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누드, 강간 환상 그리고 식민주의의 섹슈얼리티

이승연의 위안부 누드(그것의 공식명칭은 종군위안부 테마영상집이었다 한다)로 북새통이다. 식민의 역사를 다시 기억해보자는 진지한 발로에서 위안부 누드를 기획했다는 제작사 측의 주장은, 참으로 가소롭고 기상천외한 설레발이다. 이런 졸렬한 변명을 할 생각이었으면 그냥 함구하고 있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위안부 누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이들의 태도 역시 이들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위안부 누드를 만든 이들은 위안부 여성들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었을지 모를 은밀한 성적인 환상을 천연덕스럽게 이용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오해했거나 무식했던 점은 여기에 있다. 그들은 “다들 즐기고 있다”는 순진한 사실만을 알고 있었지 “아무도 즐기지 않는 척 즐기고 있다”는 사실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어제 나는 친구 누나를 따먹었다”는 식의 흔해빠진 저질스런 음란한 낙서와 비슷한 수준으로 다루고 말았다. 그리고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물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옆집에 사는 친구 누나를 따먹었다는 식의 화장실 낙서와 위안부 여성들의 성적인 재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둘 모두 은밀한 강간 환상의 틀을 통해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 하나도 다를 게 없다.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위안부 여성들이 식민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는 위안부 여성들의 체험을 집요하게 성으로부터 떼어놓으려 애써왔다. 우리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체험을 상징화하는 유일하게 허용된 방식은 “식민지 백성”이다. 이는 그녀들이 겪은 고통의 핵심적인 원인이 강간이라는 사실을 삭제하는 것이다. 이는 전시에 강간을 당한 여성들의 체험을 인종적 폭력과 식민적인 지배의 결과로 환원하려는 (보스니아나 르완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남성의 역사적 법정의 논리이다. 설령 그녀들이 겪은 강간의 체험을 마지못해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강간당한 여성의 분노가 아니라 자기 여자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힘없는 남자들의 무력과 자괴를 위한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 오랜 세월 숨죽여 살다가 마침내 ‘커밍아웃’을 하였을 때 그녀들을 그토록 침묵하게 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그것은 그녀들이 전시에 강간을 당했기 때문이다.
위안부 누드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신대 할머니들을 식민지 백성이 아니라 성적인 대상으로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제국주의를 기억하는 남성 주체의 입장 안에 강간당한 여성의 자리는 없거나 부정된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누이이거나 어머니로서의 여성이다. 그렇지만 민족의 역사가 위안부 여성들이 겪은 강간당한 여성으로서의 체험을 소외시키고 식민지 백성으로 상징화하였다고 해서, 그것이 위안부 여성들의 강간의 체험을 완벽히 잊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억압된 채 긍정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위안부 누드가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런 억압된 채 즐겨지고 있던 남성적 환상이다. 위안부 누드는 위안부 여성(혹은 성의 희생을 강요당한 역사 속의 여성들)에게 투입되어 있는 은밀한 성적인 환상을 그만 어이없이 누설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위안부 누드는 괜찮다는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정반대로 위안부 누드는 강간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역사적인 기억마저 소모하고 있기에 더욱 위악하고 또한 폭력적이다. 위안부 누드는 역사적 기억을 강간 환상의 무대 안에서 소비한다. 그 자리에서 강간당한 여성은 존재하지 않고 스스로 은밀히 즐기고 있었음에 분명한 성적인 파트너, 마조히스틱한 여성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 때의 위안부 여성은 재국주의적 전쟁에 징발당한 채 성적인 보상을 제공해야 했던 여성이 아니다. 그녀는 모든 사회적 관계로부터 빠져나와 자신의 은밀한 욕망을 집행하는 “나의” 상상적인 여성일 뿐이다. 이는 강간이나 성희롱을 자행한 남자들에게서 흔히 듣는 이야기의 한 토막이다. 그는 왜 그녀가 그것이 싫었다면 왜 감히 저항하고 부정하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과 그녀 사이에 놓인 권력관계를 보지 못한 채 오직 욕망의 대면만으로 그 상황을 각색한다. 성폭력과 강간을 저지른 남자들의 집요한 환상은 언제나 그녀도 분명히 즐겼다는 것이다.
이는 위안부 누드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그리고 위안부 누드의 비참함은 바로 이런 성적 환상을 위해 전시 강간이라는 비극적 진실을 망각한다는데 있다. 위안부 누드는 위안부 여성의 체험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지우고 있다. 어떻게 감히 “어머니 조국”을 능욕하느냐고 위안부 누드를 비난할 때 그 주장은 식민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식민의 역사 안에 놓인 위안부 여성의 체험에 숨어있는 성을 떼어내고 아울러 자신의 몰역사적인 강간 환상을 유지하려는 몸짓에 가깝다. 위안부 누드는 식민의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강간 환상을 이용한 싸구려 포르노일 뿐이다. 그것은 식민적 역사와 전시의 강간을 자신의 환상의 무대 안의 간단한 장치로 소비하려 했을 뿐이다. 따라서 위안부 누드의 평범하고 순진한 의도가 격렬한 거부에 좌절된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것은 강간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견지되어야만 하는 “망각의 원칙”을 위반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성적인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없이 우리는 상대의 욕망을 무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욕망의 무대가 되는 사회적 조건과 역사적 현실을 가능한 모른 척해야 한다. 그래야 그 환상은 달콤하고 뜨거워진다. 그러나 위안부 누드는 시퍼렇게 살아있는, 결코 그것을 무덤까지 비밀로 지킨 채 가지고 가지 않겠다는 강간당한 여성의 분노와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안부 누드가 실패한 것도 이 점에 있을 것이다. 자신의 체험을 진술하고 증언하는 여성 앞에서 남성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지만 위안부 여성은 결코 자신의 체험을 역사화하지 못했다. 역사를 기억하는 주체가 민족인 한 그것이 기억하는 여성은 어머니나 누이 뿐이다. 민족-역사의 환상과 강간 환상은 결국 동전의 양면이다. 물론 그것이 역사를 기억하는 온당한 방식일 수 없고 또한 위안부 여성을 기억하는 올바른 방식일 수 없음은 물론이다. 위안부 누드를 비난하는 것은 그것을 은밀히 즐기는 자들의 허울좋은 농담일 뿐이다.

직업의 직업, 노동의 노동

포브스 지난 호를 줏어 읽다가 직업의 변천사 비슷한 글에 눈이 걸렸다. 그저 그렇고 그런 미래의 유망 직업 류의 글이었지만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노동의 노동, 일에 관한 일, 그러니까 일의 관리와 통제 혹은 경영에 관련된 일들이 요즘 잘나가는 직업군에 속해있다. 이런 메타-직업이라 부를 만한 것의 부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인간경영시대’맞아 영역 확대

인사 컨설턴트는 기업 내 인적자원 관리 ·조직정비 ·직원교육등 인사 전반을 다루는 일을 한다. 현재 국내 기업들은 상시 구조조정 체제 아래 직원들의 근무 의욕이 떨어져 생산성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노사갈등에 대한 고민도 크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인사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선 이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게 마련이다. 연봉제 확산으로 성과 중심의 인사문화가 자리잡고 있어 이를 체크할 인사 컨설턴트에 대한 수요가 더욱 늘 것으로 보인다.

인사 컨설턴트는 사람을 관리하고 육성하는 데 책임감이 필요할 뿐 아니라 인간경영 노하우가 요구되는 직업이다. 인사 컨설팅 영역에는 조직에 요구되는 인적자원의 특성을 분석, 적합한 인재를 선발 ·분류 ·배치평가하는 업무와 보상관리 ·직원교육 등이 포함된다. 최근에는 퇴직자 관리 등도 업무 영역에 들어왔다.
세계적인 인사 컨설팅 전문회사 타워스 페린(Towers Perrin)의 박광서 한국사장은 “인사 컨설턴트는 흔히 의사에 비유된다”며 “의사가 수술을 잘못하면 한 사람이 생명을 잃지만, 잘못된 인사 컨설팅은 수천 명의 인력을 해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 활동 중인 인사 컨설턴트는 세계적으로 2만여 명에 달한다.
한국에는 아직 10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인력 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그 수가 계속 늘 것으로 보인다. 박 사장은 “머지않아 국내에서도 인사 컨설턴트가 미국 등 외국에서처럼 주목받는 직업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확신했다. 현재 국내에 진출해 있는 외국계 인사전문 컨설팅사는 타워스 페린을 비롯해 머서(Mercer)그룹 ·휘트(Hwite) ·왓슨와이어트(Watson Wyatt)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 업체도 여러 곳 있다.
미국에서는 와튼스쿨 ·예일 ·하버드 ·코넬등의 MBA과정이 인사 컨설팅으로 유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에서는 인사관리(HR ·Human Resource) 전문기관인 SHRM에서 HR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인사담당자 ·교육자 ·컨설턴트 ·연구원 대상으로 PHR ·PHR란 자격시험을 통해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산업(조직)심리 ·산업교육 ·상담심리 관련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이 인사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사례가 많다.
인사 컨설팅에서는 경영학적 지식이나 자격도 중요하지만, 가장 필수적인 자격요건은 풍부한 경험이다. 실제로 인사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이 해당 분야에서의 오랜 경험을 축적한 경우가 많다. 인사 컨설턴트의 급여 수준은 활동영역이나 분야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력을 보유하면 5,000만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다. 사외 컨설팅을 제공하는 경우에는 그 능력이나 경험에 따라 매우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대형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맡은 경험이 있는 경우, 수억원대의 연봉을 받는 사람들도 많다. 외국의 유력 인사 컨설턴트는 수십억원대의 연봉을 받기도 한다.
시대별 인기직업 변천사
고영상/ 신한은행 상품개발실 과장
직업은 시대의 사회 ·경제적 상황을 비추는 거울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국내 직업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1950년대 물장수 ·전차 운전사에서 70년대 건설 노동자를 거쳐 90년대 펀드 매니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들이 유망직종으로 인기를 모았다. 1,000년 후에는 인공두뇌 기술자같은 기상천외한 직업들도 나올지 모른다.
1950년대 : 물장수 ·얼음장수 ·전차 운전사 ·전화교환원 ·라디오 조립원
60년대 : 은행원 ·공무원 ·회사원 ·타이피스트 ·스튜어디스
70년대 : 대기업 직원 ·금융계 종사자 ·공작기계 엔지니어 ·전당포 업자 ·건설 노동자
80년대 : 백댄서 ·연예인 ·광고기획자 ·카피라이터 ·통역사 ·운동선수
90년대 : 외환 딜러 ·펀드매니저 ·프로그래머 ·네트워크 전문가 ·인터넷 전문가 ·바이오 산업 전문가
3000년대 : 공상과학 소설가들이 점찍은 3000년대의 유망직업은 돼지 사육사 ·애완동물 ·디자이너 ·인공두뇌 기술자 등이다. 돼지 사육사는 인간 세포 배양용 돼지를 사육하는 전문가. 애완동물 디자이너는 토끼 병아리 ·돼지 ·뱀 ·악어 ·개처럼 동물의 유전자를 합성해 새로운 애완동물을 디자인하는 직업이다. 인공두뇌 기술자는 인공두뇌의 용량을 늘리고 버그를 잡는 기술자다.
※미국(현재)
노인복지사 정보검색사 유전자감식사 전염병 전문의 고용전문변호사 무선통신 전문가
국제회계사 인사전문가 그래픽디자이너 소프트웨어 기술자

게이 결혼의 ‘권리’라는 미망

영국의 경제주간지 에서 커버스토리로 미국 대선의 게이 결혼에 관련된 이슈를 다뤘다. 선거에 임박하면서 민주당의 대선주자를 둘러싼 뜨거운 소란만큼이나 보수당의 표챙기기를 위한 데마고기도 역시 파상처럼 벌어진다. 왜 사회의 이데올로기적인 분할이 게이 결혼이란 이슈를 통해 제기되고 또한 실현될까. 게이의 결혼 권리를 둘러싸고 마치 그것이 중요한 이슈인양 게이정치학이 개입하는 것은 왜 잘못일까. 게이 결혼을 허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쟁점이 아니다. 그것은 친밀성을 탈이성애화시키려는 게이 정치학의 급진적인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다. 씨빌유니언과 포괄적인 사회적 권리로서의 결혼 그리고 가정적 동반자관계(domestic partnership) 사이의 관계를 둘러싸고 의견들이 분분하다. 그것을 한국에 빗대어본다면? 게이 호주권? 세대주로서의 권리? ….
The case for gay marriage
Feb 26th 2004
It rests on equality, liberty and even society

SO AT last it is official: George Bush is in favour of unequal rights, big-government intrusiveness and federal power rather than devolution to the states. That is the implication of his announcement this week that he will support efforts to pass a constitutional amendment in America banning gay marriage. Some have sought to explain this action away simply as cynical politics, an effort to motivate his core conservative supporters to turn out to vote for him in November or to put his likely “Massachusetts liberal” opponent, John Kerry, in an awkward spot. Yet to call for a constitutional amendment is such a difficult, drastic and draconian move that cynicism is too weak an explanation. No, it must be worse than that: Mr Bush must actually believe in what he is doing.
Mr Bush says that he is acting to protect “the most fundamental institution of civilisation” from what he sees as “activist judges” who in Massachusetts early this month confirmed an earlier ruling that banning gay marriage is contrary to their state constitution. The city of San Francisco, gay capital of America, has been issuing thousands of marriage licences to homosexual couples, in apparent contradiction to state and even federal laws. It can only be a matter of time before this issue arrives at the federal Supreme Court. And those “activist judges”, who, by the way, gave Mr Bush his job in 2000, might well take the same view of the federal constitution as their Massachusetts equivalents did of their state code: that the constitution demands equality of treatment. Last June, in Lawrence v Texas, they ruled that state anti-sodomy laws violated the constitutional right of adults to choose how to conduct their private lives with regard to sex, saying further that “the Court’s obligation is to define the liberty of all, not to mandate its own moral code”. That obligation could well lead the justices to uphold the right of gays to marry.

Let them wed
That idea remains shocking to many people. So far, only two countries—Belgium and the Netherlands—have given full legal status to same-sex unions, though Canada has backed the idea in principle and others have conferred almost-equal rights on such partnerships. The sight of homosexual men and women having wedding days just like those enjoyed for thousands of years by heterosexuals is unsettling, just as, for some people, is the sight of them holding hands or kissing. When The Economist first argued in favour of legalising gay marriage eight years ago (“Let them wed”, January 6th 1996) it shocked many of our readers, though fewer than it would have shocked eight years earlier and more than it will shock today. That is why we argued that such a radical change should not be pushed along precipitously. But nor should it be blocked precipitously.
The case for allowing gays to marry begins with equality, pure and simple. Why should one set of loving, consenting adults be denied a right that other such adults have and which, if exercised, will do no damage to anyone else? Not just because they have always lacked that right in the past, for sure: until the late 1960s, in some American states it was illegal for black adults to marry white ones, but precious few would defend that ban now on grounds that it was “traditional”. Another argument is rooted in semantics: marriage is the union of a man and a woman, and so cannot be extended to same-sex couples. They may live together and love one another, but cannot, on this argument, be “married”. But that is to dodge the real question—why not?—and to obscure the real nature of marriage, which is a binding commitment, at once legal, social and personal, between two people to take on special obligations to one another. If homosexuals want to make such marital commitments to one another, and to society, then why should they be prevented from doing so while other adults, equivalent in all other ways, are allowed to do so?

Civil unions are not enough
The reason, according to Mr Bush, is that this would damage an important social institution. Yet the reverse is surely true. Gays want to marry precisely because they see marriage as important: they want the symbolism that marriage brings, the extra sense of obligation and commitment, as well as the social recognition. Allowing gays to marry would, if anything, add to social stability, for it would increase the number of couples that take on real, rather than simply passing, commitments. The weakening of marriage has been heterosexuals’ doing, not gays’, for it is their infidelity, divorce rates and single-parent families that have wrought social damage.
But marriage is about children, say some: to which the answer is, it often is, but not always, and permitting gay marriage would not alter that. Or it is a religious act, say others: to which the answer is, yes, you may believe that, but if so it is no business of the state to impose a religious choice. Indeed, in America the constitution expressly bans the involvement of the state in religious matters, so it would be especially outrageous if the constitution were now to be used for religious ends.
The importance of marriage for society’s general health and stability also explains why the commonly mooted alternative to gay marriage—a so-called civil union—is not enough. Vermont has created this notion, of a legally registered contract between a couple that cannot, however, be called a “marriage”. Some European countries, by legislating for equal legal rights for gay partnerships, have moved in the same direction (Britain is contemplating just such a move, and even the opposition Conservative leader, Michael Howard, says he would support it). Some gays think it would be better to limit their ambitions to that, rather than seeking full social equality, for fear of provoking a backlash—of the sort perhaps epitomised by Mr Bush this week.
Yet that would be both wrong in principle and damaging for society. Marriage, as it is commonly viewed in society, is more than just a legal contract. Moreover, to establish something short of real marriage for some adults would tend to undermine the notion for all. Why shouldn’t everyone, in time, downgrade to civil unions? Now that really would threaten a fundamental institution of civilisation.