엔 사정이 다르다. 그들은 자신을 대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계급으로서 조직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이해를 대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유, 평등, 소유 그리고 벤담의 낙원은 곧 착취적인 사회관계이기도 하다는 모순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정체성을 실현하고 그것이 가정하고 있는 욕구와 이해를 실현한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이를 이룩할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뿐이다. 바로 이 착취적 사회관계를 폐지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모순적인 항을 이루는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이 곧 사회 전체의 해방(착취적 사회관계의 폐지이자 새로운 사회관계의 수립)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은 보편적 계급이라는 터무니없는 형용모순적 주장이 출현하기도 했다. 보편적인 계급은 물론 난센스이다. 계급이라는 낱말 자체가 부분을 가리키는 것인데도 그것이 곧 보편이라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인 듯 보인다. 그러나 이는 모순적 현실을 올바로 상징화하는 것이기에 논리적으로도 참일 수밖에 없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앞의 가정과 동일한 결론, 사회의 한 부분으로서 자신을 대표하는 것은 언제나 부분이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표상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논리와 또 다시 만난다.
그렇다면 계급 관계는 비관계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부르주아가 프롤레타리아를 만나는 게 되는 일은 없다. 농민, 자영업자, 외국인, 아동, 노인 같은 숱한 사회적 집단 가운데 하나로서 노동자이거나 코포라티즘적인 사회집단으로서의 노동자 집단만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 역시 다르지 않다.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를 만나게 될 일은 없다.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에 맞서 자신의 투쟁을 조직할 때 그들은 부르주아가 아니라 지극히 추상적인 사회현실을 만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언제나 어긋난 만남이 계급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계급투쟁은 결코 인격적인 집단 사이의 만남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인가. 당연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계급투쟁이 모순이라면 그것은 다른 말로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독특한 상징적 매개를 통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역사적인 국면에서 계급적 관계가 독특한 사회적 블록 사이의 대립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투쟁을 조직한다는 것은 이러한 상징적 매개를 고안하고 자신과 상대에 이름을 붙이며 그 사이의 갈등을 조직하기 위한 구호, 표어, 의례 등을 만들어내고 다양한 상상적 대상화를 덧붙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즈음에서 갑질하는 자본가란 상징적 매개가 왜 한계가 있는지 따져볼 수 있다. 그렇다. 분명 갑질하는 가진 자들이란 표상도 역시 착취적인 사회관계를 매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그것은 잘못이다. 이는 착취적 사회관계에 대한 비판을 도덕적 비판으로 치환한다. 나아가 그것은 비판의 불임성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직면하게 된다.
부정을 부정하기
“‘부정’은 사회적 환경에 대한 아름다운 영혼의 비판적 태도이며, ‘부정의 부정’은 아름다운 영혼 그 자체가 어떻게 자신이 거부하고자 꾀하는 사악한 우주에 의존하고 있는가-그리하여 그곳에 완전하게 참여하고 있는가에- 대한 통찰이다.” S. 지젝, ‘까다로운 주체’,이성민 옮김, 도서출판b, 2005, 129쪽.
지젝은 어느 글에서 주관적 비판이란 부정이 지닌 한계를 규정하며 이렇게 서술한다. 이는 헤겔의 유명한 ‘아름다운 영혼’에 대한 비판을 다시금 써먹는다. 알다시피 “아름다운 영혼”이란 추악한 사회관계에 연루되는 것을 불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사회의 바깥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사회에 대한 추상적인 비판으로 비판을 대신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우리 시대에 창궐하는 사회 비평 혹은 문화 비평의 모습이기도 하다. 진정성을 상실한 속물근성이 지배하는 세계라는 것을 위시해 숱한 정신적 상태와 윤리적 태도를 겨냥한 비판은 그릇된 사회관계를 비판하는 것을 충분히 대신하는 듯한 시늉을 취한다. 그렇지만 지젝의 말처럼 그런 접근은 “자신이 거부하고자 꾀하는 사악한 우주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에 “완전하게 참여하고 있음”을 부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한 부정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그러한 추상적인 부정을 부정함으로써 현실적인 부정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 ‘부정의 부정’은 흔히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부정의 부정이란 자신이 부정하고자 했던 것으로 되돌아가는 것, 주어진 직접적인 현실을 부정하며 현실을 외부적인 대립물로 여기며 비난했던 자신의 경박한 생각을 반성하고 바로 현실과 화해함으로써 성숙해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부정의 부정이란 추상적인 부정을 현실적인 부정으로 바꾸어냄으로써 부정의 한계를 돌파하는 것이다.
아마 이런 점에서 급진적인 비판을 위한 원리를 집요하게 추구한 인물을 꼽자면 단연코 아도르노일 것이다. 이를테면 “문화비평과 사회”란 부제가 달린 아도르노의 ‘프리즘’이란 저작을 떠올려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첵은 추상적인 비판을 어떻게 다시 비판할 것인가라고 불러도 좋을 모토를 실천하는데 바쳐진 책이라 불러도 좋을지 모른다. “절망과 엄청난 괴로움이 존재하는 곳에서 단지 정신적인 것, 인류의 의식상태, 규범의 쇠퇴 따위만”을 발견하고 비평이란 이름으로 그 대상에 대해 깊이 안다고 거들먹대면서 “판단의 독립성을 위한 개념과 대상의 분리”를 자행하고 대상이 사물적 형태로 되어가는 것을 방치하는 것, 그리하여 “문화비평은 마치 전시된 듯한 이념들의 수집에 호소하고, 정신, 삶, 개인 등의 고립된 범주들을 물신화”하는 것을 아도르노는 격렬히 비난한다. Th, 아도르노, ‘프리즘’, 홍승용 옮김, 문학동네, 2004, 8쪽.
그리고 우리는 그의 경멸을 오늘날 더욱 강하게 되풀이할 필요가 있다. 아도르노의 접근은 한마디로 주체는 객체라는 것이다. 내가 어떤 윤리적, 미학적인 태도를 통해 세계를 비난하려고 할 때 그것은 주체와 객체의 분리,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분리를 온전하게 수락하고 승인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러한 조건을 인정하면서 비롯된 비판은 언제나 불완전한 비판일 뿐 아니라 그릇된 비판이라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주체란 언제나 객관적인 사회관계에 의해 매개되어 있다는 것을 유념하도록 경고한다.
아도르노가 일관되게 강조했듯이 내가 바깥 세계를 인식할 때 나의 주관성은 바로 세계에 의해 구성된 것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장황하게 외삽한 물신주의에 관한 철학적인 단편이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해 필수적인 부분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는 많은 이들이 오해한 것처럼 자신이 전개하는 비판적 논증이 의지하고 있는 논리적인 전제들이나 인식론적인 가정을 밝혀주기 위해 끼워 넣은 철학적인 부록(附錄)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비판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인 것이다. 우리가 상품, 화폐, 자본, 이윤, 임금, 지대 등의 개념을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표상으로 간주하는 한 그것은 그러한 개념이 억압하는 모순을 인식하지 못한다. 예컨대 상품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모순이며, 화폐는 보편적 등가와 교환수단의 모순이며, 자본은 산 노동과 죽어있는 노동의 모순이며, 임금은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유일한 상품인 노동력 상품 자체의 모순이란 것 등등을 억압한다. 그리고 그런 개념의 모순을 부정한 채 이를 현실을 객관적으로 표상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 자체가 허위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리카르도 사회주의자들(불행히도 오늘날 대부분의 반자본주의자들은 리카르도주의자들이다)의 주장처럼 노동자는 자신이 일한 만큼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자신이 생산한 가치의 일부를 이윤이란 형태로 빼앗긴다고 분개하는 도덕적인 비판은 비판이 아니다. 이는 노동과 임금이란 범주가 바로 자신이 비판하는 사회관계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이 온당하게 대접받지 못한다는 도덕적인 비난으로 비판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은 자본주의 비판이 노동의 입장에 서서 행해지는 비판이 아니라 노동 자체의 폐지란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노동이란 개념은 인간의 생산적인 활동 자체를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추상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추상 자체가 자본주의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조건이다. 자본주의를 비판한다는 것은 노동의 결실을 제대로 보상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노동이란 것 자체의 폐지를 겨냥하는 것이다. 인간이 행하는 온갖 생산적인 활동을 추상화할 때 우리가 손에 얻게 되는 매개된 개념이 노동이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특성이다. 이는 마르크스가 노동자에게 도덕적으로 아첨하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고타 강령>에 대해 그토록 격분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노동은 모든 부와 문화의 원천이다. 그런데 유용한 노동은 오직 사회 속에서 그리고 사회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노동의 수익은 조금도 줄지 않은 그대로 평등하게 모든 사회 성원에게 귀속된다”는 고타강령의 서술에 대해 마르크스는 자제심을 잃고 펄펄 뛴다. K. 마르크스, “독일 노동자당 강령 논평”, ‘프롤레타리아 당 강령’, 편집부 편역, 소나무, 1987, 80쪽.
왜 그는 그토록 불에 덴 것처럼 야단법석을 치는 것일까. 노동자의 불행을 동정하고 그들이 온당하게 취급당하는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 뭐 그렇게 욕먹을 짓이란 말인가.
그러나 마르크스의 분노는 옳은 것이다. 이는 그런 비판이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의 양심에 호소하며 노동자의 자기 노동에 대한 도덕적 자부심을 끌어내는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동수익의 공정한 분배”를 사회주의의 목표로 내세운데 대해 마르크스가 격렬히 비난을 퍼붓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정한 분배란 오로지 인간의 생산 활동이 노동이란 이름으로 추상되었을 때의 세계에서의 노동 결실에 대한 이야기이며 나아가 노동할 수 없는 이들, 노약자나 병든 이들 그리고 다른 이들보다 덜한 노동능력을 가지는 자들이 아무 것도 가져갈 것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노동이란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 활동, 예컨대 인간의 생존을 돌보는 숱한 여성의 활동은 고려되지 않는다. 당연히 마르크스는 노동의 가치에 따른 “평등권은 무릇 다른 모든 권리와 마찬가지로 그 내용상 불평등권”이라고 비난한다. 앞의 글, 87쪽.
이는 자본가들의 과도한 탐욕을 비난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비판에도 동일하게 적용해 볼 수 있다. 피케티 식의 자본주의의 장기적인 불평등화의 경향에 대한 비판은 거의 미친 주장처럼 여겨지던 마르크스의 ‘궁핍화’ 테제를 증명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한 것이고 가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본주의에 대한 충분한 비판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거짓이다. 자본주의는 소득 분배 구조의 불평등 때문에 나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소득 분배의 구조를 필연화할 뿐더러 노동이란 범주로 편입되지 못하거나 비생산적인 노동으로 규정된 활동을 배제하거나 저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른 체 한다는 점에서 나쁜 것이다. 고쳐 말해 노동이 온전히 자기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노동이란 개념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체란 것이 언제나 자본주의적 객체 자체인 이유를 말해준다. 그리고 사회적 관계의 외부에서 물러난 채 우아한 척 그것의 부도덕함을 비난하는 것이 그것에 깊이 연루되는 방식임을 설명해 준다. 자본주의는 사악한 체제라고 고발하는 가톨릭 교황의 발언은 제법 윤리적인 감동을 주지만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낼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본주의 때리기가 한 때 대서특필되다 이제는 스타의 별난 발언, 아름다운 선행처럼 취급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을 떠올리는 것은 정당하지 않을까. 가톨릭 신자의 으뜸가는 지도자인 교황이 그렇게 발언하는데 왜 세상의 가톨릭 신자들은 자본주의란 악에 대하여 반항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만 그건 잘못된 질문일 뿐이다. 가톨릭 신자들은 주관적인 도덕의 측면에서 얼마든지 자본주의를 욕하고 비난할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그들은 객관적인 현실의 측면에서 얼마든지 자본가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것은 나의 주관적인 도덕과는 상관없는 외적인 현실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원리를 좇아 충실하게 사업을 하면서 내면적으로 자본주의를 사악한 체제라고 비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관과 객관의 구성적인 분열, 육체노동과 지적 노동의 분화야말로 자본주의가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원리라 할 수 있다. 부르주아는 얼마든지 도덕적인 비판을 즐길 수 있다. 그것은 자신에게 전연 해로울 것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것은 더욱 더 유용할 수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적 경제활동에 대한 감시와 비판의 대표적인 형태는 부패와의 전쟁, 청렴과 책무성이라는 윤리적 기준이다. 경영학자나 정치가, 시민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가들은 이러한 우아한 자본주의 비판을 위해 다양한 윤리적 기준을 공급하여 왔다. 이를테면 사회적 책임 투자 같은 것이 그것이다. 기업의 영리활동은 그 자체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이지만 그것이 자본가의 사익을 위해 분식회계와 같은 일을 저질러 선량한 투자자의 이해를 침해할 때,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악이 된다. 이윤추구행위 자체는 선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선한 행위를 교란시키고 정당한 이윤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행위는 악이다.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온전히 챙겨주는 양심적인 투자기관은 좋지만 지나친 이자를 부과하여 노동자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약탈적 대부업자는 악이다. 그러나 TV의 광고를 볼 때마다 우리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서로를 부도덕하다고 고발하는 약탈적 대부업자의 윤리적인 경쟁이 약탈적 대부업자 자체의 도덕이기 때문이다. 한 달 내에 갚는 돈에 대해서는 이자를 요구하지 않으므로 진짜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너스레를 떠는 대부업자와 모두 돈을 빌려주지 않을 때 나의 커피숍, 빵집, 수예점을 열겠다는 당신의 꿈을 이루도록 기꺼이 돈을 빌려 드릴 테니 다른 일은 걱정 마시고 당신의 꿈을 위해 애쓰라는 대부업자는 서로 자신의 도덕을 으스댄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 자체가 얼마든지 선으로 뒤집혀지는 모습을 얼빠진 낯빛으로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방식 자체가 자본주의의를 윤리적으로 온전히 비판하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자본주의란 바로 그 도덕적 유희를 즐김으로써 번성한다는 수수께끼 앞에서 쩔쩔 맨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전노와 합리적 자본가를 구분한 마르크스의 지혜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는 “화폐축장자가 광적인 자본가에 지나지 않는 데 반해 자본가는 합리적인 화폐축장자이다. 화폐축장자는 화폐를 유통에서 구출해 냄으로써 가치의 쉴새업는 증식을 추구하지만, 좀더 영리한 자본가는 화폐를 유통에 투입함으로써 가치의 끊임없는 증식을 달성한다”고 꼬집는다. K. 마르크스, 앞의 책, 234쪽.
십원이 아까워 벌벌 떠는 구두쇠의 주관적인 인색함에 대해 조롱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렇지만 신중하게 자신의 돈을 투자하여 어떻게 부를 효과적으로 얻을 것인가를 탐색하는 자본가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거꾸로 기꺼이 칭찬을 한다. 그렇지만 마르크스가 말하듯이 더 악한 행위는 바로 후자 쪽에 있다. 수전노의 주관적인 악에 대해 우리는 손쉽게 경멸을 쏟아낼 수 있지만 합리적인 자본가의 착취에 대해서는 기꺼이 응원을 보낸다. 이는 진정한 악인 객관적인 악에 대한 무지이다. 악은 주관적인 의식이 아니라 바로 객관적인 현실 자체에 있다. 그리고 그것에 깊이 연루되어 있으면서 자신을 합리적이고 공평무사한 척 처신하는 데 있다. 이데올로기 비판이란 바로 그것을 겨냥하여야 한다. 객관적인 악은 주관적인 선량함이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이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그럼 문화 비판 혹은 이데올로기 비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주관적인 자세와 태도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주관적인 도덕과 객관적인 현실이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를 들춰내는 것이다. 갑의 도덕적 주관성을 비판하면서 갑이 만들어낸 세계의 윤리를 온전히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갑이 도덕적일 때 세상은 더욱 악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도록 함으로써 말이다. 
_말과활 에 기고한 글

남자가 남자인 척 할 때: 군부심이란 코미디


Holly Herndon – Chorus

군부심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실시간 업데이트가 안 되는 나는, 그 말을 근부심인 줄로만 알아들었다. 알고지내는 이 중에 한 사람이 은근히 몸 자랑을 하는 이를 마주치면 시샘이 나는지 “근부심 쩌네” 어쩌곤 하며 불평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 말에 익숙했던 터인지 나는 군부심이란 말을 우연히 처음 듣고서는 청맹과니처럼 그를 발음이 비슷한 근부심으로 알아들었다. 그러고는 말귀 어두운 것을 탓하지는 않고 채 “근육이 어디 붙었있다고?” 내심 빈정댔다. 그러다 순간 군부심이란 말이 알고 있던 그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그러나 그를 깨닫고서 나는 갑절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군부심? 군대생활을 했다는 데 대한 뿌듯한 자부심이란 것도 있다는 말인가. 군대 따위는 가지 않은 나로서는 군대씩이나 다녀온 자들의 마음을 전연 헤아릴 수 없었는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누가 들려준 이야기를 읽다보니 군부심은 제법 정당한 윤리적 근거가 있었다. 군대를 못가는 두 가지 이유, 병신이거나 아니면 특권층 자제이거나 하는 것과 달리 군대를 다녀왔다는 것은 두 가지 어느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은 것이다. 사람 구실 제대로 못하는 이들과도 엄연히 다르며 그렇다고 특권을 발판 삼아 다들 기꺼이 감당하는 의무로부터 기회주의적으로 도피하는 자들과도 다르다는 것, 그것이 병역의무를 다한 자들의 윤리적 명예의 바탕이다. 그런데 몇 되지 않는 예외적인 자들과 다르다는 것이 무슨 큰 벼슬인 양 자부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나는 군부심에 “쩌는” 이들이 자부심을 내세우려 들이대는 구별이 미심쩍다.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는 것이 자부심의 근거가 된다는 논리는 어딘가 이상하기 때문이다. 보통이라는 것이 자랑할 만한 일이라는 것은 어딘지 포퓰리즘의 악취를 풍긴다. 나는 그 악취의 정체를 얼마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포퓰리즘이라는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어떤 이색적이고 다른 이를 비난하고 혐오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군부심은 상당히 양면적이다. 첫 번째 그것은 노골적으로 평등주의를 내세운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우리는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 왜 너희들은 그런 특권을 누리며 안락하게 살고 있는가. 그런 점에서 군부심은 특권에 대한 증오에 바탕을 둔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모두가 똑같이 대접받고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사는 세계에 대한 소망을 은연중에 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비뚤어진 방식으로 그런 소망을 나타낸다. 그것이 바로 포퓰리즘의 또 다른 특징이다. 우리는 모두 동등해야 하는 데 왜 너(희들)은 그렇게 편하게 지내야 하느냐는 올바른 의문은 갑자기 불평등한 삶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고 그 원망에서 비롯된 분노를 전연 상관없는 대상에게 투사한다. 정작 탓해야 할 상대를 탓하지 못한 채 그것을 모두가 손쉽게 증오할 수 있는 상대를 골라 그에 대한 공격으로 화풀이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군부심을 경쟁적으로 과시하게 된 주요한 이유인 “군가산점제”를 떠올려 보아도 좋을 것이다. 군가산점제 폐지의 수혜자는 표면적으로는 여성인 것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군가산점제 덕에 그나마 군대에서 “좆뺑이 친” 수고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을 수 있었는데, “여(성)가(족)부”와 “꼴(통)페미(니스트)”들이 난리법석을 피우는 바람에 모두 그저 헛수고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 이런 주장은 얼핏 듣기엔 그럴싸하다.
그렇지만 군대에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가뜩이나 남자를 우대하는 세상에서 군가산점 탓에 취업 기회로부터 뒤로 밀려나는 여성들의 항변은 틀린 말인가. 나는 그 주장 역시 전혀 옳게 들린다. 그렇다면 이제 싸움은 남자와 여자의 전쟁으로 비화한다. 진짜 적을 놔두고서 말이다. 군가산점제에 애면글면 매달리게 된 이유는 빤한 것이다. 어떻게든 취업을 하고 싶다는 것이고 이를 가로막는 것은 용납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일자리를 두고 내 인생을 좌우하는 것은 여자들이 아니라 그들이라는 것은 눈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당연 그들은 우리에게 구체적인 관심이 없다. 그들은 채용을 하려는 것 뿐이고 그저 취업을 지원한 이들의 점수를 셈하면 그 뿐이다. 그들은 당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크게 상관이 없는 척 “쿨”하게 처신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닦아세울 수는 없는 일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를 조금 어려운 말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인간 다루기 묘법(妙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수요가 들쭉날쭉한 탓에, 주주나 투자자가 그렇게 하길 원하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인 경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운운의 이유를 들먹이며 “너 님 맘대로” 일자리를 줄였다 늘였다 하는 자본가에 대해, 입도 벙긋 못한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경제의 법칙이고 필연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적과 성장을 위해 댁들이 먹고 사는 문제는 알 바가 아니며 몇 푼이라도 받으면 미친 듯이 일하거나 아니면 실업을 택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는 명령을 절대 어길 수 없는 철칙처럼 여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원한 감정을 애꿎은 다른 이들에게 퍼붓는다. 그렇게 손쉽게 증오를 쏟아낼 수 있는 대상은 한국 사회의 경우 공무원, 정규직, 여자 등으로 선발된다. 어느 정치인이 말해 대박을 친 표현을 빌자면 정상화해야할 비정상적인 특혜와 부패를 누려온, 세상의 좀 벌레, 기생충, 마피아들이다.
이런 발상에 따를 때 우리는 희한한 논리에 도달한다.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규칙에 불과한 자본주의 경제는 자연적 사실로 둔갑하고 남녀 구분 같은 현상은 얼마든지 손을 써서 바로 잡을 수 있는 문화적인 사태로 전환한다. 계급 간의 불평등은 이제 그와 전연 상관없는 자들끼리의 문화 전쟁으로 둔갑한다. 철밥통 정규직의 이기주의에 대한 혐오감, 상전처럼 군림하며 해먹을 것은 다 해먹고 자기네들 연금이 조금이라도 축날라치면 발악을 해댄다고 보는 공무원에 대한 적개심, 예전 같았으면 남자 잘 만나 팔자 고치는 게 인생의 가장 큰 대박이라고 알고 살았을 텐데 이제는 오만방자하게 권리 운운을 떠드는 여자에 대한 증오. 그것은 가짜인 적을 겨눈다. 그렇지만 그 적에 대한 비난과 공격은 엄청난 심리적 쾌감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 쾌감은 진짜 적을 어찌 할 수 없다는 데 대한 무력한 좌절과 비례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런 현상의 한 변종인 군부심에서 제일 가소로운 점은 갑자기 남자가 남자인 척 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시쳇말로 ‘자뻑’이다. 남자는 한번도 남자인 척 겸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가부”를 성토하는 이들은 그 부처를 빼곤 모든 부처가 남성부라는 것을 모른다. 남자는 한번도 자신을 남성이라는 성으로 이해한 적이 없다. 남자란 자들은 자기는 그냥 인간 자체, 존재 그 자체인 것으로 자처하면 살아왔다. 남자는 인간이라면 여자는 특별히 성이라는 것이다. 즉 남성은 성의 한 종류로 겸손히 여성을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인 척 건방을 떨어왔다. 그렇다면 지금 남자로서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그 겸손한 남자란 자들은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인간=남자에서 남자=남자인 것으로 자신을 커밍아웃하는 남자들. 그것은 너무나 측은한 윤리적 코미디이다. 그들은 평등을 원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체념한다. 그리고 그 체념에 대한 원망을 동일한 피해자인 곁의 사람들에게 겨눈다. 그것은 진짜 우습다.
_중대신문에 기고한 글

<마주침의 정치>를 위한 해제


Jim O’Rourke – Friends With Benefits

정치를 에워싼 상상력은 언제나 장소의 주변을 배회한다. 이곳이 아닌 그곳, 그리고 그곳의 발견, 그곳으로의 떠남, 그곳으로의 도착, 그곳에서의 머묾 등은 언제나 장소에서 흘러나오는 개념 혹은 상상들과 짝을 이룬다. 그런 점에서 장소의 상상은 정치적 상상과 교차하고 해후한다. 도시, 특히 보들레르, 짐멜이나 벤야민 같은 20세기 초반의 유럽 지식인들이 마주했던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는, 자본주의적 근대성의 알레고리에 다름 아니었다. 훗날 하이데거가 숲길Holzwege이란 이름으로 근대성의 원리에 반하는 삶의 조건과 사유를 상상했을 때, 그 역시 장소를 참조한다. 그러나 장소를 경유하는 정치적 상상은 언제나 분기하기 마련이다. 나는 먼저 유토피아의 노선이라는 것을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먼저 유토피아의 노선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내전과 봉기가 발발하고 그것이 어떤 장소를 새로운 정치적 공동체로 전환할 때, 우리는 그곳에서 무언가 나타났음을 감지한다. 영원히 유토피아의 별로 남아있을 파리 코뮌이 그런 것이다. 거기에서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미래의 정치적 공동체의 전조를 보았다. 나는 이를 유토피아의 노선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것은 더 이상 어제와 같지 않은 세계를 현시한다. 그것은 단절과 변혁의 현실을 장소의 모든 모습과 운동 속에 기입한다. 그렇지만 거대서사, 근본적 단절, 총체적인 변혁이라는 꿈이 조롱거리가 된 연후, 우리는 목적론, 종말론, 보편주의, 초월적 토대의 형이상학이라는 구구한 죄목을 뒤집어 쓴 유토피아라는 불길한 꿈에서 벗어나도록 종용 받아 왔다.
한편 다음의 노선을 찾아볼 수 있다. 나는 이것을 헤테로토피아의 노선이라고 부른다. 이 개념을 널리 알린 글에서 푸코는 “자기 이외의 모든 장소들에 맞서서, 어떤 의미로는 그것들을 지우고 중화시키고 혹은 정화시키기 위해 마련된 장소들”, “일종의 반反공간contre-espaces”을 헤테로토피아라고 부른다. 그는 유토피아가 완벽한 사회이거나 사회에 반하는 것으로 근본적으로 비현실적인 공간인 반면 “사회제도 그 자체 안에 디자인되어 있는, 현실적인 장소, 실질적인 장소이면서 일종의 반反배치이자 실제로 현실화된 유토피아인 장소들”로 헤테로토피아를 발견한다. 초월적인 대의(이를테면 공산주의)란 것은 파산하였다는 선고를 접하고 끝없는 우울한 슬픔에 빠진 자들에게 그런 발언은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지금 여기에서의 내재적인 흐름으로서의 저항, 그리고 이를 물질화하는 장소. 헤테로토피아는 유토피아를 대신할 장소가 우리에게 있음을 증언하며 우리에게 결코 실망할 일은 아니라고 위안한다. 아니 유토피아를 버렸다는 것은 아주 기쁜 소식이며,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그 대항 공간을 기꺼이 발견하고 그에 깃든 잠재성을 실현하도록 촉구한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메리필드는 헤테로토피아의 노선에 참여한다.
이를테면 저자는 곧 간략히 살펴볼 르페브르의 추상 공간에 대한 개념을 부정하는 공간을 규정하기 위해 차이 공간differential space이란 개념을 다듬어낸다.(260)[ 그 공간은 “살아진 차이를 우선시하는 공간, 신체적인 차이와 이종성을 강조하며, 사유하고 인지하는 만큼 느끼고 감지하는 공간”, “상호 연관된 영역 사이의 절대적인 데카르트적 격리를 만들기 원하지 않는 공간”, “정동적이고 정동을 느끼게 하는 공간, 느껴지고 들려지며 보여지고 감각을 통해 직접 체험된 공간, 자신의 신체와 친밀한 관계를 함축하는 공간” 등으로 서술된다. 한편 이 차이 공간은 또한 마이너 공간이란 이름으로 변신한다. 쉬이 짐작하겠지만, 이 개념은 들뢰즈와 가타리의 『카프카: 소수적인 문학을 위하여』에서 차용한 개념이다. 이 공간은 어떤 별개의 공간을 가리키는 술어가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것이면서 뭔가 규범적이기도 한 어떤 것, 여기 있어야 하고 곧 여기 있게 될 어떤 것”으로서 “전복적이고 틈입적이고 개입주의적이고 말썽 많은 공간이며 지배적 질서에 주류적인 추상적 공간에 말썽을 초래하는” 공간이며, 앞서 보았던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라는 공간에 상응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마이너 공간의 면모를 ‘점령하라 운동’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일갈한다.
헤테로토피아의 노선이 푸코가 제안한 헤테로토폴로지hétérotopologies라는 과학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르페브르와 카스텔을 참조하고 또 중재하며, 나아가 이를 대체할 상상적 화용론imaginary pragmatics이란 나름의 과학을 제안한다. 이는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이 접근이 적극적 긍정과 능동적 실험의 에토스를 살리기 위한 것으로 “유토피아적이지도 실용주의적이지도 않은 어떤 것을 개발할 필요”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272) 그러나 언제나 유토피아적 노선에 가까운 이러한 이론적, 정치적 흐름을 헤테로토피아의 노선으로 개조하는 일이 쉬운 일일 리 만무하다. 그러나 메리필드는 자신의 박식함과 유려한 수사로 그러한 전환이 가능함을 설득하려 애쓴다. 그는 이 책에서 크게 두 가지의 과제를 스스로에게 던지고 해결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행성 도시화라는 개념을 통해 새로운 도시적 삶과 그를 에워싼 사회관계의 윤곽을 그려내고 이를 통해 르페브르와 카스텔로 대표되는 급진적 도시 이론의 역사적 제약을 돌파하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더욱 야심적인 것은 “도시의(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유명한 도시적 삶의 정치적 전략의 한계를 돌파하고(전략이 이제 한계에 직면했을 간파하고 이를 만회하기위해) 권리와 중심성 등의 개념을 혁신하는 것이다. 그 귀결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마주침의 정치”이다.
누군가 글을 쓰기로 결심할 때, 그것은 어떤 불만이나 이의에서 비롯되고는 한다. 메리필드 역시 그렇다. 그는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한 연유를 “도시에 대한 권리”란 전망이 오늘날 더 이상 시원찮은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말인즉슨, “도시에 대한 권리는 일상생활에서 실존적으로 의미 있는 어떤 것이 되기에는 너무 고차원적으로 추상적”이고 또 “너무 광범위하면서도 동시에 너무 협소한 어떤 것, 너무 제한적이고 불만족스러우며, 집합적인 분노를 촉발하기에는 너무 공허한 기표記標인 어떤 것을 정치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자신의 “작업 가설”이며 책에서 탐구하게 될 “테제”라고 말한다.”(18) 그러니까 그는 두 개의 기표 모두를 맘에 들어 하지 않는다. 하나는 도시라는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권리이다. 우리는 이 두 개의 기표를 각각 도시적 삶에 대한 표상, 새로운 도시적 삶을 조직하고 창조할 주체라고 새겨볼 수 있다. (그런 것이라면) 저자는 도시에 대한 권리라는 전망에 담긴 두 가지의 사고, 즉 도시에서의 삶을 어떻게 표상할 것인가, 그리고 그 도시에서의 빈곤하고 불행한 삶을 변형시키기 위해 우리는 어떤 주체를 상상하여야 할 것인가를 묻는 셈이다.
먼저 첫 번째의 과제. 메리필드는 “르페브르의 『도시적 혁명』이 출간된 이후의, 지구라는 행성에서 일어난 일들에 비추어 도시 이론을 재고하고, 특히 도시에 대한 권리와 관련하여 도시 정치를 재구성하고”(21) 싶다고 단언한다. 이때 그는 르페브르가 염두에 두었던 도시city란 것에서 벗어나 숫제 ‘도시’라는 용어 자체를 포기하면서 “뭔가 새로운 것, 뭔가 미래적이고, 생성 과정 중에 있는 도시를 포용하는 어떤 것”을 찾아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도시라는 것을 새로운 정치적 상상과 비평의 대상으로 구성하기 위해, 즉 도시를 이론적 대상으로 마름질하고, 그 비대상nonobject을 정치적 대상으로 되찾아오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그럼 이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메리필드는 “도시city의 인식론을 떠나 도시적인 것the urban의 존재론으로 이동하는 움직임으로 설명하는 것”에서 출발하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도시에 대한 새로운 이론적 이해를 개발하려는 문제가 아니라 갈수록 도시화되어가는 세계에서 정동적인 존재와 씨름하는 문제”라고 부른다.(48) 더불어 르페브르라는 걸출한 도시 이론가가 내심 마음속에 품었던 요구가 “표준적인 사고틀을 포기하고, 시야를 재설정하고, 입체파 화가가 보았을 법한 것으로 도시를 재서술해 보라는” 것이었을 것이라고 눙치며 암시하기도 한다. 그는 “공간과 시간 자체가 자본주의의 구성물이며 시장이라는 우주를 옮겨 다니는 상품과 자본과 돈의 수량과 속도는 그 자체가 시간과 공간을 구부러트리거나 휘게 만들고 그 자체의 시공간적 차원을 창출한다”는 르페브르의 가르침을 새기며 행성 도시화라는 그의 독특한 개념을 내놓는다.(50)
그러나 행성 도시화는 장소와 도시에 관한 표상으로 흔히 간주되는 그런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몇 에이커, 몇 평방미터라는 지리적인 물리적 실재도 아니고 건물, 구역, 거리, 행정적 구획처럼 정치적으로 관리하고 사회적으로 규율하기 위해 고안된 장소도 아니다. 물론 지대를 징수하고 입지에 따른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경제적인 가치로서의 장소도 아니다. 물론 그런 것들이 공간적인 시대가 아니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이해하고자 한다면 저자의 말을 직접 인용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도시적인 것이란 그곳에 있지만 더 이상 그 자체의 이름으로 현전하지 않는, 그 자신의 실재로는 더 이상 가시화되지 않는 실재이자 개념”으로, 그것은 “내용이나 형태도 없이 점령 그 자체에 내재하는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해 점령은 도시적 내재성의 실천the practice of urban immanence”을 표현한다는 것이다.(173)
이는 그가 각기 “공간의 초끈 이론”을 세웠던 두 인물이라고 추어올리는 르페브르와 카스텔의 도시 이론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얻어낸 통찰이다. 르페브르가 공간이라는 독립변수를, 카스텔이 테크놀로지라는 독립변수를 일면적으로 강조했다면, 메리필드는 이 둘의 규정을 모두 수용하면서 “도시 공간의 역동성에 관한 전체론적 이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116) 그리하여 행성 도시화를 ‘네트워크 사회로, 추상-표현주의적 흐름의 공간’으로 규정한다. 그렇지만 행성 도시라는 새로운 도시 공간에서의 삶을 표상함에 있어 관건은 중심을 어떻게 표상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적어도 저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중심성이란 개념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중심성에 관한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절대적 중심이 없는 곳, 유한한 공간에 지리적으로 위치하지 않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논변을 좇자면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사회적 공간을 구축하고 조직하는 도시적인 것을 규정하는 행동의 장소”가 바로 새로운 중심성인 셈이다.(123) 그는 이러한 규범적인(뭉툭한) 서술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시적인 비유를 동원하여 이를 보다 뚜렷이 마음속에 그려보도록 주문한다. 그는 “거미가 자기 신체의 연장으로 그물의 실, 즉 대칭적이거나 비대칭적인 구조로 분비되고 직조되는 비단결 같은 실을 자아내는 방식과 유사”한 것으로 이때의 그물은 “거미의 영토인 동시에 그들의 행동의 도구이며, 그 자체의 사회적 네트워크”이다.(124) (그럼으로써 그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고 싶어한다. 중심성이라는 많이들 거북해 하는 그 개념을 버리지도 않고, 그 개념에 따라 다니는 혐의도 털어내면서, 운동 속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중심을 이론화하는 것이다.=>좀 더 논지를 잘 나타내기 위해 추가하겠습니다.) 그러나 중심성에 대한 그의 사유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대목은)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이나 맨해튼의 주코티 공원이 창조하는 중심성에 대한 서술일 것이다.(중심성을 서술할 때이다.) 그는 점령하기 운동이 새로운 중심성을 창조한다고 단언하면서 그때의 중심성이란 “중심에 위치해 있다는 비활성적인 물리적 현전”(175)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운동들이 그 중심적 위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부연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식으로 도시 공간을 표상한다면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그 공간에서 어떻게 자신의 권리를 제기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행성 도시화라는 도시에 대한 표상의 전략은 그와 짝을 이루는 정치적 주체화의 전략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그는 중심성 개념을 재정의한 것처럼 시민권 개념 역시 새롭게 조작적으로 정의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때 그가 상상하는 시민권은 “거리의 부정 및 먼 곳으로 손을 내미는 행동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지각과 지평이 융합하는 지점, 양자의 변증법적 지점이며, 보기의 방식일 뿐 아니라 감정을 구조화하는 지점”이다.(125) 그리고 좌파나 우파나(좌파, 우파 할 것 없이) 편의적으로 가져다 쓰는 무력하고 희멀건 개념으로 전락한 시민권 개념을 대신하는 것으로 “우주의 정신적 시민권”을 내놓는다. 이는 어쩐지 허풍스럽고 사변적인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다. 그렇지만 행성 도시화란 개념을 통해 말한 도시화의 차원의 변화를 가리킨 만큼, 그가 그런 개념을 찾아내는 것은 나름 일관된 논리적 결론일 수밖에 없다.(우주의 정신적 시민권이란 개념을 통해 시민권을 둘러싼 사유를 재구성하려는 의지 또한, 저자에게는 매우 일관된 몸짓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 이렇게 바꾸도록 하겠습니다.)(그렇지만 행성 도시화라는 개념이 도시화의 차원이 변했다는 뜻을 함축한다면, 나름 일관된 논리로 시민권 개념에서도 그와 같은 변화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 영토, 장소란 것이 변화무쌍하게 신축하는, 즉 ‘지각이 여권을 대신하며, 지평선이 주거만큼이나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늘날이라면 그의 말마따나 시민권은 결국 행성적인 차원에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틀린 일은(말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이것이 칸트적인 세계시민의 권리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는 이로부터 어렵지 않게 칸트적인 세계 시민의 권리라는 개념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저자는 그런 추상적인 규범으로서의 시민권 개념으로부터 빠져나간다.
그가 말하는 시민권은 지위나 객관적 현실의 공통성으로부터 추상되는 사회학적인 시민권도 아니고 정치철학에서 상상하는 것처럼 객관적인 현실적 상태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무조건적으로 분배되고 보장되어야 할 그런 시민권도 아니다. 그는 권리를 담지하거나 제기하게 될 주체는 ‘계급 개념보다는 친화성affinity’을 토대로 할 가능성이 많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우주의 정신적 시민권은 친화성의 시민권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자본주의적 근대성을 내부로부터 붕괴시키는 위대한 주체, 신화적인 역사의 주체인 노동계급이란 주체를 기각한다. 그리고 그를 대신할 주체를 작업장은 물론 주거공간을 비롯한 “우리가 지금 속해있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공간 전체”에서 거주함, 그로부터 빚어지는 주체성 자체에서 찾는다. 그때의 주체란 노동이라는 공통의 행위, 작업장이라는 공통의 소속의 장소, 계급의식이라는 공통의 의식성을 전제할 필요 없이(그리고 그런 것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고 그는 믿는다), 우리를 묶어 주는 무한히 다양한 ‘친화성’에 의해 만들어지는 정체성, 아니 더 과감하게 말하자면 어떤 일관된 동일성으로부터 해방된 정체성, “일상생활에 잠복한 연합적 연대의 표현, 유연 정치affinity politics의 표현”으로서의, 정체성 없는 정체성이다.(135) 그리고 이는 생활의 통제력을 되찾고 참여 민주주의 형태로 이를 회복하며 자신을 표현할 수 있기를 바라는 욕망이다. 메리필드가 자신의 생각을 스피노자 식의 “공통 통념”과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행성도시화라는 개념을 통해 도시에서의 삶에 대한 새로운 표상을 얻고 중심성과 시민권을 재고하면서 새로운 주체성의 모델을 손에 넣었다면, 이는 대관절 어떤 정치적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일까.
‘마주침의 정치’는 메리필드 버전의 헤테로토피아 노선이, 자신의 정치를 가리킬 때 선택하는 이름이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정치가 포함하는 에토스를 강조하기 위해 눈치 밝은 철학적 교양의 독자라면 익숙할 주장을 들려준다. 그에게 마주침의 정치란 “종착점을 상정하는 모든 목적론을 부정하는 테제”이며 “마주침은 어떤 신성한 마스터플랜도, 그 어떤 신성한 주체도 없는 과정”이다. “오직 한데 모이는 집단성, 그들 자체의 단일한 목표와 이 세계에 적절한 목표, 그리고 객관성 그 자체의 창출을 규정해 주는 순전한 공현존co-presences의 집단성만 있을 뿐”이다.(153)따라서 마주침의 정치는 그가 도시에서의 삶에 관한 새로운 표상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도시적인 것은 마주침의 결과로 생긴 드라마의 장소이자 마주침의 드라마 그 자체를 마주치는 장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때, 이는 역력히 드러난다.(157) 그렇다면 이런 방향은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마주침의 정치로 옮겨가는 정치적 이동을 효과적으로 촉진하고 또 실현할 수 있을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마주침이란 개념은 사람들이 인간 존재로 어떻게 한데 어울리느냐 하는 이야기, 집단이 왜 형성되고, 연대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유지되며, 여러 영역을 교차하는 정치가 도시적으로 어떻게 형성되는가 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주침은 눈을 깜빡거리는 것과 같고, 빛나는 우주적 성좌와도 같다. 마주침은 개방적인 형태(와 포럼)에, 역동적으로 구조화된 일관성에, 수동적인 상태로 미리 존재해 그냥 거기 놓여 있다기보다는 스스로를 만들어내는 배열에 결합하는, 다수성을 띤 참여자들의 표현과도 같다.”(105) 이는 아름답고 우아하다. 그렇지만 이처럼 친화성에서 비롯된 공통 통념이, 그가 제임스 조이스의 『피네간의 경야』에서 따온 “매인이 온다”는 구절을 거듭 인용하며 설득하고자 했던 것처럼, 과연 “마르크스주의적 계급의식 이상의 것, 그보다 더 깊은 어떤 것”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177) 그가 지하 경제의 주체들, 흔히 ‘시스템 D’이라(라) 부르는 경제 영역에서 생존하는 주체들(마약 판매상, 사기꾼, 행상인과 노점상들 같은 이들)의 재능과 의지력에 주목하자고 말할 때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친화성을 드러내는 애정에, 절묘한 순간에 응고되어 엉기는 매인에, 저기뿐 아니라 여기에 동시적으로, 혹은 거의 동시적으로 한데 모이는 신체들에 의존”할 때, “상상 속에서 경제적인 자기 역량 강화는 정치적인 집단 역량 강화와 마주칠 것”이라고 예언할 때,(예언하는 대목에서는) 아마 많은 이들은 숨을 고를 것이다. 그리고 “소통과 적기의 자기 조직화라는 거대한 행성적 그물망을 구성할 것”이라는 그의 어떤(일종의) 긍정적인 메시아주의를 설파할 때, 아연실색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212~213)
그토록 손쉽게 노동 해방이라는 급진 정치를 저버릴 수 있냐고, 그것이 창업과 자기 역량 강화를 통해 빈곤을 이겨내자는 신자유주의의 상투어로 채색된 프로그램과 다를 게 무어냐고 비난하는 건 물론 쉬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저자를 향한 비판이 될 수 없다. 저자는 카프카의 우의寓意적인 소설 『성城』을 참조하며 스스로 “반란의 수수께끼”라고 부른 곤란을 돌파하자고 한다. 알다시피 소설의 주인공 K는 성으로 들어가려하지만 그의 입장은 끝없이 유예된다. 저메리필드는 K가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세계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보지 않고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들려 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오로지 성城의 기준에서만 바라볼 뿐 자신의 의지와 욕망의 편에서 보지 못했던 것이다. 메리필드가 말하는 반란의 수수께끼도 그런 것이다. 반란은 언제나 가능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반란을 인정의 논리를 통해 조망한다. 그러나 반란은 “그들의 기준”, “성城의 기준”, “‘자본의 논리’에 따르는 기준”이 아닌 “우리의 기준”에서 바라보는 것이다.(301) 따라서 그는 도저한 낙관주의를 과시하며 헤테로토피아의 정치, 도시의 혁명을 조직하자고 촉구한다. 그가 말하는 도시 혁명은 “일종의 힉스 입자”로서 “지금껏 흩어져 있던 투쟁들과 알려지지 않은 시공간의 차원,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마이너스 공간의 양상들을 모두 통합”하는 것이다. 혁명은 대안적 정치 현실이나 자본을 분석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반란의 수수께끼에 스스로 휘말린 채 혁명이 왜 지연되고 무엇에 의해 가로막혀 있는지 번민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저자는 상상적 화용론을 활용하여 지금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 자신의 욕망, 자신의 살아가려는 의지를 발휘하여 행성 도시에서의 반란을 꿈꾸자고 말한다.
지난 해였던가, 어떤 글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글쓴이가(저자가) 이런 말을 했던 게 기억난다. “오늘날 가장 왕성하게 또 주목할 만한 자본주의 역사적 분석을 생산하는 좌파 이론가들은 모두 지리학 출신이다.” 아마 그가 염두에 두었던 이들은 마이크 데이비스이거나 데이비드 하비 같은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앤디 메리필드 역시 그중의 한 명으로 끼워 넣는다 해서 그다지 억지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도 다른 이들 못지않게 도시와 장소, 공간이 처한 새로운 조건을 탐색하고 그것의 윤곽을 그려내며 이를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정치의 가능성과 연결하려 진력한다. 그는 정치적인 것과 도시적인 것은 분리할 수 없다는 서구 철학적 사유의 은밀한 흐름을 오늘의 시점에서 되살려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본성은 정치적 동물politikon zoon이란 점에 있으며 그 본성은 폴리스polis, 바로 도시에서 산다는 점에서 비롯된다는 말한 바 있다. 즉 도시는 언제나 정치의 문제였고 또 그 역도 참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것을 곤구할 때 도시적인 것을 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저자 역시 도시 공간에서의 삶을 어떻게 표상할 것인가를 집요하게 추궁하며 더불어 거의 막다른 궁지에 몰린 것처럼 보이는 정치적 주체화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도시 공간이며, 도시라는 장소가 우리의 정치적 사유의 주제가 되어야 하는가? 최근 발표한 어느 글에서 프레더릭 제임슨(지나가면서 말하자면 그는 우리 시대의 가장 완고한 유토피아의 옹호자일 것이다)은, 오늘날 모든 것이 공간의 문제로 통하게 되었다고 환기한다. “우리 시대에 모든 정치는 땅덩어리real estate에 관한 것이다. (…) 포스트모던 정치는 본질적으로 지역적인 차원에서나 세계적 차원에서나 본질적으로 토지수탈에 관한 문제이다.”[F. Jameson, “The aesthetics of singularity”, New left review 92, 2015, p. 130.]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우리는 의아한 기분이 든다. 근대의 급진적인 정치적 상상을 이끌었던 시간이라는 차원을 대신해 모든 것이 공간(화)되었다는 그의 분석은, 적어도 예술과 문화의 영역에 관한 것일 때 매우 놀라운 혜안을 보여준다.(그것이 예술과 문화의 영역에 관한 것이라면 놀라운 혜안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사유를 정치적 차원으로 연장해, 이제 정치의 문제가 숫제 공간의 문제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억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지나친 과장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그의 생각을 좇자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 악명 높은 인클로저enclosure와 식민지 약탈에서부터 오늘날의 버려진 공장 지대, 정착촌과 난민 수용소, 거대한 규모의 슬럼에 이르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경관을 한숨에 주파할 때, 무엇보다 무토지 농민의 투쟁에서부터 ‘점령하라’ 운동에 이르는 저항을 생각할 때, “오늘날 모든 것이 토지에 관한 것”이라는 제임슨의 발언은 더 이상 억지스럽지 않게 들린다.[같은 책, p. 131.] 그렇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오늘날 변화된 자본주의가 초래한 경제적, 정치적, 지각과 체험을 망라하는 미학적 지배가 공간을 통한(둘러싼) 갈등과 투쟁을 통해 나타난다면, 이러한 반역하는 공간은 어떤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낼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초라하고 혼란스럽다. 대표의 정치와 계급 주체를 격렬하게 비난하며 등장하는 광장의 정치와 다중 주체란 이상은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뒷문으로 빠져나갔던 시간이 다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모습을 보게 된다. 메리필드의 글 전체에, 다급한 어쩌면 초조한 어조로, 전류처럼 모든 페이지마다 흘러 다니는 사유의 전하電荷가 있다면, 그것은 현재라는 시간의 개념, 긍정과 능동성을 비롯한 다양한 개념들의 도움을 빌며 자신의 모습을 들이미는 실천이라는 개념일 것이다. 어쩌면 ‘상상적 화용론’이라는, 언어철학적인 모델을 전용한 그의 정치적, 인식론적 모델 역시, 이런 실천의 긴급성을 전하려는 저자의 강한 의지가 투영된 어떤 윤리적인 수사들이 아닐까? 우리는 그러한 무례한 의구까지 품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식의 태도를 가짜-능동성pseudo-activity이라고 지칭하며 그것의 잘못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경고했던 아도르노의 발언을 떠올리게 된다. 아도르노는 『부정 변증법 강의』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행위 속에는 그것이 포함하는 적합성, 잠재성에 대한 관계가 존재하여야만 합니다. 특히 오늘날 결정적인 행위가 봉쇄당해 있고 이미 자주 충분히 설명했듯이 사유 자체가 마비되고 무력해졌기 때문에, 요행적인 실천chance practice이 일어나지 않는 사태들을 위한 대체물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사람은 이것이 실은 진정한 실천이 아니라는 점을 감지하면 할수록, 그들의 정신은 더욱 그것에 집요하고도 열정적으로 고착되어 버립니다. (…) 제 견해는 그런 행동은 행위를 촉발하기는커녕 가로막아 버리기만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당한 실천의 가능성은 실천의 봉쇄에 대한 충실한 인식을 전제한다는 점을 덧붙이겠습니다. 우리가 그것의 가능한 실현을 통해 직접적으로 사유를 측량한다면, 결과적으로 사유의 생산적 힘은 족쇄에 결박당하고 말 것입니다. 실천적으로 될 수 있는 유일한 사유는 그를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실천을 통해 미리 제한받지 않는 사유입니다.[Th. W. Adorno, Lectures on negative dialectics: fragments of a lecture course 1965/1966, edited by Rolf Tiedemann, translated by Rodney Livingstone, Cambridge: Polity, 2008, pp. 53~54.>
그렇다면 우리는 아도르노의 충고를 이어받아 저자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절대적으로 새로운 시작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세계, 아도르노의 말을 빌자면 진정한 행위가 꽉 막혀 버린 것처럼 보이는 세계, 그런 세계를 바라보는 침울한 시선은 적극적 긍정과 능동적 실험의 에토스를 발휘하자는 다급한 열띤 목소리로 소란을 떨면서, 자신을 질식시키는 우울함으로부터 달아나고 스스로의 무력함을 애써 부인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것은 기우일 수도 있다. 아도르노 역시 잊지 않고 말하듯이 무의미한 불행을 종결시켜야 한다는 욕망은 진정 사유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메리필드 역시 그런 욕망으로 깊이 충전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잠재성, 현재라는 순간에 이미 존재하고 있기에 덧붙일 것이라고는 당장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결단, 다시 매리필드 식으로 말하자면 능동적인 참여와 적극성일 뿐이라는 사유의 흐름에 대해, 의심을 떨칠 수 없다.
그리고 이는 방금 언급했던 아도르노의 사유처럼 우리가 기꺼이 본받고 지지하여 왔던 사유의 흐름, 즉 현재라는 시간 안에 존재하는 비동시성을 사유하고 이를 통해 변혁을 모색하던 ‘변증법적’ 사유의 흐름과는 너무나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잠재성과 현실성의 변증법이라는 노선, 헤테로포티아의 노선이 알고 있는 현재라는 시간은, 동시성과 비동시성, 존재와 그것의 부정성이 항상 상기하는 새로운 시간을 상기하는 유토피아의 노선이 상상했던 시간성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두 개의 사유의 노선의 갈등은 비단 공간에 국한될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저자 역시 도시라는 공간적 사회관계로부터 출발해 우리 시대의 정치적 주체성에 이르는 사유를 경유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재미나게 읽는 비결은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우리 시대의 가장 첨예한 논쟁의 무대에 입회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문장과 행간 사이에 비판적인 대화를 끼워 넣을 때, 우리는 이 책에서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유토피아의 노선과 헤테로토피아의 노선이라고 우리가 부른 두 가지 사유의 노선이, 물론 우리가 공간, 장소, 도시에서의 삶을 상상하고 변형하는데 투여될 수 있는 모든 사유를 망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두 개의 사유의 갈래로 나누어 볼 때, 급진적인 공간 이론이 우리 시대의 정치적 상상력과 만날 때 부딪치게 되는 쟁점들은 무엇인가를 짚어보는 이점이 있을 것이다. 어떤 초월성도 없는 현재라는 내재적 시간을 애호하는 이들과 동시성 속의 비동시성에 유의하며 변증법적인 시간을 지지하는 이들, 우연적인 힘의 길항 속에서 독특한 것으로 출현하는 주체를 예찬하는 이들과 총체적인 규정의 효과로서 역사적 국면 속에 출현하는 주체에게 내기를 걸고 싶어 하는 이들. 중심과 주변의 위계를 거부하고 모든 공간 속에 권력과 대항권력이 공존한다고 보는 이들과 해방적인 주체들이 자신의 권력을 그러모으고 또 그것을 행사할 중심을 창안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들. 그리고 또 무엇이 있을까. 우리는 아마 이러한 사유의 대차대조표를 계속해서 써내려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문제는 도시이다. 세계화된 이후의 세계에서의 도시이며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는 메갈로폴리스와 슬럼으로 위협받는 도시이며 자신이 포섭할 외부를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될 도시 등등이다. 이러한 도시가 정치적 사유와 미학적 사유가 대면하여야 할 중요한 대상이란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도시는 오늘날 정치에 관한 비판적 사유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도시에 관해 사유할 때 우리는 그것이 어떤 특수한 사유의 대상에 관한 사유가 아니라 실은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사유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문인과 예술가, 급진적 정치가들은 모두 시간에 대해 곤구했다. 전위라는 이름, 이미 미래를 선취하고 다음의 시간을 앞당겨 살아가는 이들을 가리키는 그 이름이 알려주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연옥과도 같은 21세기의 초엽, 우리는 이제 장소와 공간을 마주하고 있다. 시간에서 세계를 인식하는 알레고리를 찾아낸 이들처럼 우리에게 장소는 거의 모든 것의 알레고리일지도 모른다. 매리필드는 그렇게 우리가 착수하여 할 사유의 노고 그리고 그 면모를 소개한다. 그를 편들든 편들지 않든 그것은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다. 반대할 대상으로서의 사유를 갖는 것조차 우리에겐 행운일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도시에 관해 사유하고자 한다면 그와 함께 사유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함께 한다는 것은 참으로 큰 즐거움이다. 더욱 좋은 일은 우리가 함께 할 이가 아주 솜씨 좋은 입담과 능청맞은 유머, 놀라운 상상력을 가진 이라는 것이다.

다중, 대중, 군중 – 관객성의 분석을 위한 몇 가지 주장


Lower Dens – To Die In L.A.

“실제로 각자는, 타자가 자기처럼 버스를 기다린다는 점에서, 이 타자와 동일하다.
그렇지만 이들의 기다림은 동일한 기다림의 동일한 예들로서
별개로 체험된다는 점에서 공동의 사실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집단은 구조화된 것이 아니라 군집이며,
이 군집에 속한 개인들의 수효는 우연적인 것이다.”
J. P. 사르트르,변증법적 이성비판 2, 박정자 외 옮김, 나남, 2009, 549쪽.

‘영화-이후적 관람양식’의 관객

지난 몇 년간 천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 영화들이 잇달아 등장하여 기록을 갱신하였다.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천만 관객 돌파의 기록. 그러나 그것은 흥행의 기록이지 영화가 초래한 감각적 사태로서의 기록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지나치다 싶으리만치 영화에 관객이 몰렸을 때,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그것이 미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뭔가 의미심장한 일이 벌어졌음을 알리는 징후일 것이라고 짐작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천만 관객 돌파의 성적표는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범박하게 말해 그 숫자는 많은 관객을 동원하여 많은 객석을 채웠고 제작사와 감독, 배우들이 많은 돈을 받았다는 것을 가리키는 일에 불과할 뿐이다. 아마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눈을 끔벅이며 “그래서 뭐”라고 심드렁하게 대꾸할지 모를 일이다. 그런 반응은 천만 관객 돌파는 그저 그런 무의미한 소식, 천만 명 이상의 관객이 영화를 보았다는 사실 그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시사할 것이다. 천만이라는, 어쩌면 가공할 숫자, 기록은 그러므로 아무런 충격을 자아내지 않는다. 천만이나 되는 관객이 어떤 영화를 보았다는 것은 어떤 징후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짐작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훨씬 그럴 듯한 가설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 영화의 생산과 수용을 둘러싼 형세에 아무런 효과도 발휘한 게 없을 것이라 짐작하는 것이야 말로 놀라운 일이다.

다중, 대중, 군중 – 관객성의 분석을 위한 몇 가지 주장 더보기

착취의 회계학: 금융화와 일상생활 속의 신용물신주의 2


Alice Cooper – You and Me

자본물신주의 변종, 신용물신주의
마르크스의 ‘자본’을 헤겔의 정신의 현상학과 대조하면서 부의 현상학이라고 읽는 것이 크게 억지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부의 현상학이란 관점에서 자본을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은 마르크스의 ‘자본’에서의 분석이 완결되는 ‘자본’ 3권에서 분명하게 제시된다. 알다시피 마르크스는 ‘자본’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어떤 제시(exposion), 표상(representation), 현상(appearance)의 형태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지 매우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그의 사고 방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가치 형태’ 및 ‘물신주의’에 관한 서술일 것이다. 특히 그는 ‘자본’ 3권의 마지막 부분이라 할 수 있는 48장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수입 혹은 부가 ‘현상하는’ 세 가지 형태를 자본의 “삼위일체 정식”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분석한다. K. 마르크스, 삼위일체 정식, ‘자본 III-2’, 강신준 옮김, 길, 2008, pp. 1087-1109.
이 때 마르크스는 부의 현상학이라고 부를 만한 관점에서 수입, 소득, 부 그리고 그것이 물질화된 물적 존재의 형태(이자, 지대, 임금 등)가 어떻게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착취적 사회관계를 은폐하는지 분석한다. 물신주의란 낯선 개념을 그가 굳이 채택해야 했던 이유를 밝혀주는 많은 서술이 말해주듯 물신주의는 착각이나 미망(迷妄)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경제적 삶을 생산하는 과정이 취하게 되는 필연적인 가상(Schein)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주관적인 ‘착각’이나 ‘오류’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타당한 객관적 사유형태라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이미 ‘자본’ 1권에서 상품(화폐) 물신주의를 분석한 바 있었다. K. 마르크스,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 ‘자본 I-1’, 강신준 옮김, 길, 2008, pp. 133-148.
이때 마르크스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적 형태’인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인간의 노동생산물이 하필이면 왜 상품이라는 형태를 취하게 되는지, 나아가 구체적으로 유용한 대상인 상품(사용가치)이 동시에 형이상학적이고 신학적인 대상으로서 가치라는 대립적 ‘형태’를 띠게 되는지(가치-대상성), 나아가 그 결과 자본주의적 사회관계가 왜 상품들 사이의 물신적 연관을 통해 ‘나타나게’ 되는지 폭로한다. 그리고 나아가 그는 가치형태의 완성되고 보편적인 형태로서 화폐라는 보편적 등가 형태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결국 화폐가 더 많은 화폐가치를 낳는 것으로서 자본에 관한 최초의 단순한 규정(M-M’)을 낳게 되는지를 제시한다. 그러나 상품, 화폐라는 추상적인 규정 속에 스며있는 물신주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다양한 사회적 실천과 매개된 연후 나타나는 자본물신주의를 통해 더욱 구체화된다. 그리고 일상적 의식 속에서 상품, 화폐 물신주의는 자본물신주의라는 형태를 통해 지각되고 체험된다. 그런 점에서 상품(화폐)물신주의에 대한 이해는 자본물신주의에 대한 이해를 통해 보완되고 또 재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물신주의의 비밀에 대한 이해를 위해 자본물신주의에 대한 이해가 관건적이며 그것이 ‘자본’ 전체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것이란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M. Heinrich, An introduction to the three volumes of Karl Marx’s Capital, Alexander Locascio trans.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12. H-G. Backhaus, On the Dialectics of the Value-Form, Thesis Eleven 1 (1), 1980. H. ReicheltMarx’s Critique of Economic Categories: Reflections on the Problem of Validity in the Dialectical Method of Presentation in Capital, Historical Materialism, 15 (4), 2007.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인간의 구체적이고 무한히 다양한 물질적 생산행위가 추상적 노동으로 규정되며, 인간의 노동생산물이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적 형태인 상품, 화폐라는 가치형태를 취하게 됨으로써만 작동한다. 그러나 그것이 직접적으로 현상하는 것, 즉 우리의 자생적인 의식 속에서 나타나는 방식은 바로 수입(이윤, 지대, 임금 등)의 원천에 대한 사고를 통해서이다. 금융화를 가능케 한 그 객관적인 환상은 바로 이 자본물신주의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글을 시작하며 말했듯이 소득과 부채, 임금과 빚은 서로 대립적인 것이기는커녕 동일한 물신주의로부터 비롯된 환상의 성분들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이윤(기업가수익+이자), 토지-지대, 노동-임금, 이것은 사회적 생산과정의 모든 비밀을 포괄하는 삼위일체적 형태”를 말하며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K. 마르크스, ‘자본 III-2’, 강신준 옮김, 길, p. 1087.
“(……)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은 사회적 생산과정 일반의 역사적으로 규정된 형태이다. 이 사회적 생산과정은, 인간생활의 물질적 존재조건의 생산과정이면서, 또한 특수한 역사적․경제적 생산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하나의 과정[다시 말해서 이 생산관계 그 자체와 이 과정의 담지자, 그리고 이들 담지자들의 물적 존재조건과 그들 담지자 상호 간의 관계(요컨대 이들 담지자의 일정한 경제적 사회적 형태) 등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과정]이다. 왜냐하면 이 생산의 담지자들이 자연에 대해서나 그들 상호 간에 맺는 관계, 그리고 그 속에서 그들이 생산을 수행하는 관계, 바로 이런 관계 전체야말로 경제적 구조라는 측면에서 본 사회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은 그것에 선행하는 모든 생산과정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물질적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이들 조건은 또한 동시에 개인들이 자신들의 생활을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맺는 일정한 사회적 관계의 담지자이기도 하다. 이들 관계와 마찬가지로 그들 조건도,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의 전제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결과물이자 소산이다. 그것들은 이 생산과정에 의해서 생산되고 재생산된다.” ibid., pp. 1093-4.
“자본, 토지, 노동! 그런데 자본은 물적 존재가 아니라 일정한 역사적 사회구성체에 속하는 특정의 사회적 생산관계이며, 이 생산관계는 어떤 물적 존재를 통해서 표현되고 이 물적 존재에 하나의 독자적인 사회적 성격을 부여한다. 자본은 생산된 물적 생산수단의 합계가 아니다. 자본이란, 자본으로 전화된 생산수단을 말하는 것으로서, 생산수단 그 자체가 자본이 아닌 것은, 금과 은 그 자체가 화폐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자본은 사회의 일정 부류에 의해 독점된 생산수단이고, 살아있는 노동력에 대해 독립적인 것으로서, 바로 이 노동력의 생산물이자 활동조건이며, 이것들이 이러한 대립을 통해서 자본으로 인격화된 것이다. …… 그러므로 이것(-자본)은 역사적으로 창출된 하나의 사회적 생산과정의 요인들 가운데 한 가지가 갖고 있는 일정한(언뜻 보면 매우 신비스러운) 사회적 형태이다.” ibid., p. 1088.
여기에서 마르크스가 말하는 것은 분명하다. 자본을 물적 존재, 즉 생산요소(생산수단이나 원료, 혹은 그에 해당하는 투입된 금액으로서의 화폐)로 바라보는 순간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더 이상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적 생존,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라는 영원한 자연필연성의 세계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형태’에서 어떻게 특수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회형태란 관점에서 혹은 사회적 관계의 앙상블이라는 관점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이해한 것이 마르크스의 핵심적 특징으로 간주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주된 해석의 경향은 아니다. 이를 강조함으로서 마르크스 읽기를 혁신한 것은 알튀세르를 비롯한 그의 후계자들 그리고 가치형태 분석을 통해 자본의 새로운 읽기를 강조한 루빈, 1970년대 이른바 가치형태론적 자본 읽기를 선도한 독일의 신독해 그룹(특히 M. 하인리히) 등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마르크스의 ‘자본’이 정치경제학 ‘비판’이란 점에서 준별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이를 노동가치론과 마르크스의 가치라는 역사적 사회적 형태에 대한 분석의 차이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이에 관해 대표적인 글로는 일단 다음의 글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L. 알튀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J. Ranciere, Critique, I. 루빈, ‘마르크스의 가치론’, M. Heinrich, Introduction of , Monthly Review Press,
자본은 오직 가치증식을 위하여 자본이라는 물적 형태로 자신을 나타낸다. 이 때 자본이 자신이 투입한 자본을 통해 이윤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고, 토지를 제공한 자본가는 그의 대가로 지대를 얻는다는 환상이 만들어지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유의해야할 점은 바로 수입, 분배, 소득의 원천이 노동이라는 독특한 그러나 사회주의 운동을 비롯한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항시 지지받아왔던 그 물신주의이다. 마르크스가 비아냥거리며 말하듯이 “노란색의 대수(對數)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불합리한 표현”이 바로 ‘노동의 가격’이라 할 수 있다. K. 마르크스, op. cit., p. 1093.
노동자에게 임금이란 그의 노동의 대가라는 것은 지극히 불합리한 표현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거의 직관적으로 노동자가 자신의 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 노동자가 자신의 일한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 오직 가치를 만드는 것은 노동임에도 노동은 빈곤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그것을 물신주의로서 맹렬하게 비난한다.
‘자본’ 1권에서 마르크스가 밝히듯이 노동력과 노동은 다른 것이다. 자본주의는 노동력의 가치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불하고 노동력 상품의 가치와 모순되는 그의 사용가치, 즉 자신의 가치 이상으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 상품의 사용가치를 착취한다. 노동력(상품)은 노동과 다른 것이다. 그런 탓에 “임금(또는 노동의 가격)이라는 것은 노동력의 가치[또는 가격]의 불합리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것이라 할 수 있다. ibid., p. 1099.
그렇지만 우리는 임금을 노동의 대가로 바라보는 데 지극히 익숙하다.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라는 사회형태를 바라보는 대신에 오직 부와 분배라는 시점을 통해 물질적 생존을 위한 영원한 자연적 삶의 세계로서 자본주의를 바라보게 된다. 그럴 경우 잉여가치란 노동자의 몫에서 빼앗아간 부분으로 정의될 뿐이다. 물론 이런 가정에 선다면 가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문제가 아니라 노예제이든 봉건제이든 모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착취는 초역사적인 도덕의 문제가 되고 자본주의에 대한 과학적 비판은 윤리적 비판으로 치환되고 말아버린다. 이는 노동자운동의 역사는 물론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언제나 확인할 수 있는 유혹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마르크스 역시 자신이 살아있을 즈음 이러한 윤리적 사회주의, 혹은 진정한 사회주의란 이름의 사회주의에 대하여 끊임없이 비판한 바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의 부와 분배의 사회주의의 영향력은 21세기의 금융화된 자본주의에서의 자본주의 비판에서 나타나는 분배와 소득의 조합주의적 환상에 견주면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자본삼위일체 정식에서 노동이란 계기에 주목하며 리카르도적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차이를 자본물신주의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강조하는 머레이의 글을 보라. Patrick Murray, The Illusion of the Economic: The Trinity Formula and the ‘religion of everyday life’, The culmination of capital: essays on volume three of Marx’s Capital, M. Campbell & G. Reuten eds., Houndmills & New York: Palgrave, 2002, pp. 246-72.
그렇다면 ‘수입의 원천’은 어떤 연유로 물신주의의 가장 완성된, 현실적(actual) 형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시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하여 보자.
“우리는 이미 앞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상품생산의 가장 단순한 범주들[즉 상품과 화폐]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사회적 관계[즉 부의 소재적 요소들이 생산담당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적 관계]를 이들 물적 존재 그 자체의 속성으로 전화시키고(상품), 또 더욱 분명하게는 생산관계 그 자체를 하나의 물적 존재로 전화시켜버리는(화폐) 바로 그 신비화하는 성격에 대해서 지적한 바 있다. 모든 사회형태는, 그것이 상품생산과 화폐유통을 가져오는 것인 한, 이런 전도에 관여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는 그리고 그것의 지배적 범주이자 규정적 생산관계인 자본 아래서는 이 마법에 걸린 전도된 세계가 더한층 발전한다.” K. 마르크스, op. cit., pp. 1103-4.
(강조는 인용자)
“더욱이 자본은 연간 노동가치[따라서 노동생산물] 가운데 일부분을 이윤이라는 형태로 고정시키고, 토지소유는 다른 일부분을 지대라는 형태로 고정시키고, 임노동은 셋째 일부분을 임금이라는 형태로 고정시키고, 바로 이런 전화를 통해서 그것들을 자본가, 토지소유주, 노동자의 수입으로의 변환-그러나 이들 각각의 범주로 전환되는 실체(Substanz) 그 자체를 창출하지는 않으면서-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분배는 오히려 이 실체를 현존하는(Vorhanden) 것으로 전제한다. …… 자본, 토지소유, 노동은 생산담당자에게 세 개의 서로 다른 독립된 원천으로 나타나고, 바로 이들 독립된 원천으로부터 매년 생산되는 가치[따라서 이 가치가 그 속에 존재하는 생산물]의 서로 다른 세 개의 성분이 발생하며 이들 원천으로부터 이 가치의 여러 형태[즉 사회적 생산과정의 각 요소들의 몫으로 돌아가는 수입]가 발생하는 것은 물론, 이 가치 그 자체[즉 이들 수입형태의 실체]도 발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ibid., p. 1098.
인용한 두 개의 문단은 상품(화폐)물신주의와 자본물신주의(혹은 이 글에서의 분석을 위하여 변경하자면 소득물신주의, 신용물신주의)가 동일한 것임을 간략하게 밝혀준다. 이 둘의 공통점은 바로 “가치 대상성(value obejctivity)”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가치는 사회적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사물, 어떤 대상 자체의 속성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노동생산물이라는 물적 존재는 상품 형태라는 사회적 관계와 다르다. 그렇지만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그것은 그렇게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어떤 노동생산물이든 다른 노동생산물과 교환을 위해 생산된 것인 한 그것은 결국 상품이란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상품 형태는 모든 노동을 동등화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구체적 노동과 구분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특유한 노동인 추상적 사회적 노동이다.
그렇지만 이는 보다 풍부하게 발전된 경제적, 사회적 관계를 거치면서 자본물신주의로 나타난다. 이제 자본이라는 물적 존재는 그 자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노동력을 상품으로 만들어냄과 더불어 노동자에게 자신이 받는 임금이 노동이라는 구체적인 노동의 대가와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는 자신의 생존과 재생산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 상품의 가치를 임금이란 형태로 지불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노동 전체에 대한 대가를 받은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자본가에게는 그의 자본이, 토지소유자에게는 그의 토지가, 노동자에게는 그의 노동력이 …… 이윤, 지대, 임금이라는 그들의 독자적인 수입의 세 가지 다른 원천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ibid., p. 1097.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노동을 바라볼 경우 그것은 “임노동이라는 규정성과는 다른 어떤 사회적 규정성으로 살펴보는 것”이 되고 만다. ibid., P. 1099.
그렇다면 이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가치 관계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부의 생산과 분배의 문제로 바라보는 끈덕진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의 위기의 시기에 접어들면 더욱 왕성한 형태로 되돌아온다. 노동자의 빈곤이 점차 완화되고 개선된 듯이 보이는 역사적 시대가 저물고 실업과 빈곤이 확대되는 것이 누구의 눈에나 뚜렷해지는 시기에 접어들면 물신주의는 더욱 극성스럽게 그리고 보다 화려한 형태로 자신을 확장하며 나타나게 된다. 그렇지만 앞서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물신주의는, “착시 또는 미신처럼 – 하나의 주관적 현상, 현실에 대한 잘못된 지각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현실(특정한 사회적 형태 또는 구조)이 나타나지 않을 수 없는 방식을 구성한다. 이러한 적극적인 나타남(착각(Schein))인 동시에 현상(Erscheinung)은 그것 없이는 특정한 역사적 조건들 속에서 사회생활이 전연 불가능한 매개 또는 필연적 기능을 구성한다. 외양을 제거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를 제거하는 것이다.” E, 발리바르, ‘마르크스의 철학/마르크스의 정치’, 윤소영 옮김, 문화과학사, p. 92.
그러나 우리의 상식은 이를 끊임없이 부인한다. 우리에게 있어 그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기만으로도 제거할 수 없는 유일한 실재, 가장 구체적이고 생생한 삶의 실체는 노동인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노동은 환상의 적수이고 해독제이며 유혹의 사이렌에게 자신의 목숨을 내주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우리의 체험과 의식의 돛대인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말하듯이 노동은 “단지 하나의 유령일 뿐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추상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 그것만으로 보면 결코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K. 마르크스, op. cit., p. 1089
그러므로 노동을 통한 살림살이, 임금소득을 통한 보다 나은 세상이라는 것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둘러싼 환상을 더욱 연장시키는 데 기여할 뿐이다. “부의 사회적 요소들 간의 독립화와 화석화, 물적 존재의 인격화와 생산관계의 물화, 일상생활의 종교”라고 마르크스가 말한 것도 바로 이것이다. ibid., pp. 1108-9.
그렇지만 임금소득이라는 것이 자본물신주의의 편린이라면, 이는 금융화와 더불어 더욱 강화되고 화려한 재주를 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신용물신주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부채가 소득의 타자인 것이 아니라 소득의 또 다른 원천으로 둔갑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그것은 바로 노동자에게 임금이란 바로 화폐적 형태를 통해 나타나고 다시 이 화폐는 신용이라는 경제적 실천에 의해 매개되면서 소득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현상하기 때문이다.
“화폐는 그 자체 이미 잠재적으로 스스로를 증식하는 가치이며, 그것이 그런 가치로서 대부되는 것이 곧 이 고유한 상품의 판매형태이다. 배나무가 배를 열매 맺는 것이 그의 속성이듯 화폐가 가치를 창출하고, 이자를 낳는 것도 바로 화폐의 속성이 된다. 그리고 화폐대부자는 자신의 화폐를 바로 그런 이자 낳는 물적 존재로서 판매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즉 이미 본 바와 같이 실제로 기능하는 자본까지도 그것이 기능하는 자본으로서가 아니라 자본 그 자체[즉 화폐자본]로서의 이자를 낳는 것처럼 스스로 나타난다.”(강조는 인용자) K. 마르크스, ‘자본 III-1’, 강신준 옮김, 길, 2008, p. 515.
“G-G′에서 우리는 자본의 무개념적 형태, 그리고 생산관계가 극도로 전도된 형태와 물화된 형태를 보는데 그것은 곧 이자 낳는 형태로서, 자신의 고유한 재생산과정을 전제로 하는 자본의 단순한 형태이며, 또한 재생산과정과 무관하게 자신의 가치를 증식시킬 수 있는 화폐[혹은 상품]의 능력이다. 그것은 극히 휘황한 형태로 신비화된 자본의 형태이다.”(강조는 인용자) ibid., p. 515.
마르크스는 이자 낳는 자본의 형태에서 나타나는 화폐의 마법에 대하여 폭로한다. “배나무가 배를 열매 맺는 것이 그의 속성이듯 화폐가 가치를 창출하고, 이자를 낳는 것도 바로 화폐의 속성”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화폐의 환상은 이제 더 이상 대부자본가의 환상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자의 임금 소득은 바로 화폐라는 형태로 인해, 이자 낳는 자본의 환상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예컨대 부동산담보대출은 주거수단을 마련하기 위한 즉 사용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유일하게 자신의 생존을 지켜줄 수 있는 자산이 된다. 그것은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얼마든지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나아가 지속적인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그것이 화폐를 낳을 수 있는 화폐로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확고부동하게 믿도록 한다. 화폐물신주의의 환상은 부동산불패의 환상과 함께 서로 즐겁게 춤을 추는 것이다. 그리고 이 환상은 이자 낳는 자본의 전유물이 아니라 노동자에게로 전염된다. 노동자 역시 임금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소득을 획득하는 한, 그것의 화폐 형태로 인해 그 환상에 얼마든지 전염될 수 있다. 어느 투자상품 광고가 천연덕스럽게 말하듯이 스스로 일하지 말고 ‘돈이 스스로 일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자 낳는 자본에서는 자본물신성의 개념(표상)이 완성되어 있다”는 마르크스의 지적은 이제 임금 소득을 통해 부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노동자에게 확장된다. ibid., pp. 524-5.
노동자는 자신의 신용등급에 따라 보장된 미래의 화폐 소득을 미리 당겨 쓸 수 있는 능력을 이용해 신용구매를 한다. 그리고 그는 신용카드가 제공하는 할인 구매의 이점, 다양하게 적립된 포인트와 부가적인 혜택(이를테면 A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B 체크카드로 5만 원 이상 결제하면 계란 한 판을 거저 주며, C 데빗카드로 결제하면 적립금을 두 배로 준다는 식의)을 누리면서 돈을 벌었다고 흡족해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사용할 부분을 줄이고 미래에 얻을 자신의 부 즉 미래에 얻게 될 사용가치에 대한 기대로, 어느 상품과도 교환될 수 있는 상품의 신, 사회적인 권력을 개인화해주는 바로 그 화폐를 투자한다. 그것이 정기예금이든 연금저축펀드이든 상관없다. 그는 거의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금융상품(최근 보험상품을 비교하고 구매할 수 있다는 어느 서비스업체의 말을 빌자면 보험상품만 해도 1만5천 가지에 해당된다) 속을 헤엄치며 자신에게 달콤한 미래의 부를 꿈꾸게 된다. 마치 쇼핑을 하듯이 매일 새로운 금융상품을 골라 구매하도록 추천하는 대중문화적 현상(TV와 신문, 그리고 인터넷 매체, 다양한 재테크 관련 강좌와 소모임 등을 상기하자)은 이러한 전환을 더욱 일상화한다. 그리하여 자본물신주의는 신용물신주의와 만나 자본주의적 사회관계를 조직하는 능력을 발휘한다.
물신주의는 위선적이고 잘못된 의식(意識)이기는커녕 “주체가 삶의 조건들과 맺는 필연적인 관계의 토대”이기에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원리로서 작용한다. J. Milios & D. Dimoulis, Commodity Fetishism vs. Capital Fetishism, Historical Materialism, 12 (3), 2004, p. 39.
그것은 주관적인 환상이면서 그 환상을 통해 작용하는 객관적 세계의 편에서의 환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물신주의는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것이다. 아니 앞서 인용한 발리바르의 생각을 빌자면 그것은 동시적이고 동연(同延)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고전경제학을 두고 말하듯이 그들이 경제적 삶을 인식하는 방법은 지극히 타당한 “객관적 사유형태”인 것이다. K. 마르크스, 『자본 I-1』, 강신준 옮김, 길, p. 139.
그렇기에 고전정치경제학은 과학적인 지식이지만 또한 필연적으로 환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가 유의할 점은 그것이 ‘주관적’이지 않은 객관적 사유형태라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신용물신주의를 통해 극단적으로 확장된다. 신용은 화폐의 모순(가치척도로서의 화폐와 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 전체 상품의 가치 크기를 나타내야 하는 화폐의 기능과 유통수단으로서의 화폐 기능에 따른 화폐의 근본적인 불안정성이라는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잠정적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신용이 담당하게 될 ‘지불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을 통해 이뤄진다. 화폐와 신용의 관계에 대한 마르크스의 사유를 이해하기 위해 다음의 주요한 이론적 기여를 참조할 수 있다. S. de Brunhoff, Marx on money, M. Goldbloom Trans. Urizen Books, 1977. M. Itoh & C. Lapavitsas, Political economy of money and finance, New York: Palgrave Macmillan, 1999.

그러나 신용(credit), 즉 신뢰를 향한 믿음과 그것을 구성하는 다양한 장치, 기술, 윤리적 규범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내부로부터 직접적으로 내재적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발달시킨 다양한 금융의 관행과 이에 딸린 장치들을 통해 보완되어야 한다. 신용의 사회적 형성과 변화는 사회학과 인류학에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한 간단한 개관으로는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B. G. Carruthers & L. Ariovich, Money and Credit: A Sociological Approach, Polity, 2010. K Hart & H. Ortiz, The Anthropology of Money and Finance: Between Ethnography and World History, Annual Review of Anthropology, Vol. 43. G. Peebles, The Anthropology of Credit and Debt, Annual Review of Anthropology, Vol. 39.
예를 들어 국가에 의한 예금보증과 같은 법률적 형태에서부터 펀드, 선물, 옵션과 같은 다양한 금융 거래에 대한 국제 시장의 인가와 장려, 신용파산 승인을 통한 부채의 보전과 재판매에 이르는 온갖 관행들이 없다면 신용은 전개되고 발전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신용은 언제나 국가를 비롯한 비경제적인 사회적 실천의 권력을 동원하고 활용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적 신용의 사회적 특성에 관한 분석에 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D. 하비, ‘자본의 한계’, 최병두 옮김, 한울, 1995. C. Lapavitsas, Social foundations of markets, money and credit, London & New York, Routledge, 2003.
이는 신용의 사회적 토대의 본성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신용의 특성을 과장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지불수단이자 축장수단으로서의 화폐의 기능에서 비롯되는 신용을 과장하는 것이 유행이다. 이들은 화폐의 본성을 바로 신용에서 찾고 이로부터 화폐 역시 신용에 근거하여 정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자본주의의 모순은 일반화된 상품생산으로부터 비롯되는 착취적 사회관계, 즉 자본과 임노동 간의 적대적 모순이 아니라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환원된다.
그러나 채권/채무의 관계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사회관계에 우선한다는 발상은 또 다른 형태의 물신주의일 뿐이다. 보다 우선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물신주의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물신주의에 관한 가장 유명한 정의는 “인간 두뇌의 산물이 독자적인 생명을 부여 받고 그들 간에 또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관계를 맺는 자립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K. 마르크스, ‘자본 I-1’, 강신준 옮김, 길, 2008, p. 135.
반면 신용의 선차성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이는 다시 뒤집혀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르크스가 표현한 것처럼 상품과 화폐라는 ‘필연적인 가상’을 통해 객관적인 사회 형태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눈에 자본주의는 더 없이 투명한 폭력의 세계로 나타나고 빚이라는 영원한 저주에 속박된 삶의 만화경으로 현상하게 된다. 이러한 주장은 금융위기를 전후하여 화폐와 금융을 악마시하는 무정부주의적인 정치적 상상을 통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경제신학비판으로서의 자본주의 비판은 사회관계로서의 자본주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런 경향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시도로는 D. 그레이버의 저작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D. 그레이버, ‘부채 그 첫 5,000’, 정명진 옮김, 부글북스, 2011. 아울러 다음의 저작 역시 참조하라. M. 라자라토, ‘부채인간’, 허경, 양진성 옮김, 메디치, 2012.
이는 상품, 화폐 물신주의를 배가한(re-doubling) 형태로 생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상품, 화폐, 자본 물신주의가 사물들의 관계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나타내며 사물의 자연적, 대상적 속성으로부터 모든 경제 현상을 설명하려 한다면, 이제 신용물신주의는 인격적 사회관계 그 자체로부터 물질적인 사회관계의 기원을 발견하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물의 물신주의는 이제 인격적인 주체의 물신주의로 뒤집어진다. 금융위기 전후하여 상당한 윤리적 매력을 발휘하는 것이 신용의 도덕 경제를 비판함으로써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비판을 대신하는 것이란 점은, 예상할 만한 일이고 또 불가피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신용물신주의를 지속시키고 증대시키며 또 공고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그것이 상품, 자본물신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란 점 때문이다.
물신주의 비판의 문화정치학
지금까지 우리는 마르크스의 물신주의 담론을 참조하면서 금융화된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형태의 물신주의, 무리를 무릅쓰고 스스로 만들어낸 조어로 ‘신용물신주의’라고 정의한, 그것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신용물신주의의 토대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초래한 빈곤과 실업, 삶의 불안정성을 배경으로 한다. 발전 국가로서 남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꾸준한 환상, 즉 열심히 일을 하면 삶은 언젠가 나아질 것이라는 환상, 노동으로부터 부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객관적) 믿음은 ‘워킹 푸어’같은 냉소적인 개념을 통해 부정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부의 원천으로서의 노동, 그리고 그 노동의 대가로서의 임금이라는 환상은 금융화를 경유하며 새로운 물신주의적 형태로 번안된다. 그것은 이자 낳는 자본이 만들어내는 극단적인 형태의 환상에 노동자를 연루시킴으로써 가능하다. 노동자는 이제 노동자와 가계의 개인적 소득을 통해 수탈을 하려는 금융자본의 기획에 포획된다. 그리고 가장 믿을만한 자산이자 수익의 원천으로 간주된 부동산을 구매하려는 부동산담보대출은 물론 신용을 통한 소비, 나아가 배당과 이자를 통해 출산, 육아, 교육, 노후, 건강 등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투자 속으로 휩쓸려 들어간다.
이런 전환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모순이 새롭게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렇지만 현재의 노동자 임금 소득을 탈취하고 나아가 미래의 소득을 압착하여 이윤을 얻는 금융자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간단히 찾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양극화 혹은 극단적인 분배의 불평등은 윤리적인 멜로드라마를 그려내는데 쓸모 있을지 몰라도 상품, 화폐, 자본, 임금, 이자와 같은 형태를 통해 물질적 생산이 조직되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불평등을 초래한 원인이 바로 그러한 형태로 물질적 사회관계가 현상하게 되기 때문이란 점 역시 파악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운동을 조직하는 객관적이면서도 주관적인 원리는 바로 이것이다. 그것은 보다 다채롭고 음험한 형태로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세련되게 자신을 관철한다. 그 때문에 우리는 새삼스럽게 물신주의란 개념을 참조하고 또 강조하려 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금융화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수탈자로서의 금융자본가의 전횡과 폭력을 고발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는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을 비판하는 것과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부정하는 것을 동일시했던 것과 동일한 사유와 실천의 노고를 요구한다. 물신주의를 넘어선다는 것은 그런 방식으로 필연적으로 현상할 수밖에 없도록 한 사회적 관계 자체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그 사회적 관계를 제거하기 위해 우리는 그것이 그렇게 나타나는 외양을 제거하여야 한다. 그것을 제거하지 않은 채 실체를 제거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금융자본의 수탈이라는 “비합리적 과열”을 제거함으로써 자본주의를 합리화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없다. 금융의 과도한 지배를 제거하고 화폐와 신용의 폭력을 제어함으로써 보다 생산적이고 안온하며 나름 공정하기조차 했던 자본주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그리고 자기조정적 시장경제에 의해 파괴된 사회를 보호하고 그 사회를 보호하고자 하는 아래로부터의 “사회적인 투쟁”(사회적 경제, 협동조합, 신용조합, 지역통화, 기본소득 등)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공적으로 공급되어야 할 사용가치의 상당부분을 시장에서 구매하여야 하고 자신의 재생산을 위해 임금은 물론 다양한 금융적 수단에 의존해야 할 때, 우리는 금융화된 자본주의 속으로 깊이 빠져들고 만다. 자녀를 교육하고 노후의 안전한 생활과 예기치 않은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저축을 하고 투자를 해야 한다. 그렇게 모아진 돈은 거대한 대부자본을 이루어 다시 노동자에게 대출을 비롯한 다양한 신용을 통해 공급된다. 그리고 결국 이는 다시 노동자의 개인적 소득을 빨아들인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장에서 구매하여야하는 사용가치 대상(주거, 교육, 교통, 보건, 상하수도, 전기, 통신서비스 등)을 공적인 공급 대상으로 만들어내려는 투쟁은 지극히 중요하다. 자기소유 주택+공적 연급+개인 펀드라는 3중벽을 쌓아야 노후가 안전하다는 재무설계 컨설턴트와 금융업자의 능청맞은 서사는 불안과 위태로움에 떠는 이들에게는 유혹적이다. 그러나 이는 금융화된 자본주의에 깊이 연루되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금융에 대한 문해력(literacy)을 기르는 시민경제교육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임금 수입에 의존하지 않은 채 생존할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내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화폐와 신용의 물신주의가 만들어낸 삶의 문화적 경제적 조건을 개혁하려는 투쟁, 유럽과 남미에서 확대되고 있는 무료의 혹은 저렴하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재를 획득하려는 투쟁은 중요하다. 그것은 작고 사소한 개혁이지만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폐지하기 위한 투쟁에 불가결한 물신주의 비판의 계기가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
_맑스 꼬뮤날레 발표 원고 초고

착취의 회계학: 금융화와 일상생활 속의 신용물신주의1



Beacon – Into The Night

“이자 낳는 자본에서 자본관계는 가장 표피적이 물신적인 형태에 도달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G-G′을 보게 되는데, 이는 곧 양극을 매개하는 과정 없이 스스로 증식하는 가치이며 더 많은 화폐를 생산하는 화폐이다.” K. 마르크스, 자본 III-1, p. 513.

빚과 소득의 정치경제학: 부채주도성장에서 소득주도성장으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처한 모습을 묘사할 때 이제 더 이상 빚이란 음산한 유령을 떼어놓을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자본 간의 거래를 조직하고 다양한 신용 및 신용화폐를 만들어내는 배경이 될 때 빚은 전연 음산하지 않다. 외려 그것은 경제를 더 없이 윤활하게 작동시키는 마법의 장치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한계를 모르는 것처럼 불어나는 개인과 가계 및 정부의 부채로 나타날 때, 그 마법은 이제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주문과도 같은 모습으로 돌변하게 된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희대의 빚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그 빚을 증권화(유동화)함으로써 더 많은 신용을 창출하고 그로부터 엄청난 이익을 얻으려한 금융자본의 개입 그리고 그에 연관된 정치적 제도와 법률, 이를 뒷받침한 정보통신기술 및 금융혁신기법이란 해괴한 명칭으로 알려진 다양한 금융공학과 그 테크놀로지가 뒤엉킴으로써 가능하게 된 일이었다. 그렇지만 고도금융을 통한 전례 없는 자본주의의 성장이라는 환상은 빚이라는 유령과 만나 겁에 질린 것처럼 보였다.
한국에서도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국경제가 처한 최대의 문제가 가계부채와 정부부채라는 진단은 굳이 경제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리고 사태는 그리 복잡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개인이나 가계 그리고 정부 모두 너무나 많은 빚을 지고 있고 그 빚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소비가 줄고 경제도 어려워지며 나아가 성장 자체를 위협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2015년 초 야당 대표를 맡게 된 문재인은 부채주도성장에서 소득주도성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새로운 경제민주화의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그가 제시하는 소득주도성장론은 ‘분배’라는 쟁점에 쏠린 잇단 관심과 그를 에워싼 뒤숭숭한 정경 속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난을 못이겨 자살을 택한 송파 세 모녀 사건은 빈곤의 끔찍함을 증언하였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출간과 반향 그리고 이를 둘러싼 떠들썩한 논쟁은 분배를 둘러싼 지적, 정치적 탐색을 부추겼다. 그리고 야당의 대표를 급기야 맡게 된 그는 이른바 부채주도성장론에 대응하는 새로운 대안으로 ‘소득주도성장’이란 것을 기치로 내걸었다.
그것은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소비 능력을 키우고 이를 통해 내수활성화를 이루겠다는 소위 ‘두툼한 지갑론’이 핵심”인 것으로 요약된다. ‘‘소득주도 성장’의 경제정책‘, ‘경향신문’, 2015. 2. 10.
문재인은 2014년 11월 12일에 “부채주도성장에서 소득주도성장으로”란 이름으로 개최된 소득주도성장 2차 토론회의 기조발제 원고에서 “박근혜 정부의 부채주도성장은 지속불가능한 성장전략”이라고 성토하면고 “빚내서 집사고, 빚내서 소비하고, 빚내서 투자하면 그 귀결은 결국 파산”이고, “부채를 기반으로 경제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은 잠시는 달콤할지 모르지만 결국은 다음 정부로 폭탄을 떠넘기는 무모한 짓”이라고 강변하다. 그리고 “진보는 성장에 무능하거나 성장을 소홀히 한다는 편견”은 어불성설이며 김대중, 문민정부의 경제성적표가 좋았음을 상기시키고, 성장을 이루면서도 국민의 생활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소득주도성장’을 제안한다. 이는 그의 말을 빌자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높여줘서 중산층과 서민을 살리면서 내수기반의 성장동력을 높이는 전략, 즉 ‘더 벌어 더 쓰는 성장전략’,” “소득이 증가하면 그만큼 소비가 확대되고, 내수가 살면, 일자리가 늘면서 성장이 이뤄지는 선순환”을 도모하는 기획이다.
그가 언급하는 부채주도성장에서 소득주도성장으로의 전환이라는 제안은 상당히 그럴싸하게 들린다. 이는 심지어 금융 주도 축적이라는 일부 좌파 경제학자들의 표현을 매우 대중적인 용어로 각색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문제를 둘러싼 학술적인 토론과 논쟁을 알기 쉬운 표현으로 바꾸어 내고 노동자를 비롯한 대다수의 근로 소득 생활자에게 위안과 희망이 될 만한 전망을 제시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자본주의가 처한 모순과 적대를 규제하거나 조정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특정한 정치적 표상을 통해 나타난다. 이는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착취와 불평등을 초래하는 원인을 특정한 대상(예를 들면 금융 투기, 부채 등)이나 주체(약탈적 대부업자, 투기적 해외금융자본가, 자산소득을 통한 부의 축적을 장려하는 정치가 등)에게서 찾는다. 그리고 이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지갑을 채워주는 성장, 소득, 일자리 등이 자리하게 된다. 그리고 야당의 정치지도자의 발언을 따르자면 부채인가 소득인가라는 상징적인 대립이 한국 자본주의가 처한 문제를 압축적으로 표상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관심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런 정치적 상상은 명쾌하다. 경제적 곤궁과 고통과 그를 해결하기 위한 전망을 단순한 표상 속에 이전한다. 부채 대(對) 소득. 이런 대구(對句)는 매우 효과적인 듯 보인다. 빚 부담, 소득 감소, 경기 침체, 그리고 저성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그것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괜찮은 일자리를 얻어 꾸준히 소득을 늘리며 그를 통해 내수를 확대하고 성장 역시 이룩할 것인가. 당연히 이에 대한 답은 뻔하다. 부채가 아닌 소득, 그리고 부채주도성장보다 소득주도성장이 나은 것도 당연해 진다. 게다가 소득주도성장이란 슬로건은 그에 연관된 정책과 법률, 제도 개혁 등으로 구체화될 수 있는 은유의 사슬을 만들어낸다. 소득주도성장은 고용과 분배, 수요와 공급 등의 일련의 경제적 대상을 결합하며 그 사이에 연관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소득주도성장 프로그램은 일을 하고 그를 통해 먹고 살아가는 이들을 변화의 주역이자 수혜자로 내세운다. 그로부터 보다 보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정치적인 프로그램이 제안된다. 그렇기에 부채주도성장에서 소득주도성장으로 나아가자는 주장은 자유주의적 야당과 시민사회운동 그리고 광범한 좌파 정치세력들을 유인할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프로그램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부채와 소득은 서로 대립적인 것일까. 부채주도성장에서 경제의 악(惡)으로 취급되는 부채가 소득 그 자체가 스스로 변신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또 어떤 경우에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면 어떨까. 부채가 소득의 타자이기는커녕 새로운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물신화된 부의 화신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양한 금융기관(투자펀드, 신용평가기관, 주택대부조합, 소매금융회사, 학자금융자기관, 신용카드업자를 위시해 중앙은행과 IMF, 세계은행에 이르는 잇단 자본주의적 신용의 사슬)과 국가기구, 그리고 산업자본가 집단은 금융에서 부가 나온다는 주문(呪文)을 되풀이 했다. 단적으로 그들은 빚을 얻어 집을 사게 하였고 소유자 사회(the ownership society)의 오랜 꿈을 실현하고 있다고 자처했고, 그렇게 생겨난 채권은 자산유동화기관을 통해 다양한 증권으로 탈바꿈했으며 그것은 높은 수익을 낳는 즉 스스로 가치를 낳는 황금 거위에 다름 아니라고 역설하였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은 주택가격의 상승으로 얻을 수 있는 잠재적 부에 도취되어 즐겁게 신용카드로 쇼핑을 다녔다. 그들은 최신형 휴대전화를 구입하고, 신형 SUV를 몰며, 새롭게 단장한 근교 쇼핑몰로 갔을 것이다. 그들은 전에 없던 비상금(nest egg) 주머니를 찼다고 믿었고 그것이 더 필요하면 다시 계약금도 낮고 초기 이자 역시 낮은 주택대출을 이용해 다시 돈을 낳는 거위 한 마리를 더 구하면 될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리고 이는 뒤에서 밝히겠지만 절대 기만도 아니고 착각도 아니었다. 사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반면 소득은 어떨까. 부채로부터 부가 나온다는 믿음이 순전히 기만이라면 임금 소득, 노동을 통한 대가는 기만으로부터 벗어난 투명하고 정직한 현실 자체인 것일까. 우리는 오늘날 진정한 부의 원천, 유일하게 현실 속에 굳건히 뿌리내린 부의 기원, 그것은 노동이라는 믿음을 배반당한 것처럼 분노하기 일쑤이다. 빚은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고 어떤 가치도 만들어내지 않은 채 오직 노동의 결실로부터 자신의 몫을 빼앗아가려는 자들의 몫이기만 한 것일까. 그렇기에 빚은 노동이 스스로를 실현하는 것을 가로막는 수렁 혹은 장애물이기만 한 것일까. 이런 정치적 상상은 더욱 노동에 대한 애착을 강화한다. 일을 하면 할수록 가난을 면치 못하고 빚을 지고 살아야 한다는 비극적인 플롯은 노동을 더욱 숭고하고 존엄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빚의 악에 노동의 선을 대치시키는 것은 동일한 물신주의 안에 머무는 것일 수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관한 비판을 부의 분배와 불평등에 대한 비난으로 제한하고 윤리적인 거부로 과학적인 비판과 전환을 대신하게 만들 뿐이다.
이 글은 이런 문제를 염두에 두면서 금융화란 최근의 변화와 그에 따른 효과로서의 부채의 경제를 준별한다. 이를 위해 다음 장에서는 금융화를 금융자본에 의한 노동자 및 가계의 개별 소득의 수탈(expropriation)이라고 정의하고 이것이 전개되고 나타나는 모습을 간략하게 묘사한다. 다음으로 이러한 금융화가 경제적인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또한 경제적 삶을 재현하고 체험하게 하는 객관적인 가상, 즉 물신주의와 불가분하다는 점을 밝힌다. 이를 위해 마르크스의 자본물신주의 담론을 참조하고 이를 상품, 화폐 물신주의와 연결하면서 금융화된 경제에서 출현하는 물신주의를 신용물신주의로 규정하고 임금 소득이라는 자본의 삼위일체 가운데 하나의 계기가 이자라는 또 하나의 계기와 결합하면서 작용한 결과로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분배의 정치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적대적 모순을 제어하고 나아가 그를 폐지하기 위한 ‘전화(transformation)’의 정치와 결합하기 위해 무엇보다 물신주의 비판과 자본주의 비판을 결합해야 함을 강조할 것이다.
자본물신주의와 신용: 프롤레타리아에서 크레디타리아(creditariat)로?
1) 금융화된 세계의 일상 종교
최근 자본주의의 변화를 재현하는 주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금융화(financialization)일 것이다. 금융화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를 모두 망라하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수많은 작업이 있었다. 금융화를 둘러싼 논의를 요약하고 소개하는 대표적인 글로 일단 다음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금융화에 관한 논의의 흐름을 개관하는 글로 다음의 글들이 있다. Thomas Marois, Finance, finance capital and financialization, Elgar companion to Marxist economics, Ben Fine et.al. eds., Cheltenham, UK & Northampton, MA: Edward Elgar, 2012. C. Lapavitsas, Theorizing Financialization, Work Employment & Society, 25(4), 2011. 금융화를 둘러싼 비판적 정치경제학 및 문화연구, 지리학, 인류학 등의 분야에서의 논의의 대표적 경향을 요약하는 것으로는 다음 저작을 참조할 수 있다. Ismail Erturk et. al. eds. Financialization At Work: Key Texts and Commentary, London & New York, Routledge, 2008.
금융화가 정작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관한 의견들은 분분하다. 이를 축적 체제 자체의 전환으로 이해하며 금융주도축적이란 개념으로 부르는 의견에서부터 R. Boyer, Is a Finance-led growth regime a viable alternative to Fordism? A preliminary analysis, Economy and Society, 29: 1, 2000.
소유자계급의 반격을 통해 경영자본의 헤게모니를 제압하며 금융부문을 통해 이윤을 만회하려는 경향으로 간주하는 이들 뒤메닐과 레비의 입장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G. 뒤메닐, D. 레비, ‘자본의 반격’, 이강국, 장시복 옮김, 필맥, 2006. G. 뒤메닐, D. 레비, ‘신자유주의의 위기’, 김덕민 옮김, 후마니타스, 2014. J. 비데, G. 뒤메닐, ‘대안마르크스주의’, 김덕민 옮김, 그린비, 2014.
, 주주가치의 극대화를 통해 기업지배구조를 조정하고 단기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 순환의 경향으로 보는 이들, 나아가 일상생활의 금융화란 개념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통치성의 전환의 계기로서 금융화를 바라보는 이들 R. Martin, Financialization of daily life, Philadelphia: Temple University Press, 2002. R. Martin, An empire of indifference,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2007. The everyday life of global finance : saving and borrowing in Anglo-America, P. Langley, The everyday life of global finance, Oxford &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와 강조점 역시 각기 다르다. 그렇지만 금융화란 개념이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규정할 수 없으므로 그것을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 없을 것이다. 거꾸로 그것이 바로 그 용어의 장점이기도 할 것이다.
금융화는 현실에 대한 술어적인 규정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현재의 역사적 시대에서 조직되고 전개되는 모습을 규정하기 위한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금융이라는 경험적 대상 세계(은행, 투자은행, 국가, 도소매업자, 개인 소비자, 부채와 선물, 옵션, 파생상품, 월스트리트와 시티, 여의도 등)와 주체(정부, 기업, 금융업자, 노동자, 대중매체 등), 제도(국제금융기구, 중앙은행, 역외금융, 그림자금융, 미소금융, 금융 관련 시민운동, 여성주의 운동조직 등) 등을 어떻게 분석하고 표상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금융은 자본주의가 자신을 실현하는 다양한 요인들 사이의 관련과 그 배치를 새롭게 이해하도록 이끄는 쟁점일 것이다. 그리고 지역사회, 공동체, 국가는 물론 국제관계에 이르는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현실이 조직되고 변형되는 계기를 파악하도록 한다. 유로화와 유로존, 공공부채에 대한 토론 없이 유럽연합을 생각한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이 글에서는 금융화를 정의하고자 할 때 마르크스주의자인 라파비차스와 도스 산토스의 분석을 참조한다. C. Lapavitsas, Profiting Without Producing: How Finance Exploits Us All, London & New York, Verso, 2014. Financialised capitalism: crisis and financial expropriation, Historical Materialism, 17 (2), 2009, P. L. dos Santos, On the content of banking in contemporary capitalism, Historical Materialism, 17, 2009.
그들이 정의하는 바에 따르면 금융화는 지난 수십 년간 선진 자본주의국가와 발전국가에서 나타난 자본과 노동 간의 착취적 사회관계가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규정하는 원인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입장은 금융화를 자본주의 축적과 순환의 체계나 자본주의의 위기의 경향(특히 이윤율의 추이) 등에서 금융화를 이해하려는 입장과 구분된다. 거칠게 말하자면 이들의 생각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자본이 산업자본가로부터 노동자계급이 생산한 잉여가치(이윤)의 일부를 이자의 형태로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노동자의 삶을 위해 소비되어야 할 임금을 이윤의 원천으로 수탈하는 것이라 보는 데 강조점이 있다. 라파비차스의 저작의 제목처럼 “생산 없는 이윤 취득”에 따른 지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좇을 때 우리는 자본물신주의의 가장 극단적이고 사악한 형태를 발견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의 임금은 노동자 자신의 재생산을 위해 이용되어야 할 즉 소비를 통해 사용가치로 전환되어야 할 가치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를 가치를 낳는 가치로 둔갑시키며 금융자본은 수탈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소득의 수탈이 외려 새로운 소득의 원천으로 둔갑하는 물신적인 전도를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그들이 제시하는 금융화는 자본물신주의 나아가 신용물신주의라 부를 수 있는 물신주의의 논리를 설명하는 데 이점을 제공한다.
라파비차스와 도스 산토스가 정의하는 금융화는 간략하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1970년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자본주의국가에서의 금융적 이윤의 추이(라파비차스), 은행업의 성격 변화(도스 산토스)를 분석한다. 물론 이는 금융화의 추세가 서구의 발전된 자본주의국가에만 해당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워싱턴-컨센서스 이후 발전국가에 강요된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특히 금융시장의 개방을 중심으로 미국 헤게모니의 자본주의체제로의 편입을 강요하였고, 특히 유사 세계화폐(world money)로 기능하는 달러의 영향 하에서 해외 자본의 금융업 진출은 발전국가에서도 금융화를 폭발적으로 진척시켰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노동자 개인 소득과 가계의 수탈을 통한 금융 자본의 이윤 취득이란 관점을 중심으로 볼 것이기에 둘 사이의 역사적 지배 관계는 뒤로 미뤄두기로 한다. ‘종속적 금융화(subordinate financialization)’이란 용어를 통해 발전국가에서의 금융화 경향의 특성(특히 종래의 제국주의와 구분되는 자본의 역 흐름 혹은 역수출 경향)에 대해서는 라파비차스의 다음 글을 참조하라. C. Lapavitsas, Profiting Without Producing: How Finance Exploits Us All, London & New York, Verso, 2014, pp. 245-55.
그리고 이로부터 거대 산업 및 상업 기업들이 신용의 원천으로서 은행을 이용하는 것을 피하고 대신 공개시장에서 금융 자원을 얻거나 유보 이득에 점점 의지하는 자기금융(self-finance)을 통하는 경향을 확인한다. 이 때문에 은행은 주거, 교육, 연급 등의 공적 공급이 삭감되는 과정에서 개인 대출로 방향을 전환하고 이를 통해 개별 노동자들에게 대한 새로운 금융 서비스 제공을 통해 수익 원천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상업은행들은 공개금융시장에서 채권, 증권, 파생상품 등의 거래에 쏠리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금융화를 자본주의의 착취적 사회관계의 재구조화로 바라본다고 여길 수 있다. 그들이 보기에 금융화란 개인의 사적 소득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금융적 이윤을 수탈하는 것과 보다 확대된 금융 시장 영업을 결합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이윤의 일부 즉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 가운데 일부를 이자란 형태를 통해 수취하는 것을 넘어 노동자의 임금을 빼앗아가는 수탈을 통해 지배한다. 라파비차스는 이를 ‘소외(alienations)’ 혹은 ‘수용(expropriation)’에 따른 이윤이라고 칭하면서 그것을 잉여가치의 분배를 통해 획득한 이윤과 구분한다. 앞의 글, pp. 138-68. 이는 공유지의 수탈을 통한 자본의 축적을 설명하며 이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특징이라고 설명하는 데이비드 하비의 분석과 대조적이다. D. 하비, ‘신자유주의’, 최병두 옮김, 한울아카데미, 2007.

이는 발전된 자본주의국가에서 전개된 추이이지만 이는 한국 자본주의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먼저 은행업의 성격의 변화라는 면에서도 역시 우리는 동일한 과정이 관철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도스 산토스는 “은행활동에서 최근의 변화 가운데 가장 의미심장한 측면은 은행 이윤의 원천으로서 개별 임금 소득으로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은행 대부는 기업 대부로부터 가계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소비 및 모기지 대출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투자 은행 영업 역시 소매 투자 펀드 서비스들에 의해 상당하게 추동되는 전체 은행 형태들에 있어 증가하여왔다”고 말한다. P. L. Dos Santos, At the Heart of the Matter: Household Debt in Contemporary Banking and the International Crisis Research on Money and Finance, Discussion Paper No. 11, SOAS, 2009, p. 6.
그런데 이런 언급은 한국에서도 거의 일치한다. 한국에서 은행업을 비롯한 금융자본의 활동 추이를 보여주는 것으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할 수 있다. 양두용 외,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금융국제화 진전과 향후 과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04. 한국금융연구원, ‘한국금융산업발전사’, 한국금융연구원, 2014.
한국은행이 2012년 가계부채의 원인을 진단하기 위해 행한 조사보고서를 살펴보면 방금 언급한 산토스의 서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행, ‘부채경제학과 한국의 가계 및 정부부채’, 2012.
『가계부채 상황에 대한 분석 및 평가』라는 해당 보고서에 실린 연구는 가계부채 급증의 배경의 공급 측 요인으로서 금융기관의 운용 방식에서의 변화를 꼽는다. 이는 크게 두 가지를 꼽는다. 먼저 은행의 대출 여력을 확대한 금융기관의 대출가용성이 신장한 것(특히 CD, 은행채 발행의 증대), 다음으로 대기업의 내부 보유가 증대하고 직접금융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에 따라 은행 경영 전략이 가계대출 우선으로 선회한 것 물론 이에는 신바젤협약으로도 알려진 바젤II 협약과 같은 국제금융기관의 규율 역시 작용한다. 이는 은행 자기자본비율을 산정하는데 있어 위험도에 따른 보다 정교한 비율을 적용하도록 하였는데 이 때 가계 주택담보대출은 BIS비율 산정시 위험가중치가 기업대출에 비해 절반이 된다. 결국 가계부채가 촉진될 수 있는 요인을 제공한 것이다.
이다. 앞의 글, p. 50-1.
이는 국내의 은행업의 발전과 그 추이를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것은 국내 일반은행의 이자 수익에서의 변동을 통해서 쉽게 파악할 수 있는데, 이자수익의 경우 1992년의 10.3조원에서 2009년 57.3조로 급격하게 성장하는데, 이 때 이자수익의 압도적인 부분은 49.1조원을 차지하는 대출채권이자라고 할 수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한국금융산업발전사’, 2014, pp. 96-9.
대출채권은 다양한 종류로 구성될 수 있다. 그러나 대출채권의 종목이 무엇인지 따로 찾아보지 않더라도 그것이 주택담보대출채권이라는 것은 누구나 상식처럼 아는 일이다.
그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을 통해 본 2002년-2014년 가계신용의 추이
위의 표는 국내의 은행 및 비은행예금취급기관 등에 의한 가계신용 대출의 변동 추이를 보여준다. 2014년 하반기에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까지 누적된 가계부채 총액은 1060조원에 이른다. 그리고 OECD가 역시 같은 즈음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의 연간 가계부채 증가율은 금융위기 이후 매년 8.7%에 이른다. 이는 가계부채가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에 있는 다른 국가들에 비하면 상당한 차이이다. 물론 이로부터 얻어 들이는 은행들의 이자 수익, 즉 노동자의 가계소득으로부터 얻어 들이는 수익은 상당할 것이다. 물론 은행들은 저금리기조의 정부 통화정책 때문에 낮은 예대마진율로 낮은 이자 수익을 얻었다고 불만을 터뜨리지만 바로 그런 조건 탓에 대출을 공격적으로 확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주탬담보대출로 벌어들인 은행들의 이자 수익은 정확히 확인할 수 없다. 그나마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료로는 지난 2011년의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것으로 이에 따르면 대출채권 가운데 5년(2006년~2010년)간 7대 시중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로 벌이들인 이자수익이 51조 627억 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간 가계부채, 특히 주택담보대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전체 가계부채 가운데 절반 이상을 이루었음을 감안하면 이 역시 상당하게 증가했을 것임을 손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이자수익은 개별 임금과 가계의 소득을 수탈한 것임은 물론 미래에 얻게 될 임금소득을 떼어낸 몫에서 비롯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림 가계신용의 구성(KOSIS 100대 지표 참조(2015. 2. 20. 최종 접속))
다음으로 은행을 비롯한 금융자본이 판매신용 등을 비롯한 소비 신용을 제공함으로써 이뤄지는 수탈을 살펴볼 수 있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일반 가계에서 빌린 돈과 외상으로 물품을 구입하고 진 빚의 합인 가계신용 즉 가계부채는 2014년 3/4분기에 1,060조 3,457억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은 445조 1636억, 이를 제외한 일반대출금 및 신용카드회사를 통한 현금 서비스, 카드론 등의 대출은 277조 7,213억, 나머지 신용카드를 통한 구매 및 할부로 상품을 구입한 금액을 합한 판매신용은 57조 4,329억이다. 2002년의 ‘카드대란’ 이후 상당량 축소되었다고 말하지만 판매신용을 통한 금융자본의 이윤 역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또 여전히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판매신용보다는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의 높은 이자와 수수료를 통한 대출을 통해 신용카드회사들은 상당한 이윤을 취득한다.

특히 소득이 낮은 계층을 중심으로 생계비 마련을 위한 대출, 혹은 대출 상환을 위한 대출 역시 꾸준히 증가하여 왔다. 물론 단지 이것만을 지적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할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소비의 하방경직성이라고 부르는 소비수준의 상승과 재생산 역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어느 계층에 속했느냐와 관계없이 스마트폰의 사용은 당연한 것이고, 대학교 진학 역시 당연한 일인 듯이 여겨지는 것은 정보통신, 교육, 의료 등에서 노동자의 소비가 줄어들 수 없도록 한다. 그러나 실질 임금의 정체, 감소, 불안정은 점차 부채에 의존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거의 상식이다시피 되었다. 아니 이는 이제 소비생활의 일상 의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용카드, 체크카드를 비롯하여 광범하게 발달한 신용구매 수단을 이용하지 않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 신용구매는 거의 경제적 시민권의 한 종류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권이라는 시민권 담론의 한 장르가 화폐, 금융적 실천과 어떻게 맞물려 전개되는지에 관해서는 미국의 사례이지만, 다음의 분석을 참조할 수 있다. J. Harsin. The lost histories of American economic rights, Cultural Studies 24(3), 2010.
마르크스가 말한 상품의 수평주의와 냉소주의는 이제 신용의 냉소주의와 수평주의로 전환되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상품의 세계는 갈수록 더 위계화, 심미화되며 소비는 계급적인 구분을 위한 상징적 행위로 전환된다.
2) 재테크(財tech)하는 주체: 착취의 회계학
그러나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수단은 신용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신용을 물질화하여 주는 다양한 금융 수단을 이용하여 소비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서로 평등해질 수 있다. ‘지름신’이라는 저항하기 어려운 유혹을 탓하지만 은근히 지름신에 굴복한 것은 자랑이자 미덕이 될 수도 있다. 소비는 자신의 정체성을 실현하는 몸짓이고, 마침내 소비의 유혹에 굴복했다는 것은 절욕에 실패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자유를 실현한 것으로 얼마든지 비쳐질 수 있다. 2년 약정으로 새로운 모델의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것이 당연한 청년 세대를 유혹하는 길거리의 이동통신사의 호객꾼이나 해외여행객에게 보다 알뜰한 신용카드 결재 방법을 안내하는 저녁 TV 뉴스의 흥분한 기자에 이르기까지 신용을 통한 소비, 즉 부채를 통한 소비는 노동자의 미래의 소득을 전유할 수 있는 권리를 장악하고 이 과정에서 금융자본은 수수료를 비롯한 막대한 이윤을 획득한다. 자신의 생활을 위한 일차적인 수단인 주거의 경우에 이러한 부채에의 의존은 더욱 심화된다. 한 때 한국적인 특수성으로 분류된 전세제도의 이점은 금융화된 소비의 장벽이기는커녕 최근의 전세값 급등으로 인해 점점 더 부채의 유인으로 자리잡게 될 것처럼 보인다. 전세자금을 마련하고 그에 더해 자신의 미래 근로소득의 흐름을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한다는 공식은 이제 통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수년간 급증하고 있는 임대차 관련 대출(특히 전세 대출)의 증가 추세는 전세의 신화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제 입사한지 만 1년이 다 돼 가는 28살 직장인입니다. 고정급여는 300만원 이며 매달 100만원을 3년 만기 적금에 넣고 있습니다. 나머지 여유자금은 펀드나 주식 등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우선 제 지출내역을 말씀 드리면 실손보험 7만원, 통신비 8만원, 교통비 10만원, 용돈 35만원 입니다. 또 5년째 들어둔 연금이 매달 50만 원가량 나갑니다. 취업 전에는 어머니가 대신 넣어주셨는데 취업 후에는 제 돈으로 내고 있습니다. 남는 돈 90만 원가량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또 차를 사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집을 사는데 돈을 집중할 지 아직 판가름이 서지 않습니다. 여자친구는 아직 없는데 5년 내로 결혼할 계획입니다. 서울 내에 빌라 등에 전셋집을 구해서 결혼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맞춤형 재테크] 월 급여 300만원 직장인… 자금 운용 어떻게”, ‘서울경제’, 2015. 01. 25.
인용한 어느 신문기사의 재무설계와 관련한 상담기사는 이제 대중문화 현상이 되었다 할 수 있다. 재무문화(financial culture)라고 불러도 좋을 문화적 행위의 관습이 일상생활로 스며든 것은 금융화의 주요한 효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는 자기(self)를 상상하고 체험할 때 새로운 시점(perspective)을 마련해준다. TV 쇼에서 인구학적으로 분류된 세대들에 따라 어떻게 재무설계를 해야 할지 말을 건넬 때, 그 안에 자리 잡은 수사는 결혼, 육아, 노후 등 인생 주기에 따른 변화를 소득과 부채의 흐름 속에 말끔히 옮겨 적는다. 이 때 우리는 인생의 흐름을 화폐의 흐름으로 둔갑시켜 응시하게 된다. 또한 그것은 불안, 공포, 성취, 안전, 위기감 등의 다양한 심리적, 미적인 표상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미래의 삶의 흐름, 즉 지출과 소비의 흐름에 무관심하고 대비되지 않은 삶은 불안하고 위태로운 것이다. 재무상담 TV 토크쇼에서 상담가가 곧잘 뱉는 재무상태의 마음의 모습이라는 말은 이를 적나라하게 전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심리적 풍경은 수많은 연금저축, 보험, 저축상품 광고에서 보듯이 미적인 장면으로 번안되어 나타난다.
앞의 인용에서 본 상담 내용에 대해 전문가는 그의 고민을 이렇게 진단한다. “첫 번째 여유자금운용에 대한 자산포트폴리오 구성, 두 번째 자동차 구입고려, 내 집 마련을 위한 재테크에 대한 고민, 세 번째 5년 이내 결혼자금마련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흔한 조언을 듣게 된다. 먼저 무조건 수입 가운데 상당 부분을 저축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천연덕스럽게 목표로 하는 자금을 저축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25만원을 “주택청약종합저축”에 15만원을 “재형저축”에 가입하고 그 후 나머지 20만원은 절세효과를 누릴 수 있는 “연금저축펀드와 소득공제 장기펀드 가입”을 하도록 권한다. “매년 400만원 한도로 세액공제 받는 연금저축펀드는 필수”인데, “매년 되돌려 받는 환급금을 재투자하여 복리효과도 누릴 수 있으며, 안정적인 MMF부터 채권형, 공격적인 국내주식, 해외주식까지 다양한 포트폴리오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덧붙여 그는 “일반펀드대비 보수도 저렴하고 환매수수료도 없고 언제든지 원하시는 펀드로 전환 할 수 있어 주기적으로 리밸런싱을 통한 자산증식의 좋은 수단”이라고 추어올린다. 그리고 “여유자금 90만원”을 “적립식펀드”에 투자하도록 추천한다. “원금보장이 되지 않는 투자형 상품이긴 하나 ‘분산투자, 장기투자, 정기투자’에 충실한 합리적인 투자의 원칙을 지킨다면 변동성을 줄이면서 수익을 추구하는 성공적인 투자의 길잡이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재테크와 거리가 먼 이들에겐 좀체 알아듣기 어려운 마법의 세계로부터 흘러나오는 중얼거림처럼 들릴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거의 매일 신문과 TV, 인터넷 지면을 채우고 있고, 이른바 재테크에 관한 테크닉을 조언하는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을 통해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는 금융화의 주요한 추세 가운데 하나인 ‘소매 투자 펀드 서비스’를 통한 이윤 획득을 더욱 매끈하게 전개할 수 있도록 이끈다. 그러나 이 역시 노동자의 현재와 미래의 임금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가치를 이전시켜 그것을 금융자본가들과 그에 자본을 선대한 산업자본가들로 하여금 이윤을 획득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서구 자본주의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폭발적으로 확대되어온 일이기도 하다. 신문의 경제 면을 대신하여 등장한 “머니”란 이름의 지면은 현기증이 나리만치 다양하고 복잡한 투자 상품과 금융상품에 대한 기사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렇게 자산을 증식할 수 있는 대상은 금, 밀, 석유에서부터 미술작품에 이르기까지 무한하게 확장한다.
그렇지만 앞의 재무설계를 의뢰하는 직장인과 그에 조언하는 재무상담가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회계학적인 언표는 가장 복잡하고 화려한 형태로 물신적 환상을 만들어내며 그 안에 깃든 착취와 수탈을 감춘다. 금융을 통해 취득하는 가치 즉 이자는 산 노동의 착취로부터 생겨난 잉여가치, 즉 이윤의 한 부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배당금의 형태든 이자의 형태든 그 형태와 상관없이 그것은 이윤 즉 잉여가치의 분배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일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라파비차스가 명쾌하게 보여주듯이 금융화는 금융적 이윤의 원천을 이윤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찾는다. 가공자본의 형태로 금융자본가가 취득하는 이윤의 상당 부분은 노동자의 소득, 즉 임금의 현재 가치와 미래에 획득할 가치를 탈취하는 것으로부터 얻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금융화는 바로 금융 이윤의 주된 원천을 여기에서 찾는다. 라파비차스는 오랜 동안 간과되었던 마르크스의 분석을 참조하면서 오늘날의 금융 이윤을 잉여가치(이윤)를 기업가 이윤과 이자로 분배하는 것과 관련 없이 이뤄지는 이윤이라 정의하고, 이를 “수탈 혹은 소외를 통한 이윤(profit upon expropriation/alienation)”이라고 부른다. C. Lapavitsas, op. cit., p. 143. 한편 전유, 비전유, 수탈 등의 개념을 통해 자본의 형이상학을 비판하고자 하는 데리다의 개념 역시 수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크 데리다, 베르나르 스티글러, ‘에코그라피 : 텔레비전에 관하여’. 김재희, 진태원 옮김, 민음사, 2002, pp. 34-35.
이는 단적으로 노동자와 가계의 개인적 소득의 금융 거래를 통해 획득되는 이윤으로 잉여가치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이윤은 생산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잉여가치의 수탈을 통해 나타난다. 그러나 금융 이윤은 잉여가치의 일부로서의 이자만이 아니라 “소득과 타인들의 화폐 저량(stock)”을 수탈함으로써 생겨날 수도 있다. ibid., p. 145.

노동자가 금융거래에 참여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이다. 임금재를 구매함으로써 생활에 필요한 사용가치를 실현하여야 하는 데 사용하여야 할 화폐 수입을 현재의 대출과 이자 지급 아니면 미래의 연금 소득이나 기타 배당을 위해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용가치로서 실현되어야할 화폐 수입이 대출, 신용구매 수수료와 이자, 펀드 등을 비롯한 돈으로 대부자본에 의해 흡수될 때, 이는 현재는 물론 미래에 만들어질 소득으로부터 수탈을 가능케 한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가치증식의 결과를 분할하는 것이 아니라 제로섬 게임으로, 가치증식과정과는 상관없이 노동자의 소득을 직접적으로 탈취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떤 이의 말처럼 이제 노동자는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크레디타리아(creditariat)”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Max Haiven, Finance as Capital’s Imagination: Reimagining Value and Culture in an Age of Fictitious Capital and Crisis, Social Text, Vol, 29 No. 1, 2011.
그렇다면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지게 되었을까. 그것은 바로 소득과 빚을 함께 나아가게 하는 환상,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자면 금융화된 세계에 적합한 새로운 일상생활의 종교인 신용물신주의가 작동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금융화의 진행과 함께 국민의 더 많은 구성원이 자신의 경제적 삶의 기초를 금융시장의 주된 참가자들의 의사결정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갖고 있다. 대중펀드의 확대, 연기금의 주식투자, 그리고 노후 재테크 운동 등을 통해 자산보유의 대중적 확산이 추진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자산시장 확대에 대한 대중적 이해관계의 연결이 강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민다수의 경제적 삶이 금융시장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이며,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의 퇴직 후 생활이 금융시장의 변동에 따라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대중의 경제적 삶이 불안해질수록, 대중이 점점 더 불안의 원인인 금융화와 주식시장을 지지하게 만들 것이다.” 유철규, 금융화와 한국자본주의: 특성과 전망, ‘동향과 전망’ 통권 73호, 한국사회과학연구소, 2008, p. 162.
“새로운 사회적 타협체계는 금융을 지향하는 새로운 소득흐름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이른바 다양한 계급간 협력을 가능케하는 금융적 포섭이다. 이러한 포섭형태는 금융을 지향하는 새로운 소득흐름과의 관련 덕분에 보다 폭넓은 계급에게까지 확장하게 된다. 즉, 중간계급을 포함하는 폭넓은 타협의 구축이 신자유주의 생존의 핵심이 된다. 중간 소득 노동자에 대한 주식시장 지분분배를 통해 노동 대 자본의 계급갈등을 완화할 수 있다는 가정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임노동자들에게 임금보상을 대체하는 주식의 분배, 스톡옵션, 연금기금의 분배이다.” 윤여협, 최원탁, 『금융세계화와 연금제도의 변화와 쟁점: 기업연금 도입을 중심으로』, 민주노총 사회보장정책워크숍 자료, 2001, p. 8. 강조는 인용자.
인용한 두 개의 글에서 저자들은 모두 빚의 역설을 언급한다. 앞의 글은 대다수의 삶이 금융시장에 의해 위협을 받게 되는데도 그것을 낳는 원인인 금융화를 지지하게 만든다는 것, 뒤의 글은 금융을 지향하는 소득흐름이 초래하는 이른바 사회적 타협체계, ‘금융적 포섭’을 고발하며 금융을 통한 착취가 외려 금융을 통해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려는 역설을 낳는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렇지만 이런 역설은 단지 금융상품을 구매하고 투자를 통해 안전한 노후와 불안한 생활로부터의 걱정에서 벗어나라는 금융업자의 기만 때문에 벌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자본물신주의라는 마르크스의 생각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사진의 궤적 그리고 변증법적 이미지


Ben Lee – Catch My Disease – Live On Fearless Music

“경과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 속에서 시간이 멈춰서 정지해버린 현재라는 개념을
역사적 유물론자는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현재 개념이야말로 그가 자기의 인격을 걸고
역사를 기술하는 현재를 정의하기 때문이다.”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폭력비판을 위하여/초현실주의 외’, 최성만 옮김, 길, p. 347.
“은유적으로 받아들였을 때, 운항이라는 개념은 사진적 의미-그리고 바로 그 사진 담론-가 루카치가 부르주아적 사유의 이율배반이라고 칭한 것 사이에서의 끊임없는 동요를 통해 특징지어지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는 언제나 객관주의와 주관주의 사이에서의 운동이다. 그런 처지에 따를 때, 그것(사진적 의미-인용자)은 합리주의와 비합리주의, 실증주의와 형이상학, 과학주의와 미학주의 사이에의 운동이기도 할 것이다.” Alan Sekula, Photography against the Grain: Essays and Photo Works 1973-1983, Halifax, N.S.: Nova Scotia College of Art and Design Press, 1984, p. xv.

W. G. 제발트를 떠올리며…..
독일 출신이었으며 오랜 시간 영국에 살았으며 독일어로 소설을 썼던 소설가 제발트(W. Sebald).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그것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읽는 것은 미련스런 일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부터인가 끈끈이에 붙잡힌 파리처럼 그의 소설에 갇혀있다. 가뜩이나 수선한 꿈자리는 그의 소설 탓에 더욱 뒤숭숭해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머리맡에 제발트의 소설을 둔다. 그리고 그의 소설 몇 페이지를 읽다 잠이 든다. 새벽 혹은 늦은 아침, 잠에서 벗어나 눈을 뜨자마자 소스라치게 꾸었던 꿈을 가두고 잡아보려 하지만 부옇게 감돌던 꿈은 연기처럼 자취를 감추고 만다. 아마 그 꿈은 지난 밤 읽었던 제발트의 소설에서 말미암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의 소설을 읽은 이들은 알겠듯이 그가 들려준 이야기의 어느 빈틈으로부터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가지를 뻗는다고 믿는 것은, 그럴 듯한 가설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리고 그것은 하염없이 우울하게 심정을 파고든다. 그러나 그것을 내 것으로 삼아 나의 이야기를 짓는 재료로 삼기는 어렵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 독자는 완강하게 오직 제발트란 소설가에게 소속된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을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에 직면한다. 함께 나누고 반응하기 어려운 이야기, 반드시 스스로에 속한 이야기임을 강변하는 글은, 독자의 동일시를 완강하게 거부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흥미와 관심이 시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에 개의치 않고 계속 귀 기울인다.
소설은 언제 체험과 사건을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구성한다. 그것이 비극이든 희극이든 아니면 서사시이든 아니면 어떤 장르의 수사를 통한 것이든 그것은 교훈을 전하거나 반성을 촉구하거나 하는 식으로 독자를 자신이 읽은 이야기에 참여시킨다. 그렇지만 제발트의 소설에서 우리는 세상에 둘도 없이 오직 혼자인 사람을 마주하는 기분에 빠져든다. 그것은 아마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화자들이 모두 이주민이거나 여행자인 탓에 그런 것이기도 하다.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세계를 유랑하는 이들은 어쩔 수 없이 개인 대 세계라는 대립을 상연한다. 그렇지만 성장 소설이나 모험 소설에서의 떠돌이 혹은 방랑하는 개인이 세계를 대하는 것과 제발트 소설의 화자들이 그런 관계를 맺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그의 소설 속의 인물은 자신의 자유의 실현을 가로막는 장벽으로서의 세계를 상대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인물들에게 세계는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제한하는 구체적인 외적인 힘이 아니라,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거의 폐허와도 같은 잔해로 가득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처음부터 극복하거나 넘어서야할 무엇이 아니다. 성장 소설이나 모험 소설에서 흔히 세계란 그것을 뚫고 나가거나 넘어섬으로써 미래로 향해 나가는 시간적 전환(그리고 이를 서사화하는 주인공의 변이 즉 성장, 성숙, 완성, 발견 등)의 알레고리이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런 세계의 면목을 제발트 소설에서 찾아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의 소설에서 세계란 미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침범하는 과거로 인해 현재라는 시간적 지평이 항시 불안하게 뒤흔들리고 마는, 위태롭거나 윤곽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을 읽을 때, 이런 인상을 결정적으로 강화하는 것은 계속하여 등장하는 사진들이다. 그것은 그가 여행을 하면서 찍은 비망록(aide-mémoire), 즉 체험된 세계의 현존을 속기(速記)하기 위해 거머쥔 사진일수도 있고(‘토성의 고리’, ‘현기증/감정들’, ‘아우슈터리츠’), 가족 앨범이나 엽서, 누군가의 사진첩에서 획득한 사진들(‘이민자들’, ‘현기증/감정들’)일 수도 있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 거의 몇 페이지를 건널 때마다 마주쳐야 하는 사진들은, 흔히 사진 이론과 비평에서 말하는 사진과 텍스트의 관계로는 절대 설명될 수 없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벤야민이 포토-몽타주(photo-montage)에 열광하며 사진이 만들어내는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를 중지시키는 힘으로서 텍스트를 발견하듯이, 바르트가 사진의 신화적 특성을 고발하며 사진설명이란 텍스트가 사진의 이데올로기를 부양한다고 비난하듯이 말이다. 그들이 사진의 미적, 이데올로기적인 효력이란 측면에서 사진/텍스트의 관계를 말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제발트의 사진과 텍스트의 관계를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의 소설 속에서 사진은 무엇보다 사진이라고 말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때 사진이 사진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진은 그것이 제시하는 정보와는 상관없이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사진이 촉발한 충격 혹은 자극에 반응하여 하염없이 무언가 이야기를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는 이를 서사화를 하도록 몰고가는 사진의 힘은 지금 마주하는 한 장의 사진과 그것의 재현, 혹은 재현적 효과와는 크게 관련이 없다. 그것은 심지어 차라리 이를 웃도는 사진 자체의 힘을 발견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제발트가 자신의 소설에서 사진을 사용하는 방식의 아이러니는 바로 이 때문에 비롯될 것이다. 그의 사진은 크게 보아 아카이브로부터 획득한 사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진은 특정한 사진적 사실의 세계에 묶여있다. 그것이 개인의 앨범에 있을 때 그것은 사진에 재현된 인물의 전기적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 된다. 그것이 여행자가 방문한 장소와 인물의 기록일 때 그것은 그 장소와 인물의 정체성에 대한 기록으로서 간주된다. 그런 것이 아카이브에 속한 사진의 속성이다. 그렇지만 제발트는 이러한 아카이브적 이미지에 완강하게 들러붙어 있는 ‘재현으로서의 사진 이미지’라는 특성을 무시하거나 외면한다. 아카이브적인 사진은 오직 사진을 찍고 관람하는 자의 눈길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변모한다. 아카이브적인 사진 이미지가 이 사진 속에는 무엇이 재현되어 있고 그것이 이 사진의 전체라고 침착하고 무뚝뚝이 말할 때, 제발트는 그 같은 사진이 자처하는 스스로의 임무로부터 그 사진을 떼어낸다. 아카이브적 이미지는 세계의 기록이 아니라 반대의 방향으로 내닫는다. 그 사진 이미지는 세계가 없기에, 즉 세계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찾을 수 없기에 초조하고 우울하게 시선을 두는 주체를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사진은 자신의 편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보는 이들에게 자신의 삶이 나타나는, 즉 현상학적인 깨어남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변신한다. 아니 그런 듯이 보인다.
스투디움의 노선/푼크툼의 노선 – 사진의 존재론적 전환?
제발트의 소설을 읽으며 그리고 무엇보다 페이지마다 빼곡히 산재한 사진을 마주할 때 직면하는 멜랑콜리를 떠올리며, 박진영의 사진과 마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근년 사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둘러싼 변화를 그의 사진을 통해 가늠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풍경 사진이거나 인물 사진이든 아니면 심지어 패션 사진이든 모든 사진들이 갑자기 자신이 재현하는 대상, 사진 내부에 기재된 정보라 할 만한 것을 볼 것이 아니라 바로 사진을 보고 있음을 환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진은 상당히 아름답고 눈길을 끌어맨다. 바르트의 그 악명 높은 이분법을 빌자면 우리 시대의 사진은 스투디움(studium)에서 푼크툼(punctum)으로 일제히 전향한 듯 보인다. 롤랑 바르트, ‘밝은 방 : 사진에 관한 노트’,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6.
그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 그것이 예술 사진의 문제라면 말이다. 발터 벤야민, 빅터 버긴이나 앨런 세큘러, 존 탁 등의 비평가 혹은 사진가들의 글을 읽고, 도서관에 어쩌다 들어온 사진집을 들춰보며 희귀하게 열리는 사진 전시를 기웃거리며 믿었던 것, 사진 이미지가 현실의 투명한 재현이 아니라 그것은 이데올로기이며 담론이고 언어적 코드에 다름 아니라는 확신, 다시 한때 그 스스로 열정적인 사진의 기호학적 비평가였던 바르트의 말을 빌자면, 스투디움으로서의 사진과 그것의 비판에 우리는 열광하였다. 다시 말해 사진을 보고 즐긴다는 것은 언제나 ‘비판’의 즐거움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사진작가는 비판적 예술가였던 연유로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내가 존경하는 그리고 같은 학교에서 일하는 터라 자주 말을 섞는 사진이론가 한 분의 발언이 떠오른다. 몇 해 전인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이 망할 푼크툼을 조져야 한다!”고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역정을 냈다. 그 후에도 가끔 그가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푼크툼에 저주(?!)를 퍼붓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증거로서의 사진이라는 주장을 통해 근대적인 규율권력의 주도적인 시각 장치로서의 사진을 분석해 유명했던 존 탁과 함께 공부를 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그는 스투디움 세대이다. 그렇지만 정치적 이미지 비판의 세대, 스투디움 세대는 이제 패퇴한 듯 보인다. 이 세대는 사진적 재현과 사진 이미지의 생산, 분배, 소비가 어떻게 자본/노동, 제국주의/식민, 남성/여성, 이성애/동성애 등의 권력관계를 구성하고 재생산하는지 폭로하고 교육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사진이 해방적이고 전투적인 정치적 매체가 될 수 있는지 탐색하려 하였다. 그러나 세상은 그 사이에 급변하였다. 비판과 해방 따위의 말은 주가가 떨어졌다. 이제 사진의 담론적 정치 같은 따분하고 신나지도 않는 이야기보다는 사진의 존재론 같은, 알쏭달쏭하기는 하지만 조금 더 그럴 듯해 보이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눈치이다. 아마 몇몇은 푼크툼으로의 전환, 그것을 지지하는 숱한 이론적인 시도 나는 여기에서 푼크툼을 직접 참조하지 않지만 사진의 존재론을 기획하는 데 적극 참여하는 비평가들의 이름을 떠올린다. 국내에 소개된 주장들을 꼽아본다면 그들은 필립 뒤바, 빌렘 플루서,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마이클 프리드 같은 이들이 될 것이다. 필립 뒤봐, ‘사진적 행위’, 이경률 옮김, 마실가, 2004. 빌렘 플루서,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윤종석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1999.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반반딧불의 잔존: 이미지의 정치학’, 김홍기 옮김, 길, 2012. 마이클 프리드, ‘예술이 사랑한 사진’, 구보경, 조성지 옮김, 월간사진, 2012.
가 마뜩찮았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푼크툼이라는 암호와도 같은 낱말을 깊이 의심한다.
사진은 스투디움의 사진과 푼크툼의 사진으로 분할할 수 있는가. 푼크툼은 사진의 분석적 개념이자 이론적, 정치적 지침일 수 있는가. 아니면 그것은 어떤 사진에 과도한 애착을 보이는 사적인 감상자의 태도를 가리킬 뿐 사회적 장에 속한 사진을 말려면 제외시켜도 좋은 것인가. 사진이라는 기술적, 화학적 매체로서의 복잡한 특성 혹은 매체의 물질성을 간과하거나 무시한 채 오직 그것의 의미의 차원-이를테면 기호학적인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의미작용의 실천(signyfing practices)에만 주의하는 일면적인 접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한 인식론적, 미학적인 돌파구, 그것이 푼크툼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빈정거림처럼 ‘매체의 특수성’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되뇌면서 사진 역시 모더니즘적인 비평의 세례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당당히 예술로서의 작위를 차지하기 위해 내세운 새로운 허울인가. 나는 각축하는 주장들을 기웃거린다. 그리고 의문은 잦아들지 않고 부풀어 오른다. 푼크툼에 근거하여 사진의 새로운 존재론을 역설하는 이들의 그럴듯한 주장과 이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이들의 환멸감에 찬 목소리의 웅얼거림 사이에서 당혹감은 깊어간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그것도 사진이론과 비평의 전문가도 아닌 내가 이 쟁점에 관하여 어떤 결산을 시도하겠다고 덤비는 일은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 역시 사진 이미지를 매순간 마주하고 그것이 초래하는 효과에 의문을 품고는 하는 사진의 관람자이자 소비자이다. 또 갑자기 글을 쓸 책무가 주어진 한 더미의 사진을 앞에 두고, 언제나 머릿속을 감돌던 그 의문을 모른 척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푼크툼이라는 모호한 낱말에서 사진의 새로운 존재론을 기꺼이 구성할 수 있다고 믿는 주장이 ‘타블로 사진(tableaux photography)’의 유행과 사진의 미술관으로의 입성과 미술 시장에서 사진 거래의 증대와 호가의 상승 등과 어떤 상관이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마이클 프리드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몰입(absorption)’과 연극성이란 개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이를 사진에 도입할 때 그리고 이를 통해 동시대 사진의 경향을 모더니즘적인 이미지의 자율성을 완수한 사례들로 간주할 때, 그것이 결국 사진을 미술관의 박제로 만들려는 작위에 불과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마이클 프리드, 앞의 글.
터무니없는 도식이기는 하지만 스투디움에서 푼크툼으로의 이행이라는 동시대 사진의 궤적을 상연하는 듯이 보이는, 그렇지만 그것이 무엇보다 절박하고 또 정당하게 보이는 한 사진작가에게 말을 건네고 싶다. 그의 사진들의 궤적은 사진적 실천이라는 것이 직면한 난관을 스스로 감당하고 또 해결하려는 의미심장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적 사진/장면의 사진
2004년의 <서울-간격의 사회>라는, 박진영을 널리 알린 전시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잊지 않고 언급하는 또 지금 보아도 여전히 아름답고 강력한 사진들을 담고 있다. 그 전시에 나온 사진들을 담은 전시와 같은 제목의 사진집 ‘서울-간격의 사회’에서 내가 생각하기에 흥미로운 점은 ‘사회’라는 개념이 집요하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전시의 제목에 간격의 사회(society of gap)란 말을 가져다 놓으며 사회란 개념을 끼워 넣는다. 그리고 크게 두 개의 파트로 나뉜 사진들 가운데 첫 번째 파트에 속한 사진을 ‘사회적 풍경(social landscape)’이라고 부른다. 다시 사회란 개념이 등장한다. 그리고 사진집 말미에 수록된 “작업노트”를 이렇게 시작한다. “그동안 나에게 있어 사진은 치기어린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막연한 습관이자 사회를 바라보기 이전에 동시대를 살고 있는 내가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거의 무조건적인 대화법이었다.” 하나의 문장 안에서 우리는 세 번이나 사회란 개념이 등장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전시 이후 갈수록 그 개념을 사용하는 경우가 잦아들지만 분단 풍경을 제시하는 사진들로 구성된 세 번째 개인전 까지 그의 사진을 둘러싸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 사회라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서울-간격의 사회’에 등장하는 아르바이트 연작 사진은 사회학적인 실천으로서의 사진이라는 관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 나는 인류학적 실천을 자신의 예술적 실천의 전망으로 택한 미술가들을 비평하며 할 포스터가 말한 ‘민족지학자로서의 미술가’란 개념을 떠올린다. 훗날 공동체, 공공, 대화, 참여 미술 등의 이름으로 알려지고 관계미학이란 미학적인 이념에 의해 자신의 예술적 실천을 옹호받게 될 예술가들의 실천에서, 그는 인류학자로서의 예술가로서의 모습을 찾는다. 그렇지만 그가 소홀히 한 것은 민족지적(ethnographic) 실천과 거의 평행하게 진행된 사회학적인 실천의 추세라 할 수 있다. 할 포스터, 민족지학자로서의 미술가, ‘실재의 귀환’, 경성대출판부, 2003.
그 사진들은 얼핏 보아서는 인물 사진이다. 그 사진들은 각기 “반나절에 4만5천원 받는 강창훈(22)/강변북로”, “한 달 평균 120만원 버는 K모씨/중량천”, “일당 7만원의 윤기웅(24)과 4만원의 최철호(21)/홍대 앞” 같은 제목이 달려있다. 그렇지만 사진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사진 어디에도 출현하지 않는 ‘사회’라는 이미지이다. 사진 이미지가 외시하는 정보 안에는 직접 존재하지 않지만 사진을 볼 때 우리는 사진 안에는 부재하는 대상인 (한국) 사회를 상상하게 된다. 사진을 볼 때 우리는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구학적인 정보 즉 나이, 이름, 그가 일하는 장소 등의 정보를 제공받는다. 그런 사진 제목을 알고 난 연후에 사진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우리가 보는 것은 바로 사회학적인 표본으로서 제시된 인물들이다. 그 인물들은 고유한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실존으로서의 개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라는 특수한 세계의 성원(member)이라는 정체성을 부여받으며 구성된 추상적인 인물이다. 사회학적인 표본 혹은 사례(case)로서의 인물, 푸코가 말한 것처럼 주권적인 개인이라기보다는 출생, 사망, 질병, 교육, 직업 등의 다양한 벡터들의 작용을 통해 상상되는 인간(인구라는 생명정치가 상상하고 가시화하는 인간의 표상)이 바로 “사회”라는 상상적 세계에 속한 인간의 형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미셀 푸코, ‘안전, 영토, 인구’,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1.

사회국가(the social state), 우리에게는 복지국가로 알려진 국가는 바로 그런 인간을 상대한다. 사회국가는 인민이라는 주권적인 개인들의 연합으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격자를 통해 인식되고 분절된 인구를 통치 대상으로 삼는다. 다시 말해 사회국가는 현실을 사회라는 이름의 대상으로 구성하고 그것을 권력이 행사되는 표면으로 다듬어낸다. 그리고 그 세계 속에 살아가는 인물들은 인구와 그 인구를 구성하는 요소로서 식별한다. 이를 위해 사회국가는 방대하고 복잡한 인구(그리고 그 일원으로서의 개인)에 관한 기록을 생산하고 분류하며 분석하고 보관한다. 이런 생명체로서 인구-개인을 관찰, 규율, 평가하도록 돕는 핵심적인 수단이 바로 사진이다. 아우그스트 잔더의 사진은 바로 이러한 인물사진의 전범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벤야민이 말한 것처럼 그는 관상학적인 과학의 도움을 빌어 ‘사회’(질서)를 표상한 전대미문의 사진가였다. 발터 벤야민, “사진의 작은 역사”,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 최성만 옮김, 길, 2007.
관상학이나 법의학, 범죄학과 같은 새로운 과학은 인구의 분류와 관리를 위한 과학이자 동시에 사회를 상상하도록 만드는 담론적 장치의 핵심적 성분이었다. 관상학적 상상을 통해 사회의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것은 인물 즉 인구학적인 표본으로서 발견되고 고정된 사진들을 연쇄시키고 또 구축함으로써 사회를 상상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즉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인물 사진의 연쇄이다. 그렇지만 그 사진 이미지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사회라는 상상적인 대상이다.
이러한 사회학적인 사진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갖는다. 그것은 사회국가가 만들어내는 사회학적 상상에 참여할 수 있다. 혹은 조합주의적인(corporatist) 상상을 통해 계급이나 계층과 같은 ‘사회학적인 집단’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때 사진은 노동자, 농민, 빈민, 인종집단 등과 같은 ‘사회적’ 계층을 표상하게 된다. 이를테면 제이콥 리스(Jacob Riss), 루이스 하인(Lewis Hine) 등의 사진이나 농업안정국의 의뢰로 제작된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등의 사진은, 이를 떠나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것을 ‘사회적 다큐멘터리’라고 부르면서 사회 개혁 혹은 사회 운동의 형태로 사진이 정치적인 교육과 선전, 동원을 위한 자원으로 고려될 때 역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라는 현대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이념이 상기시켜 주듯이 ‘사회’라는 관념은 정치가 이뤄지는 대상이자 그러한 정치가 설립하게 될 미래 세계의 모습에 역시 사회라는 상상을 주입하였다. 그것은 예술적 실천에서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던 셈이다. 그리고 우리는 물론 그와 먼 거리에 위치한 예술적 실천 역시 규정하였다. 그러므로 현대 사진의 내부에 깃들어 있는 사회학적 상상을 모두 망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어쩌면 현대 사진 전체가 이런 사회학적 상상에 의해 채색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전통적인 노동자계급 운동이 쇠퇴한 지금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 없는 세계를 촉진하고 오직 개인들이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돌보아야 하는 것을 통치의 원리로 삼는 (신자유주의) 정치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그러한 사회학적 사진 이미지가 여전히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2000년대 초반에 이뤄진 박진영의 사진은 어떤 동요에 의해 흔들린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대형카메라를 운반하고 자신이 선택한 위치에 그것을 설치하며 노출을 조절하고 파노라마적인 장면을 통해 세계로부터 잘라낸 하나의 풍경을 기록한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는 언제나 예외 없이 하나의 인물 혹은 몇 명의 인물이 배치되어 있다. “#1 모 회장의 자살현장/한남대교”라는 유명한 사진에서 우리는 어느 대기업 회장의 자살 사건을 보도하는 기자와 방송진들이 사진 화면의 왼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조금 더 먼 거리에는 경찰복인지 제복을 입은 두 사내가 강기슭에서 강을 향해 등을 돌린 모습을 본다. 그리고 다시 화면의 오른쪽 중간 부분에 역시 몇 명의 인물이 모여 있는 모습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들을 잇는 선처럼 오른쪽으로 기운 채 붉은 기운이 감도는 억새가 화면을 비스듬히 가르며 화면 아래를 채운다. 이런 이미지의 짜임새는 “#9 일요일의 캠퍼스/경희대”, “#13 재단장한 탑골공원/종로” 그리고 “#14 어버이날/중량천” 같은 사진들에서도 반복된다. 그러나 이런 구성에서 우리는 파노라마 사진에 으레 따라다니는 어떤 시각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아니 외려 그것이 배반당한다고 차라리 느끼게 된다. 파노라마 사진은 자신이 지시하는 대상을 스펙터클한 매력으로 변형하고 관람자로 하여금 그 대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듯한 인상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그 대상의 숭고함에 압도되어 위축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그러한 파노라마 사진 이미지에 대한 흔한 생각은 박진영의 사진에서 식별하기 어렵다. 그가 보여주는 사진 안에서 우리는 많은 정보를 가지게 되지만 그 정보들이 하나의 이미지를 구상하는데 조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외려 이미지, 즉 그가 말하는 것처럼 사회라는 상상적인 가상(imagery)을 구축하기는커녕 그것에 이르는 어려움을 토로하는 듯이 보인다. 화면 속의 인물들은 화면의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거나 따로 모여 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을 벗어난 표면을 채우는 것은 수평으로 넓게 펼쳐진 바닥-강 혹은 하천의 수면, 공원의 휑한 바닥, 시멘트 바닥과 계단, 언덕 기슭을 가득 채운 폐허더미, 혹은 시멘트 계단으로 이뤄진 관중석에 에워싸인 테니스코트 등-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그의 사진들을 사회적 다큐멘터리라고 보기엔 어렵다. 그것은 오히려 사회를 상상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곤경에 처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보다 적절한 용어를 택하자면 그의 사진들은 사회의 불가능성에 대한 사진이고 그런 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이라기보다는 강한 시학적인 함축을 지닌다.
초점의 대상이 된 인물들이 어떤 이미지를 제안하는 역할을 발휘하기는커녕 더욱 그 인물들과 그들이 놓인 배경 사이의 극적인 대조로 인해 ‘세계 없는 인물들’임을 더욱 강하게 환기시키는 사진들은, <도시 소년 Boys in the City> 연작에서 더욱 뚜렷하고 도드라진다. “감시카메라”나 “어깨동무”, “등돌린 소년과 퓨마”, “1단지를 접수한 소년들”, “어떤 약속” 같은 사진들은 소년들의 초상 사진을 보여준다고 약속하지만 우리는 그 초상 사진들을 의미있게 식별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나는 그 사진들이 청소년이라는 사회학적 세대를 지시하고 이미지화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사진 속에 등장하는 10대 소년들은 청소년이다. 그들은 소년이지만 그것은 2차 대전 이후 서구 사회에서 시작되어 1990년대 이후 한국에서 이야기하는 이른바 ‘사회 문제’의 하나로서의 ‘청소년 문제’가 자신의 상상 속에 운반하는 그 소년들이 아니다. 그 이미지 속에 등장하는 청소년은 사회화에 실패했음을 가리키기 위해 고안된 저 악명 높은 사회학 용어인 ‘일탈’이라는 내포적 의미를 가리키지도 않는다. 10대라는 생물학적인 연령은 사회학적 렌즈를 통해 청소년이라는 인구학적인 정체성을 지닌 집단으로 분류되고 그들이 겪는 곤란은 사회문제라는 큰 범주의 하위 범주인 ‘청소년문제’로 각색된다.
그런 점에서 <도시 소년> 연작을 보게 될 때 나는 ‘소년’이라기보다는 ‘도시’에 흥미를 갖게 된다. 소년들이 자신을 제시하기 위해 함께 이미지의 표면 위로 동반하는 그 풍경은 터무니없으리만치 무의미하다. 그리고 파노라마 카메라는 그것을 자신이 노출한 시간만큼 자신이 선택한 스케일만큼 사진 이미지로 운반한다. 그것은 이미지 속에 놓인 소년들이 속한 세계를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정반대의 결과, 가장 자명한 것처럼 보이는 청소년이란 사회적 도상이 생뚱맞으리만치 사회적인 초상으로서 나타나지 못하는 이미지 내부의 부조(不調)를 말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가 이르게 된 최근의 사진, 특히 그가 야심천만하게 <사진의 길>이라 명명한 사진 연작들을 헤아려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그 사진들은 방금 언급한 사진들로부터 벗어나는 사진들이 아니라 그 사진들이 처한 미학적인 전략과의 연장 속에서 이해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전작(前作)이 사회적 다큐멘터리라는 범주에 속한 사진들이 아니라 다큐멘테이션(documentation)을 가능케 하는 정치적 매개(즉 20세기를 지배했던 사회라는 매개)가 사라지거나 혹은 무력해지게 된 조건들을 언급한다는 것, 그리고 바로 사회적 다큐멘터리의 방법을 차용하지만 거꾸로 사회를 불가능케 하는 그 부정성(negativity)을 화면에 기재한다는 것(파노라마 사진의 표면을 뻑뻑하게 채우는 마치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평면화된 수평 혹은 수직의 주변 풍경)을 ‘징후적’으로 혹은 과도하게 가정할 수 있다면 말이다.
“사진의 길” 혹은 사진의 기술적 현상학
사회적 다큐멘터리 사진은 그것이 존립할 수 있도록 하는 코드, 즉 사진적 메시지를 읽을 수 있도록 돕는 맥락, 사진 이미지가 기록하고 재현하는 대상을 인식하고 시각적 쾌락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담론이 작용하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러한 인식가능성의 조건이 없다면 시각적 가시화의 조건 역시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박진영의 2000년대 초반의 파노라마 연작 사진들이 바로 그런 정황을 드러내고 있었다고 짐작하게 된다. 따라서 그는 기록과 증언, 보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수행하는 사진 이미지의 제작이 처한 조건이 어렵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그의 사진은, 앨런 세큘러의 용어를 짓궂게 뒤튼다면, 사진 이미지가 표류하는 조건을 나타낸다. 세큘러는 사진 이미지의 의미를 가리키기 위해 ‘운항(traffic)’이란 개념을 제안한 바 있다. Alan Sekula, Photography against the Grain: Essays and Photo Works 1973-1983, Halifax, N.S.: Nova Scotia College of Art and Design Press, 1984.
즉 사진의 의미는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에 의해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사진이 생산, 분배, 수용되는 문화적 체계에 의해 항상 규정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운항이라는 개념은 한편으로는 그것이 기착지 혹은 종착지를 갖고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즉 사진은 항상 어떤 의미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그 용어는 낙관적으로 암시한다. 그러나 박진영의 사진은 그보다는 비관적이다. 그의 사진들은 ‘운항 중의 사진’이 아니라 외려 표류하고 있는 사진을 보고 있다고 쓸쓸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진은 이제 말할 수 없는가. 사진을 말하게 하고 그것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사진의 말을 듣게 하는 담론적 조건이 희박해짐으로써 사진이 역사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인가. 아니 우리는 마침내 사진의 민주주의에 이르게 된 것일까. 큐레이터와 평론가들이 말하는 형식적 미학의 시점을 통해 상찬하는 사진에서부터 상품을 심미적 환상의 대상으로 운반하는데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능력을 발휘하는 광고, 잡지 사진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진들은 각자 자신들을 읽을 수 있는 다원적인 읽기와 수용의 담론을 채용한다. 이는 사진에 하나의 보편적인 의미, 해방, 자유, 평등, 무엇이든 어떤 보편적인 정치적, 윤리적 규범이 불가능하다는 세간의 믿음을 적극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오직 무한히 다양한 사실들의 ‘다양태’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것을 하나의 질서로 조직하는 초월적인 규범을 요구하는 것은 오직 형이상학적인 폭력일 뿐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한 다원적인 민주주의의 세계에서 사진 역시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사진에게 무한히 다양한 사진적 진실, 사진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한다고 선언하고 현기증 나는 사진의 민주주의에 기꺼이 참여하면 되는 것일까.
박진영은 그의 두 번째 단계의 사진의 시작을 알리는 <히다마리(ひだまり): 찬란히 떨어지는 빛> 전시를 위한 사진집에서 이렇게 말을 건넨다. 그것은 너무나 솔직하고 또 명료하게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비치고 있어, 읽는 이를 놀라게 한다.
“나는 그동안 사진이란 매체로 사회적 관점 혹은 동시대적 관점에 천착해 작업을 진행해 왔다. ……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가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에 가깝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또한 뭔가 의미심장한 주제와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사진가란 항상 사회를 향해 발언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또한 지나친 문제의식에 사로잡혀 대상의 본질을 보기보다는 대상의 효과적인 시각화에만 전념 했던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이미 사진이 현대 사회에서 가장 대중적인 매체로 자리 잡은 오늘날, 나는 사진가로서 어깨에 힘을 빼기로 한다. 이는 불특정 대중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멈춤이자 편협한 사고를 걷어내기 위한 치유이기도 하다. 그저 시간과 공간을 담는 사진 본연의 속성을 믿으며 기술적 발전이 급격한 이즈음 사진이 태동하던 시기의 자세와 정신으로 돌아가 사진적인 사진을 찍는 시도를 시작한다. ‘ひだまり: 찬란히 떨어지는 빛’, 메이드, 2008, p. 52.

그는 사회적-동시대적 관점을 버리겠다고 말한다. 그것은 강박관념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대상의 본질’을 보지 모했다고 말한다. 또 ‘시간과 공간을 담는 사진 본연의 속성’을 믿기로 다짐한다. 그리하여 놀라운 결의에 이른다. ‘사진적인 사진’을 찍겠다는 것이다. 그는 ‘어깨에 힘을 빼기로’ 했다고 말하지만, 실은 우리는 그의 어깨에 실린 단호한 힘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그 모든 것, 그가 내세우는 대당(對當), 사회적-동시대적 관점의 사진 대(對) 시간과 공간을 담는 사진 본연의 속성, 즉 사진으로서의 사진이라는 것에서, 코드, 맥락, 제도, 담론, 아카이브 등 사진적 실천을 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모든 관념들이 소거되는 것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 모든 몸짓은 사진 자체, ‘바로 그 사진(photography as such)’을 향한 관심으로 모아진다. 그렇다면 그는 사진이란 ‘재현인가 아니면 현상학적인 실재(real)인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후자를 향해 스스로의 사진을 몰고 가기로 결심한 것일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그의 근작들인 <사진의 길>에서의 사진, 그리고 그가 채택한 전시와 관람의 전략을 검토하게 된다.
사진 그 자체로 회귀하기를 원하는 사진가들이 흔히 택하는 전략처럼 박진영 역시 <사진의 길>에서 ‘기억’이라는 주제를 택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우리 모두를 경악시킨 후쿠시마라는 재난의 기억이다. 물론 기억이라는 경험적인 지각 대상은 없다. 기억을 담고 있는 대상 그 자체란 없다. 그런 이유로 기억은 여러 가지 차원을 연루시키며 사진의 독특한 능력을 발언할 수 있도록 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 또 그것이 많은 사진작가들이 새로운 사진적 실천을 위해 선택하는 전략으로서 기억을 선택하게 한 것인지 모른다. 기억에 관한 사진은 사진의 주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진 자체의 존재론을 정의하려는 근년의 사진적 전망을 가리키는 이름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기억의 이미지는 그 사진이 재현하는 대상의 편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초과하는 사진 자체의 능력의 편에서 말을 건넨다. 기억을 재현하는 이미지로서 선별될 수 있는 대상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을 재현하는 대상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역사화(歷史畵)를 통해 재현하거나 공식적인 역사 서술의 아카이브와 서적, 전시에서 나타나는 이미지 역시 기억에 호소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미지 자체가 말을 건네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조직된 관람객, 즉 그것을 무엇으로 어떤 관념과 지향 속에서 기억해야할지 미리 알고 있는 관람객을 초대한다. 설령 그 이미지에 저항하거나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전유하는 일이 일어난다할지라도 이미지 자체의 진실은 이미 그것이 제시되는 순간 이미 규정되어 있다. 이때의 기억은 거의 자동적이고 또 정치적, 미학적인 규범에 복종하는 행위이다.
그렇지만 기억의 이미지는 공식적적인 혹은 미리 규정된 역사적 이미지와 다른 것이다. 역사적 이미지란 기억할 가치가 있고 재현될 자격을 갖는 대상을 전제한다. 그러나 기억의 이미지는 다르다. 그것은 먼저 미리 프로그램된 기억-대상을 갖지 않는다. 기억을 재현하기 위해 적합하다고 할 수 있는 대상은 없다. 차라리 우리는 어떤 대상이든 기억을 재현하기 위해 선택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의 이미지는 오직 다양태(multiplicity)의 이미지이다. 그것이 다양태인 이유는 역사적 기억처럼 이념화된 대상(정치적 의례, 전쟁, 시위, 소요, 산업 장관, 빈곤의 풍경 따위)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억의 이미지는 모든 대상에게 기억의 잠재성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을 열어놓는다. 한편 기억의 이미지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국민이라든가 특정한 정치적, 사회적 주체와 동일시할 것을 요구하는 그러한 역사적 이미지와 다르다. 기억의 이미지는 관람객을 어떤 주체-위치로 호명하지 않은 채 관람객의 눈길에 호소한다. 그러므로 기억의 이미지는 집단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이고, 정신분석학의 용어를 빌자면 상징적이라기보다는 상상적이고, 사회적이라기보다는 비사회적이다.
<사진의 길>에는 <카네코 마리의 앨범 金子滿里の アルバム>이라는 사진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2012년 서울 에르메스 미술관에서 전시를 할 때 바닥경사를 4도로 만들고 관람객이 기울어진 지면을 디디며 감상하도록 한 설치 작업의 일부분이었다. 전시장 바닥을 그토록 배치한 것은 사진을 관람하는 행위를 감각적 나타남으로서 체험하길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의 길>에 수록된 이 작업에 대한 소개는 이렇게 말한다. “센다이현 초등학교에서 우연히 발견한 아마추어 사진가, 카네코씨. 이 일본인 사진가가 남겨둔 앨범을 매개로 해서 일본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 사진가가 낯선 언어로 상상의 대화를 나눈다. 작가는 이 앨범을 뒤적이면서 한국의 아마추어 사진가, 전몽각의 <윤미네 집>을 떠올리며, 칼라사진의 첫 등장시기를 한국과 비교해보기도 한다.” 박진영은 3월11일 쓰나미가 일본의 동북부 지역을 휩쓸고 지난 이후 현장을 찾았다. 그리고 미야기현의 센다이 근처에서 “2011년 7월 중순경” 우연히 앨범을 주웠다. 사실 그는 자신이 우여곡절 끝에 방문한 재난 현장에서 놀랍게도 많은 사진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쓰나미가 생존의 물질적 환경, 즉 집, 도로, 자동차, 통신, 수도 등을 모두 흔적 없이 파괴하고 난 이후 그 자리에서 주인을 알수 없는 사진들이 흩어져 있었다는 것은 새삼스럽고 또 기묘한 기분이 들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와 나눈 사적인 대화에서 박진영은 사진의 ‘물질성’이란 개념을 들어 이를 설명하려 했다. 이제 픽셀화된 비물질적 정보로 존재하는 사진 이후의 사진과 달리 그는 아날로그(analogue) 사진, 혹은 말장난을 하자면 유비적인(analogous) 사진이 지닌 역량, 그리하여 지금 잊고 있거나 애도할 처지에 이른 어떤 사진 본연의 힘을 안간힘을 다해 역설하는 것, 그것이 아마 물질성이란 낱말을 통해 가리키려 했던 생각이 아닐까 짐작한다. 나는 그것이 대형 카메라를 사용하여 작업을 하는 사진가가 자신의 기술적 선택을 으스대기 위하여 한 발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소멸한 것처럼 보이는 재난의 현장에서 완고하게 자신을 알리는 사진의 현존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진영은 자신이 재난 현장에서 습득한 사진 앨범의 주인 카네코 마리를 애타게 찾는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가 보여주는 사진들을 통해 카네코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것은 전후 일본 현대 생활사의 풍경에 속한 여느 사회학적인 캐릭터로서의 카네코는 아닌 듯 보인다. 멀리서 전람차가 보이는 공원에서 어깨 깃이 넓고 손부리가 다 드러나는 짧은 외투를 입은 소녀 카네코의 모습, 소풍을 가거나 아버지와 나들이를 나선 귀여운 카네코의 모습, 겨자 색 스웨터를 입고 혹은 물방울무늬가 가득 프린트된 민소매 셔츠를 입고 마침내 칼라사진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카네코의 모습. 그 사진 이미지 안에 기재된 시각적인 정보는 우리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풍속화적 이미지도 아니고 역사적 이미지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냥 사진적인 이미지일 뿐이다. 그것은 재현하는 대상과는 무관한 채, 재난 이후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사진적 현전을 통해 여기에 존재하는 그녀, 카네코이다.
이 때 나는 앞서 인용한 박진영의 다짐, 사진 본연의 속성에 천착하는 사진, 사진적인 사진을 찾겠다는 의지를 스스로 실천하고 있음을 확인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는 그것을 ‘기억’이라는 이미지와 행위, 사진적 전략에서 찾고자 하는 듯이 보인다. 기억이란 바로 무엇을 찍을 것인가라는 선택과 상관없기 때문이다. 기억은 재현되어야할 대상, 그 대상을 어떤 방식으로 재현할 것인가에 대한 숱한 기술적, 미학적 고려 등으로부터 사진가를 해방시켜준다(아니 그렇다고 가정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기억의 이미지라고 말할 때 그것은 사진의 제재나 주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진, 혹은 사진의 다른 존재방식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박진영의 어법을 빌자면 그는 기억의 이미지를 통해 사진의 ‘길’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그 길이란 무엇일까. 그는 사진이 막다른 길에 이르렀고 사진이 지닌 힘을 회복하고 갱신할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것일까. 아니면 사진이 가야할 온전한 길, 사진의 원칙, 사진 그 자체의 길로 귀환하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박진영은 “나토리시(名取市) 연작”에서 재난 현장에서 사진액자, 카메라, 란도셀, 야구 글러브, 비너스, 음료수병, 정 등을 수집하고 이를 찍은 사진을 제시한다. 이 때 그가 보여주는 사진들이 각기 그 사물들을 보여주는 사진들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사진액자=사진, 야구 글러브=사진, 음료수병=사진, 비너스=사진 등으로 이어지는 등가적 관계의 제시일 것이다. 사진은 사진 속에 재현되는 대상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것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드러낸다는 말이 그 사진을 통해 비롯되는 미학적 효과를 제대로 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차라리 사진 그 자체(in itself)의 현현 혹은 계시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비너스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보는 것이다. 이는 사진 자체의 놀라운 능력에 눈뜨도록 우리를 촉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진적 이미지가 어떻게 이데올로기적인 효과를 생산하며 사진 이미지가 자신의 표면에 가시화하는 것은 어떤 비가시성과 항상 변증법적 관계에 있는지를 캐묻는 이미지의 비판적 정치와는 상관없다. 그가 보여주는 사진이란 숨길 것이 없다고 말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진의 길>을 압축하는 사진은 현명하게도 그가 사진집의 맨 앞자리에 놓은 <초여름에 내린 눈>이라는 작업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 사진적 이미지의 미학적, 정치적 효과를 조직하는 권력, 담론, 코드 등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초여름에 내린 눈을 찍은 이 사진은 사진이란 아무 것도 숨기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이 사진은 우리에게 그것이 걸려들어 있는 코드를 벗겨내어 해독하는(decoding) 식의 읽기의 실천 따위는 무시해도 좋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사진은 순수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세계가 숨김없이 자신을 현상하도록 하는 일을 행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이 군다.
감각하게 하는 이미지
그렇다면 박진영이 택한 사진의 길은 너무 나아간 것인가. 그는 사진에서 사진 그 자체를 보도록 요구한다. 그는 사진적 사진을 발견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런 몸짓을 강제하는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사진-이미지에 거의 익사할 지경이다. 이미지는 너무 많고 그것은 거의 아무런 효력도 없이 우리를 스쳐지나간다. 사진은 어디에서나 휴대할 수 있고 어디에서나 전시되며 어느 자리에서나 볼 수 있다. 사진은 무의미한 과잉 그 자체를 가리키는 이름처럼 여겨질 정도이다. 이미지의 불임성을 보여주는 증좌가 바로 사진이라고 말한 다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진에게서 관람객을 붙잡아매고 사진에게서 어떤 효력을 생산하게 하는 것은, 바로 사진의 그러한 자기 현존, 재현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사진 자체의 현존을 사진은 생산해야 한다는 소망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더 흥미로운 것은 바로 20년의 시간의 궤적을 거치며 그가 주파한 사진의 여정이다. 그것은 그의 개인적인 행로를 말하여주기도 하지만 또한 동시대 사진이 직면한 근본적인 쟁점을 성실하고 또 묵묵히 해결하고자 시도했다는 점이다. 그가 선택한 해법이 과연 옳은 것인지 나는 단언할 수 없다. 그것은 건방지고 무례한 짓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사진적 실천이 거쳐 온 궤적들을 추적하면서 그를 동시대 한국 사진의 하나의 증상으로서 헤아려보는 일이다.
박진영은 앞서 선택한 도식에 따르자면 스투디움인가 푼크툼인가의 노선에서 후자를 향해 나아간다. 그는 사회학적 사진을 찍으면서 동시에 그와 같은 사진을 가능케 한 정치적 조건이 소멸했음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사회 없는 세계의) 사회학적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는 사진의 표면, 사진의 이미지와 그것의 재현으로서의 성질에 대해 깊이 실망한 듯이 보인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자신의 ‘사진의 길’을 찾아간다. 그것은 장면의 사진, 사진의 감각적인 힘이 현현하는 사진이다. 그는 사진적 사진, 바로 그 사진을 발견하고자 하였고, 재난의 잔존물을 찍은 사진에서 재현을 초과하는 사진의 잠재성을 증언하려 한다. 그것은 역사-이미지에서 기억-이미지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사진-이미지의 외부에서 사진을 제한하는 이데올로기, 의미의 체계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사진의 순전한 내재성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나는 제발트의 소설 속에서 마주하는 사진을 떠올린다. 그것은 기억의 이미지라고 부를 만한 것의 원형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가 발견하고 또 스스로 찍은 조악한 사진들, 비망록에 가까운 사진들은 체계화할 수 없는, 완결된 역사적 서사의 삽화로 도저히 환원할 수 없는 이미지의 행렬을 보여준다. 그의 사진들이 20세기 인간의 인류학이라고 할 만한 것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아무도 말하지 않은 알려고 한 적도 없는 인물, 사건, 대상들의 이미지들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사회학적 상상이 일컫는 것처럼 자신을 대표하거나 재현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소수(자)의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벤야민이 말한 변증법적 이미지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그가 그의 소설 속에 심어놓은 이미지들은 인물이고 세계이다. 그렇지만 그 사진-이미지는 또한 한없는 정서적인 힘을 환기한다. 그것은 소설 속의 화자의 시선을 장악하고 그 이미지가 불러일으킨 충격에 반응하도록 이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진을 본다기보다는 사진의 위력, 이미지의 역량을 보라는 부름을 듣는다. 그것은 사진이 재현하는 대상보다 더 큰 사진의 힘을 말해준다. 기억은 재현된 대상에 구속되고 결정되지 않는다. 기억은 자신이 마주친 이미지의 현상학적인 힘에 의해 추동된다. 그러므로 기억의 이미지는 재현을 초과하는 사진, 감각적인 충격으로서의 사진을 가리키는 것인가.
벤야민의 변증법적 이미지란 개념에 의지하면서, 디디-위베르만은 “인민이란 재현할 수 있는가”란 물음에 답하는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변증법적 이미지라는 벤야민의 개념을 통해 이미지의 존재론을 새롭게 제안하는 그의 시도는 ‘반딧불의 잔존’에서 전개된다.
그는 “단일성, 정체성, 총체성 또는 일반성으로서의 인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감각할 수 있게 만들기, ‘인민이란 무엇인가’, 알랭 바디우 외, 서용순 외 옮김, 현실문화, 2014, p. 98.
그런 점에서 그는 인민이라는 정치적 주체를 실체화하고 그것을 유일하고 적법한 보편적 이미지에 가둘 수 있다는 믿음을 거부한다. 그렇다면 인민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다양태로서, 각자 자신의 이해와 욕구를 제시하는 의견을 가질 뿐인, 인간들의 군도(群島)가 있을 뿐인가. 디디-위베르만은 인민의 부재, 인민을 가시화할 수 없음이라는 이런 비관적인 허무주의 역시 거부한다. 그렇다면 인민이란 누구이고 어떻게 재현될 수 있는가. 그는 지배적인 이미지 체제가 만들어내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도록 만드는 이미지를 찾아낸다. 그가 말하는 인민이란 이미지의 전체성을 흔드는 부정을 가리킨다. 그 때 그 이미지는 잔존물을 기록하고 재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이름 없는 자들을 사진 이미지로 운반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에게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 결정적인 것은 바로 감각하게 만들기,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정동의 효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디디-위베르만은 교차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교차시킨다. 먼저 그는 초월적 보편성을 대표하는 인민은 없다고 말하지만 인민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감각적 사건을 통해 항시 만들어지고 만들어져야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음으로 그는 그것은 누구를 재현하고 어떻게 재현하여야 하는 가의 문제를 감각의 변증법 속에서 공식화한다. 그리고 그는 ‘냉혹한’, ‘무감각한’ 이미지들에 맞서 ‘감각할 수 있게 만드는’, ‘증후의 변증법’을 가동시키는 이미지를 내세운다. 이 때 그는 사진을 이미지라기보다는 감각적인 체험, 현상학적인 나타남과 결부시킨다. 앞의 글, pp. 140-3.

여기에서 우리는 최근 등장하는 흥미로운 사진의 미학적, 정치적 프로그램의 어떤 윤곽을 식별할 수 있다. 그것을 나는 다시 앞에서 편의를 위해 선택한 바르트의 이분법을 빌어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은 스투디움인가 푼크툼인가라는(either/or) 사진의 대립적인 노선을 종합하는 즉 스투디움이면서 동시에 푼크툼인(and) 사진-이미지의 노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바르트의 스투디움/푼크툼의 이분법을 가짜 대립으로 거부하면서 그의 특유의 미학적 체제란 관점에서 사진-이미지에 관한 미학적 반성을 시도하는 랑시에르의 저술들 역시 떠올려볼 수 있다. J. 랑시에르, ‘이미지의 운명’, 김상운 옮김, 현실문화, 2014. Notes on the photographic image, Radical Philosophy 156, 2009. 특히 그는 ‘해방된 관람자’란 저작에서 “골몰케 하는/골몰하는 이미지(pensive image)”란 개념을 제시하며 바르트의 주장을 비판한다. 그는 재현과 정동, 사진의 언어적 특성과 감각적 효력을 분리할 수 없고 이것이 바로 현대의 미학적 체제의 핵심적인 특성이라고 역설한다. 즉 스트디움과 푼크툼은 현대의 감각성의 체제인 미학적 체제에서는 기원적으로 서로 얽혀있다는 것이다. J. Rancière, “The pensive image”, The emancipated spectator, G. Elliot. trans. London: Verso, 2009, pp. 107-132.
사진-이미지는 단지 재현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감각적인 실재이다. 사진-이미지는 언어적 기호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감각적인 육체이다. 사진-이미지는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성립할 수 없음, 그것의 불가능성의 부정적 증후를 드러낼 수 있다. 나는 박진영의 사진이 그러한 사진의 노선, 사진의 길을 열어 보일 것인지 모르겠다. 당장 그가 자신의 카메라의 노출을 활짝 열고 찍은 선명하고 환하게 발색된 근작 사진들 속에서 그가 가까스로 숨기고 있는 멜랑콜리를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가 앓고 있는 멜랑콜리는 그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시대의 우울이기 때문이다.

코다(coda): 낮잠 자는 변증법


Andrés – New For U

“모순은 희망이다.” B. 브레히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말했다>, 마성일 편역, 책읽는오두막, 2014, 316쪽.)


우리는 아침마다 눈을 뜨면 신문과 TV 그리고 인터넷에서 오늘의 불행을 탄식하는 서정시를 듣는다. ‘휴먼다큐’란 희한한 장르의 볼거리는 불행을 꾸며주는 따뜻하고 심지어는 서정적이기까지 한 잔재주를 부리며 불행이라는 것을 안온하고 나른한 감상의 대상으로 꾸며 놓는다. 이는 그로테스크하다 못해 역하다는 기분까지 들게 한다. 비참함은 쓰라린 것, 차마 듣고 보기 어려운 것, 만류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적절한 감정적 기대를 가지고 느긋이 감상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가장 불쾌한 것은 불행한 이들이 자신의 불행을 바로잡고자 대들거나 싸우는 것은 불행의 축에 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수동적인 불행, 피해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불행,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고발, 비난, 규탄, 호소, 투쟁의 흔적은 말끔히 표백된 불행, 잠시의 감상적인 연민을 통해 쾌적하게 소비되고 곧 휘발되어 버려야 하는 불행을 매일 한 꾸러미씩 선물 받고 태연자약 즐긴다.
이러한 불행의 경연(競演)은 진보적 저널리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르포르타주와 같은 장르는 더 이상 위선적인 세계가 은폐하고 있던 거짓의 증거로서 불행을 폭로하지 않는다. 폭로는 한 번으로 족한 것이다. 그 다음에 일어나야 할 것은 바로 그러한 폭로를 통해 깨닫게 된 세계를 향해 어떻게 대처하여야 할 것인지 토론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일이다. 그러나 진보적인 체 하는 언론 역시 불행을 폭로하는 일에 분주하다. 그리고 그를 듣고 읽는 독자로서의 우리는 천연덕스럽게 마치 다음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 불행을 기다리며 연민을 준비한다. 이는 피해자는 있었지만 투사는 없는 세계가 보여주는 도착적인 초상일 것이다. 어쩌면 이는 윤리적인 허무주의가 취할 수 있는 극단적인 모습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더불어 이는 정치적 노선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나타난다. 좌파나 우파나 모두 불행이라는 세상의 기후(氣候)를 즐긴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긍정의 공리주의(utilitarianism)가 극성을 부린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전환을 통해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조직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이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든 방면에서 실용적인 대안을 추구하고 가능한 변화를 모색하는 데 있다는 정반대 편에 있는 긍정의 감정에 몸을 떠는 생각은 어떨까. 알다시피 우리는 이런 생각을 기꺼이 받아들인 지 오래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실현할 수 있는 행복을 위하여 숱한 조언, 대안, 처방에 시달린다. 이를테면 우리는 맘만 먹으면 성생활의 쾌락을 극대화하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외모를 바꾸고 수명을 한계 없이 연장할 수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가장 맛난 식재료와 음식들 역시 돈 만 있다면 실컷 먹을 수 있다. 마우스를 클릭하거나 홈쇼핑의 자동주문 리모컨 버튼만 누르면 낙원과도 같은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다. 우리는 행복을 위하여 못 할 것이 없다. 단 돈 만 있다면 말이다. 그러므로 뭐든지 할 수 있지만 실은 돈이 없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품과 쾌락의 만신전(萬神殿)은 휘황하게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가진 것은 일자리도 없고 호주머니에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젊은 세대들이 있다. 그들이 가진 재산이라면 고작해야 2년 약정으로 빚을 내어 산 휴대전화 한 대 정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추가한다면 과거의 프롤레타리아가 가졌다는 ‘쇠사슬’ 대신 그들에게 유일하게 허용된 소유물, ‘증오’가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자본과 노동의 적대적 모순을 상징화하고자 이뤄졌던 시도들, 자본가 대 노동자라거나 소유계급과 무산 계급, 자본의 지배와 스스로의 지배로부터 소외된 자들 등으로 이어지는 변증법적 대립의 사슬은 제거된 것처럼 보인다. 프랑스의 라캉주의 정신분석학자 뒤푸르는 최근 어느 책에서 ‘신자유주의적 인간학(neoliberal anthropology)’을 분석하며 계급투쟁은 없고 오직 투쟁만이 있는 세계(대개 아무런 요구 없는 무의미한 분규, 아무런 이유 없는 살인, 다앙한 대상에 대한 중독 등으로 이어지는)라 부를 법한 것을 파헤친다. 그 글에서 그는 한 때 부르주아 계급의 특권처럼 보이는 특징들, 일로부터 면제되고 여가를 누리는 등의 삶을 살아가는 계급 아닌 계급으로서의 젊은이들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역설한다. D-R. Dufour, The Art of Shrinking Heads: On the New Servitude of the Liberated in the Age of Total Capitalism, D. Macey trans. Cambridge: Polity Press, 2013.
비록 그들은 간헐적으로 일자리를 얻지만 그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구성하던 과거의 노동자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들은 단지 그들을 하나의 집단 혹은 철학적으로 말하여 주체화할 수 있는 어떤 정체성도 갖지 못한 비생산적인 소비자 인구집단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 사이의 사회적 교류를 가능케 하고 누군가와 더불어 살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도와주는 것은 카카오톡이니 페이스북이니 트위터니 하는 ‘소셜(social)’ 미디어뿐일 것이다. 소셜미디어가 지닌 커뮤니케이션의 잠재력을 침 튀기며 칭찬하는 주장들이 강조하는 그것의 ‘사회성(sociality)’이란 단지 덧없는 일시적인 사교일 뿐이다. 그것은 기껏해야 내일이면 사라질 지금의 공감, 흐릿한 감정이입을 만들고 거품처럼 꺼지고 만다. 그 사회성을 통해 조합을 만들고 협회를 창립하고 상조회를 조직하는 등과 같이 단체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여기에서 단체라고 말할 때 나는 헤겔이 말하는 것과 같은 단체(cooperative)를 염두에 둔다. 헤겔의 ‘법철학’의 우리말 번역에서는 직능단체라고 번역한다. 그렇지만 이를 굳이 직능단체로 번역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협력을 통해 공동의 목표를 도모하는 근대적인 형태의 모임이라는 뜻에서 코포라티브(cooperative)를 ‘단체’라고 불러도 무방할 뿐만 아니라 훗날 직능단체를 넘어 다양하게 형성되는 그러한 결사체들을 망라하는 이름으로서는 ‘단체’란 말이 더 나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헤겔은 ‘법철학’에서 무산자와 자본가의 대립은 빈곤을 초래하고 이로 인해 ‘천민(Pőbels, rabble)’이 생겨난다고 관찰하며, 이렇게 말한다.
“빈곤 그 자체가 사람을 천민화하지 않는다. 천민은 빈곤에 결부된 마음의 자세에 따라, 즉 부자나 사회 또는 정부 등에 대한 내심으로부터의 분노 여하에 따라 비로소 그렇게 규정된다. 게다가 이런 마음가짐을 갖게 되면 인간은 우연에만 의존하게 되고 경박해지며 노동을 기피하게 되는데, 이를테면 나폴리의 걸인이 그런 경우이다. 이렇게 되면 천민에게는 자신의 노동을 통하여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간다는 데 대한 자부심은 없이 생활비를 얻어 쓰는 일이 스스로의 권리인양 이를 요구하는 악습이 생겨난다.” G. W. F. 헤겔, ‘법철학’, 임석진 옮김, 한길사, 2008, 429쪽.
‘나폴리의 걸인’. 이들은 훗날 룸펜-프롤레타리아라고 불리게 될 이들의 화신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무력하고 추상적인 부정에 휩싸인 젊은 세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헤겔은 근대 부르주아 사회의 모순의 효과, “빈곤의 과잉과 천민의 출현” 앞의 글, 430쪽.
이라는 부정성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단체를 제시한다. 이때의 단체란 노동조합이나 협동조합, 상조회 같은 집단적으로 조직화된 형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헤겔이 단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무엇보다 ‘인륜적인 토대’로서의 그것이다.
그렇다면 왜 단체가 인륜적인 토대라는 것일까. 헤겔을 읽어본 이라면 잘 알고 있듯이, 그가 생각하는 인륜이란 느끼고 생각하는 주체의 편에서의 정신적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객관적인’ 윤리로서의 인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집단과 스스로 동일시하며 그 모임이 지닌 객관적인 절차나 규칙을 수행할 때 부지불식간에 어떤 윤리적 태도에 따라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하기 일쑤이다. 그런 점에서 헤겔이 말하는 인륜은 죄책감을 느끼거나 명예롭다는 느낌을 갖는 주체의 내면적 상태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복장, 말투, 의례, 습속, 공간의 형태 같은 객관적 사실의 편에서 본 것도 아니다. 둘은 동시에 발생하고 동일한 차원에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가 엄숙하게 꾸며진 장례식장에서 사랑하던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도사를 들을 때 굳이 내면적으로 반성하지 않아도 애틋한 슬픔에 휩싸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는 장례식 같은 단순한 의례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직업적 생활로부터 만들어지는 단체는 자신을 계급적인 주체로 조직하는 단체를 가리키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헤겔이 말하는 단체란 노동조합과 같은 조직, 그리고 그런 조직을 통해 스스로를 주체화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계급적인 문화 혹은 ‘계급의식’ 같은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계급의식이란 말을 누구보다 혐오했던 이로 알려져 있다. 그가 곧잘 말하고는 했던 것처럼 계급의식이라는 개념은 인간주의적 이데올로기를 투사하여 계급을 주체로서 가정하고 계급에게 특유한 의식이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를 좇아 계급이란 언제나 계급투쟁을 통해 만들어지는 효과일 뿐이라는 점을 십분 인정한다고 해서 계급의식을 손쉽게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프롤테라티아트라는 계급이기 때문에 자생적으로 그러한 계급의식을 갖는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얼토당토 않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혹은 주체로서 자신을 구성하는 것이 항상 좌절되기 때문에 특수한 자기의식의 형태로서 자신을 체험하려 한다는 것, 달리 말해 자신을 자유로운 주체로 구성하기 위해 단체(노동조합이나 당 등)를 조직하고 그로부터 계급의식을 체험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계급의식이란 어떤 계급적 주체의 투명한 자기의식이기는커녕 그러한 자기의식의 불가능성을 해결하려는 시도 속에서 나타나게 된 자기의식의 현상(학)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륜과 단체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된다. 헤겔이 살던 시대로부터 멀어진 지금 우리는 단체를 여러 가지 모습으로 확장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적인 대의제에 영합하는 것은 아닐) 정당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형태의 투사들의 조직일수도 있다. 우리는 다양한 역사적 모습으로 존재했던 그런 단체들을 알고 있고, 그것이 미래에 취할 형태 역시 다양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단체를 조직한다는 것은 단지 힘을 모으고 조직하며 투쟁을 감행하며 성원을 교육하고 단련시키며 또 필요한 기금을 조성하는 일 등에 국한되지 않는다. 스스로를 단체로서 조직화한다는 것은 이미 세계의 모순을 다른 방식으로 주관하면서 동시에 객관화하는 것이다. 조직화된 노동자계급이 서있을 때, 그것은 단순히 주체의 편에서의 전환이 아니라 객관적인 현실에서의 전환을 초래한다. 노동자계급이 조직화되어 자신을 새롭게 주체화할 때 자본은 전과 같은 방식으로 생산방식을 조직할 수 없고, 이윤을 착취할 수 없으며, 국가를 지배할 수 없으며…, 등등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더 이상 전과 같은 방식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주체의 편에서 단체로 조직된 주체로의 전환이 이뤄지자마자 나타나는 일은 주체의 각성이 아니라 현실 자체가 새로운 세계로 바뀌는 것이다.
물론 이는 세계는 결국 보는 이의 관점에 달려있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무력한 낭만적 부정을 가리킬 따름이다. 느낌의 공동체니 기억, 애도의 공동체니 하는 말들은 우리 시대의 윤리-정치적 유행어구들일 것이다. 그런 몸짓은 ‘세계 없는’ 주체의 편에서 이뤄지는 낭만적인 부정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적 부정을 회피한다. 현실적 부정 혹은 변증법적 부정이란 객관적인 세계를 주관적인 의지와 계획에 따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변증법적 부정이란 객관적인 것에 항시 주관적인 것이 연루되어 있고 또 그 역이기도 하다는 점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흔히 유물론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주체의 의식이란 자기 앞에 놓인 세계의 반영이라 여기는 것으로 간주되고는 한다. 그러나 그런 발상은 유물론이라기보다는 소박한 경험적 사실주의에 가까운 것이다. 유물론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객관적인 세계는 주관적인 의식으로 결코 투명하게 반영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반영을 방해하고 좌절시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규명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순적인 세계란 주체의 의식 속에 반영되는 사실의 세계가 불가능하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모순이란 그런 점에서 이중적이다. 그것은 주체가 세계를 투명하게 반영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요인임과 더불어 주체가 자신을 주체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한계라고 말할 수 있다.
누구나 자유롭다고 말하는 세계에서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인민은 자신을 그러한 주체로서 체험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로 스스로를 주체화하지 못한다. 그들은 단지 자본가나 임금노동자로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만 가까스로 객관적인 세계에 참여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의 삼위일체 공식이란 것을 통해 고발한 것처럼, 자본을 통해 기업가적 이윤을 토지로부터 지대를 노동을 통해 임금을 얻는다는 물신주의적 환영을 통해서만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객관적 사실의 세계에 입장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만 세계는 우리가 알고 있던 바대로의 세계로서 나타난다. 그 탓에 지금은 더 이상 인기 없는 개념이 되었지만 물신화와 소외란 말을 손쉽게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릴 수 없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의 자기 소외란 개념이 자본의 적대적 모순으로 인해 자신을 영원히 주체화할 수 없게 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면 무슨 말이겠는가. 물신주의란 개념이 상품, 화폐, 자본, 이윤, 지대, 임금이라는 환상을 통해서만 자본주의라는 장치가 순조롭게 운행할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면 무슨 말이겠는가. 그러므로 자본주의에 대한 객관적 분석은 그것을 모순 없는 세계로 나타도록 하는 주관성에 대한 분석과 다르지 않다. 마르크스가 생전 출간한 ‘자본’의 첫 번째 권에서 ‘물신주의’에 대한 장을 그토록 공들여 다시 쓰고 다듬으려 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애도와 기억, 느낌 등의 아름다운 개념으로 조직된 공동체는 부정의 정치를 조직하는 힘을 갖지 못한다. 부정이란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만드는 세계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나에게 왜 그러한 방식으로 나타나는지를 반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 신자들이 회심이나 개종이라고 부르는 절차와 같은 어떤 것을 감행하는 것이다. 즉 세상이 그렇게 굴러갔던 것은 내가 세계를 그런 식으로 응시했던 탓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택한 이후에 세상은 전연 다른 방식으로 나에게 나타나는 것처럼 우리는 스스로를 바꾸어야 한다. 모순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세계를 모순으로서 바라본다는 것은 세계의 악이라든가 고통을 발견하고 그것을 비난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자유로운 주체로서 만들어내지 못하도록 만드는 힘을 원망하고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세계를 탐색하고 추궁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최악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무력한 허무주의와 최선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긍정적인 능동주의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최악의 세계와 최선의 세계를 변증법적인 부정의 관계 속에서 매개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한 것처럼 보인다. 변증법이 긴 낮잠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낮잠 자는 변증법을 깨워야 한다.
“잘 알려진 한 구절에서 마르크스는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을 할 것을, 즉 이 발전을 긍정적이면서 동시에 부정적으로 생각할 것을, 다른 말로 하면 누가 보아도 해악한 자본주의의 특징들과 자본주의의 독특한 해방적 역동성을 하나의 사고 속에 동시에 어느 쪽 판단도 희석시키지 않고 다룰 수 있는 사고의 형태를 가지기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의 사고 능력이 자본주의가 인류에게 생긴 최선의 것이자 동시에 최악의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를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프레드릭 제임슨, 포스트모더니즘-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 ‘포스트모더니즘론’, 정정호, 강내희 편, 터, 1990, 191-2쪽.

프레드릭 제임슨은 ‘후기자본주의의 문화 논리’란 조건 아래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한다는 것이 직면한 어려움을 깊게 사색한 드문 마르크스주의자 가운데 하나이다. ‘향수(nostalgia)로 대체된 역사’, ‘비판적 거리의 소멸’, ‘안과 밖을 분간할 수 없는 쇼핑몰화 된 세계의 공간감’ 등, 그가 열거한 조건들은 자본주의 비판이 처한 곤경을 밝혀준다. 그렇지만 그는 인용한 글에서 그런 곤경을 자본주의의 해방적 역동성으로 기꺼이 인정하면서 그것을 부정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것을 요청한다. 말하자면 최선과 최악의 것을 함께 사고하고 그것을 변증법적인 모순의 관계 속에서 인식할 것을 주문한다. 그 역시 잠에서 깨어난 변증법을 찾는 것이다.
변증법? 변증법적 사고?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다시 실제적인 싸움이 벌어지는 현장에서 벗어나 지루한 철학 공부를 시작하고 머릿속에서 사물과 사태의 연관을 사색하는 일에 탐닉해야 한다는 말인가. 당연 그래도 좋고 또 그러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진정으로 변증법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브레히트가 말한 것처럼 다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세상의 모순 때문이다. 모든 일과 사물과 사람에는 그것들을 지금의 상태로 만드는 무언가가 있고, 동시에 다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왜냐면 그것들은 발전해나가고 머물러 있지 않으며 못 알아볼 정도로 변한다. 지금 있는 것들 안에는 ‘아무도 모르게’ 다른 것, 그 이전의 것, 현재에 적대적인 것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B. 브레히트, 앞의 글, 340쪽.
브레히트는 ‘모순은 희망’이라고 말한다. 모순이 난관이나 절망이기는커녕 희망인 이유를 그는 말한다. 우리가 경험 속에서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의 세계에는 모순이란 없다. 쉼 없이 변화하고 달라지는 세계, 발전하고 변화하는 세계는 모순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외려 모순은 그런 변화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되돌아오는 것, 모든 눈부신 변화와 발전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것을 가능케 했던 무엇, 브레히트의 말을 빌자면 “지금의 상태로 만드는 무언가”를 일컫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는 이를 자본주의의 적대라고 칭했고 또한 정치가 자리하여야 할 장소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는 최선이면서 동시에 최악인 듯 ‘보이는’ 세계에 살고 있다. 최선인 듯 보이는 세계와 최악인 듯 보이는 세계를 조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극과 극은 결국 통한다는 싸구려 지혜로 이런 배리(背理)를 설명하여 봤자 그것은 자신의 무지를 은폐하는 짓에 불과하다. 서로를 배척하는 두 가지의 시선을 조정할 수 있는 방편은 없다. 최선이거나 최악일 수밖에 없는, 서로 전연 다르게 현상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를 보는 관점을 통합하는 방편을 찾으려면 그것을 발명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한 관점은 저절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날 가장 무관심한 것으로 전락한 정치를 되살려 냄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그런 변증법의 가능성을 정치에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자 했다. 내게 있어 정치란 그런 변증법적 부정의 다른 이름이다. 모쪼록 그것이 글을 읽은 이들에게 전해지길 바랄 뿐이다.
_ <변증법의 낮잠:적대와 정치>의 마지막 장

말해질 수 있는 것과 말해질 수 없는 것 – 세월호 참사 이후의 사유


Nina Simone – Revolution

1.
말해 질 수 있는 것과 말해 질 수 없는 것이란 제목은 언뜻 언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할하자는, 그리고 그러한 분배에 관련된 어떤 윤리-정치적인 기준이 있을 것임을 암시하는 말처럼 들릴 듯싶다. 언뜻 랑시에르의 미학 교본에서나 볼 만한 주장을, 나는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 사태 이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란 물음을 던지는 자리에서, 자신의 발언을 아우르기 위해 그런 제목을 택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아마 다른 이들 역시 버거워하고 또 두려워했을 어떤 말의 제약을 지시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다. 그 제약이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온전히 말한 것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 그러나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상황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차라리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말해질 수 있는 것과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분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이런 언표 혹은 나아가 사유의 망설임 아니 이중구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잔꾀는 계속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 탓에 나는 세월호 사태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물론 내가 침묵한다고 해서 신경 쓸 이도 없을 것이고 실은 그건 아무런 대수도 아니다. 말해야 한다는 압력을 견디는 것보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것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이 더 견디기 어려울 때, 물어온 이도 없는데 아무 말도 않겠다는 터무니없이 제 혼자 선제적으로 답변하는 짓. 그것은 말하기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태도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각자 하나의 가설을 만들어내면서 기꺼이 사태를 해석하는 윤리적 능동성, 그것을 하나의 사유되어야 할 과제로서 내세우는 열정은 나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그것이 적잖이 퇴폐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 탓에 더욱더 말문을 열려다 멈칫 멈춰선 채 반쯤은 입의 문턱에 걸친 말들을 엉거주춤 되삼키며 흘러나올 뻔 했던 말을 되삼키곤 했다.
그러므로 비망록(備忘錄)에 가까운 글쓰기가 난무하는 것도 이해할 만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나에게 실은 그렇다고 자백하는 것이 옳을 일이다. 비망록이란 지금으로서는 미처 해결할 수 없는 물음을 대하면서 당장은 해결될 수 없을지라도 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며 그를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둔 것이다. 세월호 사태에 관하여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비망록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도 그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몇 가지 사유해야할 과제를 기록해두고자 한다.
2.
세월호 이후를 사유한다는 것은 무엇에 대해 사유한다는 것일까. 이를 빗대어 생각해 볼만한 게 있다면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일본에서 전개된 사유의 풍경일지 모르겠다.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 가운데 일부는 “사상적 문제”로서 후쿠시마사태를 규정하고 그를 사변화하고자 시도한다. 쓰루미 슌스케 외, ‘사상으로서의 3.11’, 윤여일 옮김, 그린비, 2012.
그런데 그것이 사상적 문제라면 어째서 사상적인 문제일까. 3.11을 경유하며 더 이상 전과 같이 사유할 수 없게 되었으며 세계에 대한 새로운 사유의 노선을 발명해야 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자연적인 재해 혹은 사회적인 재난의 한 사례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유되어야 할 문제로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일까. 실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사색하는 한국의 지적 풍경 역시 그런 식의 모습을 펼쳐 보인다. 외상, 트라우마, 애도, 파국, 재난 등의 개념들을 뒤섞으면서 그들은 세월호 참사가 “인식론적 재난의 계기”라거나 가족과 국가를 잇는 열정적 애착의 관계가 탈구되어 마치매 국(國)과 가(家)가 분리되는 역사적 불귀점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열띤 목소리로 발언한다. 그러나 이런 논의에 저항감을 품는 이도 없지 않는 것 같다.
최근 ‘인문예술잡지 F’에 실린 아즈마 히로키와 아사다 아키라의 대담은 3.11을 사상적 문제로 규정하고자 하는 아즈마와 이를 거부하는 아사다 사이의 대립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아사다는 3.11은 그저 기술공학적 혹은 사회공학적인 문제일 뿐 허풍스럽게 이를 사상적 문제로 고양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렇게 대꾸한다.
“(……) 지진 재해를 많은 국민이 ‘국가적 위기’로서 받아들였죠. – 특히 수도권에서는 단순히 정전돼서 전철이 멈췄을 뿐인데도 인터넷을 보면서 집으로 가는 동안에 많은 사람이 자신도 재앙 영화 주인공인 것처럼 느끼고 지진 재해를 필요 이상으로 ‘주체적 위기’로서 받아들인 것처럼 보인 게(거기에서 ‘세카이계’의 상상력을 보든 말든) 문제라면 문제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신 이와지 대지진 재해는 지역적 재해였기에 당연하겠지만, 그 후 ‘힘내라 고베’라는 슬로건도, ‘힘내라 일본’ 따위 목소리도 일체 들을 수 없었고 그것으로 괜찮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도호쿠 지진 피해자들은 차치하고, 상당히 많은 일본인이 ‘일본의 위기’인 동시에 ‘나의 위기’인 것처럼 받아들여버린 듯합니다.” 아사다 아키라, 아즈마 히로키, “후쿠시마는 사상적 과제가 될 수 있는가”, [인문예술잡지 F], 2014, 사이, 32쪽.

여기에서 아사다의 발언은 되새겨 볼만하다. 철학자가 3.11 같은 사태에 끼어들어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으니 “잠자코 낮잠이나 잘” 일이라고 빈정거리면서도, 그는 그것이 초래한 반응에 대해 위와 같이 반응한다. 그의 발언에서 눈에 띄는 점은 그것이 주체적 위기로서 수용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위기’인 동시에 ‘나의 위기’라고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그는 3.11이 주체적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전의 한신 대지진때만 해도 특정한 지역 사회의 일로 여기며 그 사태를 겪은 이들에게 격려와 지지를 보내던 일본인들이 이제는 지금의 사태는 단지 그들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나아가 나의 문제라고 새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저 없이 수긍할 수 있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런데도 어딘가 석연치 않은 것 역시 사실이다. 그렇지만 아사다의 다소 사변적인 발언을 통해서 알게 된 후쿠시마 이후의 현실은 우리에게서도 다르지 않다.
“저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각자 그런 식으로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픔이 계속해서 더 커지고 있죠. 굉장히 큰 충격 상태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죠. 범국민적으로 집단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상태까지 온 것 같아요. 이렇게 크게 아파하는 경우는 저도 본 적이 없거든요.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것을 떠나서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경우는요.” “한국이라는 나라, 희망은 있는가”, [녹색평론 137], 2014년 7-8월, 7쪽.
여기저기에서 들을 수 있었고 또 우리 스스로 지척에서 들었던 이런 발언 역시 아사다가 말한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범국민적으로 집단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상태까지” 온 것 같은 정신적 혼란에 휩싸여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는 주관적으로 힘들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위에서 아사다는 그것이 주체적 위기라고 할지라도 객관적인 위기라고 볼 수는 없다는 듯이 말한다. 그는 원전문제에 관한 한 기꺼이 공산당을 지지한다면서 좌파라면 반문명적인 몽매로 치닫지 않고 냉정하게 핵에너지를 비롯한 문제를 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요컨대 무리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그는 설령 그것이 주관적인 위기로 새겨질지 몰라도 그것을 객관적 위기로 사고할 수 없으며 그렇게 사고하려고 시도하는 한 그것은 반이성적인 몽매에 가깝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말처럼 주체적 위기와 객관적 위기를 그렇게 간단히 분리할 수 있는 것일까.
3.
세월호 사태 역시 비슷한 질문을 들게 한다. 우리는 과적된 선박과 부실한 위기관리 등 우리가 익히 듣고 알게 된 이유들을 통해 또한 아직도 은폐된 채 진실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이유들을 통해 그 끔찍한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장차 그렇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모두 알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객관적 이유들을 수집하고 끼워 맞추어 그것의 객관적인 경과를 분별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야기한 섬뜩하고 아득한 충격을 헤아리는데 충분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유를 알고 있지만 실은 원인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에서 이유와 원인을 이렇게 간단히 구분해보고자 한다. 어느 날 회사에 다니던 엄마는 느닷없이 집으로 돌아오던 어린 딸이 차에 치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치자. 그 아이의 죽음의 이유는 명백하다. 그것은 자동차가 아이를 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이유로 그녀는 아이의 죽음을 수용할 수 없다. 그녀는 분명 자신이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돌보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 그녀는 다른 무엇이 잘못되어 그 아이가 죽음에 이르렀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녀는 차에 치었다는 것이 이유임을 분명히 알지만 그것으로 모든 사태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 집요한 확신은 원인을 찾으려는 몸짓으로 이어진다. 이로부터 우리는 이유를 항상 초과하는 원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세월호 사태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세월호 사태가 나자마자 그것에 대한 전문가들의 수많은 분석과 진단을 듣는다. 공학적인 이유, 경제적인 이유, 행정적 시스템의 이유 등. 그러나 그것은 이 사태를 온전히 납득하게 하지 못한다. 그것은 어떤 원인과 연결됨으로써 우리에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 사태가 되기 위해 계속 머무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원인을 규정하고 제안하는 초월적인 심급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이를테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신이 없다. 그러므로 신의 심판이거나 시험이라는 이유를 들어 우리가 겪게 된 사태를 어떤 초월적인 질서의 계기로 등록시킬 수 없다. 만약 누군가 그런 식으로 발언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외설스럽고 추악한 헛소리로 들리지 않을 수 없다. 가끔 극우파 정치인이 그런 식으로 발언을 하는 것을 듣게 될 때 우리가 느끼는 역겨움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런 발언을 비합리적인 몽매에서 비롯된 헛소리로 치부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보수적이고 부정적인 방식으로 원인을 찾으려는 몸짓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발언들은 세상의 무대에서 퇴장한 신이 여전히 무대에서 제 역을 수행하고 있다는 착각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신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우리는 충분히 탈종교화된 주체가 되어 자신의 사고에 대한 반성을 통해 충분히 원인을 장악하고 통제할 수 있을 것일까. 그렇지만 이유와 원인의 간극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반성적인 사고를 초과하는 무엇을 발견하고 그것에 의지하고자 한다. 루카치는 ‘영혼과 형식’에서 신은 무대에서 퇴장했지만 여전히 객석에 머물고 있는 세계의 문학적 형식을 비극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여기에서 그는 근대 세계가 직면한 진퇴양난의 곤경을 말한다. 먼저 신이 무대에 있을 때 세계란 신에게 완전히 종속된 채 자신의 자율적 가치를 잃고 인간은 피조물에 머문 채 자신의 자유를 상실 당한다. 이때 인간은 그저 신에 의해 조종당하는 무력한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반대로 신이 부재한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우리는 세계가 스스로의 의미를 잃고 인간은 자유를 얻게 되겠지만 그것은 그저 무가치한 세계에서의 자율일 뿐이다. 신은 세계의 진리를 규정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곤경에서 벗어날 방법은 무엇일까. 루카치는 여기에서 비극이 비롯된다고 말한다. 무의미하고 비참한 세계에서 인간이 진실한 세계를 창설하는 자유를 적극적으로 떠맡는다는 것이다. G. Lukacs, Soul and Form, Anna Bostock trans. The MIT Press, Cambridge, Massachusetts, p. 154.

그러나 비극이 과연 신이 퇴장한 세계에서 신을 대신하는 인간 즉 신의 의지에 의해 조직된 질서가 사라진 이후 세계의 무의미를 대체할 수 있을까. 그것을 문학에 빗대어 말하고 있지만 실은 루카치의 심중에 비극의 역할을 떠맡은 것으로 짐작된 것은 정치일지도 모른다. 물론 정치는 신을 대신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 비판의 자리에서 정치가 들어섰다는 것, 언제나 유사-신학적인 세계로 정치를 동결시키거나 아니면 근본적인 우연성에 정치를 개방시키거나 하는 방식으로 정치가 언제나 원인의 문제를 다루고자 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것을 되짚어 볼 자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신이 사라진 이후에 자유를 떠맡은 주체, 자유의 심연으로서의 주체라는 널리 알려진 주장을 상기하며 주체의 자유란 것을 상기하는 것으로 멈추도록 하자. 그리고 이와 더불어 주체의 자유를 어떻게 원인을 발견하고 제어하는 행위와 결합시킬 수 있냐는 물음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을 덧붙이도록 하자. 원인을 더 이상 신에게서 찾을 수 없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원인을 발견하여야 할까. 과학적 이성을 통해 이유로 알려진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제어하는 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유를 초과하는 원인을 애타게 찾으려 할 때 우리는 재난과 불행을 그저 과학 다큐멘터리의 초연한 목소리가 말하듯이 정연한 객관적 세계의 규칙과 질서로 환원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원인의 자리는 제거할 수 없는 과잉으로서 여전히 남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이는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관계를 둘러싼 우리 시대의 논쟁의 무대가 되기도 한다.
4.
그렇다면 이런 과잉으로서의 원인은 근대 세계에서 제거하고 저항할 수 없는 숙명이므로 불가피한 것으로서 기꺼이 인정하고 이성의 폭주를 막는데 전력하여야 하는 것일까. 다시 말해 인간의 무제한적인 자유가 주어졌다지만 그것이 항상 자신의 자유를 산산 조각낼 수 있는 파국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겸허히 인정하고 그러한 자유의 과도한 사용을 억제하고 냉정한 실용적 태도를 살아가면 충분할 것일까. 그러나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우리가 목격하는 현실은 전연 다른 모습인 듯하다. 앞서 보았듯이 우리는 객관성 없는 세계, 즉 우리에게 나타는 바대로의 세계, 아사다가 말한 대로라면 주체화되기 만할 뿐 그것을 어떻게 조정하고 지배할지 모르는 세계가 주어져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럴 때 우리는 새로운 윤리적 용기를 요청받는다. 믿을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일 뿐이라는 것, 우리 내부에서 비롯되는 공감과 연민의 몸짓에 의탁하는 것을 빼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없다는 서글픈 주장들이 우리 주변에서 맴돈다.
그러나 그런 윤리적인 유혹은 세계를 변형할 수 없다는, 세계를 부정할 수 없다는 체념을 순순히 수락한다는 것에서 문제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러한 비순응적 순응이라는 몸짓은 사회의 외부, 세계의 바깥에서 윤리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낸다고 상상함으로써 객관적 세계로부터 떠날 수 있다고 순진하게 믿는다. 그렇지만 그런 윤리적 주체를 상정하는 것 자체가 물신화이다. 세계란 언제나 주체를 통해 매개된 채 존재한다. 그것은 나의 의식적 반성의 효과로서만 세계는 있을 뿐이라는, 흔한 말로 모든 실재는 담론적인 실재일 뿐이라는 요즈막의 포스트구조주의적 상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담론적으로 매개된 실재만이 있을 뿐 세계 그 자체는 없다는 말은 주체의 외부에 세계가 놓여있다는 흔한 이분법을 되풀이하면서 둘이 매개되어 있음을 무시한다. 둘이 매개되어 있다는 말은 객체 안에 존재하는 주체의 차원 혹은 그 역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존재가 주체에 ‘대하여’ 존재할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자적인 존재를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들어낸 것은 우리 자신의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본주의 하에서의 노동의 소외를 비판하는 것, 노동생산물의 가치가 그것에 투입된 노동의 가치와 일치하도록 노동증권을 발행함으로써 착취를 극복할 수 있다는 프루동 식의 발상은 상품의 형이상학에 대한 오해로부터 비롯된다. 상품이라고 말할 때 이는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노동생산물이라고 말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마르크스는 노동이라는 주관적인 활동은 언제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이라는 것을 통해 규정된다고 말한다. 그 말은 노동이란 활동이 객관화될 때 그것의 가치는 그저 사회의 평균적 노동시간이라는 척도를 통해 규정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품이라는 형태로 노동생산물이 존재하게 되는 한 내가 노동을 하게 되는 방식은 완전히 바뀌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상품을 더 많이 생산함으로써 이윤을 얻고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자본가/노동자 편에서의 물신주의는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은 이미 주어진 노동시간의 평균값이라는 뜻에서의 소여로서의 세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추가적인 잉여가치를 얻기 위한 맹목적인 주관적 충동을 말하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상품을 두고 그것의 ‘유령적 대상성(spectral objectivity)’을 말할 때, 그는 전적으로 객관적인 것도 아니면서 주관적인 것도 아닌, 마르크스 자신의 말을 빌자면 감각적이면서도 초감각적인 것으로서의 주체-대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노동이라는 합목적적인 주체의 활동의 소산이면서도 주체를 끊임없이 충동질하는 욕망이기도 한 셈이다. 이럴 때 우리는 객관적으로 매개된 주체 혹은 주관적으로 매개된 객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보다 강하게 말하자면 존재는 주체에 의해 매개된 것으로서만 존재한다는 말은 주체의 능동성이 아니라 대상의 능동성이란 역설을 가리키는 것으로 고쳐 읽어볼 수 있다. 지젝이 어느 글에서 간지럼을 타는 주체(ticklish subject)라고 말한 바처럼 주체는 대상에 의해 간지럽혀진다. 슬라보예 지젝, ‘까다로운 주체’, 이성민 옮김, 도서출판b, 2005.
주체의 전환은 대상을 다른 방식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것이고 그렇게 부정 즉 규정을 통해 재인식된 대상은 주체로 하여금 전과 같은 방식으로 대하지 못하게끔 이끈다. 이를테면 우리는 더 이상 조국의 발전을 위해 땀 흘려 일하는 산업역군이 아니라 한 줌의 배부른 가진 자들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일 뿐이라고 주체적 위치의 전환을 하게 될 때 실제 바뀌는 것은 주체 이상으로 세계이다. 세계는 다른 좌표 위에 배치되고 노동자들은 그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라는 요청을 쏟아낸다. 그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달리 보이고 세계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것이 지젝 식으로 말해 새롭게 상징화된 대상 세계를 통해 간지럼을 타는 주체가 만들어진다는 셈이다. 즉 주체는 짐작과 달리 지극히 수동적일지도 모른다.
5.
“파국을 진리의 원천으로 비극적으로 갈망해서는 안 된다. ‘결과’를 형이상학적으로 무시하거나, ‘예외’를 바로크적으로 즐겨서도 안 된다.” 프랑코 모레티, ‘공포의 변증법’, 조형준 옮김, 새물결, 2014, 364쪽.
어느 글에서 모레티는 이렇게 말한다. 위기 혹은 파국을 진리가 스스로 계시하는 순간으로 바라보려는 충동에 대하여 내리는 경고이다. 이는 파국을 다시 옹호하는 이들과 견주면 너무나 소심한 반응이라 여길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와 유사한 발언을 하는 보들레르의 말을 상기하면 조금 더 선명한 인상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거리, 하나의 화재, 하나의 교통사고는 사회적 계급으로 정의되지 않는, 그저 사람으로서의 사람들을 집합시킨다. 그들은 구체적인 집합에 참여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사적 이해의 국면에 사로잡혀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추상적이다. 자신들의 사적 이해관계 속에서 ‘공통의 물건’을 중심으로 시장에 모여드는 고객이 그들의 모델이다. 이들 집합은 흔히 통계적 실제밖에는 지나지 않는다.” 발터 벤야민,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보들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프에 관하여 외’, 김영옥, 황현산 옮김, 길, 118쪽.
보들레르의 문장들을 읽으면서 그간 우리가 겪었던 일련의 사태들과 그에 대한 반응들을 상기할 수 있을지 않을까. 거의 타성이 되다시피 한 윤리적 능동성이란 규범을 생각해보도록 하자. 이는 거의 참기 어려울 만큼 “참여하라, 참여하라, 그것이 너의 윤리적인 의무이다”라고 다그치는 무언의 압력을 말하다. ‘촛불 시위’ 이후 우리는 ‘조직 없는 다중’으로서 어떤 위계와 권위적인 지침 없는 자유로운 윤리적 주체로서, 모든 사태에 적극적으로 윤리적으로 참여하도록 독려 받아왔다. 광화문이거나 대한문 앞이거나 밀양이거나 강정마을이거나 아니면 두리반 칼국수집이거나 마리 카페이거나 그 모든 곳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극적인 윤리적 열정을 가지고 참여하여야 할 순간들이 있다고 통지를 받는다. 그러나 그 자리에 모이는 다중은 추상적인 세계를 상대할 뿐이다. 그리고 각각의 사태는 모두 동등한 보편적 대의를 위해 헌신해야 할 무엇으로서 상징화된다. 게다가 그런 사태는 너무나 많고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은 채 다음에 오는 화려한(?) 사태에 자리를 넘겨준다. 이는 실은 너무 퇴폐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파국의 시학을 열정적으로 발언하는 철학자나 시인의 말을 들으면 나는 솔직히 우리 시대의 윤리적 데카당스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한 하나하나의 사태들은 지극히 추상적인 주관적 윤리를 요청할 뿐이다. 그것은 해결해야할 사태의 총체 속에 등록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세계를 부정하는 몸짓인척 하지만 부정으로부터 수축된 더 심하게 말하자면 부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행위처럼 보일 지경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팽목항에서 밀양으로 다시 어딘가로 희망버스를 타고 떠난 벗과 동지들에게 미안하고 착잡할 뿐이다. 어느 순간이나 ‘운동’은 너무 많고 너무 강하지만 그것은 또한 너무 적고 너무 유약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길게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세계 없는 세계에서 우리를 경악시키는 주관적인 충격의 연속으로서의 세계, 윤리적 파국의 이미지로 전환된 세계에 당도하게 되었다면, 이는 그렇게 가볍게 여길 일은 아닐 듯 싶다. 나는 쌍용자동차사태를 비롯한 중요한 사태에 개입하는 담론이 “외상후 증후군”과 같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에 놀라곤 한다. 그것은 고통을 겪는 심리적인 개인을 전면에 내세울 뿐 그들을 투쟁 속에 있던 집단적인 사회적 주체 혹은 계급으로서 재현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불쾌한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그것이 정치와 윤리의 관계를 왜곡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정치의 윤리란 부정 혹은 투쟁을 주체화하는 것이 곧 부정/투쟁의 대상을 규정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흔히 정치의 윤리화라고 말할 때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나는 그것을 정치의 도덕화라고 불러야 옳다고 본다. 정치를 도덕화한다는 것은 정치를 도덕적인 규범의 문제로 환원하고,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세계에 어떤 책임이 있으며 어떻게 그것을 감당할 것인가로 묻는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즉 그것은 세계 없는 주체의 자폐적인 반성을 가리킬 뿐이다.
반면 정치의 윤리화란 부정하는 주체를 규정하는 일은 부정하는 대상을 규정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이 때 주체화란 곧 객관화이고 헤겔식 어법을 빌어 말하자면 주체는 실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파국의 시학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것, 사상적 문제로서의 세월호, 주관적 문제로서의 세월호라는 판단에서 벗어나 주관적이면서도 ‘동시에’ 객관적 문제로서의 세월호라는 문제에 이르러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객관적 문제로서의 세월호란 다양한 객관적인 기술적, 공학적, 행정적 등의 이유에 의해 초래된 불행한 사고로서의 세월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주관적인 것이 삽입된 것으로서 이미 말한 대로라면 주관적인 것에 의해 매개된 것으로서의 세월호일 것이다.
6.
그로부터 이제 우리는 국가란 문제로 옮겨갈 수 있게 된다.
“흐느낌 사이로 돌림노래처럼 애국가가 불려지는 동안, 악절과 악절들이 부딪치며 생기는 미묘한 불협화음에 너는 숨죽여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하면 나라란 게 무엇인지 이해해낼 수 있을 것처럼.” 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18쪽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우리는 이런 구절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국가란 무엇인가란 신음과 탄식을 떠올리게 된다. 다시 국가란 무엇인가란 물음을 던지는 이들이 넘쳐난다. 어느 시사주간지가 세월호 사태 이후 제호로 삼았던 말처럼 “이것이 국가인가”를 묻는 질문이 폭발한다는 것은, 일견 가늠이 되면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첫 번째 그것은 너무나 가볍게 신자유주의 비판의 상투적 수사에 편승한다. 그것은 국가의 퇴각 혹은 국가의 안전으로부터의 철수라는 흔한 주장에 의지한다. 안전(security)을 방기한 국가 오직 공안과 형벌의 기능에만 유능한 국가를 고발하며 경찰 국가, 호러 국가, 비-국가, 숫제 국가 없는 세계라는 투의 비난이 세월호 사태를 둘러싸고 계속해서 꼬리를 문다. 그렇지만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국가 비판이 현재 처한 문제를 사변화하는 무대가 될 수 있을지 진심으로 의문이다. 그렇다면 국가를 다시 불러들이자는 것인가. 해방적 정치는 그런 방식으로 정치에 관한 사유의 노선을 구성하려는 시도를 분명히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장에 내포된 두 번째 문제는 그것이 충분히 신자유주의적 국가에 대하여 비판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푸코 식으로 말해 주권적 국가로부터 안전기구의 메커니즘으로 전화한 국가는 더 이상 정의나 공공선과 관련이 없다. ‘사회 국가’라고 말하는 복지국가란 안전으로 알려진 일련의 ‘(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다양한 지식, 장치, 제도, 법률의 복합체일 뿐이다. 따라서 사회국가란 이미 더 이상 일반의지나 공공선을 강제하는 국가가 아니라 가능한 적게 통치하는 국가, 변화하는 사실의 세계에 따라 자신의 통치의 내용과 형태를 조정하는 국가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의 쇠퇴나 몰락은 자유주의의 시점 속에 기재되어 있다. 국가는 정의의 윤리적 시좌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냉소적인 사실의 지평 위에서 자신의 무능과 실패를 조정한다. 국가개조론이 말하는 국가 장치의 비효율, 비능률이란 수사는 기만으로 조롱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말은 진지하고 계산된 것이며 자신의 이념에 충실한 것이다. 얼마나 효율적이고 능률적으로 작동하는지 현실에 비추어 통치를 개선하고 개량하는 것이 자유주의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점은 이것이 국가인가라고 말하며 경악하는 이들에게서 국가가 사회적 총체성을 직접적으로 대의할 수 있으며 또 그러해야 한다는 환상을 발견한다는 점에 있다. 이런 환상은 지금은 인기 없는 주장이지만 여전히 고수할 가치가 있는 계급 국가란 인식을 단숨에 추방한다. 계급 국가란 개념이 국가란 결국 지배계급의 국가이거나 계급지배의 도구임을 가리킨다고 해서 나는 굳이 크게 틀린 것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비 같은 이가 말하는 것처럼 더 이상 지배계급은 더 이상 우회하여 자신의 정치적 대표자에게 정치를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위원회로서 스스로 국가를 인수하고 관리한다. 그러나 계급국가란 개념의 요점은 정치란 근본적으로 당파적이란 것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치란 부분들의 총화로서의 전체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총체화 할 수 없는 적대 혹은 분열을 억압하거나 그것을 치환하는 영속적인 과정일 뿐임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나파르티즘이나 군사독재는 정치의 예외적인 형태인 것이 아니라 본원적이고 정상적인 형태의 정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사회 위에 선 정치가 아니라 정치에 의한 사회적인 것의 설립이라는 것이다. 사회란 것이 국가가 관리하고 통치해야 할 주어진 사실의 세계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정치와 사회의 관계를 표상의 문제로 환원한다. 그리고 국가는 사회적 총체성을 대의하는 공공선으로서 상상된다. 이는 놀라운 퇴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앞서 말한 바 있는 오직 객체 없는 주체, 세계로부터 물러난 채 트라우마, 애도, 재난, 파국 등의 이름으로 자신의 주체적 위기를 반성하는 주체가 번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짐작케 한다. 국가는 정의, 공공선, 안녕의 윤리적 이상을 떠맡는 주체로서 격상된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직면한 갈등적인 사태를 국가 비판이라는 형식 속으로 운반한다. 이는 실은 어처구니없는 역설을 보여준다. 우리는 금융 위기 이후 세계를 뒤덮은 자본주의적 위기를 목격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말 그대로 재현불가능한 숭고처럼 바라보는 듯하다. 그것이 주체화되기 어려운 한계를 가리키는 양 말이다. 반면 우리는 재난, 참사, 외상적 위기를 겪게 하는 사태들에 매혹당하고 열중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자신이 겪은 분노와 우울, 고통을 호소한다. 마치 모두가 현상학자인 것처럼 나에게 나타나는 바대로의 세계 너머의 세계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 둘을 어떻게 좁힐 것인가. 아니 앞서 말한 대로 ‘매개’할 것인가. 그리고 자유의 대가로서 세계의 무의함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유를 세계의 원인을 확정하고 그것을 지배하는 자유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 그것은 영어에서 원인(cause)을 가리키는 낱말의 또 다른 말뜻인 대의(cause)를 구축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을 정치적으로 주체화하는 것이지 않을 수 없다. 계급투쟁은 계급 간의 투쟁이 아니라 계급을 만들어내는 것이란 말을 따른다면, 다시 말해 새로운 대립의 배치를 만들어냄으로써 세계를 존재적으로 전환하면서 동시에 새롭게 주관화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좇자면, 우리는 세월호 사태란 없다고 기꺼이 말해야 한다. 이것이 어떻게 원인과 연결되어 있는지 물어보도록 하는 기회가 아니라 그 원인과 대면하는 것을 회피하도록 한다면, 즉 자본주의적 적대와의 대면을 회피하도록 하는 구실이 된다면, 우리는 고작 비극 없는 멜로드라마의 세계에서 배회하고 말 것이다.

_세월호 토론회를 위해 쓴 비망록

플래시백의 1990년대: 반기억의 역사와 이미지


장현 – 빗속의 여인

시작이라고 알려진 찌꺼기
<응답하라 1997>과 <응답하라 1994> 연작 드라마 시리즈는 어쨌거나 ‘리얼리즘’이 처한 야릇한 형국을 말해주는 데 손색이 없다. 그것을 리얼리즘이라 불러도 좋다면 말이다. 예술론에서 흔히 리얼리즘이라고 일컫는 미적 정치의 규범을 <응답하라>에서 발견할 수 있는 리얼리즘과 대응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리얼리즘이란 문학이론이나 미학사에서 말하는 그 리얼리즘과는 사뭇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회화의 역사에서 말하는 리얼리즘, 그러니까 인상주의 이후 현대 회화의 혁명을 일컬을 때 그것의 전사(前史)로서 말하는 원근법적인 환영에 근거한 리얼리즘 같은 것을 말할 때의 그런 리얼리즘은 아니다. 혹은 문학에서 3인칭 객관적 시점에 근거하여 사태를 제시하는 근대적 소설의 리얼리즘을 비난하며 반-소설이나 누보로망에서 성토했던 그 리얼리즘을 말하는 것 역시 아니다.
차라리 여기에서 나는 리얼리즘을 역사적인 미적 상징화 양식으로서가 아니라 현실을 상징적으로 총체화하려는 모든 미적 기획 그 자체로서 간주하고 싶다. 그렇게 생각할 때, 리얼리즘이란 특정한 역사적 단계에 성행하고 소멸하거나 쇠퇴한 미적 조류나 스타일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리얼리즘은 피할 수 없고 언제나 이루어야할 목표이다. 그것은 현실을 표상하지 않은 채 현실을 인식하고 또 그것에 개입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마르크스주의 문학이론가들이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이용해 리얼리즘을 파악하려고 하는 시도를 떠올린다. 이데올로기의 바깥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리얼리즘을 떠난 채 감각하고 체험하고 인식한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데올로기의 영도(零度)는 곧 리얼리즘의 영도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리얼리즘을 생각하는 것은 영화를 이해할 때 특히 쓸모 있을 것이다. 음모론적 SF 영화는 반리얼리즘의 극치인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을 전체화하고 그것을 서사적인 시간 속에서 재현하려는 리얼리즘적인 충동을 떠난 채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이런 접근을 대표하는 이는 프레드릭 제임슨일 것이다. Fredric Jameson, Archaeologies of the future: the desire called utopia and other science fictions, New York: Verso, 2005.
그런 점에서 그를 두고 리얼리즘적인 몸짓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응답하라> 시리즈 역시 그럴 것이다. 그것은 1990년대라는 시대를 회상하고 기억하는 시늉을 취하며 역사적 시간의 리얼리티를 제조하려 진력한다. 그리고 <응답하라>의 성공은 우리가 채택하고 즐기는 기억의 양식에 대하여 적지 않은 질문을 던지도록 이끈다. 많은 이들이 한국 사회에서 근본적인 감각적 전환이 나타난 시기를 1990년대로 상정한다. 본격적인 소비문화의 형성, 개성을 존중하는 적극적 자기표현의 증대, 기율적, 가장적인 권위에 대한 저항 등을 언급하며 민주화 이후의 감성 혁명을 역설하는 것은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지만 과연 그럴까.
먼저 이런 물음을 떠올려보자. 진정으로 감각적 전환을 촉발한 진정한 단절적 시점은 1980년대 아니었을까. 1990년대가 가진 진정한 효과라 한다면 감각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관계를 인식하는데 있어 1980년대의 효과를 제거하거나 억압한데 있지 않을까. 그리고 감각적인 전환의 시대의 출현을 나타내는 범례로서의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발견하는 감각적인 것은 실은 감각적인 것의 몰락 혹은 부패를 가리키는 것이지 않을까. 바꿔 말해 1990년대의 감성 혁명이란 감성적인 것과 공동체의 관계를 제거하거나 억압함으로써 생성된 부산물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할 때 1990년대의 감성혁명, 주체의 발견 운운은 실은 감각적인 것이 불모화(不毛化)되고 말았음을 보여주는 증후이자, 감각적인 것을 주체화할 수 없게 되었음을 말해주는 표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뒤에서 다시 살펴보겠지만, 랑시에르(J. Ranciere)로부터 배울 수 있듯이 감각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관계는 공동체의 분할과 적대라는 차원과 분리할 수 없다. 만약 그런 차원과 분리된 채 감각적인 것만이 남게 될 때, 그것은 유행 혹은 패션에 머무르고 만다.
대중잡지에 실린 화보들은 유행을 제시한다. 그것은 최신의 감각, 미의 감각, 가치 있는 감각을 자랑하고 뽐낸다. 그러나 이런 유행의 주체는 특정화될 수 없다. 그것을 선택하거나 무시하는 다양한 개인들이 있을 뿐이다. 유행, 패션의 주체란 말은 멍청한 동어반복적인 표현이다. 패션이란 패션의 주체가 듣고, 보고, 입고, 즐기는 것이며, 패션의 주체란 그것을 듣고, 보고, 입고, 즐기는 사람이란 말이다. 둘은 서로를 환원적으로 규정하며 주체(화)의 여지를 갖지 않는다. 그럼에도 패션이라는 취향의 세계, 습속의 우주 속에 사는 주체를 부를 이름이 있다면 개인일 것이다. 이 개성적인 취향의 주체로서의 개인이란 가짜 주체는 감각적인 것을 주체화하는 데 실패한 주체들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꺼이 1980년대와의 단절이자 새로운 시작으로서의 1990년대라는 시각은 착시에 불과하며 외려 1990년대는 1980년대의 연속이자 그 효과로서 찌꺼기라는 것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1980년대에 등장했던 이의의 공동체가 습속과 취향의 동일성에 대한 비판을 통해 감각적인 것을 마침내 의식적인 고려이자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감각적인 것의 폭발을 초래했다고 생각한다. 시의 시대라는 전무후무한 문학의 성행, 민중미술로 대표되는 한국 현대미술의 급진적 단절, 영화운동의 출현을 비롯한 마당극, 소극장 연극운동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연행예술의 분출 등을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1980년대가 감각적인 것이 극적으로 등장한 시대이자 감각적인 것은 곧 정치적인 것이라는 것이 거의 모두에게 직관적으로 승인되었던 시대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인 것, 즉 적대적 차이의 질서를 감각적인 것으로 외재화하려는 충동은 1980년대의 급진정치가 퇴락하고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쇠락하거나 소멸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에 활성화되었던 감각적인 것을 통해 사회적 현실을 변별하고 구분하려는 심미적 삶의 형식도 함께 그런 운명을 겪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1990년대라는 시대가 하나의 단절로 보이는 것은 실은 그 시대가 소실매개자로서 기능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짐작할 수 있다. 감각적인 것 혹은 미적인 것을 현실과 역사적 시간을 식별하는 일차적인 매체로서 정립한 것은 1980년대였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며 감성을 자율화하며 이를 역사적 시간을 분별하고 재현하는 원리로서 자리 잡도록 하는 전환이 나타난다. 물론 그것은 더 이상 전통적인 예술의 몫이 아니었다. 이를 떠맡은 것은 외려 대중문화를 비롯한 소비문화 자체였다. 그런 연유로 1980년대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의 쟁점이야말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를 1990년대와 다르지 않았던 감각적인 질서로 흡수함으로써 1980년대의 이례성을 삭제하는 것, 1990년대에 이르게 된 감성적 형식의 자율성 속에서 1980년대를 아무런 형식을 갖지 않는 미적 재현의 소재로서 환원하는 것, 아마 이것이 2000년대에 제작된 한국영화가 고통스럽게 이뤄낸 성과일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이런 가정을 떠올리며 2000년대의 몇몇 한국 영화를 다뤄보려 한다. 그 사례에 대해 제기하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첫 번째 풍속 혹은 습속의 역사로서 시간 혹은 시대를 구성하는 새로운 역사 드라마의 리얼리즘적인 특징을 분석해보자는 것이다. 두 번째로 그런 역사 드라마가 어떤 미적 형식을 통해 자신의 기획을 조직하는지 따져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역사 드라마의 리얼리즘이 반동적인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데카당트’한 리얼리즘을 생산하며 역사적 시간과 이미지의 관계를 조직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밤과 음악 사이” – 노스탤지어와 상기(想起) 사이
“‘마음은 그곳을 달려가고 있지만 가슴이 떨려오네.’ 비트가 빨라진다. 20년 전처럼 가슴은 떨리지 않지만 대신 심장이 뛴다. 음악이 무지막지한 수준의 데시벨로 고막을 울려대고 엉덩이를 두드리는 덕분이다. 옆 테이블의 사람들은 벌써 흔들기 시작했다. 이상우의 ‘피노키오춤’이 저렇게 박자가 빠른 줄 예전엔 몰랐다. 20년 전의 심장박동 수를 만들어내는 이곳은 서울 홍익대 앞 ‘밤과 음악 사이’다. … 음악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로 바뀌자 환호가 터졌다. 서태지가 목 놓아 ‘떼창’하는 손님들을 본다면 골든벨을 울리고 싶겠다. 어차피 대화가 불가능한 데시벨이다. 하나둘 춤추기 시작했다. 밤 10시를 넘어서자 ‘밤과 음악 사이’는 디스코장으로 바뀌었다. 방금 비행을 마치고 돌아온 듯 항공사 승무원 제복을 단정히 입은 여성도, 양복에 넥타이를 맨 차림의 회사원도, 넓은 챙 모자를 눌러쓴 ‘홍대족’도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들썩인다. 패티김의 젊은 시절 사진이 걸려 있고 ‘뽀빠이 과자’가 기본 안주로 나오는 이곳은 ‘7080’을 안주 삼아 1990년대의 음악을 들이켜는 곳이다. 1층에서는 비교적 점잖은 가요를, 지하층에서는 댄스곡 위주의 가요 리믹스를 틀지만, 그래봤자 소용없다. 1층 좁은 홀에서도 손님들은 노래 <담다디>를 핑계 삼아 ‘이상은 춤’을 춘다.” “돌아온 3040, 젊음의 행진”, <한겨레21>, 2012. 03. 12, 제901호.
1970년대산, 1990년대 세대, 소비의 신인류 운운. 그들은 기억의 주체이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자신이 살았던 역사적 시기를 기억한다. 그 기억에서 역사적 시간은 인용한 기사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7080’을 안주 삼아 1990년대의 음악을 들이키는” 것. 이 때 70년대와 80년대는 안주 삼기 좋은 그 시대의 풍속이다. 그것은 그 시대에 풍미했던 유행가와 패션, 헤어스타일, 군것질 거리 그리고 상품의 디자인 같은 것이다. 90년대 역시 다르지 않다. 그들이 기억하는 90년대란 바로 그 시대의 대중음악의 풍경이다. 이런 식으로 시대를 기억하는 것이 기억하기의 관례로 굳어졌다는 것을 굳이 지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7080’이라고 말하는 역사적 시간과 1990년대라는 역사적 시간은 “밤과 음악사이”라는 공간을 채운 이들에게 분명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패티김”과 “하여가”, “뽀빠이과자” 그리고 “담다디” “피노키오춤” 같은 잡동사니의 물렁한 덩어리이다. 그들이 기억하는 시간은 이런 유행과 습속의 집적(集積)이다. 따라서 기억은 그 때 무엇을 들었나, 무엇을 입었나, 무엇을 가지고 놀았나, 그 때의 베스트셀러는 무엇이었나 따위 일 것이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둘러싼 소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디테일의 정수”라는 것도 전연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런 디테일의 리얼리즘을 포토-리얼리즘의 반-리얼리즘과 짝을 지워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너무나 세부적이지만 그 세밀함은 실은 상투적인 관념으로 대상화된 대상의 세밀함이라는 것.
이제 우리는 하루키적 리얼리즘이라 불러도 좋을 리얼리즘의 기괴한 풍경으로 이동하게 된다. 풍경은 특정한 역사적인 시대의 삶을 상징화하는 도식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특정한 역사적 시대는 그것을 풍경으로서 미적으로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홍상수 영화에서처럼 삽화적인 사건을 위해 마련된 가장 적절한 장소로서의 풍경일 수도 있을 것이고 이창동의 영화에서처럼 시대를 환기하기 위한 설정 숏이나 장면의 분할 면에서의 풍경일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아예 풍경을 제시하는 것의 곤란을 말하는 듯한 그로테스크한 외적 세계의 환유로서의 풍경을 제시하는 봉준호의 일부 영화에서 풍경을 상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시각적인 이미지로서 대상화되는 풍경만이 여기에서 거론하는 풍경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풍경은 개념이자 도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풍경이란 주체가 상대하기 위해 재현되는 현실, 그리고 그렇게 그것을 주조하는 감각적인 매개의 원리 그 자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미술평론가인 케네스 클라크가 근대적 풍경화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오늘날에도 농업노동자는 자연미에 열광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사회집단”이라고 지적할 때 Kenneth Clark, Landscape into art, Penguin Books, 196(李孝德, ‘표상공간의 근대’, 박성관 옮김, 소명, 2002, 85면에서 재인용).
, 그는 근대 세계에 특유한 시각적 이상(理想)으로서의 풍경을 역설한다. 영어 낱말에 존재하지 않았던 랜드스케이프(landscape)라는 어색한 어휘는 네덜란드 풍경화를 도입하고 그런 화풍에 따라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기 위해 고안된 신조어라고 알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지각양태’로서의 풍경에의 눈길이 등장한 과정에 대한 개관으로는 앞의 글을 참조하라. 81-88면.
매일 마주하는 삶의 세계로서의 외적 실재를 관조적인 미적인 대상으로 구성할 수 있을 때 풍경이란 것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를 가능케 하는 요인은 쉽게 떠올려 볼 수 있다. 여가활동으로서의 여행의 등장, 자본주의적 도시화에 따른 목가적인 전원이라는 장소에 관한 심미적 이미지의 대두 같은 것을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학적인 설명에 더해 가라타니 고진을 좇아 근대적인 원근법과 언문일치(지적 언어와 세속어의 일치)의 출현에 따른 전환과 이를 매개한 자본주의의 출현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 ‘근대문학의 종언’,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06.
그렇지만 이러한 근대적인 초월론적 원근법이 등장하며 풍경이란 이름으로 대상화되는 실재가 출현했다는 것이, 동시대의 풍경에 대한 논의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마땅히 우리는 이런 근대적 풍경이 역사적으로 변용되었으리라 짐작하고 풍경의 후기 근대적인 도상과 코드를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작업을 위한 야심적인 시도로서 기 드보르의 ‘스펙터클의 사회’나 장 보드리야르의 여러 역작을 반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여기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역사적 시대의 풍경을 조직하고 그것을 상(像, vision)으로서 표상하도록 하는 매개자로서 기억이다. 기억은 지나간 시간을 이미지로서 그러모으고 그것에 초점을 부여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는 이의 시점을 생산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대상화하고 또 주관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사례화된 그렇지만 1990년대부터 이미 실행되고 또 진화하여 온 이러한 역사적 기억하기의 방식이란 무엇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 기억하기의 역사적 성찰 가운데 주목할 만한 시도일 프레드릭 제임슨의 “노스탤지어” 영화 분석을 참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알다시피 제임슨은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라는 저작에서 노스탤지어 영화를 분석하며 향수(nostalgia)를 역사적 기억의 코드이자 미적 담론(aesthetic discourse)으로서 정의한다.
그가 향수영화가 채용하고 전개하는 역사적 표상의 특징으로 꼽는 것을 요약하면 이럴 것이다. 향수란 과거라는 역사적 시대를 “유행(fashion)의 변화”와 “세대”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굴절시키면서 혼성모방(pastiche)을 집합적, 사회적 차원으로 투여한다. 그리고 이는 역사적 내용의 표상에는 전연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양식적인 함축(stylistic connotation)을 통해 과거성(pastness)이라는 것을 1930년대스러움 혹은 1950년대스러움과 같은 번지르르한 특성들을 통해 접근한다. 이렇게 될 때 미적 양식의 역사가 실제(real) 역사를 대체하면서 과거성(pastness)과 사이비역사적인 깊이감을 만들어내는 작인으로서 기능하게 되고, 상호텍스트성(intertexutality)이란 것이 주된 미적 코드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런데 조지 루카스와 로만 폴란스키, 프란시스 코폴라 등의 감독을 겨냥해 말하는 향수영화의 미학적인 양식을 2000년대 이후 <박하사탕>의 제작년도가 1999년이었음을 감안하면 1990년대 후반 이후의 영화라고 불러도 좋겠지만 여기에서는 일단 편의상 2000년대의 영화로 부르기로 한다
한국영화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F.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1991, pp. 19-22.

이를테면 이창동의 <박하사탕>과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에 대해서도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금방 떠오르는 몇 가지만을 열거하자면 이럴 것이다. 먼저 이 영화는 1980년대라는 외상적인 역사적 시대를 기억하고자 시도한다. 그렇다면 1980년대의 역사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두 감독은 모두 1980년의 광주항쟁과 민주화운동 혹은 그것의 이면으로서의 88올림픽을 역사적 시기의 내용으로서 인용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다른 역사적 내용 속에 포함된 서사적 사태들을 규정하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것은 1980년대에 벌어진 숱한 역사적 사태들 가운데 하나로서 그친다.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에서 연쇄살인이라는 알레고리는 역사적인 시대를 표상하기 위한 적극적인 장치로서 기능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알다시피 영구미제의 사건으로 머물고 만 그 사건은 시대 자체의 알레고리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은 시대의 알레고리를 표상하기 위해 제시된 서사적인 장치라기보다는 스릴러라는 장르적 형식의 쾌락을 위해 동원된 순수하게 형식적인 수단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이는 <박하사탕>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를 역사적 시대의 외상적 체험을 멜로와 결합하는 서사로서 볼 때 우리는 그것이 켄 로치의 멜로(?) 영화인 <랜드 앤 프리덤>과 <칼라 송> 같은 영화와 얼마나 먼지 짐작할 수 있다. 니카라구아 내전과 스페인 내전 시기에 조우한 남녀의 사랑이라는 얼개를 쫓는 두 영화에서 사랑과 내전이라는 역사적 체험은 도식적이리만치 서로에게 기입되어 있다. 반면 광주 진압과 1980년대의 학생운동가의 고문 경관의 체험을 상기하는 <박하사탕> 주인공인 김영호(설경구 분)에게 사랑과 역사적 사태는 썩 효과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물론 영화는 광주항쟁의 진압군으로서의 경험과 고문을 강요받으며 짐승 같은 자로 변신하며 자신의 사랑 앞에서 수치스러워하는 김영호의 이야기를 쫓는다. 그렇지만 그가 상기하는 1980년대는 잇단 플래시백을 통해 세부적으로 재현되지만 그 시대는 일종의 상투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이런 기억하기의 본보기를 훗날 <변호인>과 같은 영화에서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된다. 곧 다시 말하겠지만 김영호는 섬세하고 정교하게 1980년대를 기억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그 1980년대는 널리 알려진 의견, 다시 앞서 언급한 프레드릭 제임슨이 즐겨 인용하는 루카치 식의 표현을 빌자면, ‘대상화된 정신’으로서의 1980년대를 재현할 뿐이다.
다시 말해 과거로서의 1980년대는 의견이나 고정관념으로 고착된 1980년대(국가폭력, 군사독재 운운)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이 때 중요한 것은 상기되는 장면, 플래시백이라는 장치를 통해 재현되는 과거의 시간은, 정박할 주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방금 말했던 “김영호는 섬세하고 정교하게 1980년대를 기억한다”는 표현은 잘못인 셈이다. 그것은 기억하는 주관적인 개인에 의한 회상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똑같을 아니 더 심하게 말하자면 기억하는 주체가 누구더라도 상관없는 현실(reality)이다. 이는 봉준호의 영화에서도 동일하다. <괴물>의 경우를 보자. 그것은 숫제 캐릭터의 주관적인 심상으로서 이바지하는 것을 포기한 듯이 보이는 서울 올림픽 전후의 서울의 한강변 풍경과 괴물의 세계를 제시한다. 이것이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그렇지만 동시에 대중문화가 상투적으로 정형화한 이미지들을 열거하고 있을 뿐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는 역시 화성 인근의 쇠락한 산업도시와 그 주변의 농촌 풍경을 탐미적으로 묘사하는 <살인의 추억>에서도 동일하다.
한편 두 감독의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1980년대를 기억하는 세부적인 묘사의 테크닉에 있다 할 것이다. 특히 이들 감독의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사운드트랙을 사용하는 방식에 있다 할 수 있다. <박하사탕>의 마지막 야유회 장면으로 돌아가는 플래시백에서의 정겨운 노동자들의 합창이나 강요에 못 이겨 마침내 학생운동가를 잔인하게 고문하고 난 이후 룸살롱에서 희번덕거리는 교활한 미소로 마침내 짐승 같아진 자신을 인정하는 김영호가 김수철의 <내일>을 부르는 장면 등은, 사운드트랙을 사용함으로써 1980년대를 제시하는 방법을 반복한다. 마치 1980년대를 가장 생생하게 상기하는 장면, 시대의 외상(外傷)으로부터 영향 받은 개인을 드러내기 위해 당시 유행했던 노래가 불가피하다는 듯이 말이다. 물론 여기에서 초점은 노래가 아니라 유행하는 노래였다는 점이다. 그것은 영화 속의 인물들이 서사 속에서 자신을 상징화하는 부담을 외부화한다. 주관적인 기억의 바깥에서 시대를 환유하는 자질구레한 유행의 품목들이 시대를 상징화하는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면에서 두드러진 예는 <살인의 추억>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유제하의 <우울한 편지>가 시위 장면보다 이 영화에서 1980년대라는 시대를 상기하게 하는 가장 두드러진 장치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편 시위장면에서 이중 인화된 빨래를 걷는 장면으로 전환하고 다시 빗길을 걷는 여자의 모습으로 화려하게 이어지는 유명한 장면도 떠올려볼 수 있다. 이 신은 <살인의 추억>이 1980년대라는 서사적 시간성을 구성하는 가장 두드러진 장면 가운데 하나이다. 이 때 우리는 1980년대를 응축하는 두 개의 사태(시위와 살인사건)를 중재하는 장면에서 화면 외부로부터 장현의 <빗속의 연인>을 듣게 된다. 물론 우리는 곧 빗속에서 한적히 길을 걷게 될 여인을 만나게 될 터이다. 그렇지만 가사가 화면의 내용을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사운드트랙의 사용은 적잖이 장난스럽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 유머는 실은 1980년대라는 역사적 시대를 표상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실은 그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거나 거의 모든 일이 일어났지만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잡다한 다양한 사건들이 혼잡스럽게 뒤엉킨 시간대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대를 기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감독과 관객은 이미 1990년대의 편에 와 있다. 그들에게 1980년대라는 역사적 시대는 1990년대라는 역사적 시대의 평면 위에서 다시금 시기구분되어야 한다. 1980년대는 광주항쟁과 이를 잇는 민주화 운동이라는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통해 그 이전과 이후의 시대에 연속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1980년대라는 시간으로 분할하고 고립시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4.19 시대, 긴급조치 시대, 계엄령 시대 등의 시대 역시 연도(年度)라는 역사적인 시점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것을 1960년대나 1970년대라는 시기구분을 통해 기억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10년 단위로 시대를 구분하고 그것을 풍부한 경험적인 세부 사항의 내용으로 목록화하는 것은 1990년대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인용한 제임슨의 노스탤지어의 또 다른 특징, 즉 세대라는 주체가 기억하는 시간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앞에서 말한 영화들은 1990년대를 통해 기억하기의 미학적 양식을 세공하는 작업을 시도한 것으로 여겨도 좋을지 모를 일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두고 어느 관객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봉테일’이라고 지칭하며 1980년대를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고 혀를 내두르며 칭찬할 때, 실은 그가 감탄한 1980년대의 풍부한 재현이란 배역들의 절묘한 80년대 풍의 의상, <수사반장> 등과 같은 당시 TV 드라마의 인용, 무엇보다 그 수사반장에 출연했던 배우들을 영화의 배역으로 기용하는(변희봉의 캐스팅), 말 그대로 혼성모방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기억하기의 심미적인 양식화는 1990년대를 기억하기를 통해 일반화된다. 그리고 이제 기억하기의 주체는 본격적으로 ‘세대’화된다. 제임슨의 말처럼 향수라는 기억하기 방식이 역사적 시대를 유행 변화와 세대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굴절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유행과 세대라는 두 가지, 역사적 시대를 대상화하는 방식(유행으로서의 시간)과 주체화하는 방식(세대로서의 주체) 모두를 똑같이 찾아볼 수 있는 셈이다.
80년대의 실패로서의 90년대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2000년대의 한국 영화들이 왜 1980년대를 경유하여야 하였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아무런 저항감 없이 1990년대를 기억한다. 그것은 이미 역사적 시간을 재현하는데 어떤 미적 양식이 필요한가를 자의식적으로 반문할 필요가 면제되었음을 말해준다. 우리는 1990년대를 재현하는데 삐삐, 농구게임, 박광수 만화, 꼬깔콘, 빼빼로, 밀키스, 서주우유 등의 군것질, 486컴퓨터 등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그것이 얼마나 사실적인 재현인가를 말하기 위해 우리는 이른바 고증적 재현의 오점, 이른바 ‘옥의 티’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게 된다. 당시에는 아직 쿼터제가 도입되기 전이었는데 전후반제 뿐이었던 당시 농구경기를 쿼터제로 묘사하고 있다는 둥, ‘슬램덩크 31권’은 한참 뒤에 나왔는데 극중 주인공이 훨씬 전에 보고 있다는 둥과 같은 것이다. 누군가 “디테일의 정수”라고 말한 이 기이한 디테일은 물론 역사적 기억의 세부라는 것을 전환하는 몸짓이다. 흔히 근대 문학이나 현대 영화에서 우리가 세부라고 생각했던 것들, 수사적 양식이나 시점, 장르적 서사의 코드 같은 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러한 세부는 서사적 공간 안에 주체의 강력한 현존을 염두에 둘 때에나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주체가 무엇을 세계로부터 체험하고 또 그것과 대면하느냐는 물음은 그러한 세부들에 의해 조정되고 심각하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응답하라> 시리즈는 그런 구속으로부터 벗어난다. 그것은 더 이상 주관화해야하는 주체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때 일본의 문학이론가인 가라타니 고진이 발표한 <근대문학의 종언>이란 글이 입소문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다. 그가 자신의 글에서 한국 문학의 처지를 두고 직접 언급한 대목 탓에 그 글은 더욱 많은 이들을 솔깃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가 그 글을 보다 확장하여 일본의 현대 문학의 궤적을 주파하면서 쓴 『근대 일본에서의 역사와 반복』은 직접적으로 두 명의 일본 소설가인 오에 겐자부로와 무라카미 하루키를 대조하며 문학의 종언이라는 주제를 언급한다. 가라타니 고진, “2부 근대일본에서의 역사와 반복”, ‘역사와 반복’,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08.
그가 말하는 문학의 종언은 물론 문학이 끝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락이나 취미의 소비 행위로서의 문학이 끝났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실은 사실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장르 소설은 더욱 유행이고, 사람들은 이제 전과 같이 주눅 든 채 소설을 읽거나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소설은 어느 와인, 커피를 마실 것인가와 같은 가벼운 기분으로 소설을 골라 읽을 수 있다.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에서 말했던 것으로 지적이고 도덕적인 행위로서의 소설 쓰기와 읽기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학이 그러한 역할을 떠맡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역할을 계속하고 싶다면, 고진은 주저 없이 문학을 단념하고, 아룬다티 로이처럼 사회운동에 참여하거나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적잖이 충격적인 그의 단언은 강한 인상을 주지만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제한을 만회하는 분석이 오에 겐자부로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대조적으로 읽는 앞의 글이라 할 수 있다.
고진이 분석하는 겐자부로와 하루키의 소설은 묘한 대조를 이루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한 편은 ‘만엔원년의 풋볼’이고 오에 겐자부로, ‘만엔원년의 풋볼’, 박유하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7.
다른 한편은 ‘1973년의 핀볼’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1973년의 핀볼’, 김난주 옮김, 열림원, 1997.
이 두 소설을 대조하며 고진은 이렇게 말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것을(‘1973년의 핀볼’-인용자) 오에 겐자부로의 ‘만엔원년의 풋볼’의 패러디로서 의식하고 이름을 붙였는지 어떤지는 아무래도 좋다. 사실로서 그렇게 된 것에 주의하고, 양자의 비교가 무엇을 명백하게 드러내는지를 보면 된다.” 고진, 앞의 글, 140쪽.
그리고 그는 두 소설이 어떻게 풍경과 주관의 관계를 구축하는지 세심하게 분석한다. 이 자리에서 그의 분석을 되풀이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글에서의 논의를 위해 간략히 하루키적 리얼리즘의 면모와 관련한 고진의 분석을 참고하고자 한다. 고진은 하루키 소설에서 고유명이 없다는 것에 유의한다. 그것은 말 그대로 “나(私)) 따위는 없다”는 것 앞의 글, 142쪽.
이다. 하루키 소설은 얼핏 보면 사소설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고 고진은 말한다. “사소설이 전제하고 있는 경험적인 ‘나’가 부정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소설에서는 “‘나’는 어지러이 흐트러져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렇게 어지러이 흐트러져 있는 ‘나’를 냉정하게 주시하는 초월론적 자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하루키에 의해 출현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일본 근대문학의 원형적 장면들에서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보다 자세한 것은 다음을 보라. 가라타니 고진,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 박유하 옮김, 민음사, 1997.
이런 나의 발생은 당연히 풍경의 발생과 상관이 있다. 그 때의 풍경이란 아이러니의 발현으로서 외적인 풍경과 대립하는 내적인 인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풍경이란 것은 이러한 초월적 주관과 짝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풍경은 하루키에게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경험적 자아와 초월론적 주관 사이의 거리(라캉식 어법을 빌어말하자면 상상적 자아와 상징적 주체 사이의 거리)를 통해 내면이라는 세계를 가지게 된 주체에게 풍경이란 항상 초월론적 주관의 타자인 것이다. 그런데 그 타자로서의 풍경이 더 이상 아이러니의 의미를 가지지 않게 될 때, 하루키 소설에서 드러나는 풍경은 역사의식의 “공무화(空無化)”, “역사의 종언”을 주장하는 것이게 된다. 고진, 2008, 앞의 글, 151면.
그의 소설들에서 1961년은 리키 넬슨(Ricky Nelson)이 “헬로 마리 루(Hello Mary Lou)”를 부른 해이고, 1973년은 지상에 3대 밖에 없는 최고의 핀볼 기계가 만들어진 해이며, 1960년은 보비 비(Bobby Vee)가 “러버 볼(Rubber Ball)”을 부른 해이다. 그리고 이는 하루키 식의 리얼리즘, 즉 독아론적인 자기만이 존재하는 세계의 풍경이다. 혹은 “경험적 자기는 ‘축소’되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초월론적 자기는 극단적으로 비대해진” 세계의 풍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의 글, 159면.
그것이 굳이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표상되는 통속적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하루키에게서 주된 배경으로 등장하는 1960-70년대를 한국에서의 1980년대와 대조하는 것은 어떨까. 고진은 학원투쟁의 시기였으며 똑같이 ‘만엔원년의 풋볼’과 ‘1973년의 핀볼’의 배경이었던 그 시대를 지적한다. 그렇지만 하루키에게 그것은 제거되고 겐자부로에게는 알레고리로서 현전한다고 말할 뿐 그것이 어떻게 초월론적 자기가 대면하는 풍경을 초래하는지 상세히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간과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는 <응답하라> 시리즈의 전사(前史)를 구성하는 기억하기의 방식, 즉 노스탤지어적 기억이 등장하기 위한 조건을 생각하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하나의 기억하기의 방식이 새롭게 주관과 풍경의 관계를 조직하며 앞의 것을 대체하였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작 문제는 그러한 대체가 왜 일어났는가를 말함으로써 그러한 전환의 효과를 정치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의 1980년대의 풍경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고진의 생각과 갈라서게 된다.
1990년대 이후로서의 1980년대
고진은 흥미롭게도 하루키 식의 주관, 독아론적 자기의 출현을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서 구조에서 찾는다.
“‘비판’이라는 말은 취미판단의 영역에서 온 것이다. 취미의 영역에는 확실한 기준이 없다. 결국 어떤 의견도 ‘독단과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칸트는 진리나 선의 영역을 실은 취미판단의 영역에 지나지 않다고 간주했으며, 모든 판단을 취미판단과 같은 것으로 보려고 했다. 그것이 ‘비판’이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모든 것을 미적 취미판단에 종속시키는 독일 낭만파가 파생되어도 이상하지 않다. 무라카미의 ‘나’는 이런 의미에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정확히’ 읽고 있다고 해도 좋다. ‘나’는 모든 판단을 취미, 그러므로 ‘독단과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고 간주하는 초월론적 주관인 것이다. 그것은 경험적 주관(자기)이 아니다.” 앞의 글, 143면.
인용한 부분을 보면 우리는 의외라 하리만치 소박하게 취미판단의 문제를 성급히 초월적 주관의 독단적 자기 몰입으로 환원하는 해석을 마주하게 된다. 이런 식의 생각은 미적 판단 혹은 취미(taste)를 둘러싼 논의에서 흔하게 마주하는 상식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쨌든 너무나 안이한 해석이다. 칸트에서 독일의 낭만주의로 이어지는 미적인 상상력에 대한 고진의 해석은 취미가 초월론적 주관의 문제이기에 앞서 공동체의 문제였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미학 철학자인 실러를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마르쿠제의 ‘에로스와 문명’에서 등장하는 심미적인 반자본주의적 기획의 원천으로서의 실러이든 아니면 최근 부쩍 관심을 얻는 랑시에르의 일련의 저작에서 등장하는 이의의 공동체, 감각의 공동체의 사상가의 원형적인 인물로서의 실러이든, 어쨌든 실러는 공동체와 미적인 취향을 결합하는 사상가로서 초월론적인 자기와는 가장 거리가 먼 인물로서 환기된다. 실러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을 참조하라. 프리드리히 실러, ‘미학 편지’, 안인희 옮김, 휴먼아트, 2012.; 오타베 다네히사, “‘미적 국가’ 혹은 사회의 미적 통합”, ‘예술의 조건-근대 미학의 경계’, 신나경 옮김, 돌베개, 2012.

고진은 취미의 세계에 몰두하며 독단과 편견에 따라 동요하며 자신을 변별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유행이라는 습속의 코드라는 무한히 변용하는 규범 아닌 규범만을 지닌 주체를 하루키의 주체로서 간주한다. 물론 그것은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주체는 어떻게 출현하게 될까. 초월론적 자기를 정립하는 것은 어떤 역사적인 처리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가능하게 될까. 그러나 그것을 굳이 고진에게 물어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고진은 손쉽게 자본주의의 역사적 단계의 전환과 미적 담론과 형식의 변화를 대응시킨다. 그러한 일대일 대응 관계는 매우 매끈하고 또 정합적으로 보이지만 그것의 역사적인 원인을 헤아리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간단히 자본주의의 기술적, 생산적 변화와 자본의 주도적 분파(상업, 금융, 산업 자본 등)의 헤게모니적 지위 등에 의지하여 간단히 처리한다. 즉 그는 의외로 경제주의적 환원의 논리에 빠진다. 실은 그에게서 빠진 것은 이러한 역사적 변형의 과정을 조직하는 원인에 대한 인식이 제거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이를 간단히 말하자면 모순이나 적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용어를 빌자면 계급투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는 계급투쟁이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이라는 두 개의 인격적 집단 사이의 대립과 갈등이란 뜻에서가 아니라 적대적인 분할을 통해서만 자신을 움직여가는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선험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발상은 알튀세르와 그를 잇는 발리바르의 마르크스주의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관념이라 할 수 있다. 루이 알튀세르, ‘마르크스를 위하여’, 고길환, 이화숙 옮김, 백의, 1990. 에티엔 발리바르, ‘역사유물론의 전화’, 서관모 엮음, 민맥, 1993.

취향은 감각적 통일성을 조직함으로써 초월론적 주관을 개별화한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이란 존재하지 않고 오직 그것을 바라보는 나만이 존재한다고 보는 주체는 있을 수 없다. 세계를 갖지 않는 주체란 상상할 수 있지만 실재하기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초월론적 주관이라는 사변적인 관념이 그려낸 주체는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어떤 주체든 타인과의 관계와의 교감이나 소통을 위해 암묵적으로든 아니면 명시적으로든 어떤 공동의 세계에 살아간다는 것을 전제함으로써 자신을 누구로서 개별화할 수 있다. 사실 고진이 말하는 초월론적 주관도 상호주관적 주체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상호주관적이란 말은 이미 성립된 주체들을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서로 상관하는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상호주관적이라는 이미 주어진 주체들 사이의 관계들을 함축하는 표현을 기피하며 어떤 철학자들은 관-개인적(trans-individual)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를 선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정이 어떻든 주체화의 과정은 개별화의 과정이면서 동시에 공동체화의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러한 변증법을 무시한 채 초월론적 주관만을 바라보는 것은 공동체 없는 공동체라는 역설적인 형식을 통해 움직이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세계의 풍경을 방기하게 될 뿐이다. 랑시에르의 표현을 빌자면 “동일한 의미 아래 사물들이나 실천들을 한데 묶는 가시성과 인식가능성의 틀이며, 이를 통해 특정한 공동체적 감각이 만들어진다. 감각의 공동체는 실천들, 가시성의 형태들, 인식가능성의 유형들을 한데 결합시키는 특정한 시공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것” J. Rancière, Contemporary Art and the Politics of Aesthetics, Beth Hinderliter et. al. eds. ibid. p. 31.
이다. 그렇다면 감각의 공동체는 취미의 동일성에 의해 묶여진 공통 세계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가능성/불가능성을 사유할 수 있는 쟁점으로서 공동체를 사유하라는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실은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표상되는 1990년대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감각의 공동체이다. 각각의 인물은 바로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감각적 공동성의 소재라고 할 수많은 디테일을 통해 각자를 개별화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 노래를 함께 들었던 우리, 그 운동경기를 함께 보았던 우리, 그 옷가지를 함께 입었던 우리,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유사한 취미를 가졌던 우리인 것이다. 이는 초월론적 주관이라는 주체의 외양을 취하고 있지만 실은 초월할 것을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주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주체일 지도 모른다. 혹은 들뢰즈 식의 어법을 패러디한다면 우리는 무한히 많은 n개의 주체라는 외양 아래에서 1/n의 주체라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체는 어떻게 성립하는 것일까. 이는 적대 혹은 모순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를 사유할 때에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가까이 있었던 1980년대라는 적대적 삶의 세계가 정치적 분쟁의 형태로 상징화되었던 시대를 어떻게 상징화할 것인가의 문제가 관건이라는 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앞서 언급했던 2000년대의 특출한 한국 영화의 대표작들이 그런 과제를 떠맡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들은 1990년대 이후의 시점 속에서 1980년대를 재현한다. 그렇지만 이 때의 1990년대 이후는 1980년대와 단절한 시대가 아니다. 그것은 1980년대의 실패 혹은 그것의 좌절의 증후이지 1980년대를 대체하고 새롭게 출현한 감각의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990년대를 취미 혹은 감각의 신기원을 열었던 시대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직 1980년대를 어떻게든 사상(捨象)하거나, 아니면 1990년대 이후의 감성에 따라 재현되기를 부정하는 그 시대를 특정한 이미지로 고사(枯死)시킴으로써만 가능하다.
이는 봉준호나 이창동 같은 지성적 감독이 빼어나게 대결하려 했던 문제일지 모른다. 혹은 강우석 같은 감독이 <투캅스>에서부터 <이끼>에 이르는 일련의 액션 혹은 조폭 영화라는 토착적 장르 영화에서 건망증에 걸린 것처럼 그 시대의 세부를 생략한 채 1980년대를 포퓰리즘적인 갈등의 세계로 재현하려 했던 것의 요점일지도 모른다. 강우석 감독과 그를 뒤잇는 일련의 액션 영화 감독들은 포퓰리즘적인 미학을 통해 중간계급 지식인 출신의 영화학교 출신 감독들이 1980년대의 적대적인 갈등을 심미적으로 굴절시키는 것과 분기한다. 이들 감독들은 1980년대를 풍속화시키기는커녕 보편적인 대립으로서의 우리 같은 없는 자들과 교활하고 속물스러우며 기생적인 그들이라는 포퓰리즘 대립의 프리즘을 통해 재현한다. 그들에게 1980년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1990년대 이후에도 영원히 지속되는 영원한 규칙이다. 세상은 가진 것 없는 우리와 사악하고 기생적인 그들 사이의 드라마이다. 이들에게 1980년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실은 세상이란 원래 그런 것이고 그러므로 역사적 시간은 영화의 공간에서 유예된다.
그러므로 역사적 시간의 투쟁에서 최종 성적표는 이렇게 보고한다. 1990년대의 승리. 그렇지만 그것은 1990년대라는 나름의 특수한 역사적 내용을 가진 시대의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1980년대라는 시대, 즉 세대라기보다는 대학생, 노동자, 농민으로 이뤄진 민중이라는 이름의 보편적인 주체가 감각적 공동체를 분열시키며 어떤 실체화될 수 있는 감각적 보편성, 취미의 일반성을 거부했던 시대가 실패했음을 수긍하고 그것을 만회하려는 반동적 몸짓일 뿐이다. 그리고 이제 그것은 하나의 양식으로 일반화된다. <응답하라>가 재현하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1990년대가 1990년대의 풍경이라 볼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1980년대의 음화일 뿐이다. 1990년대는 바로 감성을 발견한 1980년대,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감각적인 것을 발견하였던 시대가 질식당한 후 감각적인 것을 자신의 취미생활의 노리개로 사취한 시대일 뿐이다. ❐
_영상예술학회 2014 봄 정기학술대회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